1 이름없음 2023/09/05 13:33:03 ID : fglu08nQrcL 1
잠에서 깨어난 것은 이른 오전이였다. 차갑게 내리깔린 도시의 공기에 나는 코트를 대충 걸친채 밖으로 나왔다. 이 시간때의 반쯤 올려둔 휴대폰의 밝기와 같은 채도가 나를 자극시켰다
2 이름없음 2023/09/05 13:58:30 ID : fglu08nQrcL 0
마치 흑백과도 같은 풍경이였다. 단지 해가 전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일까? 잠시 도시의 풍경을 보며 감상에 빠져있던 사이 나의 옆으로 무언가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쿵- "오늘도..인가?" 떨어지며 반쯤 뭉개진 그것은 누군가의 시체였다. 아마 오늘따라 유독 운이 없던 남자겠지. "여전히 차는 한대도 없군." 나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까마귀들은 여전히 길가에 나앉아 죽은 이들의 시체를 뜯어먹기 바빴다. 그래. 세상이 흑백으로 보이는건 단순히 시간 탓이 아니다. 바로 저놈들 때문이지. 담배연기를 연거푸 들이킨 뒤에 난 발걸음을 재촉했다. 끼익- 쾅- 여전하다. 여전히 뒤에선 저 소리가 들린다. 난잡스러운 자동차의 타이어 마찰음과 무언가를 들이박는 저 소리. 오늘도 도시는 멸망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서오세요. 신도님. 방문을 환영합니다." 이곳은 동네에 있는 유일한 교회였다. 나이많은 수녀가 나의 방문을 환영했다. 내 키의 2배는 되어보이는 문을 열고 들어가니 사람들이 앉아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어제보다 줄었군요." "네.. 불행하게도 그리된듯 하군요." "주교님은 어디계십니까?" "지하실에.." "아직도 헛된 희망을 버리지 못하셨군요." 주교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무려 3대에 걸쳐 아버님이라 칭하는 전지전능한 자를 떠받을어 온 것이다. 그 강한 신앙심도 멸망의 징조 앞에서는 바람앞의 촛불과도 같았다. 처음에는 사람들의 버팀목이 되어주던 그는 이젠 사이비 교주로 거듭나 매일같이 지하실에서 입에 담기 힘든 역겨운 의식을 진행중이였다. "수녀님 이만 교회를 그만두시는게 어떻겠습니까? 이곳은 너무 위험합니다." "이 늙은 노파가 갈 곳이 어디있다고.. 전 이곳을 지킬겁니다." 노파의 눈에는 탁기가 서려있었지만 여전히 목소리에는 일말의 떨림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 각자의 선택인거지. 미련은 버리겠다 다짐하지 않았던가. 스테인글라스에 반사되는 빛들이 선명해진다. 해가...뜨고있다. "수녀님 슬슬 준비를.." 빠르게 신도들은 예배당의 가구들을 끌어모아 문을 봉쇄했다. 곧이어 해가 완전히 떠올랐고 밖에서는 지독한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끼긱- 끼기긱- 마치 쇳소리와도 같은 마찰음에 교회 안의 모두가 숨을 죽였다. 거대한 그림자가 교회를 완전히 지나친 뒤에서야 우리는 입을 열 수 있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수녀님." "그대에게 주님의 은총이 함께하길. 아멘." 식상한 수녀의 기도를 끝으로 나는 교회를 나섰다. 방금 전 교회를 지나쳤던 녀석은 이미 몸을 감춘지 오래였다. 그때였다. 주머니에 찔러넣어둔 무전기가 작동했다. 치지직- 치칙- 치지지직- 몇번의 잡음 끝에 무전기에선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아. 들리나." "네. 잘 들립니다 대장님." "그래. 미안한데 지금 댐으로 와줄 수 있나?" "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가도록하겠습니다." 나는 먼지쌓인 차의 본닛을 열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부품들을 갈아끼우고 시트를 대충 닦아낸 뒤 키를 꽂았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슨일로 날 부른거지..' 사태가 벌어진 뒤에 날 호출하는 것은 처음이였다. 심지어 그 위치가 안개 근처인 댐이라니.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3 이름없음 2023/09/05 14:13:29 ID : fglu08nQrcL 0
