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없음 2023/01/17 21:48:43 ID : JSMo5e2NwMj
니가 나 만날 때 여기서 무서운 썰 보여 줬던 거 생각 나서 회원가입까지 했다 너랑 내 얘기 첨부터 끝까지 풀면 니가 찾아올라나 하나부터 열까지 주관적이라 빡쳐서라도 니가 찾아올라나 그래 우리 처음 만났던 곳 우리 아빠가 하던 미술 학원 넌 애초에 집에 돈이 많아서 대학 안 가고 니네 아버지 공장에 낙하산으로 들어갈랬고 난 우리 아빠 뒤지면 그 미술 학원 팔아다 어디 산골짜기로 튈라 그랬잖아 혹시라도 내가 찾는 애 아닌 다른 분들이 제 말투 보고 정 떨어지시거나 인상 찌푸리실 수도 있네요 님들은 좋으실 대로 구경하세요 암튼 거지같은 피 물려받은 게 죄지 하필이면 내가 알바 다 때려치고 아빠 학원 구석탱이에서 물감으로 장난 치고 있을 때 못 보던 니가 눈에 들어올 게 뭐람 너랑 내가 거기서 눈 맞았는가 싶더라 니가 캔버스에 눈깔 처박고 있을 땐 몰랐는데 어느 날 너도 내가 빤히 쳐다보던 걸 느꼈는지 갑자기 고개 확 들어서 눈 마주쳤을 땐 딱 직감이 오더라 아 쟤는 딱 봐도 눈깔 돌았다 싶더라고

2 이름없음 2023/01/17 21:52:58 ID : JSMo5e2NwMj
솔직히 니 눈이 삼백안인 거 니도 인정하지 가만히 있어도 서늘하게 생긴 거 알잖아 참 신기한 게 니는 그런데도 사람들이 몰리더라 반반하게 생긴 건 난 모르겠고 지금은 니 눈코입 위치도 가물가물하다 나도 사람인지라 니가 끌리더라 얘기 들어 보니 다른 사람들이랑은 밥도 먹으러 다니는 것 같고 잘만 떠들던데 유독 나한테만 말 안 거는 것 같아서 첨엔 나 싫어하는 줄 알았다

3 이름없음 2023/01/17 21:56:43 ID : JSMo5e2NwMj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너도 나랑 눈 처음 마주쳤을 때 나랑 똑같은 생각 했단 게 신기하더라 이제서야 묻는 거지만 왜 그랬냐? 나랑 니랑 눈도 젤 많이 마주쳤던 것 같은데 왜 나한테만 말 안 걸었는지 아직까지도 나는 이유를 모르겠다 니가 나한테 처음 말 걸었을 때 내가 꼴받아했던 이유 말했었나 그날도 아빠한테 뒤지게 처맞고 와서 학원 구석탱이에 처박혀 있었는데 닌 내 얼굴이 유독 빨갛다고 자판기 커피 주고 갔잖아

4 이름없음 2023/01/17 22:01:35 ID : JSMo5e2NwMj
그 커피 받고 울컥 눈물이 나오려 그러더라 니가 무슨 의미로 줬는진 모르겠는데 그냥 하도 처맞다 따뜻한 거 한 번 손에 쥐어 봤다고 서러움이 치밀다 못해 터질라 그러더라 그래서 거의 뭐 뛰쳐나가듯이 복도로 나왔는데 그걸 넌 놓치지도 않고 따라 나왔어 왜냐고 묻고 싶은데 입이 안 떨어져서 눈만 깜빡거리니까 눈물이 후두둑 떨어지는 게 개쪽팔렸다 보통 사람들은 그거 보고 왜 우냐고부터 물었을 텐데 넌 커피 버리는 줄 알고 쫓아왔다면서 막 웃더라

5 이름없음 2023/01/17 22:05:26 ID : JSMo5e2NwMj
그 말에 부정하고 싶어서 원샷하려다 입천장 다 까진 건 아직도 억울하다 내가 곧장 뱉는 거 보고는 더 쪼개긴커녕 괜찮냐면서 턱밑으로 흐르는 액체까지 손으로 받쳐 주려 그랬던 게 아직까지 웃기네 쪽팔리기도 했고 너는 보내기 싫어서 그냥 다른 말로 말 좀 걸어 봤어 학원 언제까지 다닐 거냐 그랬었나 아무튼 넌 이 학원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고 뭐라 했던 것 같은데 내가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냥 코웃음만 쳤던 것 같다

6 이름없음 2023/01/17 22:09:13 ID : JSMo5e2NwMj
커피값이라면서 번호까지 받아 간 니가 연락도 없이 튀었길래 이 새끼가 싶어서는 아빠한테 머리끄댕이 붙잡혀 갔던 학원을 내 발로 걸어들어갔다 니가 날 보고는 반가워했었나 암튼 나도 너한테 커피를 사 줬던 걸로 기억해 니가 옆에서 하도 커피 마시고 싶다 노래를 불렀었으니까 반강제로 커피 삥 뜯긴 다음에서야 커피값이라면서 니 번호를 받을 수 있었어 음침하게 니 카톡 프로필부터 염탐했는데 별거 없더라 기본 프로필 그대로라 니가 카톡 탈퇴하는 날까지 난 몰랐지 니 번호 열한 자리까지 외우고 있었는데도 다 쓸모없어졌고

