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없음 2023/12/11 20:31:40 ID : QpPeLdVe2Fh 0
취미로 글 쓰는 스레 (훈수 환영)
2 이름없음 2023/12/11 21:18:26 ID : QpPeLdVe2Fh 0
쿵- 콰직- 둔탁한 소리와 함께 길을 걷던 남자의 등 뒤로 무언가 떨어졌다. 아니, 추락했다는 표현이 맞으려나? 큰 소리에 놀란 까마귀들은 남자의 머리 위를 맴돌다 곧 소리의 진원지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또 누군가가 죽었군.." 남자가 지금 걷고 있는 곳은 분명 번화한 도심이었다. 하지만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거라곤 전부 비슷한 사인으로 세상을 떠난 시체와 백골, 그리고 이젠 쓸모를 잃어버린 고철 덩어리들 뿐이었다.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연신 담배를 빨아들였다 뱉으며 걷기를 10분. 남자가 도착한 장소는 웰스파고 은행의 앞이었다. 똑똑- "원장님 접니다." 남자가 문을 두드리며 누군가를 부르자 거친 쇳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늙은 노부부였다. 그들은 남자를 환영하면서도 여전히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오 제이콥. 자네 왔는가?" "예, 어르신. 오늘도 멀쩡히 살아돌아왔습니다. 소득은 없었지만요." "그래.. 늘 성과가 따를수는 없는 법이지. 어서 들어오게. 쉴 자리를 마련해놨으니." 그들의 분위기는 화목했고 노부부는 친절했으나 어째서인지 모두의 얼굴에는 근심이 서려있었다. 제이콥은 난로 앞에 대충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3 이름없음 2023/12/11 21:33:42 ID : QpPeLdVe2Fh 0
"후…. 이번에도 밖으로 나가는 것에는 실패했습니다. 또 15명이 추락사로 죽었고 6명이 자살했고요." "정말 이곳에서 탈출할 방법이 없단 말인가.." "현재 상황으로써는..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안개를 뚫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입니다." 그들이 이토록 심각하게 고민하는 이유는 딱 하나였다. 바로 소리 소문 없이 나타나 마을을 둘러싸 버린 거대하고 넓은 안개 때문이었다.
4 이름없음 2023/12/11 21:42:07 ID : QpPeLdVe2Fh 0
갑작스레 나타난 안개가 마을에 끼친 영향은 딱 3가지였다. 첫째는 그 누구도 나갈 수 없고 들어올 수도 없게 마을을 봉쇄해 버린 것, 둘째는 마을에 주기적으로 파란 비를 내리는 것, 셋째는 안개 속으로 들어온 자들을 마치 벌을 주듯 하늘 어딘가로 이동시켜 떨궈버리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식량과 수원이 부족해지자 마을에서 탈출하려 시도한 많은 이들이 추락사로 죽음을 맞았으며 멀쩡히 살아있던 이들은 미치거나 스스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지금, 이 마을에서 제정신인 것은 제이콥과 노부부, 그리고 소수의 생존자뿐이었다.
5 이름없음 2023/12/11 21:50:49 ID : QpPeLdVe2Fh 0
"자네도 너무 무리하진 말게. 난 마을에 몇 안 남은 젊은이가 또다시 추락사하는 걸 원하지 않아." "하지만 어르신.. 이대로 손 놓고 있다간 남은 모두가 죽게 될 겁니다. 전 그건 원하지 않아요." 노부부는 제이콥의 말에 침묵했다. 그들은 제이콥에게 위로도 응원도 할 수 없었다. 가만히 있는 그들이 남을 위해 움직이는 제이콥을 욕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였다. "저 때문에 괜히 분위기가 안 좋아진 것 같네요. 나가서 새나 좀 더 잡아 오겠습니다. 잠깐 기다리고 계세요." "그래… 괜한 소리를 한 것 같아 미안하네." "아닙니다. 어르신. 틀린 말씀 하신 것도 아니잖아요. 다 저를 위해 하신 말인 것 쯤은 알고 있습니다." 제이콥은 그렇게 말한 뒤에 엽총과 직접 만든 활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노부부에게 별 일 아니란 듯 말했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무겁기만 했다. 그 또한 이 행동들이 얼마나 위험하고 또 의미없는 일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씨X...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군. 이럴떈 신이란게 있었으면 참 좋겠는데 말이야." 다시금 깊게 한숨을 내쉰 그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숨을 들이쉬자 부드러운 연기가 그의 폐를 채웠다. "후우. 살 것 같구만." 머리가 조금 맑아진 그는 다시 엽총을 바로쥐었다. 그에게 있어 안개가 생긴 뒤에 새를 잡는 것은 하루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다. 마을에 먹을 것이 떨어진 뒤로 잡을 수 있는 동물이라고는 어디서 온지 모를 저 까마귀 무리가 유일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 시간은 제이콥이 생각을 정리하고 결심을 다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6 이름없음 2023/12/11 21:59:37 ID : QpPeLdVe2Fh 0
'조급해할 필요없어. 아직 식량과 식수는 30일치는 넘게 남았으니 말이야. 새도 주기적으로 잡고있고..' 제이콥은 엽총으로 옆 건물의 난간에 앉은 새를 조준하며 자신과 마을의 남은 수명을 계산했다. 그는 지금 머릿속으로 몇번이나 현재의 상황을 짚어가며 앞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끊임없이 생각하기 바빴다. 마을 사람들의 생명을 구해야한다는 사명감이 그의 심장을 짓누르고 있었다. 탕- "아, 젠장." 까마귀를 조준하고 있던 그의 시야에 갑자기 희뿌연 연기가 덮쳐왔다. 당겨진 방아쇠는 옆 건물의 벽에 적중했고 총 성에 까마귀들은 다시 달아나기 바빴다. 까마귀들이 떠난 자리에는 추락사한지 얼마 되지않는 젊은 남성의 시체가 있었다. "윽..눈이...어디서 연기가 이렇게..." 그가 연개의 진원지를 찾고자 고개를 돌리니 귓가에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틱- 티디딕- 틱틱- "이 소리는..? 설마?" 급하게 주위를 살피자 꽤 떨어진 골목에서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7 이름없음 2023/12/11 22:15:48 ID : QpPeLdVe2Fh 0
전직 소방관이었던 제이콥은 재빨리 물 양동이를 챙긴뒤 그곳으로 뛰기 시작헀다. 있는 힘껏 뛰어 골목에 도착하니 그곳엔 웬 남자가 오른팔로 횃불을 들어 올린 채 반쯤 정신 나간 얼굴로 히죽이고 있었다. 제이콥은 바로 횃불의 불을 꺼뜨린 뒤에 남자의 상태를 살폈다. "우욱. 이게 무슨...." 남자의 상태는 겉으로 보기보다 더욱 심각했다.
