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없음 2024/10/21 08:52:53 ID : 3SHA6kq1DyZ 0
우선 첫 글이니 흐름을 따라 써볼려한다. 내가 아직 괜히 글을 수정하고 고칠 단계는 아니라는 객관적인 자기 평가에 근거한 생각이다. 모든 일들이 반복하면 늘 듯 많이 읽고, 쓰다보면 이것도 늘지 않을까? 매일, 꾸준히 글을 쓰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첫 주제는.. 좋아하는 장르로 하고싶다. 후보군은 3가지. 리미널 스페이스와 포스트 아포칼립스, 그냥 아포칼립스다. 아무래도 인물간의 인간관계를 글로 나타내기엔 힘든 감이 있어 우선 주인공의 독백 위주로 글을 써볼려 한다. 시간은 많으니 하나씩 써보자. 부디 훗날 내가 글을 잘 쓰게 되었을 때 이 글들을 보고 한 치의 부끄럼이 없기를, 모자랐던 내가 부단히 노력했던 지난 날들을 회상할 수 있기를 바란다.
2 이름없음 2024/10/21 09:32:08 ID : 3SHA6kq1DyZ 0
"나 잘 나오고 있냐?" "어~ 잘 나오고 있어. 그대로만 있어라." 친구는 아침부터 사진을 찍겠다고 나를 불렀다. 해도 덜 뜬 이른 시간에 사진이라. 역시 진짜 광기는 뭔가 다른 듯 싶었다. "꼭 이 시간에 찍어야겠어?" "지금이 딱 좋을 때야. 카메라로 찍으면 제일 분위기 있게 나온다고." 친구는 방금 찍은 사진을 자랑스럽게 내 얼굴에 들이밀었다. 곁눈질로 사진을 쳐다보았지만 뭐가 다른 것인진 알 수 없었다. 내가 모르는 미묘한 차이라도 있는 걸까? "솔직히 난 뭔 차이인진 모르겠어." "괜찮아. 초보자라면 그럴 수 있지. 많이 보면 너도 알게될걸?" 조금은 기 죽으라고 강하게 말했지만 그럴 수록 친구는 더 해맑게 말한다. 나는 그런 친구가 마냥 밉지는 않았다. 이런 각박한 세상에서 뭔가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것은 보기 힘든 일이니 말이다. 가끔 그런 때 타지 않은 순수한 미소를 볼 때면 나조차 동심으로 돌아가는 기분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한 장만 더 찍자." 친구의 요청에 난간으로 가 자리를 잡자 또 다시 플래시 세례가 시작되었다. "한 장만 더 찍는다며.." "물론 한 장이지. 단 '완벽한' 한 장이여야 하지만 말이야." 그의 심각한 표정에 태클을 걸 타이밍을 놓친 나는 체념한 채 자세를 유지했다. 그렇게 가만히 있던 와중에 뭔가 이상하단 것을 느끼게 되었다. 카메라 렌즈에 비친 나의 모습에서 어딘가 묘한 기시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저게..뭐지?"
3 이름없음 2024/10/21 22:33:30 ID : ja5O05QljAk 0
잘못 본 것일까 싶어 다시 좌우로 움직이니 명확한 차이점이 보였다. 렌즈엔 내가 앉았던 자리 뒤로 검은 구멍이 비춰지고 있었다. 내가 그 구멍을 인지한 직후 친구는 다시 한 번 셔터를 눌렀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눈부신 섬광이 주변을 가득 메웠다. "야, 움직이고 있잖아!" 친구에게 짜증섞인 목소리를 내보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강한 빛에 눈을 가렸던 손을 천천히 내리자 보이는 것은 처음보는 풍경. "뭐야 여긴..?" 솔직히 뭔가 이상하단 것은 느끼고 있었다. 방금 전의 빛은 카메라의 플래시 따위라기엔 너무 강렬했다. 오죽하면 눈이 빨갛게 충혈될 정도였다. "우선 침착하자."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아돌아올 수 있다고 했다. 지금이 현실인지 꿈인지 파악하기 위해 옆구리를 쎄게 꼬집어 봤지만 강한 고통만이 밀려온다. "..현실인건 확실하네." 제일 좋은 선택지였던 '꿈'이나 '환각'은 허사로 돌아갔다. 즉, 이곳은 명백한 현실이란 뜻이다. 이것을 인지한 나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굳혔다. 이럴 때 일수록 이것이 현실임을 확실하게 인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주변을 좀 둘러볼까?" 처음 눈을 떴을 땐 이곳이 실내인 줄 알았다. 이곳엔 바람 한 점, 빛 한 줄기조차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 더 살펴본 이곳은 결코 실내일 수 없는 환경이였다. 눈 앞을 가로막는 진득하고 짙은 안개와, 발 끝에서 느껴지는 질퍽이는 흙의 질감. 흡사 갯벌과 같은 느낌이였지만 그것과는 엄연히 달랐다.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큰 나무와 같은 것은 갯벌에선 볼 수 없었다.
