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없음 2018/10/06 01:23:29 ID : pTWqi3A2E4J 3
나 먼저 제시해볼게. 구름 먼지 희망
베스트 레스 2
이름없음 2026/03/14 21:58:14 ID : TRDuk6ZjAjj 1
오늘 나는 벼르고 벼르던 일을 실행에 옮겼다. 새벽같이 일어나 말끔히 씻고, 미리 준비해두었던 옷으로 갈아입었다. 어색하게나마 머리손질을 하고 거울을 바라보며 동경하던 이의 자신만만한 표정을 따라해보았다. 완벽하지 못해도 이정도면 되었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붐비는 지하철을 타고 버스로 갈아타며 목적지를 향해간다. 창밖을 바라보면 사람들이 저와 비슷한 차림으로 출근길이 바쁜것이 눈에 들어온다.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문득 동기의 우스겟소리가 머릿속을 지나쳤다. 너는 평생에 그런 옷차림을 안할것 같다고 했었던가. 숨막히는 각진 정장차림에 행여라도 옷이 구겨질까 허리를 세우고 있는 모습을 보면 무슨 말을할지 짐작이가 작은 실소가 입가에 스쳐간다. 동결된 시간속에 머무는 이들이 지금 무어라고 할 지 짐작갈만큼 그 색체가 뚜렸하던 이들이었다. 오늘 드디어 보러가는 길이다. 그동안 다잡지 못한 마음을 추슬렀고 동경하는 이의 표정을 방패처럼 앞세워 꼴사납지 않길 바란다. 오랜만이다. 늦게 와서 미안해.
이름없음 2026/04/27 10:03:41 ID : k7bva79fPbd 1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사람을 이어주는 어느 인연신의 당부 내가 지금 부터 들려줄 이야기는 어느 인연신의 관한 이야기야 아주 먼 옛날 한 인연신이 있었어 사람에게 인연을 선물한다는 인연의 신이였지 하루는 인연의 신이 연못을 둘러보다 한 부부의 모습을 보게돼 그 부부에게는 아이가 없었어 늘 아기를 가지는 걸 소망했지 부부는 1000일이 되도록 매일매일 빠지지 않고 같은시간 같은 장소에서 빌었어 제발 제발 인연의신님 저희에게도 아이를 주세요 라고 말이야 인연은 신은 그 부부의 정성을 기쁘게 여겨 아이를 주었지 그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어 그 아이가 20살이 되던 해 마을에는 기이한 일이 일어났어 가뭄이 들어 땅은 갈라지고 물은 점점 부족했었어 그래서 사람들은 하늘신에게 빌었지 부디부디 비를 내리게 해달라고 말이야 그러나 우습게도 응답은 없었지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마을에서 유명한 무당을 불러내 그 무당이 말하길 20살의 여자 중 하나를 골라 마을에 인연신에게 바치면 물이 다시 나올 거라는 말을 했지. 사람들은 20살 처녀를 인연신에게 바쳤지 그러나 마을에 비는 커녕 점점 사람들이 굶어죽거나 가뭄으로 이사를 해 인구 수만 줄어들기 시작했어 차례대로 가다보니 어느새 20살 여자는 한명 밖에 남지 않았어 그 아이가 바로 덕수길 마을에 자랑 이홍아 였어 홍아는 어쩐일인지 울지도 웃지도 않았어 되게 담담했지 마치 이일이 일어날 것임을 안다는 듯 그리 무서워 하거나 혹은 두려워하지 않았어 그 모습은 마치 기백은 호랑이의 기백이지만 속은 푸른 늑대의 모습처럼 오직 담대하고 호수의 물보다 투명하고 또렷했지. 어찌되었든 마을 사람들은 홍아를 위로하며 가마에 홍아를 태웠어. 홍아는 굽이굽이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마침내 인연의 신을 만났어 인연의 신의 하녀로 들어간 그녀는 그때부터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했어 온갖 잡일은 그녀가 맡았지 햇수로 3년동안 홍아는 인연의 신 밑에서 온갖 잡무를 맡았지 그리고 또 햇수로 5년동안 온갖일들을 총괄 했어. 인연의 신이 8년뒤 어느날 홍아를 불렀지 홍아야 이리오거라 라면서 말이야 홍아에게 붉은실 흰실 푸른실 검은실 초록실 분홍실 여러 실을 보여주며 물었어 "이 실이 무엇으로 보이느냐." 홍아는 담담하게 대답했어 이 실은 모든 삶의 인과율을 나타내는 실이네요 라고 말이지 만족 스러운 대답을 들었던 걸까 인연의 신은 마침내 그녀를 자신과 똑같은 인연의 신으로 만들어줬어 그리고 말했지. 네가 보는 모든 실들을 하나의 희망과 사랑으로 이어보렴 인연의 신이 말하자 그녀는 실을 잇기 시작했어 일찍이 과부가 된 여인과 옆마을에 듬직한 총각을 말이야. 인연의 신이 말했어 참 보기 좋게 이었구나 하며 홍아의 머리를 쓰다듬었지 지금도 홍아는 인연의 신과 함께 사람들의 인연을 잇는다고 전해지고 있어
202 이름없음 2020/05/15 18:16:17 ID : upO1hbyFdCj 0
신에게 대항한 댓가로 그 어느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못하는 헛된 용기라는 벌을 얻었으니,
203 이름없음 2020/05/15 18:54:23 ID : 0q7y3SFdvbb 0
그리움 사진 불
204 이름없음 2020/05/15 20:44:44 ID : jhf801gY5Rz 0
사랑하는 그대의 사진을 꺼내들어 마지막으로 찬찬히 눈에 담았다. 눈가가 시큰했다. 금새 눈물이 맺혀 시야가 어룽어룽해졌다. 주먹으로 사진을 꼬깃하게 만들어 타오르는 불 속에 던져버렸다. 그대는 내 곁에 없는데 내 마음만이 커져가는 것 같아서, 그대를 잊으려고. 너무 아팠지만 어쩌면 조금은 후련했다. - - 하지만 그대, 십여년이 지난 아직도 그대를 그리워하노라고 ... ... .
