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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꾼 꿈.
난 지하처럼 어둡고, 창문도 없이 횃불만 줄줄히 이어져 있는 학교 복도에서 눈을 떴어. 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내 친구들은 가만히 서서 뭘 하냐며 날 재촉했고. '아, 응' 이라고 대답하면서 쫓아갔던 것 같아.
교실에 도착해보니 열 댓명가량의 아이들이 있었고, 모두 앉아서 즐겁게 수다를 떨거나 하고 있었지만 몇 몇 애들은 무기를 손질하고, 상처를 붕대로 덧대고 있었어. 조금 이상한 광경이지만 여느 학교와 다를 것 없었지.
그때, 어떤 애들 세 명-검은 뿔테 안경을 쓴 갈색 머리카락 남자애, 분홍색 머리카락의 펑키한 옷차림의 여자애, 좀 껄렁한 것처럼 보이는 검은 귀고리를 한 남자애-이 다른 애들에게 외쳤어. 자기들은 반을 나가보겠다고 했지. 나가서 교과서를 찾아오겠다고.
알고 보니 여기는 좀비가 판치는 세상이었고, 우리 학교의 무리는 세 무리로 나뉘어 있었어. 제일 인원이 많은 문과반, 궤멸된 이과반, 자기들끼리 떠돌아다니는 예체능반. 우리는 세상이 이렇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해야 했어. 교과서가 없으면 선생님 역할의 사람에게 '벌점'이라는 걸 받았는데, 보아하니 벌점을 많이 받으면 패널티가 있었던 것 같아. 나는 물론 안전주의자고, 이과반이 무너지기 직전에 문과반으로 피신 온 사람이라서 교과서 없이 생활했었지. 벌점이 꽤 위험할 정도로 많이 쌓였더라.
아무튼, 그 세명을 우리가 말렸지만, 그 애들은 우리 말을 듣지 않고서 밖으로 나가버렸어. 나는 뭔가 불안한 마음에 가슴께를 꼭 쥐고 있었고.
우리는 그 애들이 돌아오지 않거나,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렸어. 한동안 시간이 흐르고, 어두운 복도에 사람 그림자가 희미하게 보였어. 보초를 서던 애들은 그애들이 무사히 돌아오는 듯 보여서 안심한 눈치였고.
그런데 내가 그쪽을 보니까 뭔가 이상해 보였어. 다가올수록 이상할 정도로 점점 거대해지는 느낌.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길래 난 내가 잘못 본 것인가 하면서 고개를 돌렸는데, 다음 순간 보초를 서던 애들 중 한 명이 외쳤지.
"씨발, 저 새끼들 물려서 왔어."
다음 순간 문이 부서지고 좀비 두 마리가 들이닥쳤어. 안경을 끼고 있던 애는 안경 중앙이 거의 부서진 채 몸에서 끈적끈적한 초록색 점액을 흘리고 있었고, 분홍 머리카락의 여자애는 보기에는 멀쩡해 보였지만 손에 피칠갑이 되어있고. 양아치처럼 생긴 애는 아예 죽었는지 보이지 않더라.
우리는 혼비백산하면서 뒤로 물러났고, 전투조 애들이 앞으로 나왔지만 이미 피해를 입은 애들이 생겨났어. 그리고 나도 그럴 위기에 처해 있었지.
보초를 서던 애들 가까이 있던 바람에 문이 부서지는 순간 애들하고 떨어져 버렸지 뭐야. 난 안경을 쓴 좀비가 점점 다가오는 걸 느끼면서 공포에 떨었어.
'이렇게 죽는다고? 살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렇게 죽는 거야?'
나는 책상 아래에서 바르작거리면서 최대한 뒤로 물러나려고 애썼지. 역부족이었지만. 좀비는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고, 나는 그놈이 내 얼굴 앞까지 다가올 때 거의 기절할 뻔 했어.
근데 더 이상 못 다가오더라. 이때까지는 왜인지 몰랐어. 왜 얘가 더 다가오지 않는지.