4 이름없음 2024/10/22 04:46:55 ID : ja5O05QljAk 0
나무는 누군가 인공적으로 심어두기라고 한 듯 일정한 거리를 두고 듬성듬성 심어져 있었다. 대학로에서 보기 좋게 심어져 있는 나무들을 보는 듯 했다. 다만, 이 공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배치란 것이 문제였다. "이질감이라는게 이런건가.." 확실히 나는 그 공간에서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무언가 공존해선 안될 존재들이 한 곳에 겹쳐보이는 기분이였다. 그런 감정을 떨쳐내려 빠르게 발을 굴려봤지만 어딜가나 똑같은 풍경만이 보였다. 무한한 공간에 갇힌 듯 한 느낌이 뇌리에 들러붙어 떨어지질 않았다. 빠져나갈 수 없다는 공포감에 무너질려는 찰나, 최근에 보았던 게임 하나가 떠올랐다. 최근 유행 중인 '리미널 스페이스' 장르의 백룸이란 게임. 그 게임의 주인공 또한 이런 공간에 갇혀 끝없이 헤매이고 있었다. '이게 게임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러자 마법같이 공포감이 사그라들었다. 게임과 같이 어딘가 출구가 있을거란 희망 또한 생겼다. 역시 인간은 상상의 동물인 것일까? 단순히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해석이 바뀌었다는 이유 하나로 이런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다.
5 이름없음 2024/10/22 04:55:07 ID : ja5O05QljAk 0
그 뒤론 계속해서 한 방향으로만 걸었다. 혹여나 무언가 튀어나올까 싶어 곧게 뻗은 나무 막대를 손에 쥔 채 정처없이 걸어갔다. 그렇게 걷던 중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기묘한 공간에 떨어진 것은 내가 최초가 아니라는 사실이였다. 처음에 이것을 알아차린 건 바닥에 떨어진 무언가를 밟은 뒤였다. "뭐지? 뭔가 다른걸 밟은 것 같은데?" 내가 밟은 것은 질퍽한 흙이나 잔디가 아니였다. 딱딱하고 맨들맨들한 질감.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백색 돌같은 물체 보였다. 그것을 손으로 집어 꺼내자 흙 속에 묻혀있던 것이 형체를 드러냈다. 그건 인간의 두개골이였다.
6 이름없음 2024/10/22 05:04:01 ID : ja5O05QljAk 0
순간적으로 놀란 나는 두개골을 던져 바닥에 처박아버렸다.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이 굳어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거 진짜겠지?" 당연했다. 어떤 미치광이가 끝도 없이 펼쳐진 숲에 두개골 모형을 숨겨놨을리는 없으니 말이다. 조심스레 다시 집어들어 해골과 눈을 마주치지 이마 부근에 작은 구멍이 뚫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마치 작고 날카로운 물건으로 긴 시간 공을 들여 곱게 갈아 뚫은 듯한 모습에 온 몸엔 소름이 돋았다. "여기 나 말고 누군가 있어. 그것도 살인마가.." 혼자가 아니게된 것은 기뻤지만 그 존재가 살인마란 것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 '범인이 누굴까?'
7 이름없음 2024/10/22 05:12:36 ID : ja5O05QljAk 0
신상 정보따위를 알아낼 방법은 없었지만 적잖이 유추해볼 순 있었다. 범인은 일행이 있거나 주변에 사람이 있었을 확률이 높았다. 혹은 조심성이 많았거나. 그렇지 않다면 이 광활한 공간에서 시체를 묻진 않았을 것이다. 또한 범인에겐 이런 흔적을 낼 전문적인 장비가 있었을 것이다. 이것으로 그의 직업 또한 유추해볼 수 있었으나 후보군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범인이 가학적인 성향을 가졌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였다. 시체가 완전히 썩기까지 기다린 것이 아니라면 구멍을 뚫는 작업은 피해자의 생전, 혹은 죽은 직후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어쩌면 직접적인 사인이였을 수도 있고..' 어느 쪽이든 살인마가 미친놈이란 것은 확실했다.
8 이름없음 2024/10/22 05:24:34 ID : ja5O05QljAk 0
그때부터 이동하는 것이 매우 피곤해졌다. 개활지인 이곳에서 내가 먼저 살인마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피해자 꼴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였다. 하지만 멀지 않은 곳에서 발견한 수첩 덕에 이러한 걱정은 하지 않게 되었다. "굉장히 오래된 것 같은데?" 허름하고 작은 손노트는 비닐팩 안에 소중히 밀봉되어 있었다. 조심스레 그것을 꺼내어 펼치니 노트의 내용이 드러났다. 일기 형식으로 쓰여진 글 들은 아마도 아까 전 시체를 묻은 범인이 작성한 듯 보였다. 빠르게 읽어내려가자 그가 처음으로 살인을 저질렀던 날짜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30일차> 벌써 이 공간에 갇힌지도 한 달이 지났다. 오고가며 몇몇 건물이나 잔해들을 보긴 했지만 사람은 없었다. 이젠 길 바닥의 풀과 냄새나는 구정물로 수명을 연장하는 것도 지친다. 신선한 고기가 먹고싶다. <31일차> 신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셨나보다. 처음으로 사람과 마주했다. 굉장히 시대 착오적인 복장에 말도 통하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간만에 고기를 실컸 먹었다. 또한 수분도 보충할 수 있었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이젠 출구만 찾게 해주세요. 노트의 주인은 굶주림에 지쳐 첫 살인을 저지른 뒤론 쭉 사람을 사냥하고 다녔다. 모든 과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있던 노트 속에서 그는 점차 광기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결국 마지막 페이지에 가까워져선 무슨 글자인지 알아볼 수 조차 없게 되었다. "사인은 감염인가.." 아마도 죽인 사람들 중에 병자가 있었던 듯 했다. 참 지지리 운도 없다. 병에 걸렸는데 이곳에 온 사람도, 그걸 처먹은 이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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