7 이름없음 2023/01/17 22:13:32 ID : JSMo5e2NwMj
그뒤론 평범하게 연락을 주고받았던 것 같다 너도 나도 그때까진 서로한테 물들지 않았었으니까 그런 평화가 좋았어 쉽게 깨지기 마련인 걸 난 모르고 말야 엄마는 흥분한 아빠를 막고자 했고 아빤 그런 엄마를 옆으로 밀쳤는데 하필이면 운이 안 좋아서 원래도 관절이 안 좋았던 엄마가 평생을 절뚝거리며 살게 된 거야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 세상에서 우리 엄마를 유일하게 사랑했었는데

8 이름없음 2023/01/17 22:18:48 ID : JSMo5e2NwMj
아빠가 죽었으면 했어 너도 알다시피 내가 조금 비실비실한 게 아니라 아빠 손바닥 하나에도 방 전체를 구르잖아 그런데도 난 대들었고 꿋꿋하게 맞으면서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어 머리카락이 쥐어뜯기든 질식시키려는지 내 입에 수건을 쑤셔넣든 그렇게 난리를 치니 아빠가 진짜 죽이려고 달려들더라 그쯤 되니 나도 무서워서 현관 밖으로 뛰쳐나오게 됐어 가진 거라곤 핸드폰밖에 없는데 선택지마저도 두 개가 전부더라 이미 수차례 해 봤지만 바뀌는 게 없었고 없을 신고거나 아니면 지금 당장이라도 기댈 수 있을 누군가를 찾거나

9 이름없음 2023/01/17 22:22:36 ID : JSMo5e2NwMj
나는 너를 찾았어 니가 가장 최근에 저장한 번호라고 뜨길래 정신없이 전화부터 걸었어 니가 뭘 하고 있든 어디에 있든 내 알 바는 아니었고 초저녁 그쯤 아마 넌 밥을 먹고 있었으려나 내 전화를 받은 니가 밝은 목소리로 웬일이냐며 어쩐 일로 먼저 전화를 줬냐며 말하다가 곧바로 어디냐고 물었던 게 생각 나 택시까지 잡고 왔다며 우는 나를 달래 주다 생색 내던 것마저 떠오른다

10 이름없음 2023/01/17 22:26:09 ID : JSMo5e2NwMj
네 자취방까지 간 마당에 하룻밤만 재워 달라는 말이 안 나올 수가 없더라 엄마는 아마 이모네에 갔을 테고 아빠는 집에서 뭘 하고 있을지 알 수도 없고 너는 뻔뻔한 나를 보면서 그냥 웃었나 어쨌든 알겠다 그랬던 것만 기억이 난다 니가 뭘 요구하든 솔직히 난 오늘 밤만 눈 딱 감고 받아들일 생각이었어 죽기 싫었거든 집에 가면 꼭 죽을 것 같았고 난 돈도 친구도 없었거든 딱 너만 있었거든 아 이제서야 하는 말인데 너도 나도 서로한테 같은 걸 느꼈다면 비슷한 구석이 있단 소린데 왜 너는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이 몰리고 왜 나는 가만히 있어도 무언가를 하면 더더욱 사람들이 도망을 갈까

11 이름없음 2023/01/17 22:28:43 ID : JSMo5e2NwMj
나한테 침대까지 내어 준 니가 참 고맙기도 했는데 무슨 일을 당할까 겁만 나더라 암말 안 하다 당하는 것보다 눈 딱 감고 내가 먼저 말하자 협상을 보자 싶어서 이불 꼭 쥐고 그냥 자냐고 물어봤었지 바닥에 이불 깔고 등 돌려 누워 있었던 니가 갑자기 내 쪽으로 돌아 눕더니 그럼? 이라고 했었나 솔직히 그땐 어두워서 잘생겨 보였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러네 암튼 공짜로 재워 주는 거냐고 물으니 넌 뭐든 해 줄 거냐 그랬었지

12 이름없음 2023/01/17 22:33:08 ID : JSMo5e2NwMj
니가 그때 나랑 만나 보고 싶단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쯤 무얼 하며 살고 있을지 아니 살아는 있을지 모르겠다 쪽팔리지만 니가 첫 연애였다 잠깐 이야기를 건너뛴 것 같은데 넌 그때 내 전화 받고 분명 아빠가 뒤지게 팼다는 말을 들었을 텐데도 왜 아무렇지 않아했어? 아무렇지 않아했나 잘 모르겠고 아무튼 그 정도면 니가 알아서 학원을 끊을 줄 알았다 우리 아빠한테 정이 떨어져서든 나를 피해서든

