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없음 2024/09/12 18:55:55 ID : ty2MjfO07e3
안녕! 내가 아주 오래 전에 꾼 꿈에 대해서 얘기해 보려고 해.
나무 2024/09/12 19:03:21 ID : ty2MjfO07e3
이름은 나무로 하고 얘기할게!
나무 2024/09/12 20:08:23 ID : ty2MjfO07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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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2024/09/12 20:24:08 ID : ty2MjfO07e3
안개가 낀 울창한 숲 한가운데에서 잠을 자고 있는 나로 꿈이 시작 돼. 잠을 자는 내 주변으로 다람쥐나 사슴, 작은 벌레들이 서성거리다 사라지는 기척이 느껴지지만 잠에서 깨기에는 옅은 존재감이었어. 내가 깊은 잠에서 깨게 된 건 방금까지 느껴졌던 기척과는 또다른 기척이 하나 느껴졌기 때문이야. 오른팔이 뜯어져 떨어져 나가기 직전인 나보다는 살짝 나이가 많아 보이는 아이가 다가오면서였어. 이상하게 그 순간에 주변이 엄청 추웠던 걸로 기억해.
나무 2024/09/12 20:31:21 ID : ty2MjfO07e3
바로 내 옆으로 다가온 그 애는 오른팔과는 다르게 멀쩡한 왼팔로 나를 흔들어 깨웠어. 살짝 벌어진 눈꺼풀 아래로 눈앞에 서 있는 아이를 보는데 왜인지 조급해 보이는 것 같아. 그래서인지 아직 잠결에 몽롱한 상태였는데도 눈을 뜨게 되더라.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그 애의 표정을 보자니 계속 잘 수가 없었어. 그런데 일어난 순간 갑자기 엄청 세다고 해야 할지, 날카롭다고 해야 할지. 나를 스쳐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상처를 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바람이 막 불었어.
나무 2024/09/12 20:40:21 ID : ty2MjfO07e3
바람이 내 체온과 숨을 다 앗아가는 듯한 감각이었어. 이 바람을 계속 맞고 있다가는 나는 분명 1시간도 채 버티지 못하고 죽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어. 아직 성장기를 모두 거치지 못한 어린 두 팔이 바람을 피하기 위해 온몸을 감싸려고 안간힘을 쓰며 몸을 웅크렸어. 사실 바람만 피하면 되는 거라면 나무 뒤에나, 동굴 같은 곳에 숨으면 돼. 숲이니까 말이야. 그런데, 온 사방이 나한테 적의를 품고 주의하고 있는 것 같았어. 나무 뒤에 몸을 숨기려고 하면 나무가 나를 피해 멀어질 것 같았고, 동굴 안에 숨어 들면 동굴의 천장이 무너져 나를 짓누를 것 같았어.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
나무 2024/09/12 20:47:59 ID : ty2MjfO07e3
어린 마음에 한편으로는 서럽기도 했어.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왜 다들 나를 미워하는 걸까. 물론, 내가 서러움을 느끼는 대상이 누구인지는 나도 몰랐어. 그냥 섭섭한 마음이 들었던 것 뿐이었어. 오른팔이 뜯어진 그 애를 이제부터 파란이라고 부를게. 눈물을 글썽이는 내게 파란이가 말을 걸었어. 어떻게 사지 멀쩡하게 이곳에서 잠을 자고 있을 수 있냐면서. 그때는 정말 당황했어. 왜 숲 한가운데에서 자고 있냐고 묻는 것도 아니고 왜 사지가 멀쩡하냐고 물으니까 할 말이 없었어. 내가 엄청 위험한 곳에 들어온 건가 무섭기도 했고. 그리고 파란이가 얄밉기도 했어. 그렇지 않아도 생판 처음 보는 곳에서 깨어나 혼란스러운데 달래기는 커녕, 겁주는 말이나 하니까. 그래서 파란이를 째려보면서 울었어. 어릴 때는 엄청난 울보였거든.
나무 2024/09/12 21:24:25 ID : ty2MjfO07e3
벌레 보듯 나를 바라보는 파란이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해서 지금도 살짝 마음이 아플 정도야.. 그건 정말 경멸이었거든. 끔찍해 죽겠다고 표정으로 말을 하는데..ㅎㅎ 어쨌든 파란이는 그러면서도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고 나는 따라갔어. 온 사방이 나를 싫어하는 것 같았지만 파란이는 날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았어. 이상한 생물 보듯은 했지만.
