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안은 대대로 불교를 믿어 왔다. 그래서 누군가 새로 차를 뽑았다거나 가게를 열었다 하면 꼭, 꼬오오옥 귀신 쫓는 부적을 들고 오시고, 고사를 지낸다. 아직도 아버지의 차 트렁크에는 고사를 지내고 남은 말린 북어가 있다. 비린내는 조금 나지만, 크게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다. 조금씩 기억을 더듬어가며 이어가겠다.

난 어려서부터 꿈자리가 좋지 않은 날이 많았고, 그걸 어린 마음에 어머니께 털어놓았다. 일단 무서웠으니까, 찝찝하기도 하고. 어머니의 대답은 시종일관 '꿈보다 해몽이라고, 그냥 무시하면 돼.'였지만, 나는 그 위안이라도 받고 싶어서 계속 말을 꺼냈던 것 같다.

그러다 11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처음으로 절에 가셔서 팔목에 차고 다니는 묵주를 받아오셨다. 꼭 쪼글쪼글하게 말린 과일 씨앗을 검게 칠해서 엮어둔 것 같은 모습이었고, 솔직히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도 꿈자리를 맑게 해줄 거라며 스님이 직접 주신 거라고, 소중히 하라고 말씀하시니 대놓고 싫은 티를 낼 수도 없었다. 그때부터 13년, 나는 묵주를 차고 다닌다. 정확히는 '가지고 있다'고 해야겠다.

도대체 몇 번째 묵주인지도 모르겠다. 워낙 자주 새걸로 갈아치워야지.

현대에 들어서는 종교 관련 물품이라 해도 카테고리는 악세사리에 속하고, 보석처럼 수십 년 쓸 계획으로 만든 게 아니다 보니 중간에 묵주가 끊어져 버리는 일이 종종 있긴 한데, 사실 그렇게 버린 묵주는 몇 개 없다. 대부분은, 잃어버렸다.

나는 밖에 나갈때는 묵주를 차고 다니지 않는다. 손목에 땀 맺히는 기분이 싫어서 시계도 안 차고 다닌다. 그래서 묵주는 무조건 공부하거나 일하는 책상 위에 둔다. 가끔 머리가 복잡하거나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어루만지고는 했다. 뭐, 특별한 효과는 없었다.

여기부터 중요한데, 그렇게 막 다루지도, 소중히 모시지도 않던 묵주는 꼭 1년을 못 넘기고 사라졌다. 내가 살아오면서 묵주 이외의 물건을 잃어버린 적이 딱 두 번 있는데, 첫 번째는 꼬꼬마 시절에 타고 다니던 킥보드를 어떤 정신 이상한 녀석이 아파트 창문 밖으로 던져서 부숴버린 일이고, 두 번째는 중학교에 다닐 때 지하철 역에서 지갑을 잃어버린 일이 전부다. 그 뒤로는 고장나서 버리거나, 이삿짐을 싸다가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버린 게 전부다. 얼마나 물건을 아껴 쓰면 지금 쓰고 있는 지갑은 8년째, 축구화는 7년째, 하다 못해 행운을 불러줄 거라며 받은 2달러 지폐는 거의 십수년 째 나와 함께하고 있다.

그런 내가 매년, 거의 몇 개월에 한 번 꼴로 묵주를 잃어버렸다. 들고 나가지 않는다. 누군가를 집에 들이지도 않는다. 이 소형 염주 같은 녀석은 매번 홀연히 사라졌다.

딱 한 번, 흔적을 찾은 적은 있다. 작년 가을의 일이다. 묵주를 이루고 있는 구슬 중 하나가 침대 매트리스 밑에서 발견됐다.. 잃어버린 줄로 알았던 오미자 색 묵주. 지금 쓰고 있는 연갈색 묵주 이전의 것, 그 부품 중 하나였다. 혹시나 만지작대다 잠들었고, 잠결에 침대 밑으로 빨려 들어가서 끊어지기라도 했나 싶어 매트리스를 들고 바닥을 뒤져봤다. 다리가 많은 벌레가 한 마리 기어나오는 바람에 기겁했다. 아쉽게도 거기까지였다. 다른 묵주의 구슬을 발견한다든가의 소득은 없었다.