의심을 뒤로한채 도착한 그곳에는 대장이 서있었다. "그래. 빨리 와줘서 고맙네. 잠시 이리로 들어오게나." 대장은 나를 댐의 전력 관리실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전 부대원들이 모두 모여 무언가에 대해 열렬한 토론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자자. 다들 조용!" 일순간에 정적이 찾아왔고 그제서야 동료들은 나의 방문을 환영했다. "못 들은 사람이 있으니 다시 설명하마. 우리의 계획에 대해서 말이지." 비장한 표정의 대장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백발의 체격좋은 건장한 노인이였다. "우리는 안개 속으로 뛰어들어볼 계획이다." 대원들이 다시금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대장이 미친게 분명했다. 안개 속으로 들어가자고 하다니.. 그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일이였다. 나는 대장에게 말했다. "대장. 오랜만에 불러준건 좋으나 우릴 다 죽일 작정입니까?" "그렇지 않네. 잠시 내 이야기를 들어주겠나?" 그러자 백발의 노인이 대장을 대신해 입을 열었다. "반갑네. 나는 이 마을에서 나고자란 토박이일세. 호칭은 대충 영감이나 할배 정도로 통일하면 좋겠구만." 그 노인..아니 영감은 자신이 대장과 함께 세운 계획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안개를 뚫을 수 있는 방법이 있네. 물론 모두의 생존은 보장할 수 없지만 말이야." 그렇다. 안개. 현재 이 마을의 외곽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안개는 어느날 찾아온 정체불명의 현상이였다. 안개로 뛰어들어간 자들은 3가지 중 하나의 결말을 맞았다. 1. 미쳐버린다. 2. 마을 상공 어딘가에서 추락하며 최후를 맞이한다. 3. 괴물의 먹이가 된다. 그나마 첫번째 경우가 제일 나은거라고 할 수 있겠지. 적어도 목숨은 건지니 말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마을에 사람들이 갇힌지 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이젠 견디지 못하고 안개로 뛰어들어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이 더 많아졌다. 결코 긍정적인 상황은 아니였다. "그 방법이란게 뭡니까? 영감님." 제일 먼저 입을 연건 뚱땡이였다. 그러자 노인은 말했다. "안개가 둘러쌓인 산맥을 관통해 옆 마을로 갈 수 있는 지하갱도가 있네. 오래전 버려진 곳이지만 말일세." "그럼 굳이 저희가 아니여도 괜찮은거 아닌가요?" "아니. 자네들이 필요하네. 그 안에는 놈들이 가득 도사리고 있으니 말일세." 우리 부대원들은 확실히 실전을 경험한 성능좋은 병사들이였다. 그것도 대인전에 특화된 특수부대 소속의. 하지만 괴물을 상대하는 것은 전혀다른 이야기였다. "저흰 그놈들을 죽일 수 없습니다." 말 그대로였다. 놈들에게 고폭탄과 온갖 화기류를 동원해봤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저지시킬 수는 있지 않은가? 그거면 됐네. 잠깐동안만 놈들을 멈춰세울 수 있다면 놈들은 좁아터진 갱도로 우릴 따라올 수 없을게야." 불확실한 계획이였다. 하지만 투표결과 찬성 10표 반대 0표. 어차피 모두들 이곳에만 갇혀있다보니 다가오는 죽음을 받아들인 상태였다. 마지막으로 한번쯤 발버둥쳐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4 이름없음 2023/09/05 14:21:56 ID : fglu08nQrcL 0