13 이름없음 2023/01/17 22:35:36 ID : JSMo5e2NwMj
아빠도 너도 이상했다 아빠는 다음 날 나에게 평소처럼 굴었고 집도 말끔히 정리가 되어 있더라 그리고 너도 무슨 일 있었냐는 것처럼 학원에서 나를 보더라 실망스러웠어 내가 아빠한테 그런 짓을 당했다는데도 나를 놀리는 것마냥 학원에 찾아왔단 게 그래서 일부러 너랑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도 걸지 않고 원래 그랬던 것처럼 조용히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니가 다시 자판기 커피를 건네 주기 전까지

14 이름없음 2023/01/17 22:40:13 ID : JSMo5e2NwMj
뭐 하는 거냐고 따지니까 오히려 니가 억울하단 듯이 나 쳐다봤었지 넌 어떻게 무슨 생각으로 여길 찾아오는 거냐고 복도에서 역정을 내니까 니가 하는 말이 이 학원 아니면 날 어디서 만나야 하나 싶었다고 했나 나는 항상 학원에 있어서 보고 싶을 때마다 오게 된다고 했나 뭐가 됐든 3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우리 아빠 그리고 같이 서 있던 너랑 나 이렇게 셋이 삼자대면까지 할 줄 누가 알았겠어

15 이름없음 2023/01/17 22:45:00 ID : JSMo5e2NwMj
이 이야기는 넘어갈게 너도 나도 암묵적으로 꺼내지 않던 얘기고 다시 생각하고 싶지도 않으니까 말 안 해도 너는 알 거라고 믿어 학원은 문을 닫았고 나는 니네 집에 얹혀 살았잖아 너는 알바하는 식으로 니네 아버지네 공장에 출퇴근했고 나는 너 없는 동안 몇 번이고 몸에 상처를 내며 좋지 않은 온갖 것을 다 찾았어 집에 돌아오면 보이는 풍경을 너는 좋아하지 않았을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넌 흰 셔츠를 입고 출근했었는데 나 때문에 버린 셔츠들이 참 많을 것 같네

16 이름없음 2023/01/17 22:49:53 ID : JSMo5e2NwMj
너는 한없이 다정했었는데 나는 그 다정이 미치도록 무서웠어 너한테 참 말도 안 될 짓들을 많이 부탁했었다 너는 서서히 나에게 무신경해졌지 아니 무신경한 척을 했었어 니가 그래야만 내가 덜 우니까 나는 너의 그 다정함에 기대게 되는 내 스스로를 볼 때마다 끝없이 불안해했고 비참해했으니까 지금 생각해 보니 니가 나를 사랑했던 게 맞았구나 싶다 다른 누군가가 우리를 봤을 땐 니가 나를 함부로 대하는 것처럼 보였겠지 날 사랑하는 니가 나한테 모질게 굴면서 얼마나 힘들었을진 나도 잘 모르겠다

17 이름없음 2023/01/17 22:54:18 ID : JSMo5e2NwMj
언젠가 니가 조퇴하고 와서는 토하고 맥이 빠져서 잠든 나한테 다시 태어나자 그랬었지 나 사실 그때 안 잤다 니가 내 머리카락 넘겨 주면서 쓰다듬을 때 나 안 자고 있었어 그때 니 목소리랑 말만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누나도 나도 다시 태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러면 누나랑 나랑 다른 연인들처럼 평범하게 카페도 가고 맛있는 것들도 먹으러 다니고 할 수 있을 텐데"

18 이름없음 2023/01/17 22:57:58 ID : JSMo5e2NwMj
너는 그런 생각을 하는 애인데 내가 눈 뜨고 있을 때면 그저 나를 위해서 누나가 내 인생을 망쳤다 누나도 나도 평범하게 살긴 글렀다 하는 말을 입에 담고 살았을 거 생각하니 미안하긴 하더라 너도 한계가 있었겠지 그 말 듣고서 나도 정신 차리며 살아 보려 했다 며칠 좀 말짱해 보였는지 니가 안 하던 짓 아니지 니 원래 본심이 자꾸만 행동으로 튀어나오더라 니 다정을 나는 다시 엿볼 수 있게 됐었던 거야

19 이름없음 2023/01/17 23:02:35 ID : JSMo5e2NwMj
어쩌면 너도 내게서 희망을 봤을 텐데 또 죽자고 구니 니가 거기서 무너진 듯싶다 날 만난 이후로 제일 다정한 목소리였다 헤어지자며 우는 너한테 나는 "사랑해 줄 거라며" 이 말만 반복했던 게 떠오른다 넌 거기서 제대로 무너졌겠지 미안 실은 너한테 사과하고 싶어서 이렇게나마 전하고 싶어서 쓰는 거야 니 이름 한 번 제대로 불러 준 적이 없다 미안하다 그런데 있지 니가 말하는 평범은 절대로 나랑 이룰 수가 없었던 것 같다

20 이름없음 2023/01/17 23:05:15 ID : JSMo5e2NwMj
너는 내가 붓을 잡을 때 세상 따뜻해 보였다며 나를 좋아했다는데 나는 내가 붓을 잡을 때만큼 손이 시렸던 적이 없다 어쩌면 우리가 다시 태어나야 하는 이유 중 하나일지 모르겠다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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