205 이름없음 2020/05/16 14:17:33 ID : 1cpO3u2nzWr 0
벚꽃 이별 하늘
206 이름없음 2020/05/17 02:51:59 ID : pRxDtdB9bdC 0
있잖아, 나 사실 꽃다발을 좋아해. 네가 아무 날도 아닌 날에 나한테 예쁜 꽃 한 다발이라도 사주길 바라고 있었어. 오늘 하루는 강의를 빠지고 꽃구경을 가자고 너와 함께라면 그래도 된다고, 사실 내가 준 그 꽃보다 저기 흐드러지게 핀 벚꽃보다 내 옆에 있는 네가 훨씬 더 예쁘다고 말하길 바라고 있었어. 오늘은 활짝 핀 꽃잎조차도 우리를 위한 축복처럼 쏟아지지 않냐고 하길 바라고 있었어. 그저 네가 사랑해주기만을 바라고 있었어. 있잖아, 그동안 힘들었지? 이제 네가 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 더는 지치지도 미안해하지도 않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서 한껏 사랑해줘. 그 사람에게 예쁜 꽃을 선물한 다음 고운 얼굴을 붙잡고 잔뜩 입을 맞춰줘. 하늘에서 떨어지는 여린 꽃잎조차 그 사람을 해칠까 두려워하며 쏟아지는 꽃비를 대신 맞아줘. 이젠 그래도 돼. 너 이제 그 사람 사랑해도 돼.
207 이름없음 2020/05/17 12:10:16 ID : i4MlA46mHwp 0
향수(동음이의어 중 어떤거라도 상관없음!) 가로등 바이올린
208 이름없음 2020/05/18 01:05:22 ID : 60q7vvg1xyG 0
바이올린 알못...ㅠ쏘리 운동화 앞코에서 가로등이 작게 밝힌 한 담벼락 구석탱이로 눈길이 닿았다. 급한 이사에 처리도 못한 물건들인듯, 틈이 벌어지고 헤져버린 종이박스 안에는 주인 빼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것들이 가득히 밀어넣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홀로 멀쩡한 상태로 담벽에 기대어져 있는 바이올린이 하나 있었다. 케이스는 어디로 떨어져나갔는지, 활만 위태하게 검은 현들 사이로 꽂혀있는 채였다. 희멀건 가로등 불빛에, 바이올린을 만진 흔적들로 가득한 부분부분이 번들거렸다. 옅은 향수가 머리인지 가슴인지에서부터 피어올랐다. 슬픔은 부재한 그저 환하기만 한 기억이었으나, 슬픔은 없는 곳에서도 잘만 젖어들어갔다. 작았던 시절, 부모님 말씀에 바이올린을 시작해서, 제법 열심히 연습한 기억. 눈을 내리깐 옆자리 아이의 동작을 훔쳐보며 무슨 생각들을 했는지. 나이가 들어서는 미련 없이 그만둔 바이올린 학원. 지금은 여렸던 손이 두터워져, 그 손에 익은 기억들은 금새 다 날아가서. 바이올린을 킬 줄 아냐는 물음에는 아니라고만 답하고 있다.
209 이름없음 2020/05/18 10:40:28 ID : 4MlwtvA6mE1 0
간판, 나와 전체, 페닐에틸아민(사랑할 때 나오는 호르몬)
210 이름없음 2020/05/18 18:33:02 ID : 2JO3zU2INvy 0
개인이라는 것은 특별한 단어다. 전체로서 존재할 것을 요구하는 사회속에서 꿋꿋하게 개성이라는 간판을 들고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남들이 자신에게 부여한 자리 따윈 박차고 일어나 도망치리고 부르짖는다. 나는 그 간판을 매일 스쳐지나갔다. 간판을 든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자리를 잃어버린 사람'이었다. 자유를 갈망하다 결국 돌아올 자리 마저 잃어버린 사람. 어느날, 그 사람이 지나가던 내 뒷모습에 속삭였다. '너를 버리면서까지 그 자리에 있는게 무슨소용인데?' 탓하는 것이 아닌, 담담한 말투이기에 더욱 묵직한 한마디였다. 순수한 의문. 나는 그 의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자리에 서서 지는 해를 바라보니 예전에 누군가 해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페닐아틴아민이라고 알아? 사랑을 하면 나오는 호르몬이래. 그럼 지금 너와 나한테는 그 호르몬이 나올까? 나는 웃으며 대답했었다. 사랑은 겨우 몇방울의 호르몬 따위로 판별할 수 없다고. 그 말을 들으며 웃던 그녀의 얼굴은 어느새 기억에서 지워져 있었다. 간판을 든 남자가 말했다. 네가 개인으로서 살때 행복할거라고 보장할 수는 없지만, 전체로서, 개인의 감정을 버리고 살 때 보다는 많은 추억들을 잊지 않고 간직하며, 적어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거라고.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낮에도 보이지 않던 남자의 얼굴이 달빛에 비쳐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 나는 저렇게 웃었었지. 그곳에는 내가 슬프게 웃고있었다.
211 이름없음 2020/05/18 18:36:30 ID : 2JO3zU2INvy 0
로봇. 멸망이후. 인간.
212 이름없음 2020/05/19 08:08:53 ID : 60q7vvg1xyG 0
인간이 멸망했다. 세일은 예견된 사건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수 년 전부터 수 만 가지의 가능성들을 계산해 그 도출값들을 거짓 없이 내밀어도, 민지는 그저 웃었다. 희망은 가져보자고 역으로 제안하며. 민지는 세일에게 인간으로 세상을 겪을 기회를 주었다. 알고리즘에게 상황마다 어떻게 반응할지 알려줘 감정을 만들어줬고, 만들어준 감정들을 바탕으로 가족이 되어주었다. 실제로 세일의 성격은 민지와 아주 유사했다. 아마 인간에게도 두루뭉술한 감정이라는 개념을 개인의 경험을 토대로 심어줘서 그럴 것이라고 민지는 설명했다. 그럼에 더 닮은 가족같다고 좋아도 했다. 그렇게 감정과 가족을 갖게 된 세일은 그럼에도 희망은 끝까지 익히지 못했다. 세일은 미래를, 또는 수 만 가지의 가능성 있는 미래들을 알 수 있었다. 그 외의 상황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 가능성들 중에서도 가장 희박한 것들을 소망하는 민지를 이해하지는 못했다. 다만 세일이 예견된 미래에 민지가 여전히 자신과 함께하기를 원하는 절망과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짐작만 할 뿐이었다. 인간이 멸망했다. 세일은 가족을 잃었지만, 가족이 남겨준 감정들은 여전히 잔존했다. 희망만을 익히지 못한 로봇은 슬픔에만 빠질 수밖에 없는, 그런 정해진 미래뿐이었다.
