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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nxwlg6lDth 2019/07/15 23:58:58 ID : eNuoFeJO9yY
안녕. 타인이라기엔 가까웠고, 친구라기엔 서로를 잘 몰랐던 국화. 그 아이에게 못다한 말을 털어놓으러 여기까지 왔어.
◆Qnxwlg6lDth 2019/07/16 00:01:00 ID : eNuoFeJO9yY
음... 국화를 처음 만난 건 중학교 3학년 때 였다. 그 때 집안 사정으로 전학을 가게 됐거든.
◆Qnxwlg6lDth 2019/07/16 00:02:27 ID : eNuoFeJO9yY
전학 첫 날. 새 교복을 준비하지 못해서 그 전 학교 교복을 입고 등교했었던 기억이 나. 교탁에서 아이들에게 자기소개를 했고, 선생님이 시키시는 대로 비어있는 제일 뒷 자리에 앉았지.
이름없음 2019/07/16 00:03:31 ID : 8qmLeZhgkrd
ㅂㄱㅇㅇ
◆Qnxwlg6lDth 2019/07/16 00:05:44 ID : eNuoFeJO9yY
3개의 분단 중에서 가운데였던 2분단 제일 끝자리. 그 자리는 책상이 두 개 다 비어있었어. (보통 책상 두 개씩 붙어있잖아) 선생님이 나가시고 나서 반 애들은 우르르 내 주변으로 몰려들었고 되게 왁자지껄한 시간을 보냈다. 그 전 학교 교복이냐. 이 교복 예쁘다. 핸드폰 번호 뭐냐. 쏟아지는 질문에 정신이 꽤 없었지.
◆Qnxwlg6lDth 2019/07/16 00:06:24 ID : eNuoFeJO9yY
그리고 그 와중에 그 이야기를 들었다. 왜 하필 이 자리냐고. 참 불쌍하다고.
◆Qnxwlg6lDth 2019/07/16 00:08:42 ID : eNuoFeJO9yY
무슨 말인고하니, 내 옆자리는 원래 주인이 따로 있고 오늘은 학교를 오지 않았다는 거였다. 그리곤 이 사실을 알려줬던 S는 내게 귓속말로 말했다. ‘얘 엄마가 무당인데 학교 자주 빠져.’
◆Qnxwlg6lDth 2019/07/16 00:11:45 ID : eNuoFeJO9yY
그리고 이삼일 정도 지났을 때쯤. 그 아이가 학교에 왔다. 얇고 까맣고 긴 머리카락이 엉덩이를 덮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귀신같다는 생각을 했어. 태어나서 그렇게 머리카락이 길고 피부가 하얀 사람은 처음봤었거든
◆Qnxwlg6lDth 2019/07/16 00:13:31 ID : eNuoFeJO9yY
여기까지 읽었다면 짐작할 수 있겠지만 그 애가 바로 국화였다. 물론 그 애는 한 번도 자기를 소개한 적이 없었지만 조용히 학교를 다니는 거에 비해서 굉장히 유명인사였기 때문에 이름을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어.
◆Qnxwlg6lDth 2019/07/16 00:18:07 ID : eNuoFeJO9yY
S의 말에 의하면 처음 학교에 입학한 이후에 국화는 왕따를 당했었대. 왕따를 당한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아마 국화가 이상한 말을 했을 거라고 확신에 차있었어. 국화가 초등학교 때부터 ‘기둥에는 할머니가 붙어있다’라던가 ‘그네에 7명이 타고 있다’ 같은 말을 하곤 했다더라고.
◆Qnxwlg6lDth 2019/07/16 00:19:44 ID : eNuoFeJO9yY
그렇게 국화는 입학하자마자 혼자가 된 모양이야. 하필 왕따를 주도하고 있는 사람이 2학년 언니들이라 반 애들도 쉬쉬 했었고.
◆Qnxwlg6lDth 2019/07/16 00:21:10 ID : eNuoFeJO9yY
같은 초등학교를 나왔던 S가 어쩌다 한 번씩 ‘괜찮냐’고 물어보곤 했었는데 그 때마다 국화는 ‘얼마 안남았다’고 대답했대.
이름없음 2019/07/16 00:21:40 ID : 645865e3Ph8
크크 웃기다
이름없음 2019/07/16 00:22:04 ID : 645865e3Ph8
ㅋㅋㅋㅋㅋ너 누군지 알겠다 ㅎ 아무리 그래도 여기다가,이런 이야기 푸냐?ㅎ
◆Qnxwlg6lDth 2019/07/16 00:24:29 ID : eNuoFeJO9yY
그리고 여름방학이 되기 2주 전. 교실 밖으로 끌려갔던 국화가 산발이 된 채로 다시 돌아왔다더라. 돌아온 직후에는 언니들 눈치가 보여서 가만히 있던 S는 기다렸다가 청소시간에 국화를 데리고 화장실로 갔대. 선생님께 가서 말씀드리자고. 그랬더 국화가 조용히 웃더라는거야. ‘이제 일주일 정도 남은 것 같다’고 하면서...
◆Qnxwlg6lDth 2019/07/16 00:25:16 ID : eNuoFeJO9yY
국화를 알고 있어?
◆Qnxwlg6lDth 2019/07/16 00:28:56 ID : eNuoFeJO9yY
이어서 쓸게. 어... 그리고나서 S는 국화가 왠지 무서워졌대. 산발이 된 긴 머리칼 사이로 마주친 눈이 뭔가 반짝여서 ‘물어보지 말았어야 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어. 국화는 그 말을 건네고 옷을 툭툭 털고 S를 지나쳐서 세면대 앞으로 갔대. 그리곤 화장실 거울을 보며 머리를 정리하고 교실로 돌아갔다더라.
◆Qnxwlg6lDth 2019/07/16 00:34:38 ID : eNuoFeJO9yY
그 후로 S는 더 이상 국화에게 말을 걸지 않았대. 국화는 조용히 수업을 듣거나 책을 읽는 게 전부였고. 그러다 며칠 뒤, 급식실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중에 문득 국화 이야기가 나온거야. 요즘은 언니들이 국화 찾으러 교실에 안온다면서.
◆Qnxwlg6lDth 2019/07/16 00:37:53 ID : eNuoFeJO9yY
S는 갑자기 그 날 화장실에서 국화가 한 말이 떠올랐지만 그냥 ‘하하 그러게’ 하고 넘겼대. 여기까지 말하고 S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어.
◆Qnxwlg6lDth 2019/07/16 00:41:05 ID : eNuoFeJO9yY
그리곤 괜히 좌우를 두리번거리다 내게 까딱거리며 손을 흔들었지. 나는 S에게 귀를 가까이 옮겼어. 그러자 S는 처음 내게 국화 이야기를 해줬던 것처럼 속삭였다. ‘그 언니들 중에서 한 명이 자살했대’
◆Qnxwlg6lDth 2019/07/16 00:48:39 ID : eNuoFeJO9yY
그 말을 듣고 나는 건조하게 대답했어. 아. 어. 그렇구나. 되게 무섭네. 뭐 이런 식으로 말야. 그랬더니 S는 펄쩍 뛰면서 핸드폰을 꺼냈어. 자기에게 이 일이 진짜라는 증거가 있다면서. 그리곤 핸드폰을 한참 만지작거리다가 컴퓨터 화면을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ㅇㅇ서 여중생 자살] 이런 식의 인터넷 기사였어.
◆Qnxwlg6lDth 2019/07/16 00:52:29 ID : eNuoFeJO9yY
당시 핸드폰 사진은 화질도 워낙 안좋았고, 디스플레이 해상도도 좋지 못해서 자세한 기사 내용은 읽을 수 없었지만 S말대로 이 학교 출신의 선배가 자살한 건 분명한 사실 같았지. 그리고 S는 열심히 이 사실을 퍼트리고 다녔던 모양이야. 뭐 내게 그랬던 것처럼 귓속말로 전했을 지도 모르지.
◆Qnxwlg6lDth 2019/07/16 00:56:22 ID : eNuoFeJO9yY
그 후로 국화를 괴롭히면 죽는다는 유치한 소문이 돌았대. 뭐 이제 갓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낼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소문이었을거야. 그래도 국화는 학교에서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그냥 조용히 지냈다고 해. 소문 탓인지 아이들도 대놓고 국화를 괴롭히지는 않았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국화는 학교에 잘 나오지 않게 됐대.
◆Qnxwlg6lDth 2019/07/16 01:00:17 ID : JPdu4MpdPdD
국화의 결석 일수는 하루하루 늘어갔고, 2주가 다 되어갈 무렵 담임선생님이 S를 불렀다더라. 가정환경조사서? 를 제출해야 하는데 국화에게 전해줄 수 있겠느냐고. 자기는 국화 집도 모르고 친하지도 않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갸웃거리면서 반 애들이 S가 국화랑 제일 친하다고 했다는 거야. 생각해보니까 자기 말고는 딱히 갈만한 사람이 없겠구나 싶어서 S는 알겠다고 하고 선생님께 국화 주소를 받았대.
◆Qnxwlg6lDth 2019/07/16 01:07:12 ID : JPdu4MpdPdD
학교가 끝나고 S는 친구 P와 함께 국화네 집으로 갔대. (P는 절대 싫다고 했지만 와플로 꼬셨다고 덧붙여주더라) 국화네 집은 S네 아파트 맞은 편의 주택단지였어. 재개발이 예정되어 있다가 취소된 동네라 비어있는 집도 많은 낡은 달동네? 같은 곳이었는데 참 집 찾기가 어려웠다고 하더라고. 그때만 해도 신주소 같은 것도 아니었고, 집 앞 벽에 번지수를 적어둔 게 전부였을 때니 당연했지.
이름없음 2019/07/16 01:12:21 ID : gksqi9xO09z
ㅂㄱㅇㅇ
◆Qnxwlg6lDth 2019/07/16 01:13:19 ID : JPdu4MpdPdD
길을 헤메느라 땀은 줄줄 흐르고 짜증은 머리까지 치미는데 P가 갑자기 찰싹 달라 붙더래. 저 집이 무섭다면서 말야. 그 집은 대문 양 옆으로 대나무? 같은 게 보였고, 빨갛고 노랗고 파랗고 하얀 천이 주렁주렁 걸려있었대. S는 괜히 쎈 척을 하면서 뭐가 무섭냐고 빠른 걸음으로 그 집 앞을 지나갔는데 곁눈질로 열린 문 틈 사이의 살랑이는 긴 머리칼을 본거야. P도 봤는지 비명을 질렀고.
◆Qnxwlg6lDth 2019/07/16 01:15:08 ID : JPdu4MpdPdD
P의 비명소리 덕인지 문제의 그 집에서 누군가 나왔대. 바로 국화였어. 어쩐지 헬쓱해진 국화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조용히 하고 들어오라고 했대.
◆Qnxwlg6lDth 2019/07/16 01:20:13 ID : JPdu4MpdPdD
예상대로 국화네 집은 무당집? 같았대. 집 마당에 나와있는 낡은 식탁 의자들은 뭔가 대기하는 곳 같았고 향 냄새도 나는 것 같았다고 하더라. 국화는 들어오라고 한 후에 마당에 서서 이야기를 했대. 필요한 용건이 있으면 말하라고. 들어오라길래 당연히 집에 들어갈 줄 알았던 S는 잠깐 당황하다가 국화에게 가정실태조사서인가? 그걸 주고 나왔지. 그리고 문 앞에 서서 국화에게 언제 다시 학교에 나오냐고 물었대. 그러자 국화가 곰곰히 생각하다가 ‘P네 할머니가 가실 때 쯤?’ 이랬다는 거야.
이름없음 2019/07/16 01:22:10 ID : jwLbveIINzc
보고있어!
◆Qnxwlg6lDth 2019/07/16 01:25:44 ID : JPdu4MpdPdD
P는 그 말을 듣자마자 인상을 팍 찌푸리곤 S를 잡아끌었대. 빨리 가자면서 말이야. S는 허둥지둥 가방을 다시 똑바로 메고 국화에게 대충 인사를 하고 골목을 빠져나왔지. 그리고 골목을 나와 대로변에 나왔을 때 어색하게 P에게 말을 건넸대. ‘쟤는 왜 남의 할머니가지고 난리야. 그치?’ 하고. 그랬더니 P가 짜증을 내면서 대답했대. ‘아 몰라 존X 짜증나. 쟤 진짜 이상해. 우리 할머니 돌아가셨는데 왜 지X이야’ 이런 식으로.
◆Qnxwlg6lDth 2019/07/16 01:28:01 ID : JPdu4MpdPdD
그리고 한 이틀 정도 지났을 때였나. P가 학교에 나오지 않았대. 그리고 그 날 우연인지 국화가 등교를 했고. 왠지 기분이 나빠진 S는 P에게 문자를 보냈지. 왜 오늘 학교에 안오느냐고. 그랬더니 P가 오늘 국화 학교에 왔냐고 묻더라는거야.
◆Qnxwlg6lDth 2019/07/16 01:31:54 ID : JPdu4MpdPdD
그렇다고 S가 대답했더니 P는 [오늘 우리 할머니 49제래] 라고 답장을 보냈대. 당시에 S는 49제가 뭔지 몰라서 그 문자를 이해 못했다고 하더라. 이후에 P는 국화 번호를 물어봤고, S는 비상연락망이 있는 국화 번호를 보내줬대.
◆Qnxwlg6lDth 2019/07/16 01:46:49 ID : JPdu4MpdPdD
다음날 학교에 온 P는 퉁퉁 부은 얼굴로 국화 이야기를 했대. 걔 진짜 귀신 보는 거 같다고. 할머니 49제인가 뭐 제사지내는데 무당이 굿 같은 걸 하면서 이제 할머니 가신다고 말을 하더래. (이 부분은 너무 오래 전에 들었던 거라 49제?인지 100일제? 인지 정확치 않아) 그걸 듣자마자 며칠 전에 국화가 했던 말이 생각이 난거야. 그래서 번호를 받아서 국화한테 저녁에 전화를 했대. 왜 그런 말을 했냐고. 그랬더니 국화가 ‘할머니가 백옥비녀는 이제 너 가지라고 하셔’ 라고 했다는 거야. 실제로 P네 할머니는 하얀 머리에 염색도, 파마도, 컷트도 하지 않으시고 곱게 길러 백옥 비녀를 꽂고 다니셨대. 그리고 어렸을 때 P가 그 비녀를 보고 예쁘다고 달라면서 고집을 피운 적이 있었다는 거야. 할머니는 그게 할아버지가 사주신 물건이라 쉬이 주시지 못했던 거고. 그래서 P는 그 전화를 끊고 한참을 울었대.
◆Qnxwlg6lDth 2019/07/16 01:48:29 ID : JPdu4MpdPdD
뭐 이 이야기가 어떻게 퍼졌는지는 몰라도 그 후 국화는 귀신보는 무당집 딸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고 해. (이거 말고도 S는 국화에 대해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를 해줬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 이야기들이 아니니까)
◆Qnxwlg6lDth 2019/07/16 01:51:04 ID : JPdu4MpdPdD
그렇게 나는 귀신보는 무당집 딸 국화의 짝꿍이 됐어. 하지만 소문과는 달리 국화는 아주 조용했고, 나긋한 말씨를 가진 아이였지. 수업시간에는 대부분 반듯한 자세로 멍하니 앉아있었고, 쉬는시간에는 이어폰을 꽂고 엎드려 있었어. 아! 가끔씩은 책을 읽거나 어디론가 문자를 보내기도 했던 것 같아.
◆Qnxwlg6lDth 2019/07/16 01:53:35 ID : JPdu4MpdPdD
국화는 뭔가 세상 만사에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은 아이였지만, 가끔 말을 걸어보면 꽤 여중생답기도 했다. ‘요즘 애들이 추는 춤이 유행하는 거니?’ 라던가 ‘빙고 할래?’ 같은 말도 할 줄 알던걸. 그래서 난 더 그 소문들을 믿지 않았던 것 같아. 그냥 내성적인 애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Qnxwlg6lDth 2019/07/16 02:01:44 ID : JPdu4MpdPdD
그렇게 별 일 없이 두세달이 지났다. 그 사이에 국화는 학교에 나오기도 하고, 또 나오지 않기도 했지. 날은 꽤 풀려서 춘추복과 하복 혼용 기간이 됐고 말야. 그리고 그 시기에 우리 반은 단합일? 단합대회? 일정을 회의했어. 나는 전학을 와서 잘 몰랐는데, 이 중학교는 1년에 한 번씩 단합대회? 같은 걸 하는 모양이더라고. (내 기억에 의하면 어감은 뭔가 단합대회 였던 것 같아) 실제로 뭐 다른 반이란 싸우거나 하는 건 아니고 각 반마다 일정을 작성해서 제출하면 반 친구들끼리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아.
◆Qnxwlg6lDth 2019/07/16 02:07:33 ID : JPdu4MpdPdD
우리 반은 회의 끝에 학교에서 1박 캠핑을 하자는 의견으로 기울어졌어. 곧 여름이니 담력테스트 같은 것도 하자면서 말이야. 그러면서 아이들은 우리 학교만큼 무서운 곳도 별로 없을 거라며 히히덕댔어. 실제로 그 학교는 70년대에 지어진 아주 오래된 학교였는데, 복도 마룻바닥은 걸을 때마다 끼익거리는 소리를 냈고 화장실은 시멘트 벽을 칸칸이 세운 재래식 변기였지. 우리가 아는 그 나무로 세운 파티션 말고... 진짜 회색 시멘트 벽 말이야. ( 벽에 쓸리면 살도 까졌다)
◆Qnxwlg6lDth 2019/07/16 02:14:33 ID : JPdu4MpdPdD
아무튼 긴 학급회의(라고 해봤자 1시간이지만) 끝에 우리는 합숙 일정을 다 세웠어. 금요일에 정규 수업이 다 끝나고 나면 교실에 모여서 무서운 이야기를 하다가, 해가 지면 담력테스트를 하고 운동장에 텐트를 치고 자기로 한 거지. 물론 선생님께 제출할 때는 자습 같은 걸로 바꿔서 적어냈어.
이름없음 2019/07/16 02:15:18 ID : jwLbveIINzc
보고있오 !-!
◆Qnxwlg6lDth 2019/07/16 02:19:22 ID : JPdu4MpdPdD
다들 승인이 날 지 퇴짜를 맞을지 몰라서 두근두근해 했다. 근데 생각보다 쉽게 허락이 떨어졌어. (아마 담임선생님이 결혼을 앞두고 계셨던 시점이라 좀 대충 보셨던 것 같기도 해) 다만 학교에서 자는 건 당직 선생님 허락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 체육 선생님께 쪼르르 달려가서 또 허락을 받아냈지.
◆Qnxwlg6lDth 2019/07/16 02:25:35 ID : JPdu4MpdPdD
텐트는 강당 창고에 쌓여있었고 (왜 중학교에 텐트같은 게 있었는지는 나도 몰라. 난 전학온지 이제 갓 세 달 된 뉴비였다고) 이불같은 건 담요를 대신 챙겨오기로 했어. 저녁은 미리 매점에서 컵라면을 사놨다가 먹기로 했지. 원래 삼겹살을 먹고 싶었는데 취사는 절대 안된다더라. 학교가 거의 나무로 지어져서 불붙으면 그대로 캠프파이어 된다더라고. 당시에 나는 이런 일련의 계획 과정이 굉장히 충격적이었어. ‘중학생들이 직접 계획을 짜고 승인 받고 심지어 학교에서 하루를 머물다니! 이런 모든 과정이 가능하단 말이야?’ 싶어서.
◆Qnxwlg6lDth 2019/07/16 02:29:50 ID : JPdu4MpdPdD
이쯤에서 국화 이야기를 해보자면, 첫 학급회의 때 국화는 반장의 합숙 제안을 듣고 대번에 인상을 찌푸렸었어. 그리고 아주 나즈막히 ‘학교 안와야겠네’라고 중얼거렸다. 그걸 들은 나는 국화의 어깨를 톡톡 쳤어. 그리곤 국화 귀에 속닥거렸지. (응. S한테 옮은 버릇이야) ‘국화야. 우리 합숙 날 같은 텐트에서 자자. 나 텐트 잘 쳐!’ 국화는 그 날 되게 복잡한 표정을 지었던 것 같다.
◆Qnxwlg6lDth 2019/07/16 02:38:51 ID : JPdu4MpdPdD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국화가 그 날 학교에 오지 않도록 내버려둬야 했어. 내 오지랖이 국화를 망친거야.
이름없음 2019/07/16 02:50:24 ID : A5cE03vdvbc
ㅂㄱㅇㅇ
◆Qnxwlg6lDth 2019/07/16 02:52:43 ID : JPdu4MpdPdD
후.... 다시 내 이야기로 돌아가볼게. 당시 나는 아까 말했던 특유의 오지랖과 특이한 외모 덕에 생각보다 많은 친구를 사귀고 있었다. 특이한 외모라고 해봤자 뭐 가자미처럼 생긴 건 아니고. 눈이 굉장히 큰데다가 바가지머리 숏컷이었거든. (전에 있던 학교 두발 규정이 귀 밑 3센치라 어쩔 수 없이 했던 건데 이 학교는 두발 자유라 숏컷인 사람이 정말 없었어) 뭐 말로 설명하니까 별로 특이하지 않은 것 같긴 하다. 굳이 덧붙이자면 눈이 정말 큰 편인데 또 삼백안이야. 왠만하면 사람들 누구든 내 눈 오래 못쳐다본다. 그래서인지 별명은 토시오였음.....
◆Qnxwlg6lDth 2019/07/16 02:58:11 ID : JPdu4MpdPdD
그런 내게 반장과 부반장은 꽤나 흥미로운 제안을 했어. 담력테스트할 때 귀신 역할을 맡아달라는 거야. 반에서 꽤 무섭게 생긴 애들이나 담이 쎈 애들에게 비밀리에 부탁하는 모양이더라고. 나야 겁도 없는 편이었고 놀래키는 게 재미있을 것 같아서 대번에 수락했지. (참고로 반장은 국화에게도 아주아주X1000000 조심스럽게 요청했는데 1초만에 거절당했다고 했다)
◆Qnxwlg6lDth 2019/07/16 03:01:36 ID : JPdu4MpdPdD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국화에게 가서 물어봤지. 반장이 한 제안을 왜 거절했느냐고 말야. ‘놀라는 것보단 놀래키는 쪽이 낫지 않아?’ 라고 했었던 것 같아. 국화는 내 눈을 빤히 쳐다보다가 말했어. ‘너는 괜찮겠지만 원래 그런 역할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Qnxwlg6lDth 2019/07/16 03:09:25 ID : JPdu4MpdPdD
음... 시간도 늦었는데 오늘은 여기까지 이야기할까? 혹시 보고있는 사람이 있다면 말해줘. 해가 뜨면 다시 돌아올게.
이름없음 2019/07/16 05:50:48 ID : k1a5PfPa3wl
ㅂㄱㅇㅇ
이름없음 2019/07/16 07:36:16 ID : 9wFfPcq1Ci2
ㅂㄱㅇㅇ
이름없음 2019/07/16 07:40:44 ID : atyY1fU4Y6Z
ㅂㄱㅇㅇ!
이름없음 2019/07/16 10:15:59 ID : AZii5U3U43T
ㅂㄱㅇㅇ
이름없음 2019/07/16 13:23:56 ID : jzbDvxA5hAn
ㅂㄱㅇㅇ
◆Qnxwlg6lDth 2019/07/16 14:58:14 ID : dxDAkpO2rff
생각보다 늦었다. 그럼 이어서 써볼게.