나무 2024/09/12 21:33:29 ID : ty2MjfO07e3
파란이를 따라가는 동안 티비에서나 봤던 동물들을 많이 볼 수 있었어. 산토끼나 두더지, 족제비. 사슴이랑 고라니도 봤어. 어렸을 때 나는 사슴과 고라니는 같은 동물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그때 보니까 둘이 정말 다른 동물이라는 생각이 딱 들었어. 개인적으로 사슴이 너무 멋있었어. 뿔이 엄청 컸는데 앞에 서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위엄이 있었어. 그렇게 신나게 구경을 하면서 걷다가 갑자기 위화감?이 들었어. 뭔가 편해진 것 같은데 왠지 찝찝하고 한편으로 불편하면서도 또 원인을 모르겠어서 혼란스러웠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원인을 알 수 있었지. 잠에서 일어났을 때부터 은연 중에 서성이던 주변의 적대감이 어느 순간부터는 딱 끊어진 걸 알아차렸어. 그리고 그걸 인지한 순간부터 숲의 말이 들리기 시작했어.
나무 2024/09/12 21:36:09 ID : ty2MjfO07e3
숲의 말은 내가 나중에 파란이한테 들었는데, 숲 안에 사는 동물이랑 식물, 강이나 호수 같은 자연 자체 같은 것들이 하는 모든 말이 머릿속으로 들이닥치는 거를 말하는 거야. 눈에 보이지 않아도 가까이 있지 않아도 정말 다 들려. 숲 안에 있기만 하면.
나무 2024/09/12 21:40:05 ID : ty2MjfO07e3
숲은 파란이한테 화가 나 있었어. 남은 왼팔, 다리, 눈, 가릴 거 없이 파란이의 모든 걸 다 앗아가고 싶어했어. 그걸 들은 순간 알겠더라. 나에 대한 적대심이 사라진 게 아니라 파란이를 향한 그 마음이 너무 커서 내 게 묻힌 거였어. 지금 생각해보면 파란이가 방패 역할을 해준 것 같아. 내가 그런 시선에 노출 되기를 바라지 않는 것 같았어.
나무 2024/09/12 21:44:37 ID : ty2MjfO07e3
파란이를 계속 따라가다 나온 곳은 커다란 둥지였어. 사람이 누워 쉴 수 있을 만큼 큰 새둥지. 하지만 거기만 이상하게 하늘이 뻥 뚫려 있었어. 다른 곳은 나무가 덮어서 그늘이 졌는데 파란이의 둥지에만 하늘이 뚫려 비가 쏟아지고 있었어. 그 애는 그게 익숙한지 아무렇지 않게 둥지에 들어가 앉더라. 나한테도 오라고 손짓하는데 나는 그냥 둥지 앞 풀밭에 앉았어. 비를 맞기는 싫었거든.
나무 2024/09/12 21:58:10 ID : ty2MjfO07e3
그리고 문뜩 파란이는 이런 데에서 뭘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팔은 왜 그런 걸까도 궁금했고. 그래서 물어봤어. 대답해줄 것 같아서. 넌 팔이 왜 그래? 라고 돌직구로 물었더니 파란이는 짜증이 났는지 오만상을 했어. 솔직히 나였어도 그랬을 것 같아. 어디가 다쳤는데 그걸 고칠 수 없고 그래서 그게 싫은데 다른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사정을 캐물으면 나였으면 말 안 했어.. 그렇지만 파란이는 말해줬지ㅎㅎ.. 파란이는 지금 벌을 받고 있는 거라고 했어. 이 숲에서 지낸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 집에 돌아가지 못하게 된 게 도대체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고.
