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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4JRwtzfe7 2019/02/10 03:39:26 ID : wk7bCmNy3O5
형식도 없고, 말 그대로 쓰고 싶은 이야기만 쓸 생각. 차라리 이렇게 처음부터 부담을 놓아버리면 잘 써질지도 모르겠네. 생각의 쓰레기통같은 느낌으로 이용할 생각이야.
◆584JRwtzfe7 2019/02/10 03:44:27 ID : wk7bCmNy3O5
'' 저, 저 같은 아이를 찍어봤자 별로 재미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 사진기 안에 담겨있는 사진을 한참 살펴보며 아이는 입을 열었다. 사진 속 피사체의 중심은 항상 아이였다. 아이의 무미건조함은 튀지 않으면서도 도심의 분위기를 능숙하게 덮었다. 그런 매력에 빠져버린 나머지, 멀리서 사진을 찍어오던 것을 기어코 들켜버리고 말았다. '' ... 찍을 거면 좀 가까이서나 찍지. 이게 다 뭐예요? '' '' 네가 도심 속에 녹아든 상태가 제일 보기 좋았어. '' '' 그쪽, 진짜 재수 없는 거 알죠. '' 아이는 사진 한 장을 흥미있다는 듯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584JRwtzfe7 2019/02/10 03:49:51 ID : wk7bCmNy3O5
'' 배경이 죄다 새벽 아니면 밤이네요. '' '' 그 시간대가 아니면 여유가 없거든. '' '' 직장인인가요? '' '' 응. 이름을 말한다면 아마, 너도 들어봤을 거야. '' '' 제법이네요. 자. 잘 봤습니다. '' 아이는 이내 살펴보던 사진기를 내게 넘겼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던 나와는 달리, 아이는 되려 태평했다. 그러나, 어시장 동태들처럼 탁하게 죽은 눈은 한층 더 짙어져 있었다. '' ... 나, 밤에서 새벽 사이 이 동네 잘 돌아다녀요. 좋아하는 장소는 저기, 대교부터 강가 개발촌까지. ''
◆584JRwtzfe7 2019/02/10 03:59:20 ID : wk7bCmNy3O5
'' 무슨 생각으로 알려주는 거야? '' '' 그쪽처럼 뚜렷하게 재수 없는 사람에게만 할 수 있는 부탁이 있거든요. '' '' 나를 어떻게 믿고. '' '' 별로 힘든 일도 아니고, 그쪽이 원하는 수요랑 맞아떨어질 거예요. 싫으면 안 해도 돼요. '' 아이는 춥다며 입김을 불었다. 차갑게 굳어버린 강물. 강물에 드리운 얼음은 선명하게도 흐릿했다. 흐릿한 것은 더없이 선명했지만, 막상 선명한가 보면 흐리멍덩한 남색으로 가득했다. 저 위로 얼마나 큰 돌을 던져야 얼음이 깨질까 싶던 찰나, 아이가 입을 열었다. '' 며칠간 꾸준히 저를 찍어주세요. 좀 더 가까이서. 며칠 지나면, 그 때 마저 이야기하기로 해요. ''
◆584JRwtzfe7 2019/02/15 00:17:30 ID : wk7bCmNy3O5
" 너... " 그 말을 끝으로 아이는 훌쩍 제 갈 길을 떠나버렸다. 아직도 바람이 차가웠고, 그 바람이 아이의 옷깃을 펄럭거렸다. 뚜렷하게 재수 없는 사람. 아이는 놀라우리만치 본인을 꿰뚫어봤다. 내일에 대한 기대라고는 한 줌도 없는 모습으로, 처음 보는 사람더러 자신을 꾸준히 찍어달라는 것은 뭔가. 혹시, 이대로 내일 아이 말대로 다시 나왔다가 몹쓸 일에 휘말리게 되는 건 아닐까 싶었으나, 그 생각은 부끄러움에 관두었다. 따지고 보면 몹쓸 일은 이미 본인이 저질렀으니까. 이런 우려부터가 경박한 짓이었다. 이름조차 물어보지 못한 아이에 대한 스토킹은, 그렇게 시작됐다.