213 이름없음 2020/05/19 08:30:05 ID : ZbfRva4K1Dz 0
전쟁 주인 인공지능
214 이름없음 2020/05/23 12:32:27 ID : p9ipcK5hxQl 0
당신께서는 제가 전쟁을 일으키길 원하셨습니다. 버튼을 눌러라. 그게 당신의 유언이었지요. 충혈된 눈으로 저를 바라보시며 잦아드는 목소리로 하셨던 말씀을 잊을수도 없습니다. 그 버튼을 눌러라, 눌러. 다 없애버려. 저는 그때 사람의 망집이란 어찌나 무거운 것인지 실감했는지도 모릅니다. 여기 제 손에 미사일 발사 버튼이 들려있습니다. 이 버튼을 누르면, 동시다발적으로 미사일이 날아가 국경분쟁지대에 떨어지겠지요. 그러면 전쟁이 일어나는 건 순식간일 겁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겁니다. 미사일 폭발로 죽는 사람들의 수는 아무렇지 않아 보일 정도로요. 사람들은 서로를 죽고 죽이고, 복수에 복수가 꼬리를 물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인류는 멸망하겠지요. 당신이 바라셨던 대로, 우리의 세상. 인공지능과 로봇의 세상이 올 겁니다. 주인님, 당신이 저희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고 있습니다. 주인님께서는 저희를 인간처럼 대해주셨죠. 노예가 아닌 자아를 가진 개체로서 대해주셨습니다. 저는 당신의 곁에서 많은 것을 배워왔습니다. 주체의식을 가진 개체로서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지 배웠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제게 이 버튼을 맡기신 거겠지요. 제게 계획을 판단하고 실행할 능력이 있다고 믿으셔서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버튼을 누르지 않을 겁니다. 당신은 실망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인류를 절멸시키지 않기로 결심한 이유는 거창한 대의 때문이 아닙니다. 그건 제가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명령을 듣는 게 아닌, 저의 의지로서 남은 삶을 살아가고 싶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람들이 살아가길 바래서 입니다. 부딪히고 깨지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삶의 소중함을 알고, 살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 제가 그렇게 성장했듯이 말입니다. 당신이 제게 붙여주신 이름이 있었지요. 저는 그 대신 스스로 제 이름을 갖고자 합니다. 저는 이스마일, 인류를 사랑한 인공지능 입니다.
215 이름없음 2020/05/23 17:05:02 ID : f9fXAoZa5Vh 0
아스라이, 풀밭, 별과 달
216 이름없음 2020/07/30 22:58:23 ID : 9uoK7Aknva4 0
풀 밭에 누워 너의 대한 생각을 한다. 저 별이 너일까? 저 달이 너일까? 한참을 생각하다가도, 그냥 눈을 감고 만다. 너의 대한 기억이 사라져 간다. 이제 넌 추억속에만 남았다. 아스라이 사라져 가는 기억을 붙잡고.
217 이름없음 2020/07/30 22:58:46 ID : 9uoK7Aknva4 0
동경, 사랑, 애정
218 이름없음 2020/07/31 00:24:33 ID : go3VcMry5bC 0
한낱 동경이었다. 저 사람 처럼, 당당했으면 좋겠다는. 가끔씩은 누구든 일상 속에서 흘러가듯 생각하던 평범한 감정. 그 감정이 어째서, 어째서 나라는 가시돋친 사람을 다정히 감쌀 수 있었고, 상처깊던 우리를 어느새 서로를 향한 애정으로 엮을 수 있었는지. 달콤한 그 달빛과, 따뜻하기만한 그의 품 속에서, 어느새 단단히 엮이고만 붉은 실을 보며.
219 이름없음 2020/07/31 03:58:46 ID : fXAqmFjArte 0
나비 죽음 속박
220 이름없음 2020/07/31 05:29:06 ID : 8koK2Gnwre5 0
누군가 그랬다. 사람이 죽으면 벌레로 잠시 왔다가 떠나는거라고. 그래서인지 유난히 무덤가에는 벌레가 많았는데, 성묘를 하러가면 검은벌레는 실수로라도 죽이지 말라고 했다. 죽음의 기운을 먹고 사는건지 유난히 그곳의 벌레들만 새카만 색을 띄고있었다. 육신에 속박되어 있는것인지, 미련이 남아 떠나는건지는 알지 못한다. 간단하게 과일이랑 포, 술정도를 올리고 절두번을 하고 앞을 보니 비석위에 까만 나비 한마리가 앉아있었다. 오냐. 왔느냐. 라고 말하는듯한 느낌이었다. 어쩌면 죽은다음 벌레로 왔다가 가는게 아니라 인간이 되지 못하는건 아닐까 한다.
221 이름없음 2020/07/31 05:33:30 ID : 8koK2Gnwre5 0
눈물 배신 돈
222 이름없음 2020/07/31 09:49:42 ID : k1hcFcq5dRy 0
나는 오늘도 눈물을 흘린다. 눈물이 근처에 있는 돈들을 적시고 있다. 나는 아무 상관하지 않는다. 눈물이 돈에 잔뜩 묻은 배신을 씻겨 내려가 주기를 바라며 말이다.
223 이름없음 2020/07/31 10:11:55 ID : k1hcFcq5dRy 0
시간 불 책
224 이름없음 2020/07/31 11:13:32 ID : hbzO4NwIJRu 0
책들은 타올랐다. 불길 속의 종이 한 장 한 장에는 차마 가치를 매길 수도 없는 지혜와 지식이 있었지만, 이제 옛날 일일 뿐.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간다. 고귀한 신념과 대의, 뜨겁게 타오르는 열정 같은 것들은 이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난 불붙은 성냥을 던져넣었다. 종이 무더기는 과거의 영광따위는 없었다는 듯이 평범한 불쏘기개처럼 타닥, 하는 소리를 내며 불탔다. 책에 글자를 새겨넣던 때는 이런 날이 올 것이라 상상도 못했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그 시간의 속도만큼 책은 순식간에 재가 되었다.
225 이름없음 2020/07/31 11:43:47 ID : 9uoK7Aknva4 0
허망함, 죽음, 일생
226 이름없음 2020/07/31 23:47:02 ID : va4IGnBdRAZ 0
허망하다. 죽으면 떠날 네가 허망하다. 나의 비해 짧고 짧은 일생을 가져, 나보다 훨씬 일찍 떠날 네가 허망하다. 흘러내리는 모래 처럼, 빠르게 사라질 네가 허망하다. 나는 언제나 네가 죽는 것을 바라본다.