나무 2024/09/12 22:07:13 ID : ty2MjfO07e3
그런 파란이가 조금 안쓰러워서 나랑 같이 나가지 않겠냐고 물었어. 왜냐면 나는 숲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알았거든. 어떻게 알았는지나 왜 알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나도 몰라. 그냥 알았어. 그럴 것 같았어. 근데 파란이는 고개만 젓더라. "너나 나가." 이러고 그냥 눈을 감아버렸어. 말하는 걸 들어보면 이곳에서 나가고 싶은 건 맞는 것 같은데 왜 싫다는 건지 이해가 안 갔어. 그렇게 눈을 감고 잠들어버린 것 같은 파란이를 두고 혼자 나갈까 말까 고민을 하는데 갑자기 배가 고파졌어. 원래 성장기 때 애들은 자고 일어나면 배고프고 그러잖아. 나는 특히 그게 심했거든. 그래서 주변에 먹을 거 없나 겁도 없이 돌아다니며 둘러보는데 볼이 빵빵한 다람쥐가 갑자기 다가왔어. 빵빵하게 입 안에 가득 차 있는 걸 다 뱉어내고는 훌쩍 멀리 사라져 버리더라. 도토리 같은 나무 열매들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뭔가 좀 정신이 나가 있던 것 같아. 평소 같았으면 아무리 배가 고팠어도 그러지 않았을 텐데 다람쥐가 뱉은 열매들을 다 주워먹었어. 정말 하나도 남기지 않고.
나무 2024/09/12 22:13:59 ID : ty2MjfO07e3
그리고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파란이가 깨서 나를 보고 있었는지, 갑자기 뒤로 다가와서는 무릎 뒤에 접히는 부분을 콱 발로 찍어버렸어. 놀라고 아파서 반사적으로 무릎을 꿇고 앉게 되었는데 걔가 내 머리까지 바닥에 처박더라. 진짜 나쁜놈. 난 영문도 모르고 바닥에 무릎 꿇고 머리 처박고 있는데, 파란이가 이제는 죄송하다고 싹싹 빌라고 했어. 정말 난 궁금한 마음에 누구한테 내가 왜 빌어야 되냐고 파란이한테 물었는데 닥치고 죄송하다고나 하래서 그냥 입을 다물었어. 아마 파란이를 만난 그 시점부터 내 성격이 조금 세졌던 것 같아. 그 후로 여태까지 살면서 파란이만큼 날 막 대하는 사람은 아직도 못 만났어.
나무 2024/09/12 22:18:06 ID : ty2MjfO07e3
어쨌든 영문도 모르고 파란이를 따라 죄송하다고 비는데 갑자기 속이 안 좋아지는 거 있지. 신물이 목 너머로 올라오고 당장이라도 토할 것 같은데 나는 토하는 걸 정말 싫어해. 어릴 때부터 장이나 위가 약해서 탈이 하도 나다 보니까 토하는 기억이 정말 최악이었거든. 그래서 꾸역꾸역 토를 삼키는데 파란이가 토하라고 아주 친히 등을 두들겨 주더라. 덕분에 속 싹싹 비웠어. 그제서야 파란이도 뭐가 풀렸는지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어. 파란이는 나보고 미쳤냐고 아주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데 아무것도 안 알려줬으면서 내가 뭘 하기를 바라.. 억울해서 또 울었지. 그제서야 파란이가 하나 둘 말해주더라.
나무 2024/09/12 22:23:16 ID : ty2MjfO07e3
내가 잠을 자고 있던 숲은 살아갈 터전을 잃었거나 인간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당한 동물, 식물, 인간에 의해 더렵혀진 강물이나 호수, 공기 같은 것들이 모이는 숲이라 인간인 파란이나 나한테 좋은 감정으로 다가와주는 것들은 없다고. 그래서 내가 먹은 열매들도 아마 다 썩었거나 독성이 심한 것들이었을 거라고 파란이가 말해줬어. 원래 같았음 토해낼 수도 없었을 텐데 나는 그 애만큼 큰 죄를 지은 것 같지는 않아서 다행이래.
나무 2024/09/12 22:34:58 ID : ty2MjfO07e3
이쯤 되니 알 수 있었어. 내가 숲의 일부에게 무슨 잘못을 했고 어쩌다 이곳에 들어와서 벌을 받게 된 거라는 걸. 그런데 내가 뭘 잘못한 건지 도저히 생각이 안 나는 거야. 그리고 한편으로는 나가는 길을 아는데 그냥 나가면 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파란이한테 말했더니 그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라고, 내가 지금까지 본 건 그래도 악의가 덜한 작은 동물이나 초식을 하는 동물, 본디 자비로운 나무들과 새들밖에 없었으니 멀쩡할 수 있었던 거라고. 나가기로 마음을 먹는 순간 마주하는 것들의 악의가 달라질 거라고 그렇게 말했어.
