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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처음으로 꿔본 가위 (1)
너네들도 너네들이 극도로 혐오하는 인간상이 있을 거야. 나도 그랬어. 그 사람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역겨웠거든. 매사에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굴면서도 죄책감 한 번 느끼지 않는 뻔뻔한 태도에 치가 떨렸어. 그 사람이 죽도록 미웠어. 한 번쯤 봐줄 만한 행동을 해도, 난 방어적으로 그 사람이 나를 짐승처럼 때린 기억을 끄집어 내서 나의 감정을 중화시켰어. 그 사람을 사랑하는 건 내 자아에 대한 반역이었고 중죄였어.
난 그 사람이 가끔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늦어질 때엔 무척이나 설레었어. 술집에 갔나? 바람피우느라고? 이혼? 아니면 사고라도 났나? 혹시 죽었나?
얼굴이 너무 두꺼웠어. 벌에 쏳인 듯 항상 퉁퉁 부어올라 있었어. 그 사람의 얼굴을 본 내 친구가, 범죄자 관상이라고 하더라. 내 앞에서 할 말은 아니었는데 그땐 아무 말 못했어.
폭력적이고 본능에 충실하고 멍청하고 가학적이고 고지식하고 보수적이고 속물적이고 감정 표현에도 서툴고. 나는 그 사람을 싫어했고 혐오했어. 어쩜 사람한테 이렇게 예뻐할 만한 요소가 없을 수가 있지.
내 절반은 그 사람이라는 사실도, 진작에 정신승리로 날려버린 지 오래였어. 난 절반만으로 평생 살아갈 거라고, 그럴 거라고 다짐했어.
그 사람은 위험했어. 사실 친구가 한 얘기는 전부 사실이야. 어떤 모습으로 돌변할지 예측이 안돼서 항상 긴장에 떨었어. 그 사람에게 내 맨살을 보여줄 빠엔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겠다고 다짐하고, 항상 샤워를 마치고는 타월로 온몸을 감싸고 나오는 버릇이 생겼어. 그 사람과 어떤 방면으로도 엮이기 싫었고, 감정을 공유하기가 싫었어. 그럼에도 우리는 때래야 땔 수 없는 가족이라는 길고 질긴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나는 그게 너무나도 수치스럽고 모욕적이었어.
그 시기에 우리 집에 흉악한 기운이 깃들었어. 말하자면 내가 불러들인 거야. 그 사람은 웅변가였어. 자기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을 합리화하고, 밑 편에 큰 구멍이 뚫려 이미 침몰이 예견되어 있는 크루저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능력은 탁월했어. 그 사람은 차라리 무너지는 편이 나았을 집을, 오히려 도구가 망가질 때까지 덧대고 또 덧댔어. 보수를 거듭한 집의 형태는 겉보기엔 다른 집들과 차이가 없었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그의 강고한 신념을 보고 있자니 나는 더 이상 이것을 인간의 힘으로는 풀 수 없다고 결론지었어. 그건 단순한 고집, 자존심의 수준을 넘어선, 과거로부터 내려온 일종의 생존 코드이고, 수없이 많은 이들의 손길을 거쳐서 더욱 강하게 재련되었으며, 또 수많은 유전자와 결합하여 자신의 생존에 유리한 것만을 가져오는 일종의 슈퍼 바이러스였어. 범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몸집이 비대해진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토가 쏠리더라.
차라리 극단으로 치닫는 게 나았어. 계속 부풀어 가는 단단한 풍선을 터트려야만 했지.
그 사람이 너무너무너무 두려웠지만 난 그를 꼭 죽여야만 했어. 그의 신념만은 아마 죽어서도 여전히 살겠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다시금 마음이 답답해졌어. 그래도 해야만 했어.
그 사람의 기분은 롤러코스터 같어. 아득히 위로 치솟았다가 땅바닥까지 하강해. 위에 있을 땐 위에 있어서 잔인하고, 아래에 있을 땐 그것대로 무서워.
그땐 위에 있었어. 너무 흥분해서 욕지거리를 하며 위협하길래 내가 먼저 달려들었어. 내 다리를 걸고 넘어트리곤 목을 조르더라. 난 그 사람의 성기 바로 아랫부분을 움켜잡고 아예 터트릴 생각으로 강하게 힘을 줬어. 만약 그 사람에게 성기가 없어진다면 새로운 기대를 걸어볼 수도 있었거든. 근데 그럴 수가 없더라. 이후로는 흐지부지됐어. 나는 얼굴을 주먹으로 맞기 싫어서 그만뒀어. 아예 포기했어.
그 이후로도 그 사람이 나오는 다양한 꿈을 꿨어. 그 사람이 우리 일가족을 모조리 죽여버리는 꿈. 삼촌의 다리를 야구배트로 분질러 버리는 꿈. 그 사람이 나를 때리는 꿈. 그 사람한테 패배하는 꿈. 그 사람하고 말싸움을 하는 꿈.
그날도 난 어김없이 꿈에서 그 사람이랑 말싸움을 하고 있었어. 몸싸움으로 번지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도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까지 싸우게 되었는지에 대해선 망각상태였어. 어쨌든 나는 또 한 번 결의를 다졌어. 이번에야말로 그 사람을 이기고 싶었거든. 우리 둘은 완전히 정신이 나간 채로 싸워댔어.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이성을 놨고, 나는 나대로 미쳤어.
그러다가 내가 한 번, 딱 한 번 우스꽝스러운 연기를 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갑자기 씩 웃더라?
한 번도 그렇게 웃은 적이 없었거든. 한쪽 입꼬리만 올리고 그렇게 웃는 모습을 처음 봤어. 근데 그 모습에서 내가 지독하게 짝사랑하고 있던 남자의 얼굴 보였어.
그리고 꿈에서 깼어. 진짜 슬프고 무서워서 그날 하루 종일을 펑펑 울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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