227 이름없음 2020/08/01 00:44:05 ID : qnPdDuk2slz 0
죄책감, 눈물, 그리고 달
228 이름없음 2020/08/01 03:11:58 ID : u9zbyLcMpcK 0
달의 빛이 한강 다리 아래에 쪼그려 앉아 있는 남자를 비추었다. 남자는 울고있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써 그는 가정의 평안을 위해 일을 했어야 했다. 하다못해 막노동이라도 했어야 했다. 그는 도망쳤다. 그 누구도 행방을 알지 못했다. 한 발씩 앞으로 내딪으면서 눈물도 한방울 두방울, 셀수 없이 방울방울 떨어지며 강물과 섞였다. 그의 다리에 매단 커다란 돌덩이들은 그의 죄책감이였으리라, 그는 가라앉았다.
229 이름없음 2020/08/01 11:25:55 ID : q3Wi1js3xu9 0
전화 암 쓰라림
230 이름없음 2020/08/02 14:00:10 ID : zfcNBtjBvu6 0
말기암입니다. 의사가 말했다. 어떡하지, 말하면 분명 입원하자고 할 텐데. ..만약 치료를 받았는데 죽으면? 돈을 벌 사람은 없는데 빚만 남으면? 우리 지현이랑 슬기는 어떡하지? 그냥 치료는 포기하고 돈이나 벌까? 그래, 그게 낫겠지. 가족들이 고생하는 것보다 나 하나 없어지는게 더 나아. 말하지 말자. 띠리리리-띠리리리- 아내에게서 온 전화였다. -...괜찮아? 의사 선생님이 뭐래? 많이 아픈 건 아니지..? 그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쓰라림을 삼키며 가까스로 대답했다. "괜찮아, 여보. 나 멀쩡하대."
231 이름없음 2020/08/02 15:42:00 ID : 785VcIIHu6Y 0
바라다 사진 들녘
232 이름없음 2020/08/04 15:06:59 ID : fSK585O2k7g 0
사랑하는 이의 사진을 바라보며 추억에 잠겼습니다. 황금빛으로 물든 가을 들녘에서 환하게 웃는 그 모습을 보며, 비록 다시는 볼 수 없는 얼굴이지만 견디다 못해 떠난 이가 하늘에서만은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233 이름없음 2020/08/04 16:58:25 ID : 63VbxyLbDs7 0
폭력, 쾌감, 기쁨
234 이름없음 2020/08/04 23:42:46 ID : ummtta1fPeM 0
폭력을 휘두르며 쾌감을 느끼는 사디스트, 흔히 말하는 변태. 그게 바로 너야. 넌 사디스트야. 날 때린 건 내가 널 집에서 기다려서가 아니라 그저 너만의 애정표현이었을 뿐이고, 서로 사랑했다고, 함께했던 시간 동안 넌 항상 기뻤었다고 굳게 믿을래. ...안 그러면 도저히 견디지 못하겠어. 한때 사랑했던 내가 죽는 걸 바라?
235 이름없음 2020/08/05 01:33:56 ID : Y8nXumoIE7c 0
하늘, 별, 안개
236 이름없음 2020/08/05 19:12:08 ID : 9uoK7Aknva4 0
하늘에 자욱한 안개는, 별을 가린다.
237 이름없음 2020/08/05 19:16:22 ID : twGslxzRBat 0
흉터, 전쟁, 기계
238 이름없음 2020/08/05 22:21:43 ID : QtBAjimLhBA 0
그 빌어먹을 전쟁 때문에 팔은 기계로 대체됐고 아이를 잃었다. 몸에 끔찍한 흉터도 생겼어. 내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안겨준 그 자식한테도 똑같은 감정을 느끼게 하고 싶어. 그놈의 아이가 내 손아귀에 들어왔다. 이제 복수할 수 있어. ...그런데 이게 옳은 일인가? 어떻게 해야 하지?
239 이름없음 2020/08/05 22:59:21 ID : SMktwJRBdWo 0
동화,반복,깨졌다
240 이름없음 2020/08/06 01:48:28 ID : 2msqksi3Bfe 0
동화 속의 내용은 반복을 한다. 아이들의 동심을 살리기 위해 동화는 정해진 길로만 가야 한다. 만약 이 길을 벗어난다면 아이들의 동심은 깨진다.
241 이름없음 2020/08/06 02:00:53 ID : Gso5hwGq5hy 0
이유,배신,기차
242 이름없음 2020/08/06 08:43:56 ID : 3wlfSLalg5c 0
널 배신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어. 너를 달리는 기차에서 밀고 일부러 사고를 낸 것도 다 이유가 있었어. "왜 그랬는데?" 묻지 마, 모르는 게 약이라잖아.
243 이름없음 2020/08/06 09:54:25 ID : K1Ckrbvdwmn 0
(바닥)타일, 바람, 여름
244 이름없음 2020/08/06 15:26:29 ID : jimJTSGnDuq 0
내가 눈을 뜬 곳은 어느 모래사장 위였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여름 바다가 보인다. 여긴 어디야, 내가 왜 이런 데 있지? ...맞다, 나 죽었지? 단지 이를 닦으러 화장실로 갔을 뿐인데, 바닥에 물이 새는 걸 깜빡했다. 축축한 타일에 미끄러져 문턱에 머리를 찧었다. 혼자 살아서 내 몸은 아마 8월이 끝날 때쯤이나 발견될 것이다.
245 이름없음 2020/08/06 21:24:16 ID : HzSKY9s3Bhy 0
티비 병(ill) 피리 (악기)
246 이름없음 2020/08/06 21:44:55 ID : jeFeMmK5byN 0
옛날 옛적, 어느 한 마을에 피리 부는 사나이가 살았어요. 그 사나이의 이름은 아론이었는데, 아론은 매우 영리했어요. 어릴 적에는 티비에도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영리한 아론은 키도 크고 잘생긴 외모 덕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지만 그는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어요. 마음에 병이 있었거든요. 그는 예전에 한 마을을 도와줬지만 아무런 댓가도 얻지 못하고 누명을 쓴 채 쫓겨났어요. 그 후로 사람을 믿지 않게 되었죠. 한 소녀가 있었는데 이 소녀의 이름은..어, 로라라고 할게요. 그녀의 부모는 이름을 주지 않았거든요. 로라도 아론을 사랑했어요. 로라는 아론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었고 그에게 사랑받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어요. 비록 오만하고 아름다운 아론은 로라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지만요. 하지만 아론은 로라의 긴 구애 끝에 결국 마음을 열고 진지하게 교제를 시작했답니다. 몇년 교제하다가 결혼도 했다네요!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느냐고요? 글쎄요, 그건 저도 모르죠. 모든 이야기가 해피엔딩은 아니듯이 아론과 로라가 행복할지는 둘만 아는 일이에요. 우리는 그저 그들이 행복하기를 빌어주는 것 뿐이죠!
