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부루마블의 차를 타고 오던 길. 부루마블은 운전석으로 나를 안내했다. 망할 년, 날 운전석에 태우고 운전시키려는 게 틀림없다. 그래놓고서 자기는 조수석도 아니라 뒷좌석에서 조수석 목받이에 발을 기대면서 대충 말을 이을 것이다. 난 비위에 맞춰서 해야 되는 건가..?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쨌든간 이 모든 데스파다의 목적만 달성시키면 된다는 자기 정당화가 내 몸과 뇌에서 몸부림쳤다.
"안전벨트.. 매세요." ...왜 내가 이런 말을 하는거야. 나는 개의 목줄을 엎어쓴 그의 조수다. 닥터? 지랄하지 말라 그래.
그렇게 차는 시동이 걸렸고 출발했다. 잠시 대화가 이어갔다.
"그래, 우리 비서님은.. 어쩌다 이 회사에 들어오게 되었어?"
"안정된 직장을.. 찾아 왔습니다.."
"안정된 직장..? 그래, 여기에 만족해?"
"만족하지 않더라도 주어진 자리에 맞춰가야겠죠.."
"웃기네, 주어진 자리라니. 운명이라는 거잖아? 깔깔깔!" 부루마블의 알량한 웃음은 충분히 나의 심기를 건드렸다. 서서히 차에 속도가 붙었다.
"야, 천천히 밟아.." 부루마블이 내 어깨를 툭툭 쳤다. 그런건 보이지 않았다.
꿈에서 말했지, 흰나비는 이미 날개가 찢겨 죽어버렸다고. 그래, 차라리 이 년이랑 같이 죽어서 흰나비나 보지 뭐. 차의 시속은 140km/h, 150km/h, 160km/h.. 올라갔다.
미친듯이 광기에 휩싸인 것을 나타내듯 아름다운 검은 자태를 비춘 내 자동차는 도로를 질주하며 휘청댔다.
빵빵대는 경적소리, 바퀴가 급하게 체해서 내는 끼익하는 강한 굉음은 나를 향한 환호성. 놀라서 어깨를 흔드는 부루마블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휘청대다가..
"뭐.. 뭐야!" 장애물이 없어야 할 일차선에서 차 하나가 반대방향으로 미친듯이 달렸다. 차의 앞부분은 심각하게 찌그러져 있었고 앞거울은 깨져 있었고 피에 적셔져 있었다.
브레이크를 밟아보려 했지만 이미 미쳐버린 자동차는 그대로 그 차를 뒤어박고 말았다.
◆wJTU1Dy2NxS2020/05/13 09:54:21ID : u1dA5fapU3P
콰지직- 모든 산물이 무너졌다. 내가 쌓아온 모든 탑들이 순식간에 우수수 무너졌다.
이 이후로 의식이 끊겼나보다. 의식이 돌아올때쯤은 이미 괴상한 악취를 맡고서 다시 정신을 잃은 것이었다.
부루마블은 안전 벨트를 매고 있었고 뒷좌석에 있어서 가까스로 살아남은듯 보였다. 마치 사장실에서 홍마부랑 얘기했을 때 모습처럼 피범벅이긴 했지만.
.....
"지금부터 대주주총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진행자가 조근하게 외쳤다.
"사장 부루마블 씨는 자리에 일어서서 이번 프로젝트에 대한 발표를 해주십시오."
"우선, 늦어서 죄송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군요. 이 모든 건 저의 불찰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부루마블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내 허리도 숙여져 있었다. 팔은 뒤에 걸려 있었다. 어딘가에.. 묶여 있는 걸까. 나는 다급하게 소리를 내질렀다.
하지만 그것은 되풀이 없는 메아리였다. 그리고 나타난 건..
◆wJTU1Dy2NxS2020/05/13 09:54:33ID : u1dA5fapU3P
"라슬러..!" 라슬러였다. 눈 한쪽이 패이고 얼굴이 피투성이인 처참한 몰골.
"내가 너 새끼 때문에 인생을 망쳤어.. 우리는 숲에서부터 시작된 인연이었잖아, 그런데.. 너 새끼 때문에.." 라슬러는 입을 찢어내가며 애써 말 한마디 한마디를 토해냈다.
숲에서 수련하던 나와 라슬러. 즐겁게도 뛰어놀았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내 뇌리에 스쳐오른다.
