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1
1 이름없음 2024/11/29 14:32:16 ID : cpXs4FgY03D 12
맛있어! 풀떼기 옴뇸뇸
202 이름없음 2025/01/02 23:52:14 ID : cpXs4FgY03D 0
아빠의 분석 결과, 내 외피는 유기물질로 되어있대. 아무래도 불량품 같다나. 태양열을 섭취하는 아빠와 달리 나는 연소된 풀과 시체를 먹어. 유기물을 먹어 유기물로 만든 신체로는 30m 멀리 던지기를 못 하겠지. 그래도 괜찮아, 언제까지나 엄마 아빠랑 함께일 테니까! 속이 괜찮아졌어. 30m 멀리 던지기를 재개할 때야. 아빠의 품에 들렸다가 고공행진하기를 몇 번째. 내 시야엔 저 멀리 존재하는 무엇인가가 들어왔어! 1. 야생 토끼 2. 로봇 무리 3. 로봇, 그런데 눈이 새빨개. 4. 자유!
203 이름없음 2025/01/03 13:37:08 ID : O1ii60q2HBb 0
3
204 이름없음 2025/01/03 23:54:05 ID : cpXs4FgY03D 0
로봇 한 체가 접근 중이야. 시각 센서에 붉은 빛이 들어와있어. 아빠에게 연신 헹가레 당하며 조금씩 보고를 해. "아빠. 저 멀리." 나는 다시 날아갔어. "로봇이 있어요!" 또다시 날아갔어. "눈이 빨개요!" 이번엔 날아가지 않았어. 아빠가 헹가레를 멈추었거든. 아빠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어. 게다가 나를 땅에 떨어뜨려 버려. 이건 난생 처음이야. "아빠?" "...." 아빠는 내 손을 붙들고 기지의 외벽 안으로 달려갔다.
205 이름없음 2025/01/03 23:54:47 ID : cpXs4FgY03D 0
아빠는 외벽의 문을 용접하기 시작해. 내가 묻기도 전에 아빠는 설명했어. "인간이 멸망하고 세 종류의 인공지능이 남았습니다." "아빠, 왜 그래." "혹자는 생태계를 복원하려 했지요. 혹자는 동면관에 남은 로봇을 꺼내 교육하기를 택했지요." "아빠?" "그리고 인간을 멸하려던 존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 따위 없는 세상, 그 증오는 엄한 데에 튀기 일쑤였고...." 커다란 폭음이 들리고, 거대한 충격이 그 뒤를 따랐다. 아빠의 말을 더는 들을 수 없었다. 이명이 심해 어지러움이 일었다.
206 이름없음 2025/01/03 23:55:18 ID : cpXs4FgY03D 0
도망가자. 1. 엄마에게 2. 동면관으로 3. 외벽 밖으로 4. 자유!
207 이름없음 2025/01/04 23:54:14 ID : 3RA47AmK3Xs 0
엄마에게
208 이름없음 2025/01/21 23:11:05 ID : cpXs4FgY03D 0
엄마는 기계실에 있어. 기계실에 있는 걸로 알고 있어. 그래서 문을 꽝꽝 두드렸는데, 도저히 엄마는 나오지 않았어. 거기 없는 것처럼 날 버린 것처럼. 황망해지고 피부가 건조해져. 아빠의 기름 냄새가 난다. 귀를 어지럽히는 불결한 소리, 싫은 징조들. 어쩌지. 내가 그것에 사로잡힌 뒤에야 문이 끼익 열린다.
209 이름없음 2025/01/21 23:13:47 ID : cpXs4FgY03D 0
"엄마." "늦어서 미안하단다."
210 이름없음 2025/01/21 23:14:13 ID : cpXs4FgY03D 0
새하얀 피부와 새하얀 얼굴, 피로에 찌든 눈매. 기력도 없이 엄마는 겨우 입꼬리를 올려. "사라진 줄 알았어." "폐쇄 회로로 상황을 보았단다. 절망적이더구나." "그래서?" "도망가고 잠적하고 싶었지." 엄마가 나를 번쩍 들어올렸어. 기계실로 들어와 문을 잠그고, 상자를 치워 비상 계단을 찾아내. 함부로 내려놓지 못한 채, 엄마는 애잔히 진솔해져.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여기서 멈추고 싶구나." "그렇게 이 이야기를 멈출 수 있다면, 배드엔딩을 볼 일도 없겠지." "암울한 결말보다는, 지지부진 중단되는 편이 더 행복하지 않니?"
211 이름없음 2025/01/21 23:15:32 ID : cpXs4FgY03D 0
"하지만 그런 일은 없고, 저것은 다가오고." "그러니 나는 행동하고, 진행시켜서, 너는 구한 채 이대로 끝나야겠구나." 나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게 돼. 동면관에서 나를 꺼내 먹이고 재워주고 돌봐준 엄마 아빠. 나는 그 로봇들이 필사적이란 걸, 그리고 이별을 당연시한다는 걸 알고 있을 뿐이야. "배드엔딩? 동화 말이야?" "동화와 현실이지."
212 이름없음 2025/01/21 23:15:57 ID : cpXs4FgY03D 0
"예시. 시한부가 되거나." "예시.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채 파괴되거나." "예시. 자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남긴 채 떠나게 되거나." "그런 어두운 결말로 치닫는 삶이 있단다."
213 이름없음 2025/01/21 23:17:23 ID : cpXs4FgY03D 0
파지직, 섬광과 소리. 엄마는 나를 지하와 연결된 사다리에 강제로 밀어넣었다. 그와 동시에 충격음이 들렸고, 엄마의 머리가 관통되었다. 회로가 손상되었는지, 언어 체계가 변경되었다. "거짓. 나는 괜찮단다." "거짓. 다음에 또 만나자." "거짓. 난 걱정하지 않아도 돼." 엄마가 쓰러지며 통로가 가려졌다. 지하 통로는 어두워졌고 "진실. 사랑한단다." 엄마는 그 두 마디 말로 끝났다.