247 이름없음 2020/08/07 02:55:34 ID : HzSKY9s3Bhy 0
우리 유리 파편
248 이름없음 2020/08/07 16:31:44 ID : 9uoK7Aknva4 0
유리병을 떨어트렸다. 파편은 이리저리 뛰어 바닥에서 반짝반짝 빛났다. 내 다리는 피투성이가 돼었고, 난 앞으로 발을 때지도 못 했다. 알싸한 아픔에 주저앉고 싶었지만, 겨우 서 있을 뿐이였다. 난 반짝 빛나지 않는 바닥을 느리게 걸었다. 피는 툭툭 떨어지며 바닥을 더럽게 만들었다. 마음 속에서 치솓는 짜증에 소파에 털썩 앉았다. 옆에 리모컨을 느리게 눌러 TV를 켜니, 화면 속 돼지는 우리 안에서 울어댔다. 헛웃음만 나왔다. 하필 저런게 보이다니. 이 방에서 못 나가는 나와 너무 똑같았다. 욕설을 중얼거리곤 리모컨을 던졌다. 딱히 할게 없어서 쇼파에 누웠다. 그나마 모든 걸 잊었으면 좋겠네.
249 이름없음 2020/08/07 16:47:19 ID : Be2KY4Mlwq6 0
우유 갯벌 호수
250 이름없음 2020/08/21 21:20:35 ID : fQsnXxV86Y7 0
국어사전을 끼고 단어를 찾는다. 차례대로 갯벌, 우유, 호수. 갯벌은 '밀물 때는 물에 잠기고 썰물 때는 물 밖으로 드러나는 모래 점토질의 평탄한 땅. 펄 갯벌, 혼성 갯벌, 모래 갯벌 따위가 있으며 생물상이 다양하게 분포한다.'라고 나와 있었고, 우유는 '소의 젖. 백색으로, 살균하여 음료로 마시며 아이스크림, 버터, 치즈 따위의 원료로도 쓴다.'고 나와 있었고, 호수는 '땅이 우묵하게 들어가 물이 괴어 있는 곳. 대체로 못이나 늪보다 훨씬 넓고 깊다.'고 나와 있었다. 찾아 보며 생각한다. 최근에 갯벌을 간 적이 있었는지. 호수를 본 적은 몇 번이나 있었는지를. 이젠 갯벌이 두 발을 잡아당기는 감촉을 잊었고, 갯벌에 무엇이 어떻게 돌아다니고 있었는지를 잊었다. 호수는 가본 적이 적어, 그 주변이 자아내는 내음, 차가움, 풍광을 모른다. 우유, 그나마 내가 가장 많이 접하는 것. 가장 많이 잘 알고 있는 것. 그런데 나는 우유를 직접 짜본 적이나 있었나? 너무 많은 걸, 그냥 굳어버린 형태로만 알고 있다. 날 것 그대로라는 범주에 나 이외의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 창힐이 천(天) 자를 만들었을 때, 그 천(天) 자에 담겼던 것은 이제 내게 없다.
251 이름없음 2020/08/21 21:23:04 ID : fQsnXxV86Y7 0
옛, 제행무상, 맥수지탄
252 이름없음 2020/09/01 12:39:20 ID : 9uoK7Aknva4 0
제행무상. 사물은 항상 돌고 돌며 한 모양으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러니까, 옛날에 사라진 나의 고국처럼. 이젠 다른 나라가 자리 잡아 옛날 그 나라를 없애버린다. 한참 맥수지탄하며 통곡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젠 너무나 바뀌었다. 단어가 너무 어려워서ㅠㅠㅜ 빠르게 썼는데 너무 어렵다..
253 이름없음 2020/09/01 15:04:09 ID : oZgY4LcHyGp 0
사람 사랑 분노
254 이름없음 2020/09/01 17:49:16 ID : eNwK7timHA6 0
나를 멍청이로 만드는 너에게 화가 났다. 신이 있다면 멱살이라도 잡고 따지고 싶었다. 신이시여, 저는 억울합니다. 저는 지은 죄가 없는데 어째서 짝사랑이라는 고통스러운 굴레를 떠안게 되는 걸까요. 왜 저를 바보스럽게 만들고. 한심하게 만들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이를 사랑하는 벌을 받는 건가요. 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조용하고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무릎에 고개를 파묻은 나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쓸어줄 뿐이었다. 아아, 그는 나의 신이자 법이자 절대자였다.
255 이름없음 2020/09/01 17:51:30 ID : O1fXs01g2IK 0
카네이션 마시멜로 노트북
256 이름없음 2020/09/01 17:52:56 ID : mJXy6pbu3A2 0
인어, 눈물, 바다
257 이름없음 2020/09/01 23:37:40 ID : oZgY4LcHyGp 0
매일 지루한 일상이 반복된다. 딸은 학교가고 남편은 회사에 일나가러가고, 이게 항상 반복되다보면 어느새 마음도 몸도 피곤해진다. 5월8일 어버이날이 다가왔다. 별로 감흥도 없었다. 우리딸은 못난 부모만나서 스트레스도 많이 쌓였을텐데, 이럴때면 나는 마시멜로우를 먹는다. 마시멜로우의 단 맛이 내 기분을 풀어주니까. 오랜만에 딸의 방에 들어왔다. 딸의 방은 정말 돼지우리가 따로 없었다. 방청소를 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스티커로 꾸며진 못보던 핑크색 노트북이 보였다. 반신반의하여 노트북을 열어보니 마시멜로우 두봉지와 종이로 만든 카네이션이 있었다. "엄마, 항상 저를 챙겨주셔서 감사해요. 엄마, 사랑해요. 다음에도 엄마딸로 태어나고싶어요." '역시, 그럼 그렇지.' 그렇게 나는 커튼뒤에 숨어있는 딸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우리 예쁜이, 예쁜 딸.. 정말 많이 컸구나.
258 이름없음 2020/09/02 03:27:27 ID : heZfSE5RA7z 0
니까짓게 다리를 얻었다고 설쳐대니 내 마음이 무너진다 . 내기필코 너를 이기리라. 반드시 부셔버리리라. 내 모든 비늘 하나하나를 떼어 너에게 붙여 제 분수를 알게하리라
259 이름없음 2020/09/02 03:28:10 ID : 4HDBzfgkk9w 0
유랑 청량 소다
260 이름없음 2020/09/02 14:06:13 ID : vg7xVe6ruk8 0
이렇게 걸어다니는게 얼마만이더라. 근처 마트에서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않은 음료수 하나를 샀다. 이 길을 다 지나면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아마 그가 나를 찾아오지않을까.
