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없음 2018/10/06 01:23:29 ID : pTWqi3A2E4J 3
나 먼저 제시해볼게. 구름 먼지 희망
베스트 레스 2
이름없음 2026/03/14 21:58:14 ID : TRDuk6ZjAjj 1
오늘 나는 벼르고 벼르던 일을 실행에 옮겼다. 새벽같이 일어나 말끔히 씻고, 미리 준비해두었던 옷으로 갈아입었다. 어색하게나마 머리손질을 하고 거울을 바라보며 동경하던 이의 자신만만한 표정을 따라해보았다. 완벽하지 못해도 이정도면 되었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붐비는 지하철을 타고 버스로 갈아타며 목적지를 향해간다. 창밖을 바라보면 사람들이 저와 비슷한 차림으로 출근길이 바쁜것이 눈에 들어온다.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문득 동기의 우스겟소리가 머릿속을 지나쳤다. 너는 평생에 그런 옷차림을 안할것 같다고 했었던가. 숨막히는 각진 정장차림에 행여라도 옷이 구겨질까 허리를 세우고 있는 모습을 보면 무슨 말을할지 짐작이가 작은 실소가 입가에 스쳐간다. 동결된 시간속에 머무는 이들이 지금 무어라고 할 지 짐작갈만큼 그 색체가 뚜렸하던 이들이었다. 오늘 드디어 보러가는 길이다. 그동안 다잡지 못한 마음을 추슬렀고 동경하는 이의 표정을 방패처럼 앞세워 꼴사납지 않길 바란다. 오랜만이다. 늦게 와서 미안해.
이름없음 2026/04/27 10:03:41 ID : k7bva79fPbd 1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사람을 이어주는 어느 인연신의 당부 내가 지금 부터 들려줄 이야기는 어느 인연신의 관한 이야기야 아주 먼 옛날 한 인연신이 있었어 사람에게 인연을 선물한다는 인연의 신이였지 하루는 인연의 신이 연못을 둘러보다 한 부부의 모습을 보게돼 그 부부에게는 아이가 없었어 늘 아기를 가지는 걸 소망했지 부부는 1000일이 되도록 매일매일 빠지지 않고 같은시간 같은 장소에서 빌었어 제발 제발 인연의신님 저희에게도 아이를 주세요 라고 말이야 인연은 신은 그 부부의 정성을 기쁘게 여겨 아이를 주었지 그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어 그 아이가 20살이 되던 해 마을에는 기이한 일이 일어났어 가뭄이 들어 땅은 갈라지고 물은 점점 부족했었어 그래서 사람들은 하늘신에게 빌었지 부디부디 비를 내리게 해달라고 말이야 그러나 우습게도 응답은 없었지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마을에서 유명한 무당을 불러내 그 무당이 말하길 20살의 여자 중 하나를 골라 마을에 인연신에게 바치면 물이 다시 나올 거라는 말을 했지. 사람들은 20살 처녀를 인연신에게 바쳤지 그러나 마을에 비는 커녕 점점 사람들이 굶어죽거나 가뭄으로 이사를 해 인구 수만 줄어들기 시작했어 차례대로 가다보니 어느새 20살 여자는 한명 밖에 남지 않았어 그 아이가 바로 덕수길 마을에 자랑 이홍아 였어 홍아는 어쩐일인지 울지도 웃지도 않았어 되게 담담했지 마치 이일이 일어날 것임을 안다는 듯 그리 무서워 하거나 혹은 두려워하지 않았어 그 모습은 마치 기백은 호랑이의 기백이지만 속은 푸른 늑대의 모습처럼 오직 담대하고 호수의 물보다 투명하고 또렷했지. 어찌되었든 마을 사람들은 홍아를 위로하며 가마에 홍아를 태웠어. 홍아는 굽이굽이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마침내 인연의 신을 만났어 인연의 신의 하녀로 들어간 그녀는 그때부터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했어 온갖 잡일은 그녀가 맡았지 햇수로 3년동안 홍아는 인연의 신 밑에서 온갖 잡무를 맡았지 그리고 또 햇수로 5년동안 온갖일들을 총괄 했어. 인연의 신이 8년뒤 어느날 홍아를 불렀지 홍아야 이리오거라 라면서 말이야 홍아에게 붉은실 흰실 푸른실 검은실 초록실 분홍실 여러 실을 보여주며 물었어 "이 실이 무엇으로 보이느냐." 홍아는 담담하게 대답했어 이 실은 모든 삶의 인과율을 나타내는 실이네요 라고 말이지 만족 스러운 대답을 들었던 걸까 인연의 신은 마침내 그녀를 자신과 똑같은 인연의 신으로 만들어줬어 그리고 말했지. 네가 보는 모든 실들을 하나의 희망과 사랑으로 이어보렴 인연의 신이 말하자 그녀는 실을 잇기 시작했어 일찍이 과부가 된 여인과 옆마을에 듬직한 총각을 말이야. 인연의 신이 말했어 참 보기 좋게 이었구나 하며 홍아의 머리를 쓰다듬었지 지금도 홍아는 인연의 신과 함께 사람들의 인연을 잇는다고 전해지고 있어
302 이름없음 2020/09/10 11:14:20 ID : O62KY1io7By 0
시계는 끊임없이 돌아갔고 눈 한 번 깜빡일 때마다 너로부터 또 한 번의 1초가 흘러가 너는 조금 더 희미해졌다. 앉아서 시곗바늘만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 나의 우울이었다. 시간은 흐르고, 너는 뒤로 멀어졌지만 나는 시간을 따라 앞으로 가야만 했다. 저녁이면 고요한 사위에서 오직 초침이 움직이는 작은 소리만이 머리를 가득 채워 잠을 청했으나 응답은 없었다. 네가 잡고 있던 나의 팔은 내가 앞으로 가고 너는 멈추어 있는 동안 힘없이 미끄러져 너와 나 사이의 실은 끊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너를 기억했다. 기억만이 마지막 남은 너의 흔적이었다. 실은 끊어지고, 너는 이제 보이지 않았다. 그저 내 기억 속에 남은 모습뿐이었다.
303 이름없음 2020/09/10 11:15:27 ID : 3Wlwk1hcE63 0
극점, 오로라, 인공위성
304 이름없음 2020/11/01 15:21:43 ID : 9uoK7Aknva4 0
ㄱㅅ
305 이름없음 2020/11/07 01:16:06 ID : q43TWpaq7xR 0
나도 갱신.. 303레스가 제시해준 단어가 묻히는 게 아까우니까 다시 씀😀 극점, 오로라, 인공위성
306 이름없음 2020/11/07 02:04:24 ID : q43TWpaq7xR 0
그냥 내가 쓸게! 다음 레더 와주라ㅠㅠ 이 스레를 묻히게 할 수는 없어... 그는 벌써 몇 달째 계속되는 극야(極夜)에 점차 몸이 적응해 감을 느꼈다. 잠들 때와 다름없는 깜깜한 사위에도 지금이 아침이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손을 뻗어 확인한 시계는 알람이 울리기 직전의 시각을 가리켰기 때문에, 그는 시계의 전원을 끈 후 몸을 일으켰다. 비척비척 실내화를 신고 창의 커튼을 열었다. 그러자 어젯밤부터 하늘에 자리잡은 오로라가 유리에 비쳤다. 그는 창가의 물병에 달라붙은 얼음 부스러기를 털어내며 목을 축였다. 탁자 위에는 어제 쓰다 만 편지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는 편지를 시야에서 치우려는 듯 구겨 던지려다가 이내 다시 폈다. 손의 물기가 묻어 종이가 약간 젖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썼던 것을 다시 읽었다. '북극에서 보는 하늘은 당신이 보는 것과 많이 다릅니다. 회전하는 행성의 극점에 서 있다는 것이 새삼 느껴지기도 하고요. 제 하늘의 별들은 변하지 않고 그저 같은 자리를 빙빙 돕니다. 그리고 당신이 보고 싶다고 하셨던 오로라가 계속 하늘에 달라붙어 있습니다. 당신의 눈에는 지금 어떤 하늘이 비치고 있나요? 혹시 조금이라도 제가 생각나신다면 북극성을 바라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저는 같은 별을 향한다는 믿음으로 기쁠 것 같습니다. 제 동료는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에게 이메일을 보낼 때마다 참 행복하다고 합니다. 언젠가 그 이유를 물었는데 고국 위에 떠 있는 인공위성 때문이라더군요. 지구를 공전하며 같은 위치에서 계속 가족들을 비추니, 그것으로 소식을 전할 수 있다면 늘 지켜보는 것이 아니겠냐고 합니다. 어찌 보면 맞는 말 같기도 합니다. 그래도 저는 직접 쓴 편지가 더 좋으니 조금 오래 걸리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그 밑은 글씨를 알아볼 수조차 없이 번져 있었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고는 이내 편지를 구겨서 던졌다. 힘없이 날아간 편지는 쓰레기통 겉에 맞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이미 흩어져 있는 근처의 종이뭉치와 섞였다.
