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없음 2024/09/12 18:55:55 ID : ty2MjfO07e3 7
안녕! 내가 아주 오래 전에 꾼 꿈에 대해서 얘기해 보려고 해.
2 나무 2024/09/12 19:03:21 ID : ty2MjfO07e3 0
이름은 나무로 하고 얘기할게!
3 나무 2024/09/12 20:08:23 ID : ty2MjfO07e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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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무 2024/09/12 20:24:08 ID : ty2MjfO07e3 0
안개가 낀 울창한 숲 한가운데에서 잠을 자고 있는 나로 꿈이 시작 돼. 잠을 자는 내 주변으로 다람쥐나 사슴, 작은 벌레들이 서성거리다 사라지는 기척이 느껴지지만 잠에서 깨기에는 옅은 존재감이었어. 내가 깊은 잠에서 깨게 된 건 방금까지 느껴졌던 기척과는 또다른 기척이 하나 느껴졌기 때문이야. 오른팔이 뜯어져 떨어져 나가기 직전인 나보다는 살짝 나이가 많아 보이는 아이가 다가오면서였어. 이상하게 그 순간에 주변이 엄청 추웠던 걸로 기억해.
5 나무 2024/09/12 20:31:21 ID : ty2MjfO07e3 0
바로 내 옆으로 다가온 그 애는 오른팔과는 다르게 멀쩡한 왼팔로 나를 흔들어 깨웠어. 살짝 벌어진 눈꺼풀 아래로 눈앞에 서 있는 아이를 보는데 왜인지 조급해 보이는 것 같아. 그래서인지 아직 잠결에 몽롱한 상태였는데도 눈을 뜨게 되더라.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그 애의 표정을 보자니 계속 잘 수가 없었어. 그런데 일어난 순간 갑자기 엄청 세다고 해야 할지, 날카롭다고 해야 할지. 나를 스쳐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상처를 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바람이 막 불었어.
6 나무 2024/09/12 20:40:21 ID : ty2MjfO07e3 0
바람이 내 체온과 숨을 다 앗아가는 듯한 감각이었어. 이 바람을 계속 맞고 있다가는 나는 분명 1시간도 채 버티지 못하고 죽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어. 아직 성장기를 모두 거치지 못한 어린 두 팔이 바람을 피하기 위해 온몸을 감싸려고 안간힘을 쓰며 몸을 웅크렸어. 사실 바람만 피하면 되는 거라면 나무 뒤에나, 동굴 같은 곳에 숨으면 돼. 숲이니까 말이야. 그런데, 온 사방이 나한테 적의를 품고 주의하고 있는 것 같았어. 나무 뒤에 몸을 숨기려고 하면 나무가 나를 피해 멀어질 것 같았고, 동굴 안에 숨어 들면 동굴의 천장이 무너져 나를 짓누를 것 같았어.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
7 나무 2024/09/12 20:47:59 ID : ty2MjfO07e3 0
어린 마음에 한편으로는 서럽기도 했어.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왜 다들 나를 미워하는 걸까. 물론, 내가 서러움을 느끼는 대상이 누구인지는 나도 몰랐어. 그냥 섭섭한 마음이 들었던 것 뿐이었어. 오른팔이 뜯어진 그 애를 이제부터 파란이라고 부를게. 눈물을 글썽이는 내게 파란이가 말을 걸었어. 어떻게 사지 멀쩡하게 이곳에서 잠을 자고 있을 수 있냐면서. 그때는 정말 당황했어. 왜 숲 한가운데에서 자고 있냐고 묻는 것도 아니고 왜 사지가 멀쩡하냐고 물으니까 할 말이 없었어. 내가 엄청 위험한 곳에 들어온 건가 무섭기도 했고. 그리고 파란이가 얄밉기도 했어. 그렇지 않아도 생판 처음 보는 곳에서 깨어나 혼란스러운데 달래기는 커녕, 겁주는 말이나 하니까. 그래서 파란이를 째려보면서 울었어. 어릴 때는 엄청난 울보였거든.
8 나무 2024/09/12 21:24:25 ID : ty2MjfO07e3 0
벌레 보듯 나를 바라보는 파란이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해서 지금도 살짝 마음이 아플 정도야.. 그건 정말 경멸이었거든. 끔찍해 죽겠다고 표정으로 말을 하는데..ㅎㅎ 어쨌든 파란이는 그러면서도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고 나는 따라갔어. 온 사방이 나를 싫어하는 것 같았지만 파란이는 날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았어. 이상한 생물 보듯은 했지만.
