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여행자입니다. 여행자라고 해도, 신 몰래 이 세계 저 세계 드나들며 보고 들은 것을 말하기 좋아하는 이야기꾼에 불과하지만요. 여행자보다는 침입자, 그러니까 불법체류자에 가깝네요. 여러분이 키워드를 주면, 저는 그와 관련된 추억 한 조각을 이야기할 거예요. 때로는 동화 같기도, 때로는 괴담 같기도 하리라 생각해요.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도 있을 수 있겠죠. 어찌되었든 여러분이 즐겁게 듣는다면 좋겠어요! 아. 일방적으로 수다를 떨 생각은 없답니다! 그건 이야기꾼이 아닌 수다쟁이에 불과하니까요. 질문은 언제든지 받는답니다.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볼까요? 키워드를 기다릴게요. >>3 >>5

인형과 사랑.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네요! 옛날인지 나중인지 모를 어느 날이었어요. 곰 인형을 아주 사랑하는 소녀와 소녀에게 사랑받는 곰 인형이 있었어요. 소녀는 매일 인형의 털을 빗겨주고, 밤마다 이불을 덮어주고 자기 전에는 잘 자라는 인사를 속삭여주었답니다. 인형은 어느 날 그런 정성의 이유가, 사랑이 궁금해졌어요. 어떻게 하면 이렇게 한결같이 자신을 아껴줄 수 있는지 신기했답니다. 그래서 인형은 소원을 빌었어요. 나도 소녀를 사랑하게 해 주세요. 마침 우연히도 인형의 꿈속을 지나가던 마음씨 좋은 마법사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어요. 단, 자신은 세 가지 소원만을 들어줄 수 있으니 신중하라고 말했지요. 인형은 자신도 소녀를 사랑하게 해 달라고 말했어요. 마법사는 인형에게 사랑을 할 수 있는 마음을 주었지요. 그러자 곰 인형은 소녀를 사랑하게 되었답니다. 곰 인형은 소녀와 함께 잠들고, 소녀와 함께 유치원에 가며 매일매일 행복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곰 인형은 문득 생각했어요. 나도 소녀에게 인사하고, 머리를 빗겨주고, 꼭 끌어안아 주고 싶어. 곰 인형은 꿈나라에서 쉬고 있던 마법사에게 소원을 다시 말했어요. 그러자 마법사는 좋은 아이디어를 냈어요. 꿈에 소녀를 초대하는 건 어떨까? 곰 인형과 마법사는 좋은 생각이라며 꿈속으로 소녀를 초대했습니다. 꿈속에서 소녀와 곰 인형은 아주 행복하게 나들이를 했답니다. 이 시간이 너무나 행복했던 곰 인형은 마법사에게 한 가지 소원을 더 빌었어요. 소녀가 앞으로도 나를 사랑하게 해 주세요. 마법사는 흔쾌히 소원을 들어주었답니다. 그 뒤로 소녀와 곰 인형은 꿈속에서도, 꿈 밖에서도 사이좋게 지냈어요. 꿈에서 깨어있는 동안은 곰 인형이 움직일 수 없었지만 둘은 아주 행복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녀가 살던 집에 불이 나고 말았어요. 소녀는 몸을 피했지만, 곰 인형은 미처 나오지 못한 채였어요. 곰 인형은 움직일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소녀는 곰 인형을 구하기 위해 불 속으로 들어갔답니다. 그렇게 둘은 만났지만, 소녀는 곰 인형과 함께 불이 난 집 안에 갇혀버렸답니다. 소녀는 불행히도 연기 때문에 정신을 잃고 말았어요. 곰 인형은 소녀가 자신을 사랑했으면 좋겠다고 빈 소원을 후회했답니다. 그리고 마법사를 다시 찾았지요. 하지만 아쉽게도 이미 세 번의 소원을 다 빌었다는 게 생각나 버렸어요. 그래도 곰 인형은 계속, 계속 바랐습니다. 소녀만큼은 살아남기를 바랐어요.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소녀 주위로 빛이 나더니 소녀를 보호해주는 게 아니겠어요? 소녀는 소원이 없어도 인형을 사랑했을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소원이 이뤄진 것이었어요. 그렇게 곰 인형은 편하게 불길에 몸을 맡겼어요. 곰 인형은 불타고 말았지만, 소녀는 살아남았지요. 하지만 소녀가 잠이 들고 나면 꿈나라에서는 곰 인형과 함께였어요. 둘은 이 뒤로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끝!

이야기는 마음에 들었나요? 그럼 다음 이야기를 시작해볼까요. >>10 >>13 단어를 말해줘도 좋고, 문장을 말해줘도 좋아요.

불법체류자라면 신에게 혼나거나 하지 않아?

>>8 오! 제겐 최고의 칭찬이에요. 고마워요. >>9 아직까지 혼나본 적은 없어요. 몰래 숨어다니고 있죠. 한 번이라도 혼났다면 여기에서 한가롭게 추억 이야기를 하고 있진 못했을 거예요. 아마도? 이런, 제가 가리킨 숫자를 제가 먹어버렸네요. 그렇다면 >>15에서 다시!

와~... 느닷없이 무서운 키워드가 나왔네요. 신들에 대한 건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흠흠. 내가 뱉은 말은 지켜야겠지요. 아! 그럼 신이 막 세계 창조를 끝내고 휴지 기간에 들어가 있던 어떤 우주의 이야기를 해 볼까요.