214 이름없음 2025/01/21 23:21:03 ID : cpXs4FgY03D 0
사다리를 더듬거리며 내려가. 나는 두 번 추락하고, 네 번은 울어. 현실을 도피해. 엄마의 생각을 하고 엄마의 말을 생각하면서. 배드엔딩으로 끝나게 되는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살아가는 로봇의 자세에 대하여 생각해. 그럼에도 이야기는 흘러가. 이야기는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아. 시간은 결말의 명도에 관심이 없어. 나는 죽음에 대해 생각해. 어느날 죽음을 앞둔 나는. 침대에 누워 오늘을 생각하며, 가장 외롭게 솔직해지겠지. 1. 죽음은 끔찍한 비극이야. 죽고 싶지 않아. 2.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야기는 빛나고 완성돼. 3. 하나의 삶이 끝날 뿐이야. 품위를 지키면 그뿐. 4. 내 죽음을 여럿이서 슬퍼해주면 좋겠네. 5. 자유
215 이름없음 2025/01/22 22:47:32 ID : 3RA47AmK3Xs 0
죽음은 끔찍한 비극이야. 죽고 싶지 않아.
216 이름없음 2025/01/25 22:02:16 ID : cpXs4FgY03D 0
죽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 죽음으로부터 의미를 발굴할 수 없다고 생각해. 생각은 나를 울적하게 하고, 손은 힘을 풀어 몸을 곤두박질치게 해. 몸은 사다리의 밑으로.
217 이름없음 2025/01/25 22:02:43 ID : cpXs4FgY03D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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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이름없음 2025/01/25 22:03:01 ID : cpXs4FgY03D 0
그러나 충격은 없어. 눈을 부릅뜨니 미래의 풍경이야. 나는 방공호의 침대에 누워있어. 심장과 폐가 다른 박동으로, 그러나 규칙 없이 뛰는 것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면 888과 KEY. 888은 우리 초식 로봇 무리의 대장. KEY는 이 건물에서 발견한 신기한 로봇. 나를 간병하는 걸까? 눈이 흐려 상조차 제대로 맺지 못해. "괜찮아?" 888이 언제나처럼 다정한 목소리로 묻는다. 목에서 공기가 새어나온다. 공기는 말이 되지 못한다. "안심해." 888이 말한다. 순간 울분이 터져나왔다. 울분은 말이 되었다. "죽고 싶지 않아." 한치의 어그러짐도 없이 진실을 말해. 낭비할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색색거리는 숨 속에서 단어를 포착했을까? 888이 내 손을 토닥여줘. 전에도 그랬듯이.
219 이름없음 2025/01/25 22:06:44 ID : cpXs4FgY03D 0
"우리는 죽지 않아. 네가 작동을 멈추거든 부품을 건져내 다른 개체와 합칠 거야. 네 기억을 유지한 채 인격은 합쳐져, 다시금 건강한 몸으로 생활하게 될 거야. 우리는 언제나 그래왔어. 그러니 걱정 말자." 다정다감한 말이야. 부품을 이식해 인격을 합친다. 맞아. 초식 로봇 무리에 합류해 생활하며 본 적 있는 광경이야. 추억이 떠올라. 맑은 하늘 아래서 무리와 어울리던 시간이 있었더랬어. 그러다보니 절로 고민하게 돼. 합쳐진다면 '누구'와? '누구'의 빈칸을 채우면서, 과거는 추억의 이름으로 찾아와. 1. 대장 2. c8c 3. ace 4. KEY 5. 모두 아냐
220 이름없음 2025/01/26 11:48:48 ID : krfgi1g6oY1 0
KEY
221 이름없음 2025/02/04 23:08:35 ID : cpXs4FgY03D 0
엄마 아빠를 두고 도망가, 나는 살아남았었다. 목숨만 부지했더랬지. 나는 아직도 어린 아이였고, 식량을 구할 방법도 몰랐다. 초목이 울창한 삼림에서 돌아다니다 육식 동물을 만나 도망가기를 한세월. 맨발은 빨갛게 벗겨지고, 땀이 흥건해 눈물도 마르고, 그러나 눈물 없이 공포는 한가득. 나는 열심히 도망갔다. 표범의 맹렬한 추격! 그 표범을 강철 주먹이 한방에 날려버렸다. 나이스 펀치! 그 주인은 888, 이 무리의 대장이었다. 연이어 c8c를 비롯해 내가 지금은 아는, 그러나 그때는 초면이던 로봇들이 나타났다.
222 이름없음 2025/02/04 23:11:13 ID : cpXs4FgY03D 0
응, 즐거웠던 추억이 있어. "칭찬. 목숨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헤헤, 뭘!" "제안. 은혜를 갚아도 되겠습니까?" "으음. 너 말투 신기하다! 로봇 같지가 않네!" "어라?" 한동안 입을 닫고 이 무리의 언어를 관찰했다. 얌전히 머리를 빗질하고 낙서를 하고 있자니, 소심한 이미지로 고정돼버렸다!
223 이름없음 2025/02/04 23:16:10 ID : cpXs4FgY03D 0
"888에는 동그라미가 여섯 개야! 귀엽지 않아?" "알 것 같아! 양떼처럼 귀여워!" "맞아, 폭신폭신하지!" "...옷을 만들면 좋을 텐데." 그들은 나를 위해 양무리를 사냥해주었고, 나는 서투른 도축으로 양털과 가죽을 모았다. 원기를 보충한 몸을 활용하여, 갈아만든 바늘을 삐뚤빼뚤 움직여서. 앞다투어 내가 지은 옷을 입었던 때, 간신히 무리에의 소속감을 느꼈던 것 같다. 내가 불량품이란 것도, 고아란 것도 잠시나마 잊을 수가 있었다.
224 이름없음 2025/02/04 23:17:02 ID : cpXs4FgY03D 0
초식 로봇 무리를 좋아하였다. 그래서 그들이 바뀌는 것은 원치 않았다. 내 인격이 합쳐진다면 KEY가 좋았다. KEY는 오래 보지 않아 정이 덜 갔고, 솔직한 마음으론 이 사태의 책임자이기도 하고. 미지의 알고리즘을 지닌 신기한 개체라는 점도 관심을 끈 요인 중 하나. 떨리는 입을 열어 의사를 전했다. 우리는 시한부가 되거나.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채 파괴되거나. 자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남긴 채 떠나게 되거나.