9 나무 2024/09/12 21:33:29 ID : ty2MjfO07e3 0
파란이를 따라가는 동안 티비에서나 봤던 동물들을 많이 볼 수 있었어. 산토끼나 두더지, 족제비. 사슴이랑 고라니도 봤어. 어렸을 때 나는 사슴과 고라니는 같은 동물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그때 보니까 둘이 정말 다른 동물이라는 생각이 딱 들었어. 개인적으로 사슴이 너무 멋있었어. 뿔이 엄청 컸는데 앞에 서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위엄이 있었어. 그렇게 신나게 구경을 하면서 걷다가 갑자기 위화감?이 들었어. 뭔가 편해진 것 같은데 왠지 찝찝하고 한편으로 불편하면서도 또 원인을 모르겠어서 혼란스러웠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원인을 알 수 있었지. 잠에서 일어났을 때부터 은연 중에 서성이던 주변의 적대감이 어느 순간부터는 딱 끊어진 걸 알아차렸어. 그리고 그걸 인지한 순간부터 숲의 말이 들리기 시작했어.
10 나무 2024/09/12 21:36:09 ID : ty2MjfO07e3 0
숲의 말은 내가 나중에 파란이한테 들었는데, 숲 안에 사는 동물이랑 식물, 강이나 호수 같은 자연 자체 같은 것들이 하는 모든 말이 머릿속으로 들이닥치는 거를 말하는 거야. 눈에 보이지 않아도 가까이 있지 않아도 정말 다 들려. 숲 안에 있기만 하면.
11 나무 2024/09/12 21:40:05 ID : ty2MjfO07e3 0
숲은 파란이한테 화가 나 있었어. 남은 왼팔, 다리, 눈, 가릴 거 없이 파란이의 모든 걸 다 앗아가고 싶어했어. 그걸 들은 순간 알겠더라. 나에 대한 적대심이 사라진 게 아니라 파란이를 향한 그 마음이 너무 커서 내 게 묻힌 거였어. 지금 생각해보면 파란이가 방패 역할을 해준 것 같아. 내가 그런 시선에 노출 되기를 바라지 않는 것 같았어.
12 나무 2024/09/12 21:44:37 ID : ty2MjfO07e3 0
파란이를 계속 따라가다 나온 곳은 커다란 둥지였어. 사람이 누워 쉴 수 있을 만큼 큰 새둥지. 하지만 거기만 이상하게 하늘이 뻥 뚫려 있었어. 다른 곳은 나무가 덮어서 그늘이 졌는데 파란이의 둥지에만 하늘이 뚫려 비가 쏟아지고 있었어. 그 애는 그게 익숙한지 아무렇지 않게 둥지에 들어가 앉더라. 나한테도 오라고 손짓하는데 나는 그냥 둥지 앞 풀밭에 앉았어. 비를 맞기는 싫었거든.
13 나무 2024/09/12 21:58:10 ID : ty2MjfO07e3 0
그리고 문뜩 파란이는 이런 데에서 뭘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팔은 왜 그런 걸까도 궁금했고. 그래서 물어봤어. 대답해줄 것 같아서. 넌 팔이 왜 그래? 라고 돌직구로 물었더니 파란이는 짜증이 났는지 오만상을 했어. 솔직히 나였어도 그랬을 것 같아. 어디가 다쳤는데 그걸 고칠 수 없고 그래서 그게 싫은데 다른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사정을 캐물으면 나였으면 말 안 했어.. 그렇지만 파란이는 말해줬지ㅎㅎ.. 파란이는 지금 벌을 받고 있는 거라고 했어. 이 숲에서 지낸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 집에 돌아가지 못하게 된 게 도대체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고.
14 나무 2024/09/12 22:07:13 ID : ty2MjfO07e3 0
그런 파란이가 조금 안쓰러워서 나랑 같이 나가지 않겠냐고 물었어. 왜냐면 나는 숲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알았거든. 어떻게 알았는지나 왜 알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나도 몰라. 그냥 알았어. 그럴 것 같았어. 근데 파란이는 고개만 젓더라. "너나 나가." 이러고 그냥 눈을 감아버렸어. 말하는 걸 들어보면 이곳에서 나가고 싶은 건 맞는 것 같은데 왜 싫다는 건지 이해가 안 갔어. 그렇게 눈을 감고 잠들어버린 것 같은 파란이를 두고 혼자 나갈까 말까 고민을 하는데 갑자기 배가 고파졌어. 원래 성장기 때 애들은 자고 일어나면 배고프고 그러잖아. 나는 특히 그게 심했거든. 그래서 주변에 먹을 거 없나 겁도 없이 돌아다니며 둘러보는데 볼이 빵빵한 다람쥐가 갑자기 다가왔어. 빵빵하게 입 안에 가득 차 있는 걸 다 뱉어내고는 훌쩍 멀리 사라져 버리더라. 도토리 같은 나무 열매들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뭔가 좀 정신이 나가 있던 것 같아. 평소 같았으면 아무리 배가 고팠어도 그러지 않았을 텐데 다람쥐가 뱉은 열매들을 다 주워먹었어. 정말 하나도 남기지 않고.