이름없음 2019/07/16 15:01:34 ID : mJO8qlu9wIM
동접! 잘 보고 있어ㅎㅎ
이름없음 2019/07/16 15:07:04 ID : 5U3SHA2Hu79
동접이당
이름없음 2019/07/16 15:13:20 ID : imGlctutunD
ㅂㄱㅇㅇ 동접이당ㅎㅎ
◆Qnxwlg6lDth 2019/07/16 15:20:18 ID : dxDAkpO2rff
그 날 이후로 국화는 또 학교에 나오지 않았어. 단합대회는 여전히 잘 준비되고 있었고 말야. 그리고 나는 앞서 말한 것처럼 담력테스트에서 귀신 역할을 하기로 확정됐어. 방과 후에 집에 가는 척을 했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와서 귀신을 맡기로 한 아이들, 그리고 반장, 부반장과 함께 회의를 했지.
이름없음 2019/07/16 15:34:18 ID : lbeE003xxzU
보고잇어
◆Qnxwlg6lDth 2019/07/16 15:34:27 ID : dxDAkpO2rff
일단 룰은 이랬어. 1. 모든 반 아이들이 운동장에 모여 시작한다. 2. 반장은 시작점인 운동장에서 아이들에게 미션을 뽑도록 한다. (각자 학교에 가서 할 미션이 정해져 있었는데, 주머니에 여러가지 미션이 적힌 쪽지를 넣고 직접 뽑도록 했지) 3. 2인 1조로 움직이며 직접 뽑은 미션을 수행한다. 4. 미션이 끝나면 부반장과 함께 후관에서 대기한다.
◆Qnxwlg6lDth 2019/07/16 15:35:42 ID : dxDAkpO2rff
학교 구조가 운동장 ———- 본관 ———- 후관 이런 식이었거든. 그래서 시작은 운동장, 끝나면 후관. 이렇게 짠거야.
이름없음 2019/07/16 15:36:29 ID : haq7wNy5atA
ㅂㄱㅇㅇ
◆Qnxwlg6lDth 2019/07/16 15:38:10 ID : dxDAkpO2rff
미션들도 생각보다 술술 잘 나왔어. 누군가를 골려먹겠다고 생각하면 아이디어가 정말 끝도 없이 나오더라고. 게다가 여중생이라면 괴담 몇가지 정도는 필수 소양처럼 알고 있곤 하잖아? 우리는 놀라 자지러질 반 애들을 생각하며 의견을 내고 히히덕거렸어.
이름없음 2019/07/16 15:40:17 ID : 4JWoY2mmmnv
보고있엉
◆Qnxwlg6lDth 2019/07/16 15:41:04 ID : dxDAkpO2rff
화장실에서 거울 보면서 빨간 립스틱 바르기, 화장실 네 번째 칸에 들어가서 섬집아기 부르기, 교실 문을 열고 ‘계십니까’라고 네 번 말하기, 교실 청소도구함 속에서 열쇠 찾아 44번 사물함 열기.... 뭐 이런 유치한 미션을 말하면서 말이지. 지금 생각해보니 웃길 정도로 4에 집착하고 있었구나 우리.
◆Qnxwlg6lDth 2019/07/16 15:42:56 ID : dxDAkpO2rff
미션은 어느 정도 나왔고, 이제는 귀신들을 어디에 배치할 지 고민할 차례였어. 반장과 부반장을 제외하고 귀신을 맡기로 한 아이들은 나를 포함해서 총 4명이었는데 (이것도 반장의 계획이었나...!) 교실에 3명, 화장실에 1명이 필요했지.
◆Qnxwlg6lDth 2019/07/16 15:46:44 ID : dxDAkpO2rff
교실에는 청소도구함에 숨어있다가 튀어나올 한 사람, TV뒤에 숨어있다가 튀어나올 한 사람, (요즘은 프로젝터나 천장 벽걸이 TV가 있지만 당시에는 말도 안되게 크고 두꺼운 TV가 바퀴달린 TV다이 위에 있었다. 그래서 체육 시간에 옷 갈아입을 때면 그 뒤에 들어가서 입고 나오는 애들도 있었어) 그리고 뒷문에 숨어있다가 누군가 교실에 들어오면 조용히 복도로 나가서 쾅! 하고 앞문을 닫아버릴 한 사람.
이름없음 2019/07/16 15:48:53 ID : QpRwpSK6jeK
동접이당 ㅂㄱㅇㅇ
◆Qnxwlg6lDth 2019/07/16 15:49:24 ID : dxDAkpO2rff
화장실은..... 혼자 미션에 따라 방법을 바꿔가며 아이들을 놀래켜야 했어. 교실은 1귀신 1미션이었지만, 화장실은 1귀신 3미션이었지. 근데 왜 화장실은 1명이었냐고? 왜냐면 그 곳엔 숨을 수 있는 공간이 없었거든.
◆Qnxwlg6lDth 2019/07/16 15:55:05 ID : dxDAkpO2rff
우리는 고민을 하다가 모두 화장실로 향했어. 전에도 말했지만 본관은 7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고, 그 이후 조금씩 보수만 되어 있는 상태야. 화장실은 변기가 푸세식에서 재래식으로 바뀐 정도? 각 칸은 두꺼운 시멘트 벽으로 나뉘어져 있고, 문은 부서져가는 나무문으로 되어 있어. 천장은 모두 통해있지만 하단은 나무 문 밑에만 뚫려있고 말야. (옆 칸 친구에게 휴지를 주려면 위로 던져야만 하고 밑으로 전해줄 수 없음. 화장실 복도에 있는 친구는 밑으로든 위로든 다 줄 수 있고)
◆Qnxwlg6lDth 2019/07/16 15:59:32 ID : dxDAkpO2rff
그래서 우리는 고민 끝에 천장에 숨기로 했어. 일반 화장실 파티션의 10배는 두꺼운 그 벽이라면 충분히 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 서서 다니는 건 불가능 했지만 기어서 칸을 넘어갈 수 있었고, 벽에 등을 대고 쪼그려 앉거나 엉덩이만 벽에 걸치고 앉아 있는 건 충분했거든. 물론 미션자의 눈에 띄지 않고 천장을 통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는 장점이 제일 컸지.
◆Qnxwlg6lDth 2019/07/16 16:02:13 ID : dxDAkpO2rff
그리고 한 명씩 화장실 칸막이 벽에 올라타보기로 했어. 그냥 그 벽에 올라가는 건 절대 불가능 했고. (양변기였으면 밟고 올라겠겠지만 쭈그려 앉아 볼일보는 그 변기여서 불가능했음) 화장실 복도 끝에 있는 창문을 밟아야만 벽에 올라설 수 있는 구조였어.
◆Qnxwlg6lDth 2019/07/16 16:07:37 ID : dxDAkpO2rff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빼도 박도 못하고 화장실 귀신으로 당첨됐어. 다들 애초에 화장실 벽에 올라가지도 못하는 데다가, 벽과 벽 사이를 돌아다니는 건 절대 불가했거든. 그리하여 나는 타잔 토시오라는 칭송을 받으며 홀로 화장실에 남는 역할을 떠맡게 되었지.
이름없음 2019/07/16 16:11:39 ID : dwnDy2JRu3x
ㅂㄱㅇㅇ
◆Qnxwlg6lDth 2019/07/16 16:12:57 ID : dxDAkpO2rff
준비 하는 동안 시간은 말도 안되게 빨리 흘러갔다. 눈 떠보니 단합대회 날이었지.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담요를 두 장 챙기면서 국화에게 문자를 보냈어. [짝지! 오늘 학교 오지? 나 지금 너꺼까지 담요 두 개 챙겨따!>_<] 답장은 오지 않았지만 나는 챙긴 담요를 굳이 빼지 않았어. 왠지 국화가 올 것만 같았거든.
이름없음 2019/07/16 16:13:59 ID : k9BvA42Mry7
동접~~!
◆Qnxwlg6lDth 2019/07/16 16:19:54 ID : dxDAkpO2rff
하지만 도착한 교실엔 국화가 없었어. 아직도 많이 아픈가 싶어서 맥이 빠지더라고. 아픈 애한테 괜히 연락했다 싶고 말야.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어영부영 수업을 들었지. 그래서인지 그 날은 무슨 수업을 들었는지 전혀 기억이 안난다. 그리고 청소시간이 됐을 때 국화가 학교에 왔어. 이렇게 학교가 끝날 쯤 등교한 건 처음이라고 모두 놀라더라. 나는 ‘우쮸쮸 우리 국화 단합대회는 하고 싶었쪄요?’ 라고 놀리면서 국화의 머리를 쓰다듬었어. 또 인상을 팍 찡그릴 모습을 상상하면서 말야. 근데 의외로 국화는 ‘응’이라고 대답했다. 그걸 보고 반 친구들이 웃더라고. 국화도 의외로 귀엽다면서 말이야. 나는 이 기회에 국화가 오해를 풀고 친구를 사귈 수 있길 바랐다.
◆Qnxwlg6lDth 2019/07/16 16:23:43 ID : dxDAkpO2rff
청소까지 모두 끝나자 종례를 하러 담임선생님이 오셨어. 반장에게 ‘이상한 행동 하지 말고 열심히 자습하고, 저녁 늦기 전에 체육 선생님께 중간 보고 드려라’라고 하셨지. 뭐 그런 소리가 잔뜩 신난 반장 귀에 들렸겠어? 그저 무슨 이야기를 하시든 싱글벙글 웃으면서 손을 번쩍 들고 ‘네!!!’하고 큰 소리로 대답할 뿐이지. 그건 반장이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 마찬가지였지만.
이름없음 2019/07/16 16:24:03 ID : eNzcIMqnU1x
ㅂㄱㅇㅇ
◆Qnxwlg6lDth 2019/07/16 16:27:01 ID : dxDAkpO2rff
선생님이 학교를 떠나시고, 모든 아이들이 학교를 떠날 때까지 우리는 자습을 하는 척! 했다. 중간에 몇몇 아이들은 매점에 가서 예정대로 컵라면을 사왔지. 애들이 사온 컵라면을 보니 괜히 배도 고프고, 몸도 근질근질하니 놀고 싶었지만 아직 퇴근하지 않은 선생님들이 계셔서 꼼짝없이 조용히 앉아있었어. 내 생각보다 선생님들은 참 늦게 퇴근하시더라고. (학생들이 집에 가면 30분 정도 있다가 집가실 줄 알았는데 말야)
이름없음 2019/07/16 16:29:26 ID : 4JWoY2mmmnv
보구보구있엉
◆Qnxwlg6lDth 2019/07/16 16:31:22 ID : dxDAkpO2rff
거의 8시가 될 무렵에야 우리는 마지막 선생님의 퇴근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생활 한복을 입으신 도덕선생님이 교문을 나서시는 걸 본거지. 창가에 앉아있던 S가 ‘선비 갔다!!!!!!’ 라고 외치자마자 모두 비명을 지르며 보던 책을 집어던졌어. (그리고 5초 정도 흥겹게 춤을 추다가 모두 주섬주섬 책을 주웠다)
◆Qnxwlg6lDth 2019/07/16 16:32:24 ID : dxDAkpO2rff
뭐 그걸 보던 국화 표정은 꽤 볼만했지. 뭐라 해야하나... 난처? 당황스러움? 다른 건 모르겠지만 웃음을 참고 있었던 건 확실하다.
이름없음 2019/07/16 16:35:20 ID : fbvdA7zbva0
ㅋㅋㅋㅋㅋㅋㅋㅋㅋ보고있어ㅋㅋㄱㅋㅋ귀엽다ㅜㅠ
이름없음 2019/07/16 16:36:25 ID : AZii5U3U43T
ㅂㄱㅇㅇ
◆Qnxwlg6lDth 2019/07/16 16:37:49 ID : dxDAkpO2rff
우리는 선생님이 가신 걸 보자마자 책상을 좌우로 밀었어. 그리고 교실 바닥에 동그랗게 둘러앉았지. 반장은 준비해 온 초를 켜서 교실 정 가운데에 뒀다. 물론 불은 끄고 말야. “해가 길어져서 생각보다 무서운 이야기 오래 해야겠는데? 다들 준비 잘 해왔지?” 반장은 이렇게 말하면서 흐흐흐흐 웃었어.
이름없음 2019/07/16 16:39:55 ID : dwnDy2JRu3x
보고있엉
◆Qnxwlg6lDth 2019/07/16 16:40:07 ID : dxDAkpO2rff
그 때 옆에 꼭 붙어있던 국화가 내 옷을 잡아당겼어. 그리곤 귀에 속삭였지. (국화는 S가 아니라 나한테 배운 거다) ‘쟤 가방에서 초 더 꺼내서 교실 귀퉁이마다 불 좀 켜줘’
◆Qnxwlg6lDth 2019/07/16 16:44:48 ID : dxDAkpO2rff
뭔가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말이었지만, 국화가 아무 의미 없이 내게 그런 말을 할 것 같지는 않았어. 게다가 국화에게 들은 첫 부탁이었는 걸! 나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반장의 가방을 뒤집어 엎어 초를 꺼냈다. (반장은 뭐하는 거냐고 엄청난 속도로 달려왔었다. 아마 가방 속에 있는 담배가 걱정되서 그랬겠지) 그리곤 너무 어두워서 무섭다며 교실 네 귀퉁이에 양초를 켜뒀어. 반 아이들도 실제로 조금 으스스 했던 건지, 내가 초를 둘 수 있도록 책걸상을 치우며 도와줬다.
이름없음 2019/07/16 16:46:51 ID : 4IE9BzdWmE9
ㅂㄱㅇㅇ
◆Qnxwlg6lDth 2019/07/16 16:49:22 ID : dxDAkpO2rff
초를 다 켜고 나니 생각보다 교실은 꽤 밝아졌어. 가운데 하나만 켜뒀을 때는 둘러앉은 애들 그림자가 사방으로 길게 늘어져있어서 어쩐지 으스스 했었는데 그런 느낌이 없어졌지. 반장은 자기 가방이 뒤져졌다는 사실에 쉬익쉬익 거리다가, 내가 건넨 쿠루루의 초코롤을 보고 언제든 자신의 가방을 뒤질 수 있는 권한을 줬다.
이름없음 2019/07/16 16:49:49 ID : k9BvA42Mry7
동접 ㅎㅎ
이름없음 2019/07/16 16:50:21 ID : k9BvA42Mry7
초코롤ㅋㅋㅋㅋ 스레주랑 레주친구들 너무 귀엽다
◆Qnxwlg6lDth 2019/07/16 16:55:11 ID : dxDAkpO2rff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된 후에 나는 국화의 옆자리에 앉았어. 그리고 반장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무서운 이야기를 시작했지. 낡은 학교, 조용한 교실, 일렁이는 촛불, 조곤조곤 오가는 무서운 이야기들. 사실 이야기 자체는 어디서 들어봤거나 시시한 게 대부분이었지만 분위기가 그래서였는지 굉장히 오싹하게 느껴졌어. (도서관에 다리 없는 여자아이가 있었다던가 죽은 금붕어가 돌아왔다는 둥의 이야기 말야. 으악! 너무너무 무섭다! 시리즈에 나왔을 법한 그런 이야기)
이름없음 2019/07/16 16:57:02 ID : A3WkoGq2Fdu
보고있어
◆Qnxwlg6lDth 2019/07/16 16:57:44 ID : dxDAkpO2rff
그리고 국화 차례가 되었을 때. 순간 조용했던 교실은 더 없이 조용해졌어. 어디선가 꿀꺽 하고 침삼키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지. 국화는 아무 말 없이 30초 정도 주변을 두리번거렸어. 그 동안 후관 뒷 편에 있는 산에서 들리는 풀벌레 소리가 정말 크게 들리더라.
이름없음 2019/07/16 16:59:25 ID : A3WkoGq2Fdu
하 전화로 빠르게 듣고 싶다 ㅠㅠㅠ
이름없음 2019/07/16 16:59:32 ID : A3WkoGq2Fdu
윽 안되
이름없음 2019/07/16 17:00:24 ID : K5hArAqjimF
1
이름없음 2019/07/16 17:00:27 ID : K5hArAqjimF
.
◆Qnxwlg6lDth 2019/07/16 17:03:59 ID : dxDAkpO2rff
국화는 아주 차분하게 이야기했어. “그런 귀신 이야기 보다는 지금 여기에 있는 귀신이 더 무섭게 느껴지지 않아?” 아이들은 작게 ‘으악!’이나 ‘아... 싫어..’같은 말을 뱉어냈고. 그리고 국화는 고개를 갸우뚱거렸어. “나머지는 원래 여기에 있던 건데.... 복도에서 못들어 오고 있는 저 아저씨는 뭐지? 머리가 부서진 것 같은데...” 이렇게 말하면서 말이야. 그걸 듣고 아이들은 소리조차 지르지 않았어. 나도 마찬가지였지. 뭐라고 해야하나. 남들이었으면 ‘아오, 중2병이냐. 작작해’라고 쏘아줄 수 있을 것만 같은데 국화는 정말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았거든.
이름없음 2019/07/16 17:04:09 ID : 6lvbeGnyLbv
잘 보고있어!! 국화에게 안좋은 일이라도 생긴거니...ㅠ 괜히 걱정되면서 글 읽는 내내 떨리네..ㅠ
◆Qnxwlg6lDth 2019/07/16 17:10:43 ID : dxDAkpO2rff
S는 그런 국화가 익숙한 건지 양 손을 위 아래로 흔들면서 말했어. “워어- 워어- 그런 건 나중에 돈 받고 말해 국화야” 그러자 국화는 순간 내 손목을 꽉 잡았어. 그 덕에 번쩍! 하고 정신이 들었지. “얍! 다들 정신 차려보렴. 나 진짜 엄청 무서운 이야기 가져왔는데... 이제 슬슬 말해도 되냐?” 살얼음이 확 깨진 것 처럼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내 말에 동조했어. ‘쟤가 무섭다면 진짜 무서운 건데 기대된다’ ‘화장실 다녀 와야 하는 거 아니냐’ 면서 말야.
◆Qnxwlg6lDth 2019/07/16 17:13:11 ID : dxDAkpO2rff
나는 ‘에헤이~ 지금 화장실 가면 반칙이지- 옷에다 쪼꼼씩 싸면서 말려’ 라고 말하면서 국화를 곁눈질로 살폈어. 고개를 푹 숙인 국화는 내 손목을 여전히 꽉 잡고 있었지. 지금 생각해보니 이게 시작이었던 것 같아.
이름없음 2019/07/16 17:13:57 ID : A3WkoGq2Fdu
귀신 들린거 아니야..?
◆Qnxwlg6lDth 2019/07/16 17:17:13 ID : dxDAkpO2rff
그렇게 한 바퀴 정도 더 돌아 무서운 이야기를 주고 받았을 때 쯤 해는 완전히 저물었어. (중간에 국화 차례가 한 번 더 돌아왔었지만 ‘재미없는 국화 대신에 특별히 내가 이야기 하나 더 풀겠다’고 해서 넘겼지) 반장은 이제 해가 졌으니 모두 나가자고 제안했고 아이들은 반장을 따라 주섬주섬 일어섰어. 나와 귀신 역을 맡기로 한 친구들은 함께 나가는 척 했다가 중간에 조용히 빠져 나올 계획이었다.
이름없음 2019/07/16 17:21:36 ID : A3WkoGq2Fdu
웅ㅇ
◆Qnxwlg6lDth 2019/07/16 17:21:44 ID : dxDAkpO2rff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나는 다른 애들 눈치를 보며 국화에게 귓속말했어. ‘나 귀신 하기로 한 애들이랑 몰래 빠져나갈거야. 학교 어두우니까 다른 애들 잘 쫓아가야 해! 혹시 무서우면 S한테 말해줄까? 같이 가달라고?’ 국화는 그 때 뭔가 굉장히 불안해 보였어. 나는 주변에 귀가 많아 할 말을 못하고 있는 거라 생각했지. 그래서 반장에게 시간을 끌어달라 부탁하는 문자를 보내고 국화와 후관 쪽으로 나왔어.
◆Qnxwlg6lDth 2019/07/16 17:23:44 ID : dxDAkpO2rff
밖으로 나오자마자 국화는 횡설수설하며 말을 꺼냈다. 정말 두서 없고 발음이 흘러서 전부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는 말은 똑똑히 들을 수 있었어.
이름없음 2019/07/16 17:24:40 ID : A3WkoGq2Fdu
레주..나 학원갔다가 올게 외롭겟지만 기다려줭...
◆Qnxwlg6lDth 2019/07/16 17:25:35 ID : dxDAkpO2rff
조심히 다녀와
◆Qnxwlg6lDth 2019/07/16 17:30:16 ID : dxDAkpO2rff
이어서 쓸게. 사실 나는 당시에 허둥거리는 국화 모습이 낯설기도 했고, 국화가 뱉는 말들이 어쩐지 소름돋아 무섭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었지만 짐짓 태연한 척 국화를 안아줬어. “괜찮아. 다 알아. 괜찮아 국화야.” 라고 말하면서 말야. (사실 아는 거 1도 없음)
◆Qnxwlg6lDth 2019/07/16 17:34:48 ID : dxDAkpO2rff
국화는 내게 안긴 상태(라기 보다는 내가 국화한테 매달린 상태)로 잠시 가만히 있다가 고개를 들고 내게 같이 있으면 안되냐고 물었어. 솔직한 내 심정으로는 땡큐! 였지만 그건 사실 불가능했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국화는 화장실 벽에 올라탈 수 없을 것 같았거든. 그래서 난 국화에게 교실에 있을 것을 제안했어.
◆Qnxwlg6lDth 2019/07/16 17:41:55 ID : dxDAkpO2rff
국화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러겠노라고 했어. 그래서 난 황급히 반장과 부반장에게 문자를 보냈지. 국화가 교실에서 발목잡는 귀신 역할을 해주겠다고 하는데 어떠냐고 말야. 두 사람은 국화는 어차피 놀래켜도 반응도 없을 것 같았다며 흔쾌히 동의해줬어. 그 덕에 국화는 교실에서 3명의 다른 아이들과 함께 숨어있을 수 있게 됐지. 그리고 난 내 순간의 기지로 만든 귀신 역에 국화를 배치해야 했어. 후관에서 후다닥 본관 교실로 돌아와 교탁 밑에 국화를 숨겼지. 누군가 칠판 앞을 지나가면 발목을 잡으면 된다고 말해주면서 말야. 그리고 덧붙였지. ‘아마 니가 발목을 잡을 애들은 거의 없을거야’라고. 교단이 워낙 낡아 삐그덕 소리가 잔뜩 났기 때문에 겁먹은 애들이 여길 지나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거든.
이름없음 2019/07/16 17:47:26 ID : BwINzbyJSLa
ㅂㄱㅇㅇ
이름없음 2019/07/16 17:47:41 ID : 4JWoY2mmmnv
보고있엉
◆Qnxwlg6lDth 2019/07/16 17:50:04 ID : dxDAkpO2rff
그리고 국화의 하얀 얼굴이 애들 눈에 들어올 것 같아서 머리카락으로 사정없이 가렸다. 긴 머리칼이라 충분히 가려지겠지.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와.... 쪼그려 앉아있는 국화가 통채로 가려지더라. 까만 머리카락 뭉치를 보는 것 같았어.
◆Qnxwlg6lDth 2019/07/16 17:55:42 ID : dxDAkpO2rff
“짝지! 들키면 안돼! 끝나고 다시 보자!” 국화는 이 말을 듣고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어. 그리고 몸을 돌려 나가려던 내 팔목을 다시 꽉 잡아챘지. 얼음장처럼 차가운 국화의 손에 나는 깜짝 놀랐어. “어디 아파? 체한 거 아냐? 집에 갈ㄹ...” “꼭꼭 숨어. 들키면 안돼” “엥? 뭐야 내가 한 말이잖아. 벌써 감정이입했냐 국화” “아저씨가 가려주겠지만 그래도 잘 숨어있어. 휘파람... 그거 아니야. 꼭꼭 숨어” 국화는 이렇게 말하면서 떨고 있었던 것 같아.