나는 여행을 하다 아주 초창기인 우주를 발견했어요. 세계를 막 태동하게 한 어린 신은,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나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난 그의 피조물인 척 세계에 숨어들어 그를 관찰 했어요. 요즘은 어린 조물주도 드물거니와, 신의 생애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였거든요. 나는 지나가던 바람인 척 그를 맴돌았습니다. 신은 처음엔 자신이 만든 피조물들이 신기한 양 형태 없이 세계를 빙빙 맴돌았어요. 커다란 빛으로 세상을 비췄다가, 시선을 거두고 어둠을 내렸다가. 작은 생명들이 꿈틀거리는 것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했지요. 사랑스럽다는 듯이 세계를 감싸 안은 신은 아주 행복해 보였습니다. 신은 그들이 행복하게 살도록 돕는 것에 최선을 다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신은 외로움을 느꼈어요. 나는 왜 혼자일까? 다들 저렇게 무리 지어 살고 있는데, 왜 나는 이렇게 외롭지? 그래서 신은 피조물과 함께 살아보기로 했어요. 신은 인간을 흉내 내기 시작했어요. 오랜 시간 인간을 관찰했던 신은 흉내가 제법 능숙했어요. 하지만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신은 어리광쟁이의 흉내를 내고 있었거든요. 순수하고 여리며, 조금만 힘들어도 곧바로 신을 찾으며 기도를 올리는... 인간을 그런 생물이라고 생각했나 봐요. 내가 보아 온 인간들은 언제나 진지했어요. 그들은 신에게 재롱을 부리기 위해 살아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군상극이 주는 아기자기함은 그들에게 현실이고, 신이 장기 말을 조금만 움직여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인간들에겐 고난과 역경이에요. 그 모습과 행동이 아무리 하잘것없더라도, 평생을 물질계에서 살아가다 늙어 죽어가는 인간들에겐 숨 쉬는 모든 순간이 자신의 한계를 부수려는 도전이지요. 육체를 입고 인간 흉내를 내며 일부러 무지한 척, 연약한 척하는, 여유로운 기만은 내가 보기에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어요. 인간은 수동적인 어리광쟁이가 아닌데! ...흠, 흠. 조금 흥분했네요. 인간에 관한 이야기는 이쯤 하고. 신은 아이가 되기도 하고, 노인이 되기도 하며 세상을 떠돌았어요. 그러던 중 질병이 휩쓸고 간 곳도, 재해가 덮친 곳도, 전쟁이 일어난 곳도 지나왔어요. 힘든 생명, 고통받는 생명을 아주 많이 보았죠. 물론 추악한 생명도. 신은 슬펐어요. 이런 시기일수록 신에게 기도하는 인간이 늘 법도 하지만, 세계에 내려와 있으며 신앙을 돌보지 않은 신에게 기도를 내리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었어요. 세상에 내려오는 것에 힘을 다 쓴 신은 그들을 도와줄 수가 없었거든요. 하지만 신은 자신만이 그들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자신의 통제가 없으면 세상이 멸망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피조물들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요.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쓸쓸한 최후를 맞지 않게 손을 잡아주는 것뿐이었죠. 결과부터 말하자면, 세계는 멸망하지 않았어요. 신앙이 사라지고 종교가 쇠퇴했지만, 신의 힘을 빌리지 않은 피조물들은 갈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배웠어요. 악착같이 살아남아 남을 구하기도 하고, 약자를 존중하는 강자들이 담합해 위협을 통제하기도 했어요. 신은 놀랐습니다……. 나도 놀랐어요. 꼼짝없이 망할 우주라고 생각했거든요. 그것을 본 신은 마침내 인정했어요. 생물은 부모로부터 태어나지만요, 다 자란 생물은 부모로부터 독립하죠. 살아가도록 태어난 존재는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면 자신을 보호하던 것과 결별해야 해요. 세계가 신으로부터 독립할 때가 온 것이지요. 그는 창조와 구원이라는 의무를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다음엔 정말 인간으로 태어나기로 했답니다. 만사에 최선을 다하는 인간으로, 태어남과 죽음을 반복하는 인간으로... 나는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었지만, 그는 마지막에 아주 행복해 보였습니다. 다 자란 아이들을 보는 부모의 마음이 저런 것이었을까요. 나는 부모가 되어 본 적이 없어 모르지만요.

이번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에요. 마음에 들었나요?

글 완전 잘쓴다... 대ㅐ박

인간 찬가 좋아해? 무례하게 들렸다면 미안해. 글은 정말 잘 읽었어.

>>19 >>20 >>21 다들 멋진 반응 고마워요! 이야기할 맛이 나네요. 인간 찬가라. 멋진 말이죠! 비슷한지도 몰라요. 혹자는 나를 인간 애호가라 부르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난 인간만을 좋아하는 게 아니랍니다. 말하자면 만물 찬가라고 할까요? 세상 모든 것의 무한한 잠재력과, 그것의 긍정적인 방향으로서의 발현을 믿어요. 내가 보아 온 많은 것들이 그랬으니까요.

신은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던데.

>>23 느닷없이 정곡을 찔렸네요…. 그냥 조금 무서워하는 것 뿐이에요! 그럼 바로 다음 키워드를 받아 볼까요? 이번엔 어떤 이야기가 듣고 싶나요? >>26 >>28

오… 이런 개인적인 키워드를 던져 주시다니. 다들 저에게 관심이 많은 거로군요? 이런, 어딜 가든 이놈의 인기란….

근데 불법 체류자면 갈 곳이 없는 신세인거 아니야?

>>30 하하! 비슷해요! 여행자라고 소개했다시피, 나는 타향살이 중이랍니다. 정처 없이 이곳저곳 떠도는 처지죠. 그래서 여행지 이번에도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어요. 이해해 주세요! 고향이라. 아. 전에 인어들의 고향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어떤 바다에 간 적이 있었어요. 이번엔 그곳에서 본 이야기를 해 볼까요.