나무 2024/09/12 23:25:26 ID : ty2MjfO07e3
그럼 나는 평생 여기서 살 수밖에 없는 건가? 언제 나를 해칠지 모르는 숲 안에서? 그렇게 생각이 든 순간부터 패닉이 왔어.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아무 생각을 할 수가 없었는데 정신차리라고 파란이가 다시 나를 붙들어줬어. "나는 너무 늦었지만 너는 나갈 수 있을 수도 있어." 그렇게 말해주는 파란이를 보면서 그냥 그때는 마냥 믿음직스럽고 고마웠어. 지금은 그 애한테 너무 미안하지만.
나무 2024/09/12 23:38:34 ID : ty2MjfO07e3
파란이는 이 숲에서 지켜야 할 것을 모두 숙지하지 않으면 나를 도와줄 수 없다고 말했어. 규칙을 어긴 나를 데리고 다니면서 더 미움을 받을 수는 없다고. 그래서 조금 겁을 먹었었는데 막상 듣고 나니 딱히 지키기 어려운 건 없었던 것 같아, 규칙에 뭐가 있었냐면, 첫 번째.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말 것. 식욕, 수면욕 같은 욕구들을 해소하는 행위들을 일절 해서는 안 된대. 숲은 우리가 고통받으며 죽지 못하고 발버둥치는 걸 좋아하지 우리가 무언가를 채워가며 살아가는 것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두 번째. 숲을 하대하지 않을 것. 잘못을 빌 때도, 무언가를 바랄 때도 무조건 저자세여야 들어줄까 말까 한다고. 웬만해서는 마주하는 것 자체를 피하는 게 좋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는 차라리 바닥을 기며 빌어야 한대. 그리고 세 번째. 숲을 나가려고 하지 말 것. 이유는 이제부터 알 수 있을 거라며 말해주지 않았어. 그리고 하나가 더 있는데, 솔직히 이건 기억이 잘 안 나. 왜냐면 이 꿈을 꾼지 거의 1n년이 지나갔고.. 그때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파란이가 너무 많이 했어..ㅎㅎ 대신 이런 게 아니었을까? 생각한 게 있긴 해서 얘기 거의 끝자락에 말해줄게.
나무 2024/09/12 23:42:32 ID : ty2MjfO07e3
자잘한 규칙이 더 있긴 한데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서 넘길게. 그렇게 규칙 다 외우고 파란이한테 검사까지 맡은 다음에 우리는 출발할 수 있었어. 파란이의 말에 하도 겁을 먹은 탓에 기분탓이었을지는 모르겠는데 왜인지 숲이 한층 어두워진 것 같았어. 정말 한치 앞도 안 보일 정도였는데 파란이는 내 손을 잡고 내가 안내하는 대로 척척 걸어가더라.
나무 2024/09/12 23:49:44 ID : ty2MjfO07e3
파란이를 따라 계속 걷는데 정말 끝이 안 보였어. 체감상으로는 하루는 걸은 것 같은데. 거기에 출발하기 전에 3일은 내리 걸어야 나갈 수 있을 거라는 파란이의 말이 떠올라서 사기가 떨어졌어. 지금도 이렇게 힘든데 앞으로 3일을 잠도 안 자고 먹지도 못하고, 가능할까 싶었어. 그리고 체감상이 하루지, 아직 6시간밖에 안 걸었다고 파란이가 옆에서 계속 현실을 자각시켜주는 바람에 더 곤혹이었지. 그렇게 하염없이 걷기만 하는데 분위기가 너무 어색한 거야. 파란이는 말이 없고 무슨 일이 많이 생길 거라는 파란이의 말과는 다르게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그래서 얘기나 할까 싶어 머리를 굴리다가 파란이한테 파란이 얘기 좀 해달라고 했어. 대충 얼버무리지 말고 어차피 다시는 못 볼 수도 있는데 그냥 마음 편하게 털어 놓으면 안 되냐고. 그때 파란이 표정이 엄청 슬퍼 보였어. 눈치 없고 어린 게 죄였지. 아직도 그 애에 관한 걸 가볍게 캐물은 걸 나는 후회해.
