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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린이집 때 쯤이었어. 난 예나 지금이나 사교성이 많이 없어서 친구가 별로 없었음. 친구라 해봤자 걍 마주치면 인사하는, 친구긴 한데 좀 어색한 그냥 아는 애들 정도였음. 그러던 중 우리 어린이집에 진짜 큰 미끄럼틀이 있었어. 근데 거기는 올라가는 계단 없이 어린이집에 붙어있는 장식용 미끄럼틀이었는데 그 앞에 누가 앉아있었어
그냥 여자애였는데 약간 붉으스름한 투피스 입고 있었어. 위에는 셔츠, 밑에는 프릴? 그 발레 치마같은 나풀나풀한거. 근데 그때는 대부분 집에 갔을 시간이었거든. 난 부모님이 맞벌이라 늦게까지 남아있는 애였음. 그래서 그냥 집에 안가냐고 말을 걸었는데 그 순간 애 목이 툭 떨어짐. 정확히는 목뼈가 빠진마냥 목이 툭 떨어져서 달랑거렸음...그리고 무표정하게 날 계속 쳐다봤어. 근데 무표정이었는데도 무섭기는 했는데 날 해코지 할거란 생각은 안들더라...그래서 일단 계속 말을 걸었지
그때 아마 너 사람 아니지? 이런 뉘앙스로 물었을거임. 걔가 그렇다고 하더라. 근데 또 걔 입으로 사람 아니란 얘기를 들으니 덜컥 겁이 난거임...그래서 원장쌤한테 달려가서 미끄럼틀에 이상한 애 있다고 했음. 쌤과 함께 갔을때도 목이 덜렁이는 채로 가만히 앉아있었는데 쌤은 애가 안보인다는 듯이 말했음. 오잉...? 아닌데 저기 앉아있는데! 쌤은 ㄴㅐ가 그냥 상상력 풍부한 애기로 보였겠지...
그 이후로 자주 내 주변에 보였음. 가끔은 목이 그대로다가도 가끔은 목이 덜렁이는 채로 나타났어. 근닥 하는 짓은 평범하드라. 혼자 그림책 읽거나 모래밭에서 두껍아 두껍아, 장난감 자동차도 갖고 놀고...그냥 평범한 애 같았음. 하루는 간식시간 때 바나나가 작게 썰어져나온 적 있었는데 애들한테 가서 나도 그거 하나만 주면 안돼? 하고 묻더라. 당연히 애들은 걔가 안보이니 다 무시하고 먹거나 친구들이랑 얘기했음. 그러더니 나한테 와서 바나나 한개만...하더라. 그래서 하나 줬지. 그거 받고는 고맙다고 하고 혼자 쫑쫑 가버렸음. 근데 애들은 나한테 왜 바나나 버리냐고 물어보드라...
어린이집때는 그냥 주변을 맴돌기만 했어. 근데 유치원에 가도 걔는 계속 보이드라. 유치원은 집이랑 좀 떨어져서 통학버스가 왔거든. 유치원에서도 마땅히 친구를 못 사겨서 버스도 늘 혼자탔어. 근데 가끔 그 여자애가 내 자리에 타고 있었음. 정확히는 걔가 먼저 타고 있었지. 은근히 자리가 정해져있잖아. 내가 늘 타는 자리 옆자리를 보면 걔가 앉아있었어.
딱히 앉아서 무슨 말을 하는건 아닌데 가끔 과속방지턱에서 덜컹 하면 목이 덜렁거리더라...유치원에서도 종이접기 할 때 아...빨간 색종이 필요한데...하면 자 여기 하고 갖다 주기도 하고 무섭긴 햇지만 나한테 나름 잘 대해줘서 나도 점점 얘한테 애정이 생겼어. 시간이 지나니까 가끔은 나한테 먼저 말도 걸더라. 걔가 처음으로 나한테 한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종이학 접을 줄 알아? 이거였어. 난 종이학 되게 어려워했거든. 그래도 걔한테 가르쳐주고 싶어서 선생님한테 종이학 엄청 열심히 배웠었음. 그래서 가르쳐줬더니 좋다고 웃드라. 걔 웃는거 그때 처음 봤는데 되게 이뻤음. 보조개 들어가는게 특히 이뻤어
걔가 점점 말을 하는 횟수가 늘어나니까 나도 걔랑 더 많이 얘기하게 됬어. 내가 인형놀이 하면 걔는 옆에서 커튼으로 드레스를 만들어주고, 책을 읽으면 엎드려서 가만히 내 얘기를 듣고, 간식 먹을때는 싫어하는 반찬은 걔 주고...걔는 뭐든 잘먹었거든. 근데 문제는 걔가 내 눈에만 보인다는거야. 애들ㅇㅣ 봤을 때 나는 혼자 얘기하고 좋아하는 이상한 애로 보일 수 밖에 없었음. 그래서 선생님이랑 따로 얘기한 적도 있었어. 물론 걔도 같이.