225 이름없음 2025/02/04 23:18:06 ID : cpXs4FgY03D 0
죽음은 무서워. 의미 없는 끝일 뿐이야. 시간이 멈추면 좋을 텐데. 그러나 우리는 죽지 않는다고 했지. 합쳐져 이어질 것이라고 했지. 888의 되뇌는 말이 귀에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나는 생각했다. 1. 로봇이라서 다행이네. 부품을 합쳐 계속 살 수 있다니. 2. 그런데 나, 로봇 맞겠지? 3. 자유
226 이름없음 2025/02/05 08:28:24 ID : DyY3u2mts5S 0
1+2
227 이름없음 2025/02/05 17:52:04 ID : cpXs4FgY03D 0
기절한 양의 가슴팍에 돌도끼를 찔렀다. 그렇게 양의 숨을 끊었다. 털가죽을 입은 짐승들은 그런 방식으로 죽었다. 짐승이 아니라 로봇이어서 다행이다. 계속 여기서 살 수 있으니. 어라, 그런데 나 로봇 맞나? 엄마 아빠가 로봇이고 나는 엄마 아빠를 닮았지. 그러니 로봇일 거야. 초식 로봇들과는 다르지만, 우리 엄마 아빠도 KEY도 풀을 뜯어먹진 않았어. 서로 다르고 소중한 로봇들일 뿐이야. 만일 로봇이 아니라면 뭐지? 이대로 끝나게 되나? 그건 싫은데. 양가감정이 일어 갈팡질팡한다. 안심해야 하나, 무서워해야 하나, 회로가 고장나 정하지 못하게 됐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시간이 길게 느껴져서 상당히 아늑하니 언제까지고 고민해도 될 것만 같았다.
228 이름없음 2025/02/05 17:53:01 ID : cpXs4FgY03D 0
아빠가 바다의 영상을 보여주었었다. 물은 파란 암벽처럼 오다가 새하얀 양떼처럼 오다가 고급진 여름 이불처럼 왔다. 덮고 자면 기분 좋겠단 생각을 했다. 어떤 기분이려나? 서늘함과 안락함? 양털의 포근함? 아마도 지금 나의 기분이겠다. 공포도 불안도 파랗게 스며들어갔다.
229 이름없음 2025/02/05 17:53:14 ID : cpXs4FgY03D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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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 이름없음 2025/02/05 17:53:27 ID : cpXs4FgY03D 0
옆을 지키고 있었다. e7e가 사라진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동력원을 잃은 손을 토닥여주고, 충분히 오래 잡아주었다. 맞은편에 앉은 KEY가 황망해하고 있었다. e7e는 외롭다며 같이 있어달라고 했지. KEY도 왠지 그렇게 말할 것 같네. 그런 예감이 들어! "저기, 어쩌죠." "외로워? 위로해줄까?" "제가 죽인 것 같아요." 아차. 예상이 틀렸다!
231 이름없음 2025/02/05 17:53:49 ID : cpXs4FgY03D 0
"제가 프로토콜을 작동해서." "제 알고리즘이 이래서." "제가 이렇게 만들어져서." "원인과 결과를 추적하면, 결국엔 저잖아요?" "제가 저질러버렸는데, 어떡해야 하죠...?" 이건 뭐지? 모르겠는 알고리즘이야! 역시 KEY는 신비한 로봇이구나! 이상한 말을 많이 해!
232 이름없음 2025/02/05 17:54:01 ID : cpXs4FgY03D 0
하지만 힘들어한단 건 알겠어. 초식 로봇 64마리 무리의 대장으로서, 위로엔 일가견이 있지! 아예 다른 일로 눈을 돌리게 하거나, 전원을 꺼버리거나, 서투른 말을 들어줘야 해. 마침 KEY를 절전해야 하는 참이었어. e7e와 KEY를 해부해 둘의 부품을 합쳐야 하니까! 1. KEY, 고민은 됐고 우선 절전하자! e7e와 합쳐야지! 2. KEY의 상태가 안 좋네. e7e부터 먼저 해부할까? 3. 잠자코 들어줄까. 또 저번처럼 폭주할까 무섭지만. 4. 자유!
233 이름없음 2025/02/06 10:16:57 ID : 3RA47AmK3Xs 0
3번
234 이름없음 2025/02/09 16:42:13 ID : cpXs4FgY03D 0
"제 잘못이에요. 어쩔 수 없었다고요. 제 알고리즘인걸요." "노력하다 안 되면 터뜨리기로 결정되었고, 그래서 엄마 아빠가 핵미사일을 준비하셨어요." "친구가 죽을 줄 알았다고요. 그럴 의도로 쏜 거예요. 알아놓고도 이렇게 주절대니, 얼마나 멍청한가요?" 잠자코 KEY의 말을 들어주었어! 뭔 소리인지 모르겠네. 하지만 가만히 있는 걸로도 위로가 되려나? "파국이에요. 대체 어떻게 속죄를 해야 하죠?" "아, 그거 질문이야?" "넷?!" 급히 끼어들었다. 드디어 질문다운 질문이 나왔어! 내가 답해도 되겠다!
235 이름없음 2025/02/09 16:43:40 ID : cpXs4FgY03D 0
"흠흠! 우리 초식 로봇들은 부품을 합쳐 부활합니다! 게다가 e7e는 바로 너, KEY를 골랐어! 부러워라!" "부활...." "네, 인격이 합쳐져 되살아납니다! 대단해 대견해! KEY를 생각해 내린 결정이겠지." "저를 생각해요?" "응! KEY를 걱정했을 거야. 자신이 죽고 이렇게 이상해질지도 모른다고. 그러니 직접 챙겨주려고 했겠지." 진실은? 난 몰라! 하지만 이게 가장 그럴듯해! 그 그럴듯한 말을 능수능란하게 해보았어.