일단 다섯 시가 다 돼가고, 나도 수면유도제와 안정제를 먹어서 슬슬 눈이 감긴다. 수면 장애가 심하기 때문에 약으로 잠을 청하는 편이다. 이렇게 몽롱할 때를 놓쳐버리면 또 밤을 샐 것 같다. 오늘은 자야 한다. 나머지는 일어나서 마저 쓰겠다. 누군가 읽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읽어주는 사람이 있구나 고마워. 내가 본격적으로 나와 묵주 간의 사이가 좋지 않다고 느낀건 최근 2년 사이에 벌어진 일 때문이다. 다른 종교, 맹렬한 신봉자도 아닌 내가 다른 종교에 손을 댄 적이 있다.

아직도 기억난다. 2년 전의 4월 초, 봄이라는 이름이 무색하도록 더운 기온이 유지됐다. 때문에 벚꽃은 예상보다 빨리 피었고, 그만큼 빨리 지고 있었다. 꽃을 좋아하는 나로써는 이보다 아쉬울 수가 없었지. 그래서 당시에는 알바비도 200정도 모였겠다, 친구 두 놈과 함께 벚꽃을 보러 일본으로 떠났다.

오사카 성이 벚꽃으로 유명하다길래 그곳으로 향했다. 정작 벚꽃은 거의 다 져버렸고, 설상가상으로 하늘까지 우중충해서 좋은 풍경을 보진 못했다.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며 넘기고, 다음 유명 관광지인 이나리 신사로 향했다. 그 즈음, 하늘이 비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관광 명소인 신사들은 관광객들의 운세를 봐주기도 하고, 오마모리 같은 부적을 팔기도 한다. 이나리 신사 중턱의 기념품 상점도 그 중 하나였는데, 작은 목함에 500엔 동전을 넣고 한자가 표 한 장를 받으면, 계산대에서 그에 맞는 운세 종이를 준다. 특별한 내용은 아니었다. 내년의 나에게 귀한 손님이 찾아온다, 그러기 위해 바쁘게 움직여라. 그런 내용이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 다음 남은 동전이 있길래 여우 그림이 새겨진 나무 부적을 샀다. 이나리 신사는 여우 신을 모시는 곳이니까. 귀엽기도 하고, 아기자기한게 마음에 들어서 셔츠 가슴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나는 마음에 들었지만, 내 묵주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짧은 여행에서 돌아온 뒤, 나는 매일 극심한 피로감에 시달렸다. 열심히 움직이다가 한번 쉬어가는 바람에 몸이 적응하지 못한 것이라 생각했다. 당시에 진행하던 일이 있었는데, 이게 생각보다 잘 풀려서 열심히 해야만 했다. 퇴근한 뒤에도 매일 새벽같이 책상 앞에 앉아 일했다. 그게 즐거웠다.

3개월 즈음 버텼을까. 몸이 좋지 않아 조퇴를 하고 있었다. 몸살기운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속이 좋지 않았다. 집 앞 슈퍼에 인스턴트 죽과 이온 음료를 사러 갔을 때도 주인 아주머니가 나를 심하게 걱정하실 정도로 몰골이 나빴다. 곧 쓰러질 것 같은 얼굴이 아닌, 죽은 채로 돌아다니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고 하면 상상이 될까.

집에 돌아와 야채죽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이온음료를 마셨다. 그리고, 곧바로 전부 토해냈다. 나올만한 것은 없었다. 고형물 대신 이온음료와 누런 위액만 계속해서 나왔다. 정확히 10번 토했다. 11번째 부터는 위장부터 목구멍까지 전부 확장되어 끄엑하는 소리만 나왔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가, 드러누웠다가, 점점 잠이 쏟아졌다. 왠지 이대로 잠들었다간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휴대폰을 붙잡고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나 죽을 것 같아. 살려줘. 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곧바로 본가에 있던 형을 나에게 보냈고, 나는 형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병원에 갈 수 있었다.

급성 간염이었다. 다만 그 정도가 매우 나쁘다는 것. 간부전으로 변질되기 전에 시급한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덕분에 나는 그로부터 한달 정도 일을 쉬게 되었다. 한달. 나는 누워서 생각 하기만 하는 존재로 지냈다. 이제 막 풀리기 시작한 일을 마저 해야 하는데.

몸이 나은 뒤 곧바로 진행하던 일을 붙잡았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 아쉬움에 몇 달이고 더 매달려봤지만 냉담한 반응과 결과만 돌아왔다. 그 뒤, 나는 반쯤 내쫓기듯 일을 접고 본가에 내려가게 된다. 요양이 목적이었다. 그리고 이때 즈음이었을 것이다. 묵주가 사라졌다는걸 다시 한번 눈치 챘던 것, 그리고 여우 얼굴 모양의 부적이 새까맣게 녹슬어 있었다는 것.