우리는 날짜를 정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일주일뒤.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댐 앞에서 다시 모이기로 한 것이다. 일주일 사이 나와 부대원들은 마을에 남아있던 모든 장비들을 긁어모았다. 오랜만에 사격장의 발전기가 돌아가기 시작했고 우리는 만반의 준비를 하기위한 훈련을 시작했다. 일주일 뒤 우리는 몰라보게 달라져있었다. 삶에 대한 열망이 단시간에 우리를 변화시킨 것이다. 그리고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자네들 모두 잘 알고있겠지만 한번만 더 설명하겠네. 갱도를 쭉 따라가다보면 큰 지하공동이 나올걸세. 놈들은 그곳에 있어. 그곳만 잘 통과하면 우린 살아나갈 수 있네." 노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장의 진두지휘 아래 우리는 갱도의 입구로 발을 옮겼다. 소총의 후레쉬를 앞으로 향하자 어두웠던 갱도 내부가 환해졌으나 안심이 되진 않았다. 저 깊은 무저갱의 밑바닥에서부터 기어올라오는 놈들의 울음소리 때문이였다. "후..진입해." 명령이 떨어지자 우리는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며 내부로 진입했다. 그런데..뭔가 이상했다. "이..이럴리가 없는데?" 영감또한 당황한듯 보였다. 분명 입구 초입까지만 해도 불규칙적이고 거친 암벽층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순간 정신을 차리니 우리는 잘 다듬어진 석재 복도를 지나고 있었다. 갱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드넓은 크기에 양쪽 벽면에 일정한 간격마다 횃불이 걸려있는 고풍스러운 복도였다. 하지만 제일 놀라운 것은 우리가 들어온 입구가 사라졌다는 것이였다. "어이 영감! 어떻게 된거야?! 이런 말은 없었잖아."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영감의 멘탈은 이미 처참히 무너진 듯 보였다. 그는 입을 꾹 다문채 흔들리는 눈동자를 숨기기 위해 바닥을 뚫어져라 쳐다볼 뿐이였다.
5 이름없음 2023/09/05 14:34:29 ID : fglu08nQrcL 0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거라곤 전진 뿐이였다. 빠르게 상황을 받아들인 대장이 다시 지휘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계속해서 전진, 또 전진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대략 20분이 지난 시점에서 처음으로 우리의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나타났다. 거대한 석재 문에는 우리가 알아볼 수 없는 언어로 기괴한 형상들이 조각되어 있었다. "허..그래 어디한번 끝까지 가보자고." 믿을 수 없다는 탄식과 함께 대장은 문을 열어젖혔다. 그 육중한 무게에도 불구하고 문은 살짝 미는 것 만으로 부드럽게 열렸다. 그리고 그 내부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난생 처음보는 아주 거대한 공간과 쇠사슬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새장. 그리고 그 안에 갇혀있는 끔찍하기 짝이없는 모습의 새들이였다. "이게 무슨..." 새들은 마치 만화나 게임에서나 나오는 스켈레톤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눈알이 있어야할 자리는 텅텅 비어있었고 부리와 털은 건재했으나 다리를 감싸고 있던 피륙은 갈기갈기 찢겨 마치 치마처럼 나풀거리고 있었다. 새장을 한참동안 쳐다보던 대원 한명이 하늘을 가르켰다.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고 그 끝에는 천장에 뚫린 거대한 구멍이 있었다. 새들은 이따금씩 동굴 군데군데 나있는 구멍을 통해 흘러들어오는 무언가를 올가미에 묶어 그 구멍을 향해 날아갔다. 그것은 시체였다. "아무래도 안개의 진실이 밝혀진 모양이군." 아마 저 구멍들은 지상까지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빌어먹을 괴물들이 여기로 사람들을 잡아오면 저 괴조가 올가미로 묶어 하늘에서 떨어뜨리는 식이였겠지. 미쳐버린 사람들 또한 이해가 되었다. 마치 건어물 건조장과 같이 시체를 매달아놓은 모습은 확실히 일반인이 감당하기에는 무리였다. "그럼 이제 저희는 어떡하죠?" "방법을 찾아봐야지. 분명히 들어오는 곳이 잘 정돈되어져 있으니 나가는 곳 또한 있을거다." 그렇게 우리는 거대한 공간을 샅샅이 수색했다. 발견한 것은 왠 거대한 쇠창살이 박혀있는 감옥과 그 감옥 안에있는 작디작은 나무 쪽문 하나. 아무래도 이동할 곳은 저곳 뿐인듯 했다. 그렇게 감옥의 문을 열 방법을 찾던 중 갑작스레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6 이름없음 2023/09/05 14:52:32 ID : fglu08nQrcL 0