내 뒤에는 커다란 모포가 있었다. 그 모포 앞에는 나무 판이 묶여 있고 그 판에는 내 팔이 묶여 있어서 내 팔이 움직일 때마다 모포가 움직였다. 마치 나비처럼..
라슬러가 내 겨드랑이 안팎에 박힌 나사를 빼자 그 엄청난 고통이 내 팔에 쑤셔올랐지만 팔을 겨우 움직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더 길다란 판에 내 몸이 박힌 채로 있었다.
라슬러는 말없이 모포를 만지작대었다. 모포는 내 땀에 조금 젖어 있었다. ...
"그럼 지금부터, 우화 프로젝트에 대한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우화 프로젝트는 파필리오 가설의 입증을 통한 효율적인 생산을 목적으로 둔 프로젝트이며, 생물 DNA를 복제시킨 뒤 향을 추출하는 방식입니다."
부루마블은 침착하게 프레젠테이션 리모트 버튼을 누르며 발표했다. 모두 집중해서 그녀의 말을 들었다.
한편 라슬러는 모포에 라이터를 틱틱 키더니 모포에 불을 질렀다.
"이 미츤는! 미츤는!" 입에 걸린 것 때문에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눈은 처절하게도 눈물에 젖어 있었다.
◆wJTU1Dy2NxS2020/05/13 09:54:47ID : u1dA5fapU3P
라슬러는 한편 물 양동이를 옆에 끼어두었다. "내가 그래도.. 그 나비 생각만 하면서 참았는데. 이러면 곤란하지.. 대신 살려줄게."
"나비야 날자꾸나..라고 외쳐봐. 그러면, 나비가 너한테 날아올라서 희망을 줄걸?"
...미친 년. 아무리 생각해도 단단히 미쳤다. 누가? 내가 미쳤지, 씨발.
나는 최대한 팔을 뻗고 팔에 불이 날 정도로 위아래로 팔을 흔들었다. 모포가 불에 의해 퍼덕이면서 내 팔을 지져올렸다.
"아아악! 나비야, 놀자꾸나.. 꿀꺽, 나비야 놀자꾸나! 씨발, 나비야,, 놀자꾸나!! 나비야, 놀자꾸나!!"
내 팔은 나비처럼 날아오르면서도 불꽃을 울었다. 날개 한쪽이 완전히 뜯긴 형상이었다.
"야 했잖아! 물, 물로 꺼 미친년아! 나비야 놀자꾸나. 나비야 놀자꾸나! 나비야 놀자꾸나아아!!!!!!!!"
...
"으아아악! 나비.. 나비, 나비야 놀자꾸나. 나비야 놀자꾸나아아아아아아!!!!!!"
"미친 새끼." 라슬러는 날 보며 웃었다. 아니, 눈은 울었다. 입은 웃었다. 공포스러웠다. 괴악스러웠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유형이었다.
"나비는 이미 뒤졌어, 너새끼 약 맞고 병신아."
"나비가.. 죽어? 나비가.. 죽어..?" 충격에 빠진 나는 순간 실어증에 걸린 듯 잠잠해했다.
"나비가 죽어!??! 내가 평생 나비를 위해 살았는데 나비가 죽어?!??! 나비가?!?!? 아.. 아아아아악!!!!"
내 눈물 안에 비친 것. 목받이에 발을 올려놓고 기세등등해하던 부루마블. 섬에서 나를 꺼내준 뒤 경멸스레 웃던 부루마블.
내 계략을 안 것인지 조금 괴이한 표정을 짓던 크로드 부장. 모두 그 눈물 안에 상처럼 맺혀흘렀다.
수상한 곳 전체에 불이 타올랐다. 이미 출구에는 나갈 방도는 없다. 라슬러 년은 같이 자살하려는 생각인 듯 보였다. 그 차도 라슬러가 몬 것이라.
"따라서 여러분 투자 하나하나가, 아주 중요한 저희의 자산이고 생명입니다. 고맙습니다."
박수와 환호성이 울려퍼졌다. '부루마블 사장, 내가 하겠네.'라는 연발의 소리가 터졌다. 모두 즐겁게 웃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몰랐다. 대주주총회가 벌어진 알파센타우리 항성계 B0-237행성 812-54구역의 지하에 있는 나의 괴물 같은 비명을, 타오르는 날개의 불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