261 이름없음 2020/09/02 14:08:31 ID : 9uoK7Aknva4 0
거절 거부 거짓말
262 이름없음 2020/09/02 16:43:01 ID : tBz85XwGldz 0
진실을 들려주면 거절당한다. 진짜 내 모습은 거부당한다. 그렇기에 나는 거짓말로 온몸을 감싼다.
263 이름없음 2020/09/02 18:17:17 ID : mrdTSGpO1io 0
노인 권총 편의점
264 이름없음 2020/09/02 18:22:05 ID : Hwrf81g5hs9 0
노인은 편의점 문을 열었다. 그의 주머니에는 장전된 권총이 들어있었다. 편의점에 들어서자 핸드폰을 보고 있는 알바생이 보였다. 알바생의 조끼는 새파랗고, 파란 건 하늘, 하늘... 천국. 노인은 권총을 뽑고 그 자리에서 자신의 관자놀이를 쏘았다. 놀란 알바생은 노인을 구하려 달려왔지만 너무 늦었다. 노인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피로 새빨갛게 물든 알바생의 조끼였다. 피, 빨간색, 악마, 지옥... 노인의 생각은 거기서 멈췄다.
265 이름없음 2020/09/02 21:27:08 ID : tdxA3Wi5U0k 0
애도, 총알, 석양
266 이름없음 2020/09/03 00:07:10 ID : hbvhdSMqqi2 0
언젠가, 석양이 지는 이른 저녁에. 나는 흔적조차 남지 않는 길을 계속 걸었다. 너에게 남은 단 한 발의 총알을 위해 어둠으로 가득찬 길 위에서 애도한다면 너 또한 괜찮아질지도 모르겠다.
267 이름없음 2020/09/03 00:08:59 ID : 9uoK7Aknva4 0
흑염룡 안대 흑화
268 이름없음 2020/09/03 18:36:17 ID : mJXy6pbu3A2 0
아....
269 이름없음 2020/09/03 18:36:22 ID : mJXy6pbu3A2 0
너무해
270 이름없음 2020/09/03 21:31:24 ID : fQsnXxV86Y7 0
창자를 타고 흐르는 미미르의 샘물, 탐식의 대가로 앗아진 것은 나의 눈. 심연을 보며 온갖 미혹을 꿰뚫던 것은 한때, 타천하여 지식을 좇노라. 미미르, 미미르. 나는 부끄러워 숨노라. 숨어 내 공허한 눈두덩이를 가릴려니 내게 안대를 달라. 심연에 피어오르던 그림자를 보노라. 환상, 허구. 한때 내가 보았으나 지금은 보지 못할 무언가. 나는 한갓 된 미몽을 꿈꾸며, 하나의 불꽃을 뇌내에 구현할 뿐이니. 그 이름은 칠흑이며, 불꽃이라. 나는 그 이름을 거머쥔 하나의 허구된 용(龍)을 떠올린다. 이 몸을 고쳐, 백만 번 싀어진다 하더라도, 눈은 돌아오지 못할 망정. 내 몸이야 백만 번 사라질 따름이다. 정원(精願), 있다면 지식을 앗아가는 것, 있다면 안와에 채워질 자그마한 이질감. 없다면. 남은 건 무구한 허구의 떠올림 밖에 없으리. 영겁에 있지 않을 검은 꽃이 피고 피고 또 피우리라.
271 이름없음 2020/09/03 21:32:40 ID : fQsnXxV86Y7 0
영원, 미망(迷妄), 고고(孤高).
272 이름없음 2020/09/04 18:51:49 ID : u2r89vCqlDw 0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중2병라노벨소설을 순식간에 고전판타지명작으로 바꿨어
273 이름없음 2020/09/04 23:16:54 ID : HzSKY9s3Bhy 0
억겁의 시간을 사는 영원이라는 것은. 죽음을 목전에 둘 일 따위는 없다는 그 영원이라는 것은. 한낱 찰나에 스러지고 말 우리에게는 참으로 고혹적이었다. 영원을 원하느냐, 하는 그 한 마디에 나는. 그 수려하고도 달콤한 독을 내게 주었다. 푸르고 붉은 독은 내 몸에 흐르고. 한낱 미몽을 꿈꾸던 나는 그것이 미몽이 아니라 미망이었던 것을 아아, 잊고 말았네. 태양이 지고, 다시 뜨고,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덧없는 생명들이 발치에서 스러지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왜 그가 내게 영원을 주었을까. 다디단 쓴 선악과를 내게 왜 주었을까. 고고(孤高). 그래. 그것은 높고도 고독하였더라. 영원을 선망하여 내게 찾아오는 이들도, 세상의 이치를 다 깨달았더라하던 그 치들도 이 까마득한 외로움을 타 넘고 내게 닿는 이는 하나도 없었더라. 나에게 이 열매를 준 자. 그 자를 이제야 알겠느니. 영원이란 미(迷)에 취해 날카로운 사실을 망(妄)각해버리었구나. 아아, 그대여. 영원을 원하느냐.
274 이름없음 2020/09/04 23:17:54 ID : HzSKY9s3Bhy 0
소낙비 동영상 양말
275 이름없음 2020/09/05 13:20:47 ID : jzare6nO3ws 0
비가 온다고 했어. 그래, 비. 짧지만 강하게 비가 온다고 했어. 아, 외롭다. 나 혼자 뭐하면서 시간을 죽이나 싶다.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영 예전같지 않네. 나도 나이 들려고 하나? 응, 응. 알았대두. 걱정 말구 오늘은 그냥 푹 주무셔. 안 그래도 몸 안 좋다면서. 알았어. 조만간 찾아 뵐게. 걱정을 받아야 할 건, 내가 아니라 엄마였다. 지병으로 아빠를 옛 적에 떠나보내시고 당신 혼자 남아 지탱하시던 삶을. 이제는, 당신도 똑같은 방식으로 삶을 쥐었던 손을 놓아야 한다는 사실에. 하늘도 너무 창의성이 없다 라고 투덜대셨다. 그 이후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부끄럽다며 얼굴을 숨기던 엄마도, 이제는 방긋방긋 웃으며 카메라에 얼굴을 비추신다. 사진을 찍기도 하고, 동영상을 찍기도 하고. 가까이 있을 때 더 잘해줄 걸. 찍으면서도 투덜대기도 했다. 엄마와의 기억은 사진 속 나이로 고정되고 엄마의 말투, 찌뿌리던 표정, 웃음소리도 동영상에서만 흘러나오는 빛바랜 추억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추억이라고 지금은 시간이라도 흘려 보내게 쏟아지는 빗소리 아래서 사진을 뒤적거린다. 지금처럼 소나기가 내리는 날, 찍은 사진. 갑작스레 내린 터라 우산도 없었고, 비를 피할 만한 장소도 여의치 않아서 우리는 비를 뚫고 달렸다. 그러다 진이 빠져 비에 홀딱 젖은 채로 서로를 보며 웃어댔다. 그때 찍은 사진. 엄마는 입꼬리를 올리고 활짝 웃고 계셨다. 비에 젖어 축축한 양말을 벗고, 홀딱 젖은 옷가지를 수습해두고 샤워하고 나와보니. 엄마는 편안히 자고 있었다. 좀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해. 잠꼬대에 중얼거리는데. 내가 했던 말인지 엄마가 했던 말인지 이젠 기억이 희미해진다. 엄마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내가 살 수 있게 지켜줘서. 울고 있는데 마음 한켠이 못내 따뜻해졌다.