◆Qnxwlg6lDth 2019/07/16 17:58:11 ID : dxDAkpO2rff
걱정 말라고 말하며 나는 국화 손을 떼어냈어. 그리고 잠시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화장실로 향했지. 조 편성이 다 끝났는지 반장한테 문자가 엄청 오고 있었거든. (그 와중에 반장은 알이 많아서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거 이해하면 너도 아재)
◆Qnxwlg6lDth 2019/07/16 18:04:48 ID : dxDAkpO2rff
아무도 없는 화장실은 정말 을씨년스러웠다. 흔한 테두리 같은 것도 없이 척 하고 붙여진 거울 세 개. (그나마도 다 깨져있음) 고장나서 조금씩 물이 새는 세 번째 수도꼭지. 끼익거리며 조금씩 움직이는 낡은 나무문들. 우오오- 하는 바람 소리가 들어오는 나무 창문. 나는 침을 한 번 꼴깍 삼키고 비장하게 양 옆의 화장실 칸들을 지나쳐 나무 창문으로 향했어.
이름없음 2019/07/16 18:06:11 ID : 7vDAkmmralj
ㅂㄱㅇㅇ
◆Qnxwlg6lDth 2019/07/16 18:06:45 ID : dxDAkpO2rff
창문은 살짝 열려있었다. 그 틈 사이로 바람소리도 나고 있었고, 나무 문도 끽끽 움직이고 있었지. 그 소리들이 뭔가 기분나빴던 나는 창문을 꽉 닫고 도움닫기 한 뒤에 화장실 벽에 올라탔다.
◆Qnxwlg6lDth 2019/07/16 18:11:07 ID : dxDAkpO2rff
그리곤 청소시간에 몰래 칸막이 벽 위에 숨겨뒀던 거울과 화장품을 꺼내서 후다닥 분장을 했지. 화장품이래봤자 훼어니스랑 틴트가 전부였지만 하얗게 뜬 얼굴에 틴트로 잔뜩 입술 주변에 얼룩덜룩 칠하고 눈가를 빨갛게 만들었더니 생각보단 꽤 그럴싸하던걸.
◆Qnxwlg6lDth 2019/07/16 18:12:50 ID : dxDAkpO2rff
지금까지 뭔가 엄청 길게 적었지만 사실 반장이 슬슬 담력테스트를 하자고 제안한 다음 내가 분장을 마치기까지 대략 20분도 안걸렸던 것 같아.
◆Qnxwlg6lDth 2019/07/16 18:19:24 ID : dxDAkpO2rff
나는 반장에게 [ㄱㄱ] 라고 문자를 보냈어. (답장은 [ㅇ] 였음)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 싶어서 두근두근 하더라. 그 때 위잉, 하고 또 문자가 왔어. 긴장이 풀렸던 순간에 온 진동이라 깜짝 놀라 폰을 놓칠 뻔 했지. 나는 설정에 들어가서 문자를 잠시 무음으로 바꿨어. 그리고 문자를 확인했지. [17팀 중에서 1팀 - 교실/청소도구함]
◆Qnxwlg6lDth 2019/07/16 18:21:22 ID : dxDAkpO2rff
오호 17팀이나 되는 구나. 얘네는 하필 청소도구함이냐. 불쌍하게. 뭐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 음... 화장실이 아니라서 편했던 것 같기도 하고?
◆Qnxwlg6lDth 2019/07/16 18:26:11 ID : dxDAkpO2rff
아 동생한테 연락왔다. 이제 퇴근하나봐. 저녁 먹고나서 돌아올게.
이름없음 2019/07/16 18:39:08 ID : A3WkoGq2Fdu
레주 저녁 맛있게 먹구왕
이름없음 2019/07/16 18:39:32 ID : A3WkoGq2Fdu
안궁금하겟지만 나 학원 갔다온 애야..
이름없음 2019/07/16 18:39:45 ID : A3WkoGq2Fdu
으응..그렇다고...
이름없음 2019/07/16 18:48:55 ID : DwFeGr9jwHC
오오 재밌당 다음얘기가 궁금해..
이름없음 2019/07/16 19:36:50 ID : JRzVbvbjBvw
기다릴게ㅜㅜ 진짜 재밌게 보고있당
이름없음 2019/07/16 20:22:37 ID : nO08rzgnXvC
정주행하고 왔는데 존잼.... 이 스레 뭔가 흡입력있어
이름없음 2019/07/16 20:23:33 ID : nO08rzgnXvC
레스주도 귀여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름없음 2019/07/16 21:07:34 ID : A3WkoGq2Fdu
나한테 관심 주다니 고마웡 ㅜㅠㅠ
◆Qnxwlg6lDth 2019/07/16 23:48:56 ID : dxDAkpO2rff
다시 이어서 써볼게. 음... 첫 팀이 본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엄청난 비명 소리가 따라왔어. 두다다다 달려가는 소리도 들려왔지. ‘아악!!! 엄마아아아아!!!!!’ ‘같이가 이년아!!!!! 으아아악!!!!’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첫 비명을 얻어낸 교실팀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었어. 물론 현실은 화장실 파티션 난간에 앉아 숨을 죽이고 있을 뿐이었지만 말야.
◆Qnxwlg6lDth 2019/07/16 23:51:50 ID : dxDAkpO2rff
그 때였어. 핸드폰이 반짝였지. [2팀 - 화장실/섬집아기] 드디어 내가 움직일 때가 온 거야.
◆Qnxwlg6lDth 2019/07/16 23:55:03 ID : dxDAkpO2rff
나는 재빠르게 네 번째 칸과 다섯 번째 칸 사이로 이동했어. (사실 재빠르게는 아니고... 떨어지지 않게 적당히 조심하면서..) 그리고 먹이를 기다리는 거미처럼 숨죽여 기다렸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계단에서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어. “으... 어어.... 우리 학교 진짜 개싫어... 무서워....” 익숙한 목소리. 내 첫 손님이 S라니!
◆Qnxwlg6lDth 2019/07/16 23:58:36 ID : dxDAkpO2rff
S는 쉬지 않고 떠들면서 화장실로 들어왔어. “누구든 나오면 나 진짜 때린다? 어? 때린다고 했어....?” 이런 식으로 말야. 나는 그저 조용히 기다렸다. S와 S의 파트너가 된 K는 우당탕탕 시끄럽게 문을 하나씩 열어재꼈어. 아마 어느 칸에 귀신 역할을 하는 애가 숨어있을 거라 생각했던 모양이야. 이래서 전지적 시점이 필요한 건가 싶더라. 위에서 내려다 보니까 둘 다 너무 웃긴 거 있지?
◆Qnxwlg6lDth 2019/07/17 00:01:39 ID : dxDAkpO2rff
모든 칸을 열고 아무도 없다는 걸 확신한 두 사람은 잠시 주춤대다가 미션을 하러 네 번째 칸으로 들어갔어. 가뜩이나 좁은 화장실은 정말 숨막히게 꽉 들어찼지. 그리곤 서로 눈치를 보다가 정말 옹졸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어. “어..엄마가아....섬그...늘에....구울..따러어 가면....” 그리고 난 천장에서 느긋하게 그 노래를 따라 불렀지. 꽤 깜찍한 아기 목소리로 말야.
이름없음 2019/07/17 00:03:53 ID : VhzanDs8pat
보고있어~~~~ 계속 풀어줘
◆Qnxwlg6lDth 2019/07/17 00:06:06 ID : dxDAkpO2rff
두 사람은 뭔가 이상하다는 듯 노래를 멈췄어. 당연히 나도 멈췄고. 다시 노래를 부르면 당연히 나도 따라 불렀어. 이윽고 두 사람은 서서히 굳었다. 그리고 아주 느리게, 아주 천천히 고개를 위로 들었어. 나는 그 타이밍에 맞춰 네 번째 칸 안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었지. “다시 불러줘!!!! 깔깔깔깔!!!” 이렇게 외치면서 눈을 잔뜩 크게 뜨고선 말야. 결과는 뻔했다. 두 사람은 엄청난 소프라노톤을 자랑하며 화장실 밖으로 뛰쳐나갔어.
◆Qnxwlg6lDth 2019/07/17 00:12:56 ID : dxDAkpO2rff
그 뒤로는 피곤할 정도로 화장실 손님들이 많았다. 연이어 네 다섯 팀이 방문해주셨으니 말야. 미션은 첫 손님이 했던 [섬집아기] 외에도 두어개 더 있었어. 첫 번째는 [립스틱] 거울을 보고 빨간 립스틱을 바르는 미션이야. 나는 립스틱이 미션이란 걸 알게되면 첫번째 칸으로 이동해서 기다렸다가 거울 쪽으로 고개만 빼꼼 내밀었어. 립스틱 바르고 나면 마지막에 하는 거 있지? 입술을 부딪쳐서 퐝퐝 소리내는 거. 뭔지 이해할 수 있으려나.... 암튼 그 소리를 계속 냈어. 그럼 거울을 통해서 내 얼굴을 보게 될 거고, 마치 공중에 머리만 둥둥 떠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 광경을 납득할 수 없어 뛰쳐 나가게 되는 거지.
◆Qnxwlg6lDth 2019/07/17 00:15:08 ID : dxDAkpO2rff
두 번째는 [노크] 모든 칸에 노크를 하고 문을 열어보는 미션이야. 나는 노크가 미션이라는 걸 알게 되면 천장에 숨어 기다렸다가 모든 문을 다 열고 나서 안심할 때 쯤 네 번째 칸의 문을 안 쪽에서 두드렸어. 보통은 고장난 것처럼 멈췄다가 서로를 바라본 후에 바로 뛰쳐 나가곤 했지.
◆Qnxwlg6lDth 2019/07/17 00:17:58 ID : dxDAkpO2rff
지금까지의 장황하고 쓸데없는 설명들은 내가 그 간 얼마나 바빴는지 알려주기 위함이야. 정말 근 1시간 가량을 화장실 천장을 기어다니느라 굉장히 피로했다고. 무엇보다 아주 덥고, 깜깜하고, 냄새났어. 게다가 손님들이 왔다간 다음이면 비명소리가 귓가에 맴돌아서 어쩐지 혼자 있는 게 별로라고 느껴졌다.
◆Qnxwlg6lDth 2019/07/17 00:22:01 ID : dxDAkpO2rff
그렇게 네다섯팀이 왔다 간 이후엔 무슨 일인지 좀처럼 문자가 오질 않았어. 그 덕에 그 눅눅하고 냄새는 화장실 천장에서 강제 휴식을 취하게 됐지. 얼마나 지났을까. 체감 상으로는 15분 이상은 지루하게 기다렸던 것 같아. ‘아... 좀 쉬다가 하자고 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무릎을 주무르고 있을 때 였을거야. 다시 계단에서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어.
◆Qnxwlg6lDth 2019/07/17 00:29:25 ID : dxDAkpO2rff
분명히 들리는 재잘거림. 하지만 뭔가 이상했던 점은 그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정확히 들리지 않았다는 거야. 분명 그 전에 S가 했던 말은 정말 똑똑히 들렸었는데 말야. 먼 곳에서부터 들렸던 재잘거리는 소리는 그저 점점 커지기만 했어.
◆Qnxwlg6lDth 2019/07/17 00:31:18 ID : dxDAkpO2rff
하지만 당시 나는 그 재잘거리는 소리가 무슨 대화인지 듣는게 중요치 않았어. 일단 저 팀이 무슨 미션을 받았는지 알아내야만 했지. 왜냐면 나는 맡은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는 화장실 천장 귀신이니까!
이름없음 2019/07/17 00:31:28 ID : VhzanDs8pat
그래서??? 스레주 자니??
이름없음 2019/07/17 00:31:50 ID : jwLbveIINzc
보고있어 ! 완전 흥미딘딘
◆Qnxwlg6lDth 2019/07/17 00:33:47 ID : dxDAkpO2rff
다급하게 반장에게 [지금 올라오는 팀 무슨 미션인데?! 화장실이야?] 라고 문자를 보냈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어. 슬슬 초조해지던 찰나에 재잘거리는 소리는 서서히 작아졌지. 마치 3층으로 올라간 것처럼 말이야. (내가 지금까지 제대로 말 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 다시 말하자면, 우리 반은 본관 2층에 있었고 내가 숨어있던 화장실 역시 2층 계단 바로 앞에 있었어)
◆Qnxwlg6lDth 2019/07/17 00:36:03 ID : dxDAkpO2rff
저 애들이 무서워서 그냥 3층으로 도망가 버린건가? 아니면 미션을 잘못 이해했나? 별 생각이 다 들었지. 그래서 부반장에게도 문자를 보냈어. [이번 팀 무서워서 3층으로 튀었나봄ㅋㅋ 얘네 실패다] 역시 답장은 없었다.
이름없음 2019/07/17 00:36:56 ID : nwldyIE3Duk
보고있엉
◆Qnxwlg6lDth 2019/07/17 00:37:39 ID : dxDAkpO2rff
다시 지루한 기다림이 시작된 것 같았어. 아무에게도 문자는 오지 않았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천장에 잘 숨어있는 것 밖에 없었으니. 그렇게 하품을 늘어져라 뱉고 있을 때 또 다시 소리가 들려왔어. 대화가 들리지 않는 그 재잘거림이.
이름없음 2019/07/17 00:38:35 ID : VhzanDs8pat
오오오오!!!! 굉장히 흥미진진해!!!!!
◆Qnxwlg6lDth 2019/07/17 00:39:20 ID : dxDAkpO2rff
그 소리는 천천히 다시 2층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제서야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기 시작했어. 왜냐면 어느 순간부터 고장난 수도꼭지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질 않았거든.
◆Qnxwlg6lDth 2019/07/17 00:41:19 ID : dxDAkpO2rff
내가 이상함을 느낀 순간부터 묘한 울렁거림이 생겼다. 본능적으로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재잘거리는 소리는 어느새 2층. 내가 있는 화장실 코 앞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더 이상 커지지도, 작아지지도 않고 아주 균일한 소리로 말야.
◆Qnxwlg6lDth 2019/07/17 00:45:09 ID : dxDAkpO2rff
그걸 느끼자마자 나는 화장실 천장 구석에 몸을 숨겼다. 구석은 잔뜩 쭈그려야만 숨을 수 있는 곳이라 그 전까지는 칸과 칸 사이에 걸터앉아 있었거든. 그리고 좁은 화장실 천장 구석은 빛이 한 점도 들어오지 않는 곳이라 굳이 후레쉬로 비추어 보지 않으면 절대 날 찾을 수 없는 장소였어. 그래서 난 그 곳으로 몸을 옮긴 거야.
이름없음 2019/07/17 00:46:14 ID : 1du9usqqo44
근데 국화랑 중3 때 첨만난거면 2학년 언니들은 고2 말하는건가..? 근데 또 자살한 사람은 여중생이라며 설명 좀 부탁해 스레주 !!
◆Qnxwlg6lDth 2019/07/17 00:46:45 ID : dxDAkpO2rff
그리고 아주 조심히 핸드폰 배터리를 분리시켰다. 누가 시킨 건 아니었지만 정말 본능적인 행동이었어. 그리고 순간 사방이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Qnxwlg6lDth 2019/07/17 00:48:56 ID : dxDAkpO2rff
난 국화와 중3 때 처음 만난 게 맞아. 자살한 언니 이야기는 국화가 중1 때 있었던 일이고. 같은 초등학교 출신인 S가 내게 과거 일을 이야기 해줬던 거야. 중1이던 국화가 중2 언니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시기에 나는 다른 학교에서 중1 시기를 보내고 있었지.
이름없음 2019/07/17 00:50:23 ID : VhzanDs8pat
계속 얘기해줭~~~~~~♡
이름없음 2019/07/17 00:50:41 ID : 1du9usqqo44
아하 ㅎㅎ 고마워 스레주! 재밌게 잘 보는 중이야!
◆Qnxwlg6lDth 2019/07/17 00:52:59 ID : dxDAkpO2rff
주변이 괴이할 정도로 고요해지자 나도 모르게 숨을 참게 되더라. 얼마나 지났을까. 천천히 화장실 첫 번째 칸 문이 움직였어. 끼이이이이이-
◆Qnxwlg6lDth 2019/07/17 00:56:50 ID : dxDAkpO2rff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열심히 행복한 상상을 했어. 치킨, 불고기버거, 짜파게티 뭐 그런 걸 말야. 왜냐면 억지로라도 진정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큰 숨이 뱉어질 것만 같았거든. 그리고 그 사이에 두 번째 문도 움직이기 시작했지.
◆Qnxwlg6lDth 2019/07/17 00:59:22 ID : go0k1ba066j
상식적으로 이해 불가능한 상황이라 진정하기는 쉽지 않았어. 그저 억지로 입을 막고 코로 숨을 쉬는 방법 밖에 없었지. 와... 진짜 심장 엄청 빨리 뛰더라. 고막 밖으로 심장이 튀어 나와버릴 것만 같았어.
이름없음 2019/07/17 01:01:07 ID : Ai1fXvCnO4F
ㅂㄱㅇㅇ
◆Qnxwlg6lDth 2019/07/17 01:01:16 ID : go0k1ba066j
이윽고 문은 차례대로 끼익대면서 열리고 닫혔어. 그리고 내가 있는 마지막 칸 차례가 다가왔지. 나는 여전히 입을 막은 채 눈을 감았다. 차라리 눈을 감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지. ‘정말 지독한 꿈이구나’라고 되뇌이면서 말야.
◆Qnxwlg6lDth 2019/07/17 01:02:55 ID : go0k1ba066j
눈을 감고 어느 정도 기다렸을까. 분명 이쯤이면 소리가 날 법 한데도 조용했다. 나는 천천히 눈을 떴어. 그리곤 다시 질끈 감아버렸다. 닫혔던 마지막 칸은 이미 열린 상태였거든.
이름없음 2019/07/17 01:03:08 ID : Ai1fXvCnO4F
정말무서웠겠다.
◆Qnxwlg6lDth 2019/07/17 01:06:17 ID : go0k1ba066j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하지...’ 머릿 속엔 오직 저 문장만 가득 들어찼어. 그리고 다시 화장실 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열렸던 아까와는 달리 아주 과격하게 말이야. 문이 움직이는 끼익 소리와 벽에 문이 부딪히는 쾅! 턱!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어.
◆Qnxwlg6lDth 2019/07/17 01:07:36 ID : go0k1ba066j
그 소리에 맞춰서 아까 들렸던 재잘거리는 소리도 점점 커졌어. 그리고 왜인지 그 재잘거림은 서서히 비명처럼 바뀌었다.
이름없음 2019/07/17 01:07:41 ID : 2K1Cpats5Qn
ㅂㄱㅇㅇ
◆Qnxwlg6lDth 2019/07/17 01:08:12 ID : go0k1ba066j
‘아. 날 찾고 있구나. 내가 없어서 화가 난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어.
◆Qnxwlg6lDth 2019/07/17 01:09:25 ID : go0k1ba066j
그 때였어. 계단 쪽에서 다른 소리가 들려온 건. 분명한 발소리. 밑에서 누군가가 올라오고 있었다.
◆Qnxwlg6lDth 2019/07/17 01:13:47 ID : go0k1ba066j
발소리는 바로 화장실로 뛰어들어왔어. 나는 누군가가 날 데리러 왔다는 생각에 바로 눈을 떴다. 그리고 순간 문이 움직이는 소리도, 재잘거리던 소리도 멈췄어. ‘아. 진짜 누가 왔나보다’ 뭔가 찌잉하고 눈물이 나더라. 난 조심히 내려갈 준비를 했어. 누가 왔든 잔뜩 안아주리라고 생각했지.
◆Qnxwlg6lDth 2019/07/17 01:14:47 ID : go0k1ba066j
그 휘파람 소리만 아니었다면 말이야.
이름없음 2019/07/17 01:16:59 ID : VhzanDs8pat
제발 여기서 끊지 말아줘~~ 계속 얘기해줘~~~~
◆Qnxwlg6lDth 2019/07/17 01:19:13 ID : go0k1ba066j
명확한 휘파람 소리라기엔 어쩐지 바람 새는 소리가 나는 그 소리. 국화가 했던 말이 계속 맴돌았어. 휘파람은 아니라고 했던 그 말이 말야. 그리고 어쩐지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대체 뭔데 이렇게 신명나게 날 찾는지 화가 치밀어 오르더라고. 그것도 페이크에 페이크을 써가면서!
이름없음 2019/07/17 01:21:12 ID : 1imLaq47xO3
동접~^^ 보구있엉~
이름없음 2019/07/17 01:22:05 ID : 1imLaq47xO3
설마 끊긴거야?ㅜㅜ
이름없음 2019/07/17 01:22:29 ID : kqZinWjfTU2
보고있어!!
◆Qnxwlg6lDth 2019/07/17 01:22:42 ID : go0k1ba066j
그래서 난 눈을 부릅 뜨고 소리가 나는 방향을 노려봤다. 워낙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보였지만. 휘파람같은 그 쇳소리는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어.
◆Qnxwlg6lDth 2019/07/17 01:25:14 ID : go0k1ba066j
그리고 아차 싶어 무기가 될 만한 물건을 손에 꼭 쥐었다. 클클 훼어니스.. 웃기려고 하는 게 아니고 진짜 그 때 내 옆에 있는 게 그거 밖에 없었어. 그걸 들고 화장실 여기저기를 노려보고 있었지. 그 때 갑자기 큰 소리 두 개가 한 번에 들려왔어.
◆Qnxwlg6lDth 2019/07/17 01:26:56 ID : go0k1ba066j
하나는 귀 바로 옆에서 들리는 휘파람 같은 쇳소리.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나가!!!!!!!!!” 라고 외치는 국화의 목소리.
◆Qnxwlg6lDth 2019/07/17 01:29:41 ID : go0k1ba066j
찢어지는 듯한 국화의 목소리는 엄청나게 화를 내고 있었어. 나가라는 말 이외에는 잘 알아들을 수도 없을 만큼 말이야. 그래서 난 저 목소리가 국화가 맞는 걸까 의심스러웠다. 나는 수많은 소리에 지쳐있었고 그냥 눈을 감고 귀를 막는 편이 나았어.
◆Qnxwlg6lDth 2019/07/17 01:31:58 ID : go0k1ba066j
그렇게 눈을 감고 귀를 막으려던 찰나에 누군가 발목을 잡아챘어. 당연히 감은 눈은 번쩍 떠졌고, 내내 참아온 비명도 터졌지. 나는 비명을 지르면서 버둥거렸어.
이름없음 2019/07/17 01:32:21 ID : VhzanDs8pat
대박대박 그래서???
◆Qnxwlg6lDth 2019/07/17 01:34:55 ID : go0k1ba066j
“정신차려!! 숨 쉬어!! 소리 들려? 들리잖아!” 아.... 그 말을 듣고서야 알아챘다. 창 밖의 바람소리. 고장난 수도꼭지의 물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한 걸. 나는 맥이 빠져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Qnxwlg6lDth 2019/07/17 01:37:59 ID : go0k1ba066j
나는 높은 화장실 벽에서 바닥으로 무너지듯 쓰러졌다. 무르팍이 깨지듯 콰작, 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 어떤 고통조차 못느꼈어.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지. 오랜 시간 동안 물 속에서 허우적 거리다가 건져진 것 같은 그런 느낌은 말야. 국화는 그런 나를 잠시 내버려두었다가 다시 양 손을 꽉 잡았다. “나가자. 밖에 애들 기다리고 있어”
◆Qnxwlg6lDth 2019/07/17 01:39:44 ID : go0k1ba066j
바닥에 떨어질 때 잘못 착지한 모양인지 내 걸음은 확연히 느렸어. 절뚝거리는 게 영 좋은 모양새는 아니었지. 하지만 국화는 재촉도 하지 않고, 부축도 하지 않으면서 천천히 내 발걸음에 맞춰 걸었다.
이름없음 2019/07/17 01:40:19 ID : VhzanDs8pat
부축은 안해줬구나.....