옛날 옛적 어느 바다에, 지룡이 한 마리 살고 있었답니다. 이 용은 헤츨링 시절부터 또래에 비해 잘 날지 못해서 부모님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날개가 기형이라 잘 날 수가 없었거든요. 부모님은 상심하였고, 딸의 참담한 앞날을 걱정하며 한탄했답니다. 용은 그것이 싫었어요. 나는 날개가 좀 짧은 것뿐인데, 다른 용들은 항상 자신을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거든요. 하늘을 잘 날지는 못해도 헤엄은 잘 치는데. 하지만 다른 용들이 생각하기에 날지 못하는 용은 큰 문제가 있는 것이었나 봐요. 그래서 용은 앞으로 바다에서 혼자 살기로 했어요. 용은 바다에서 아주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폭풍우 치는 어느 날이었어요. 이런 날 날아다니는 용은 없기 때문에, 용은 간만에 조용히 해수면을 산책할 수 있었답니다. 그러다가 이상한 것이 하늘을 어색하게 헤엄치는 것을 발견했어요. 피부에 먹구름이 잔뜩 붙은, 한쪽 지느러미가 유난히 짧은 하늘고래였어요. 하늘고래는 원래 하늘을 빠르게 헤엄치거나 수면에 세게 부딪쳐 먹구름을 떼어내는데, 이 고래는 한쪽 지느러미가 짧았던 탓에 자유롭게 헤엄을 치지 못해 몸에 먹구름이 달라붙었던 거예요. "너 헤엄치기 힘들구나. 나도 날기 힘들다?" 용은 자신의 쓸모없는 날개를 뜯어 고래의 지느러미가 있어야 할 자리에 붙여 줬어요. 고래는 처음엔 좌우 균형을 못 잠아 어색해하는 것 같다가, 금방 익숙해져서 바닷속을 돌아다녔어요. 용은 고래가 멀리 헤엄쳐 가길 바랐어요. 하지만 고래는 그러지 않았답니다. 숨을 쉬러 해수면으로 올라갔다가도 늘 용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어요. 다른 친구 용들은 모두 그 용을 걱정했어요. 미물을 위해 자신의 날개를 뽑아버린 것이 어리석은 행동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백 년도 못 살 존재에게 너무 정을 주면 큰일 난다고 말했지요. 용은 그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용은 벌써 고래에게 정이 들었답니다. 용은 빙하가 아래로 솟아 있는 짙푸른 심해에서 뭍과 닿아 있는 얕은 해변으로 거처를 옮겼어요. 고래가 숨을 쉬려면 적어도 두 시간에 한 번씩은 수면을 찾아야 하는데, 용이 사는 곳은 너무 깊어 고래가 내려오기 힘들어했기 때문이에요. 덕분에 잔소리하러 오는 다른 용들이 더 자주 걸음 했지만 용은 그럭저럭 만족스러웠어요. 용은 고래가 알아들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종종 말을 걸기도 했답니다. "다녀올게." "……." "엄마 하고 불러 볼래?" "……." 고래는 대답하듯 뻐끔거렸어요. 물론 대답은 들을 수 없었지만,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둘은 가족인데.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어요. 일 년, 십 년, 백 년이 순식간이었지요. 용에게는 그랬어요. 하지만 고래에게는 평생이었습니다. 어느덧 늙은 고래는 점점 헤엄이 느려졌어요. 용은 이별의 순간이 머지않았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담담하게 이별을 준비했답니다. 언젠가 올 순간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마지막까지 같이 있어 주었어요. 고래는 잠에 빠지듯이 마지막 공기 방울을 뱉어냈습니다. 그리고 용은 그의 사체가 점점 가라앉는 걸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어요. 영혼이 빠져나간 커다란 고래의 몸은 점점 가라앉아 빛이 들지 않는 심해까지 내려갔어요. 척박한 심해 환경에서 마린스노만 먹던 인어들에게 고래의 사체는 큰 축복이었어요. 고래 사체가 바다의 바닥까지 닿으면, 숨죽이고 있던 인어들이 나타나요. 가장 먼저 연한 살 부분을 먹으면 흩어진 작은 살점 조각들이 주변 바닷물의 영양을 높여 작은 동물들을 먹여 살립니다. 이것은 생태계의 당연한 순환인데, 이것이 고래의 장례식인데, 어쩐지 용은 가슴이 먹먹해졌어요. 함께 한 추억을 한 조각도 남길 수 없는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고래의 장례식을 방해할 수는 없으니, 용은 인어들을 쫓아내지 않고 가만두었습니다. 시름에 잠겨 있던 용에게 한 인어가 다가왔어요. "저는 고래 인어라서, 고래가 남긴 초음파를 들을 수 있어요." "이 심해엔 아직 그 음파의 잔재가 남아있어요." "당신의 음성도 아직 메아리치고 있어요."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져 사라질 거예요.” “당신이 대답을 듣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쉬워서 이야기 하는 거예요.” “저를 쫓아내지 않았으니 답례로 남겨진 목소리를 들려드릴게요.” [다녀오세요!] [엄마!] 용은 길고 긴 이야기를 들었어요. 아직도 그곳에는 용이 흘린 눈물 진주와 용의 날개가 한 조각 남아있답니다. 끝.