8 이름없음 2023/12/13 16:26:20 ID : QpPeLdVe2Fh 0
"저기요! 선생님. 괜찮으십니까?" 제이콥은 그를 일으켜 세우고자 했으나 그것은 의미없는 행동이였다. 이미 그는 살아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의 상태였기 떄문이였다. 팔다리는 모두 잘려나간채 횃불을 들기 위한 오른팔만이 제자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갈비뼈는 마치 독수리의 날개처럼 밖으로 끄집어져 있었고 그 내부로 보이는 내장들은 푸른빛으로 물든채 여전히 꿈틀거리며 태동하고 있었다. "어떻게...살아있는거지?" 제이콥은 너무나도 끔찍한 광경에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뒤로 물러섰다. 그때였다. 까악- 까악- 갑작스레 골목으로 날아든 까마귀들은 제이콥과 그 남자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9 이름없음 2023/12/13 16:31:43 ID : QpPeLdVe2Fh 0
순식간에 주위를 빼곡히 둘러싼 까마귀들은 이내 하나둘씩 그 정체불명의 사내에게로 향했다. 바닥에 고인 푸른 물응덩이에 까마귀들의 발자국이 번졌다. "왜..왜 다가오는거야! 저리가! 훠이 훠이!!" 까마귀들은 제이콥의 격렬한 저항에는 신경도 쓰지 않은채 그를 잔인하게 뜯어발기기 시작했다. 제이콥은 그 광경을 지켜보다 도망갈 수 밖에 없었다.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에 속에서 끓어오른 공포와 불안이 그를 도망치게 만든 것이였다. 그가 한참을 달린 뒤 정신을 차렸을때 그는 은행 앞에 있었다. "허억..헉...방금은 대체 뭐였던거야?! 뭐였던거냐고 젠장!!" 날아갔던 정신이 돌아오자 그에게 찾아온 것은 당혹스러움과 역겨움 그리고 현재 상황에 대한 분노였다. 다행히 노부부가 그를 진정시켰지만 제이콥의 마음은 여전히 심란하기만 했다.
10 이름없음 2023/12/13 16:38:18 ID : QpPeLdVe2Fh 0
"이봐 자네, 괜찮은겐가?" "후우..예 어르신. 전 괜찮습니다. 잠시 당황했을 뿐이예요." "무슨일이 있었던겐가?" 제이콥은 노부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그들은 처음엔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상황이 상황이였기에 그의 말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아무래도..결단을 내려야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11 이름없음 2023/12/13 16:43:24 ID : QpPeLdVe2Fh 0
"그게 무슨 소린가? 설마 자네.." "예. 어르신. 아무래도 그 방법 뿐인 것 같네요."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더 벌어질지 몰라요. 전 남은 이들의 목숨이라도 챙겨야겠습니다." 제이콥이 말하는 '결단'이란 직접 안개에 들어가는 것을 뜻했다. 사실 안개에 들어간 사람들이 바로 상공에서 추락하는 것은 아니였다. 사람마다 큰 차이가 있었고 제일 긴 시간인 일주일 동안 추락사하지 않았던 베른은 파병 경험이 많은 퇴역군인 이였다.
12 이름없음 2023/12/13 16:45:19 ID : QpPeLdVe2Fh 0
사태가 터진 초반에 모든 이들의 사망을 기록했던 제이콥은 눈치챈 것이다. 육체적으로 발달했으며 뛰어난 두뇌를 가진 이들일 수록 더 늦게 사망했다는 것을 말이다. 이를 근거로 그는 안개에 들어간 이들이 잠시 어딘가에 머물다가 추락하게 된다는 것을 유추했으나 확증이 없었기에 지금까지 그저 생각으로만 남겨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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