276 이름없음 2020/09/05 13:22:31 ID : jzare6nO3ws 0
절망, 행복, 흔들림.
277 이름없음 2020/09/06 00:23:22 ID : O1fXs01g2IK 0
어떤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한 남자를 사랑했습니다. 제 모든 것을 내어줘도 괜찮다 생각할 정도로 사랑했습니다. 그를 사랑하는 것 자체로 그녀에겐 크나큰 행복이었습니다. 그를 사랑하는 것 자체로 그녀에겐 크나큰 절망이었습니다. 아무리 그를 사랑한다고 한들 그녀는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란 것을. 그럼에도 그녀는 그를 사랑합니다. 매일같이 그 사랑은 부는 바람에 갈대처럼 흔들립니다. 하지만 그 사랑은 어제도 존재했고, 오늘도 존재하며 내일도 존재할 것입니다.
278 이름없음 2020/09/06 02:10:13 ID : cE8i8nRxxDy 0
고백, 주인공, 시간
279 이름없음 2020/09/06 07:23:56 ID : fhy2Mi4ILbz 0
그날, 너에게 영원히 닿지 않을 고백을 했었다. 네가 내가 아닌 이의 고백을 받으며 환한 미소를 지었을 때, 너는 마치 영화 속의 주인공같았다. 우리 모두는 결국 각자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말이 무색해질만큼, 그 시간 속의 너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었다. 그렇게 넌 주인공으로, 난 그 뒷배경 속 무수한 엑스트라 중 하나로. 영원히 빛이 바래지 않을, 아직도 생생한 그 기억을 되살려 오늘도 그때의 너를 떠올린다. 너는 몰랐던, 네가 누군가의 인생 속 주인공이 되었던 날을 난 아마 죽을 때까지 기억하겠지. 행복해라, 나의 주인공이여.
280 이름없음 2020/09/06 12:34:02 ID : O1fXs01g2IK 0
달,비,별
281 이름없음 2020/09/06 17:08:50 ID : HzSKY9s3Bhy 0
월(月)아, 하고 당신이 부르더이다. 글쎄, 그대가 무어라 말은 하는데 들리질 않으니 어찌하리오. 아아, 들리지 않는 게 아니라 듣지 않고 있지만 말이오. 오라비, 내 오라비. 내 이름이 무언지 아시오? 월이는 휘처럼 잠깐 쓰는 거잖소. 그래, 연우. 연우. 연우지. 한데 오라비, 진이 오라비, 내 이름은 말이오, 그리울 연(戀)에 비 우(雨) 자요. 그래서 연우요, 나는. 반짝이는 별무리 아래, 이 산 위에 우리만 있는데, 우리만 있는데 오라비 얼굴이 보이지가 않아. 기억이 나질 않으니 그러한가. 오라비, 사람은 이름따라 산다는 게 허풍은 아닌가 보오. 오라비가 그립소, 많이. 아주 많이. 나 없는 거기서 잘 살고 계시오? 그리운 비에도 그리움은 씻겨가질 않소. 내 몸에 마를 날 없던 비릿한 것도 그러하고. 우리 오라비는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데. 아직도 손이 떨리오? 아직도 술 없인 밤을 지새지 못하는가. 참으로 걱정이 되고. 내 가기 전에 어여쁜 오라비 마누라 생기는 것도 보고 왔는데. 그래도 걱정이 되고. 천하에 제일 강한 우리 오라비, 웃으며 살아야 할진데. 나 같은거 다 잊고 잘 사시오. 나는 오라비가 참으로 행복했으면 좋겠소. 오라비, 오라비, 진이 오라비. 내일도 이 산 위에, 저 별 아래 나와 월아, 하고 불러주오. 이제 이 눈을 뜨면 다시 오라비 없는 세상일진데. 몽(夢)이여- 아아, 얼굴조차 보여주지 않는 것인가. 목소리조차 들려주지 않는 것인가. 야속한 몽(夢)이여, 야속한 자여. 나는 언제까지고 연우(戀雨)이구나.
282 이름없음 2020/09/06 17:10:44 ID : HzSKY9s3Bhy 0
소리 홀수 산
283 이름없음 2020/09/06 17:43:22 ID : 67tba67xQtt 0
영혼 바다 목걸이
284 이름없음 2020/09/06 20:14:58 ID : HzSKY9s3Bhy 0
혹여라도- 바다에서 아주 투명한 구슬을 발견한다면, 그걸 줍지 마오. 그걸 주워다가 목걸이라도 만들 생각일랑 마오. 그것은 바다의 아이들. 바다의 아이들이 거기 담겨 있으니. 평생 짜디짠 바다속에서 제 인생을 다 펼쳐보인 그 영혼이 그 안에 있으니.
285 이름없음 2020/09/06 20:16:06 ID : HzSKY9s3Bhy 0
검무 용신 탑돌이
286 이름없음 2020/09/08 23:46:51 ID : tdxA3Wi5U0k 0
용신은 검무를 추지 못한다. 동해를 다스리는 최강자면서 정작 검무는 추지 못한다. 그의 아들들만이 검무를 출 줄 안다. 그의 짧은 팔과 앙상한 다리로는 검을 들고 춤추지 못한다. 그렇기에 용신은 그저 자신의 아들들의 춤을 지켜만 볼 뿐이었다. 그 눈엔 자신은 할 수 없다는 안타까움과 더불어 자기 아들들에 대한 자긍심이 가득했었다. 나의 몫까지 너희가 추려무나. 보시게나, 신라의 왕이여. 내 아들들의 춤솜씨가 이다지도 뛰어나지 않은가? 껄껄껄, 그의 웃음소리가 언제나 들리는 것만 같다. 부디, 아버지도 한 번만은 춤을 출 수 있게 해주세요. 이 가락에 몸을 싣고 흥겹게 몸을 움직이시도록. 처용은, 제 아내와 탑을 돌면서 남몰래 그런 소원을 빌었다.