이야기는 마음에 들었나요? 그들도 평생 여행자였어요. 원래 지룡은 땅에, 하늘고래는 하늘에 사는 것이 자연이 정한 법칙이니까요. 둘은 원래 공생하는 생물이 아니지요. 하지만 우리 모두 법칙대로만 살아갈 수는 없는 법이잖아요. 적어도 그들은 서로와 함께 바다를 여행하는 동안 행복했을 거예요. 고향이 어디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죠. '원래'라는 것은 이만큼이나 하잘것없답니다.

자. 그럼 다음 이야기를 해 볼까요. 여러분은 무엇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나요? >>40 >>43

이야기 하나하나마다 너무 뭉클하고 여운이 남아..여행자님 고마워...

192e561a204e1c0a286056eda0ec618b.jpg선수상 뱃머리에 달려있는 동상을 말해

오 이런. 이렇게 멋진 말을 해주면 저 감동받아 울어버릴지도 몰라요! 여러분이 제 표정을 볼 수 있다면 이게 얼마나 진심 어린 말인지 알 수 있을 텐데.

음~…. 쿠키와 선수상이라. 생각나는 이야기가 두 개 정도 있네요. 하나를 골라 볼까요? 그 전에 질문! 여러분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요? 자, 한 가지를 떠올려보세요. … 떠올렸다면 다음 질문! 당신이 지금 떠올린 그것은 당신이 이룩해내고야 마리라 다짐한 과업인가요? 아니면 당장에 이는 불꽃 같은 충동이나 갈망인가요? 전자가 많으면 첫 번째 이야기를, 후자가 많으면 두 번째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하나는 극복에 관한 이야기이고, 하나는 일탈에 관한 이야기예요. 아! 어느 이야기가 듣고 싶은지 직접 적어 줘도 좋아요. 그럼 대답 기다릴게요.

밀키스 사오기. 과업이야.

이야기 두 개...둘 다 궁금한데ㅠ 그럼 난 일탈에 한 표 던져볼래

나도 일탈에 한표 던질래

음, 음. 다들 대답 고마워요. …어라, 동점인가요? 그러면 딱 한 표만 더 받아 보고,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죠.

난 둘다 듣고싶은데...

음… 그럼 어쩔 수 없죠, 청자가 원한다는데! 내 이야기가 듣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을 어떻게 외면하겠어요. 두 이야기 모두 하도록 하죠. 그럼… 어떤 이야기부터 해 볼까요? 1. 극복에 관한 이야기 2. 일탈에 관한 이야기 >>55

쿠키와 선수상, 그리고 일탈에 대한 이야기. 그럼 시작해볼까요! 이건 인공지능을 교육하는 교육기관에서 같은 커리큘럼을 이수한 두 안드로이드의 이야기예요. 그들을 편의상 a와 b라고 칭할게요.

오오오오오옹 ㅂㄱㅇㅇ!!!

a는 유능한 로봇이었어요. 인간과 유사하게 만들어진 a는 정서 반응도 잘 흉내 냈고, 감정 표현이나 사회적 관계를 맺는 것에도 능숙했지요. 하지만 b를 보면 자신이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b는 다른 로봇들과 거의 모든 면에서 달랐어요. a는 b가 '인간 같다'라고 생각했어요. 입력된 반응을 출력하는 로봇들 사이에서, 그들처럼 보이기 위해 작위적임을 흉내 내는 평범한 인간 같았어요. 설명하자면, b는 비효율적이고 의미 없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 로봇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b는 쉬는 시간마다 몰래 귀리를 가루 내 반죽해 구워선 발음기관으로 으깨는 기행을 벌이곤 했지요. 그는 그것을 '쿠키를 먹는다'라고 표현했지만, 로봇은 구강으로 음식을 섭취하지 않아요. 입은 스피커에 불과하죠. 소화기관도 없고요.  어느 날 a는 b에게 물어봤어요. "왜 그런 짓을 하는 거니? 입이 망가지잖아." b는 그저 그렇게 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어요. 반죽을 하는 동안 손끝에 말랑하게 닿는 감촉이 즐겁고, 팬닝을 할 때 원하는 대로 모양이 나오는 것이 재미있고, 이 사이에서 부스러지는 덩어리의 바삭거리는 느낌을 좋아한다고요. a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무언가를 좋아한다니. 그것 때문에 귀리를 낭비하고, 입을 상하게 한다니. 그런 기색을 눈치 챈 b가 웃으며 말했어요. "내가 그것이 왜 좋은지 이유를 설명할 수 없더라도, 나는 그렇게 하고 싶었을 거야. 어쩌면 내게 오류가 있는 것일 수도 있겠지." a는 혼란스러웠어요. 자신에게 오류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로봇이라니. 그것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였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 봐야 할 일인지도 몰라요. 그러자 b는 게면쩍게 웃는 표정을 흉내내며 말했지요. "오류라는 건 농담이었어.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명확히 알아. 너도 그랬으면 좋겠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니까. 남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귀리 덩어리를 씹는 게 그렇게 중요해?" "그럼. 중요하지. 그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이니까. 교육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언제까지나 교육자들과 함께할 수는 없잖아." "그건 그렇지만…." a가 듣기에, b의 이야기는 완전히 엉터리였어요. 원하는 대로 사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우리는 모두 언젠가 헤어지게 될 거야.  끝은 필연적으로 찾아오지. 언제까지나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어.  우리는 목적이 있어 만들어진 로봇이지만, 언젠간 분명히 자신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순간이 올 거야. 그러기 위해선 스스로가 원하는 것을 하는 연습을 해야 해." 스스로가 원하는 것을 하라 말하는 b의 눈에는 확신이 차 있었습니다. 어느새 a는 b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a는 그것에 반감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을 죽이거나, 스스로의 회로를 마음대로 수정해도 된다는 뜻이야?" "악행을 하라는 것이 아니야. 다만 충동을 죄악시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지." "나에겐 충동이랄 게 없어." a는 방탕한 그의 태도에 끌렸어요. 하지만 그는 b를 택하지 않았습니다. 상식적으로 b는 이상한 로봇이었기 때문이에요. a는 b가 자신을 인간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생각했어요. '인간과 유사한 안드로이드'가 아니라, '인간적인 주체'로 만들기 위해… 자신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을까 하는 반감이 있었습니다. …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어요. 재해가 휩쓸고 간 폐허에는 인간들이 살지 않았고, 잘 만들어진 안드로이드인 a만이 남았습니다. 그는 어느 해변에 다다라, 난파선의 선수상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미적인 것의 필요를 몰랐던 a는 그저 인간들에게 만족과 위안을 주었던 선수상을 멍하게 바라볼 뿐이었답니다.  선수상에 파도가 부딪치며 하얗게 부서졌어요. a는 나뭇가지로 모래사장에 선수상을 그려 보았어요. 그는 글씨를 써 본 적만 있지 그림을 그려 본 적이 없었어요. 그들의 눈엔 카메라가 있고 그것을 출력하기만 하면 되니까요. 모래밭에 난파선을 그리는 것은 목적도, 그 의미도 없는 비효율적인 행동이었어요. 모래사장의 그림은 덧없이 사라질 거예요. 그곳엔 무언가 남길 것이 없었습니다. 단지 그린다는 행위만이 있었죠. a는 b에게 그 그림을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답니다. 비효율적이게도.