307 이름없음 2020/11/07 04:51:33 ID : u7hzcK4Y5U6 0
커피, 아침, 두 사람
308 이름없음 2020/11/08 01:12:30 ID : q3Wi1js3xu9 0
여느 때처럼 커피를 사가기 위해 카페에 들어섰다. 그런데.. 아, 이런 좋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한다. “진짜요? 대박~..” “다음에 한번같이 갈래?” 아침햇살에 비쳐 더욱 밝아 보이는 저 웃음과 그걸 한 몸에 받고 있는 상대방. 두 사람은 내가 보고 있는 걸 모른 채 그저 행복한 말들을 주고받겠지 “..내일은 오지 않아야겠어”
309 이름없음 2020/11/08 01:49:29 ID : mJXy6pbu3A2 0
인어, 실어증, 물기
310 이름없음 2020/11/08 02:17:16 ID : NzatzcGk9y1 0
물고기는 말을 하지 않는다. 바람이 온갖 소리를 실어나르는 육지와 달리 물 속은 고요하다. 특히 심해에 사는 생명체들은 굳이 소리를 내어 자신을 알리지 않아도 서로의 존재를 알 수 있다. 인간이 미처 느끼지 못하는 파동으로. "너도 그래.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물 속의 말로 계속 말하고 있었던 거잖아." "..." "너무 늦게 알아차려서 미안해."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눈동자를 보며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는 인어였다. 바다에서 태어났지만 뭍을 동경했고, 뭍을 동경했으나 바다의 언어를 버리지 못한 물고기였다. "나만큼은 네게 귀를 기울였어야 하는데, 그래 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는 침대맡에 붙어 있는 종이를 보고서는 결국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병명에는 실어증이라는 세 글자만 무감하게 적혀 있었다. 실어증이 아니야, 나 때문이야. 미안해. 꺽꺽거리는 울음 사이로 사죄가 섞여 나왔다. 그 소리는 인간의 언어보다는 오히려 짐승이 내는 울음에 가까웠다. 인어는 가만히 앉아 그가 엎드려 우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이불 끄트머리에 눈물이 떨어진 부분을 손끝으로 훑었다. 인어가 살던 바다처럼 소금기 머금은 물이었다. 그 그리운 물기를 손에 쥐고 인어는 조용히 눈꺼풀을 닫았다.
311 이름없음 2020/11/08 14:20:04 ID : mJXy6pbu3A2 0
사탕, 사랑, 설탕
312 이름없음 2020/11/08 18:26:54 ID : i4K42HAZh83 0
사랑은 달았다. 그렇지만 그 달콤함은 부드럽게 가공된 사탕의 달콤함이 아니라 오로지 달기만 한 맛에 침식되어 질식할 것만 같은 설탕의 달콤함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나의 사랑은 늘 지나치게 달았고 나는 그 달콤함에 빠져 환상과 현실도 구분 못하는 바보같은 인간이었다. 차라리 사랑이 가슴을 찢을 듯 아팠다면 다시는 사랑 따위 하지 않을 수 있었으려만. 의미 없을 후회만이 사랑을 부정한다.
313 이름없음 2020/11/08 19:09:32 ID : K6lA3RzTPeH 0
파랑,앨리스,거짓
314 이름없음 2020/11/08 19:20:17 ID : qY5SJPck7dR 0
앨리스는 말했다. "하트여왕, 당신은 잘못됐어요." 앨리스의 한마디를 듣고 그동안 하트여왕의 폭정에 시달렸던 주민들이 하나둘씩 동의하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그 자리에서 고개를 주억거렸고, 어떤 이는 목소리 높여 저항하기 시작했다. 한 명, 열 명, 백 명, 이윽고 수 천에 이른 주민들의 원성이 커지면 커질수록 하트여왕의 얼굴은 색이 바뀌었다. 빨강, 파랑, 하양, 노랑 다양한 색깔로 변해가는 얼굴로 하트여왕은 소리쳤다. "거짓말이다! 저 건방진 계집을 당장 죽여버려라!" 하트여왕은 자신의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대체 왜. "아무도 없는 거지....?" 그동안 자신의 든든한 아군으로 존재했던 대신들도, 나의 옆자리를 지키고 있던 보좌관도. 전부, 전부 사라졌다. 하트여왕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앨리스를 바라보았다. 저 계집의 당당한 얼굴, 당당한 목소리, 그리고 그 옆을 지키고 서있는 나의 백성들. 그 모든 것이 거짓이기를 바랬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잘해주었는데, 고작 저 건방진 계집의 말 한 마디에 홀라당 넘어가버리는 꼴이라니! 이것이 나의 백성들이라고? 이것 또한 거짓이다! "저 계집의 말에 동의하는 것들이 나의 백성일 리가 없다! 전부 죽여라! 죽여버려!!" 하트여왕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점점 앨리스의 몸이 커지는 것을 느꼈다. 몸 뿐만이 아니라 목소리도. 아니, 이건 앨리스가 커지는 것이 아니라..... 하트여왕은 점점, 점점, 점점, 점점, 작아지고, 작아지고, 작아지고, 작아지고. 어느새 수많은 백성들과 앨리스의 눈에 하트여왕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항상 높은 곳에서 자신들을 내려다보며 재미로 백성들을 죽이던 폭군은 사라졌다. 그녀를 표현하듯 찬란한 빨강은 더 이상 아무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높디 높은 성에 꽂혀있는 깃발은 파랑. 그 맑디맑은 색이 우리들을 구원했다.
315 이름없음 2020/11/08 19:34:29 ID : ja7cMmE4JQq 0
드디어 홀수레스 쓸 타이밍을 잡았다!!!!!😀😀 늪, 폐허, 향기
316 이름없음 2020/11/08 19:47:46 ID : Hwrf81g5hs9 0
으악 313거 쓰고 왔더니 이미 늦었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제대로 남은 건물도, 동물도, 식물도, 인간도 없었다. 그곳에 남은건 폐허와 나뿐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평생을 살았다. 죽어가는 동식물을 보는 건 일상이었고, 건물 잔해 사이의 시체 조각은 길가의 돌멩이만큼 흔했다. 그런 곳에서 나를 위로해 준 건 늪이었다. 그 늪은 찐득찐득하고 기분 나쁜 소리를 냈다. 하지만 가장 살아있는 생명에 가까운 존재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그 늪을 좋아했다. 아주 긴 시간이 지나고, 나는 어떤 사람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새로운 도시로 나를 데려간 그들은 나에게 새 삶을 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나의 늪, 늪의 향기를 앗아갔다. 모두가 잠든 밤, 나는 도시를 떠나 내가 살던 곳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공기에 미세하게 떠다니는 늪의 향기를 찾아. 늪의 온기와 소리와 색깔과 향기를 찾아. +앨리스도 아까워서 올릴게... "앨리스의 머리는 파랑색이야." 네가 입을 뗐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나는 한 마디를 내뱉었다. "거짓말." "진짜야." 너는 가끔 이상한 소리를 하곤 했다. 그럴 때는 너의 생각을 읽기가 힘들었다. 굳은 결의라도 한 듯 자신에 찬 목소리와 눈동자. 하지만 당최 어떤 결의를 한 것인지 전혀 읽을 수가 없었다. 너를 처음 만난 날도, 내가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온 날도, 네가 나를 따라 허리까지 오던 머리를 자른 날도. 네가 갑자기 나의 손을 잡아온 날도 그랬다. "앨리스의 머리는 파랑색이야." 네가 다시 말했다. "이건 확실해." "얼마나 확실한데?" 내가 물었다. "내가 너를 좋은 친구로 생각한다는 사실만큼 확실해."