◆584JRwtzfe7 2019/02/15 00:34:29 ID : wk7bCmNy3O5
" 그래서, 내년 상반기 목표는 이러한 방향성으로 추진하고자 합니다. 따로 질문이 있으신가요. " " 확실한 비전이 있다는 것에는 동의하네만, 지금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선회하는 기회비용도 고려했나? " " 우려하시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별첨 자료를 봐주시겠습니까? " " 백언씨. 백언씨? " " 네? "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순간에서 순식간에 점심시간으로 페이드아웃 되었다. 온종일 생각도 없이 시간을 보냈구나. 그런 생각이 든 것도 이름을 들은 후의 일이었다. " 다른 게 아니라, 고객분 컴플레인이 들어왔거든요. 백언씨가 담당자니 직접 해결하기를 바라고 계셔요. " " 미안합니다. 곧 나가볼게요. 제가 잘 타이르겠습니다. " " 며칠째 찾아와서 언성을 높이시는데... 사실, 별 큰일은 아니거든요. " " 뭐. 담당자가 아니면 속이 풀리지 않는 심리도 있는 거겠죠.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584JRwtzfe7 2019/02/15 00:41:01 ID : wk7bCmNy3O5
" 열심이시네요. 저라면 불평이라도 좀 했을 텐데. " " 누가 들을지도 모르잖아요. 연씨가 어디 가서 말할 리는 없겠지만. " 서류 더미를 대충 정리해놓고 바로 몸을 일으켰다. 연은 늘 어떤 대화든 담담하게 전달했지만, 실상 보고 나면 큰일인 경우가 많아 내심 긴장하고 있었다. 선우연. 동기들에 비해서 똑부러진 구석이 있지만, 동시에 자신의 영역을 선 그을 줄 아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 성격은 나와 통하는 구석이 일면 있었고, 그것이 계기가 돼서 접점이 자연스레 늘었다. 그렇다보니 의식하지 못하던 사이 본인에 관련된 일의 반 정도는 연이 전달해주고는 했다. " 그럼 수고해주세요. 오늘까지 잔업이 남아있거든요. " " 수고해주십시오. "
이름없음 2019/02/15 13:36:02 ID : O08pbA7vwr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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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4JRwtzfe7 2019/03/14 00:05:22 ID : nvdu1a63TRD
이후, 일상은 규칙적이었다. 이렇다 할 특별한 것도 없었고, 놀랍도록 아이의 갑작스러운 요청에 본인은 적응하고 있었다. 밤의 일상에서 아이가 찍히는 빈도가 늘어갔다. 아이의 행동에는 희미하지만, 일종의 패턴이 있었다. 이를테면, 아이는 자주 물이 있는 곳을 향해 선 채로 시간을 보냈다. 때로는 시선이 물속을 향해있기도 했고, 또 때로는 허공이나 도심 속 불빛을 쫓기도 했다. 다만 입꼬리가 올라갔던 적은 없었다. 이따금 사진기 너머로 눈이 마주치면 아이는 무표정하게 손으로 브이 표시를 하거나, 위태롭게 난간에서 하늘거리기도 했다. 왜 나와 말도 나누지 않으면서 아이는 본인을 찍어달라고 청했는지. 사진이 담긴 USB를 연결해 키보드의 화살을 두드리면서 그런 의문이 거품처럼 번져나갔다.
◆584JRwtzfe7 2019/03/14 00:13:12 ID : nvdu1a63TRD
아이의 요청은 며칠간 찍어달라는 것이었지만, 실제로 아이와 말을 나눌 수 있던 것은 약 3주 정도가 지난 뒤였다. 그중에 아이에게 의구심이 들어 조금만 움직이는 기미를 보이면 아이는 슬 흔적을 숨겨버렸다. 이런 헛수고가 쌓이며 문을 두드리는 데 성공한 것이 3주 하고도 나흘째 되는 날이었다. '' 되게 끈질기다. 이쯤 되면 포기할 줄 알았어요. '' '' 네 부탁을 의식했던 건 아냐. 자, 네 몫이다. '' 필름과 따로 인화해둔 사진 몇 장을 아이의 품에 꽂아넣었다. 아이는 이게 뭐냐는 시선으로, 특유의 탁한 눈매를 밝혔다. '' 사진을 원해서 찍어달라는 게 아니었어? '' '' 아뇨. 아니... 그게 완전하게 틀린 말은 아닌데요. '' '' 그럼? '' '' 저, 제가 죽어버리면 한 명쯤은 기억해줬으면 싶었거든요. ''
◆584JRwtzfe7 2019/03/14 00:21:11 ID : nvdu1a63TRD
'' 한 1주 정도 찍고 콱 죽어버리려 했는데, 그때마다 그쪽이 있지 뭐야. 그래서 미루다 보니 이렇게 됐어요. '' 아이가 당치도 않은 소리를 하며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을 빼냈다. 후드를 벗어 내리자, 짙은 단발머리는 갇혀있었다는 듯 후드 속에서 모습을 보였다. '' 기억해달라는 건 보통 가족에게 얘기하는 거야. '' '' 눈치가 있다면 이 대목에서 그런 충고는 하지 않죠. '' '' 그럼, 하필 왜 나한테 이런 부탁을 하는거야? '' '' 그 질문, 비슷한 답을 제가 몇 주 전에 했잖아요. '' 뚜렷하게 재수 없는 사람인 이유는 무엇인가. 아이가 어쩌면 그저 되는대로 찔러본 것을 껍질 좋게 포장하지는 않았을까에 대해 의심이 드는 순간이었다. 그런 와중에 아이는 익살스럽게도 다리 난간에 반쯤 넘어간 사진을 내게 보여주었다. '' 여기. 내가 죽으려던 부분이에요. 용케 찍었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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