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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부터 말해야할지 모르겠다. 어디에 섣불리 털어놓을 수 있는 얘기가 아니어서 익명의 힘을 빌려 여기서만이라도 얘기해 본다...
우리 집은 평범한 4인 가구 중산층 가족이야. 중산층...이긴 한데 사실 꽤 잘 살았어. 어디 금수저, 은수저 애들처럼 매일 여행 다니고, 명품으로 몸을 치장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평균 이상은 됐어. 하고 싶은 건 하고, 먹고 싶은 건 먹고, 배우고 싶은 건 다 배우면서 그렇게 살았다. 고양이도 두 마리를 키우고 있어.
우리 아버지 직업도 안정적인 직업이고, 뭐 사업을 하시거나 하는 것도 아니어서 갑자기 폭삭 망하거나 할 일도 없거든.
재수 없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냥 그러고 살았어. 남들 부러워하는 거 하나 없이 풍족하게.
그런데 하루아침에 그게 전부 바뀌었어. 무슨 일인지 자세하게 말하면 특정지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말은 못하지만 어떠한 일을 계기로 우리 집이 거의 망할 뻔 했거든. 다행히 완전 파산한 수준은 아니긴 한데... 사실 내가 아직 미성년자라 자세히 말을 안 해주셔서 자세히는 모르긴 하지만 거의 파산 직전까지 갔다는 건 알 수 있어.
그래도 내가 뭐 엄청난 부잣집 자식이었던 것도 아니고, 조금 불편하다고 느끼긴 해도 그냥 이 정도면 불평 없이 살 수 있어. 애초에 난 물욕도 적은 편이고. 부모님이 힘들어 하시는 게 너무 안타까웠지만 그것만 빼면 지금 생활도 괜찮았단 말이야.
근데 문제는 아까 말했던 키우던 고양이 두 마리야. 동물이 원래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있지만,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아프기 시작했거든... 병원에선 아마 환경이 급격하게 바뀌면서 스트레스성으로 생긴 것 같다고 해. 동물 키우는 사람들은 아마 알겠지만 동물 병원비가 정말 비싸... 검사비나 수술비나 뭐뭐 등등... 아무튼 이것저것 포함하면 입이 떡 벌어지는 액수란 말이야... 그것도 차라리 이번 한 번으로 끝나는 거면 모르겠는데...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서 치료 받았는데 얼마 안 가서 또 재발하더라... 수의사 선생님 말로는 재발 가능성이 굉장히 높은 병이어서 아마 앞으로 또 재발할 가능성이 높대.
이 말 듣고 우리 부모님이 엄청 고민 많이 하시더라. 안 그래도 집안 사정이 급격히 바뀌면서 4명 먹고 살기도 바쁘게 됐는데 고양이가 거의 100% 확률로 재발하는 병에 걸린 거니까... 게다가 그 병이 재발할 때마다 돈은 또 엄청 들테니까... 집이 이렇게 되기 전이라면 문제가 안 됐을 텐데 지금 상황으론 부담이 좀 크셨나 봐. 이미 한 번 치료하느냐고 한 번에 몇백만원의 돈이 든 것도 있고.
지금 우리 아버지가 맨날 새벽에 들어오시고 어머니도 코로나 시국에 겨우겨우 일거리 구해서 일 나가시면서 살고 있는데, 그렇다 보니까 부모님 입장에선 아무리 봐도 지금 아픈 고양이를 더 챙겨줄 여력이 안 되시는 것 같아. 그나마 나랑 동생 용돈 모아둔 것도 처음 집 어려워 졌을 때 다 써서 지금 나한테 있는 돈은 2만원 남짓이고... 부모님이 고양이가 지금 너무 힘들어하는데 차라리 안락사 시키는 게 어떻냐고...
고양이도 부모님이 데려오신 데다가 두 분도 고양이 엄청 좋아하셔서 진짜 애지중지 하셨거든... 엄청 아끼셨는데 무슨 심정으로 그런 결정을 내리셨을까 싶어서 아무말도 못했어. 내가 뭐라고 말할 수 있겠어... 정말 말리고 싶은 마음이 너무 굴뚝 같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치료비를 대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름 알바자리 알아보고는 있지만 시국도 시국인데다가 솔직히 지금 당장 알바 시작할 수 있다고 해도 치료비 다 모을 때 쯤이면 시기는 이미 늦을테니까...
나랑 동생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냥 입 다물고 부모님 결정 존중한다고 했는데, 지금 내가 너무 한심하다. 그렇게 물고 빨고 예쁘다고 데리고 있으면서 내가 너 평생 책임질거라고 고양이한테 그렇게 말해줬는데, 정작 진짜 책임져야 될 순간이 오니까 넋 놓고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게 한심해서 미치겠다. 솔직히 지금 우리 가족 사정도 그렇고 고양이 아픈 것도 그렇고, 머리로는 지금으로썬 안락사가 최선의 방법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마음으로는 그게 받아들여지지가 않네. 치료해 줄 돈조차 없다는 게 괜히 억울하고 또 미안해서. 그냥 아예 처음부터 우리 집에 데려오지 않았다면 그 애는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까... 우리가 고양이를 키우게 된 것 부터가 문제였던 걸까... 처음 데려온 게 벌써 몇 년 전이고, 그때는 우리 집 사정도 좋았으니까 이제와서 이러니 저러니 후회해본들 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후회하게 된다. 우리 집이 고양이를 안 키웠으면 지금 걔는 안 아프고, 아프면 제대로 치료 받으면서 잘 지낼 수 있지 않았을까.
사실 이미 결정 된 사항이나 다름이 없다 보니까 고민하고 자시고 할 건 없어서 상담판이 아니라 여기로 왔어... 누가 우리 집 사정 알게 되는 것도 무서워서 익명의 힘을 빌려다가 주저리 주저리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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