317 이름없음 2020/11/08 19:58:23 ID : 3u3zQlbg1vi 0
이 스레 요즘 자주 갱신돼서 괜히 내가 다 뿌듯하네ㅋㅋ 혹시 오래 걸릴 것 같으면 일단 작성중으로 레스 달아놓고 수정하자! 이번엔 내가 제시할게 섬 이끼 별빛
318 이름없음 2020/11/08 22:03:53 ID : asmJRxzTU7t 0
아무개의 발길은 끊겨 길이 없고, 노랑 나비 하나 나라지 않는다. 난잡함도 적막함도 삼키는 꿈. 노인은 푸른 호로 배를 밀고, 몸 눕혀 둥둥 하늘을 본다. 별무리 아득해야 할 어둠이언만, 그저 밝아라. 눈을 감는다. 바람은 표류한 배를 떠밀며, 천천히 멀어진다. 바라보는 소년의 눈은 그저 검어라. 푸른 호는 별무리를 담가 두었다. 푸르러야 할 것은 검고, 검어야 할 것은 푸르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으면 이상하리. 비 한 점 나리지 않으면 괴이하리. 눈은 바닥에 깔린 이끼를 뜯어낸다. 가슴 어림이 무겁고 어깨를 누른다. 몸을 기울여 바닥에 눕고, 바람이 분다. 툭툭 검은 무언가가 내리는 듯 했고 동시에 투명했다. 섬은 적막했고, 꿈 같았다.
319 이름없음 2020/11/08 22:06:23 ID : qY5SJPck7dR 0
시계. 거짓말. 감기
320 이름없음 2020/11/11 20:43:45 ID : 9uoK7Aknva4 0
시계가 감기에 결렸다. 시계는 연신 기침을 해댔다. "봐봐. 시계가 감기에 걸렸잖아." "거짓말."
321 이름없음 2020/11/11 23:39:40 ID : jzare6nO3ws 0
꽃불, 소인(小人), 우울.
322 이름없음 2020/11/12 00:42:46 ID : qY5SJPck7dR 0
거인과 소인은 서로를 사랑했다. 모두가 너희 둘은 이어질 수 없다고 하였지만, 그건 둘에게 전혀 와닿지 않는 말들이었다. 그 둘은 서로의 마음만 통한다면 언제든 함께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거인은 무척이나 우울해하는 소인을 발견했다. 거인은 물었다. "왜 그렇게 우울해하니?" 소인은 여전히 우울해보이는 표정을 하고 대답했다. "너와의 사이를 인정받지 위해서는 꽃불을 가지고 와야만 한대." 꽃불? 그게 뭐지? 거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거인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소인은 이어서 말했다. "꽃불은 전설 속에 나오는 꽃이야. 꽃모양으로 퍼지는 불꽃과 반대로, 불꽃모양으로 피어나고 지는 꽃이야." 소인은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거인은 자신의 커다란 손으로 소인의 작디작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둘이 함께라면 우리는 뭐든지 할 수 있고 찾아낼 수 있어. 그냥 조금 긴 여행을 함께 떠난다고 생각하면 되지." 소인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거인을 올려다보았다. "정말? 정말로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거인은 대답했다. "물론이지." 소인은 어쩐지 그 대답에 마음이 무척이나 풀린듯한 기분이 들었다.
323 이름없음 2020/11/12 01:18:02 ID : Pg1vipgknu4 0
유리창, 항해, 먹구름
324 이름없음 2020/11/13 06:40:34 ID : 4Za1cts4IMl 0
멀디 먼 타국으로 바다의 물살을 따라 항해하는 것은 역시 지루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하다못해 널찍한 뱃전과 와글와글한 소리가 있는 크루즈선을 탔다면 좋았으련만. 돌아갈 곳도 없는 망망해대 한가운데에서야 뒤늦게 돈이 없어서요, 가장 작은 선실로 주세요, 라고 말한 일이 후회되었다. 가뜩이나 동행인도 없어 거의 방 안에서 시간을 보낸 일뿐이라 차츰 그리고 또 차츰 외로워졌다. 똑똑. 아무도 찾아올 사람이 없을 터인데 소리가 들렸다. 혹여 비정기적인 선실 점검일까 느릿이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켜 문을 열어 내다보았다. 아무도 없어 의아할 따름이었다. 다시 똑똑. 문 밖에도 안에도 아무도 없는데. 혹시 유령일까 섬찟 두려워져 호실 안을 다시 들여다본다. 아, 쪽창에 물이 흐른 자취가 그려져 있다. 조용히 문을 닫고 들어가 쪽창으로 밖을 내다본다. 살금 다가와 하늘을 잿빛으로 물들이는 먹구름이 눈물을 흘린다. 투명했던 유리창 건너로 물이 떨어지다가, 가끔 잘못 떨어져 유리창에 부닥친 빗물이 한 몸 다 바쳐 소리를 낸다. 똑똑, 계신가요. 오로지 홀로 떠나온 항해였다. 아무하고도 친분이 없이 망망대해 위에 서 있는 사람이다. 어쩐지 빗물을 따라 눈물이 났다.
325 이름없음 2020/11/13 07:32:35 ID : ZfXxU47BxSI 0
침몰. 밤. 하늘.
326 이름없음 2020/11/13 22:06:56 ID : 9uoK7Aknva4 0
매일, 밤은 하늘에게 침몰했다. 그렇게 아침이 되며, 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327 이름없음 2020/11/13 23:04:32 ID : jzare6nO3ws 0
극단, 자유, 흩다
328 이름없음 2020/11/15 01:04:38 ID : Pa3ClBhy7tj 0
무언가의 극단으로 치닫는 과정은 스스로를 벼려 내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끝을 향함이고, 등진 빛을 외면하며 암흑 속을 달려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택하는 이유는 길이 끝나 흐트러지는 순간 발끝을 땅 위로 띄우는 자유를 위해서이다.
329 이름없음 2020/11/15 01:05:29 ID : Pa3ClBhy7tj 0
사막, 침묵, 언어
330 이름없음 2020/11/15 17:01:42 ID : 5PbbinSHA0l 0
끝없는 사막 속에서 나는 울부짖었다.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대지는 침묵했다. 별들도, 달도, 모래바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는 도중에도 사막은 계속해서 제 모습을 바꾸고 있었다. 광활하고 고요한 자연, 그 속에서 언어라는 것은 하등 쓸모가 없는 것이었다. 자연은 언제나 그 어떤 질문과 원망에도 입을 다문 채 방관한다. 자연은 언어를 모른다.
331 이름없음 2020/11/15 17:37:48 ID : uk4HClvjy2N 0
타락, 사랑, 피
332 이름없음 2020/11/15 18:50:35 ID : E9AqnSIE1cq 0
타락한 사랑에는 봄이 올까. 그것도 사랑이니, 애정이니, 욕망 그 자체이니 허락할 수 밖에 없다. 욕망과 쾌락 사이의 종착점에서 혼란스러운 마음을 잡고 마주봐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겁쟁이와 다를바없다. 설령 피를 부를지언정 난 잘못된 사랑에 취해야한다. 이것은 운명이며 정해진 굴레였다.
333 이름없음 2020/11/15 19:01:03 ID : mrdTSGpO1io 0
잉어, 먹, 칼
334 이름없음 2020/11/15 19:02:26 ID : dVffbu9z9a4 0
진한 먹으로 그려진 윤곽을 좇아 눈동자가 움직였다. 몸체의 곡선을 타고 내려가서 시선이 맺힌 곳은 잉어의 눈이었다. 관람객을 빤히 바라보는 그 눈은 그림 속에서 고요히 시선을 끌었다. 한없이 검은 늪에 갇혀 먹물을 마시고 뱉으며, 결국 당신들도 나와 같지 않냐는 물음표를 던지는 것이다. 칼로 그림을 찢어 너를 풀어줄까. 아니면 물을 뿌려 숨쉴 곳이라도 만들어줄까. 의미 없는 충동만이 그림과 나 사이에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335 이름없음 2020/11/15 19:03:26 ID : dVffbu9z9a4 0
넝쿨, 압화, 바래다
336 이름없음 2020/11/16 01:58:10 ID : uk4HClvjy2N 0
늘 가던 화방 한편에는 이름모를 넝쿨이 압화된 액자 하나가 있었다. 어디 하나 빛나지 않던 수수한 액자였는데도 시선을 끄는 그런 액자였다. 언제 화방 주인한테 무슨 넝쿨이냐 물어본 적이 있었다. 화방 주인은 자신도 모른다 답하며 이상하게 눈길이 가지 않느냐 물었다. 그랬다. 분명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압화였는데도 이상하게도 눈길이 가는 것이었다. 하도 기억에 남아 이름을 찾아 식물도감을 뒤졌던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미련한 짓이었다. 결국 세시간 동안 식물 도감을 뒤져 담쟁이넝쿨이라는 것을 찾아냈다.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그것은 나를 허무하게 만들었다. 갑자기 그 압화가 너무 쓸모없다 느껴지는 것이었다. 이왕 찾아본 김에 더 찾아보자 해서 식물 도감을 한 장 더 넘기자 담쟁이넝쿨 꽃의 꽃말을 찾을 수 있었다. 우정이였다. 아무 상관 없을 것 같은 꽃말에 김이 식었다. 도감을 침대에 던져놓고 집을 나서는데 길가의 벽에 걸린 넝쿨들이 눈에 띄었다. 담쟁이넝쿨이었다. 그 순간 웃음이 나왔다. 담쟁이넝쿨은 나를 화방으로 바래다주고 있었다.