나무 2024/09/12 23:52:37 ID : ty2MjfO07e3
파란이는 차가우면서도 이상하리만큼 거절은 안 했어. 이것도 지금 생각해보자면 아마 그 욕구?를 채우는 규칙을 어기는 거였을 거야. 무언가를 하기 싫은 그 마음을 충족시키면 안 됐던 거지. 그렇게 나는 파란이의 과거를 들을 수 있었어.
나무 2024/09/12 23:59:49 ID : ty2MjfO07e3
파란이가 이 숲에 들어오게 된 이유와 무얼 해야 하는지에 관한 건, 아무도 파란이에게 답을 해주지는 않았지만 숲에서 살면서 혼자 깨달을 수 있었대. 파란이도 나처럼 숲 한가운데에서 잠을 자다 깨어났고 나와는 다르게 오른팔이 반이나 찢어져 너덜거리고 있던 상태였대. 정신을 차리고 있는 게 신기하리만큼 아팠지만 어쩔 수 없이 눈을 뜨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대. 정신을 잃고 누워 있을 때면 숲이 자신을 해치려고 하는 걸 파란이는 알 수 있었던 거야. 게다가 살려고 무언가를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아프고 살기가 힘들어진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었고. 그때부터는 무얼 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반성만 했대. 숲이 제게 화가 나 있는 건 알겠으니 어떻게든 풀어보려고 빌면서.
나무 2024/09/13 00:07:07 ID : ty2MjfO07e3
그리고 아직도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됐는지에 관한 건 기억이 안 나지만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는 기억을 할 수 있었다고 해서 이유는 들을 수 있었어. 아주 오래 전 이야기래. 파란이가 나보다도 어릴 적에 친구들과 놀다가 날아가는 참새를 돌로 맞춰 떨어뜨려보자는 얘기가 나온 거야. 그런데 하필 돌을 던지게 된 게 파란이었던 거지. 사실 친구들이 하자니 어울리긴 했으나 딱히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던 파란이는 구경만 하려고 했지만 친구들에 등살에 밀려 어쩔 수 없이 돌을 던질 수밖에 없었어. 그리고 파란이가 던진 돌은 정확히 하늘을 나는 참새의 오른쪽 날개를 적중했고 참새는 하늘에서 떨어져 그대로 죽어버리게 됐어. 파란이는 자신이 그때의 벌을 받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어.
나무 2024/09/13 00:11:23 ID : ty2MjfO07e3
그 기억이 떠오르고, 그때부터는 숲을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을 아예 싹 접었대. 그렇게 하염없이 시간이 흐르다 갑자기 내가 나타난 거야. 나는 숲 한가운데에 갑자기 나타나 잠들어서는 깨어날 생각을 안 하고 숲은 나를 노리고 점점 다가가고. 안 그래도 숲의 미움을 받고 있는 파란이는 사실 굳이 나를 도우면서까지 숲에게 더 미움받고 싶지 않았대. 어차피 여기 들어온 나도 잘못이 있을 테니까. 그런데, 처음 이 숲에 들어왔을 때의 그 두려움과 막막함이 떠올라서 도저히 냅둘 수가 없었던 거야, 파란이는.
이름없음 2024/09/13 16:43:45 ID : zgi06ZjwJRB
와... 진짜 레더 사랑해 드디어 꿈판에 다시 이런 스레가 올라오기 시작하는구나ㅠㅠㅠㅠ 진짜 고마워 잘읽고 있어 레주!!!
나무 2024/09/13 17:48:37 ID : ty2MjfO07e3
응 나도! 레더 명절 잘 보내!
나무 2024/09/13 22:05:02 ID : ty2MjfO07e3
이어서 얘기할게!
나무 2024/09/13 22:12:57 ID : ty2MjfO07e3
파란이 얘기가 끝나고 우리 사이에는 한동안 정적이 흘렀어. 나는 입을 다문 파란이가 먼저 말을 꺼내기 전까지는 길을 안내하는 말 말고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어. 파란이가 심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많이 지쳤다는 게 정말 적나라하게 보였거든. 그와중에 파란이를 욕하는 숲의 말도 쉬지 않고 들렸어. 내가 들린다는 건 파란이도 들린다는 거잖아. 그래서 더더욱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어. 내가 무슨 말을 해도, 파란이를 힘들게 하는 모든 요소에 그냥 하나를 더한 느낌일 것 같았거든.