◆Qnxwlg6lDth 2019/07/17 01:42:40 ID : go0k1ba066j
그렇게 운동장으로 나오자 반 아이들이 우르르 우리 주변으로 몰려왔어. 괜찮냐면서 울먹이는 아이도 있었지. 나는 아직도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어. 무슨 일이었냐는 눈빛으로 국화를 쳐다보자 또 그 복잡한 표정을 지어보이더라고.
이름없음 2019/07/17 01:44:50 ID : VhzanDs8pat
스레주 글 진짜 잘 쓴다 대박이야~~~ 잠을 잘 수가 없어.. 제발 계속 써줘 부탁이야
◆Qnxwlg6lDth 2019/07/17 01:45:02 ID : go0k1ba066j
반장은 일단 부모님께 연락을 드리라고 했다. 반 아이들도 모두 부모님께 데리러 오라고 연락을 한 모양이었어. 알겠다고 대답한 뒤에 나는 아이들에게 저리 떨어지라고 휘적휘적 손을 내저었지. 그리곤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서 핸드폰 전원을 켰어. 그 때까지 국화는 말 없이 내 옆에 앉아줬고.
◆Qnxwlg6lDth 2019/07/17 01:49:15 ID : go0k1ba066j
핸드폰 전원을 켜면서 나는 국화에게 괜찮느냐고 물었어. 국화는 굉장히 이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가 너한테 해야할 말 아니냐’고 말야. 그래서 난 어깨를 으쓱해보였어. “이 정도로 쓰러지면 험한 세상 못 산다!” 그 때 국화는 조금 웃었던 것 같아.
◆Qnxwlg6lDth 2019/07/17 01:52:11 ID : go0k1ba066j
그리곤 다시 핸드폰을 쳐다봤지. 그런데 왠 걸? 내 핸드폰은 굉장히 바쁘게 반짝이는 중이었다. 핸드폰이 꺼져있을 때 왔던 문자가 쏟아지고 있는 중이었거든. 무음이었으니 망정이지 진동이나 소리였다면 그거 나름 또 무서웠을 거다.
이름없음 2019/07/17 01:52:27 ID : VhzanDs8pat
새로고침 100번 누르고있어~~~~ 흥미진진해
◆Qnxwlg6lDth 2019/07/17 01:54:31 ID : go0k1ba066j
하지만 일단 나는 아빠에게 귀한 딸래미를 데려가라고 전화해야 했으므로 빠르게 종료키를 연타했어. 그리곤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욕을 얻어들었지. 솔직히 욕이 그 이상한 소리들보단 오조오억배 나았다.
◆Qnxwlg6lDth 2019/07/17 01:58:00 ID : go0k1ba066j
전화를 끊자 부반장이 쭈뼛대며 다가왔어. 오늘 학교에서 자는 건 힘들 것 같다면서 말야. 부모님께 전화하라고 했을 때 이미 알아챘는데 참 일찍도 말해준다 싶더라. ‘응 나도 등 폭신하고 몸 시원한 우리 집에서 자는 게 더 좋다’고 대답했다니 부반장은 뭔가 말하려다가 다시 입을 닫았어. 내 옆의 국화 눈치를 보면서 말이야.
◆Qnxwlg6lDth 2019/07/17 02:01:08 ID : go0k1ba066j
시간이 지나고 아이들은 하나 둘 씩 부모님 차에 실려 집으로 돌아갔다. 당시 우리 집은 학교에서 차로 2-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는데, 아빠가 단잠에서 막 깨어난 목소리인 것으로 미루어 보아 30분은 족히 걸릴게 뻔했지. 그 동안 나는 국화의 무릎을 베고 운동장 계단에 드러누웠다. 국화는 잠시 주춤거리다가 어색하게 내 머리칼을 쓰다듬었어.
◆Qnxwlg6lDth 2019/07/17 02:02:37 ID : go0k1ba066j
음... 뭔가 개 취급 당하는 느낌이었지. ‘진짜 이런 거 안해본 애구나’ 라는 느낌이 팍팍 드는 손길이었거든. 그래서 난 그제야 슬슬 웃었다. 국화는 그런 날 보고있다가 조심히 말을 꺼냈어.
이름없음 2019/07/17 02:05:10 ID : VhzanDs8pat
뭐라고 했는데~~~~?????
이름없음 2019/07/17 02:06:04 ID : DuoNButBuk7
했는데에~~~~???????
◆Qnxwlg6lDth 2019/07/17 02:06:25 ID : go0k1ba066j
“삼촌이래. 너희 삼촌이 알려주셨어” “응? 뭘?” “너한테 가야한다고 너희 삼촌이 뛰어오셨어” “........” “키 크고, 하늘색 줄무늬 반팔을 입고, 청바지를 입은 삼촌이...” “머리가 깨져서 날 구해달라고 하셨어?” 국화는 허공을 바라보다가 날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난 생각했지. ‘P도, S도 다 거짓말쟁이가 아니었나보네’하고.
이름없음 2019/07/17 02:09:12 ID : VhzanDs8pat
스레주~~ 부탁있어~~~ 절대 말없이 잠들지말아줘.. 기다리다가 난 밤 꼴딱 샐거같아.... 말 해주고 잠들기!!! 약속!!!!
◆Qnxwlg6lDth 2019/07/17 02:09:19 ID : go0k1ba066j
그리곤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서 팔로 눈을 가렸다. “삼촌이 포도 잘 먹었녜.....” 아.... 그리고 난 그 말을 듣자마자 엉엉 울어버렸어. 그리고 국화에게 끅끅거리며 대답했지. ‘너무 너무 맛있었다고 꼭 전해 달라고. 내가 미안하고 정말 사랑했노라고 꼭꼭 전해달라고’말야.
이름없음 2019/07/17 02:10:22 ID : Ai1fXvCnO4F
스레주.글넘잘쓴다.계속새로고침하면서보고있어~
◆Qnxwlg6lDth 2019/07/17 02:12:32 ID : go0k1ba066j
초등학교 5학년 방학이었을 거야. 나는 방학 동안 내내 할머니네 집에서 살았어. 할머니 집에 있는 동안 왠지 엄마는 볼 수 없었고, 이따금씩 아빠만 찾아와서 나를 때리시곤 했지. 그런 날이면 난 마루에 나와 잔뜩 웅크린채 꾹꾹 눈물을 참았어.
이름없음 2019/07/17 02:12:41 ID : DuoNButBuk7
찡해......
◆Qnxwlg6lDth 2019/07/17 02:14:39 ID : go0k1ba066j
그러고 있으면 언제나 택시 영업을 마친 삼촌이 와서 날 안아올려주시곤 했어. ‘우리 아이스크림 먹으러 갈까~?’ 라고 하시면서 말야. 어디가 아프냐던가, 왜 혼났냐는 말 한 번 물어본 적이 없었지. 그저 날 안고 다시 택시로 가셨어.
◆Qnxwlg6lDth 2019/07/17 02:17:10 ID : go0k1ba066j
택시에 타면 삼촌은 꼭 미터기를 누르셨다. ‘너 이렇게 비싼 택시 공짜로 타고 있는거다’ 라면서. 그럼 나는 창문을 살짝 내리고 얼굴을 말렸어. 어느 정도 다 마르면 삼촌이 꼭 내 손목을 꽉 잡으셨지. ‘이제 아이스크림 먹을까?’ 하고 웃으면서 말야.
◆Qnxwlg6lDth 2019/07/17 02:18:38 ID : go0k1ba066j
그렇게 밖에 나오면 아이스크림을 들고 공원이나 뒷산을 다니면서 데이트를 했다. 내가 맨발이라 삼촌은 꼭 날 업어주셨어. 아니면 내가 삼촌 신발을 훔쳐신고 도망가곤 했지. 아.... 생각해보니까 정말 너무 좋았었다.
◆Qnxwlg6lDth 2019/07/17 02:20:49 ID : go0k1ba066j
그런 우리 삼촌은 키크고 정말 잘생겼지만 딱 세 가지의 단점이 있었어. 하나는 담배를 줄창 피워댔던 거였고. 두 번째는 마음이 아팠던 거였고. 세 번째는 나만 믿었다는 거야.
◆Qnxwlg6lDth 2019/07/17 02:23:03 ID : go0k1ba066j
우리 예쁜 삼촌은 중증 우울증 환자였다. 오랜 시간을 정신병원에서 보내셨고, 하루도 빼지 않고 수많은 약을 드셨지. 그리고 세상에 믿을 수 있는 대상이 나 하나여서, 일주일에 한 번 병원을 갈 때면 불안할 정도로 날 찾았어.
◆Qnxwlg6lDth 2019/07/17 02:24:01 ID : go0k1ba066j
처음에는 삼촌과 지내는 게 너무 좋았지만, 친구들과 있어도 날 찾으러 오고 학원에 있어도 날 찾으러 오곤 해서 나는 슬슬 짜증을 냈었어. 그 때마다 삼촌은 늘 미안하다고만 했었다.
◆Qnxwlg6lDth 2019/07/17 02:26:01 ID : go0k1ba066j
그리고 삼촌이 이따금씩마다 하는 행위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자살하겠다고 하는 거였어. 나는 할머니 집에서 지내는 동안 그런 장면을 수도 없이 봐왔지. 그 때마다 할머니는 허겁지겁 시장에서 집으로 뛰어오셨고, 나는 그런 할머니와 삼촌을 찾으러 가곤 했어.
◆Qnxwlg6lDth 2019/07/17 02:27:56 ID : go0k1ba066j
그리고 그 날도 마찬가지였지. 선풍기를 틀고 대자리에 누워서 늘어져라 낮잠을 자고 있었던 그 날말이야. 삼촌은 우당탕탕 집에 들어와서 또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어. 높은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겠다면서. 나는 ‘아휴, 또 그러네 삼촌’ 하고 다시 잠들었어.
◆Qnxwlg6lDth 2019/07/17 02:30:45 ID : go0k1ba066j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가 집에 오셨고 나를 깨우셨지. 이 근처에 아파트가 어디에 있냐고 하셨어. 나는 졸린 눈을 비비고 할머니랑 같이 할머니집 옥상에 올라갔다. 옥상에서 보이는 아파트 하나. 그건 동네의 유일한 아파트였어. 나는 그 아파트를 가리키며 말했지. “동네에 아파트라곤 저거밖에 없는데 옥상이 열려있을리도 없고, 계단에 있는 저 쪼그만 창문으로는 머리도 못 들이밀어요. 그렇다고 가정집에 나 죽을테니 문 열어달라고 할 수도 없잖아요. 별 일 없을거예요” 할머니는 내 말을 듣고 다시 시장으로 돌아가셨어.
◆Qnxwlg6lDth 2019/07/17 02:31:23 ID : go0k1ba066j
그리고 그 날 우리 삼촌은 돌아가셨다.
◆Qnxwlg6lDth 2019/07/17 02:32:34 ID : go0k1ba066j
늘 입으시던 청바지와 파란 줄무늬 반팔 차림으로 늘 다니던 동네에서 늘 믿었던 조카를 두고 그렇게 가버리신거야.
이름없음 2019/07/17 02:34:32 ID : vhgrthgi8qn
아..ㅠㅜ
◆Qnxwlg6lDth 2019/07/17 02:35:29 ID : go0k1ba066j
나는 그 뒤로 한 동안 아빠에게 심한 매질을 당했다. 살인자라는 말을 들으면서 말이야. 나는 그 매질을 참다 못해 삼촌이 떨어졌던 그 아파트로 향했지. 옥상 문이 참 어이없이 쉽게 열리더라. 그리고 난 그 옥상에서 주저앉아 하염없이 또 울었어. 그 아파트 옥상에서 할머니집 옥상이 너무 잘 보이는 거야. 삼촌은 옥상에서 나랑 할머니가 오길 기다리셨을지도 몰라.
이름없음 2019/07/17 02:35:39 ID : vhgrthgi8qn
레주가 많이 힘들었겠구나...
이름없음 2019/07/17 02:38:43 ID : vhgrthgi8qn
아니 어린애가 뭘 안다고 하...진짜!!!!
◆Qnxwlg6lDth 2019/07/17 02:39:07 ID : go0k1ba066j
그리고 시간이 흘러 49제 날이 다가왔어. 처음 가는 동네에 처음 가는 집에서 제사를 지내게 됐지. 지금 생각해보면 산 속의 무당집 비슷한 곳이었던 것 같아. 그리고 나는 예나 지금이나 꽤 삐뚤어진 성격이라 이런 건 다 거짓말이라고 그 집에 들어가지 않았어.
◆Qnxwlg6lDth 2019/07/17 02:41:20 ID : go0k1ba066j
그래서 그 앞 개천에서 동생과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 그 때 저 멀리서 한 아주머니가 급하게 뛰어나오시더라. 헉헉 거리며 숨을 내쉰 아주머니는 삼촌이 우릴 찾는다고 하셨어. 그 이야기를 듣고 짜증이 났지만 어린 초등학생이 무슨 힘이 있겠어? 오라면 와야지 뭘.
◆Qnxwlg6lDth 2019/07/17 02:43:50 ID : go0k1ba066j
내가 아주머니 손에 이끌려 집안에 들어오는 순간 갑자기 조용해졌어. 꽹과리다 징이다 다들 시끄럽게 연주하고 있었는데, 내가 들어오자마자 쿵쿵 뛰던 무당 아줌마가 연주를 멈추라고 한 거야. 어른들 모두 날 바라보고 있어서 순간 이상하게 겁이 났던 게 기억나.
◆Qnxwlg6lDth 2019/07/17 02:45:32 ID : go0k1ba066j
무섭게 화장을 하고 있었던 무당 아줌마는 날 향해 달려왔어. 나는 뱀 앞의 개구리처럼 꼼짝없이 얼어붙었지. 무당 아줌마는 나를 껴안더니 얼굴을 요리조리 돌려보기 시작했어.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Qnxwlg6lDth 2019/07/17 02:48:49 ID : go0k1ba066j
“아이스크림 먹으러 갈까?” 라고. 나는 순간 울컥 했지만 참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무당아줌마는 안절부절 못하다가 갑자기 봉다리를 달라고 소리쳤어. 날 데려왔던 아주머니가 급하게 커다란 비닐봉지를 건네주셨지. 그랬더니 제삿상 위에 있는 포도를 잔뜩 쓸어서 봉투에 채우는 거야. 와장창거리는 소리가 무서워서 나는 딸꾹질을 했어.
◆Qnxwlg6lDth 2019/07/17 02:52:12 ID : go0k1ba066j
그리곤 헉헉대면서 포도와 다른 과일들을 잔뜩 채운 봉투를 내게 내밀었다. “포도 좋아하지 우리 아기. 달아 이거” 나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또 울었어. 그리고 꾸역꾸역 그 과일을 먹었다. 정말 너무 달더라. 그 와중에 무당은 또 비닐을 달라고 해서 사과 하나와 귤 하나를 담아서 내 동생에게 건넸어. “너는 내가 뭘 좋아하는 지 몰라. 그리고 너도 알겠지만 나는 느이 언니를 훨씬 좋아하니까 이거만 받아라” 라고 하면서.
◆Qnxwlg6lDth 2019/07/17 02:54:46 ID : go0k1ba066j
그리곤 무당은 제삿상에 놓인 담배를 물어 불을 붙였다. 한 두어모금 빨더니 인상을 찌푸리고 담배를 끄더라고. 그러면서 우리 고모를 찾았어. “어이 미자야. 에쎄 순 말고 라이트로 사온나” 아 정말 우리 삼촌이구나. 우리 삼촌이 저 아줌마 몸 속에 있나보구나. 나는 확신했지.
◆Qnxwlg6lDth 2019/07/17 02:56:28 ID : go0k1ba066j
나는 삼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너무너무 많았어. 그 날 나를 보고 있었느냐고. 원망스럽지는 않았냐고. 내가 사랑한다고 말해본 적이 없어서 너무 미안하다고. 이제라도 가지 않고 내 옆에 있어주면 안되냐고. 하지만 겁먹은 초등학생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 그저 ‘가지마 삼촌. 나 무서워’라고 칭얼거리는 것 밖에는.
◆Qnxwlg6lDth 2019/07/17 02:58:00 ID : go0k1ba066j
그런 삼촌을 국화가 보고있었던 거야. 여전히 바보같을 정도로 나만 좋아하는 우리 삼촌을. 가지 말랬다고 정말 안 가고 내 옆에 있는 소중한 우리 삼촌을....
◆Qnxwlg6lDth 2019/07/17 03:01:36 ID : go0k1ba066j
국화는 끅끅거리며 우는 내 머리를 한참이나 쓰다듬어줬어. 그리곤 다시 입을 떼서 천천히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Qnxwlg6lDth 2019/07/17 03:07:14 ID : go0k1ba066j
처음 우리가 동그랗게 앉아서 무서운 이야기를 시작할 때, 국화는 사방으로 뻗혀있는 아이들의 그림자를 향해 휘적거리는 손들을 봤대. 그림자가 뻗은 벽을 긁고 허우적 대는 길고 마른 손들을. 그래서 국화는 내게 부탁했대. 촛불을 네 귀퉁이에 켜달라고 말이야.
◆Qnxwlg6lDth 2019/07/17 03:13:36 ID : go0k1ba066j
휴... 시간도 늦었고 오늘은 이만 갈게. 원래는 좀 더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만 오랜만에 삼촌을 떠올렸더니 꽤 눈물이 나서 피곤해졌다. 내일은 오후에 돌아올게.
◆Qnxwlg6lDth 2019/07/17 03:14:18 ID : go0k1ba066j
오늘 밤 내가 삼촌 꿈을 꿀 수 있길 바라줘. 조금 이따 다시 만나자.
이름없음 2019/07/17 03:20:15 ID : huoNtikljAp
ㅂㄱㅇㅇ!!
이름없음 2019/07/17 04:01:17 ID : 4ZcqZfO8lB9
보고 있어. 잘 자. 삼촌이랑 같이 있을 예쁜 꿈 꾸길 바랄게.
이름없음 2019/07/17 10:24:30 ID : DwFeGr9jwHC
아이구..나도 읽으면서 찡해지네ㅠㅠ 스레주도 맘고생 많이 했겠다 지금 쯤은 일어났으려나..?
이름없음 2019/07/17 10:25:28 ID : CmK7vxxxyHz
동접이다
이름없음 2019/07/17 10:42:17 ID : ldBgnU7zbwt
ㅂㄱㅇㅇ
이름없음 2019/07/17 12:34:14 ID : A3WkoGq2Fdu
진짜 슬프다 삼촌 그냥 슬프단 말 밖에 안나와 눈물날 거 같아
이름없음 2019/07/17 22:31:26 ID : VhzanDs8pat
스레주 언제와??? 오늘도 이야기 들을 준비가 되어있어!!!
이름없음 2019/07/18 01:57:34 ID : 41A2LhzbBeZ
아아아ㅠㅠ 레주 언제와
2019/07/18 09:46:17 ID : coMlCoY9s9t
언제와 ㅠㅠ
2019/07/18 23:43:53 ID : qrs8klg6p82
우아 ㅠㅠ
이름없음 2019/07/19 14:47:05 ID : uty41u08pbC
언제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궁금해
이름없음 2019/07/19 15:40:25 ID : hf9g1AZcoKY
스래주 빨리와 왜 안올까. .
이름없음 2019/07/19 16:58:04 ID : VhzanDs8pat
스레주야~~~~ 이제 그만 돌아오렴!!!! 이야기가 너무 듣고싶어
이름없음 2019/07/19 19:06:29 ID : JRxzTO4IJO1
레주 기다리고 있어~!
이름없음 2019/07/19 20:00:57 ID : 2r9bg40lilD
스레주 제발. .
◆Qnxwlg6lDth 2019/07/19 20:31:21 ID : nO08rzgnXvC
너무 오랜 시간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다들. 일이 생겨서 좀 늦었다. 아마 오늘도 금방 가야할 것 같아. 그래도 가기 전까지 최대한 이야기해볼게.
이름없음 2019/07/19 20:37:59 ID : Qttg0oMqoZj
오 동접인가
◆Qnxwlg6lDth 2019/07/19 20:38:46 ID : nO08rzgnXvC
촛불을 교실 네 귀퉁이에 켰던 이후의 이야기야. 국화는 불을 켜는 중에 다시 벽과 천장을 훑어봤대. 그랬더니 그 앙상하고 긴 손들이 괴이한 소리를 내면서 녹듯이 없어지더라는 거야. 마치 바닥과 벽 사이에 빨려들어가듯 사라졌다고 하더라. 그리고 뭔가 ‘지지배배’거리는 소리만 남았다고 했어. 국화가 처음 아주 정확한 딕션으로 ‘지지배배’라고 했을 때는 ‘엥? 제비...?’ 뭐 이런 생각이 불쑥 들어 우습기도 했지만, 이내 실제 소리를 묘사하는 것을 듣고 나는 굳을 수 밖에 없었다. 국화가 묘사한 그 소리는 떠드는 것 같기도 하고, 속삭이는 것 같기도 했던 그 묘한 재잘거림이었어.
◆Qnxwlg6lDth 2019/07/19 20:43:15 ID : KZbeJWi2sks
순간 내가 움찔거리기라도 했는지 국화는 말을 멈추곤 날 바라봤다. 아무 말 없었지만 왠지 나를 걱정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괜찮다고 부디 계속 이야기 해달라 부탁했지. 국화는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어.
이름없음 2019/07/19 20:51:50 ID : vwqZba6Y5Ve
동접이다! 너무 재밌어ㅠㅠㅠ
◆Qnxwlg6lDth 2019/07/19 20:53:09 ID : cK43RwrcLgq
“애들이 각자 준비해온 이야기 있었잖아. 귀신 이야기.”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국화는 함께 고개를 끄덕인 후에 말을 이어갔지. 한참 아이들이 이야기를 하던 그 때. 국화는 많은 것들이 교실 근처로 모여드는 걸 보고 있었대. 그 많은 것들은 아이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또 그저 지나다니기도 했다는 거야. 그리고 어느 순간에 자신의 등 뒤에 다가선 그 아이를 느꼈대.
◆Qnxwlg6lDth 2019/07/19 21:00:50 ID : cK43RwrcLgq
국화는 손톱 근처의 거스러미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리듯 말했어. “음... 믿을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오랜 시간 동안 그 아이를 만나왔어” 라고 말이야. 그리곤 그 아이에 대해 조금은 두서 없이 설명해줬지.
◆Qnxwlg6lDth 2019/07/19 21:13:23 ID : cK43RwrcLgq
그 두서없던 설명을 대충 정리해보자면 이래. 국화는 어린 시절부터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봐왔는데, 그걸 막고자 어머니가 대신 내림을 받으셨다고 하더라. 한 동안은 별 이상이 없었기에 ‘됐다’라고 생각했대.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전과는 다른 형태의 ‘이상한 것’들이 보였던 모양이야. “거꾸로 걷는 사람 같은 거 말이야. 나중에야 알았지. 곧 죽을 사람이 그렇게 보인다는 건” 나는 국화를 괴롭혔다던 그 선배가 떠올라 어쩐지 오싹해졌다. 물구나무를 선다는 건지, 문워크를 한다는 건지 알 순 없었지만 자세하게 물어보기에는 내 담이 너무 작았어.
◆Qnxwlg6lDth 2019/07/19 21:16:49 ID : cK43RwrcLgq
그리고 그 때 쯤 그 아이가 보이기 시작했대. 이전에는 이따금씩 꼬마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정도였지만 그 날 그 아이를 직접 마주해버렸고, 그 이후로 국화의 어머니가 아주 바빠지셨다고 했다. 이 과정을 이야기하는 게 고통스러웠는지 국화는 자세히 말해주진 않았어. 대충 문맥상으로는 예의 ‘그 아이’가 국화가 받아들여야 하는 대상이라고만 파악할 수 있었지.