337 이름없음 2020/11/16 09:15:32 ID : Qmrf88nU3XB 0
지도 우산 여우
338 이름없음 2020/11/16 15:27:52 ID : Gk02nBbxu4L 0
나는 지도를 펼쳤다. 이 지도가 정확하다면, 곧 마을에 도착할 것 같았다. 지친 몸과 마음을 다잡고 다시 움직일 준비를 하는데,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려왔다. " 여 앞은 여우가 산다. 들어갈 생각일랑 하지 말어라. " 고개를 돌려가며 소리의 근원지를 찾으니 바로 옆에 다 기울어져 가는 초가집 마루 위에 어떤 한복 입은 할머니가 곰방대를 뻑뻑 피우고 있었다. 그보다, 여우라니요? 할머니, 여우가 여기 어딨어요.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 말에 되물었다. 여우가 사는 마을이다. 할머니는 그 말을 하고서는 삐걱대는 문을 열고 들어가 버렸다. 기분이 영 찝찝했지만 나는 다시 걸었다. 한참 숲을 따라 걷고 있는데, 갑자기 바람이 강하게 불어왔다. 나뭇가지가 서로 스치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태풍인가? 생각하며 가방에서 접이식 우산을 꺼냈다. 그렇게 고생하며 숲을 나오니 거짓말처럼 비는 내리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니 숲은 사라져 있었다. 기묘한 날이다, 라고 생각했다.
339 이름없음 2020/11/16 15:46:13 ID : 4MlDvA6rtjt 0
설탕, 향수, 불
340 이름없음 2020/11/16 16:57:48 ID : q3Wi1js3xu9 0
나 말고는 없는 어두운 방에서 라이터로 불붙은 담배를 문채 커피잔을 내려다본다. 그 남자는 설탕을 많이 탄 커피를 마셨지 평소엔 허당끼가 돌지만 가끔 나를 보는 눈빛에서 왠지 모르게 꿰뚫려지고, 알아주는듯한 기분에 설렜었다. 이젠 나를 아무것도 아니게 쳐다보겠지 희미하게 감도는듯한 향수 냄새가 미간을 구긴다.
341 이름없음 2020/11/16 17:38:48 ID : Qmrf88nU3XB 0
거북 보름 이름
342 이름없음 2020/11/16 19:00:08 ID : O60tAjii02t 0
곧 돌아오신다는 님이 어찌하여 보름이 넘어서야 오셨습니까. 두 발로 걸어와 안아주겠다던 님이 왜 힘없이 흰 천에 쌓여 오시옵니까. 푸르스름한 입술에 생기없는 뺨, 영원히 뜨지 않을 것마냥 꼭 감긴 두 눈을 하고서도 서방님은 변함없이 아름다우시군요. 서방님, 아, 사랑하는 서방님. 서방님이 가장 좋아하시던 금잔화가 핀 땅에 묻어드리오리다. 봉긋한 묘가 반질한 거북의 등 같아질 때까지 매일매일 돌봐드리오리다. 서방님, 아, 사랑하는 서방님. 몇번이고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꼭 감은 눈은 떠질 수 없겠지요. 금방이라도 "장난쳐서 미안하오, 내 그대를 사랑하는 것 아시지 않소. 절대 먼저 두고 떠나지 않으리다." 하고 벌떡 일어나길 것 같지만 그 창백한 얼굴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겠지요. 사랑하는 서방님, 마지막 입맞춤이에요. 다시 만나는 그 날까지 부디 평안하셔요.
343 이름없음 2020/11/16 19:00:53 ID : PjyZeJO5Ru4 0
콜라, 강아지, 미소
344 이름없음 2020/11/17 04:08:53 ID : DvyJUZhhvBf 0
"어서오세요" 짤랑 거리며 들어오는 웰시코기 한마리와 긴머리에 모자를 눌러쓴 체구가 약간 작아보이는 여자 손님 얼굴을 잘안보였는데 내가 입에서 소리를 내자 강아지는 아주 해맑게 웃고있었다. " 강아지가 웃음이 많네요!" "아...네.." 낯가림이 많이 심한지 눈만 살짝 맞췄다가 바로내리는 손님 그냥 강아지랑 적당히 티타임을 즐기시러 오신건가 싶어서 애견카페 이용수칙 이용가격 그런것들을 설명하고 우리가게에 있는 마스코트들을 소개시켜주었다. 그중에는 손님의 웰시코기와 똑같이 생긴아이도 있었는데 그아이 이름은 마르코 였다 마르코는 임시보호로 맡게되었는데 보호하다보니 정이 그새들어 버거울지도 몰라도 나는 애견카페를 운영하고 있고 힘 닿는 데까진 죽도록 힘내보려고 입양까지 하게돼 벌써 4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예전엔 겁쟁이였던 그런 마르코가 손님의 강아지가 자신과 닮았다는걸 아는지 먼저가서 인사를 건내더니 이내 손님의 강아지도 마르코가 좋아졌는지 둘이 인사를 하는듯하더니 다른 강아지들도 마르코를 따라 줄줄이 인사타임이 되었다. "강아지들 사이좋네요 그쵸?" "그러네요" 우리가게는 애견카페니깐 손님에게 목이 마르지않냐 물었지만 손님은 별말을 하지않았다. " 첫방문이시니깐 공짜로 해드릴게요 말만하세요 뭐드시고 싶으세요? 저 이래뵈도 잘 만들어요" "..그럼 콜라 있나요?" 잠시 고민하시는듯하더니 콜라를 찾으셨다 물론 콜라도 준비되어있지만 다른 음료를 만들어 드리고 싶었는데 아쉽게됐다. "강아지 이름이 뭐에요?" 콜라를 내어드리고 마주앉아 강아지 이름이 무엇인가 물어봤다 뭔가 이것도 고민하는듯 해보였지만 강아지이름은 마루 라고 하였다. "귀여운 이름이네요" 그렇게 말하자 손님은 쑥스러운듯이 고개만 끄덕이곤 창밖을 바라봤다. 다들 쾌활적이신분만 다녀가셔셔 내성적인 분을 잘 대하지못하는거 같아 애견카페 사장으로서 자신감이 조금 하락했다. "저 나중에도 또 오세요 저희 애기들 착해요 음료도 맛있고" 내가 말하자 손님은 나를 쳐다보고 알겠다고 하고 손님에게 달려온 마루를 쓰다듬어 줄뿐 그이상의 말은 없었다. 그런 적막한 분위기보다 강아지들처럼 신난분위기를 만들고싶어 신기한 마술을 보여드리겠다 하고 실패하고 내인생 최대 웃긴 얘기를 했다가 실패하고 이사람은 웃음기가 없는 사람인가 나는 왜 한가해서 손님을 웃겨주려 하고있는가 이런 잡다한 생각에 빠질때쯤 손님이 가봐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가시냐 콜라 아직 안드셨는데 하니깐 괜찮다며 손사레 치시고는 마루를 데리고 강아지들에게 '빠이빠이' 하며 손을 흔든다. 문득 마루이름은 아는데 손님이름은 몰라서 손님이라고 부를수없으니 이름을 알려달라하니깐 아무말 없이 입구로 걸어나간다. "다음에 또.." 말하려하는데 갑자기 멈춰스더니 아까 웃겼어요 안웃어서 미안해요 라며 자기이름은 하늘이라 그랬다. 그래도 무표정으로 말하다가 이름을 말할땐 약간 미소를 띈거 같다. "다음에 또 오세요!" 약간이상한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마루를 꼭 안고 나가는 모습을 보니 그래도 다정한 사람인거 같은 생각이 든다 다음에오면 콜라를 이용한 음료를 개발해놔야 겠다 생각하고 다시 카운터로 돌아가 새로운 손님 하늘,마루 를 이용자 목록에 적었다.