좀비가 멈춘 사이 공격조 애들이 좀비의 머리를 잘라서 터뜨렸고, 나는 경미한 찰과상만 있을 뿐 멀쩡했어. 나는 친구의 부축을 받아서 일어섰고, 교실이 난장판이 된 걸 볼 수 있었어. 망가지지 않은 것이 없었어. 부서진 책상들이며, 깨진 바닥, 조각난 칠판... 우리는 거처를 잃게 됐어. 우리들의 '선생님'은 그 모습을 보시고, 한숨을 쉬었지.
"옆으로 옮기자." 면서.
우리는 강의실을 옆으로 옮겼는데, 하필이면 문이 양옆으로 네 개나 있는 큰 강의실이었어. 나는 언제 또 좀비가 들이닥칠까 노심초사하며 수업도 제대로 듣지 못하고 문을 감시했지. 손에는 작은 분필 폭탄을 쥐고 말이야. 좀비는 후각이 예민해서 분필가루가 터지면 잠깐 혼란스러워했거든.
나는 감시하는 중이라 옆을 감히 쳐다볼 생각도 하지 않아서, 내 옆에 누가 앉았는지도 몰랐어. 그래서 손을 잡아주는 것도 내 친구인가 보다, 하고 넘겨 버렸지. 난 이 반에서 아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까. 어쨌든 외지인이잖아.
나중에 내 손을 잡고 있는 사람을 봤는데 모르는 남자애더라고. 솔직히 놀랐어. 나랑 친하지도 않은데 내 손을 잡는 게 좀 어색해서. 그 옅은 갈색 머리카락의 남자애는 문과반에서 엄청 조용하고 거의 병풍 급인 애라 다른 애들이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애였어. 평소에 잘 행동하지 않는데다 엎드려 자는 모습만 봐서 이런 행동을 할 줄 몰랐던 난 당황한 나머지 손을 쏙 빼 버렸어. '내 손 왜 잡은 거야?' 라고 물었더니, 그애느내가 불쌍할 정도로 떨고 있었다며 네 친구는 그 애의 다른 친구가 잡아주고 있는데 넌 아무도 안 잡아줘서 그랬다고 어깨를 으쓱였어. 나는 내가 그렇게 떨었나 창피하기도 했고, 알아차려준 것도 신경쓰여서 고맙다고 말했어. 남자애(이제부터 K라고 할게)는 그럴 필요 없다면서 웃었지. 그 이후로 우린 나름 친해졌어. 책도 같이 보고, 걔가 수업 필기 빼먹은 것도 내가 보충해주고-사실 거의 내 거 배껴 쓰는 거였어- 그렇게 지냈던 것 같아.
어느 날, 불안감이 급작스럽게 몰려오던 날, 수업을 듣지 않고서 또 문만 응시하고 있었더니, K는 그렇게 보고 있으면 무섭지 않냐면서, 다른 애들처럼 수업에 집중하면 아무 생각 없어질 텐데 왜 그렇게 보면서 떨고 있냐고 물었어. 난 내 쪽이라도 보아야 안심된다고, 제일 문 앞에 가까이 있는 사람이 봐야 빨리 대처할 수 있지 않겠냐고 대답했고. K는 '그럴 수도 있겠네' 라면서 내게 용감하다느니 하는 말을 했어. 놀리는 줄 알고 짜증내면서 고개를 돌렸더니 너무 진지한 표정이라 말문이 막혔어. 걔가 그렇게 단단한 표정을 짓는 건 처음 봤었거든. 흐지부지하면서 그날은 그렇게 끝났어.
그리고 몇 주가 지나서, 불청객들이 찾아왔어. 예체능반. 그 떠돌아다니는 자칭 '정의의 사도'들. 그 무리의 리더격인 애가 날카로운 파편이 가득 달린 야구방망이를 끌면서 우리 반으로 들어왔어. 목소리가 너무 커서 좀비까지도 다 몰고 올 것 같았어. 우리 선생님이 이게 무슨 행패냐고, 돌아가라고 하니까, '관리자'를 찾으러 왔대.
그들의 말에 따르면 이 학교의 관리자라는 건 이곳의 좀비를 조정하고 배치하는 인간 외의 생물인 것처럼 들렸어. 선생님이 인간 아닌 걸 여기서 왜 찾냐고 따지듯이 물으니 걔는 코웃음치며 그놈은 인간형이라 말했지. 이곳의 인간을 모조리 죽이려는 놈이 인간처럼 지내야 인간을 파악하기 쉽지 않겠냐고. 그리고 리더는 뒤쪽의 자기 부하격인 애들을 불러와서, 우리를 검사하게 했어. 여기에 그 관리자라는 놈이 있다면서.