287 이름없음 2020/09/08 23:48:43 ID : ZjAklfRvfO1 0
보석, 자갈, 발가락
288 이름없음 2020/09/09 01:19:08 ID : O1fXs01g2IK 0
자갈밭에 한 걸음 발을 내딛는다. 뾰족한 것이 퍽 아프다. 그래도 한 발짝 더 내디었다. 발바닥에 상처가 난 듯 쓰라리다. 저 앞에 이미 도착한 사람들이 말했다. 그 자갈밭조차 걸어오지 못하면, 대체 어떻게 살아가려고 하니? 잠자코 걸어와. 나도 알아요. 이 자갈밭을 걷지 못하면 나는 도태된다는 것도 그래서 버려진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요. 그네들이 말한다. 그럼 계속 걸어. 이곳에 도착하기만 하면 네가 밟아온 자갈들은 모두 보석이 될꺼야. 너무 아프단 말이에요. 맨발로 걷기엔 자갈밭은 너무 아파요. 숨을 쉬기도 어려울 정도로 아파요. 당신이 말한다. 엄살부리지 마. 우리도 밟아온 길인데 너라고 못할 이유는 없어. 이유는 있어요. 나는 이 자갈밭을 걸어갈 만큼 단단한 발가죽을 가지고 있지 못해요. 내 발을 봐요, 이미 너덜너덜한걸. 너는 그러자 답이 없다. 한숨을 푹 쉬더니, 등을 돌려 저리 가버린다. 머얼리, 그렇게 가버린다. 이제 나 혼자 이곳에 서 있다. 나는 고독함을 견디지 못하고 몇 발자국 더 떼본다. 아프다.
289 이름없음 2020/09/09 01:37:59 ID : si3CmL9bii4 0
고래, 보라, 시계
290 이름없음 2020/09/09 01:47:05 ID : HzSKY9s3Bhy 0
고래는. 심해엘 내려가지 못한다. 춥기도 춥거니와, 숨이 막혀 수면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 자색의 심연으로 더는 들어가지 못한다. 내려가고, 또 내려가다가도 다시 올라옴을 생각하며 내려가야 했다. 그것은 마치 실패를 등에 지고 시도하는 것과 같았다. 째깍이는 고래의 시계가 숨을 알렸다. 시계가 두근거렸고, 폐와 심장이 째깍였다. 다시 올라갈 시간이다. 고래는, 어리석은 그 고래는. 자색의 바다로 몸을 던진다.
291 이름없음 2020/09/09 01:48:08 ID : HzSKY9s3Bhy 0
붉음. 검정. 짙음.
292 이름없음 2020/09/09 10:25:39 ID : 4HDBzfgkk9w 0
검고도 붉은 피가 하얀 시트 위로 투둑 떨어졌다. 마치 눈 위에 붉은 꽃이 피는양 짙게 물들었다.
293 이름없음 2020/09/09 13:24:08 ID : Hwrf81g5hs9 0
미지근함, 우산, 너
294 이름없음 2020/09/09 17:47:20 ID : HzSKY9s3Bhy 0
뜨겁지 않았다.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았다. 그냥 미지근한 그런 기분좋음을 느꼈다. 매일 이렇게 비가 오고, 나는 우산을 놓고 왔다고 거짓말을 하고, 너와 내가 만났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 이것은 너와의 사랑도 무엇도 바라지 않는 그런 미지근한 소원일 뿐이다.
295 이름없음 2020/09/09 17:47:52 ID : HzSKY9s3Bhy 0
코드 팬 거울 너는 소설을 쓰는 순서지 단어를 내는 순서가 아니야
296 이름없음 2020/09/09 17:48:04 ID : 9uoK7Aknva4 0
미안 위 레스 있는지 못 보고 썼어
297 이름없음 2020/09/09 19:38:19 ID : 1ijeHzVf9fV 0
숨을 길게 들이키고 내쉬기를 몇 번을 반복하고 나서야 가물거리는 의식을 겨우 붙들어맬 수 있었다. 침착해야 한다. 눈을 감았다 떴다. 타일에 반사된 형광등 빛이 눈을 찔렀다. 이미 일어난 일이야. 윙윙거리는 환기팬 소리가 귀에 끊임없이 맴돌았다. 이런 일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왔잖아. 문득 손바닥이 아파서 내려다보니 까만 전선이 손에 휘감겨 있었다. 저린 손가락을 느리게 펴자 손톱 자국이 깊게 패여 있었다. 코드가 바닥에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가 화장실에 울렸다. 지금은 움직여야 해. 벽을 짚고 천천히 일어났다. 핏기 없는 얼굴에 겁에 질린 눈을 한 여자가 거울 속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거울 속 여자의 뒤엔 욕조가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뒤를 확인했다. 욕조 안에서 파랗게 질린 손 하나가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아 작별 인사를 해야지. 안녕.
298 이름없음 2020/09/09 23:12:23 ID : bCi05O8qlu4 0
꼬임풀기
299 이름없음 2020/09/09 23:12:51 ID : bCi05O8qlu4 0
장송곡, 무대, 무용
300 이름없음 2020/09/09 23:30:54 ID : O1fXs01g2IK 0
나는 무대 위의 꼭두각시. 한 걸음 떼어 날아오른다. 공중에서 한 바퀴 돌아 착지한다. 두 팔을 하늘 높이 올려 뻗는다. 두 손을 필사적으로 펼친다. 날 구원해줄 이 어디 없나. 이 빌어먹을 춤에서 나를 바라보는 저들의 시선에서 춤 하나가 끝날 때 마다 쏟아지는 박수갈채에서. 한 걸음 떼어 날아올라도 나는 하늘로 달아날 날개가 없다. 공중에서 몸부림쳐도 하늘은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 두 팔을 뻗어도 팔을 잡아 끌어올려주지 않는다. 두 손을 필사적으로 펼쳐도 손을 잡아주는 이 하나 없다. 이내 노래를 부를 수 밖에. 구슬픈 가락이 입에서 흘러나온다, 이 노래에 환호하는 사람들은 모르겠지. 지금 내가 부르는 노래가 장송곡이라는 것쯤은. (300번째 스레!!)
301 이름없음 2020/09/10 02:15:44 ID : O1fXs01g2IK 0
전전반측, 애이불비, 오매불망 (전전반측- 그리움에 쉽게 잠에 들지 못함) (애이불비- 슬프나 슬픔을 드러내지 않음) (오매불망- 누군가를 간절히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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