345 이름없음 2020/11/17 07:14:53 ID : Qmrf88nU3XB 0
석양 할애 애증
346 이름없음 2020/11/21 21:56:05 ID : 83xCkljteIK 0
ㄱㅅ
347 이름없음 2020/11/22 03:12:21 ID : K6lA3RzTPeH 0
여름 젊음 죽음
348 이름없음 2020/11/22 11:09:19 ID : mrdTSGpO1io 0
우리는 젊음에 질식해가고 있었다. 어두침침한 기숙사 침대 위에 누워 서로의 흐린 윤곽을 바라보면 머릿속이 마냥 뜨거워져 죽겠구나 싶었다. 바짝 붙은 몸에서 열기가 전해져 왔다. 시선이 맞닿는 순간, 그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하얗고 나른한 얼굴 사이로 뭔가가 흘러넘쳤다. 애써 고개를 돌렸지만 시트를 쥔 손이 선명히 떨리고 있었다. 이 어린 천재가 죽을 만큼 원한다는 표정을 보이는 것은 오직 내 앞에서만, 그것이 짜릿하게 좋아서, 교복이 널브러진 바닥을 더듬어 쓰다 만 원고지를 찾는 그의 여름이 온전히 나이길 바랐다.
349 이름없음 2020/11/22 11:14:31 ID : Ns1jumoNzcI 0
공중전화 수레바퀴 아이스크림
350 이름없음 2020/12/02 15:46:48 ID : hbzO4NwIJRu 0
저는 가끔 동네 꼬마들이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을 봅니다. 어쩔 수 없이 그때가 생각났습니다. 저에게는 어린 동생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그와 나가 놀아주라고 말하셔서 작은 손을 붙잡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동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렸습니다. 그래도 길을 잃었을 때 어찌해야 하는지 정도는 알았습니다. 아마 지나가던 어른이 동전을 빌려주었을 겁니다. 주머니 속의 전화기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저는 동생을 동네 구멍가게에서 찾았습니다. 저는 그를 달래려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주었습니다. 동생은 웃었습니다. 우리가 내리막길을 걸어 집에 돌아갈 즈음 덜컹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제가 생각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경사가 꽤나 가팔랐고 그 소리를 낸 수레에는 무거운 짐마저 실려 있었습니다. 아이스크림이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몇 초도 되지 않아 그것은 붉게 물들었습니다.
351 이름없음 2020/12/02 18:06:49 ID : tbbh83DBzal 0
여름 수박 계곡
352 이름없음 2020/12/02 23:04:57 ID : CqlwtvDzbzW 0
여름방학이 시작되고나서 친구들과 계곡으로 갔다. 친구 할머니댁에서 일주일을 머무르기로 하고서 보드게임이나 간식따위를 챙기며 기차를 탔다. 짐을 풀고서는 단박에 계곡을 향해 뛰쳐나갔는데,튜브를 허리에 끼고 시시덕대던 친구가 저어기 폭포라기엔 부족한 경사에서 자기가 내려와 보겠단다. 무슨 워터파크도 아니고. 들은체도 하지 않고 올라가 튜브를 타고 내려오던 친구의 머리가, 기우뚱. 퍽. 졸졸. 수박처럼 박살나 버린것이었다.
353 이름없음 2020/12/03 01:32:33 ID : 9fPa8kq7vzR 0
여름, 오후, 책
354 이름없음 2020/12/03 22:23:43 ID : oZbijeNvyFf 0
무더운 여름에 고향에 내려온 것은, 이번 공무원 시험에서 떨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도시의 더위가 무더웠기 때문이다. 길가를 따라가보면 나오는 조그마한 주택. 여기가 우리집이다. 그래, 아무도 없겠지. 냉장고에는 썩어가는 무언가와 컵라면이 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컵라면을 꺼내 주린 배를 채웠다. 작은 집의 내 방에는 내 책들이 가득 있다. 정확히는, 아빠 서재에서 빼온거지만. "영우야!" 낯선 여자의 목소리다. 집 밖에는 하늘하늘한 차림의 또래로 보이는 여자가 서있었다. "누구...?" 그 순간 무언가가 내 머릴 스쳤다. 내 추측이 맞을까? "은희야?" "응! 용케 알아봤네!" 은희가 배시시 웃었다. 나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사람은 아니지만 내가 매일 방에 박혀 책을 보고 있자면 집에 놀러와 자기 집처럼 드러누워 계속 놀자고 조르던 얘였다. "여기 살아?" "아직은, 너 돌아왔다는 말 듣고 바로 왔어." 아직이라니, 분명 서울로 가려다가 경제적이든, 학업적이든 문제가 생겼을거다. 반면에 나는 이 지긋지긋한 곳을 벗어나기 위해 내 방에서 박혀 살았다. "근데 여긴 무슨 일이야?" "어? 그냥... 지쳐서? 요양 느낌으로 왔어." "요양이라고 하니깐 완전 늙은 것 같다 너!" 은희가 키득거렸다. 하긴 내가 봐도 모순적이긴 하다. 내가 지긋지긋하다고 입에 달던 곳에 지쳐서 다시 돌아오다니. "밖에 계속 서있을꺼야?" "오, 들여보내줄려고? 그럼 고맙지." 은희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계속 말을 했다. "우리 예전에 기억나? 너 맨날 나 피해다녔잖아!" "그치, 공부해야하니깐." "나랑 안놀아주려고 나무 위에서 책 읽었을 땐... 어휴," "그랬었지, 그땐 왜 그랬는지 몰라." 내가 피식, 하고 웃자 은희도 킥하고 웃었다. "그래서, 오늘도 놀아달라고?" "아니!" 은희가 자신의 약지를 들어보였다. "봐라! 이젠 너랑 못놀아, 후후" 금색 반지가 빛났다. 은희는 반지를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정말 소중한 사람이야. 나한테." "좋겠네, 좋은 사람 만나서." "그럼그럼! 너도 얼른 결혼해! 진짜 좋아." "친구들은 하지 말라던데?" "아니야! 진짜 좋다니깐?" 은희랑 이야기를 하다보니 벌써 해가 져버렸다. "나 이제 가볼께. 오래 머물다가!" "그래그래. 알겠어." 은희가 떠나자 집에 적막함이 돌았다. 내 낡은 책상, 또다시 공부하기 위해 책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내가 어릴적 숨겨둔 쪽지가 떨어졌다. '꼭 공무원 붙어서 은희한테 당당히 고백하자!' 다리의 힘이 풀리고 눈물이 고였다. 아, 잘 참았는데. 걔 앞에서도 잘 참았는데. 책상 앞에서 나는 두 번 무너졌다.
355 이름없음 2020/12/03 23:23:52 ID : cslCqnVcMja 0
온클 교수 사랑
356 이름없음 2020/12/04 12:17:58 ID : mrdRDwGmpQm 0
교수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열렬히 강의를 하던 와중에도 나는 핸드폰만 바라보았다.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았다. 온라인 클래스를 꼭 들어야하는데도 나는 너만 생각했다. 이건 다 너때문이다. 너에 대한 나의 사랑 때문이다. 아직 중학생이라 대학교 모르겠어ㅠㅠㅠㅠㅠ
357 이름없음 2020/12/04 13:00:48 ID : u8nRyK6phvB 0
눈사람 재생 거대한 성
358 이름없음 2020/12/04 18:19:44 ID : U0msqnV9a5P 0
아이들이 뛰놀고 있었고, 연이어 쏟아진 폭설로 높이 쌓인 눈은 눈사람이 되어 거리에 안착해 있었다. 생기로운 성탄절의 분위기와 차갑지 않은 찬공기가 거리를 데우고 있었다. 내 몸은 여전히 마비 된 듯한 느낌이었고, 겉으로 보기엔 시체와 다름이 없었다. 정신만이 온전한 느낌, 육체가 나와 딱 들어맞지 않는다는 느낌은 나에게 항상 거대한 공포를 느끼게 한다. 썩어버린 피부와 끊어져버린 신경을 재생할 수 있는 기술이 생기길 오래전 부터 고대하고 있었다. 죽지 않는게 기적이라던 의사의 말은 내겐 절망처럼 들렸다. 성인이 태어난 날 내가 죽을 수 있다면, 그럴수만 있다면 마비되어 버린 내 얼굴로 웃음을 지을수 있을 것만 같다. 체념하고 있을 때, 누군가 나타났다. "이곳엔 존재하지 않는 성, 그 성이 된다면 넌 죽을 수 있어, 어떡할래?"
