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튼 그렇다고 엄마가 일자리가 없는 지금 상태에서도 동생들이 케어를 잘 받고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 동생 하나는 학교생활 문제 있어서 자꾸 불려가고 있고 정신과 상담 받는 건 어떻냐 이 소리도 듣고 있고 하나는 우리 집이 돈이 없으니 대학을 못간다는 걸 알아서 공부도 놓고 있는 거 같아 - 돈에 얽매인 고딩생활 생각하니 넘 불쌍해 내가 그렇게 살았거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끝까지 모르는 척할지 아니면 생활비정도는 지원해줄지…. 물론 엄마가 나한테 하는 얘기는 남한테 빚지는 거 싫다 하고 급한 돈 생겨서 나한테 돈 빌려도 꼭 돌려주려 하고. 그래서 엄마랑 상의할 건 아니고 내가 결정해야할 거 같은데, 설령 내가 지원해준다 해도 엄마가 존심 때문에 거절할 거 같은데 설득을 어떻게 할지도 모르겟으
그냥 그 집안 돈 노예 된다고 생각하면 됨
나는 20살에 대학 못가고 취업했는데 그냥 집안 전용 atm 됐고 고마운 줄 절대 모름
실업급여 받을 때도 돈 달라고 요구하고
한번 돈 주면 이제 돈 필요할 때마다 대출 받거나 그런 방식 아니라 너한테 빌림
평생 가족 노예로 살고 싶으면 그렇게 해
독립을 했으면 안줘도 되는 거임
글고 동생들 고딩 되면 위탁교육 보내서 취업하도록 하고
셋째부터는 대학비 무료임 참고로
그냥 알아서 살라고 해
너가 신경쓰는 이상 넌 그냥 그 가족 전용 atm기 그 이상 이하도 아냐
1000만원도 절대 그 동생이 안갚아줄 거라고 장담한다 내가
>>20 내가 봐도 내가 벌써부터 지원해주면 가족 노예로 살 거 같은 생각 들어
안 그래도 지금까지 금전적이 아니더라도 도와준 게 많았는데 그때마다 너무스트레스였는데 무시를 차마 못하겠더라
사실 한국에 살면 뭐 정부 지원을 받든 뭘 하든 알아서 살라고 할 텐데
가족들이 해외로 나왔어
원래부터 나도 해외에 살고 있었고 예전엔 가족들도 해외에 살다 잠깐 한국 갔는데 동생 하나가 적응을 못해서 돌아온거라고 하거든
유학생이라 여기서 동생들이 뭐 정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게 없다해서… 그래서 내가 골치가 아파
>>21 한국에 살면 뭐 다른 친척 손을 빌리든 공장이든 막노동이든 할 텐데 나 포함 가족들이 해외에서 살거든…. 근데 하필이면 부모님은 일을 하면 안 되는 비자인데다가 영어도 못하셔서 일자리를 구하는 걸 너무 어려워해 게다가 얼마전에 구했다가도 금방 그만두셨고
그거 보면 진짜 이 시대에도 아사할 사람이 있다면 그게 울 가족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신경 쓰여….
솔직히 가족들(동생들이)거의 일평생 외국에서 살다가 한국 갓더니 적응 못해서 아빠 꼬드겨서 다시 외국 나온건데… 학비랑 집값만 받기로 딜을 햇다니까…
아무리 동생들을 위해서라고 해도 나는 엄마가 좀 이해가 안돼 차피 여기서 고등학교 끝나면 둘 다 한국으로 돌아가야할 거고 그때는 어쩔 건데? 동생들 한국 사회에 적응 할 수 있겠어? 울집 막내는 한국에서 적응 못해서 사회부적응자 되어서 다시 외국 돌아와도 같은 꼴인데?
코로나 때 국가에서 실업자들한테 뭐 알려주는 프로그램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때 내가 하다못해 그냥 취미라도 좋으니 커피 배워보라고 했을 땐 본인이 커피는 싫다면서 무시해놓고서
여기 와서 취업이 안 되니 나보고 여기서 커피 배울 만한 곳 없냐 물어보는 거 보고 진짜 얼탱이 없었어….
엄마 말로는 한국에서 동생이 적응도 못하고
또 가족들이 한국에 있으면 어떻게 먹고 살거라 생각한 아빠가 잠수타고 지원 하나도 안 할 게 분명하고 실제 그 잠깐동안 잠수도 탄 전적이 있다고
아예 그 싹수를 막으려고 막무가내로 다시 해외 나왔다는데
나는 엄마를 이해해줘야하는지 말아야하는지 모르겠어….