15 나무 2024/09/12 22:13:59 ID : ty2MjfO07e3 0
그리고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파란이가 깨서 나를 보고 있었는지, 갑자기 뒤로 다가와서는 무릎 뒤에 접히는 부분을 콱 발로 찍어버렸어. 놀라고 아파서 반사적으로 무릎을 꿇고 앉게 되었는데 걔가 내 머리까지 바닥에 처박더라. 진짜 나쁜놈. 난 영문도 모르고 바닥에 무릎 꿇고 머리 처박고 있는데, 파란이가 이제는 죄송하다고 싹싹 빌라고 했어. 정말 난 궁금한 마음에 누구한테 내가 왜 빌어야 되냐고 파란이한테 물었는데 닥치고 죄송하다고나 하래서 그냥 입을 다물었어. 아마 파란이를 만난 그 시점부터 내 성격이 조금 세졌던 것 같아. 그 후로 여태까지 살면서 파란이만큼 날 막 대하는 사람은 아직도 못 만났어.
16 나무 2024/09/12 22:18:06 ID : ty2MjfO07e3 0
어쨌든 영문도 모르고 파란이를 따라 죄송하다고 비는데 갑자기 속이 안 좋아지는 거 있지. 신물이 목 너머로 올라오고 당장이라도 토할 것 같은데 나는 토하는 걸 정말 싫어해. 어릴 때부터 장이나 위가 약해서 탈이 하도 나다 보니까 토하는 기억이 정말 최악이었거든. 그래서 꾸역꾸역 토를 삼키는데 파란이가 토하라고 아주 친히 등을 두들겨 주더라. 덕분에 속 싹싹 비웠어. 그제서야 파란이도 뭐가 풀렸는지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어. 파란이는 나보고 미쳤냐고 아주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데 아무것도 안 알려줬으면서 내가 뭘 하기를 바라.. 억울해서 또 울었지. 그제서야 파란이가 하나 둘 말해주더라.
17 나무 2024/09/12 22:23:16 ID : ty2MjfO07e3 0
내가 잠을 자고 있던 숲은 살아갈 터전을 잃었거나 인간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당한 동물, 식물, 인간에 의해 더렵혀진 강물이나 호수, 공기 같은 것들이 모이는 숲이라 인간인 파란이나 나한테 좋은 감정으로 다가와주는 것들은 없다고. 그래서 내가 먹은 열매들도 아마 다 썩었거나 독성이 심한 것들이었을 거라고 파란이가 말해줬어. 원래 같았음 토해낼 수도 없었을 텐데 나는 그 애만큼 큰 죄를 지은 것 같지는 않아서 다행이래.
18 나무 2024/09/12 22:34:58 ID : ty2MjfO07e3 0
이쯤 되니 알 수 있었어. 내가 숲의 일부에게 무슨 잘못을 했고 어쩌다 이곳에 들어와서 벌을 받게 된 거라는 걸. 그런데 내가 뭘 잘못한 건지 도저히 생각이 안 나는 거야. 그리고 한편으로는 나가는 길을 아는데 그냥 나가면 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파란이한테 말했더니 그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라고, 내가 지금까지 본 건 그래도 악의가 덜한 작은 동물이나 초식을 하는 동물, 본디 자비로운 나무들과 새들밖에 없었으니 멀쩡할 수 있었던 거라고. 나가기로 마음을 먹는 순간 마주하는 것들의 악의가 달라질 거라고 그렇게 말했어.
19 나무 2024/09/12 23:25:26 ID : ty2MjfO07e3 0
그럼 나는 평생 여기서 살 수밖에 없는 건가? 언제 나를 해칠지 모르는 숲 안에서? 그렇게 생각이 든 순간부터 패닉이 왔어.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아무 생각을 할 수가 없었는데 정신차리라고 파란이가 다시 나를 붙들어줬어. "나는 너무 늦었지만 너는 나갈 수 있을 수도 있어." 그렇게 말해주는 파란이를 보면서 그냥 그때는 마냥 믿음직스럽고 고마웠어. 지금은 그 애한테 너무 미안하지만.
20 나무 2024/09/12 23:38:34 ID : ty2MjfO07e3 0
파란이는 이 숲에서 지켜야 할 것을 모두 숙지하지 않으면 나를 도와줄 수 없다고 말했어. 규칙을 어긴 나를 데리고 다니면서 더 미움을 받을 수는 없다고. 그래서 조금 겁을 먹었었는데 막상 듣고 나니 딱히 지키기 어려운 건 없었던 것 같아, 규칙에 뭐가 있었냐면, 첫 번째.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말 것. 식욕, 수면욕 같은 욕구들을 해소하는 행위들을 일절 해서는 안 된대. 숲은 우리가 고통받으며 죽지 못하고 발버둥치는 걸 좋아하지 우리가 무언가를 채워가며 살아가는 것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두 번째. 숲을 하대하지 않을 것. 잘못을 빌 때도, 무언가를 바랄 때도 무조건 저자세여야 들어줄까 말까 한다고. 웬만해서는 마주하는 것 자체를 피하는 게 좋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는 차라리 바닥을 기며 빌어야 한대. 그리고 세 번째. 숲을 나가려고 하지 말 것. 이유는 이제부터 알 수 있을 거라며 말해주지 않았어. 그리고 하나가 더 있는데, 솔직히 이건 기억이 잘 안 나. 왜냐면 이 꿈을 꾼지 거의 1n년이 지나갔고.. 그때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파란이가 너무 많이 했어..ㅎㅎ 대신 이런 게 아니었을까? 생각한 게 있긴 해서 얘기 거의 끝자락에 말해줄게.