359 이름없음 2020/12/04 19:24:18 ID : O4LdO5SNzcK 0
시계, 노트, 핫핑크
360 이름없음 2020/12/05 21:59:12 ID : mrdRDwGmpQm 0
당신은 멈추지 않는 시계와 같습니다. 나는 항상 당신의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를 들을 것이고, 쫓아갈 것이고, 이내 그 소리마저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당신의 이름을 한 이름없는 노트에 적습니다. 내 심장과 같은 핫핑크색 잉크가 노트를 적시고 적셔 한없이 흘러내립니다. 나는 이 이름없는 노트를 나의 생각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나의 뇌는 이미 당신이라는 잉크에 적셔져 볼을 타고 흘러내릴 것 입니다.
361 이름없음 2020/12/05 22:00:28 ID : A4ZbjvCi4IK 0
가면, 허상, 기다림
362 이름없음 2020/12/06 15:10:50 ID : h82pTTQk1cn 0
나는 너를 기다렸다. 비록 네가 등뒤에 비수를 숨기고 ‘우정’이라는 가면을 쓰고있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이 모든 게 잠깐의 허상임을 알면서도 너를 놓아줄 수 없었다. “너도 알고있잖니. 난 다시 태어나도 널 사랑하고 기다릴거야” 피를 흘리면 하는 내 말이 너에게 어떻게 비칠진 모르겠지만 나는 웃었다. 내 마지막이 웃음으로 기억되길.
363 이름없음 2020/12/06 15:12:34 ID : cslCqnVcMja 0
집착, 인강, 사랑
364 이름없음 2020/12/12 16:27:28 ID : K6lA3RzTPeH 0
ㄱㅅ
365 이름없음 2020/12/12 18:15:44 ID : HB85XtipcFg 0
아니ㅋㅋㅋㅋ큐ㅠㅜㅜㅋ큐ㅠㅠㅜ내가 상상한건 이런게 아닌데ㅋㅋ쿠ㅠㅠㅠ수박이 그 수박이였냐고
366 이름없음 2020/12/15 22:38:19 ID : 9uoK7Aknva4 0
인강이 인터넷 강의라는 뜻이 맞니...?
367 이름없음 2020/12/15 23:17:40 ID : cslCqnVcMja 0
응 그 한석원 같은 분들이 하시는거
368 이름없음 2020/12/15 23:46:07 ID : nSE5VbBe5hB 0
모니터의 빛이 갑작스레 꺼졌다. 오랫동안 멍하니 정지화면만 들여다본 탓이었다. A는 진녹색 칠판 때문에 잔상이 떠다니게 된 눈을 비비며 노트북의 자판을 눌렀다. 위잉 하는 진동과 함께 모니터가 다시 켜졌다. 그러자 다시 녹색 칠판과 그 위에 어지럽게 흩어진 글자들, 그리고 그 중간에 분필을 들고 있는 대머리 수학 강사가 눈에 들어왔다. 칠판에는 함수의 그래프와 색색의 분필로 칠해진 공식들이 빼곡했지만 A의 눈길이 향하는 방향은 그곳이 아니었다. "...나는 왜, 30분 동안이나 한석원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던 거지?" 모니터 속 그의 얼굴은 더없이 진지했다. 수학을 가르친다는 순수한 기쁨과 열정 외에 다른 것을 찾아볼 수 없는 듯했다. 그러나 A는, 그가 가르치는 수학을 공부하는 것보다 그의 빛나는 대머리를 들여다보는 데에 묘한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이것은 사랑인가? 아니, 정체를 알 수 없다. 어쩌면 집착인지도 모른다.' A는 불을 향해 날갯짓하는 부나방과 같은 좌절을 느꼈다. 공부를 하고자 마음먹은 학생에게 그의 대머리는 유혹적인 불빛과도 같았다. 눈길을 주어서는 안 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항할 수 없는. A는 떨리는 손끝으로 재생 버튼을 누르려 했다. 아니, 끄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정지되었던 화면이 움직이는 순간 A의 눈은 다시 그의 대머리를 쫓기 시작했다. 끝없는 집착의 서막이었다. 명예훼손으로 인한 고소각인데 좀 봐주라
369 이름없음 2020/12/15 23:50:29 ID : qY5SJPck7dR 0
그림자 완벽 외계인
370 이름없음 2020/12/16 00:31:15 ID : GoK3O3AZinT 0
요즘 자꾸 화재가 되는 영상이 있다. 그림자에서 사람이 형체 같은 것이 나와 그림자의 주인을 죽이는 영상. 사람들은 편집이라며 댓글을 달아댔고, 나도 그 중 한명이었다. '이 재능을 왜 이런데 쏟고 있는거지...' 하지만, 이렇게 댓글을 단 지 20분도 채 안되서, 나는 일을 겪게되었다. "커흡!" 컴퓨터 화면만이 유일한 빛인 방 안. 문소리도, 창문이 열리는 소리도, 하다못해 발걸음 소리도 없었는데. 어째서, 내가 목을 졸리고 있는거지. 뒤에서 뻗어온 두 손에 잡힌 목이 부러질 것만 같았다. 이대로라면 정말 죽을 것이었다. 나는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 발버둥쳤다. 그러다가 팔꿈치로 무언가를 쳤고, 나는 확, 숨통이 트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헉, 허... 뭐야...?" 자국이 빨갛게 남은 목을 손으로 감싸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 아무도, 없다...? "...!" 아니, 있다. 나는 밑으로 시선을 내리자마자 식겁하며 의자에서 넘어졌다. 내 그림자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검은 남자. 완벽한 피지컬의 신체를 본 내가 느낀 감정은 극한의 공포 뿐이었다. "누구, 세요...?"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영상을 애써 지우며 덜덜 떨리는 목소리를 내었다. "..." 하지만 남자는 답이 없었다. 필시, 귀신혹은 외계인이리라. 겁먹은 나는 아무렇게나 소리쳤다. 남자의 손이 다시 내게로 뻗어지고 있었으니까. "저, 저는 암이 있어서 데려가셔봤자 실험 못해요...!" 남자가 순간 멈칫, 몸을 굳힌다. 하지만 이내 중저음의 목소리와 함께 다시 움직였다. "암이라, 동료들이 더욱 흥미로워 하겠군." 나는 뒤로 기어가며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들었다. 그리고 남자의 손이 나를 내려치기 전에- 탁. 컴퓨터 전원코드를 뽑아 암흑속에 갇혔다. "하아..." 나는 덜덜 떨며 보이지도 않는 어둠을 휙휙 둘러보았다. 그리고 심장이 다시 내려앉았다. "인간." 아까 그 남자의 목소리... "어서 불을 켜라." 나는 경련하듯 떨리는 손을 서로 꽉 잡으며 거의 울먹였다. "당신, 당신 뭐에요...?" 나는 순식간에 일어난 믿을 수 없는 일에 지레 겁을 먹고 있었다. "...알고 있는 게 아니었나." "...네...?" 자신을 납치해가는 외계인에게 할 법한 대사로 생각난 것 아무거나 뱉은건데... 사이코라서 장단 맞춰준 거 아니었어...? "그렇다면 더더욱 죽인 뒤 데려가야겠군." 남자의 목소리가 허공에 울렸다. "아, 아니! 잠깐, 잠깐만요. 제 암세포는 제가 죽으면 사라져요." "...그래?"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 아 잠깐만... 갑자기 쓰기 귀찮아짐.... ㅌㅌ...