관리자라는 건 좀비를 조종할 수 있고, 사람이 인식하기 어려운, 그리고 어딘가 동떨어져있는 존재라고 말했어. 곧 그런 특징을 가진-조용하고, 낯 가리고, 혼자서 생활하는-애들이 추려졌고, 그곳엔 나도 포함되어 있었어. 그때 좀비가 내 앞에서 스스로 멈췄고, 난 조용한데다 별로 친화적인 애도 아니었으므로. 난 나와 같이 추려진 애들이 하나 둘씩 통과되는 것을 보면서 내 차례를 기다리다가, 문득 K와 눈이 마주쳤어. 그애는 씩 미소지었고. 난 같이 어색하게 미소를 지어주다가, 저애는 왜 나처럼 조사 대상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어. 가장 조용하고 가장 인식되지 못하는 존재는 바로 쟤인데.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고, 내 희망사항과는 다르게 난 관리자로 낙인찍혔어. 그들이 내세운 증거가 하나같이 날 가리키고 있었거든. 이과반이 궤멸되기 전에 어떻게 알고 탈출했는지, 좀비를 가다가 만났는지. 어떤 것도 제대로 대답하기 어려웠어. 윽박지르듯 질문하며 답을 요구하니 당연 그럴 수밖에. 전부 대답하지 못하자 예체능 애들은 거의 확신하듯 강하게 말했고 문과반 애들은 처음엔 불신하는 눈치였다가, 점점 선동당하기 시작했어. 거의 모든 애들이, 그리고 내 친구마저도 날 관리자라고 생각했어. 난 한 순간에 모두의 배신자가 되었어. 난 억울하다고 외쳤지만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지. 나는 거의 울 것 같았지만, 리더에게 요구했어.
'좀비를 유인해서, 나한테 데려와라. 날 잡아먹으려고 하면 인간인 게 증명되니 날 구해, 아니면 그 자리에서 바로 죽여라.' 라고.
리더는 불확신하는 것 같았지만 곧 수락했어. 어차피 그들 모두 여학생 하나 죽일 만큼의 힘은 있으니까. 사실 그들도 긴가민가했던 거겠지. 내가 진짜인지 아닌지.
난 어두침침한 복도 갈림길로 옮겨졌어. 내 양 옆에는 무기를 든 건장한 남학생들 두 명이 서 있었고, 뒤쪽엔 리더가 있었지. 리더는 안 아프게 끝내준다면서 배트를 휘둘렀고, 양 옆의 남자애들은 날 감시하듯 노려봤어. 숨 막히고 무서웠어. 심장이 너무 세차게 뛰지 뭐야.
작은 발소리가 점점 커지고, 한 명이 좀비를 유인해 왔어. 네펜데스처럼 생긴 좀비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어. 나는 그 좀비가 내 바로 앞까지 오는 걸 떨면서 보고 있었지.
좀비는 멈췄어. 그리고 날 지나쳤어.
그건 날 지나쳐서 내 뒤로 물러나 있던 남자애 두 명을 그 입으로 삼켜버렸어. 리더는 '말도 안 된다' 면서 내 머리를 치려고 했어. 두 동강 나기 전까지는. 다음 순간에는 하반신만 남은 리더가 가만히 서 있었어. 나는 그것의 뜨거운 안쪽과 울컥울컥 쏟아지는 피를 보면서 거의 실신하기 직전의 상태였고.
그때 K가 뛰어왔어. K는 나한테 도망치자고 했어. 안쪽도 이미 좀비가 가득 들어찼다면서. 나는 믿고 자시고 할 틈도 없이 그애의 손을 잡고 달렸어. 뒤쪽을 돌아봤는데, 비명소리가 많이 울렸어. 살아남은 애들이 우리 쪽으로 뛰어왔는데, 벽을 뚫고 나타난 지네처럼 허리가 긴 좀비가 그애들을 전부 쓸어가버렸어.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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