21 나무 2024/09/12 23:42:32 ID : ty2MjfO07e3 0
자잘한 규칙이 더 있긴 한데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서 넘길게. 그렇게 규칙 다 외우고 파란이한테 검사까지 맡은 다음에 우리는 출발할 수 있었어. 파란이의 말에 하도 겁을 먹은 탓에 기분탓이었을지는 모르겠는데 왜인지 숲이 한층 어두워진 것 같았어. 정말 한치 앞도 안 보일 정도였는데 파란이는 내 손을 잡고 내가 안내하는 대로 척척 걸어가더라.
22 나무 2024/09/12 23:49:44 ID : ty2MjfO07e3 0
파란이를 따라 계속 걷는데 정말 끝이 안 보였어. 체감상으로는 하루는 걸은 것 같은데. 거기에 출발하기 전에 3일은 내리 걸어야 나갈 수 있을 거라는 파란이의 말이 떠올라서 사기가 떨어졌어. 지금도 이렇게 힘든데 앞으로 3일을 잠도 안 자고 먹지도 못하고, 가능할까 싶었어. 그리고 체감상이 하루지, 아직 6시간밖에 안 걸었다고 파란이가 옆에서 계속 현실을 자각시켜주는 바람에 더 곤혹이었지. 그렇게 하염없이 걷기만 하는데 분위기가 너무 어색한 거야. 파란이는 말이 없고 무슨 일이 많이 생길 거라는 파란이의 말과는 다르게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그래서 얘기나 할까 싶어 머리를 굴리다가 파란이한테 파란이 얘기 좀 해달라고 했어. 대충 얼버무리지 말고 어차피 다시는 못 볼 수도 있는데 그냥 마음 편하게 털어 놓으면 안 되냐고. 그때 파란이 표정이 엄청 슬퍼 보였어. 눈치 없고 어린 게 죄였지. 아직도 그 애에 관한 걸 가볍게 캐물은 걸 나는 후회해.
23 나무 2024/09/12 23:52:37 ID : ty2MjfO07e3 0
파란이는 차가우면서도 이상하리만큼 거절은 안 했어. 이것도 지금 생각해보자면 아마 그 욕구?를 채우는 규칙을 어기는 거였을 거야. 무언가를 하기 싫은 그 마음을 충족시키면 안 됐던 거지. 그렇게 나는 파란이의 과거를 들을 수 있었어.
24 나무 2024/09/12 23:59:49 ID : ty2MjfO07e3 0
파란이가 이 숲에 들어오게 된 이유와 무얼 해야 하는지에 관한 건, 아무도 파란이에게 답을 해주지는 않았지만 숲에서 살면서 혼자 깨달을 수 있었대. 파란이도 나처럼 숲 한가운데에서 잠을 자다 깨어났고 나와는 다르게 오른팔이 반이나 찢어져 너덜거리고 있던 상태였대. 정신을 차리고 있는 게 신기하리만큼 아팠지만 어쩔 수 없이 눈을 뜨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대. 정신을 잃고 누워 있을 때면 숲이 자신을 해치려고 하는 걸 파란이는 알 수 있었던 거야. 게다가 살려고 무언가를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아프고 살기가 힘들어진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었고. 그때부터는 무얼 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반성만 했대. 숲이 제게 화가 나 있는 건 알겠으니 어떻게든 풀어보려고 빌면서.
25 나무 2024/09/13 00:07:07 ID : ty2MjfO07e3 0
그리고 아직도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됐는지에 관한 건 기억이 안 나지만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는 기억을 할 수 있었다고 해서 이유는 들을 수 있었어. 아주 오래 전 이야기래. 파란이가 나보다도 어릴 적에 친구들과 놀다가 날아가는 참새를 돌로 맞춰 떨어뜨려보자는 얘기가 나온 거야. 그런데 하필 돌을 던지게 된 게 파란이었던 거지. 사실 친구들이 하자니 어울리긴 했으나 딱히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던 파란이는 구경만 하려고 했지만 친구들에 등살에 밀려 어쩔 수 없이 돌을 던질 수밖에 없었어. 그리고 파란이가 던진 돌은 정확히 하늘을 나는 참새의 오른쪽 날개를 적중했고 참새는 하늘에서 떨어져 그대로 죽어버리게 됐어. 파란이는 자신이 그때의 벌을 받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어.