371 이름없음 2020/12/16 00:50:55 ID : mrdTSGpO1io 0
은하수 겨울 백조
372 이름없음 2020/12/16 02:17:11 ID : cslCqnVcMja 0
맞아 바로 이런걸 원하는 거였어!! 레스주 최고다 정말
373 이름없음 2020/12/16 02:18:49 ID : qp87863Wlxx 0
앗 홀짝이 안 맞는 관계로 발판~! 한석원 실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374 이름없음 2021/01/06 17:29:41 ID : IILaq2NwIE4 0
이 스레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레라서 오랜만에 갱신! 이곳은 오래전에 백조들이 살던 호수였다. 채 식지 않은 열기가 내려앉은 여름밤이면 마을의 어린아이들은 숲 속 호수로 가서 물장구를 치며 시간을 보내고는 했다. 그리 깊지 않은 물에서 놀던 아이들은 이내 몸을 말리기 위해 바위 위로 기어올라가 셔츠를 훌훌 벗어던져 걸어 두었다. 이따금씩, 물이 뚝뚝 떨어지는 옷을 자그마한 손으로 꼭 짜며 재잘거리던 아이들의 소리가 갑작스레 잦아드는 때가 있었다. 바로 백조가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마을 인근의 숲 속에는 백조가 살고 있었다. 이 희고 우아한 새들은 낮에는 잘 보이지 않다가 밤이 되면 호수의 잔잔한 물결 속에 모습을 드러냈다. 숲을 찾는 어른들은 약초나 열매를 얻으려 낮에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밤의 호수에서 노는 아이들만이 그 백조들이 자아내는 마법 같은 신비로움에 잠기는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내가 들었는데, 저 백조들은 하늘에 있는 은하수에서 떨어진 거래." "그걸 믿어? 누가 그랬는데?" "꽃집 아저씨가. 저기 은하수 안에 백조 집이 있대. 그리고 하늘에 저거, 백조 모양 별자리 있잖아. 그게 백조가 여름에 여기로 오니까 하늘이 텅 비어서 그려놓은 거래." "아저씨가 거짓말한 거야. 무슨 백조가 하늘에서 떨어져?" "진짜거든?" 마을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유치한 전설을 믿는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과 싸움을 벌이고는 했다. 그러나 겨울이 되어 얼어붙은 호숫가에서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는 아이들은 그 전설이 사실이기를 내심 바랐다. 여름철에 백조자리가 보일 때쯤이면 다시 그들의 신비로, 마법 같은 숲 속으로 돌아와 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마을 아이들의 어릴 적 마법은 호수에서 피어나 하늘까지 닿았던 것이다. * 백조들이 자아내던 신비를 마음에 간직하던 어린아이들은 서서히 어른이 되며 여름밤의 마법을 잊는다. 그러나 어느 해 겨울, 백조들의 숲은 그들을 신기하게 맞아들일 새로운 아이들마저 영영 잃고 말았다. 그해 겨울 마을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사람들은 날아드는 폭격을 피해 고향을 떠났다. 물에 젖은 옷 대신 식량이나 약간의 금붙이가 든 보퉁이를 손에 꼭 쥔 아이들은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백조들은 하늘로 잘 돌아갔을까. 우리를 함께 데리고 가 주면 안 될까. 이 겨울이 끝나면 우리는 다시 백조들을 만날 수 있을까? 몇 번의 폭격을 맞은 숲은 전처럼 신비롭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애처롭게 마지막 아이들을 부른 듯했다. 겨울이 끝나면 다시 돌아오라는 울림이 바람에 실린 재와 함께 마을을 스쳤다.
375 이름없음 2021/01/06 17:33:31 ID : lyK0mtxVarg 0
가면, 음악, 사진
376 이름없음 2021/02/05 21:10:22 ID : fhs2la785Wl 0
내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였다. 찬란한 조명 아래에서 윤이 나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은 어릴 때 보아도 기억에 남는다.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가끔씩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손길은 상냥했고 은은한 라벤더 향을 풍겼다. 그러나 직업이 직업인만큼 해외를 자주 돌아다녀야 했던 그녀는 나와 자주 보지 못했다. 인사할 틈조차 주지 않고 높디 높은 곳으로 한순간에 떠나버릴 때도. 잠시 어머니의 사진을 바라보며 추억에 잠겼다. 사진 안에서의 공연 테마는 가면무도회 였는지, 보랏빛 가면을 쓰고 피아노에 앉아 은은히 웃고있는 사진이었다. 어머니의 얼굴은 진즉에 잊어버렸었다. 그도 그럴것이, 어머니의 유품은 삼촌이 독일로 가져가버렸으니까. 오랜만에 보는 얼굴은 반가웠고, 여전히 아름다웠고, 그리고...미웠다. 아주 조금이지만, 그래도 미웠다. 날 두고 떠나간 자에 대한 쓰림이자 외로움이었다. 눈에 조금씩 눈물이 고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에는 눈물도 나오지 않았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377 이름없음 2021/02/05 21:31:00 ID : dyE8mINs8pa 0
길을걷는데미치겠어요 사람들사이에서 길을걷는데 나만 멈춰있는지모르겠어요 문득하늘을봤는데 달이하얗게보이고 또오해영 대사가 떠올라 눈물이났어요
378 이름없음 2021/02/14 02:31:44 ID : teNteNupPjw 0
으음 뭐지? 꼬임 방지로 하나 놓고 다음 레스에 단어 3개 제시할게:>
379 이름없음 2021/02/14 02:32:08 ID : teNteNupPjw 0
반지 . 남편 . 집
380 이름없음 2021/02/14 02:45:52 ID : 85SE06Zg3O2 0
늦은 저녁. 남자친구가 집 앞에 왔다고 잠시 나와보란다. 나는 별 생각 없이 그냥 대충 입고 화장도 안한체 남자친구를 보러 갔다. 너무 편해진 탓이려나... "왠일로 우리 집까지 오냐" 나는 말했다. "그냥. 너가 보고 싶어서" 남자친구가 말했다. 그리곤 같이 공원을 걸었다 "갑자기 그거 생각나네. 우리 사귀기 전에 그 있잖아. 너가 나 좋아해서 맨날 우리 집 까지 와서 만나달라고 애걸복걸하면서 기다렸던거. 그게 벌써 7년 전이네." 내가 말했다. "그랬었지. 추억돋네" "나 그땐 진짜 너 안만나려고 했는뎈ㅋㅋ이렇게 됐네." 내가 말했다. "그게 벌써 7년이나 됐네" " 그런데 오늘도 애걸복걸 빌어보려고." 남자친구가 말했다. "또 뭘 잘못했냐" 내가 말했다. "너무 늦게 얘기 해서 미안한데... 오늘도 애걸복걸 빌어볼게. 나랑... 결혼해줄래...?" "미리 말해주지. 치. 이럴거면 화장이라도 제대로 하고 오는건데..." 그래도 후회보단 기쁨이 더 많은 밤이었다.
381 이름없음 2021/02/14 02:57:31 ID : pe5dQq3Qsi3 0
어항 새벽 눈물
382 이름없음 2021/02/14 16:34:52 ID : s3wmoMksqnW 0
너와 이별한 뒤에 밤을 지새워 울다보면 새벽 하늘이 어스름히 밝아올 때 창문 밖에는 물고기가 떠다니더라. 창문 틈새로 물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새벽 찬 공기에 울다 지친 내 몸 한 번 떨어주고 주섬 주섬 옷 챙겨 창문 앞에 가 앉는다. 날아다니는 물고기와 눈 한 번 마주쳐 주고 멍하니 창을 바라보면 어두웠던 하늘이 어느샌가 붉게, 그리고 또 하얗게 하늘을 물들인다. 창을 열어 네게 날아 갈까 하다가도 너와의 추억이 물처럼 흘러갈까 애써 붙잡고 있는다. 그래서 나는 눈물을 흘렸다. 내 눈물을 고이 모아 어항을 하나 사서 물고기 하나를 넣어 두어야지. 다 자라면 네게 한마리 씩 보낼 것이다. 창 밖에 물고기가 다 사라질 때 쯤이면 이 아픔도 끝일거야. 아마도.
383 이름없음 2021/02/14 20:31:41 ID : k5Wqqi5Xs60 0
집착. 애증. 결말
384 이름없음 2021/02/22 10:37:38 ID : huoHxzQk3xB 0
처음 널 만났을 때 이 사랑의 결말은 내가 그동안 느꼈던 사랑과는 확실히 다를 거라고 느꼈다. 하지만 이 사랑의 끝자락인 지금 이 순간 느낀 이 사랑의 결말은 예전에 느꼈던 다른 사랑의 결말과 다를 게 없었다. 난 네가 다른 사람의 손을 잡고 걸어가던 가게 앞 작은 길에 계속해서 서있다. 네가 없는 난 잘 지내지 못했다. 잠들기 전 널 생각하며 눈물 흘린 것도 벌써 2달째인 나는 다른 사람을 만나 잘 지내고 있는 너를 볼 때마다 화가 난다. 나는 매일을 고통받으며 하루하루를 힘들게 지내고 있는데 내 눈에 비친 너는 왜 환하게 웃고만 있는지 모르겠다. 눈물이 내 눈에 고이기 시작했을 때 넌 내 주변을 스쳐 지나갔다. 날 잠시 보더니 곧 옆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 눈길을 돌렸다. 이제 나는 필요하지 않은 건가? 점점 더 네가 미워졌다. 그런데 내 심장은 아직도 뛰고 있다. 너를 미워하려고 해봐도 내 심장은 항상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난 아직도 너를 좋아한다.