나무 2024/09/13 22:19:12 ID : ty2MjfO07e3
얘기 더 하기 전에 이건 참고용인데, 내 꿈은 신기한 것보다는 공포?스러운 느낌이 더 강한 것 같아. 파란이랑 있었던 일을 주체적으로 얘기하니까 일상스러운 느낌이 많이 들지만 사실은 중간중간 파란이랑 내 사이에 있는 침묵 시간도 많이 길고 파란이는 사람이 맞지만 사람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어. 사람도 동물도 아닌 그냥 어중간한 생물? 거기에다 팔 하나가 뜯어져 있으니 솔직히 친근함보다는 섬뜩함을 그 애한테서 많이 느꼈어. 나를 싫어하지 않는 것 같은 파란이랑 멧돼지? 같은 게 앞에 있다면 난 차라리 멧돼지를 따라갔을 거야.
나무 2024/09/13 22:24:02 ID : ty2MjfO07e3
그렇게 우리 둘은 아무 말도 없이 하루를 내리 걸었고 파란이랑 나는 잠깐 쉬기로 했어. 파란이는 괜찮았지만 내가 지쳐서 더이상 걸으면 얼마 못 가 다리를 아예 못 쓰게 될 것만 같았거든. 그런데 파란이는 어두운 숲을 둘이 걸을 때보다 잠깐 땅에 앉아서 쉴 때를 더 두려워하는 것 같았어. 쉬기 전에 “그냥 참고 걸으면 안 돼? 어차피 이런 숲에선 제대로 쉴 때도 없어.”라고 말하는 걸 정말 백 번도 더 넘게 들었어.
나무 2024/09/13 22:26:45 ID : ty2MjfO07e3
그럴 성격이 아닌 파란이가 그만큼 조르는 걸 봤으면 솔직히 지금의 나 같았다면 안 쉬고 어떻게든 걸었을 것도 같아. 그런데 그때는 뭐.. 참는 게 어딨어. 파란이 말은 기똥차게 흘리고 냅다 자리에 드러누웠지. 힘든데 어떡해.
나무 2024/09/14 00:45:26 ID : ty2MjfO07e3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후회를 하게 돼. 아무리 힘들어 죽을 것 같고 다리가 망가질 것 같았어도 파란이의 말대로 계속 걸었어야 했다고.
나무 2024/09/14 00:57:25 ID : ty2MjfO07e3
그렇게 오래 쉬지도 않았어. 정말 딱 5분 정도? 겨우 숨통이 트일 정도였는데 그 짧은 휴식조차도 우리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거였나봐. 땅에서 지진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갑자기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산양 떼가 우르르 튀어나왔어. 처음 튀어나온 방향은 완전히 우리 쪽을 향한 게 아니었거든? 그런데, 목표는 우리가 맞았던 건지 들이박을 기세로 방향을 틀고 달려 오더라. 둘 중에 하나였어. 그들이 모두 지나갈 동안 바닥에 엎드려 밟히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라거나, 그들의 무리 범위 바깥으로 빨리 벗어나는 거. 물론, 전자도 후자도 가능성은 거의 없었어. 그냥, 밟히는 게 덜 아플지 박치기 당하는 게 덜 아플지 고르는 정도.. 나는 굳이 하자면 전자였는데 파란이는 나랑 의견이 같으면서도 조금은 달랐어. 왜냐면 같이 바닥에 엎드리기는 했는데 파란이가 엎드린 곳은 내 등 위였거든. 그것도 완전히 엎드린 게 아니라 한 손으로 바닥을 지탱하고 나한테는 거의 피해가 가지 않게끔 하는.
나무 2024/09/14 01:04:18 ID : ty2MjfO07e3
파란이 덕분에 나는 먼지만 조금 뒤집어 쓴 정도로 멀쩡하게 일어날 수 있었어. 나를 감싸준 파란이는 온몸이 만신창이가 돼 버렸고. 파란이를 쳐다만 보는 것도 힘들 정도로 처참하고 잔인한 몰골이었어.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가 없었어. 그런데 그 애는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빨리 가자고만 나를 재촉해. 그때부터는 파란이가 소름끼쳤어. 계기 없는 그 애의 희생이 끝이 없는 의심과 공포감을 조성한 거지.