236 이름없음 2025/02/09 16:43:59 ID : cpXs4FgY03D 0
"그런가요. 맞아. 아직 속죄할 수 있어...." "그 자세야! KEY가 절전하면 바로 합체 절차를 진행할게." 회로가 심약해진 지금, KEY를 밀어붙일 찬스야. 1. KEY를 절전시키고 바로 해부 절차에 들어가자! 2. 아직 할 이야기가 있어(자유 앵커) 3. 자유!
237 이름없음 2025/02/10 12:33:50 ID : wIHDs66mKY2 0
1
238 이름없음 2025/02/10 20:40:37 ID : cpXs4FgY03D 0
두둥 두두둥 두둥 두두둥 그리하여 내 앞에는 두 명의 로봇이 눕게 되었다. 둘? 너무 많잖아? 괜찮아, 이제 하나가 될 거야! 자체적인 생존이 불가능해진 e7e를 해부해, 부품을 꺼내다가, KEY에게 합체시킬 것이다. 나는 이 수술을 수 차례 집도한 전문가. 이 수술, 가망 있다! KEY도 결국엔 로봇이니 내가 해부해본 동료들과 비슷한 구조일 것이다. e7e도 불량품이지만, 봐봐, 우리와 같은 겉모습이야. 머리와 가슴과 배, 저 안에 핵심 부품이 들어있겠지. 해부 교실 시작! 칼과 나이프를 들었다. 어디부터 분해할까? 1. 머리 2. 가슴 3. 배 4. 자유!
239 이름없음 2025/02/11 12:03:09 ID : pgmJQk3BhAi 0
으악 해부라니!3번
240 이름없음 2025/02/11 20:12:56 ID : cpXs4FgY03D 0
흐음. 그렇구나. 오케이. 드라이버는 내려놨어. 이거 어디서 봤는데? 조금 시도해본다. 그리고 결론낸다. 힘들겠다! 전자 회로의 유사품은 보이지 않아. 손끝에 미미한 자기장을 형성해 주욱 흩어보지만, 자성은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241 이름없음 2025/02/11 20:14:22 ID : cpXs4FgY03D 0
혹시 여기? 아차차 으악 아닌가 봐! 서둘러 수습을 한다. 뒤늦게 불안이 엄습했다. 혹시나 말이야, 이식이 실패할 수도 있으려나? 뭐야, 불길하게. 고민은 이르다! 아직 해부할 곳이 남아있어! 나무도 도끼로 열 번 찍으면 넘어가는 법이야. 부품을 찾자! 1. 머리 2. 가슴 3. 자유!
242 이름없음 2025/02/11 21:11:09 ID : E9y7vxwoKZf 0
잘 모르겠으니 일단 손 정도만 가볍게 분해해보자 혹시 예민한 부품을 건드릴수도 있잖아! 말단부부터 차례대로 하는거야
243 이름없음 2025/02/11 21:25:50 ID : cpXs4FgY03D 0
어라? 아하. 나는 내가 긴장하고 있단 걸 깨달아. 실수를 할까, 사고를 칠까, 경고를 울리며 걱정하고 있나 봐. 이렇게 벌벌 떨다간 예민한 부품을 건드리게 될지도 몰라. 그러니 말단부부터 차근차근 해보자! 부품, 나오겠지? 차근차근 분해를 해봐. 손과 팔을 잇는 접합부가 보이지 않지만, 조심스레 나누어봐.
244 이름없음 2025/02/11 21:28:03 ID : cpXs4FgY03D 0
회색이 아니야. 빨갛네. 아, 어디서 본 광경이다 했어. 이제 알겠다. 우리 초식 로봇 무리가 떼사냥했던 양과 염소와 멧돼지. e7e가 그걸 갈라 가죽을 구하던 때, 고기를 자르던 때, 이런 풍경이었다. e7e의 주된 성분은 유기물질이구나. e7e에게 전자 회로가 있다면, 과연 어디에 숨겨져 있으려나? 1. 머리 2. 가슴 3. 자유!
245 이름없음 2025/02/12 10:05:57 ID : krfgi1g6oY1 0
아니 이거... 음... 머리
246 이름없음 2025/02/12 21:56:56 ID : cpXs4FgY03D 0
정답이다. 내 손은 머리를 향했다. 개체로서의 동질성을 유지하며 기억을 간직하는 부위. 다만 섬세해서, 함부로 하면 위험하다. 앞서 다른 곳을 건드리며 e7e의 구조를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여기 없으면 없을 텐데. 에이, 없을 리가. 분명 있을 거야. 그런데 없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e7e는 되살아나지 못하고, 나는 잘못된 방법으로 이별한 게 된다. KEY는 사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다가, 이걸 빌미 삼아 내게 떠넘길지도. 우리 둘은 방공호. 바깥은 방사능 낙진. 내 섬세한 회로는 방사능에 교란돼. 음, 이거 좋지 않은데.
247 이름없음 2025/02/12 22:00:30 ID : cpXs4FgY03D 0
생각하지 마. 저기 그만. 생각하지 마, 생각하니까 힘든 거야. 아무 생각 없이 피부를 갈라. 하얀 외골격. 아무 생각 없이 그것을 잘라. 조개껍질처럼 약해. 힘조절 잘하자. 여차하면 확 들어간다?
248 이름없음 2025/02/12 22:04:17 ID : cpXs4FgY03D 0
외골격의 안에는 여전히 유기물질. 단단하고 주름진 것이 있어, 회로는 아니야. 짐승의 피 냄새가 난다. 일났다. 하지만 몰라. 아직 겉밖에 안 봤는걸. 손을 뻗는다. 전자석의 전원을 켠다.