385 이름없음 2021/02/22 13:57:17 ID : 4Zjs4IFa3Dz 0
작살 먼지 애통해하다
386 이름없음 2021/02/22 23:10:28 ID : 47xTVdTQts5 0
짧게 쓸게 눈을 떠보니 익숙한 풍경이 펼쳐졌다. 항상 피비린내가 나는 우리의 마지막 전투. 내 눈앞의 너는 사람을 죽이면서도 그들을 향한 애도의 의미로 눈물을 흘리며 싸우고 있었다. 평소의 너와 다름없이. 정말 평소 같았다면 나는 네가 물러 터졌다며 놀릴것이였지만, 이 다음에 무엇이 일어날지 알았기에 황급히 내몸을 너에게 던졌다. 작살이 내몸을 뚫었을거라고 생각한 그 순간, 내 몸이 유령이라도 된것마냥 작살은 나를 지나쳐 너의 가슴을 관통했다. 가슴이 붉은 꽃을 피운 너는 먼지처럼 바스러져 갔고, 나는 그저 그것을 바라보며 나의 허망함을 눈으로 흘려보낼 뿐이었다. 애통하구나, 아리따운 나의 친구야, 다시 한번 너를 구할수 있었다는 희망은 이제 박살나 먼지가 되었다.
387 이름없음 2021/02/22 23:26:44 ID : ZbjxU2Mo5hu 0
나비, 꽃, 장화
388 이름없음 2021/02/26 01:11:25 ID : 47ApglA43Qm 0
화창한 날씨다 꽃과 나비가 산들바람에 덩실거린다 화장한 날씨다 너라는 폭우를 맞았던 나는 오늘도 장화를 신는다 내일도, 모래도 장화를 신는다 사랑따윈 절대 다시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한순간의 햇빛에 정신팔려 비바람이 치는 줄도 모르고 우산도 없이 서있던 난 이제야 비바람에 생겼던 상처를 바라보지만 그립다, 한결아
389 이름없음 2021/02/26 01:15:22 ID : 47ApglA43Qm 0
다시, 영원, 재회
390 이름없음 2021/02/26 10:59:48 ID : pO1eGpU0lil 0
밥 한 번 먹자는 말은 정말 나쁜 말이다. 둘 다 다시는 그러지 않을 것을 알면서, 서로를 속이면서까지 다음을 기약하니깐. 그런 의미에서 우리 둘 다 나쁜 사람이다. 밥 한 번 먹자면서 영원히 가버린 너가 더 나쁠지도 모르겠다. 무엇이었을까? 담배를 입에 물고 생각했다. 왜일까? 장례식장 문 앞에서 서성거리며 생각했다. 혹시나 내가 무심코 뱉은 말들이 네가 지금 누워있는 이유일까봐 조금 두려웠다. 직접 눈을 보면서 사과하고 싶었다. 사과하고 머쓱하게 웃으며 다음에 또 보고 싶었다. 너를 시체로 재회하고 싶지는 않았다. 담배가 다 타자 더 이상 서성거릴 핑계가 없어졌다. 조용히 장례식장 입구로 들어갔다. 정말 미안해.
391 이름없음 2021/02/26 16:18:41 ID : q1Cjg3RBcGn 0
괴도, 보석함, 첫눈에 반하다
392 이름없음 2021/02/26 17:45:59 ID : ryY1csrwK2J 0
처음 보았을때 보았던 그 찬란한 빛에 나는 눈을 때지 못하게 되버렸다. 그레, 나는 첫눈에 반해버린것이었다. 그걸 깨달은 나는 제빠르게 움직였다. 나는 정갈한 쪽지지에 이 마음을 한문장 한문장 골라가며 적어 낸뒤 너의 집에 보냈다. 너의 보호자분 께선 나를 아니꼽게 보았는지, 약속장소에 너를 보낼때 경비원들을 많이 보내셨지만 그런건 내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수많은 경비원들 사이를 지나 약속 장소에 온 너에게 꽃다발을 내밀며 고백 했다. 너는 잠시 당황한듯 보였지만 이내 수락 해주었다. 나는 너의 손을 잡고 약속장소를 빠져나왔다. 그날 괴도는 아름다운 보석함을 가지고 빠져나왔다. +)미안해! 글 쓰는와중에 잘못 올려가지고 그냥 빠르게 편집해서올려! 글이 좀 짦고 이상해도 이해해줘! 내용은 그냥 로멘티스트 괴도이야기!
393 이름없음 2021/02/26 17:49:26 ID : mnzTRzO2mli 0
얼음, 레몬, 바다
394 이름없음 2021/02/27 22:58:30 ID : DBz9ba4IMmE 0
네가 그랬지 넌 수족냉증이 있어서 손발이 차갑다고 이젠 다른의미로 차가워진 너를 아직도 그리워 해 네가 그랬지 넌 신맛을 잘 못느껴서 레몬도 잘 먹는다고 이젠 널 만나러 갈 때 마다 항상 레몬을 챙겨 네가 그랬지 언젠가 같이 바다에 가자고 딱 한 번이라도 널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네가 좋아하는 바다에 같이 가자
395 이름없음 2021/02/28 00:15:47 ID : q1Cjg3RBcGn 0
펭귄, 난로, 휴식
396 이름없음 2021/02/28 00:42:02 ID : y0oL9fQpWpe 0
ㄱㅅ
397 이름없음 2021/02/28 01:24:29 ID : CnWmNvyIGmp 0
장례식, 만개한 벚꽃, 비 내리는 새벽
398 이름없음 2021/02/28 02:02:42 ID : s3wmoMksqnW 0
비 내리는 새벽에 울리던 전화 벨소리의 간격이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너와는 끝난 사이라 다짐 했건만을 어찌 그렇게 모질게 내칠 수 있겠는가. 침대에 앉아 베개로 두 귀를 막는다. 전화기를 들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손이 닿는 순간 내가 어떤 행동을 할지 몰라서. 차가운 공기 속에서 네가 그리도 좋아하던 벨소리만이 일정한 간격으로 울렸다 멈추었다를 반복한다. 너와의 이별 이후 일주일 뒤에야 걸려온 전화에 가슴이 덜컥했다. 네가 무언갈 또 알아 나에게 전화했을지 뻔하니까. 그렇지만 넌 찾아올 수도 없을 것이기 때문에 전화도 받지 않을것이다. 아마 언젠가는 너도 나를 잊게 될거라 생각하니 마음 한 쪽이 아프다. 이젠 침대에 걸터 앉을 기력도 없다. 가만히 누워 천장만을 쌕쌕 거리며 바라보았다. 나의 미래. 나에게도 미래란게 있나? 있어도 어찌 할 수 없다. 아마 너는 나의 밝은 모습으로 다시 만나게 될 수도 있다. 이른 감이 있지만 혹여나 싶어 꼭 찾아와줬으면 하는 곳이 있다. 너에게는 얘기 하지 못한 곳이고, 들으면 울 것이 눈에 선명하기에. 이렇게나 애써 내 눈에 담아낸 너를 흘리지 못하고 고이 데려가려 한다. 어여쁜 네 모습 그대로 고이 가져갈테니 너는 나의 벚꽃과 같은 모습만 기억해줬음 좋겠다. 나즈막히 네 이름 석자 불러보니 입꼬리가 스멀스멀 올라간다. 그리도 예쁜 이름이었던가. 만개한 벚꽃이 지던 날 너와 나는 나의 장례식에서 다시 만났다.
399 이름없음 2021/02/28 03:36:30 ID : 7tjuk9uk07f 0
뱀파이어, 온기, 사랑
400 이름없음 2021/02/28 16:48:11 ID : 04Mrz81hhtj 0
어릴 적 우습게도 뱀파이어가 되길 소망한 적이 있었다. 하얀 피부에 긴 송곳니, 빛을 보면 죽는 존재라니 지금 생각해보면 참 유치하지만 그때는 그런 존재들을 동경했다. 그 시절에 너를 만났다. 너는 내가 머릿속으로만 그려왔던 뱀파이어와 너무 닮아있어서 꼴사납게 네 앞에서 비명을 질렀다. 그런 나를 보며 너는 놀라지도 않고 살풋 웃어보였었지. 우리의 첫 만남은 그랬고, 그 일을 계기로 우리는 친해졌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나이도 같았고, 너는 내가 다니는 학교를 전학을 왔다. 그렇게 유년기부터 청소년기까지 우리는 함께였다. 처음엔 내가 주인을 보면 꼬리를 흔드는 개새끼마냥 관심을 구걸했다. 좋아했으니까, 내가 널 많이 사랑했으니까. 애정결핍이 있는 어린 아이처럼 온기를 갈망했다. 너는 한 번도 날 만족시킨 적이 없었다
401 이름없음 2021/02/28 16:56:01 ID : 2la3CnSGpU3 0
스타카토, 페인트, 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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