나무 2024/09/14 01:11:28 ID : ty2MjfO07e3
그때부터 파란이랑 거리를 두고 걷기로 마음을 먹고 멀리 떨어져 걸었어. 파란이한테 고마운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었고 마냥 그 애가 무섭고 싫기만 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언젠가는 나도 파란이처럼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두려웠어. 그게 파란이랑 가까이 있다고 해서 옮는 그런 것도 아니지만, 어릴 때는 나쁜 건 다 옮는다 그런 미신을 믿었어서.. 날 도와주는 파란이한테 할 만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어. 계속해서 생겨나는 위험한 일들이 내가 아니라 파란이를 노리고 있다는 걸 알 수가 있었거든.
나무 2024/09/14 01:14:08 ID : ty2MjfO07e3
어떤 일이 생길 때, 파란이한테서만 멀찍이 떨어져 있으면 나한테까지 어떤 영향이 끼치고 그러지 않았어. 그걸 여러 번 겪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알 수밖에 없었던 거야. 파란이가 위험을 불러오는구나, 하고. 파란이도 그걸 알았는지 어느 순간부터는 그 애가 먼저 나랑 멀리 떨어져 걸어 가고 있었어. 한 번씩 길만 물어보면서.
나무 2024/09/14 01:29:11 ID : ty2MjfO07e3
딱 여기까지 보고 잠에서 깼어. 나는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악몽을 정말 하루 걸러 하루? 정도로 습관처럼 꿨어. 악몽을 꾼 날이면 무조건 새벽에 울면서 깨어났고 이 꿈을 꾼 날은 유독 심했었나 봐. 내가 먼저 깬 게 아니라 아침 한 5시쯤? 엄마가 깨워서 일어났어. 엄마 말로는 새벽에 화장실에 가려고 나왔다가 내 방에서 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더래. 그래서 당연히 내가 또 악몽을 꾸나보다 하고 깨워주려고 내 방에 들어갔는데, 세상에. 애가 분명 자고 있는 건 맞는데 숨이 넘어가라 오열을 하면서 깨워도 일어나지를 못하는 거야. 그때 내가 잘못될까 봐 엄청 무서웠대. 다행히 응급실에 가려고 엄마가 준비를 마치고 정말 마지막으로 한 번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를 깨워봤을 때 내가 일어났어.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날이 밝고 엄마랑 병원을 갔고 너무 울어서 살짝 미열이 있는 것 빼고는 건강하대서 다시 집으로 왔어. 이게 1부? 같은 느낌이야. 이 꿈은 중간에 텀을 두고 네 번? 정도 더 이어서 꿨어. 다음은 나중에 와서 풀게! 내일 음식하려면 일찍 일어나야 해서..ㅎㅎ 다들 명절 잘 보내!
나무 2024/09/14 01:38:20 ID : ty2MjfO07e3
얘기가 이어지는 게 좀 부자연스럽고 뚝뚝 끊기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그건 나도 어쩔 수가 없어 미안.. 사실 꿈이라는 게 그렇잖아. 개연성도 없고 비현실적이고. 내가 꾼 꿈도 그랬어. 어느 부분은 명확히 상황을 겪은 게 꿈 자체였다면 어떤 부분은 아 내가 이런 일을 겪었다라는 말 자체가 꿈이었던 거야. 앞에는 이렇다고 말했는데 뒤에는 앞에 했던 말이랑은 맞지 않는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는 거고. 어느 정도는 감안하면서 봐줘..! 미안..!
이름없음 2024/09/14 09:02:12 ID : ByZfV85Phbw
우와... 오랜만에 너무 재밌는 스레였당🥰🥰 진짜 재밌게 읽엇어 레주!! 이런 스레 세워줘서 넘 고마워 ㅎㅎ
나무 2024/09/14 16:16:01 ID : ty2MjfO07e3
나야 말로 봐줘서 고마워ㅎㅎ 레더 명절 잘 보내!!
이름없음 2024/09/14 16:18:57 ID : jgZcr85Qljz
레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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