정말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레주가 경제적으로 넉넉해서 보태줘도 레주 생활에 문제가 없다면 상관없지만 아니라면 굳이 보태줄 필요는 없어보여
만약 레주가 없었다면? 어떻게든 잘 살았을거야
적어도 고마움이라는 걸 느끼는 사람이였다면 아무리 상황이 힘들어도 공부라도 열심히 했겠지
학교생활도 엉망이고 공부도 안 한다면 동생들이 알바할수있잖아 알바 하면서 기술 자격증이라도 딸수있지 않을까? 생각들어 난 지금 그렇게 하고 있거든
가족이니 신경쓰일수 밖에 없지만 오히려 가족이 잘 됐으면 좋겠다면 스스로 일할 능력을, 살아갈 능력을 키워준다고 생각하자
글에서 보면 레주가 지원을 해줘도 고마움을 느낄 동생들이 아닐 거 같거든
>>30>>32 얘기 들어줘서 고마워 그러게 하다못해 알바라도 할 수 있는 건데 뭐…. 나도 그 나이때 떠밀려 한 거지만 하긴 했었고…. 어설프게 나서서 도와주다 중간에 그만두는 것보단 가끔 밥 사주거나 용돈 주면서 알아서 처신 잘하라고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 일단 현재엔 그게 내 최선일 거 같아…
내 어렸을 때 기억! 하면 수없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많지만 그 중 가장 또렷하게 기억나는 건 초딩 때 등교길에 준비물 하나 까먹어서 집에 잠깐 들렸더니 그거 땜에 지각할 거냐고 왜 빼먹었냐고
주방에 있던 엄마가 칼 들고 날 쫓아오던게 머릿속에 아직도 남아있다
항상 외가 친척들이랑 만났을 때에도 모두가 상냥한 그 상황 속에서두 불같이 화를 내며 날 때리던 건 엄마였고
내가 생전 처음으로 죽고 싶다고 생각이 들었던 것도 방학이라고 좀 씻지 않았던 내가 꼴 보기 싫었던 날 억지로 욕실로 끌고가더니 물 한바가지를 머리에 끼얹던 거였다
그외에도 항상 내 말은 듣지 않고 소리를 지르고 머리끄댕이를 잡고 사람을 패는 건 늘상이었고
외국생활 하면서 필요한 모든 잡일들은 나한테 시키던게 나한테는 당연시 되어버렸고
온갖 영어 번역은 하루에도 수십번을 시키면서 잠깐이라도 톡을 안보면 나를 향해 소리쳤고
동생이란 놈들은 항상 학교에서 학원에서 사고를 치고 말썽을 부리면
불려나가는 것도 나였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나였고 부모님은 영어조차를 할 줄 몰랐으니까….
네 동생은 왜 그래? 네 동생 좀 어떻게 해봐 네 동생이 ㅇㅇ한 거 알아? 할 때마다
시바 내가 얘들 부모냐 나보고 어쩌라는 말인가 싶기도 했고 또 얘들이랑 한 가족이란 사실이 너무나도 쪽팔렸다
그래도 금전적으로 문제는 없었으니까. 가족 관계가 조금 나쁠 뿐이지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를 끝내고 대학을 졸업해 취업을 하면
부모님이 그동안 나에게 투자했던 금액을 돌려주고 연을 끊어버리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시바 갑자기 그렇게 집이 한순간에 몰락할 거라고 내가 상상이나 했겠냐고
첨엔 우리 가족이 이렇게 어려워질 거라곤 생각 못했다
엄마가 약 한 달정도는 말을 안 했으니까
근데 영문도 모른 채 나는 엄마가 거의 매일같이 닫힌 방 안에서 혼자서 혹은 누군가랑 통화를 하면서 우는 목소리가 들려왔던 걸 인지했다
그걸 시작으로 이사를 하고 차를 팔고 엄마는 일을 나가기 시작했고
이 시ㅂ 내가 이 집안이랑 연을 끊는 건 불가능이 되어버렸구나 라는 사실을 가장 먼저 깨달았던 게 아직까지도 떠오른다
이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의 내 인생이 가장 불행했고 앞으로 남은 인생을 떠올려도 그때가 가장 불행했을 거라고 확신한다
순탄치 못한 가족 관계에
금전적인 어려움도 있지만
무엇보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못하고 대학을 못간다는 사실에 너무 크게 좌절했던 거 같다 어렸을 때부터 꼭 하고 싶은 전공이 있었는데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미래가 가로막힌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던 거 같다
이때부터 정말 필사적으로 살았던 거 같다… 학교 끝나면 짬내서 공부하고 알바 가고 아니면 일하러 간 엄마 대신 동생 돌봐주고 집안일 도와주고
친구가 나가서 놀자고 하면 항상 거절했다
집 가서 동생 저녁 차려줘야하니까
알바 가야하니까
