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한테도 꺼내보지 못했던 이야기 지난 날의 사건들과 수많은 감정 그리고 생각 천천히 조금씩 여기에라도 털어놓아볼래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일은 어려우니 우선 옛날 일부터 얘기해볼까

내 탄생은 썩 유쾌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24살에 사고로 나를 가졌다. 어머니는 2년 전문대졸 직장인이었고 아버지는 중졸, 서류상으로는 초졸인 백수였다. 사실 그 임신은 사고가 아니었단다. 고작 1년 연애한 나의 부모님은 결혼을 위해 내 존재를 이용했단다. 친가와 외가 중 그 누구도 모르는 사건의 전말.

부모님 스펙만 봐도 눈치채겠지. 어릴 때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다. 심지어 결혼 후 신혼집을 구할 때에 분명 친할머니께서 보증금 500을 대주겠다 하셨다. 그런데 그사이 친아버지께서 결혼하게 됐고, 이미 계약을 한 상태에서 친할머니는 말을 번복하셨다. 그게 우리집의 첫 빚이 됐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수입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어머니는 서울로 올라오느라 직장을 그만뒀단다.)

부모님은 왜 돈이 없었을까? 어머니는 시골, 그중에서도 깡촌 출신이다. 결혼하고 나서까지 경제관념이 전혀 없으셨단다. 이유는 잘 모르겠어. 그냥 생각 별로 안 하고 살았던 듯. 아버지는 수도권에서 태어나 자랐다. 어릴 땐 공부를 정말 잘했단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할머니께 학대를 당했다. 이유도 없이 거의 매일같이 방구석에서 밟혔어야 했다. 그러다 중학교 때부터 엇나가기 시작했고, 그것이 군대에 가고 싶었어도 공익으로 빠졌어야만 했던 이유가 됐다. 아버지는 학창 시절에 술, 담배는 물론이거니와 동네 깡패들의 시다바리(?) 노릇까지 했었다. 우리 어머니가 왜 그런 아버지와 결혼했냐고? 나도 머리가 굵어지며 가장 먼저 궁금해한 것이 그거였다. 이유는 고작 하나였다. 유일하게 아버지만이 어머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좋아해줬단다. 우리 어머니는 어릴 적 한쪽 눈의 시력과 색소를 모두 잃은 시각장애인이다.

.... 나를 가진 상태에서 어머니는 일터로 나갔다. 아버지는 몇 년이 지나서야 겨우 마트 일을 시작했다. 둘은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을 했지만 빚은 야속하게도 불어날 뿐이었다. 불행 중 다행은 사채를 쓰지는 않았다는 점일까. 아직까지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버지 소득이 높게 잡혀 우리는 그렇게나 가난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지원은 받지 못한다고 하셨다. 차라리 꾸준히 일하기라도 했으면 다행인데. 학창생활 내내 겉돌았던 아버지는 너무도 모난 성격을 갖고 있었고 몸도 허약했던 탓에 자주 직장을 옮겼다. 1년을 일하면 1년을 쉬었다. 반년을 일하고 2년을 쉰 적도 있다. 내 동네, 주변 동네에 아버지가 일해보지 않은 마트가 없을 정도로 이직이 잦았다. 가장 오래 다닌 곳이 3년이었다. 우리의 빚은 늘어만 갔고 카드로 돌려막기에도 한계가 왔다. 아버지는 신불자가 되기 직전에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올해 초에 끝났다. 아버지의 개인회생으로 이제 어머니 앞으로 쓰인 빚만이 남았다. 그게 아마 5천일 것이다. 부모님이 모두 벌어도 월 500 이하였다. 내가 살아온 18년 내내 그 값이 달라진 적은 없었다. 아버지는 그 18년 중 절반은 휴직 상태였다. 어머니는 장애와 학력 때문에 평생 월 200 언저리를 받으며 일했다. 사채는 안 썼지만 3금융권을 이용한 탓에 매달 생활비와 이자를 내기에도 벅찼었다.

. 내 유년시절이 불만족스러웠던 건 아니었다. 마음이 가난한 부모님 덕에 겉으로 가난하게 보여지는 일은 없었다. 부모님은 차라리 빚을 더 내서라도 나를 잘 입히고 먹이려 하셨다. 공부를 직접적으로 강요받지는 않았지만 좋은 성적을 받아오면 보상을, 그렇지 않으면 노골적으로 실망하셨기 때문에, 나는 공부를 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머리가 좋았다. 특히 한국식 공부에 최적화된 머리였다. 남들보다 조금 덜 시간을 들여 조금 더 많은 것을 외울 수 있었고, 남들보다 조금 더 머리 돌아가는 게 빨랐다. 그리도 또 다행이도 예체능에는 재능이 전혀 없었다.

... 누구나 그렇겠지만 유년시절의 나는 생각이 없었다. 마냥 즐겁기만 했다. 부모님이 나와 함께한 시간은 적었지만, 내가 유난히 독립적인 사람인지라 나는 그 점이 정말 마음에 들었었다. 이러한 집안 사정은 초등학교 5학년 즈음에 알았다. 그 전에도 우리집이 유달리 가난하단 건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긴 했다. 위 내용의 대부분을 그때 어머니를 졸라서 들었다. 아마 그때부터 내 머리가 굵어지기 시작한 것 같다.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 언저리부터 내 삶이 틀어지기 시작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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