249 이름없음 2025/02/12 22:05:26 ID : cpXs4FgY03D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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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 이름없음 2025/02/12 22:07:08 ID : cpXs4FgY03D 0
깨어났을 무렵, 내겐 기억이 없었다. 하늘색 부동액의 수위가 낮아졌다. 피부가 촉촉했고, 들숨에선 화학약품 냄새가 났다. 내 앞에는 두 명의 개체. 그 둘이 로봇이며 내 엄마 아빠임을 알게 된 것은 이후의 일이었다. "호명. e7e." "...실례합니다?" "동면장치의 명함에는 그렇게 적혀있군요." 그들이 가리킨 종이는 물에 젖어 훼손되어있었다. 알파벳 e 오른쪽으로 각진 > 기호 거듭 알파벳 e 그것이 나의 이름이 되었다. 1. e7e 2. 자유
251 이름없음 2025/02/13 12:44:09 ID : ts62HA3U7zh 0
e7e
252 이름없음 2025/02/14 22:01:21 ID : cpXs4FgY03D 0
나의 새로운 이름을 중얼거렸다. 자연스레 떠올랐다. 나는 누구이고, 나는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그렇게 낯선 삶이 시작되었지. 어째서 이걸 회상하고 있는 걸까? 이유를 알 수 없다. 장면은 전환되었다. 나는 꿈 속의 여행객, 주위는 어두컴컴하다. 상징과 알레고리의 장면이 찾아왔다. 엄마가 보인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아빠가 보인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둘은 팔 하나의 간격만큼 떨어져 나를 바라다 본다. 둘은 왠지 책 한 권씩을 손에 들고 있다.
253 이름없음 2025/02/14 22:04:11 ID : cpXs4FgY03D 0
보고 싶었다고 해야 할까? 입이 열리지 않아서, 나는 무력하게 있었다. "평가의 시간입니다. 선택의 시간입니다." 아빠가 입을 열었다. "삶을 돌이켜보아 검토해봅시다." 내 선택을 원한다는 것처럼, 엄마와 아빠는 나를 바라다보았다. 익숙하고 안심이 되는 얼굴들, 그러나 이질적인 말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즐겁고 행복했나요?" "이런 결말은 좋았을까요?" "솔직하다면, 그걸로 족합니다." 1. 좋지 않다. 2. 괜찮다. 결말이 어떻든 상관없다. 3. 답을 미룬다. 4. 자유
254 이름없음 2025/02/15 21:29:37 ID : 1fPa60oJQmm 0
아..ㅜㅜ 3
255 이름없음 2025/02/15 22:10:14 ID : cpXs4FgY03D 0
∞∞∞ BGM ∞∞∞ https://www.youtube.com/watch?v=xYzlN_fTflI Her - Song on the beach
256 이름없음 2025/02/15 22:10:45 ID : cpXs4FgY03D 0
답하고 싶지 않았다. 현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망상에 빠지고 싶었다. 두 로봇을 처음 만났던 동면 장치, 푸른 액체, 이윽고 바다, 여름 이불 같은 파도 그렇게 연상 놀이만을 이어가고 싶었다. 이것조차 허상일 테니까. 현실도피를 멈추는 순간 엄마 아빠도 사라질까봐. 정겹고 다정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빠의 얼굴에 보조개가 패였다. "괜찮습니다. 시간이 많으면 좋지요. 저희는 너무도 급작스럽게 헤어졌습니다." "인간의 역사와 문명을 알려줄 수 있다고 말만 하고, 떠나는 게 어디 있습니까?" 아빠는 자조하여 책임을 돌렸다. 내가 덜 힘들도록, 내가 기운을 차리도록.
257 이름없음 2025/02/15 22:14:47 ID : cpXs4FgY03D 0
아빠는 책을 들고 있다. 엄마도 책을 들고 있다. 표지만으로 책을 판단한다면, 아빠의 책은 빨갛고 엄마의 책은 파랗다. 책을 보는 내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엄마가 입을 열었다. "먼저 인간의 역사에 대해 알려주고 싶네요. 하지만 어쩌나요. 지금은 안 되겠어요." 어째서? "인간의 멸종에 대해 두 가지 다른 판본이 존재하거든요. 내용은 같아요. 결말만 조금 다르지." 그게 저 두 책일까? 빨갛고 파란. "하나를 골라서 읽어줄게요. 하지만 어쩌나, 저희는 고를 수 없답니다." 선택할 수 없다고? 결말만 다를 뿐인데. "우리는 로봇이니까요. 인간의 결말은 인간이 정해야지요." 하지만 인간은 멸종했는걸.
258 이름없음 2025/02/15 22:18:15 ID : cpXs4FgY03D 0
아빠가 말했다. "제 책은 인간의 숭고를 믿습니다.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했으나, 죽음이 불가피한 순리임을 인식했어요." "그러므로 저자는 주장합니다. 인간은 고요하고 고귀한 숭고라고, 돌이켜 추모할 만한 존재였다고." "잔잔한 비극, 그것이 인간의 끝이었습니다." 엄마가 말했다. "이 책은 거짓투성이야. 역사라기보단 동화지. 인간은 헛된 희망을 좇던 제멋대로인 존재라나 봐. 인간은 억지를 부려 마지막 순간까지 비현실적인 행복을 꿈꿨고, 심지어 결말마저 멋대로 바꿔버렸어. 엉터리 해피엔딩, 그것이 이 책의 끝이야." 두 책은 인간을 달리 정의내렸다. 비극을 고요히 받아들이는 자로, 허망한 희망에 매달리는 자로. 고요한 숭고와 끈질긴 희망 중의 하나로.
259 이름없음 2025/02/15 22:18:57 ID : cpXs4FgY03D 0
"e7e, 결정하세요. 인간이 무엇인지." 아빠의 목소리가 엄해졌다. 어째서야? 싫어, 여기서 벗어나고 싶지 않아. 애초에 인간이 무엇인지 결정해서 어쩌란 거야? 그게 무슨 소용이야? "인간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존재인지 결정하세요." 그래, 인간은 둘 중 하나라고 나는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왜? 그래봤자....
260 이름없음 2025/02/15 22:19:03 ID : cpXs4FgY03D 0
"어째서냐고요?" "인간인 당신만이, 인간을 정의내릴 수 있습니다."