◆Qnxwlg6lDth 2019/07/19 21:24:58 ID : cK43RwrcLgq
그 후로 국화는 외출이 꽤 괴롭게 느껴졌대. 땅거미가 질 무렵부터는 그저 방 안에 콕 박혀있어야만 했다고 했다. ‘답답했겠다...’라는 내 말에 국화는 고개를 갸웃거렸어. 어쩐지 자주 피곤해지고, 몸이 아파와서 별 생각도 안 들었다더라.
◆Qnxwlg6lDth 2019/07/19 21:30:42 ID : cK43RwrcLgq
“왜냐면 나는 그 아이로부터 도망치고 싶었거든. 답답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지만 만약 답답했더라도 버텼을거야.” 그렇게 말하곤 국화는 굉장히 씁쓸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리고 그게 국화가 처음으로 진심을 꺼내보인 말이었어. 멍청한 내가 너무 늦게 알아채버렸지만....
◆Qnxwlg6lDth 2019/07/19 21:39:02 ID : cK43RwrcLgq
휴... 다시 단합대회로 돌아가볼게. 국화가 무서운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그 아이’를 느꼈던 그 순간으로. 국화는 그 아이의 존재를 느끼고 얼마 지나지않아 엄청난 어지러움을 느꼈대. 매스껍고 울렁이고 아주 차갑고 아주 뜨거웠다고 했어. 그리고 사방이 고요해졌을 때, 몸이 이질적으로 움직이는 걸 느꼈는데 놀랄 틈도 없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말이 나오더라는 거야. 그런 이야기보단 실제 귀신이 더 무섭지 않냐는 둥, 나머지는 원래 여기 있는 것 같다는 둥.... 우리가 들었던 그 말 말이야.
◆Qnxwlg6lDth 2019/07/19 21:47:57 ID : cK43RwrcLgq
국화는 필사적으로 정신을 잡고 있었대. 왠지 여기서 지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야. 그리고 여전히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복도에서 못 들어오는 머리가 부서진 아저씨’에 대한 말을 입에서 뱉었고, 그 순간 그 아저씨의 형체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걸 봤대. ‘아... 못 들어오는 게 아니라 안 들어오는 거였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국화는 다가올 고통을 예감하며 눈을 감았다고 했다.
◆Qnxwlg6lDth 2019/07/19 21:58:46 ID : cK43RwrcLgq
하지만 국화는 눈을 감자마자 다시 뜰 수 밖에 없었대. 그 아저씨가 국화의 손에 자신의 손을 겹쳐서 내 손목을 꽉 잡아챘기 때문이지. 전혀 예상조차 못했던 일이라 국화는 살짝 놀랐다더라. 하지만 어쩐지 꽤 애뜻한 감정이 전해져서 싫진 않았대. 그리고 그 사이에 ‘아이’는 사라져 있었다고 했어.
◆Qnxwlg6lDth 2019/07/19 22:01:02 ID : cK43RwrcLgq
아 이제 다시 가봐야겠다. 새벽에 돌아올 수 있으면 다시 올게. 다들 기다려줘서 고마워.
이름없음 2019/07/19 22:23:27 ID : VhzanDs8pat
빨리와 스레주~~~~ 기다리고 있을께
이름없음 2019/07/19 22:39:44 ID : 0re6rAnO4Nu
쓰느라 고생한당,, 다시 생각하면 힘들텐데. 정말 고마워 스레주 !!
이름없음 2019/07/20 00:01:56 ID : A3WkoGq2Fdu
웅ㅇ웅
이름없음 2019/07/20 00:09:22 ID : xyFcpSIMo5g
삼촌얘기보면서 울었다ㅜㅜ
이름없음 2019/07/20 11:02:56 ID : K6i8krhBs4N
슬프네..
이름없음 2019/07/20 11:24:38 ID : 3XzhwHxwts2
세상에 삼촌얘기 보면서 눈물질질짰다 진짜ㅠㅠㅠㅠ
이름없음 2019/07/21 15:37:28 ID : VhzanDs8pat
스레주 언제와. 오늘은 올거지?
◆Qnxwlg6lDth 2019/07/22 01:56:48 ID : mqZjBtfTU41
요 사이에 갑자기 바빠진 터라 늦었어.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까 했는데 있었구나. 기다리게해서 미안해.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내일 낮에 다시 올게. 다들 잘 자고 좋은 꿈 꾸길 바라
이름없음 2019/07/22 08:44:49 ID : K6i8krhBs4N
기다릴게!
이름없음 2019/07/22 10:07:14 ID : 4JWoY2mmmnv
레주ㅠㅠ 보고싶었엉ㅠㅠ
이름없음 2019/07/23 13:11:40 ID : DxSGtyZdB83
어서돌아와줘ㅠㅠ
이름없음 2019/07/23 21:27:10 ID : PeFcrhumoGt
tmi인데 맞춤법 정확해서 읽는 게 너무 편해...잘 읽고 있어
이름없음 2019/07/23 22:17:25 ID : VhzanDs8pat
언제와 스레주~~~ 낮에 온다고 했자나.... ㅠㅠ
이름없음 2019/07/24 15:11:38 ID : VhzanDs8pat
스레주 언제와???.
이름없음 2019/07/24 20:50:44 ID : A3WkoGq2Fdu
이름없음 2019/07/25 18:32:36 ID : 5cINBy7utvv
스레주 늦더라도 괜찮으니까 와주라ㅠ
이름없음 2019/07/26 20:58:09 ID : vwqZba6Y5Ve
스레주 언제 와...ㅠㅠ
이름없음 2019/07/27 11:44:27 ID : lu9tbcnA7uo
일단 8일 지났으니까 스탑 걸께..
이름없음 2019/07/27 15:14:21 ID : 6rzhzareZdC
스레주..ㅠㅠ 언제와아아
이름없음 2019/07/27 17:50:20 ID : ktwJU7vA47w
스레주ㅠㅠㅠ
이름없음 2019/07/28 06:26:52 ID : 41A2LhzbBeZ
아 스레주 ㅠㅠ
이름없음 2019/07/28 14:53:15 ID : xDBxPjwIGoK
레주,,,,,,돌아와,,,,
이름없음 2019/08/06 22:35:42 ID : VhzanDs8pat
레주 안돌아옴???
이름없음 2019/08/08 22:13:41 ID : Fcq5gry0tBu
스레쥬 ... 갱신이야... 얼른와줘 제발...
이름없음 2019/08/08 22:14:49 ID : 3XzhwHxwts2
스레주 어디갔어ㅠㅠㅠ
이름없음 2019/08/09 00:43:24 ID : 41A2LhzbBeZ
레주 ㅜㅜㅜㅜ현생이 많이바쁜거니
이름없음 2019/08/09 01:43:57 ID : Qr88o5hBBs3
기다리고 있어!
이름없음 2019/08/09 13:42:55 ID : cHwljvva2sk
스레주 기다리고 있어 얼른 와!ㅜㅜ
이름없음 2019/08/09 13:44:43 ID : Piqlu8i1g1u
1
이름없음 2019/08/09 13:44:48 ID : Piqlu8i1g1u
2
이름없음 2019/08/09 13:44:51 ID : Piqlu8i1g1u
3
이름없음 2019/08/09 13:44:55 ID : Piqlu8i1g1u
.
이름없음 2019/08/09 22:21:28 ID : jdyK0nvbbjB
스래주잠수면 갱신하지말자
이름없음 2019/08/11 20:17:25 ID : Fcq5gry0tBu
스레주 안와 ?? 내용 까먹을 거같에..
이름없음 2019/08/17 22:09:44 ID : A3WkoGq2Fdu
ㅠㅜ
이름없음 2019/09/13 00:32:19 ID : wttfU5cFa65
왜안와 스레주ㅠㅠ
이름없음 2019/09/13 00:42:48 ID : 3vhhwHyMrxT
스레주!!! 어딨어
이름없음 2019/09/14 16:42:09 ID : k4Hu5Vglu3u
스레주ㅠㅠ
◆Qnxwlg6lDth 2019/09/26 03:04:19 ID : Qre3O2smIHy
오랜만이야. 사정이 생겨서 못왔었어. 앞으로 조금씩이라도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볼까 해.
이름없음 2019/09/26 03:04:34 ID : gY01hdSIHA1
헐 동접이라니
◆Qnxwlg6lDth 2019/09/26 03:06:08 ID : Qre3O2smIHy
음... 그럼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볼까? 국화에게 ‘그 아이’가 들어오고, 우리 삼촌이 국화 손을 통해 내 손목을 꽉 쥐었던 그 때로 말야.
◆Qnxwlg6lDth 2019/09/26 03:08:41 ID : Qre3O2smIHy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아이는 사라져있었고, 국화는 밀려오는 피로감에 순간 아찔해졌다고 해. 그래도 최대한 정신을 잡고 꾹 참았대. 갑자기 잠이 해일 마냥 덮쳐오는데도 무의식중에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하더라.
◆Qnxwlg6lDth 2019/09/26 03:10:54 ID : Qre3O2smIHy
얼마나 지났을까. 국화는 그 시간조차 짐작이 가지 않는다고 했어. 다만 내가 몸을 흔들고 말을 걸어서 어렴풋이 정신이 들었대.
◆Qnxwlg6lDth 2019/09/26 03:15:53 ID : Qre3O2smIHy
그리고 그 애는 꽤 어지러워서 내가 정확히 무슨 말을 하는 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간다’는 말만은 이해했던 모양이야. 그리고 내가 한 그 말을 이해하고 나자 문득, 쇳소리 같기도 하고 호루라기 소리같기도 한 섬뜩하고 괴이한 소리가 들리더래.
◆Qnxwlg6lDth 2019/09/26 03:19:10 ID : Qre3O2smIHy
어쩐지 불안해진 국화는 나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 것만 같았대. 그래서 허겁지겁 말을 하려고 했는데, 순간 파란 줄무늬 반팔을 입은 그 아저씨가 보였다는거야. 그래. 맞아. 국화는 그 순간에 우리 삼촌을 다시 발견하게 된거지.
◆Qnxwlg6lDth 2019/09/26 03:22:21 ID : Qre3O2smIHy
국화가 발견한 삼촌은 입에 검지손가락을 세우고 있었다고 해. 알지? ‘쉿!’하면서 입에 손가락을 세우는 그 동작 말야. 그걸 보고 국화는 고민에 빠졌대. 물론 이 말을 들은 나는 국화가 ‘말할까 말까’로 고민한다고 생각했었다.
◆Qnxwlg6lDth 2019/09/26 03:23:47 ID : Qre3O2smIHy
뭐 아무튼 국화가 그렇게 안절부절 못하고 있을 때, 내가 그 애에게 밖으로 나갈 것을 제안한 거였어. 그렇게 우리는 쪼르르 후관으로 갔던 거야.
◆Qnxwlg6lDth 2019/09/26 03:26:28 ID : Qre3O2smIHy
후관으로 나오자마자 국화는 눈을 굴려 우리 삼촌을 찾았다고 해. 그리고 예상보다 쉽게 발견한 우리 삼촌은, 아까와는 달리 그저 반듯이 서있을 뿐이었다고 했어. 그제서야 국화는 내게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대.
◆Qnxwlg6lDth 2019/09/26 03:30:24 ID : Qre3O2smIHy
“오래 쭈그려 앉아있다 보면 다리가 저리잖아.” 국화는 갑자기 뜬금 없는 말을 꺼냈다.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던 나는 순간 당황해서 맥이 조금 풀렸지만,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끄덕였어. ‘뭐 그렇지?’라고 말하면서 말야. 내 대답을 듣고도 잠시 말없이 있던 국화는 곧 이야기를 다시 이어나갔어.
◆Qnxwlg6lDth 2019/09/26 03:39:11 ID : Qre3O2smIHy
“그렇게 다리가 저린 상태에서 갑자기 일어나 달리는 건 힘들겠지?” ‘엥?’이란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국화가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싶은 모양이라고 짐작한 나는 전보다 조금 더 성의있게 대답했지. “음... 그렇지. 걷는 것도 고사하고, 일어서는 것도 쉽지 않잖아.” 국화는 이번 대답이 마음이 들었던 건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런 국화를 바라보다가 주머니에서 고무줄을 꺼내서 조용히 머리를 묶어줬어. 무슨 엄청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걍 그 상황에서 긴머리가 출렁대니까 어쩐지 좀 거북해서 말야. (응. 이제야 말하는 거지만 쪼꼼 무서웠어. 많이는 아니고 쪼꼼...)
◆Qnxwlg6lDth 2019/09/26 03:47:32 ID : Qre3O2smIHy
싫지는 않은지 국화는 얌전히 제 머리칼을 내어주며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딱 그랬어. 한참을 억눌려있다 뛰려니 힘들었던 거지. 그래서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었어.” 명확한 말은 아니었지만 이해하기에는 충분한 말이었어. 갑자기 자신이 겪은 상황을 말로 설명하려니 힘들었다는 뜻이었겠지. 그리고 새삼 이 상황에서도, 그렇게 빙빙 돌려 설명해주는 국화가 고마워졌다. 설명도 딱 국화답다는 생각이 들어서 웃음이 났거든. 덕분에 이 달밤, 낡고 오래된 학교 운동장에서 으스스한 이야기를 하는데도 그리 소름끼치거나 싫진 않았어.
◆Qnxwlg6lDth 2019/09/26 03:52:19 ID : Qre3O2smIHy
뭐.... 그렇게 국화는 쭈그려있다가 뛰려고 시도한 사람처럼, 버벅이며 말을 토해내게 됐대. 제 스스로도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였기에 속으로는 꽤 당황했었다고 하더라.
◆Qnxwlg6lDth 2019/09/26 03:58:40 ID : Qre3O2smIHy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들은 내가 “다 안다” 라고 대답을 하기에, 국화는 ‘그래. 얘도 그럴 만한데 이미 다 봤을 수도 있지’ 라고 생각했다더라. 나는 여기까지 듣고 바로 ‘그럴 만하다는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지만 국화는 그에 대한 대답해주지 않았어. ‘아직은 그 걸 알 필요가 없다’면서 말야.
◆Qnxwlg6lDth 2019/09/26 04:02:01 ID : Qre3O2smIHy
내 질문을 단칼에 무시한 국화는 기억을 더듬는 듯, 잠시 멈춰있다가 말을 이었다.
◆Qnxwlg6lDth 2019/09/26 04:04:05 ID : Qre3O2smIHy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다들 잘 쉬고, 다음 이야기를 할 때 다시 만나자. 다시 한 번 오랜 시간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단 말을 하고 싶어. 미안하고. 그 동안 기다려줘서 참 고마워.
이름없음 2019/09/26 04:51:05 ID : ZhbwmsnXvvh
너무잼있어서몰입된다..그.국화란친구는지금뭐하고사는지알아?
이름없음 2019/09/26 07:25:26 ID : QrbzTPjBwGl
ㅂㄱㅇㅇ... 스레주 드디어 돌아왔구나ㅠㅠ
이름없음 2019/09/26 11:54:25 ID : oY03veL9hcL
국화가 무탈했음좋겠어 여기서라도 사람들이 레주랑 국화생각하는마음이 모여서 앞으로더더잘살았으면좋겠어 이야기의 끝은모르지만 국화는 잘아니까 레주의마음도 다알고있을거야 기다리구잇을게 레주~
이름없음 2019/10/01 10:52:56 ID : wnyHBcNwJVh
레주언제와아.........
◆Qnxwlg6lDth 2019/10/04 21:00:48 ID : gqqjclck3zS
돌아왔어. 사설은 짧게 하고 바로 이야기를 이어볼게.
◆Qnxwlg6lDth 2019/10/04 21:03:51 ID : gqqjclck3zS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을 전달해야 한다는 걸 생각해냈지.” 내가 그 소리를 듣고 고개를 갸웃거리자, 국화는 아주 작게 속삭이듯 말을 뱉었어. “...휘파람 말야.”
◆Qnxwlg6lDth 2019/10/04 21:05:52 ID : gqqjclck3zS
휘파람. 그 별 것 아닌 세 글자에 갑자기 소름이 오소소 올라왔어. 방금 전 화장실에서 들었던 그 소리. 쇳소리처럼 나던 그 소리가 귓가에 다시 들려오는 것만 같았거든.
이름없음 2019/10/04 21:06:55 ID : WqjfV9jy1xw
와!!! ㄷㅈ!!!! ㅂㄱㅇㅇ!!!
◆Qnxwlg6lDth 2019/10/04 21:08:35 ID : gqqjclck3zS
나는 짐짓 괜찮은 척 껄껄 웃었다. 괜히 팔을 들춰올리며 큰 소리치면서 말야. “와!! 소름!!! 나 팔 봐!! 완전 생닭같지 않냐?” 국화는 살짝 구기고 있던 미간을 펴고 슬핏 웃었어. 그리곤 이내 그 웃음을 지우고 이야기를 이어갔지.
◆Qnxwlg6lDth 2019/10/04 21:10:58 ID : gqqjclck3zS
“그래서 바로 네게 말해주려고 했어. 휘파람.... 그 소리를 조심하라고 말야.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어.” “응? 왜?” 멍청하리만큼 명랑한 내 질문에 국화는 숨을 크게 쉬었다가 다시 뱉어냈다. “아저씨의 손 모양이 바뀌었거든.”
◆Qnxwlg6lDth 2019/10/04 21:14:27 ID : gqqjclck3zS
‘아저씨? 아... 우리 삼촌을 말하는 거구나’ 란 생각을 하면서 나는 말없이 국화를 쳐다봤어. 어쩐지 입 한 구석이 쓴 것처럼 느껴져 살짝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야. 그러자 국화는 내 생각이라도 읽은 듯 내가 다른 생각 하지 못하게 쉼없이 말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Qnxwlg6lDth 2019/10/04 21:18:03 ID : gqqjclck3zS
국화 말에 따르면, 우리 삼촌의 손모양이 어느새 달라져 있었다고 했어. 손가락질 하는 모양새로 말야. 그리고 그 손가락은 우리가 빠져나온 구관의 중앙 현관을 향해있었대. 그 중앙 현관은 나와 국화가 대화 중이던 곳에서 불과 3-4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지.
◆Qnxwlg6lDth 2019/10/04 21:21:01 ID : gqqjclck3zS
‘뭘 가르키고 있는 거지?’라고 생각하던 찰나. 국화의 귀에는 다시 그 쇳소리같은 휘파람소리가 들려왔대. 그걸 듣고 자기도 모르게 몸이 조금씩 굳어오는 것만 같았다더라.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 휘파람에 대해서 경고하려던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해. ‘이 곳에서 말을 해선 안된다’고 판단한거지.
◆Qnxwlg6lDth 2019/10/04 21:24:45 ID : gqqjclck3zS
그래서 국화는 내게 같이 가자고 했던거야. 물론 나야 아무 생각 없었지만. 그렇게 내가 반장과 국화의 향후 거처에 대해 의논하던 그 때. (사실 뭐 의논이랄 것도 없이 통보에 가까웠지만) 국화는 점점 커지고 멀어지는 그 소리에 슬슬 머리가 아파왔다고 해. 그리고 인상을 찌푸리려던 순간, 우리 삼촌을 보고 꽤 놀랐다더라.
◆Qnxwlg6lDth 2019/10/04 21:27:37 ID : gqqjclck3zS
“이렇게 하고 있었... 아니 계셨거든.” 황급히 우리 삼촌에 대한 어미를 존댓말로 수정한 국화는 손을 들어올려 빙빙 돌려보였어. 머리에 대고 빙글빙글 손을 돌리는 게 아니라 하늘로 손가락 끝을 향하게 해서 말야. (유 해드 빙빙? 이거 아니야.)
이름없음 2019/10/04 21:28:36 ID : GtzcFhhBy3V
보고있어!
이름없음 2019/10/04 21:30:45 ID : rwJPdvijclj
ㅂㄱㅇㅇ 동접 너무 반가어 ㅠㅜㅠㅠ
◆Qnxwlg6lDth 2019/10/04 21:32:20 ID : gqqjclck3zS
그걸 본 국화는 순간 무언가로 머리를 맞은 것만 같았대. 맞아. 삼촌의 손가락은 그 ‘휘파람’에게 향하고 있는 거였어. 국화가 볼 수 없었던 걸 우리 삼촌이 보고있었던 거지. 그리고 떠올렸대. 처음 삼촌이 취했던 그 동작을 말야. 왜, 그 ‘쉿’이라고 하면서 만드는 그 손동작.
◆Qnxwlg6lDth 2019/10/04 21:35:10 ID : gqqjclck3zS
“그걸 ‘조용히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서 참 다행이었어. 아저씨는 ‘그 것이 이 위에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으신 거였지만.” “왜 다행이야. 그게?” 국화는 내 질문듣고 꽤 멍해졌다. 그리고 이내 몸을 부르르 떠는 것만 같았어.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말을 꺼낼 뻔 했던 거잖아.”
◆Qnxwlg6lDth 2019/10/04 21:38:00 ID : gqqjclck3zS
그걸 들은 나는 ‘그래서 그게 뭐 어쨌는데!!!!!!!!!!!!!’ 라고 소리라도 빽 지르고 싶을 만큼 속이 답답했지만, 필사의 노력으로 꾹꾹 눌러 삼켰다. 어쩐지 그러면 안될 것 같았거든. 그리곤 그냥 나 좋을대로 이해했지. ‘하긴. 누구 앞에다 놓고 조심하라고 욕하면 기분나쁘겠지 뭐.’ 대충 이런 식으로 말야.
◆Qnxwlg6lDth 2019/10/04 21:43:18 ID : gqqjclck3zS
“그래서 내가 널 따라 나선 거였고, 눈치를 보다가 아저씨가 더이상 손가락을 들어올리지 않으실 때 말한거야. 그 것이 널 따라다니는 것 같고, 몹시 위험한 것이니 조심하라고.” 국화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지. 그리고 난 그 반짝이는 눈을 보면서 생각했다. ‘그런 말 처음 들어....대체 언제 그렇게 말했어 니가........’
◆Qnxwlg6lDth 2019/10/04 21:45:01 ID : gqqjclck3zS
내가 들은 건 겨우 ‘휘파람 그거 ㄴㄴ야’ 뭐 이정도 소리였는데, 그렇게 엄청난 의미가 숨어있었다니 아주 놀라웠지. (고전 시가 해석본 본 느낌...... 뭔지 알지?)
이름없음 2019/10/04 21:47:44 ID : GtzcFhhBy3V
아니..ㅋㅋㅋㅋ 고전시가
◆Qnxwlg6lDth 2019/10/04 21:51:38 ID : gqqjclck3zS
그 후로는 뭐 내 이야기랑 비슷했어. 담력훈련이 시작되고, 아이들이 차례차례 교실과 화장실로 향했던 것 말야. 아, 이건 좀 사설이긴 한데, 국화한테 그 동안 뭘 하고 있었냐고 물어봤었거든? 그랬더니 쭈그려 있다가 다리가 저려서 그냥 쭉 펴고 있었대. 첫번째 팀이 교실 들어서자마자 교탁 아래에 있는 다리랑 국화 긴 머리카락 보고 바로 뛰쳐 나갔다고... 그렇게 첫번째 팀이 떠난 뒤에 교실 귀신팀이 모두 모여서 국화 머리카락을 쓰담쓰담 해줬다더라.
◆Qnxwlg6lDth 2019/10/04 21:53:08 ID : gqqjclck3zS
물론 이전 이야기를 봤으면 알겠지만, 그 동안에 난 화장실 천장을 오가며 아주 맹활약을 펼치고 있었지. 국화가 본의 아니게 예쁨 받던 그 시간에 말야.