26 나무 2024/09/13 00:11:23 ID : ty2MjfO07e3 0
그 기억이 떠오르고, 그때부터는 숲을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을 아예 싹 접었대. 그렇게 하염없이 시간이 흐르다 갑자기 내가 나타난 거야. 나는 숲 한가운데에 갑자기 나타나 잠들어서는 깨어날 생각을 안 하고 숲은 나를 노리고 점점 다가가고. 안 그래도 숲의 미움을 받고 있는 파란이는 사실 굳이 나를 도우면서까지 숲에게 더 미움받고 싶지 않았대. 어차피 여기 들어온 나도 잘못이 있을 테니까. 그런데, 처음 이 숲에 들어왔을 때의 그 두려움과 막막함이 떠올라서 도저히 냅둘 수가 없었던 거야, 파란이는.
27 이름없음 2024/09/13 16:43:45 ID : zgi06ZjwJRB 0
와... 진짜 레더 사랑해 드디어 꿈판에 다시 이런 스레가 올라오기 시작하는구나ㅠㅠㅠㅠ 진짜 고마워 잘읽고 있어 레주!!!
28 나무 2024/09/13 17:48:37 ID : ty2MjfO07e3 0
응 나도! 레더 명절 잘 보내!
29 나무 2024/09/13 22:05:02 ID : ty2MjfO07e3 0
이어서 얘기할게!
30 나무 2024/09/13 22:12:57 ID : ty2MjfO07e3 0
파란이 얘기가 끝나고 우리 사이에는 한동안 정적이 흘렀어. 나는 입을 다문 파란이가 먼저 말을 꺼내기 전까지는 길을 안내하는 말 말고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어. 파란이가 심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많이 지쳤다는 게 정말 적나라하게 보였거든. 그와중에 파란이를 욕하는 숲의 말도 쉬지 않고 들렸어. 내가 들린다는 건 파란이도 들린다는 거잖아. 그래서 더더욱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어. 내가 무슨 말을 해도, 파란이를 힘들게 하는 모든 요소에 그냥 하나를 더한 느낌일 것 같았거든.
31 나무 2024/09/13 22:19:12 ID : ty2MjfO07e3 0
얘기 더 하기 전에 이건 참고용인데, 내 꿈은 신기한 것보다는 공포?스러운 느낌이 더 강한 것 같아. 파란이랑 있었던 일을 주체적으로 얘기하니까 일상스러운 느낌이 많이 들지만 사실은 중간중간 파란이랑 내 사이에 있는 침묵 시간도 많이 길고 파란이는 사람이 맞지만 사람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어. 사람도 동물도 아닌 그냥 어중간한 생물? 거기에다 팔 하나가 뜯어져 있으니 솔직히 친근함보다는 섬뜩함을 그 애한테서 많이 느꼈어. 나를 싫어하지 않는 것 같은 파란이랑 멧돼지? 같은 게 앞에 있다면 난 차라리 멧돼지를 따라갔을 거야.
32 나무 2024/09/13 22:24:02 ID : ty2MjfO07e3 0
그렇게 우리 둘은 아무 말도 없이 하루를 내리 걸었고 파란이랑 나는 잠깐 쉬기로 했어. 파란이는 괜찮았지만 내가 지쳐서 더이상 걸으면 얼마 못 가 다리를 아예 못 쓰게 될 것만 같았거든. 그런데 파란이는 어두운 숲을 둘이 걸을 때보다 잠깐 땅에 앉아서 쉴 때를 더 두려워하는 것 같았어. 쉬기 전에 “그냥 참고 걸으면 안 돼? 어차피 이런 숲에선 제대로 쉴 때도 없어.”라고 말하는 걸 정말 백 번도 더 넘게 들었어.
33 나무 2024/09/13 22:26:45 ID : ty2MjfO07e3 0
그럴 성격이 아닌 파란이가 그만큼 조르는 걸 봤으면 솔직히 지금의 나 같았다면 안 쉬고 어떻게든 걸었을 것도 같아. 그런데 그때는 뭐.. 참는 게 어딨어. 파란이 말은 기똥차게 흘리고 냅다 자리에 드러누웠지. 힘든데 어떡해.
34 나무 2024/09/14 00:45:26 ID : ty2MjfO07e3 0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후회를 하게 돼. 아무리 힘들어 죽을 것 같고 다리가 망가질 것 같았어도 파란이의 말대로 계속 걸었어야 했다고.