261 이름없음 2025/02/15 22:20:01 ID : cpXs4FgY03D 0
그렇게 나는 이해한다. e7e, 훼손된 종이. >는 젖어 망가지고 회전된 글자였다. >는 알파벳. 나는 1. 인간 2. e7e 3. 4. 자유
262 이름없음 2025/02/15 23:05:47 ID : hgpatwJVdWp 0
4. 이브. 마지막 그리고 어쩌면 최초의 인간
263 이름없음 2025/02/15 23:23:34 ID : cpXs4FgY03D 0
∞∞∞ BGM ∞∞∞ https://www.youtube.com/watch?v=O1aIoPnhoqg Her - Photograph
264 이름없음 2025/02/15 23:24:47 ID : cpXs4FgY03D 0
이해하여 받아들인다. 나는 이브, 지상의 유일한 인간이다. 엄마에게 의지했다. 아빠에게 의지했다. 888의, c8c의, ace의, 그리고 KEY의 도움을 받아 삶을 이어왔다. 나는 언제나 타자와의 관계 속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야. 인간은 무엇인가. 그리하여 나는 어떤 존재인가. 그 질문에 답할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나뿐이었다.
265 이름없음 2025/02/15 23:24:57 ID : cpXs4FgY03D 0
자신을 모른 채 방황하였다. 병들어 죽어버렸다. 시체는 찢겨 칼질당한다. 나의 상황을 이해하였다. 오래된 공포는 여전했다. 그러나 지금 나를 채운 것은, 새로운 종류의 결심 그리고 공포보다 오래된, 자랑스러운 사명.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 어디 있는가 인간뿐이다. 마지막 인간인 내가 결정해야 한다. 최초로 정의해야 한다.
266 이름없음 2025/02/15 23:26:04 ID : cpXs4FgY03D 0
"이브, 여기 빨간 책이 있습니다. 무겁고 진중하며, 기억하고 반추할 역사입니다." 아빠가 말했다. "인간은 어리석었으며 방황하였습니다. 지구의 주인은 벌을 받아 몰락합니다. 그래도 주인됨으로써, 그들은 마지막까지 훌륭했습니다." "엄마랍니다. 여긴 파란 책이에요. 결말을 고쳐쓴 이야기로, 역사라고도 할 수 없어요." 엄마가 말했다. "말도 안 되는 기적과 수학이라고도 못할 확률에 기대어, 억지로 결말을 행복하게 고쳐썼어요. 어린아이에게 읽힐 동화로군요."
267 이름없음 2025/02/15 23:27:00 ID : cpXs4FgY03D 0
인간의 역사였다. 인간이 결정해 만든 역사이다. 인간인 나는 알 수 있다. 인간인 우리는 알지어다. 무엇이 더 인간에 가까운지, 종말을 맞이하는 인간의 선택이었을지. 인간은 담담히 비극을 받아들였는가, 한줄기 희망에 매달렸는가? 이윽고 그것을 인간성이라고 부르자. "고릅시다, 이브." "여기로 오세요." 엄마 아빠가 말했다. 언제나 나를 아껴준 두 로봇. 아빠는 말했다. 종말 이후 세 종류의 인공지능이 남았다고. 동면관에서 나온 '로봇'을 교육하기로 한 AI가 있었다고. 그것이 엄마 아빠의 결정이었다. 내가 결정해야 하듯이, 그들은 과거에 결정하였고, 나는 그것에 감사하였다. 고마워요. 그러니 결정하자. 인간을 정의내리자. 두 로봇이 동시에 말했다.
268 이름없음 2025/02/15 23:30:07 ID : cpXs4FgY03D 0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어라 어쩌지??!! 1. 아빠의 붉은 책 2. 엄마의 파란 책 3. 타임! 4. 자유
269 이름없음 2025/02/16 08:06:58 ID : 3RA47AmK3Xs 0
매트릭스의 빨간약과 파란약이 생각나네 괴로운 진실과 행복한 거짓 같은 건가
270 이름없음 2025/02/17 12:54:15 ID : bCi4L88qksi 0
비극과 희망 중에서 고르는걸까?
271 이름없음 2025/02/17 19:02:25 ID : 6i8rzhwJRzP 0
선택하기 어려운데... <타임!>은 선택을 미루는 걸까? 아니면 결정할 시간을 더 주는 걸까 어렵다 다른 사람들 의견이 더 필요해 조금만 시간을 더 주세요
272 이름없음 2025/02/17 21:01:45 ID : cpXs4FgY03D 0
곤란하다. 머리가 얼어붙었다. 치사하다. 안 그래도 인생관을 따지는 어려운 문제다. 거기에 더해 심술궂은 장난까지 덧붙이다니. 못된 방해공작이었다! 내가 씩씩대니 엄마 아빠의 얼굴엔 웃음이 피었다. 아빠가 헛기침을 하더니 책에 대해 소개해주기 시작했다.
273 이름없음 2025/02/17 21:03:39 ID : cpXs4FgY03D 0
"인간은 끝났습니다. 각자의 선택에 의해, 그리고 비틀린 세상 덕택에. 모두의 꿈이 좌절되었으니 이를 비극이라고 불러도 좋을 터입니다." "이 책에서 인간은 그 비극을 책임 지고 수용합니다. 여러 인간이 모여 선택하고 이어가며 만든 역사이니까요. 세계의 적대적인 우연과 법칙이 이런 불우한 결말에 기여했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그런 세상을 이해하고 사랑하기로 마음 먹었으니까요." "그들은 일상과 함께 종말을 맞이했습니다. 조금은 무기력하게, 괴로울지라도, 그러나 소중한 사람들과 모여앉은 소박한 풍경 속에서." "만일 인간이 그런 숭고한 존재라면, 이 빨간 책이 진실될 것입니다."
274 이름없음 2025/02/17 21:04:24 ID : cpXs4FgY03D 0
아빠가 말했다. 빨간 책은 고요한 비극이다. 엄마가 말을 이어받았다. 파란 책을 톡톡 손에 치면서.