돈을 쓰면 안 되니까
그런 친구는 날 이해 못했다 어쩔 수 없지
거따 대고 우리 가족 파탄 나서 어쩔 수 없어 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잘 모르겠다… 그 이후로 스트레스가 더 쌓인 엄마는 더욱이 툭하면 화를 내고 내 방밖으로 소리 지르면서 동생들 쥐어패는 소리가 들리고 물론 나도 계속 얻어맞은 적도 많고 엄마가 하다하다 우리 그냥 다같이 죽을까 하고 나한테 물었던 것도 기억 난다
이때 기억이 트라우마가 된 건지 지금 하고 있는 쉐어 집에서도 옆방에서 오가는 대화가 조금이라도 격양된 톤이면 날이 곤두서고 심장이 쿵쾅거린다
그때 그 방밖에서 불같이 화만 내던 엄마가 떠올라서
옛날에 방안에 혼자 문닫고 울던 엄마가 떠올라서
정말로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던 나는 하다못해 학교 심리상담까지 울면서 찾아갔지만 별로 도움 되는 것도 없었고
차마 솔직해지지 못해서
죽고 싶었던 감정이 든 적이 있어? 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아니요. 이제 괜찮아진 거 같아요 라고 거짓말을 치고 발길을 멈췄어
탁월한 대답인 거 같더라
며칠 후에 다른 중학교에 다니던 동생의 선생님한테서 나한테 전화가 왔어
동생이 쌤한테 죽고 싶어요 란 말을 했다는 거야
그때 눈물이 벌컥 나더라
나는 죽고 싶다는 말 하나 그 누구한테도 못했는데
했다고 해도 부모님한테 연락이 가겠구나
가봤자 영어도 못하는 사람이 받을리가 없지만
동생도 그만큼 힘들구나
근데 나는 동생의 힘듦을 외면했어 그런 연락이 왔다고 엄마한테조차 얘기하지도 않았어
물론 수능은 의지도 뭣도 안 생겨서 말아먹었어
공부를 엄청 잘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는 과목들은 상위권이었는데
말아먹고 나니까 나중에 후회 안 하게 조금이라도 더 노력할까 싶었어
근데 애초에 우울해서 무기력한데 그게 최선이었던 거 같기도 하고
지금 드는 생각은 아 수능 망쳐서 아쉽다 이정도지 그렇게 미련은 안 남았네
무튼 매일 지옥같은 삶을 살다가 어찌저찌 고등학교는 졸업했어
졸업식 날도 정말 최악을 날이라 두고두고 기억해 일기장에도 남겨놨거든
다들 열심히 해서 고3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열등감에 찌들어 내가 너무 싫어진 나는 추운 걸 핑계로 그 날 졸업식 내내 점퍼 소매 안으로 몰래 손을 넣어 손톱으로 손목의 살갗을 파내었어 그때 처음으로 해본 졸업식 기념 ㅈㅎ라 기억에 남아 물론 그 담날들까지 손목에 흔적이 남았는데 난 그게 좀 위안이 되더라
당연히 졸업하자마자는 일 나가기 시작했어
원래 하던 알바는 주 이틀 계속 했고
오전에는 엄마가 하던 일 같이 나갔어
막노동이었고 그때 어깨가 좀 나갔네… 이건 솔직히 나쁘지 않앗던 거 같아
엄마랑 자주 마주쳐서 싸울 때도 많긴 했는데
엄마가 먼저 일자리에선 서로 가족인 거 숨기자고 해서 그런 거 같아 덕분에 나도 1년동안 돈도 모아서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동생들 학비 천 조금 안 되는 돈 지원도 해주고
내 미래를 위한(영주권 목표라) 대학 학비도 조금씩 모을 수 있었거든
졸업후 첫 1년은 돈을 모았고 영주권 관련 2년제 대학을 시작하려는 때 쯤 나머지 동생들이랑 엄마는 한국에 돌아간 거야. 더이상 금전적으로 버티기 어려웠나 아님 비자 때문이었나… 이건 내 관심 밖이라 기억이 안 나네 무튼 난 순탄하게 학교 다니면서 일도 하고 그랬어 가족이랑 따로 사니까 인생 그나마 살만하더라
근데 그나마 살만한건 말 그대로 오늘 내일 겨우 버틴 거였지….ㅋㅋ죽고 싶다는 생각은 매일 했었어 쉬바 인생 ㄱ같은 인생 ㅈ같은 인생 나락보다 더 떨어진 인생 더 떨어질 것도 없는데 올라갈 수 있는 틈도 없고 평생 돈에 찌들려 사는 수밖에 아니 내가 평생 살 것도 아니고 적당히 모으고 가족들한테 돈 갖다바치고 죽어야지 이 생각만 늘 했단 말여…
그래두 하도 힘들어서 결국 병원 찾아갔고 항우울제 받아왔다…. 그렇게 나 혼자 독립생활 약 2년을 했지……
약물 복용기간1년정도고 중간에 괜찮아진 거 같아서 임의로 끊었다 다시 심해져서 그땐 정말 ㅈㅅ구체적인 계획까지 새울 정도로 충동 왔는데 다시 약 먹고 괜찮아졋서 물론 또 다시 먹다가 괜찮아진 거 같다고 다시 임의로 끊엇음 (원래 임의로 끊으면 안되는 거 알고 첨 약 타왔을 때에도 평생 먹을 생각으로 갔었어 근데 걍…. 귀찮아져서…..어쩌다보니….쩝…..)