무언가 끔찍하게 구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기어오는 소리 또한 들려왔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놈들이다..!' 우리가 선택한 것은 맞서싸우는 것이 아니라 숨는 것이였다. 놈들은 지상과 연결된 구멍을 통해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우리는 열렸던 석문을 다시 닫고 복도에서 숨을 죽였다. 몇번의 진동 이후 놈들의 소리가 잦아들자 대원 중 한명은 핸드폰의 카페라를 석문의 틈에 밀어넣어 내부를 관찰했다. 내부에서는 괴물놈들과 괴조들이 거대한 검은 덩어리로 뭉쳐져 잠을 청하고 있었다. '움직여야하나?' 놈들이 구멍으로 들어왔다고 해서 다시 그곳으로 나가리란 법은 없었다. 만약 이곳에 숨은 것이 들킨다면 순식간에 우린 죽음을 맞이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고민에 빠져있던 사이 머리 위로 무언가 팔랑이는게 떨어졌다. "이건...종이?" 누구의 것일지 모를 아주 오래된 메모였다. 아마 석문 위의 틈에 끼워져 있다가 우리가 문을 여닺으면서 떨어진 듯 하였다. 석문에 세겨진 글씨와 다르게 종이에 쓰여있는 것은 명백히 인간의 언어였다. 우리는 그것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일기- 저의 목숨줄이 얼마나 질길지 모르기에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전 이곳으로 잡혀왔다 아주 우연히 생존해 몸을 숨기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 종이에 제가 알아낸 것들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첫째, 놈들은 한번 잠들면 최소한 3시간 동안은 어떠한 미동도 없습니다. 설령 외부적인 자극이 가해지더라도 반응하지 않는 듯 보입니다. 둘째, 감옥 안의 통로는 외부로 이어집니다. 바람이 불어오니 확실한 정보일 겁니다. 셋째, 놈들을 관리하는 누군가가 있습니다. 그 존재가 인간인지 아니면 괴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를 조심하십시오. 늙은 노인의 외형에 번뜩이는 눈동자를 가진 자입니다. 글을 모두 읽은뒤 우리는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석문을 다시금 열고 놈들을 지나 감옥 내부로 향하던 찰나.. "영감님 지금 뭐하세요!" "흐흐..기다려보게나 이런 기회는 두번다시 없을테니 말일세." 영감은 동그랗게 뭉쳐있던 놈들에게 기름을 뿌리기 시작했다. 그의 눈에는 옅은 광기가 서려있었다. "제정신이 아니군. 막아!" 대장이 소리치자 우리는 달려가 영감을 붙들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영감이 떨어뜨린 라이터를 통해 동그란 구체 전체로 불이 번지고있었다. 그리고 영감은 그것을 보며 미친듯이 웃다가 자신에게 실수로 기름을 쏟았고 끔찍한 최후를 맞았다. "젠장! 빌어먹을 영감탱이. 이게 뭐하는 짓이야!" 대장은 돌발행동에 격노한 듯 보였다. 우리들 중 누구도 그의 죽음을 불쌍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자업자득이였으니깐. 다행인건 우리가 가야할 방향에서 바람이 불어왔기에 연기를 들이마실 일은 없었다. 거대한 불덩이를 뒤로하고 빠르게 감옥의 통로로 몸을 옮겼다. "지금부턴 후레쉬는 끄고 가지." 낡은 나무 쪽문을 열고 들어선 통로의 내부는 말도 안될정도로 밝았다. 벽에 박혀있는 돌들이 밝은 푸른빛을 내뿜고 있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니 드디어 빛이 모습을 드러냈다. 밖이였다. 드디어 안개를 통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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