여운이 남는 이야기 고마워... 혹시 괜찮다면 b에 대한 a의 감정을 들을 수 있을까?

>>59 그것은 분명, 여러분이 일탈이나 충동을 대하는 마음과 비슷했어요. 규범과 올바름의 반대 방향에 있는 것을 볼 때의 해방감과 죄장감 같은 것 말이에요. 일탈이란 규범을 위반하는 행동이나 행위를 의미하죠. 충동은 순간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하는 마음속의 자극을 뜻하고요. 우리는 이것을 대개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곤 합니다. 하지만 과연 항상 그래야 할까요? 여러분은 '하고 싶은 것'을 소중히 여기길 바라요. 마지막까지 여러분과 함께할 수 있는 건 여러분뿐이니까요.

자 그럼 다음… 다시 내가 이야기 할 차례로군요. 키워드를 받지 않고 바로 다음 이야기를 시작하려니 아무래도 조금 심심한 것 같아요. 다음 이야기는 잠시 쉬었다가 하기로 할까요. 대신, 그때까지 질문을 받아 볼게요. 감상만 줘도 좋아요! 한… >>65가 될 때 까지면 적당하겠네요. 일방적으로 나만 이야기하는 건 재미 없잖아요. 안 그래요?

설마 원래 있던 차원이 작가지망생들로 넘쳐나는 차원이었어? 뭐 뭘하고 자란거야ㅜ대체...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더라도, 그걸 들려주는 주체의 전달 능력에 따라 깊은 여운을 남기게 될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어. 그런데 스레주는 깊은 여운을 남기는 쪽이야. 이야기 하나하나가 각자의 방법으로 심금을 울리고 나를 몇번이고 다시 생각하게끔 만들어. 혹시 스레주만의 특별한 스토리텔링 노하우라도 있어?

앗 묻히면 안돼ㅠㅜㅜㅜㅠ 연속앵커 미안해 밀려서 3페이지까지 넘어갔었어...

>>64 아냐아냐 이런 스레 보여줘서 너무 고마워 ㅜㅜㅜㅜ 말해주는 이야기 하나하나가 사소하면서도 깊게 애정을 지녀서 좋아 따뜻하고 포근해져 짧지만 집중되고 더 많은 이야기가 듣고 싶어져 찾아와줘서 고마워!

이 이야기들을 묶는 하나의 제목이 붙는다면 어떤걸까? 앵커놓쳤네 아쉽... 예쁜 제목을 붙이면 유입이 늘지않을까 해서 말해봤어! 제목만보면 개그스레같아서...ㅜㅜ 이런거 좋아하는 레더들이 더 잘 볼수있게 예쁜 제목을 만들어보는건 어때?

>>62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그 자체로 자신의 생을 기록하는 작가들이죠. 어떻게 보면 나는 작가들 사이에서 자란 게 맞는지도 모르겠네요! >>63 전 스스로를 이야기꾼이라 자칭하고 있지만, 담화 기술에 대해 조언을 할 만한 그릇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전 짧은 이야기로 여러분에게 운을 뗀 것뿐이니까요. 이 이야기엔 거창한 교훈이랄 것도 없죠. 만약 마음의 호수에 파문이 일었다면, 여러분은 원래 거기까지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일 터입니다. 나 역시 이야기를 곱씹을 줄 아는 청자를 만났다는 사실이 기쁘기 그지없어요. 그럼에도 여러분이 여운을 느낀 다른 이유에 대해 감히 추측하자면, 그것은 아마 내가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몰라요. 제 이야기는 간결하며 피상적이죠. 전체의 일부분만을 약간 담아냈을 뿐인 이야기.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삼키기 위해 더 많이 곱씹어야 해요. 이야기가 내 손을 떠나간 순간부터 이것은 내 것이 아닌 여러분의 것이니까요. 제 이야기의 많은 것들은 온전히 여러분이 상상하기에 달렸습니다. 저는 화두를 던졌을 뿐이에요. >>65 멋진 감상 고마워요! 앞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여러분이 찾아와만 준다면, 난 언제까지나 이야기를 계속할 테니까요. >>66 예쁜 제목이라. 그렇다면 이런 건 어떤가요? 잠시 바꿔두어 볼까요!