막 약 다시 끊은 찰나 이번년도 초에 엄마가 발악을 해서 가족들 데리고 다시 해외로 나오게 되었어 이때부터 나의 스트레스는 다시 극한으로 치닫지…. 여기서 정착하는 거 내가 풀타임 일하고 학교 다니면서까지 다 도와줬고 게다가 내가 첨에 나열했던 고민거리 일들이 생겨났고… 돈 문제 동생 학교 문제 정착 문제 싸움 등등…
근데 다행인 건 뭔지 알아?
지금까지 살면서 늘상 가족들 생각만 하면 울기만 했고
이번년도 초에 가족들 다시 와서 부딪힐 일 많았을 땐 그래두 자주 울었는데
내 우울증이 다 낫긴 한 건가 아님 무덤덤해진 건가
아니면 엄마랑 한번 대차게 싸운 이후로 정말 모든 걸 놔서 그런가
지금 이 얘기를 쓰는 이 순간에는
눈물 한방울도 나지 않아 슬프다던가 우울하다던가 그런 감정보다는
아 그때 참 힘들었지란 생각이랑 우리 가족 이제 어떡하나 그리고 좀 억울하단 생각들
억울하다 드는 생각들은 뭐 k장녀들이라면 누구나 다 들 그런 감정들있잖아…..
물론 엄마도 고생한 거 아마 나보다도 더 고생한 거 알고 있지만
나도 참 힘들었겠구나 인정 하나 안 해주는 게 참 속상해
뭐 속맘으로는 물론 나도 힘들었다는 거 알고 계시겠지 미안한 맘도 있기야 하겠지 근데 그 인정하는 걸 말밖으로 안 뱉으니까
옛날 얘기 할때
나도 그때 힘들었다 라는 얘기 꺼내면 엄마는 항상
네가? 힘들 게 뭐가 있었어? 힘든 건 엄마였지 이러면서 인정을 안 해주신다
이럴 때마다 나의 노력은 다 어디로 간 건가 싶기도 하고
엄마는 아직도 모른다 내가 얼마나 죽고 싶었는지 세상을 떠나고 싶었는지
얼마나 힘들었으면 병원까지 찾아갔는지 약을 먹었는지조차 모른다
내가 지금 하고 잇는 전공은 요리인데
처음엔 요리보다는 간호쪽으로 가고 싶었다
내가 어렸을 때 꿈꿨던 전공이 그나마 이쪽이랑 근접했으니까
근데 3년전 엄마는 우리한테 그럴 돈이 어딨냐고 요리를 하라고 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요리를 시작했다
별 선택권이 없어 시작한 요리지만 다행히 내 적성에 너무 잘 맞았고 재미를 느끼고 있는데
엄마는 이제와서 날 볼 때마다 요리로 영주권 따면 다른 과를 공부하자고. 간호학을 해보는게 어떻냐 한다. 요리는 많이 힘드니까 내 팔과 손의 흉터를 보고 ㅈㅎ 같아 보인다는 말이 걱정이 되어 하는 말이겠지만
나는 완강하게 절대로 요리를 할 거라 말했고 내 굳건한 의지에 엄마는 결국 꺾이는 거 같더니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길은 열어두자고. 요리쪽이 좋다면 굳이 요리보다도 영양사나 뭐 등등 있지 않냐고 혼자 타협을 하신다
그냥… 괜히 심술이 났다. 하기 싫어했던 것도 재미 찾아서 열심히 사는 애한테. 이미 꿈 한번 접힌 애가 새로운 것에 눈을 떴다는데. 그냥 응원한다는 말 한 마디가 그리 어려웠는지.
이건 아직까지도 좀 눈물난다…가장 최근 일이라 그런가
여담이지만… 요리사들은 당연히 손이나 팔에 흉터가 많은데
첨 요리 시작하고 한창 우울증 심했을 때엔
무슨 상처가 나도 늘 무덤덤했고 자의적이 아닌 ㅈㅎ를 하는 거 같아 맘 안정도 됐던 거 같다 그래서 늘 방치해뒀더니 이제는 흉터가 너무 많고…
지금 마인드는 참 보기 싫은 훙터지만 요리사의 훈장이라고 생각하려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