35 나무 2024/09/14 00:57:25 ID : ty2MjfO07e3 0
그렇게 오래 쉬지도 않았어. 정말 딱 5분 정도? 겨우 숨통이 트일 정도였는데 그 짧은 휴식조차도 우리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거였나봐. 땅에서 지진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갑자기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산양 떼가 우르르 튀어나왔어. 처음 튀어나온 방향은 완전히 우리 쪽을 향한 게 아니었거든? 그런데, 목표는 우리가 맞았던 건지 들이박을 기세로 방향을 틀고 달려 오더라. 둘 중에 하나였어. 그들이 모두 지나갈 동안 바닥에 엎드려 밟히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라거나, 그들의 무리 범위 바깥으로 빨리 벗어나는 거. 물론, 전자도 후자도 가능성은 거의 없었어. 그냥, 밟히는 게 덜 아플지 박치기 당하는 게 덜 아플지 고르는 정도.. 나는 굳이 하자면 전자였는데 파란이는 나랑 의견이 같으면서도 조금은 달랐어. 왜냐면 같이 바닥에 엎드리기는 했는데 파란이가 엎드린 곳은 내 등 위였거든. 그것도 완전히 엎드린 게 아니라 한 손으로 바닥을 지탱하고 나한테는 거의 피해가 가지 않게끔 하는.
36 나무 2024/09/14 01:04:18 ID : ty2MjfO07e3 0
파란이 덕분에 나는 먼지만 조금 뒤집어 쓴 정도로 멀쩡하게 일어날 수 있었어. 나를 감싸준 파란이는 온몸이 만신창이가 돼 버렸고. 파란이를 쳐다만 보는 것도 힘들 정도로 처참하고 잔인한 몰골이었어.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가 없었어. 그런데 그 애는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빨리 가자고만 나를 재촉해. 그때부터는 파란이가 소름끼쳤어. 계기 없는 그 애의 희생이 끝이 없는 의심과 공포감을 조성한 거지.
37 나무 2024/09/14 01:11:28 ID : ty2MjfO07e3 0
그때부터 파란이랑 거리를 두고 걷기로 마음을 먹고 멀리 떨어져 걸었어. 파란이한테 고마운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었고 마냥 그 애가 무섭고 싫기만 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언젠가는 나도 파란이처럼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두려웠어. 그게 파란이랑 가까이 있다고 해서 옮는 그런 것도 아니지만, 어릴 때는 나쁜 건 다 옮는다 그런 미신을 믿었어서.. 날 도와주는 파란이한테 할 만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어. 계속해서 생겨나는 위험한 일들이 내가 아니라 파란이를 노리고 있다는 걸 알 수가 있었거든.
38 나무 2024/09/14 01:14:08 ID : ty2MjfO07e3 0
어떤 일이 생길 때, 파란이한테서만 멀찍이 떨어져 있으면 나한테까지 어떤 영향이 끼치고 그러지 않았어. 그걸 여러 번 겪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알 수밖에 없었던 거야. 파란이가 위험을 불러오는구나, 하고. 파란이도 그걸 알았는지 어느 순간부터는 그 애가 먼저 나랑 멀리 떨어져 걸어 가고 있었어. 한 번씩 길만 물어보면서.
39 나무 2024/09/14 01:29:11 ID : ty2MjfO07e3 0
딱 여기까지 보고 잠에서 깼어. 나는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악몽을 정말 하루 걸러 하루? 정도로 습관처럼 꿨어. 악몽을 꾼 날이면 무조건 새벽에 울면서 깨어났고 이 꿈을 꾼 날은 유독 심했었나 봐. 내가 먼저 깬 게 아니라 아침 한 5시쯤? 엄마가 깨워서 일어났어. 엄마 말로는 새벽에 화장실에 가려고 나왔다가 내 방에서 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더래. 그래서 당연히 내가 또 악몽을 꾸나보다 하고 깨워주려고 내 방에 들어갔는데, 세상에. 애가 분명 자고 있는 건 맞는데 숨이 넘어가라 오열을 하면서 깨워도 일어나지를 못하는 거야. 그때 내가 잘못될까 봐 엄청 무서웠대. 다행히 응급실에 가려고 엄마가 준비를 마치고 정말 마지막으로 한 번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를 깨워봤을 때 내가 일어났어.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날이 밝고 엄마랑 병원을 갔고 너무 울어서 살짝 미열이 있는 것 빼고는 건강하대서 다시 집으로 왔어. 이게 1부? 같은 느낌이야. 이 꿈은 중간에 텀을 두고 네 번? 정도 더 이어서 꿨어. 다음은 나중에 와서 풀게! 내일 음식하려면 일찍 일어나야 해서..ㅎㅎ 다들 명절 잘 보내!
40 나무 2024/09/14 01:38:20 ID : ty2MjfO07e3 0
얘기가 이어지는 게 좀 부자연스럽고 뚝뚝 끊기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그건 나도 어쩔 수가 없어 미안.. 사실 꿈이라는 게 그렇잖아. 개연성도 없고 비현실적이고. 내가 꾼 꿈도 그랬어. 어느 부분은 명확히 상황을 겪은 게 꿈 자체였다면 어떤 부분은 아 내가 이런 일을 겪었다라는 말 자체가 꿈이었던 거야. 앞에는 이렇다고 말했는데 뒤에는 앞에 했던 말이랑은 맞지 않는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는 거고. 어느 정도는 감안하면서 봐줘..! 미안..!