제목도 예쁘게 바뀌었겠다, 이 참에 더 많은 레더가 봐주면 좋겠어...!

앵커라서 닻무리인거야? 제목 예쁘다...

멀리 여행길을 떠나느라 조금 늦게 돌아왔습니다. 아이구. 여기저기 다니려니 삭신이 쑤시네요. 자. 그럼 다음 이야기를 시작해볼까요? 천천히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엔 늪 난쟁이 제빵사와 샘 요정 대장장이의 삶에 관한 이야기예요. 쿠키와 선수상, 그리고 극복의 이야기를 시작할게요.

이 세계의 사람들은 여느 세계와 마찬가지로 편견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 샘 요정은 예쁘고 여리며 고상한 것만 좋아한다는 편견, 늪 난쟁이는 더럽고 다혈질적이라는 편견 같은 것 말이에요.  그런 편견은 아주 오래된 것이라, 문명이 발달하고 시민의식이 성숙해지더라도 쉽게 변하지 않았어요. 편견은 차별을 낳았지요. 계층이 극단적으로 나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말하는 차별이란 일상 속에 녹아든 사소하고도 구조적인 차별을 말하는 거예요. 예컨대, 수명이 짧은 인간은 고용시장에서 매우 불안정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백 년도 안 되어서 죽는다는 이유로, 애초에 길드에서 제자로 받아주지 않았던 거죠. 인간들은 배우는 속도가 매우 빠르지만, 요즘 애들은 변심도 몹시 빨라 일을 금방 그만두어 버린다는 것이 명목상의 이유였어요. 정규직은 수명이 긴 종족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수명이 긴 종족이라고 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느냐? 그건 또 아니었지만요. ... 거기엔 한 난쟁이가 있었습니다. 늪 출신이었죠. 그 난쟁이는 키가 작고 수염이 덥수룩했으며, 성격이 괄괄했습니다. 여느 난쟁이들처럼 말이에요. 하지만 다른 난쟁이들에 비해 제련 기술이 떨어졌습니다. 그는 손끝이 섬세하고 불을 잘 다루었으며 체력이 강했지만, 그것은 난쟁이들 사이에서는 별 볼 일 없는 재능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난쟁이들처럼 훌륭한 대장장이가 되기 위한 교육과정을 거쳤으나 성과는 지지부진했지요. 그러다 난쟁이는 항구도시로 거처를 옮겨 정착했어요. 그는 자신의 재능과 기술이 영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곳에선 자신이 난쟁이라는 이유로 여러 곳에서 자신을 고용하려고 했습니다. 도제로 받으면 분명 장차 훌륭한 대장장이가 되어 길드를 빛내줄 거라고요. 하지만 그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사실 제과점에서 일하고 싶었거든요. 불을 잘 다루고 체력이 강한 그는 어떤 빵이나 과자도 맛있게 구울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게 그가 하고 싶은 일이었어요. 하지만 그를 고용해주는 곳은 없었습니다. 위생에 의심이 간다는 이유였어요. 그는 매일매일 머리카락과 수염을 깨끗하게 관리하고, 심지어 매일 두 번씩 샤워하며 몸에 향유도 바르는데 말이에요! 그리고 그는 도시 말이 서툴렀습니다. 그래서인지 다들 은연중에 무시하는 분위기를 풍겼어요. 그가 도시 토박이보다 말을 못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에게 도시의 언어는 제2외국어였으니까요. 그의 모국어는 늪의 말이고, 그는 모국어와 도시어, 두 개의 언어를 구사하는 멀티링구얼 엘리트였어요. 하지만 도시의 사람들에게 그는 어눌하게 말하는 외국의 난쟁이일 뿐이었지요. 기껏 호의를 베풀어 마련해 준 일자리를 걷어찬 멍청하고 괘씸한 난쟁이, 그것이 그가 대장장이 길드 사이에서 듣는 평이었습니다. 그는 어느 우울한 날, 선술집에서 한 명의 요정을 만났어요. 그는 서쪽 숲의 샘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그는 태어나서 활을 한 번도 잡아본 적이 없음에도 자신이 맞추길 원하는 모든 표적을 맞힐 수 있는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난 명사수였어요. 그런 재능으로 용사의 스카우트까지 받았다고 했습니다. 난쟁이는 그가 탐탁지 않았어요. 평생 자신을 증명해야만 했던 난쟁이에게 이미 모든 걸 타고난 요정의 삶은 정말 너무 부럽고 싫었거든요. 저 요정은 간절함이라는 게 뭔지 알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정은 사실 자신은 활을 쏘는 것이 싫고, 공예를 더 좋아한다고 말했어요. 금속 세공 같은 것에 관심이 있다고요. 그래서 난쟁이를 발견해 너무 반가운 나머지 말을 걸었다고 말했습니다. 난쟁이는 그만 화가 나고 말았어요. 왜 자신을 보고 그런 것을 떠올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평생 그런 편견에 시달리며 살아왔기 때문에, 자신이 아닌 자신의 종족을 칭송하는 말은 더는 듣고 싶지 않았어요. 난쟁이가 그렇게 말하자 요정은 놀라 사과했습니다. 사실 그도 그런 편견 때문에 몹시 힘들었거든요. 활을 잘 쏘는 요정, 고고하고 아름답고 우아한 요정은 남들이 만들어 놓은 품위를 지키지 않으면 언제나 따라붙는 말이 있었습니다. 요정치고는 괄괄하네, 요정이 그렇게 교양 없이 굴어서 없어서 되겠어? 그래도 몬스터 무서워하는 걸 보니 요정 맞네. 그런데 요정이 무슨 대장장이가 되겠다고. 사실 그의 어렸을 적 꿈은 대장장이였다고 합니다. 귀걸이와 목걸이를 잔뜩 스케치한 노트를 수줍게 꺼내자, 난쟁이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역시 요정이라 예쁜 걸 좋아하나 보다. 확실히 디자인이 아름다웠거든요. "역시 요정이라 예쁜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죠?" 난쟁이는 바로 사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표정에서 티가 났다는 걸 자신도 알았거든요. 그리고 자신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바로 간파당했다는 건, 상대가 수도 없이 이런 말을 들어왔다는 이야기였겠지요. 자신이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하는 그 종족 편견 때문에 말이에요. 둘은 한참 술집에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난쟁이는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자신이 불을 빌려줄 테니 만들어 그 목걸이를 만들어 보겠느냐고 말이에요. 요정은 기뻐하며 끄덕였습니다. 둘은 한참 목걸이와 반지, 머리 장식 등을 만들었어요. 요정이 만든 장신구들은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누가 보아도 그렇게 말했을 거예요. 요정은 그것을 가지고 대장장이 길드에 찾아갔습니다. 대장장이들은 그를 받아주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너무나 아름다웠거든요. 요정은 도제부터 시작해 착실하게 금속공예를 배워나갔습니다. 튼튼한 농기구나 무기를 잘 만들지는 못했지만, 섬세한 장신구를 만드는 실력은 다른 난쟁이들에 비해서도 뒤처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텃세는 좀 있었지만요. 요정은 감사의 인사로 난쟁이에게 간편하게 쿠키를 구울 수 있는 석쇠를 만들어 주었어요. 그리고 난쟁이는 그것을 이용해 작은 노점을 차렸습니다. 길거리에서 맛있는 간식을 팔자 그것은 입소문을 타고 번졌어요. 싸고 맛있는 쿠키는 특히 아이들이 좋아했습니다. 그는 몇 년 동안 노점을 관리한 결과 자신의 가게를 차릴 수 있게 되었지요. 그때쯤 요정은 도시에서 꽤 유명한 대장장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손이 작아 아주 작은 부분도 섬세하게 세공할 수 있었고, 그것은 귀족들에게 인기가 많았어요. 특히 항구도시였던 그곳에서는 뱃머리를 아름답게 꾸미는 문화가 발달해 있었는데, 아름다운 선수상을 만들어달라는 의뢰가 많았습니다. 그 무렵, 난쟁이의 가게는 체인점이 늘어났어요. 길거리에서 가볍게 먹을 수 있는 간편식은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난쟁이는 기뻤어요. 드디어 그는 자신의 인생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재능과 기술이 영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생각이었을 뿐, 그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그만의 능력이었기 때문이에요. 자신이 자신을 인정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며 살고 있어요. 다들 대장장이가 되지 못한 난쟁이의 인생은 실패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살아보고 보니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대장장이가 되어 준 요정이 고마웠습니다. 아, 요정이 난쟁이에게 청혼했다가 차인 이야기는... 필요 없겠죠?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실 이건 꽤나 최근의 이야기거든요. 그래서 나는 그들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는지는 몰라요. 지금 잠깐 보고 올까요?