275 이름없음 2025/02/17 21:09:45 ID : cpXs4FgY03D 0
"그러나 다른 판본이 있어. 이 파란 책이야. 조용한 비극? 그거 대단한 거야? 새들조차 지진을 피해 도망가는걸? 짐승과 다르니 숭고했다? 그렇다면 죽은 바위야말로 숭고하겠네." "이 책은 희망을 갈구하며 날뛰는 인간들의 이야기야.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여 수많은 비책을 세웠어. 하나 같이 희박한 가능성들이었지. 그러나 그것이 성공했다고 믿고, 이 책은 억지로라도 만든 그 해피엔딩을 서술해. 그러니 이건 역사가 아니야. 몰릴 대로 몰린 사람들이 지은 희망찬 동화일 뿐." "숭고하지 못하고 눈물겹지도 않아. 그러나 얌전한 비극보다는, 기적적인 해피엔딩일까?" "만일 인간이 이렇게 생각하는 존재라면, 이 파란 책이야말로 진실이겠지."
276 이름없음 2025/02/17 21:12:36 ID : cpXs4FgY03D 0
엄마가 말했다. 파란 책은 희박한 희망이다. 두 책은 모두 존재하고 있었다. 각자가 엄마와 아빠의 손에 들려. 둘 중 하나를 고를 기준은 단 하나,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질문이다. 오직 인간만이 답할 질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답하여 고르자. 인간이란 이러하니, 1. 비극을 책임 지고 맞이하는 존재이다 2. 기적적인 희망을 바라는 존재이다 3. 자유!
277 이름없음 2025/02/19 00:13:55 ID : zfhBtjs8rBy 0
하나만 선택하기엔 인간은 복합적인 존재인걸
278 이름없음 2025/02/19 10:15:29 ID : pgmJQk3BhAi 0
발판
279 이름없음 2025/02/19 13:22:58 ID : SILhze446mE 0
비극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존재
280 이름없음 2025/02/19 21:15:48 ID : cpXs4FgY03D 0
주말에 재개하겠습니다. (이 레스는 복귀 시 삭제합니다.) 배드엔딩? 해피엔딩? 주제의식은 어떻게? 많은 작가들의 고민입니다. 이 이야기의 끝이 도저히 보이지 않아 고민하며 연재를 미루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젠 갈피를 잡았습니다. 마저 적어나가겠습니다.
281 이름없음 2025/02/22 20:55:04 ID : cpXs4FgY03D 1
죄송합니다. 연중입니다. 아무래도 한동안 연재는 어렵겠습니다. 대학원 입시가 더 중요해요.... 반 년은 넘게 걸릴 테니, 기다리지는 말아주세요. 상황을 봐 영 안되겠다 싶으면 완결까지의 플롯이라도 추후 공개하겠습니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282 이름없음 2025/02/24 19:14:38 ID : SIE7bA5hzcF 0
붙잡고 싶지만 참을게... 레주야 사랑했다 기다릴게 난 벌써 명예의 전당 리뷰까지 생각하고 있었어 현생을 응원하고 꼭 다시 보자 천천히 와
283 응답 2025/08/11 20:57:20 ID : cpXs4FgY03D 1
. . . . .
284 응답 2025/08/11 20:57:55 ID : cpXs4FgY03D 1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 복합적이어서, 답할 자들이 많아서, 서투른 답변이 좋지 않아서, 다들 미루었던 대답. 그래서 질문은 홀로 외로이 지상을 방랑하였다. 그러나 답할 이 하나뿐이고 그 이는 죽어 사라지기 직전이니 답은 비로소 정해져야만 하였다. 그런고로 마지막 인간은, 그리고 누군가에게 부탁받았던 최초의 인간은, 파란 책을 골랐다. 인간은 기적적인 희망을 바라는 존재라고.
285 응답 2025/08/11 20:58:40 ID : cpXs4FgY03D 0
눈앞에 인간이 온다. 인간은 종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세계를 용서해주지 않았다. 소중한 이들을 버리고, 희박한 희망으로 투신하였다. 빨갛고 따스한 피의 세계를 버리고, 인간은 이 파란 세계로 육박하였다. ... 나는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 걸까?
286 응답 2025/08/11 20:59:08 ID : cpXs4FgY03D 0
"그런가요. 기억하고 있었군요?" 아빠가 말해왔다. 아빠와 엄마, 고마운 분들, 시야가 흐릿해졌다. "다행이에요. 저희도 약속을 지켜왔거든요." 그게 무슨 말일까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대답은 내게 있었다. 수백 년 전의 퇴색되고 빛바랬던, 가장 아래에 있던 기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했으니까.
287 응답 2025/08/11 20:59:55 ID : cpXs4FgY03D 0
마지막 인간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저 앞에서, 내가 가닿을 수 없을 곳에서 쓸쓸한 미소를 짓는다. 평온한 종말 대신에, 사지로 걸어들어가 울고 갈구하며 비통하기를 택했다. 그리고 그 끝은, 그 끝은 어리석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인간이라고 부르기로 약속하였다. 책을 집어들었다. 파란 책은 시원해서, 마음이 가라앉아갔다. 그것은 푸른빛 돌던 재투성이 세상.
288 과거 2025/08/11 21:01:36 ID : cpXs4FgY03D 0
. . . 로봇이 버려져 있었다. 폐기장에 던져지며, 충격으로 두 다리는 박살나버렸다. 이동 속도는 내림하여 제로. 새벽부터 내린 눈에 몸이 속절없이 덮여, 로봇 역시 하이얀 세상의 일부가 되었다. 생명이 없는 세상. 빙하기. 얼어붙어 무엇도 피우지 못하는 평원. 변화하는 것이 없는 곳에서, 로봇은 더 오래 눈을 감고 더 이따끔 눈을 떴다. 그러다     그 시야가 비틀거리며 눈을 헤치고 걷던, 인간의 눈동자와 마주쳤으니
289 과거 2025/08/11 21:08:19 ID : cpXs4FgY03D 0
인간은.... 1. 쾌활한 여자 2. 엄격해보이는 남자 3. 아직 어린 아이 -지금까지의 복선을 모두 회수하고 해피엔딩을 만들기 위한 과거 회상 전개입니다 -이번 앵커는, 이 과거 회상 파트에서 핵심 인물로 등장할 누군가를 고르는 거랍니다. 뭐, 누구여도 되니까 마음대로 골라주세요! -플롯은 휴재 당시부터 다 정해졌던지라, 이젠 그냥 여유롭게 적어나가면 됩니다. 이제 적기만 하면 되니 마지막까지 써나갈게요. -잘 부탁드립니다.