이름없음 2019/10/04 21:58:00 ID : WqjfV9jy1xw
계속 ㅂㄱㅇㅇ...ㅠㅠㅠ
◆Qnxwlg6lDth 2019/10/04 21:59:25 ID : gqqjclck3zS
국화는 그 시간이 아주 짧고 평화롭게 느껴졌대. 그래서인지 어쩐지 자꾸 졸리고, 나른해졌다고 해. 그리고 이 이야기를 들을 때 쯤 나는 꽤 해탈해서 ‘비명소리가 그렇게 터지는데 그 깜깜하고 삐걱대는 교실에서 잠이 오디? 허허허’ 뭐 이런 말을 안하고도 잘 참을 수 있게 됐어. 아무렴 어때. 상대는 국화잖아.
◆Qnxwlg6lDth 2019/10/04 22:00:43 ID : gqqjclck3zS
자꾸 사설이 길어지네. 미안해. 음... 그리곤 국화는 어렴풋이 잠에 들었대.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깨어나야 했지만 말야.
이름없음 2019/10/04 22:00:55 ID : GtzcFhhBy3V
....보고있어
이름없음 2019/10/04 22:02:35 ID : rwJPdvijclj
보고이써
◆Qnxwlg6lDth 2019/10/04 22:03:54 ID : gqqjclck3zS
“지지배배 하는 소리가 들렸어. 처음에 교실에서 들렸던 그 소리. 그리고 비명소리가 찢어질 것처럼 들려왔지. 그래서 눈을 떴는데 그 두 개가 날 기다리고 있었어.”
◆Qnxwlg6lDth 2019/10/04 22:06:08 ID : gqqjclck3zS
두 개. 하나는 우리 삼촌.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예의 ‘그 아이’ 였지. 여기까지 말한 국화는 곧 말을 줄였다. ‘그래서 널 데리러 갔다’ 라며 말을 뭉뚱그려서 말이야.
◆Qnxwlg6lDth 2019/10/04 22:08:04 ID : gqqjclck3zS
“엥? 지금껏 구구절절 이야기해놓고 결말이 왜 이래? 그래서 왕자님은 공주님을 구해왔답니다. 하고 끝이야?” “난 왕자도 아니고, 너같은 공주 구할 생각도 없긴 하지만 끝이야.” 이 말을 할 때 국화는 진심으로 좀 짜증난 것 같았어.
이름없음 2019/10/04 22:08:52 ID : ZhbwmsnXvvh
레주오랫만이네...오자마자.폭풍읽기했는데..흥미진진..
◆Qnxwlg6lDth 2019/10/04 22:09:59 ID : gqqjclck3zS
내가 깐죽거리며 계속 이야기를 조르자 국화는 “너희 삼촌이 너한테 가야한다고 오셔서 내가 간 것 뿐이야.” 라고 딱 잘라 말했다.
이름없음 2019/10/04 22:10:40 ID : GtzcFhhBy3V
보구있어!! 뭔가 귀엽잖아. 너같은 공주안구한대
◆Qnxwlg6lDth 2019/10/04 22:13:38 ID : gqqjclck3zS
하지만 겨우 그런 말에 굴할 내가 아니지. “그럼 갑자기 단합대회는 왜 취소됐어? 왜 다들 집에 가는데?” 라며 한참동안 국화에게 징징거렸어. 그러자 국화는 말없이 내 핸드폰을 툭 하고 건드렸다.
이름없음 2019/10/04 22:13:56 ID : rwJPdvijclj
으으 귀야워 둘다 ..
이름없음 2019/10/04 22:25:00 ID : WqjfV9jy1xw
계속보고이쏘.....
◆Qnxwlg6lDth 2019/10/04 22:25:47 ID : gqqjclck3zS
‘아 맞다 핸드폰!’ 나는 옆에 국화가 있는 것도 잊고 핸드폰 폴더를 열었어. (아이스크림폰이라고 들어봤니 다들? 지금 봐도 그 폰은 예쁘더라.)
◆Qnxwlg6lDth 2019/10/04 22:28:07 ID : gqqjclck3zS
문자함에는 정말 몇십 통의 문자가 와있었다. 살면서 문자 그렇게 폭탄으로 받아본 건 처음이었지. 물론 좋은 내용이 아닐 거라는 직감 탓에 기분이 좋진 않았어.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문자함을 열었다.
◆Qnxwlg6lDth 2019/10/04 22:32:27 ID : gqqjclck3zS
문자의 대부분은 반장이 보낸 거였어. 나는 가장 위에 있는 문자부터 열어봤지만 [미안해내가진짜미안해잘못했어] 이런 알 수 없는 내용이라 쭉 내려서 순서대로 보기 시작했다. 내가 읽지 않은,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오지 않았던 첫 문자는 [G가 쓰러졌어 잠깐 쉬었다가 가자] 였어.
◆Qnxwlg6lDth 2019/10/04 22:36:01 ID : gqqjclck3zS
“G가 쓰러졌다고?! 어디 아팠었나 G?” 나는 대번에 국화를 흔들며 G의 상태를 물었어. 워낙 순하고 착한 친구였던 터라, 크게 친하지 않았어도 걱정이 됐지. 국화는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툭 하고 핸드폰을 쳤어.
◆Qnxwlg6lDth 2019/10/04 22:44:24 ID : gqqjclck3zS
나는 살짝 흥분한 상태로 줄줄히 쌓인 문자들을 읽어냈어. 그리고 굉장히 혼란스러워졌다.
◆Qnxwlg6lDth 2019/10/04 22:46:28 ID : gqqjclck3zS
[G가 일어났어 집에 가야 한다고 난리라 담력테스트는 그만해야 할듯?] [내려오셈] [야야야야야 내려오지 말아봐. 우리 지금 교실간다. 마지막으로 남은 팀들 묶어서 담력훈련 콜?ㅋㅋ] [교실보단 화장실이 재미있을듯ㅋㅋ 교실에서 은근슬쩍 화장실로 보낼게 잠만 ㄱㄷ] [???어디감?] [너 지금 국화랑 같이 있어? 어디야?] [아ㅡㅡ 장난? 애들 화장실 갔다가 다 걍 왔어ㅡㅡ 어디냐고] [왜 전화 안 받냐]
◆Qnxwlg6lDth 2019/10/04 22:48:16 ID : gqqjclck3zS
뭐 대략 이런 문자들이었어. 정확하게 저렇게 문자를 보낸건 아니지만 G가 쓰러져서 담력테스트가 취소됐고, 남은 애들은 교실에서 화장실로 보낼테니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해보자는 내용이었지. (그 때 쓰던 폰이 안켜져서 문자는 대충 기억나는대로 적어봤어)
◆Qnxwlg6lDth 2019/10/04 22:56:05 ID : gqqjclck3zS
그리고 어쩐지 반장은 끊임없이 날 찾고 있었다. 중간중간 부반장에게도 [ㅇㄷ? 다 끝났음] 이라던가 [ㅋㅋㅋㅋ누가 말해줌? 와씨 당했네] 이런 느낌의 문자가 와있었고 말야. 두 사람 외에도 몇몇 아이들에게 문자가 와있었지만, 하나같이 어딘지 물어보거나 전화를 받으라는 내용이었다. 아. 간혹 미안하다는 문자도 있었어.
◆Qnxwlg6lDth 2019/10/04 23:05:44 ID : gqqjclck3zS
또 시간이 이렇게 됐네. 다음에 다시 올게. 다들 잘 자.
이름없음 2019/10/05 01:40:02 ID : Qq3WjfVgqqp
기다렸어ㅜ 다시 와줘서 고마워
이름없음 2019/10/05 01:40:13 ID : Qq3WjfVgqqp
너도 잘자 스레주
이름없음 2019/10/05 03:21:56 ID : dO1fUZfSHzQ
와아아아 잘자레주~~
이름없음 2019/10/06 19:18:06 ID : ZhbwmsnXvvh
언제또오는걸까,,ㅠ
이름없음 2019/10/11 01:06:30 ID : 67tdyGrhzam
처음부터 숨도 안쉬고 다 읽은거같다.... 레주진짜 필력좋은듯!! 그래서 언제와 레주....?
이름없음 2019/10/11 01:37:50 ID : g2E05VgqqmK
무서워서 눈물 흘릴뻔...
이름없음 2019/10/11 02:54:56 ID : U6krbyGmnwm
삼촌 얘기 읽다가 눈물 펑펑 흘렸어 흑흑... 레주 기다릴게
이름없음 2019/10/11 17:52:28 ID : QliqqrxSL87
기다리고 있을게. 미친듯이 기다리면 부담 가질 수 도 이쓰니가 천천히 기다릴겡..
이름없음 2019/10/30 09:00:48 ID : 1a8ja2tzgpa
스레주 언제왕?
이름없음 2019/10/30 09:39:27 ID : qZjyY65860l
구콰
이름없음 2019/10/30 10:39:47 ID : rthe3Wi9ta2
ㄱㅅ
이름없음 2019/10/30 14:29:23 ID : k61BeZdvdzP
삼촌얘기 너무 슬퍼..ㅠㅠㅠㅠㅠ ㅠㅠㅠ
이름없음 2020/02/04 19:40:31 ID : vxwq59irusl
스레주언제와?
이름없음 2020/02/10 22:54:25 ID : zRA1wk4K46k
이거 언제 올까
이름없음 2020/02/11 19:10:30 ID : O4NAmJVhxSH
언제 와...
이름없음 2020/02/12 03:18:36 ID : HyIFirBze3P
너무 궁금해
호두국여왕 2020/02/12 12:10:10 ID : y589uq2FjBs
책갈피해더대?
이름없음 2020/02/13 15:34:24 ID : Dunu5U2MmL8
레주 언제왕 ㅠ
이름없음 2020/02/13 19:02:27 ID : rcK7wJPbfWk
재밌게 보고 있었는데 끊겨서 아쉽당... 스레주 언제와ㅠㅠㅠ
◆Qnxwlg6lDth 2020/02/24 23:01:13 ID : 1xxCjcoFeGq
.
◆Qnxwlg6lDth 2020/02/24 23:02:52 ID : 1xxCjcoFeGq
아 이게 맞구나. 오랜만이라 인증코드가 뭐였는지 잠시 헷갈렸어. 다들 잘 지내고 있었니?
이름없음 2020/02/24 23:03:05 ID : 45cLfbxwttf
스레주!!!!!!!!
◆Qnxwlg6lDth 2020/02/24 23:04:04 ID : 1xxCjcoFeGq
여러 일이 겹쳐 한 번에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해 미안하다. 그래도 기다려주는 이들이 있는 것 같아 다시 이야길 좀 남겨볼게.
◆Qnxwlg6lDth 2020/02/24 23:04:53 ID : 1xxCjcoFeGq
음... 내가 문자를 읽으며 혼란스러웠던 그 날로 다시 돌아가볼까?
이름없음 2020/02/24 23:05:49 ID : 45cLfbxwttf
보고있어ㅠㅜㅠ
◆Qnxwlg6lDth 2020/02/24 23:06:07 ID : 1xxCjcoFeGq
나는 그 문자들을 빠르게 훑어보고 다시 국화에게 눈을 돌렸어. 왜냐면 아무리 읽어봐도 도통 문자의 흐름을 이해할 수 없었거든. 첫째로 나는 그 곳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고, 둘째로 나는 무언가를 알아낸 적도 없었으며, 셋째로 이렇게 다급하고 공포스러울 정도의 사과메세지를 받아본 적도 없었지. 한참을 갸웃거리고 있을 때 다시 핸드폰이 반짝였어.
◆Qnxwlg6lDth 2020/02/24 23:06:38 ID : 1xxCjcoFeGq
나는 화들짝 놀라 핸드폰을 툭 떨어트렸다. “으에엑!” 이런 낯부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말야.
◆Qnxwlg6lDth 2020/02/24 23:07:09 ID : 1xxCjcoFeGq
순간 아직 부모님을 기다리고 있는 몇몇 아이들이 눈에 띄게 움찔거리며 나를 바라봤어. 그리고 어쩐지 나는 그 장면이 꽤 느리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질감. 그래. 그건 분명한 이질감이었어. 기이하게 빛나는 아이들의 눈빛에서 나는 묘한 푸른 빛이 난다고 생각했지.
◆Qnxwlg6lDth 2020/02/24 23:08:01 ID : 1xxCjcoFeGq
번뜩 정신이 들자마자 난 일부러 오버해서 손을 흔들어댔다. “아! 전화!! 전화와서!” 그리고 허둥지둥 핸드폰을 주워들었지. 액정에는 [단팥빵크림빵아빵] 이라는 글자가 선명했어. (응. 그냥 아빠야)
◆Qnxwlg6lDth 2020/02/24 23:08:53 ID : 1xxCjcoFeGq
난 괜히 껄껄대며 아빠의 전화를 받았어. 그리고 다시 시무룩해졌지. 저녁에 맥주를 한 잔 했으니 그냥 택시를 타고 오라나. 아마 막상 나가려니 귀찮아져서 거짓말을 했을 게 분명해. (그럼 아까 전화했을 때 바로 말해주지 그러셨나요. 아버지......)
◆Qnxwlg6lDth 2020/02/24 23:10:06 ID : 1xxCjcoFeGq
뭐 그래도 한 편으론 그냥 편하게 국화랑 이야기할 수 있겠다 싶어 알겠다고 대답했어. 아빠는 그렇게 잔뜩 피곤한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고, 무슨 일인지 그 사이에 반장이 다시 내 앞에 와있었다.
◆Qnxwlg6lDth 2020/02/24 23:12:15 ID : 1xxCjcoFeGq
“왜?” 의연하게 반장에게 말을 건넨 건 내가 아닌 국화였어. 국화는 어쩐지 조금 화가 나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국화의 눈치를 살살 보던 반장은 내게 정말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곤 교문으로 달려나갔어. 그리고 교문 앞에 서있던 검은 세단에 올라타며 소리쳤지. “나 혼자 그런 거 아니야!! 다른 애들도 다 알고 있었단 말이야!! 그래도 미안해! 조심히 들어가!”
이름없음 2020/02/24 23:12:35 ID : kpWpdRA3Pbd
ㅂㄱㅇㅇ
◆Qnxwlg6lDth 2020/02/24 23:17:08 ID : 1xxCjcoFeGq
‘엥 뭐라는 거야?’ 란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여줬다. 뭐. 안보였을 수도 있지만 말야. 그리고 남은 몇 아이들의 눈빛은 괴이할 정도로 더 섬뜩하게 느껴져서 조금 소름이 돋았지.
◆Qnxwlg6lDth 2020/02/24 23:17:32 ID : 1xxCjcoFeGq
그런 내 속마음이라도 알아챈 것처럼 국화는 조용히 장소를 옮길 것을 제안했어. 해봐야 학교 바로 앞의 편의점이었지만. 그래도 편의점은 가로등도 밝고 꽤 사람이 많이 오가는 곳이라 흔쾌히 그 제안에 응했다.
◆Qnxwlg6lDth 2020/02/24 23:18:29 ID : 1xxCjcoFeGq
편의점에 가는 길에서 나는 국화에게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는지 물었어. 그러자 국화는 “어차피 못 오실텐데 뭐하러.” 라고 대답하며 쓰게 웃었다. 그래서 나는 국화에게 팔짱을 끼우며 말했지. “그럼 오늘은 우리 집에서 한 잠 때리고 가라!!! 어차피 내일 학교도 안가는데!” 일단 그냥 던진 말이었지만 국화는 의외로 꽤 기뻐했다. 친구네 집에 초대받은 게 처음이라고 말야.
◆Qnxwlg6lDth 2020/02/24 23:24:14 ID : 1xxCjcoFeGq
나는 괜시리 울컥하는 마음에 바로 우리집에 가자고 제안했어. 사실 혼자였으면 택시를 타고 갔을테지만, 국화와 함께라면 수다를 좀 떨며 걸어가도 괜찮을 것 같았거든. 국화는 살짝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Qnxwlg6lDth 2020/02/24 23:24:38 ID : 1xxCjcoFeGq
학교에서 우리집에 가는 길은 꽤 멀었어. 도보로 40분 내외 정도? 그리고 그 동안 나는 꽤나 화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지.
◆Qnxwlg6lDth 2020/02/24 23:25:08 ID : 1xxCjcoFeGq
“아이들을 너무 나무라진 마.” 국화는 이렇게 첫 운을 뗐다. 국어 교과서에 나올법한 어휘력에 살짝 당황했지만, 그마저도 국화스럽다고 생각한 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어.
◆Qnxwlg6lDth 2020/02/24 23:26:19 ID : 1xxCjcoFeGq
“학교. 꽤 오래 됐지. 건물들도 그대로고 말야. 오늘 일은 그래서 벌어진 거야. 으레 아이들은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잖아. 흔히 괴담이라고들 하는.” “무슨 괴담? 우리 학교에 그런 게 있어?” 나는 눈을 반짝이며 국화의 팔에 매달렸다. 국화는 그런 나를 떼어내며 말을 이었어. “응. 단순한 괴담으로 끝났으면 좋았을 만한 게 있지.”
◆Qnxwlg6lDth 2020/02/24 23:27:22 ID : 1xxCjcoFeGq
국화는 꽤나 짧고 명료하게 말했다. ‘우리 학교에는 본관 2층 화장실에서 밤을 보내면 미치광이가 된다’는 괴담이 있다고 말야.
◆Qnxwlg6lDth 2020/02/24 23:28:13 ID : 1xxCjcoFeGq
운동장에 있는 이순신 동상이 열두시가 되면 운동장을 돈다던가, 책 읽는 소녀 동상이 마지막 페이지까지 책장을 넘기면 누군가 죽는다던가, 밤에 본관 정문에 있는 거울을 보면 귀신이 나온다던가. 학교마다 뭐 그런 시시하고 으스스한 괴담이 하나씩 있잖아? 그런 흔해빠진 이야기를 기대했던 나는 꽤 흥미롭고 새로운 우리 학교표 괴담이 쏙 마음에 들었어. 그리고 화들짝 놀랐지. “근데 날 거기다가 던져뒀단 말야?!”
◆Qnxwlg6lDth 2020/02/24 23:29:00 ID : 1xxCjcoFeGq
“넌 이 이야기를 모르고 있었으니까.” 국화는 담담한 말투로 대답하면서도, 평소답지않게 표정을 일그러트리고 있었어. 그걸 보면서 어쩐지 기분이 좀 풀렸다. 나 대신 화내주는 건가. 싶어서 말야.
◆Qnxwlg6lDth 2020/02/24 23:29:24 ID : 1xxCjcoFeGq
“다만.” “다만?” “그건 영 헛된 괴담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지.” “엥?! 진짜 미쳐?” 나는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어.
◆Qnxwlg6lDth 2020/02/24 23:31:00 ID : 1xxCjcoFeGq
“뭐 그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미칠 수도 있을거라곤 생각해.” “왜? 왜왜왜왜에~?” 국화는 다시 한 번 표정을 일그러트렸고, 그 원인이 나한테 있었음을 직감한 난 빠르게 양 손으로 입을 막았다.
◆Qnxwlg6lDth 2020/02/24 23:32:42 ID : 1xxCjcoFeGq
크게 한 번 숨을 내 쉰 국화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어. “넌 눈을 감고 있었으니 다행이지만 ‘그건’ 꽤 삿된 거야.” 나는 그 때부터 더 이상 국화의 말꼬리를 잡지 않고 그저 얌전히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괜시리 국화 목소리가 떨리는 것처럼 느껴졌거든.
◆Qnxwlg6lDth 2020/02/24 23:34:16 ID : 1xxCjcoFeGq
국화의 말을 요약해보자면 이랬어. 우리 학교는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고, 그 사이에 이 건물은 근현대의 어떤 사건을 겪게 됐다고 해. (특정 시기나 지역이 밝혀질까 자세한 건 쓰지 못했어.) 그리고 그 시기에 탄압받던 이들이 이 건물에 숨어들게 되었고, 서로가 서로를 껴안으며 날을 새길 기다렸나봐. 하지만 늘 그렇듯 그들은 이내 발각되었고 하나씩 사라졌대. 화장실에 숨어들었던 ‘그 아이들’을 제외하곤 말야.
◆Qnxwlg6lDth 2020/02/24 23:35:05 ID : 1xxCjcoFeGq
그 아이들은 화장실에서 숨죽여 울면서 그 ‘휘파람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고 했다. 나는 이 대목에서 움찔거리며 국화의 옷깃을 잡았지. 물론 그 애의 말을 끊거나 되묻진 않았어.
◆Qnxwlg6lDth 2020/02/24 23:35:33 ID : 1xxCjcoFeGq
“꽤 악질이지 않아? 어차피 그들은 아이들이 그 곳에 숨어있는 걸 알고 있었을 거야. 그저 겁에 질려 발발 떠는 꼴이 더 보고 싶었던 거겠지.” 국화는 잠시 주먹을 꽉 쥐었다가 다시 조곤조곤 옛 일을 꺼내 뱉었다.
◆Qnxwlg6lDth 2020/02/24 23:37:05 ID : 1xxCjcoFeGq
그리고 결국 그 아이들은 그 휘파람 소리에 숨이 멎을 듯 떨어대다가, 하나. 둘. 또 사라져야만 했다고 했다. 그들 중 하나가 휘파람 소리를 멈추게 하기 전까진 말이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물어.’ 국화는 그 일을 이렇게 표현했다.
◆Qnxwlg6lDth 2020/02/24 23:38:08 ID : 1xxCjcoFeGq
그래. 쥐는 고양이를 물었고, 제 생이 다 하는 순간까지 매달려가며 고양이를 죽이는 것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 것은 산 자에겐 기회가, 죽은 자에겐 저주가 되어버렸던 모양이다. “여전히 누군가는 소리를 내지 못하고, 여전히 누군가는 소리를 내고 있는 거지.”
◆Qnxwlg6lDth 2020/02/24 23:38:41 ID : 1xxCjcoFeGq
나는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도 유독 이 말만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때의 서늘한 밤공기. 담백한 국화의 목소리. 복잡한 표정이 되어버렸을 나 자신까지도.
◆Qnxwlg6lDth 2020/02/24 23:41:01 ID : 1xxCjcoFeGq
사실 이 모든 이야기를 국화로부터 전해들었을 땐, 꽤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묘사에 약간 거북함을 느낄 정도였어. 그래서 최대한 상황만 이해할 수 있도록 요약해봤다.
◆Qnxwlg6lDth 2020/02/24 23:43:18 ID : 1xxCjcoFeGq
앞으론 평소에 조금씩 메모장에 글을 써두었다가 최대한 자주 와서 풀어보려 노력해 볼까 해. 다시 한 번 기다렸을 모든 레더들에게 감사함을 표하고 싶어.
◆Qnxwlg6lDth 2020/02/24 23:43:51 ID : 1xxCjcoFeGq
잘 자고 좋은 꿈 꿔.
이름없음 2020/02/24 23:45:17 ID : 45cLfbxwttf
잘자!!! 고마워..
이름없음 2020/02/25 00:12:56 ID : nBhy1DwE7fc
헐 이제야 정주행 다했어.. 너무 재밌게 잘 읽었어!잘자구! 담엔 동접해보고싶다ㅎㅎ
이름없음 2020/02/25 03:51:02 ID : dA585Pa2pSM
정주행 다 했어..! 왜지.. 무서우면서도 슬프다 ㅠㅠ
이름없음 2020/03/07 05:10:53 ID : pdV83vii67v
언제와 ㅠㅠ
이름없음 2020/03/07 08:42:10 ID : mlgY62GmoK0
우와.. 다 봤다
이름없음 2020/03/09 17:48:17 ID : Y9yZdzRCmII
레주 왔었구나ㅜㅜㅜ항상 잘보고 있어 얼른 오길 바랄게
이름없음 2020/03/09 21:14:18 ID : cFbdCkoFcqZ
헐... 내 최애 스레가 살아낫어 ㅠㅠ
◆Qnxwlg6lDth 2020/03/21 02:54:25 ID : Qre3O2smIHy
안녕.