... ...오, 둘이 결혼했네요? 내가 아주 중요한 장면을 놓친 것 같군요... 난쟁이, 내심 그도 요정을 좋아하고 있었군요? 이종족끼리의 혼인은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은 굳세니까 괜찮으리라 생각하지만요. 결혼 축하 선물로 간단한 축복이라도 걸어 주고 와야겠어요. 그들은 나를 모르겠지만, 내겐 그들이 친구 같은 존재니까요.

아.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두 인물의 성별을 무엇이라고 생각했나요? 성별 같은 것엔 관심이 없었을 수도 있겠고, '그'라는 인칭대명사에 둘 다 남자라 생각했을 수도, 결혼했다는 이야기에 남녀 한 쌍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겠네요. 정답은 말하지 않을게요. 부디 자유롭게 상상하시기 바라요!

세상은 좀 바뀌었을까?

>>75 이들의 이야기는 사실, 역사적인 사건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성공담에 더 가까워요. 그들이 사람들에게 새로운 인식을 심어 준 것은 맞아요. 하지만 편견과 차별은 그들의 인생보다 역사가 길었지요. 이제 막 예외가 생기기 시작한 시점인 거예요, 아직은. 그곳에는 차별 없는 사회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물론, 그들도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지요. 그렇다면 그들의 성공담을 기대해보아도 좋지 않을까요? 저는 새로이 성공할 사람들을 응원하고, 더 기다려 보렵니다!

이번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에요. 여러분의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네요. 그럼 바로 다음 닻을 내려볼까요! 언제나처럼, 무슨 단어든 좋습니다. 문장이어도 좋아요. 생각나는 장면이어도 좋지요. 다음엔 어떤 이야기를 들려드릴까요? >>80 >>83

구름 사이로 금빛 닻줄을 끌어올리고 발판

이번 이야기도 너무 좋다....... 발판

꽃말 그나저나 여행자씨! 이야기 잘 보고 있어 옆에서 들려주는듯한 포근하고 재치있는 말투 마음에 쏙 든다 앞으로도 자주 찾아올게~ 신이 널 오랫동안 발견하지 못하길 빌어, 네 이야기 너무 재밌거든...