집에 돌아왔다. 어머니는 내게 줄 새로운 묵주를 간직하고 계셨던 것 같다. 이번에는 흑단나무처럼 새까만, 아주 새까만 묵주였다. 빛 한줄 담아내지 못하는 그 묵주는 왠지 섬뜩했다. 그래도, 좋다고 하니까. 나는 별 의심없이 새로운 묵주를 받았다.

본가에 내려온 뒤로는 일을 그르쳤다는 마음이 나를 조여왔다. 더욱 열심히 일하고자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이 늘었다. 운동도 꾸준히 했다. 건강이 중요하니까.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허리 통증이 찾아왔다. 나는 자세가 곧지 않아 생긴 통증, 그정도로만 생각했다

허리 통증은 잠을 설치게 하고, 나의 수면 장애는 깊어졌다. 이제는 잠을 못 자서 환청이 들릴 정도까지 왔다. 꼭 잠들기 직전, 누군가 내 고막 바로 옆에다 대고 박수를 치는 듯한 환청이었다. 할 수 없이 허리 통증을 고치고자 근처의 한의원을 찾았다. 나는 예전부터 한의학이 몸에 잘 받아 한의원을 애용하고는 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맥을 짚어보시던 원장님은 내게 잠깐 일어나 볼 것을 권했다. 나는 별 의심없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바로 앞까지 걸어오신 원장님은 내 오른쪽 가슴 아래부분을 가볍게 눌렀다. 그때 통증은 입을 열어도 소리 하나 나오지 않을 만큼 엄청난 것이었다. 갑자기 바닥에 쓰러지는 바람에 우당탕 소리까지 났다. 그때의 아픈 정도를 설명하자면 명치를 세게 맞은 듯한 통증인데, 거기에 뼈가 부러졌을 때의 시큰한 욱신거림까지 추가하면 상상이 될 것이다.

일단 디스크가 터진 것은 아니었다. 원장님은 지금 나의 몸 상태가 얼마나 엉망진창인지 차근차근 설명해주셨다. 소화가 잘 안돼죠? 위산도 자주 역류하고. / 네. 가끔 여기 심장 쪽을 콱 쥐어짜는 듯한 통증은? / 있어요. 허리 보다도 여기 등쪽이 더 아프죠? / 네. 과식이나 과음을 자주 해요? / 아뇨. 술은 아예 안마셔요. 과식도.

의사 선생님은 그제야 나의 손목을 보셨다. 새까만 흑단 묵주.

원장님은 일단 내게 묵주를 벗으라 말씀하셨다. 그리고 잠시 보겠다며 들고 나가셨고, 나는 간호사님의 인도를 받아 치료실로 향했다. 전형적인 한의원 풀코스(침 놓기, 뜸 뜨기, 부항 뜨기)치료를 받고 조금 가벼워진 기분에 살짝 들떠있었다. 그 때문에 원장님이 나의 묵주를 들고 가셨다는 것도 잠시 잊어버린 모양이다.

수납을 기다리던 나를, 원장님은 다시 한번 진료실 안으로 불렀다. 손애은 내가 끼고있던 묵주를 들고 계셨다.

맥을 짚을때 이상하다는 생각이 많이 드셨다고 한다. 사람의 혈이란 순환하는 것인데, 마치 지혈대라도 감아둔 것처럼 강제로 틀어 막아둔 부분이 있었다고. 이렇게 심하기가 드문데, 젊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은 더욱 드문데. 그렇게 생각하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내게 다시 묵주를 건네셨다. 잠시 침묵하시다, 딱 한 문장만을 말씀하셨다. 이거 왠만하면 차고 다니지 마세요. 목욕탕에서 나온 것처럼 개운하던 기분이 순식간에 복잡해졌다.

집에 돌아와서는 흑단 묵주를 노트북 가방에 넣었다. 물론 출근할 일이 없으니 가방은 내 방에서 벗어날 일이 없다. 그런데, 나는 그걸 또 잃어버렸다.

그 뒤로 나는 이따금 발작을 일으킨다. 저혈당과 비슷한 증세를 보이나 혈당에는 문제가 없다. 덕분에 제대로 된 취업활동도 못한 채 집에 틀어박혀있기만 한다. 그런 내가 안쓰러웠던 건가. 어머니가 절에서 새로운 묵주를 받아오셨다.

헐 되게 신기하다.. 보고있어

어머니께 말 하는 것은 어때??ㅜㅜㅜ

묵주는 천주교 관련인데 염주 아니야?

? 와 무슨....ㅂㄱㅇㅇ

묵주는 천주교에서 묵주기도를 할 때 쓰는거구 불교는 염주일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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