◆Qnxwlg6lDth 2020/03/21 02:56:29 ID : Qre3O2smIHy
요즘 코로나가 기승인데 모두 조심히 잘 지내고 있니? 나 역시 이번 일로 꽤나 상황이 어려워져서 걱정중이야. 나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부디 모두 별 일 없이 지나갔으면 좋겠다.
◆Qnxwlg6lDth 2020/03/21 02:58:12 ID : Qre3O2smIHy
이제야 일이 끝나서 글을 쓸 수 있게 됐네. 아쉽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라 짧게 이야기를 하고 가볼게.
◆Qnxwlg6lDth 2020/03/21 02:59:12 ID : Qre3O2smIHy
자. 이제 국화와 내가 우리 집으로 향하던 그 여름 밤으로 돌아가볼게.
◆Qnxwlg6lDth 2020/03/21 02:59:44 ID : Qre3O2smIHy
나는 잠시 학교 화장실을 떠올리다가 국화에게 허겁지겁 우리집에 대한 tmi를 늘어놓기 시작했어. 꽤 무거워진 분위기 속에서 한참 걷고 있노라니, 조금 전에 들었던 온갖 소름끼치는 소리들이 다시 들려오는 것만 같았거든.
◆Qnxwlg6lDth 2020/03/21 03:01:05 ID : Qre3O2smIHy
우리집 화장실에 비데가 있다던지(안물어봤음) 대문에서 엄청난 끼이익 소리가 나는데 놀라지 말라던지(안물어봤음) 우리 앞 도로에서 사고가 자주 나는데 조심해야 한더던지(절대 안물어봤음)
◆Qnxwlg6lDth 2020/03/21 03:01:52 ID : Qre3O2smIHy
국화는 그런 나를 묘한 얼굴로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가끔씩 갸웃거리기도 하고 말야. 그걸 한 10분 정도 겪고 나서야 알아버렸다. ‘아. 얘 평범한 수다 처음 떨어보나 보구나.’
◆Qnxwlg6lDth 2020/03/21 03:02:49 ID : Qre3O2smIHy
뭐 그 전까지는 나와의 대화도 ‘안녕! 짝지!’ ‘응.’ (대화종료) ‘우리 숙제 있었니?’ ‘아니! 국어는 있어!’ ‘응.’ (대화종료) 대략 이런 패턴이었으니까. 지금 보니 철저하게 필요에 의한 대화였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단합대회가 망쳐진 이후로는 술술 말도 잘 하던 국화였지만, 이런 평범한 주제로의 대화는 영 어색했던 모양이야. 그리고 그 모습 덕에 나는 풍선 바람빠지듯 긴장감을 덜 수 있었지.
◆Qnxwlg6lDth 2020/03/21 03:04:19 ID : Qre3O2smIHy
도착한 집은 굉장히 고요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늦은 시간에 집에 들어와본 게 처음이라 한 밤 중의 우리집이 너무 낯설었어. 뭔가 집이 죽어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게 기억날 정도니까 말야.
◆Qnxwlg6lDth 2020/03/21 03:04:57 ID : Qre3O2smIHy
당연히 집 안의 모든 불은 꺼져있었고, 가족들 모두 잠들어 있었지. 그래서 난 굉장히 쓸 데 없는 배려심(다들 잘 자는데 깨울 순 없지!)으로 국화와 함께 월담을 강행했다. 결과는 완전 성공.
◆Qnxwlg6lDth 2020/03/21 03:05:39 ID : Qre3O2smIHy
그렇게 국화의 배에 발을 올려놓고 태평하게 자던 밤. 그 날이 우리가 평범하게 보낼 수 있었던 처음이자 마지막 시간이었지.
◆Qnxwlg6lDth 2020/03/21 03:06:24 ID : Qre3O2smIHy
조금 친해지면 흔히 하곤 하는 친구집에서의 하룻밤. 그게 우리의 마지막이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어. 그 이후로 국화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Qnxwlg6lDth 2020/03/21 03:09:47 ID : Qre3O2smIHy
이렇게 보니 정말 너무 짧다. 오래 기다렸을텐데 미안해. 좀 더 글을 쓰고 싶지만 지금은 몸이 너무 피곤하고 아파.
◆Qnxwlg6lDth 2020/03/21 03:11:10 ID : Qre3O2smIHy
그래도 내일은 오후에 잠시 시간이 날 것 같아. 아, 벌써 3시니까 오늘인가.
◆Qnxwlg6lDth 2020/03/21 03:11:41 ID : Qre3O2smIHy
그럼 조금 이따 다시 올게. 좋은 꿈 꾸렴.
이름없음 2020/03/21 07:32:44 ID : WlzRCqlvgY7
쭉 읽어보니 스레주 나랑 동년배같아 추억의 아이스크림 폰이라니ㅠㅠ 거대하고 뚱뚱한 티비도 추억이다ㅠㅠ
◆Qnxwlg6lDth 2020/03/21 21:09:37 ID : Qre3O2smIHy
다시 돌아왔어.
◆Qnxwlg6lDth 2020/03/21 21:10:50 ID : Qre3O2smIHy
아마 맞을거야. 라떼는 다들 그랬으니까.
◆Qnxwlg6lDth 2020/03/21 21:15:27 ID : Qre3O2smIHy
인사는 간단히 하고 다시 이야기를 시작해볼게.
◆Qnxwlg6lDth 2020/03/21 21:15:59 ID : Qre3O2smIHy
나는 여느 때처럼 국화가 몸이 아파 학교에 오지 못하고 있는 거라 여기고 별 생각없이 가벼운 문자를 보냈지. 하지만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일주일이 될 때까지 국화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물론 답장도 오지 않았어.
이름없음 2020/03/21 21:16:03 ID : iqqjgY1csi3
그래
◆Qnxwlg6lDth 2020/03/21 21:16:57 ID : Qre3O2smIHy
그렇다고 얌전히 있을 나도 아니었기에 쪼르르 교무실의 담임선생님을 찾아갔다. 국화의 주소를 받기 위해서. 내 요청을 받은 담임선생님은 어쩐지 좀 난감한 표정을 지어보였어. 나는 알려주지 않으면 바닥에 누울 것이라는 비장한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눕기 전에 주소를 받을 수 있었다. ‘국화가 오랫동안 학교를 비우게 될 지도 모르겠구나.’ 라는 멘트도 함께 말야.
◆Qnxwlg6lDth 2020/03/21 21:18:46 ID : Qre3O2smIHy
종례가 끝나기 무섭게 나는 가방을 들쳐매고 담임에게 받아낸 주소로 향했어. 음.... 뭔가 서운함에 쒸익쒸익 거리면서 갔던 것 같아. ‘얼마나 아프길래 답장도 안보내는 거야?! 쉬익쉬익.....’ 좀 이런 느낌으로. 그리고 한참 헤매다가 찾은 국화의 집 앞에서, 그런 마음은 증발하듯 날아가버렸지.
◆Qnxwlg6lDth 2020/03/21 21:19:33 ID : Qre3O2smIHy
색이 바랜 채로 펄럭이는 얇은 천 가닥과 대나무가 장식되어있던 국화 집 낡은 대문은, 어쩐지 환히 열려있었다.
◆Qnxwlg6lDth 2020/03/21 21:20:27 ID : Qre3O2smIHy
바닥에는 쓰다 남은 테이프와 2L 생수병, 황토색 옷가지가 떨어져 있었어. 사실 그 것 말고도 그 집 마당은 충분히 어지럽혀져 있었고, 또 허전했지. 어린 내 눈에도 이제 이 곳에 국화가 없다는 것쯤은 알 수 있을 만큼 말야.
◆Qnxwlg6lDth 2020/03/21 21:21:09 ID : Qre3O2smIHy
순간 당황스러움에 집 안으로 발을 들이려던 나는 시선을 발치로 옮기다가, 대문 바로 앞 바닥에 적힌 삐뚤빼뚤한 글씨를 발견했다.
◆Qnxwlg6lDth 2020/03/21 21:21:37 ID : Qre3O2smIHy
[안녕]
◆Qnxwlg6lDth 2020/03/21 21:22:15 ID : Qre3O2smIHy
누가 봐도 국화. 그 애의 글씨였어. 나는 그 두 글자를 보면서 별 이유없이 쭈그려 울었다.
◆Qnxwlg6lDth 2020/03/21 21:22:48 ID : Qre3O2smIHy
나 진짜 걔랑 별로 안 친했는데. 국화 걔 잘 알지도 못하는데. 그렇게 이유없이 한참을 콧물 소매로 닦아가며 참 서럽게도 울었지.
◆Qnxwlg6lDth 2020/03/21 21:23:32 ID : Qre3O2smIHy
나는 그 날 여름 밤을 얕본 대가로 나흘을 심하게 앓았어. 첫 날은 집에서 끙끙대다, 이후에는 대학병원 응급실로 직행해서 치료를 받아야만 했지. 그리고 조금 살만해 졌을 때쯤. S로부터 국화가 학교를 그만두러 왔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텅 빈 국화 집을 보고 쏟아낼 걸 전부 다 쏟아내버린 건지, 그 문자를 보고도 별 생각이 들지는 않더라.
이름없음 2020/03/21 21:49:02 ID : iqqjgY1csi3
나도
이름없음 2020/03/22 00:17:57 ID : 6rzhzareZdC
.
이름있음 2020/03/29 08:59:38 ID : u2oNs1hgklj
뭐야ㅠㅠㅠㅠㅠ 설마 끝은 아니지??ㅠㅠㅠ 제발 아니라고 해줘ㅠㅠㅠㅠㅠ
이름없음 2020/04/04 12:15:01 ID : RBe3RxyMmIH
끝이야? 재밌게 봤는데
이름없음 2020/04/05 18:13:12 ID : imJXs2snQsq
갱신! 돌아와줘 스레주ㅠㅠㅠ
이름없음 2020/04/07 00:28:25 ID : AmK1yE8nSHz
스레주 괜찮은 거지????
이름없음 2020/04/07 13:02:18 ID : 3Co47BwHwmr
기다리고 있어
이름없음 2020/04/07 16:51:22 ID : s8kmnzXxQoN
기다리고있어 레주
이름없음 2020/04/08 14:26:41 ID : 3Co47BwHwmr
스레주 돌아와 ㅠㅠ
이름없음 2020/04/08 21:22:10 ID : RBe3RxyMmIH
스레주 돌아와줘ㅜㅜㅜ 끝난거면 끝났다고 해주던지ㅜㅜ 끝이 아니길 바랄게
이름없음 2020/04/08 22:18:55 ID : 3Co47BwHwmr
스레주 시간 날 때 꼭 와줘 끝났으면 끝났다고 말이라도 해줘 기다리고 있어 !! :)
이름없음 2020/04/10 13:38:44 ID : imJXs2snQsq
스레주 기다리고 있어! 와드 박을게..
이름없음 2020/04/24 10:52:22 ID : cFbdCkoFcqZ
ㄱㅅ
이름없음 2020/04/24 12:32:22 ID : imJXs2snQsq
갱신~~~
이름없음 2020/04/24 22:39:03 ID : RBe3RxyMmIH
ㄱㅅ
이름없음 2020/04/27 11:13:39 ID : uk02mmqZjy7
ㄱㅅ
이름없음 2020/04/27 13:25:47 ID : gY3xwpTU43O
끝났니ㅠㅜㅠ
이름없음 2020/04/27 15:18:53 ID : 4Fa8lCmILcH
ㄱㅅ
이름없음 2020/04/27 16:39:05 ID : k002lg2HyIK
아...국화 어디간거야ㅠㅠㅠㅠㅠㅠ
이름없음 2020/04/27 19:03:21 ID : RBe3RxyMmIH
레주 왜 안와...ㅜㅜㅜ
이름없음 2020/04/27 20:44:07 ID : 6mINxU0re5c
레주 와줘ㅠㅠㅠㅠㅠ
이름없음 2020/04/28 16:49:22 ID : Bgi3yGtxWmM
레주 와줘... ㅜㅜㅠㅜ
이름없음 2020/04/30 01:46:43 ID : imJXs2snQsq
갱신~~~
이름없음 2020/04/30 12:37:28 ID : qnWpaldDusl
이름없음 2020/04/30 20:57:31 ID : HDs9tfSK41z
레주보고싶어
이름없음 2020/05/12 22:01:59 ID : tzcFipcFa3w
레주 갱신
이름없음 2020/05/13 03:32:38 ID : QoFikoE8jfR
갱신
◆mGsi7aq7tg1 2020/05/13 21:25:55 ID : Qre3O2smIHy
이게 맞나?
◆Qnxwlg6lDth 2020/05/13 21:27:46 ID : Qre3O2smIHy
음...
◆Qnxwlg6lDth 2020/05/13 21:28:19 ID : Qre3O2smIHy
아 이거구나. 오랜만이라 헷갈리네.
◆Qnxwlg6lDth 2020/05/13 21:29:24 ID : Qre3O2smIHy
다들 잊고 지내겠지 싶어서 찾아오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많이 기다려주고 있었구나.
◆Qnxwlg6lDth 2020/05/13 21:34:53 ID : Qre3O2smIHy
이 스레는 내가 꽁꽁 감춰왔던 이야기를 뱉어내기 위해 대나무숲처럼 세웠던 거였는데, 다들 잘 읽어줬다니 기분이 참 묘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네. 레더들이 국화라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말야. 어딘가에서 진짜 국화도 그 때의 내 마음을 읽어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고.... 뭐 이제 레더들이 나의 국화가 된 거라고 생각할래. 너무 제멋대로인가?
◆Qnxwlg6lDth 2020/05/13 21:37:05 ID : Qre3O2smIHy
그럼 오랜만에 다시 이야기를 풀어볼게. 그리 길진 않지만 지루한 글이 될 지도 몰라. 왜냐면 이건 국화를 잃어버린 이후의 내 이야기거든.
◆Qnxwlg6lDth 2020/05/13 21:37:44 ID : Qre3O2smIHy
얼마 뒤 다시 학교에 갈 수 있을 정도만의 체력을 회복한 나는, 어쩐지 S로부터 “나사 빠진 것 같다”는 말을 한동안 들어야만 했다. 사실 나사까지는 아니어도 무언가 잃어버린 것만 같은 허무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아.
◆Qnxwlg6lDth 2020/05/13 21:38:17 ID : Qre3O2smIHy
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몇 달이 지난 후엔 텅 빈 옆자리 책상 서랍을 내 사물함으로 쓸 수 있을 만큼 담담해졌어. 그 애의 존재가 무뎌지기를 원했던 내 바람대로 말야.
◆Qnxwlg6lDth 2020/05/13 21:38:49 ID : Qre3O2smIHy
시간은 흘러흘러 나에게는 조금 잔인했던 그 해 여름, 그리고 가을 겨울을 지나서 다시 봄이 되었다. 놀면서도 나름 쓸데없이 계획에 충실했던 덕인지 원하던 고교에 입학도 했어. 잦은 전학 탓에 새 교복이 그리 설레진 않더라.
◆Qnxwlg6lDth 2020/05/13 21:39:23 ID : Qre3O2smIHy
고등학교 입학 후엔 평범하고 발랄한. 그러니까 꽤 여고생스러운 일상을 보냈어. 가끔은 지루하고 따분하다고 느껴지는 그런 소소한 일상을 말야. 그리고 그 날은 정말 갑자기 찾아왔지.
◆Qnxwlg6lDth 2020/05/13 21:41:47 ID : Qre3O2smIHy
그 날의 시작은 참 평범했어. 하교 후, 친구들과 햄버거집에서 조잘조잘 수다를 떨고 뉘엿해질 무렵에 집으로 향했던 그 날. 버스에서 내리고, 애지중지하는 아이팟에서 흘러나오는 롤리팝에 내 몸을 맡겨 걸었던 그 날. 그 날에 나는 뺑소니 사고의 목격자가 됐다.
◆Qnxwlg6lDth 2020/05/13 21:43:20 ID : Qre3O2smIHy
‘여기 신호는 진짜 너무 길단 말이지’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집 앞 횡단보도 앞에 멈춰선 나는, 뒷짐을 지고 신호 앞 벤치에 앉아 계시는 백발의 할머니와 마주쳤어. 우리집과 작은 마당을 공유하고 있는 윗집 할머니셨지. 나는 잠시 이어폰을 빼고, 할머니께 가벼운 목례와 인사를 건네곤 다시 이어폰을 끼웠다. 곧이어 보행신호등은 파란 불로 변했어. 신호가 바뀌자마자 쏜살처럼 걸어나가신 할머니는 ‘신호 바뀌었는데 왜 안오니?’라는 눈빛으로 날 슬쩍 돌아보셨고, 이내 내 시야에서 사라지셨다.
◆Qnxwlg6lDth 2020/05/13 21:43:55 ID : Qre3O2smIHy
아직도 그 기묘한 순간은 문득문득 기억나곤 해. 귓가에서 빠르게 흘러나오던 음악소리와 느리게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던 할머니의 모습이 말야.
◆Qnxwlg6lDth 2020/05/13 21:45:05 ID : Qre3O2smIHy
아마 아는 레더들도 있겠지만, 예전 신호는 요즘 신호보다 굉장히 짧았어. 걸음이 느린 노인 분들이 제 시간에 지나가기엔 조금 빡빡하다 싶을 정도였지. 우리집 바로 앞에 있던 이 횡단보도도 마찬가지였어. 아마 할머니는 왕복 8차선의 긴 횡단보도를 제 시간에 건너기 위해서 그렇게 빠르게 뛰어나가셨을테지.
◆Qnxwlg6lDth 2020/05/13 21:47:10 ID : Qre3O2smIHy
이어폰 음악소리를 뚫고 들려온 선명한 파열음과 둔탁한 착지음, 그리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듯한 배기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어. 느리게 흘러가는 눈 앞의 장면에 현실감이 없어질 정도였지. 새빨간 액센트. 그 차가 사라진 이후에도 나는 한 동안 멍하니 그 곳을 바라봤던 것 같아. (참고로 말해주자면 난 예나 지금이나 차덕이라 어지간한 차는 연식, 모델명까지 알고 있어. 당시 장래희망이 차량정비사일 정도였으니까.)
◆Qnxwlg6lDth 2020/05/13 21:49:04 ID : Qre3O2smIHy
‘아...아아! 할머니...!’ 불현듯 정신이 든 나는 도로에 뛰어들어 할머니에게 달려갔어. 낯선 촉감과 낯선 흐물거림. 흠칫하고 놀랐지만, 내가 당황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앞섰지. 그 도로는 우리 동네로 향하는 주민들 외엔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는 외진 곳이었으니까. 나는 새된 신음소리 외에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는 할머니를 안고 덜덜 떨며 119와 112에 전화를 건 후, 그저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Qnxwlg6lDth 2020/05/13 21:50:21 ID : Qre3O2smIHy
곧 이어 붉은 빛이 번쩍거리는 차들이 줄지어 도착했어. 나는 그 때 뭐랄까. ‘아 이제 끝났나보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 왜인진 모르겠지만 말야. 흐물거리던 할머니는 서둘러 구급차에 옮겨져서 마지막 횡단보도를 빠르게 지나가셨어. 이런 상황이라면 내가 보호자로 함께 구급차에 타지 않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내가 탄 건 경찰차였다.
◆Qnxwlg6lDth 2020/05/13 21:51:00 ID : Qre3O2smIHy
가까운 경찰서에 도착한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본대로 상황을 설명했지. “어... 차가...! 할머니가 저 보시는데! 아니 할머니가 파란 불에 건너셨어요! 근데 그 차가 쌔앵했는데....! 어어.... 왜? 할머니가 날아가서....” (우와 쓰고 나니까 진짜 엄청 침착했네 그 때의 나.)
◆Qnxwlg6lDth 2020/05/13 21:52:06 ID : Qre3O2smIHy
나는 한참을 눈물 콧물 다 흘리다가 경찰관분이 건네주신 율무차를 홀짝이고서야 다시 사건을 설명할 수 있었어. 차 종과 번호판까지 아주 똑부러지게 말야. 경찰관분은 그 와중에 차 종과 번호를 외웠다면서 칭찬을 해주시더라. 덕분에 금방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면서 말야. “여자애가 차 종 알고 있는 것도 신기한데 어떻게 달리는 차 번호판을 외웠어? 엄청 빨랐을텐데.” ‘아닌데. 엄청 느렸는데.... 그 악센트 언니 머리카락이 보일 정도로 정말 느렸는데...’ 나는 이 말을 속으로 삼켰다.
◆Qnxwlg6lDth 2020/05/13 21:54:12 ID : Qre3O2smIHy
나는 정신없이 진술서를 쓰고 나서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어. (A4 용지에 내 이름이랑 신상정보 몇 가지, 본 내용과 서명 정도를 했던 것 같아. 경찰아저씨가 바로 인쇄해주신 거라 종이가 따끈따끈했던 기억도 난다.) 경찰서에서 내가 미성년자여서인지 보호자 번호를 알려달라고 했었는데, 미리 연락을 해두셨나 아빠가 와계시더라고. 아빠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면서 윗집 할머니의 상태를 물었는데, 어쩐지 입을 꾹 다물고 계시기에 나도 더이상 물어보지 않았지.
◆Qnxwlg6lDth 2020/05/13 21:56:24 ID : Qre3O2smIHy
그 날 밤. 나는 이례적으로 동생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어. 괜시리 검고 축축한 무언가가 내 몸에 끈적이게 매달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지금 생각해보니 참 사람 직감이 무서운 거다 싶긴 하네.
◆Qnxwlg6lDth 2020/05/13 21:57:15 ID : Qre3O2smIHy
눈을 감아도 선하게 떠오르는 장면들에 진저리치면서 겨우 선잠에 들었을 쯤이었을 거야. ㅇ...ㅏ.....ㅎ....아아.......ㅇ...ㅏ........ 그 소리에 난 물이라도 끼얹어진 사람처럼 확 하고 잠에서 벗어났다. 방금 전. 채 몇 시간 전에 들었던 선명한 비명소리. 그래. 할머니의 목소리였어.
이름없음 2020/05/13 21:59:23 ID : vinO5WrxWpb
ㅁㅊ 동접
이름없음 2020/05/13 22:00:09 ID : vinO5WrxWpb
내가 처음으로 레주 발견해따ㅠㅠㅠ 레주야ㅠㅠㅠㅠㅠ
◆Qnxwlg6lDth 2020/05/13 22:01:49 ID : Qre3O2smIHy
‘환청인가? 내가 너무 신경을 쓰고 있나?’ 나는 잠에서 깨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두 눈을 꼭 감았어. 마치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자고 있었던 사람처럼 말야. 나는 그 때, 미동도 없이 속으로 스스로에게 엄청난 양의 질문을 하고 있었다. ‘왜 내가 그 자리에 있었지?’ ‘하교하고 바로 집에 왔었어야 했나?” “이 소리가 그 소리가 맞긴 한가?” “근데 왜 이거 환청이 아닌 거 같지?”
이름없음 2020/05/13 22:03:07 ID : vinO5WrxWpb
보고있어!
◆Qnxwlg6lDth 2020/05/13 22:05:38 ID : Qre3O2smIHy
왜 그런 거 있잖아. 눈 감으면 다른 감각이 더 살아나는 것 같은 느낌. 아, 느낌이 아니라 진짜 더 살아나는 건가. 아무튼 그 것처럼 시각을 차단한 나는 청각에 내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어. 귓 가의 솜털이 다 곤두서고 있다고 느낄 만큼.
◆Qnxwlg6lDth 2020/05/13 22:07:38 ID : Qre3O2smIHy
아..... ㅇ...ㅎ.....ㅏ...... 곧 끊어질 것만 같은 신음소리. 미약한 그 소리는 끊길 듯 끊기지 않으며, 애타게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제발 누가 내 귀를 막아주길 간절히 바랐어.