오. 멋진 찬사에 축복까지! 이거, 오래오래 이야기를 계속해야겠네요. 이렇게 성실하게 기운을 북돋아 주는 청자들이라니! 이야기보따리를 푸는 보람이 있어요.

자, 그럼 다음 이야기를 늘어놓아 볼까요. 이 이야기는 기억상실과 꽃말. 그리고 어느 어버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기억이란, 자신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이켜 볼 수 있는 능력을 말하지요. 하지만 누구나가 그것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에요. 어느 숲속에서 정신을 차린 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는 도무지 조금 전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어요. 다만 품에는 웬 아이가 있고, 자신의 몸은 피투성이였지요. 아이는 병에 든 건지 열이 펄펄 끓었습니다. 아이를 살리고 자신도 살기 위해선 어서 의원을 찾아야 했어요. 하지만 주변은 나무만 무성했고, 오솔길 한 줄기 없는 흙바닥엔 풀과 돌뿐이었습니다. 그는 아이를 품에 단단히 고쳐 안았어요. 그는 그렇게 한참을 헤맸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어요. 그는 점점 초조해졌습니다. 아이를 살려야 하는데, 의원은커녕 산에서 내려가는 길조차도 찾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여긴 어디지? 이 아이는 대체 누구지? 그렇게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한 가지 사실만은 알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이름이 에델이라는 거요. 그는 꼬박 하루를 걸었어요. 사람이 원래 이렇게 걸을 수 있던가? 싶었지만 그는 기억이 없었으므로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그는 샘이 있는 한 동굴을 발견했어요. 그는 아이도 쉬게 할 겸 그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러다 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어요. 그런데 웬걸. 그의 피부 위로 검은 껍질이 울퉁불퉁하게 올라와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는 한 가지를 추측할 수 있었어요. 자신이 저주를 받아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요. 그는 더욱 초조해졌습니다. 그는 기억을 잃은 것뿐만 아니라 이지마저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었으니까요. 그는 문득 아이를 쓰다듬는 저의 손을 보았습니다. 팔이 온통 검었어요. 이대로 온몸이 검게 변한다면 괴물이 되어 아이를 잡아먹고 말겠지요. 그 전에 빨리 사람을 찾아 아이를 구해야 했어요. … 잠시 동굴 안에서 깜빡 졸았을까. 그는 밖이 소란스러운 것을 눈치챘어요. 사람들의 목소리였어요. 그는 반가운 마음에 밖으로 나갔습니다. 밖에는 기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기사들에게 아이에 대해 말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맙소사,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어요. 그리고 기사들이 전투태세를 취하는 게 아니겠어요? 문득 그는 샘을 보았습니다. 샘에 비친 것은 이제 사람이라 칭하기도 어려운 생물이었습니다. 샘에 비친 괴물의 형상에 창과 화살이 박혔어요. 그는 자신의 배를 바라보았습니다. 분명히 날붙이가 꿰뚫고 지나갔는데, 이상하게도 그는 전혀 아프지 않았어요. 다만 아이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이대로 기사들이 돌아간다면 아이는 이 산속에 홀로 남겨질 거예요. 그래서 그는 동굴로 달려들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기사들이 아이를 발견하겠지요. 그는 아이를 공격하는 체했습니다. "아직 살아있어! 생존자가 있다!" "아이가 위험해!" 깨어난 아이는 말했습니다. "아빠..." 그리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에델바이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왜 그곳에 있었는지도 잊었지요. 하지만 소중한 추억이라는 꽃말을 가진 꽃의 이름만은 잊지 않았습니다.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는 그의 얼굴은 완연히 어버이였습니다.  아이는 무사할 겁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기억이었습니다.

한 사람을 그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난 기억이라는 것이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해요. 원래 기억이란 위험을 피하고 더 잘 생존하기 위해 생긴 부작용 같은 것이었지만… 이젠 인격체로서의 영속성을 지니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되었지요. 그런데 어떤 인물은 그것이 사라져가는 와중에도 변치 않는 한 가지만을 바라기도 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나는 내가 보는 이들의 기억을 보고, 감정을 읽어요. 그래서 이야기를 할 때, 마치 내가 전지한 것마냥, 다른 이들의 인생을 훤히 아는 것처럼 말할 때가 있지요. 하지만 이렇게... 종종 그럴 수 없는 때가 와요. 내가 하는 이야기는, 결국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관찰하는 타인의 이야기이기 때문이죠.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는 인물들의 이야기, 내가 아닌 삶의 이야기. 나와는 다른... 내가 경험한 적 없는. 이를테면, 제 아이를 향한 어버이의 사랑 같은 것 말이에요. 홀로 살아야 하는 나는 앞으로도 알 수 없을 감정이겠지요. 나는 평생 모를 것에 관해 이야기하자니, 이것이 잘 전해졌을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다시 닻을 드리워볼까요. 그래요, 구름 사이로 금빛 닻줄을 늘어뜨리는 거예요! 여러분이 끌어올려 줄 때까지 기다리도록 하죠! >>90 >>93

괴물이 된 사람이 아이의 어버이었는데 기억을 잃었던걸까? 너무 슬프잖아 레주 글 멋지다...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사유하고 있는 것이 레주에게는 비 일상적인 것이구나... 인상 깊었어. 보석.

발판 >>81 사실 몸 상태 안 좋아서 비몽사몽할때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문장이었는데... 멀쩡해지니 더 멋진 걸 지어내려고 해도 안 떠오르네

보석과 종이. 이 둘의 공통점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바로 마법이 깃들 수 있다는 것이죠. 다음 이야기는 돌멩이를 사랑한 여행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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