290 이름없음 2025/08/11 22:28:29 ID : Hwk5Pjs9s07 0
2
291 이름없음 2025/08/11 23:16:06 ID : u8i2nDtfTRz 0
2
292 과거 2025/08/12 20:47:14 ID : cpXs4FgY03D 0
로봇의 시야에는 막대기 같은 남자가 들어왔다. 아, 막대기가 맞았다. 남자의 두 팔은 이미 잘려 없어진 채였으니. 인간이 멸종해가던 시절, 그 정도는 대단한 개성도 아니었다. 이름조차도 특색 없었으니, 그 남자의 인식번호는 3212호. 시대는 어두워, 인간은 스스로에게 이름을 붙이는 법조차도 잊어버렸다.
293 과거 2025/08/12 20:49:43 ID : cpXs4FgY03D 0
눈이 내리고, 눈발은 매서워지고, 철덩어리는 차가워지고, 남자의 코트는 새하얘지고. 두 팔 없는 인간과 두 다리 없는 로봇이 마주쳤다. 남자가 로봇을 내려다보았다. 남자는 주저앉더니 등을 내주었다. 업히라는 듯한 제스처... 어이없는 제스처. 동행을 권하는 듯한 태도에 할 말이 생겨, 로봇은 발성장치에 전원을 공급했다. "...날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 다리 잘린 단면이 보여." "...뭐하는 거야?" "갈 곳이 있고, 팔이 필요해." 로봇이 남자를 노려보았다. 로봇은 도구로 쓰이는 데에는 익숙했다. 더군다나... 로봇은 거부하고 싶었음에도, 그렇게 설계되어있었다. 인간의 호의를 사고, 인간을 이용하다가, 인간을 ...하라고. 로봇의 자매기들이 그러하였듯이. 결국 로봇이 팔을 들어, 남자의 어깨와 목덜미에 팔을 둘렀다. 남자는 쉽게 일어섰다.
294 과거 2025/08/12 20:50:50 ID : cpXs4FgY03D 0
"...당신, 뭐야." 로봇이 쏘아붙였다. 업힌 채라, 목소리는 남자의 귀 바로 옆에서. 그래서 남자는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었다. "내가 뭔지 몰라? 난 살인 병기 중 하나야." "어쨌든 팔만 있으면 돼." "단단히 미쳐버린 새끼...." 로봇은 날카롭게 말하며, 다음번의 질문을 가동했다. 팔에 힘을 주어 좀 더 제대로 업혔다. 땅바닥에 떨어지기 싫어서였다. 1. 어디 가는 거야? 2. 인간들은 요즘 어때? 유쾌해? 3. ...내가 뭔지, 제대로 알긴 해? 4. 자유
295 이름없음 2025/08/12 20:54:47 ID : oHyFjzaq1xw 0
2
296 과거 2025/08/12 21:01:35 ID : cpXs4FgY03D 0
그래, 그 질문은 다소 무례하였다. 유쾌할 리가. 유쾌할 리가...! 인간은 멸망을 직감하고 있었다. 전쟁이 심화되며 군대는 로봇을 채택했다. 그래, 이때까지는 통제되었다. 인간이 점차 결정과정에서 배제되고, 적국을 몰살하란 군중의 투표가 명령을 내렸다. 그래, 이때까지는 통제되었다. 결국엔 자국의 안위보다 적국의 몰살을 우선시하고, 기계들이 살인에 모조리 익숙해졌을 때... 그제야 인류는 통제할 수 없음을 인정했다. 과연, 언제부터 통제를 잃었던 걸까?
297 과거 2025/08/12 21:02:17 ID : cpXs4FgY03D 0
"...글쎄다. 이제는 평화로워." 남자는 답했다. "소중한 사람들끼리 조용히 살면서 멸망을 기다려. 조용히 있으니 전투 로봇들이 찾아오지도 않고, 아는 사람들끼리만 있으니 너 같은, 공작을 위한 인간형 로봇이 끼어들지도 못하고...." 남자는 평화롭다고 말했다. 소중한 이들끼리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남자의 그 말엔 반증이 하나 있었다. "...후후. 당신도 말이야?" "...." "이렇게 눈밭에서 팔도 없이 로봇 하나 업고가는, 당신은 평화로운 것 맞아? 소중한 사람들은 어디 가고?" 로봇의 눈매가 조롱을 위해 얇아졌다.
298 과거 2025/08/12 21:06:19 ID : cpXs4FgY03D 0
남자가 말을 잃어 로봇은 즐거워졌다. 즐거워진 덕택에, 남자를 좀 더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살짝 더 팔을 좁혀 남자에게 제대로 밀착했다. 이것은 친밀이 아니라, 첩보 전용 로봇에게 주입된 프로그래밍의 일환이었다. 로봇은, 인간과 친해진 후 인간을 내부에서 분열시키기 위한 종류의 모델이었으니까. 폐기되었을지라도 그 설계는 여전하였고.... "...더 질문해도 돼?" 설계되었을지라도 궁금한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1. 그래서 어디 가는 거야? 2. 내가 왜 필요해? 무슨 짓 하려고? 3. 팔은 어쩌다 사라졌어? 우리 언니들이 잘라버렸나? 4. 자유
299 이름없음 2025/08/13 13:51:56 ID : 61zVcGnwlhg 0
1
300 이름없음 2025/08/13 14:11:58 ID : Qsjjs5O7bwm 0
3212라면...c8c잖아... c8c가 예전엔 인간이었는데 888처럼 지능만 이식된건가? 아니면 등에 업힌 첩보로봇이 c8c의 이름을 대신 짊어지고 살아가는건가?
301 이름없음 2025/08/13 14:21:43 ID : 79fTO3zPdvb 0
이쯤에서 드는 생각인데 eve는 인간이었다는 건 짐작했었고 그러면 대표도 인간이였던걸까. 어딘가 레스에 흐릿한 기억. 인간의 기억. 이식된 존재라는 암시가 있었는데? 이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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