쌤ㅡ레주야. 왜 다른 친구들이랑 안놀고 혼자 놀아?
나ㅡ저 혼자 노는거 아니에요! 친구 있어요!
쌤ㅡ그래? 누구??
나ㅡ얘요.
그때 쌤 표정이 굉장히 싸했음...당연하겠지 옆에 가리키는데 그 방엔 나랑 쌤밖에 없었으니까. 근데 또 걔는 쌤 막 째려보드라. 결국 부모님이랑 정신병원에 상담도 받으러 갔었어.
그때 무슨 환각 같은걸 본다고 진단받았을거야. 근데 약을 먹어도 걔가 보이는건 그대로였음. 한번은 걔가 약을 뺏어간 적도 있었어. 넌 정상이니까 약 안먹어도 된다고. 걔는 나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었어. 날 이해해주는 유일한 친구. 그게 걔였으니까. 비록 거울엔 비치지 않고, 가끔 목이 떨어져 대롱대고, 나밖에 못 보는 친구였지만 난 그래도 걔가 정말 좋았어.
걔는 내가 넘어졌을때 흙을 털어주고 데일밴드도 붙여줬어. 사람들이 날 놀리려고 장난치는거라고 생각할 정도로 걔가 진짜 같았어. 병원에서 의사랑 상담했을 땐 의사는 그건 네 상상친구야. 라고 말했었는데 그럴 때마다 걔는 진짜 화난 것 같았어. 자기를 없는 취급하는걸 싫어했거든. 한번은 원장실에서 의사쌤 꽃볏을 깬 적도 있었어. 물론 걔가. 그런데 선생님은 나한테 화를 냈어
시간이 지나 초등학생이 됬고 초등학교엔 처음보는 새로운 애들이 많았어. 몆몇 친구들은 나한테 말도 걸어줬고 그렇게 진짜 친구도 사귈 수 있게 됬어. 자연스럽게 걔와는 멀어져버렸지. 하루는 집에 가는 길에 걔가 물어봤어. 친구를 사귀니까 좋냐고. 그래서 그냥 좋다고 했지. 걔는 처음보는 슬픈 표정으로 그럼 나는 필요 없겠네? 하고 물어봤어. 아냐!! 너는 계속 내 친구야!! 나는 바로 걔 손을 잡고 말했음.
그런데 그 대화 이후로 걔를 볼 수 없게 됬어. 그때가 아마 초 1,2때쯤일거야. 한번도 안보인 적이 없었는데. 난 그때 내 말때문에 상처받아서 가버렸다고 생각했어. 엄마아빠한테 이젠 걔가 안보인다고 했더니 다 기뻐하시더라. 병원도 안가고. 이제 내가 정상이라고 생각했나봐. 난 그날 이후 몇날며칠밤을 울었어. 진짜 진정한 친구였는데 이제는 볼 수 없게 되었으니까. 글을 쓰는 지금도 사실 좀 울것같아.
아직 걔랑 한 것들이 남아있는데. 같이 접은 종이학도, 같이 그린 그림도 몇 장 남아있어. 내가 걔한테 편지도 자주 써줬는데 그걸 받을 때마다 좋아하던 걔 표정이 아직도 생생해. 검정에 가까운 날개뼈까지 오는 긴 갈색머리, 웃을 때 폭 패이는 보조개, 붉으스름한 카라셔츠에 공주님같은 프릴 스커트, 생각해보니 늘 신발을 안 신고 있었어. 무릎 바로 밑까지 오는 흰 양말. 목소리도 되게 이뻤어. 또 가끔씩 큰 충격을 받거나하면 목이 툭 떨어지던 그 애가 지금도 너무 보고싶어
딱히 재밌는 이야기는 아니었지? 미안...그래도 한번 걔가 생각나서 써봤어. 오컬트판에 쓴 이유는 혹시 걘 유령이 아니었을까 해서야. 목이 툭툭 떨어지는 상상친구가 아니라 어딘가에서 떨어져서 목이 부러진 귀신이라면? 그런 생각도 들었거든. 지금은 이름은 기억이 잘 안나네. 그치만 내가 지어준건 기억나. 걔는 자기 이름을 별로 안좋아해서 내가 이름을 새로 지어줬었거든. 걔 본명이 뭔지는 나도 몰라.
암튼 여기까지 읽어줘서 다들 고마워. 혹시 궁금한거 있음 물어봐줘도 돼. 늦더라도 확인하고 대답해줄 수 있으면 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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