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너무 집에만 있어서 몸도 굳는 것 같고, 운동도 하고 용돈도 벌자는 생각으로 전단지 부착 알바를 시작했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익숙하지 않기도 했고, 현관 비밀번호를 몰라서 사람이 나오거나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들어가야 했던 탓에 받았던 오늘 분의 전단지를 거의 다 붙였을 때는 이미 해가 져서 어두워져 있었다.
이름없음2021/05/26 03:30:10ID : thgpcNwK0rg
그래도 이제 한 라인만 붙이면 오늘 일은 끝이니까 얼른 끝내고 집에 가야지 하고 마지막 라인을 찾는데, 이상하게 아무리 아파트 단지를 뱅뱅 돌아봐도 그 라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다리도 아프고 어두워져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데 그냥 못 찾겠다고 말하고 집에 갈까 고민하던 차에 아파트 단지 구석에서 반짝하고 현관 램프가 점등되는 것이 보였다.
이름없음2021/05/26 03:31:35ID : thgpcNwK0rg
저 위치면 한 번도 들어가지 않았던 라인이다. 드디어 찾았다는 생각에 닫히려는 현관문 안으로 헐레벌떡 뛰어 들어갔다. 참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로비 분위기가 조금 이상했다. 다른 라인에선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배고픈 와중에 밥 냄새가 나서 힘들었는데, 여기선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냄새는커녕 내 숨 쉬는 소리를 제외하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름없음2021/05/26 03:33:23ID : thgpcNwK0rg
약간 이상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꼭대기 층 버튼을 누르고 올라가는데, 느낌이 조금 이상했다. 괜히 누가 날 보는 것 같은 느낌. 약간의 싸늘함. 애써 무시하고 꼭대기 층에 내렸다.
이름없음2021/05/26 03:34:14ID : thgpcNwK0rg
그래도 마지막 라인이니까. 여기만 끝내면 집에 가서 쉰다는 생각을 하니 힘이 났다. 한 층 한 층 전단지를 붙이면서 계단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름없음2021/05/26 03:36:15ID : thgpcNwK0rg
그런데 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조용한 와중에 계단실에서 내 발소리가 울리는데, 다른 라인에서보다 조금 더 크게 울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힘들어서 몸에 무게가 실려서 그런가? 하고 무시하려고 했는데 한번 의식하기 시작하니 이상하게 긴장되고 조금씩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최대한 빨리 나가고 싶은 마음에 전단지 붙이는 속도를 높였다. 거의 뛰다시피 했던 것 같다.
이름없음2021/05/26 03:39:16ID : thgpcNwK0rg
그 와중에도 아파트는 조용했다. 한 라인에서 한 번씩은 아파트 주민분과 마주쳐서 난감했었는데, 이 라인에서는 전단지를 반 정도 붙이는 동안 주민분이 나오시기는커녕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이름없음2021/05/26 03:41:40ID : thgpcNwK0rg
엘리베이터.
엘리베이터가 지금 있는 층이, 내가 한 층 한 층 내려올 때마다 내가 있는 층의 바로 위 층으로 바뀌어 있었다.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내 착각이길 바라면서 들고 있던 전단지를 내팽개치고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아래층에 내려와 엘리베이터를 보니, 현재 엘리베이터가 서있는 층은 다시 내가 있는 층의 바로 위 층.
이름없음2021/05/26 03:42:39ID : thgpcNwK0rg
정신없이 1층을 향해 뛰어 내려갔다. 계단실에서 크게 울리는 발소리가 마치 여러 사람이 뛰어가는 소리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무서웠다.
이름없음2021/05/26 03:43:36ID : thgpcNwK0rg
덜덜 떨면서 1층에 도착해서 현관문 앞에 섰는데, 자동문이 열리는 속도가 너무 느리게 느껴졌다. 아니, 실제로도 느렸다. 날 놀리듯이 느리게 열리는 문을 억지로 손으로 밀어 열고 있는데, 뒤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열립니다
이름없음2021/05/26 03:44:38ID : thgpcNwK0rg
그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억지로 문을 열고 라인 밖으로 뛰쳐나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서 아파트 단지 밖까지 나가서 숨을 헐떡이는데, 사장님께 전화가 걸려왔다.
연락도 안 받고 어디서 뭘 하냐고 소리치는 사장님.
이름없음2021/05/26 03:45:38ID : thgpcNwK0rg
전화는 한 번도 안 왔었고 지금 막 밖으로 나왔다고 말하려던 순간, 부재중 전화 알림 문자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소름이 돋았다. 전파가 안 터졌나? 다른 라인에선 잘만 됐었는데 왜?
그 후 집으로 어떻게 돌아갔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방 침대 위였다.
이름없음2021/05/26 03:47:24ID : thgpcNwK0rg
다음 날 사장님께 들었는데, 그 라인은 전단지를 제대로 붙이지 않고 대충 붙였다고 거짓말하는 알바를 잡기 위해 없는 라인을 일부러 넣어놓은 것이라고 했다.
사장님은 끝까지 내 말을 믿지 않으셨다.
내가 들어갔던 곳은 대체 어디였을까?
아직도 밤의 아파트가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