41 이름없음 2024/09/14 09:02:12 ID : ByZfV85Phbw 0
우와... 오랜만에 너무 재밌는 스레였당🥰🥰 진짜 재밌게 읽엇어 레주!! 이런 스레 세워줘서 넘 고마워 ㅎㅎ
42 나무 2024/09/14 16:16:01 ID : ty2MjfO07e3 0
나야 말로 봐줘서 고마워ㅎㅎ 레더 명절 잘 보내!!
43 이름없음 2024/09/14 16:18:57 ID : jgZcr85Qljz 0
레주도!!
44 이름없음 2024/09/19 13:40:52 ID : 0q45cHva8pd 0
와 명절 끝났는데 이제 이어주나?개재밌는데...
45 이름없음 2024/09/19 13:45:08 ID : k7glu4Hu4Mq 0
빨리 이어서 보고싶다
46 이름없음 2024/09/21 19:26:34 ID : q0pSGk7gmK3 0
우와 진짜 몰입해서 읽어따 ! 스레주 명절응 잘 보냈니
47 나무 2024/09/26 17:55:31 ID : ty2MjfO07e3 0
명절 때 속에 탈났던 게 이제야 다 나아서 조금 여유가 생겼다! 난 잘 보냈어! 레더는? 글은 이따가 10시 쫌 넘어서 이어서 쓸게!
48 나무 2024/09/26 23:11:45 ID : ty2MjfO07e3 0
짠! 이어서 쓸게!
49 나무 2024/09/26 23:13:09 ID : ty2MjfO07e3 0
이어서 꿈을 꾸게 건 아마 2주일 정도?가 지나고 나서였을 거야.
50 나무 2024/09/26 23:21:46 ID : ty2MjfO07e3 0
꿈에서 눈을 떴을 때는 주변에 아무도 없었어. 그냥 울창하고 어두운 숲이랑 저번 꿈처럼 사방에서 느껴지는 노골적인 적대적인 시선만 있었어. 그래도 워낙 꿈 분위기가 독특했던 덕분에 이것만으로도 전에 꿨던 꿈을 이어서 꾸고 있겠거니 생각하고 주변을 둘러봤어. 파란이는 나를 두고 떠났는지 아무리 돌아다녀도 찾을 수가 없었어. 내가 잠에서 깼을 때의 꿈 안에서의 상황은 잘 모르니까 그냥 파란이랑 나한테 무슨 일이 생겨서 파란이가 나를 버리고 갔다고만 생각하고 또 하염없이 걸었어. 오늘은 이 숲을 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
51 나무 2024/09/26 23:26:55 ID : ty2MjfO07e3 0
한참을 걷고 발견한 건 어떤 마을이었어. 폐가가 엄청 많이 모여 있는 마을. 그리고 그 마을에는 파란이 같은 사람도 여럿 있었어. 섬뜩하고 무서운데 나를 마냥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은 사람들. 그 사람들도 파란이처럼 나를 숲 밖으로 데려가 주겠다고 나는 길만 안내하라고 그러는데, 그냥 파란이가 말할 때랑은 다르게 싫었어. 파란이를 보고 있을 때는 종종 파란이를 데리고 숲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 사람들이랑도 꽤 같이 시간을 보냈지만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어. 오히려 그. 사람들은 그냥 평생 이 숲에 박혀서 살았음 싶었지.
52 나무 2024/09/26 23:29:05 ID : ty2MjfO07e3 0
얼른 출구를 찾아서 나가고 싶은데 사람들이 따라올 것만 같아서 선뜻 출발할 수가 없었어. 그래서 그 사람들이 나한테 관심을 끄기만을 기다렸는데, 파란이가 말해준 규칙대로 그들은 잠을 자지도 밥을 먹지도 화장실을 가지도 않아. 나한테 딱 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안 해.
53 나무 2024/09/26 23:37:59 ID : ty2MjfO07e3 0
그냥 다 때려치고 여기 눌러앉을까 생각하면 그건 또 안 될 것 같아서 가고는 싶은데 어쩔까 하다가 그냥 그 사람들 다 끌고 출구를 찾아 나섰어. 파란이 하나랑 있을 때는 다르게 진짜 방해 공작 쏟아지더라. 천재지변이라고 하나? 나는 평생 겪을 천재지변 꿈에서 다 겪었어. 지진부터 시작해서 홍수, 태풍.. 진짜 죽는 줄 알았는데 다행히 나는 그렇게 크게 휩쓸리지 않았고 날 따라오는 사람들만 거하게 휩쓸려서 방해 공작이 좀 줄어들 쯤에는 3분의 1정도만 남아있었어.
54 이름없음 2024/09/26 23:43:02 ID : 6rwJXvBffhA 0
ㅂㄱㅇㅇ!!
55 나무 2024/09/26 23:43:21 ID : ty2MjfO07e3 0
그런데 갑자기 걷다가 문뜩 파란이 생각이 나는 거야. 걔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왜 나를 두고 간 걸까 하는 생각.. 좀 서운했던 것 같아. 예를 들어 잠깐 여행 간 친구 강아지를 맡아줬는데 그 강아지랑 너무 정이 들어버린 거지. 그렇지만 여행에서 돌아온 친구는 당연하게 강아지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겠지? 강아지를 친구에게 바래다주고 집으로 갔는데, 짧은 시간이긴 했지만 내가 집에 들어갈 때마다 나를 반겨주던 무언가가 아무것도 없을 때 그 허전함 알지. 딱 그런 느낌이었어.
56 나무 2024/09/26 23:45:40 ID : ty2MjfO07e3 0
출구는 거의 다 와가는 것 같고 파란이는 갑자기 막 생각이 나고. 갈 땐 가더라도 파란이한테 인사는 하고 가야겠다 싶어서 무작정 경로 이탈하고 아무 방향으로 달렸어. 뒤에 따라오던 사람들 아주 혼비백산하면서 어리둥절해 하는데 통쾌해서 몰래 비웃었다.
57 나무 2024/09/26 23:47:55 ID : ty2MjfO07e3 0
또 정처 없이 걷는 시간이 왔어. 숲은 정말 넓은데다 미로 같고, 뒤에 따라붙은 몇몇 사람들은 정말 이 길이 맞냐고 눈치주고. 괜히 파란이만 욕했어. 그 애가 날 두고 가지만 않았다면 아무 일도 없었을 텐데 하면서. 그런데, 갑자기 엄청 큰 발소리라고 해야 하나, 흙을 질질 끄는 소리? 그런 게 나는 거야.
58 나무 2024/09/26 23:50:27 ID : ty2MjfO07e3 0
진짜 무서운 거 눈앞에서 보면은 숨이 막히고 오한이 돈다고들 하잖아. 진짜 그냥 서 있는 자리 공기 자체가 냉골이었어. 소리가 들려오는 반대편으로 무작정 뛰었어. 파란이랑 같이 있을 때랑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은 그냥 그들이라고 부를게. 그들이랑 같이 있을 때 만난 것들이랑은 그냥 딱 봐도 차원이 다른 거였어. 걸리면 그들 뿐만이 아니라 나도 백퍼 휘말릴 것 같았어.
59 나무 2024/09/26 23:55:08 ID : ty2MjfO07e3 0
그런데 아무리 뛰고 달려도 그게 계속 따라와. 소리가 없어지지가 않아. 체감상으로는 파란이랑 둘이 걸었을 때보다 더 많이 걸은 것 같았는데. 그리고 내 체감은 틀리지 않았어. 앞에 파란이가 쉬던 비내리는 둥지가 보일 때까지 걸은 거야. 힘들게 거의 출구 앞까지 갔다가 괜히 파란이 찾겠다고 그걸 다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린 거지. 그래도 일단 그냥 파란이 공간이라도 보니까 마음이 놓여서 냅다 그 둥지에 들어가서 가운데 나뭇가지랑 지푸라기 조금 헤집어서 그 사이에 숨었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날 따라오던 그들은 파란이 둥지에는 들어오지 못하는 건지 잠깐 주변에서 맴돌다가 사라지고 그 흙 위에서 질질 끄는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더라.
60 나무 2024/09/26 23:59:23 ID : ty2MjfO07e3 0
그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다가, 그것의 실체가 보일 정도로 바로 앞까지 다가왔어. 그것은 바오밥 나무 같이 생겼는데 나뭇가지가 좀 길고 메말라 있었어. 그리고 나무 기둥 가운데가 뻥 뚫려 있었는데 그 안에 피 같은 붉은 물이 고여서 넘칠 것 같았어.
61 나무 2024/09/27 00:05:31 ID : ty2MjfO07e3 0
그리고 실제로 그 안에 빨간 물이 넘쳤는데 그 물이 파란이 둥지 바로 앞까지 퍼지는 거야.. 그 물에 닿는 건 정말 죽는 것보다도 싫어서 이번에는 정면 돌파로 바오밥 나무 쪽으로 달렸어. 어차피 출구로 가려면 그걸 넘어야 했으니까. 그런데 그 나무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컸는지 이걸 뚫거나 빙 돌아서 가는 게 가능하기는 한가 싶을 정도로 크기가 컸어. 최소 만년쯤은 산 나무 아니었을까 싶어..
62 나무 2024/09/27 00:06:25 ID : ty2MjfO07e3 0
그걸 지나치지 못하고 망연자실하게 그 바오밥 나무만 쳐다보고 있는 게 두 번째 꿈에 마지막이야. 내가 할 일이 있어갖구 또 나중에 와서 풀게. 다들 잘 자!
63 이름없음 2024/09/28 09:34:08 ID : U1yHBhwNy0l 0
와... 재밌어..!! 새로워!!! 짜릿해!!!!!! 진짜 개큰 행복에 빠져버렷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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