◆Qnxwlg6lDth 2020/05/13 22:14:36 ID : Qre3O2smIHy
‘’환청이 아니야. 환청같은 게 아니라고.’ 나는 어느 순간 눈치 채버리고야 말았지. 이건 지독한 꿈도, 환청도 아니란 걸. 왜냐면 내 앞에 있는 동생은 코를 골아대며 잘 자고 있었고, 거실에선 늘 그랬듯 TV를 보다 잠들어버린 아빠의 최애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의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거든. (TMI지만, 그 날 내가 들었던 내용은 우연히도 그알 레전드로 취급되는 <오창 맨홀 변사 사건>이었다.)
◆Qnxwlg6lDth 2020/05/13 22:16:36 ID : Qre3O2smIHy
장이 다 끊어지는 것만 같은 그 쇳소리 섞인 신음소리는 내 등 뒷 쪽에서 흘러나오고 있었어. 정확히 말하면 내 등 뒤의 창문으로부터.
이름없음 2020/05/13 22:19:28 ID : vinO5WrxWpb
헉..?
◆Qnxwlg6lDth 2020/05/13 22:21:16 ID : Qre3O2smIHy
대충 보여주자면, (침대머리) ㅣ ㅣ ㅣ 동 ㅣ : 창 ㅣ 생 나 ㅣ : 문 ㅣ ㅣ (침대발치) 이런 구조였어. 나는 동생을 향해 몸을 돌려 새우잠을 자는 자세였지. (이해 어렵게 표현해서 미안.....)
◆Qnxwlg6lDth 2020/05/13 22:25:38 ID : Qre3O2smIHy
나는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잔뜩 겁을 먹었던 것과는 달리, 내 눈 앞엔 도롱도롱 침까지 흘려가며 잘 자고 있는 동생이 보였어. 어쩐지 꽤 안심이 됐지. 그래서 난 ‘괜히 겁먹었네.’란 생각을 하며, 자연스럽게 몸을 뒤로 돌렸어.
이름없음 2020/05/13 22:27:29 ID : vinO5WrxWpb
ㅂㄱㅇㅇ
◆Qnxwlg6lDth 2020/05/13 22:27:57 ID : Qre3O2smIHy
‘아....아아......’ 등 뒤로 나있는 커다란 내 방 창문. 그 곳에는 분명 누군가가 있었다. 파들파들 떨고 있는 누군가가 분명 그 창 앞에 서 있었어. 나는 들려오는 신음소리를 내 입으로 내 뱉게 됐지.
◆Qnxwlg6lDth 2020/05/13 22:31:11 ID : Qre3O2smIHy
너무 놀라 그대로 몸이 굳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망쳐야해!’란 문장이 머릿속에 가득 들어찼어. 하지만 정말 몸이 이대로 꽝꽝 굳어버리고야 만건지, 아무리 움직이려해도 미동도 하지 않았지. 나는 그저 누워서 그 창을 바라보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어. 내가 잠시라도 한 눈을 팔면 저 ‘무언가’가 내게 달려들 것만 같은 공포심에 눈을 감지도 못하면서 말야.
◆Qnxwlg6lDth 2020/05/13 22:35:01 ID : Qre3O2smIHy
얼마나 지났을까. 밤구름이 걷힌 건지 서서히 달빛이 들어오기 시작했어. 나는 밀려오는 두려움에 몸서리를 쳐야만 했지. 둥- 둥- 심장이 발 밑으로 곤두박질치며 뛰어대는 느낌. 손발이 내 것이 아니라고 느껴질 만큼 차가워졌어. 그리고 이내 달빛은 예의 ‘무언가’를 서서히 비췄다.
◆Qnxwlg6lDth 2020/05/13 22:37:05 ID : Qre3O2smIHy
아.... 사실 나는 창 밖의 ‘무언가’가 정말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방금 전 들었던 소리 조차 구분 못할 순 없지. 나는 그저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뿐이었어. 달빛이 굳이 그 비틀어진 몸을 보여주지 않았어도 충분했단 말이야.
◆Qnxwlg6lDth 2020/05/13 22:40:19 ID : Qre3O2smIHy
나는 다시 꽈악 눈을 감고, 멋대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계실 곳은 여기가 아니예요. 제가 잘못했으니까 빨리 돌아가세요. 할머니는 잘못이 없어요. 여기서 그만 아파하세요. 제발 누구든 할머니 좀 도와주세요. 길 좀 알려주세요. 내 앞에서 고통스러워 하지 않게 해주세요.’ 뭐 이런 식으로 말야. (솔직하게 말하면 그 때 반 쯤 패닉에 빠진 상태였어서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아. 누구든 도와달라고 중얼거렸던 것만은 확실하게 생각나지만.)
◆Qnxwlg6lDth 2020/05/13 22:43:26 ID : Qre3O2smIHy
“언니!!!” 나는 순간 허억, 하고 용수철처럼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여전히 심장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빠르게 뛰고 있었고, 온 몸은 전력질주라도 한 것처럼 땀에 푹 절어있었어. 거기에 덜덜 떨리는 사지는 덤. 나는 파들거리는 양 손을 들어올려서 세차게 양 뺨을 내려쳤다.
◆Qnxwlg6lDth 2020/05/13 22:46:17 ID : Qre3O2smIHy
동생은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날 깨웠다가, 연신 자해를 하는 날 보고 당황하며 부둥켜 안았어.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말야.
◆Qnxwlg6lDth 2020/05/13 22:49:11 ID : Qre3O2smIHy
동생 말로는, 자기가 한참 잘 자고 있던 중에 어디선가 쥐새끼 소리같은 게 나기에 짜증스럽게 잠에서 살짝 깨어났대. (쥐새끼..... 지금 들어도 마상한다.....) 짜증을 참고 ‘곧 조용해지겠지’ 싶어서 다시 잠을 청하려는데, 여전히 그 찌걱거리는 소리가 나더라는 거야. 결국 잠에서 깨어난 동생이 눈을 떴더니, 내가 등을 돌린 채로 움찔움찔거리면서 이를 가는 것처럼 굉장히 듣기 싫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고 했어. 그래서 작작하라고 날 흔들어 깨운거지.
◆Qnxwlg6lDth 2020/05/13 22:52:18 ID : Qre3O2smIHy
나는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면서 생각했어. 나는 분명 동생을 바라보고 잠들었고, ‘그 소리’에 깨어났을 때도 여전히 그 자세였다. 그러나 동생이 날 깨울 때, 난 창을 바라보고 있었지.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이었던 걸까? 아니, 애초에 그 게 꿈이긴 했을까?
◆Qnxwlg6lDth 2020/05/13 22:53:04 ID : Qre3O2smIHy
그리고 난 그 날을 시작으로,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그 소리’에 시달려야 했다.
◆Qnxwlg6lDth 2020/05/13 22:55:53 ID : Qre3O2smIHy
오늘은 여기까지. 오랜만에 돌아온 만큼, 평소보다는 최대한 길게 이야기를 풀어봤는데 잘 읽혔을까? 갑자기 다시 레스를 쓰다보니 두서없이 막 뱉은 것 같아 속상하다. 쓸데없이 문장이 길어져서 읽기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아.
◆Qnxwlg6lDth 2020/05/13 22:58:31 ID : Qre3O2smIHy
현생 탓에 자주 오진 못하지만, 천천히라도 썰을 풀테니 혹여 내가 오지 않을까 걱정하진 않아도 돼. 언젠간 이 케케묵은 옛 이야기를 더 이상 풀지 않겠노라고 마음 먹게되면, 꼭 미리 이 곳에 말을 하고 떠날게.
◆Qnxwlg6lDth 2020/05/13 22:59:11 ID : Qre3O2smIHy
모두 좋은 밤. 따뜻한 꿈 꾸길 바라. 또 만나자.
이름없음 2020/05/13 23:53:25 ID : 5eY7dTSE05V
오늘 처음봤는데 천천히 오다니 생각날 때 마다 들릴게 행복하고 아프지마
이름없음 2020/05/14 00:24:37 ID : AY003B9hgqm
오늘 처음 봤는데 방금 정주행 하고 오는 길이야 스레주가 이야기를 너무 실감나게 잘 써줘서 글 읽는 내내 같이 울고 웃은거 있지! 어디사는 누구인지도 모르는 정말 남이지만 뭔가 가까운 사이인것마냥 걱정되고 위로해주고싶네ㅠ 국화도 잘 지내고있으면하다 스레주 코로나 조심하고 항상 행복하길 바라!
이름없음 2020/05/14 14:51:00 ID : 42MjdDApbCo
국화이야기가 더는 없더라도 레주 이야기라도 조금씩 풀어줬으면 좋겠어ㅠㅠ 항상 기다리고있을게 항상 행복하길바래
◆Qnxwlg6lDth 2020/05/14 22:21:46 ID : Qre3O2smIHy
또 왔어. 다들 참 다정한 말 남겨줘서 고마워. 마음이 막 따숩다.
◆Qnxwlg6lDth 2020/05/14 22:22:58 ID : Qre3O2smIHy
잠깐이라도 떠들어보고 가려고 찾아왔어. 그럼 다시 한 번 고등학생 때로 돌아가볼까?
◆Qnxwlg6lDth 2020/05/14 22:24:15 ID : Qre3O2smIHy
나는 전 날 말했던 것처럼, 매일 밤 ‘그 소리’에 덜덜 떨어야만 했어.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일주일이 되는 사이 내 얼굴은 눈에 띄게 수척해졌지.
◆Qnxwlg6lDth 2020/05/14 22:26:35 ID : Qre3O2smIHy
그 날 이후 동생은 나와 함께 잠에 드는 걸 거부했기 때문에, 도살장에 끌려가는 심정으로 홀로 침대에 눕곤 했다. 억지로 가오나시 같은 걸 떠올리면서 말야. 왜. 가오나시는 아...아아.... 거려도 귀엽잖아. 물론 이런 내 노력은 정말 아무런 소용이 없었어.
◆Qnxwlg6lDth 2020/05/14 22:28:37 ID : Qre3O2smIHy
그렇게 열흘 쯤 지났을까. 도저히 몸이 버텨주질 않아 조퇴를 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오랜만의 손님을 맞이하게 됐다. 예상치도 못한 S의 방문이었지.
◆Qnxwlg6lDth 2020/05/14 22:30:51 ID : Qre3O2smIHy
S는 우리가 졸업한 중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국립 고교에 진학했었기에, 사실상 나와 마주칠 일이 없었어. 그래서 졸업 이후로는 어떠한 연락도 오간 적이 없었고. 뭐 물론 S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그 애 생각에 내가 피해왔던 것도 없잖아 있었지만 말야.
◆Qnxwlg6lDth 2020/05/14 22:33:10 ID : Qre3O2smIHy
그런 S가 우리집 앞에 덩그러니 서있더라고. 평소였으면 굉장히 격양된 목소리로 방방 뛰며 반겨줬겠지만, 사실 알다시피 난 그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어. 그저 물끄러미 S를 바라보기만 했지. 그리고 어쩐지 S도 그닥 밝은 얼굴은 아니었다.
◆Qnxwlg6lDth 2020/05/14 22:35:00 ID : Qre3O2smIHy
“여긴 무슨 일로 왔어?” 어찌보면 참 퉁명스럽게 건넨 말이었지만, S는 아무런 대꾸도 없었어. 그저 입술을 앙다문 채 제 발치를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지.
◆Qnxwlg6lDth 2020/05/14 22:38:54 ID : Qre3O2smIHy
“미안한데 내가 지금 몸상태가 별로라, 나중에 연락할게.” 나는 그런 S를 지나쳐 우리집 대문 앞으로 향했어. “.....국화!” 초인종을 누르려던 나는 순간 멈칫하고 몸을 굳혔다.
◆Qnxwlg6lDth 2020/05/14 22:41:49 ID : Qre3O2smIHy
나는 이마에 흐르는 식은 땀을 손으로 훔쳐내곤 다시 S에게 다가섰어. 그러자 S는 마른 기침이라도 토해내듯 두서 없이 제 이야기를 시작했다.
◆Qnxwlg6lDth 2020/05/14 22:47:59 ID : Qre3O2smIHy
내가 심하게 앓던 그 시기에 국화는 다시 학교로 찾아왔었다고 해. 아마 학업을 포기하기 위해서 였겠지. 그리고 남은 짐을 챙기고자 교실에 방문했을 때, 자신을 힐끔거리며 주시하는 아이들을 향해 ‘부끄러운 걸 알고 있거든, 그 입과 손으로 더 이상 잘못을 반복하지 말라’고 했다더라. 그 말에 몇몇 아이들은 짜증을 부리며 교실 밖을 뛰쳐나갔고, 몇 아이들은 어쩐지 숙연해졌다고 했어.
◆Qnxwlg6lDth 2020/05/14 22:54:45 ID : Qre3O2smIHy
국화는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혀를 차곤, 남은 짐을 챙겨 교실을 떠났다. 그리고 그런 국화를 쫓아 나온 S. S는 국화에게 나의 안위와 소식을 물었다고 해. 혹시 ‘그 날 밤의 일’ 때문에 이렇게 앓는 건지, 그 애(나)가 널 찾으러 갔던 걸 알고 있는지.
이름없음 2020/05/14 23:03:23 ID : 79jy7BAmJVe
스레주가 행복하길 바랄게.
◆Qnxwlg6lDth 2020/05/14 23:09:50 ID : Qre3O2smIHy
S의 말을 다 들은 국화는 조용히 미소를 지어보였다고 했다. ‘곧 만날 인연에 초조해할 이유가 없다’면서 말야. 그리곤 불현듯 무언가 떠오른 사람처럼 S에게 부탁을 했다고 하더라고. S네 강아지가 무지개 다리를 건너게 되면, 나에게 그 강아지의 물건을 전해달라고 말야.
◆Qnxwlg6lDth 2020/05/14 23:10:19 ID : Qre3O2smIHy
고마워.
◆Qnxwlg6lDth 2020/05/14 23:11:51 ID : Qre3O2smIHy
S는 처음 국화로부터 그 부탁을 들었을 때는 ‘내가 강아지 키운다는 말을 했었나?’ 싶어서 한 편으론 찝찝함을 느꼈다고 해. 하지만 예의 그 아이 앞에서 할 수 있는 건 그저 알겠다는 대답을 하는 게 전부였다고 했어.
◆Qnxwlg6lDth 2020/05/14 23:14:46 ID : Qre3O2smIHy
“그리고 어제. 우리 마루가 죽었어.” S는 침통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끝마쳤다. 그리고 그 아이의 손에는 적당히 낡은 목줄 하나가 들려있었지.
이름없음 2020/05/14 23:16:20 ID : 8o0oJRDs9Ai
ㅂㄱㅇㅇ
◆Qnxwlg6lDth 2020/05/14 23:18:46 ID : Qre3O2smIHy
S로부터 생활 흔적이 묻어있는 목줄을 받아들고, 나는 한 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그 애가 주저앉아 잠시간 흐느끼는 것도, 미련 가득한 표정으로 내 손의 목줄을 바라보는 것도, 옷가지를 훌훌 털고 일어나 떠나는 것도, 그저 가만히 서서 바라보기만 했어. 움직일 힘도 부족하긴 했지만, 내가 뭘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서 그랬던 게 좀 더 컸지.
◆Qnxwlg6lDth 2020/05/14 23:20:59 ID : Qre3O2smIHy
S가 떠나고 나서 나는 그 목줄을 가지고 집으로 들어왔어. 목줄에선 방금 전까지 사용했던 것처럼, 강아지 특유의 약간 비릿한 냄새가 풍겼다.
◆Qnxwlg6lDth 2020/05/14 23:25:57 ID : Qre3O2smIHy
강아지를 키워본 적 없었던 난, 그 냄새에 살짝 인상을 찡그리곤 방에 들어오자마자 창틀에 대충 목줄을 던져뒀지.
◆Qnxwlg6lDth 2020/05/14 23:27:53 ID : Qre3O2smIHy
전에 살짝 알려준 적이 있었지만, 당시 내 방 구조는 아래와 같았어. ㅡㅡㅡㅡㅡㅡㅡㅡ(방 문)ㅡ | | | | 침 | (창문) | 대 | | |ㅡㅡㅡㅡㅡ| | 구조상 방문을 열자마자 왼 쪽에 창틀이 있었기 때문에, 귀찮을 때마다 핸드폰 같은 작은 짐을 대충 올려두곤 했다.
이름없음 2020/05/14 23:30:41 ID : 79jy7BAmJVe
보고있어 :)
◆Qnxwlg6lDth 2020/05/14 23:33:24 ID : Qre3O2smIHy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간단히 씻고 방에 돌아왔고, 지쳐 쓰러지듯 침대에 누워 까무룩 잠이 들었다. 땅거미가 채 지기도 전, 오직 나 홀로 머물고 있는 우리 집에서 말야.
◆Qnxwlg6lDth 2020/05/14 23:34:56 ID : Qre3O2smIHy
얼마나 지났을까, 약간의 생활소음에 눈을 떴어. 자잘한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 ‘아 벌써 저녁시간인가보구나.’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지.
◆Qnxwlg6lDth 2020/05/14 23:37:31 ID : Qre3O2smIHy
오랜만에 푹 잠들어서 였을까. 몸이 전과 달리 가볍다고 느껴졌다. 과하게 둥실둥실 떠 있는 기분. 가라앉았던 기분까지 산뜻해지는 느낌에, 제자리에서 이리저리 스트레칭을 했어. 그 때 어디선가 타닥타닥 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Qnxwlg6lDth 2020/05/14 23:39:07 ID : Qre3O2smIHy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어. 플라스틱 줄넘기 손잡이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 같기도 했고, 싸구려 구슬로 구슬치기를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한 소리.
◆Qnxwlg6lDth 2020/05/14 23:41:13 ID : Qre3O2smIHy
‘어디서 애들이 놀고 있는 건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을 법한 소리. 그리고 곧이어 그 소리를 짖누르듯, 다시 심장이 죄여들어오는 ‘그 신음소리’가 새어들려오기 시작했다.
◆Qnxwlg6lDth 2020/05/14 23:43:47 ID : Qre3O2smIHy
아. 그 날의 공포는 지금껏 시달려왔던 그 어떤 것과도 달랐다. 나는 더 이상 이불 속에 숨어있을 수 없었거든. 창문과 나의 거리는 불과 50센치미터 남짓. 해일처럼 밀려 가까워지는 그 신음소리에 나는 주르륵 주저앉았어.
◆Qnxwlg6lDth 2020/05/14 23:46:08 ID : Qre3O2smIHy
귀를 막아도, 아무리 비명을 질러도 그 소리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왜 여느 때처럼 가위에 눌리지 않아, 내가 이리도 창 가까이에 와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어. 나는 철저히 창문으로부터 시선을 돌리고 두 눈을 감은채 손으로 귀를 막았지.
◆Qnxwlg6lDth 2020/05/14 23:47:07 ID : Qre3O2smIHy
그 때 문득 뜨겁고 질척한 감촉이 팔꿈치에 닿았다.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비명을 지르며 허우적거렸어.
이름없음 2020/05/14 23:48:44 ID : LdPfWkq7Bte
ㅂㄱㅇㅇ ㅠㅠ
◆Qnxwlg6lDth 2020/05/14 23:49:38 ID : Qre3O2smIHy
한동안 허공으로 사지를 떨어대던 나는 문득 이 뜨거운 감촉이 날 해치지 않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슬금슬금 눈을 떴지. 그런 내 눈에 처음 들어온 건 창틀에 걸쳐져 있는 비틀리고 쪼글쪼글한 손가락 두 개였다.
◆Qnxwlg6lDth 2020/05/14 23:51:21 ID : Qre3O2smIHy
난 바로 다급하게 숨을 들이키고 양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았어.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숨을 들이쉬고 내뱉었지. 그리고 그 뜨겁고 축축한 감촉이 종아리를 스쳤다.
◆Qnxwlg6lDth 2020/05/14 23:52:44 ID : Qre3O2smIHy
나는 곧바로 종아리 쪽을 바라봤어. 그리고 탁 하고 맥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왜냐고? 거기엔 정말 예상치도 못했던 강아지가 있었거든. 혀를 살짝 내밀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보숭보숭한 흰 강아지.
◆Qnxwlg6lDth 2020/05/14 23:54:39 ID : Qre3O2smIHy
긴장이 풀린 것도 잠시. 창가에선 다시 비틀린 쇳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방으로 들어오는 건가? 싶어서 황급히 창을 바라봤지. 그 다음 내 눈에 들어온 건,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흉측한 손가락. 그리고 살짝 헤진 그 목줄이었다.
◆Qnxwlg6lDth 2020/05/14 23:56:32 ID : Qre3O2smIHy
뭔가 머리 속에 번개가 지나가는 느낌이었어. ‘아! 이거! 이 강아지껀가? 얘가 S네 강아지?’ 속으로만 떠올린 생각이었지만, 이 강아지는 뭐라도 알아챈 모양인지 내게로 다가와 낑낑거렸다.
◆Qnxwlg6lDth 2020/05/14 23:57:46 ID : Qre3O2smIHy
그 때부턴 사실 생각보다는 본능적으로 움직였지. 숨을 크게 들이쉬고 침을 한 번 크게 삼킨 뒤, 천천히 창가로 움직였어. 목줄을 잡아내기 위해서 말야.
◆Qnxwlg6lDth 2020/05/14 23:59:52 ID : Qre3O2smIHy
이 땐 사실 너무 긴장해서인지 잘 생각나진 않아. 그 손가락이 나한테 닿을까. 혹여 왁! 하고 손가락의 주인이 덮치진 않을까. 숨조차 참아가면서 탁,탁, 검지 손톱으로 목줄을 떨어트렸거든. 다행히 그 내가 예상했던 최악의 시나리오들은 일어나지 않았어.
◆Qnxwlg6lDth 2020/05/15 00:01:27 ID : Qre3O2smIHy
방 바닥으로 툭 떨어진 목줄을 가지고, 나는 잽싸게 방 구석으로 기어갔다. 부숭부숭한 강아지도 타닥거리며 날 따라왔지. 그제서야 알 수 있었어. ‘아까 그 소리는 니 발걸음 소리였구나.’
◆Qnxwlg6lDth 2020/05/15 00:03:18 ID : Qre3O2smIHy
나는 덜덜 떨며 그 강아지의 목에 목줄을 채웠어. 어떻게 채우는 건지도 몰라서 몇 번이나 헛손질을 했지. 네 다섯번을 허우적거리고 나서야 그 애의 목에 목줄을 채울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답답했을텐데 얌전히 기다려준 게 참 고맙네.
◆Qnxwlg6lDth 2020/05/15 00:06:18 ID : Qre3O2smIHy
목줄이 다 채워지자 강아지는 늠름하게 창 앞으로 섰어. (늠름...이라고 쓰긴 했는데 사실 걍 쭁쭁쭁 가서 뚜둠! 하고 멈췄음...) 그리고 아주 크게 왕!! 하고 짖었지. 나는 잔뜩 겁을 먹고 방 구석으로 숨어들었어.
◆Qnxwlg6lDth 2020/05/15 00:10:32 ID : Qre3O2smIHy
그 순간 손가락이 말도 안되는 속도로 움직였어. 그리곤 뒤틀린 할머니가 기이한 소리를 내며 방충망을 찢기 시작했지. 오래된 나무 문이 열릴 때 날 법한 끼이익 하는 그 소리 말야. 난 그걸 보면서 방 안에 있던 기타 넥을 움켜쥐고 거꾸로 치켜들었다. (뭔가 방에 무기가 될 만한 게 그거 밖에 안보였어.... 베개로 때려봤자 아무 데미지도 없을 것 같고....)
◆Qnxwlg6lDth 2020/05/15 00:13:37 ID : Qre3O2smIHy
하지만 내가 기타를 잡은 게 무색하게 강아지가 바로 그 찢어진 틈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쏜살같이 밖으로 달려나갔어. 할머니는 잔뜩 화가 난 것처럼 삐걱삐걱 강아지를 쫓아 사라졌고. 나 역시 강아지 걱정에 두려움도 잊고 찢어진 방충망 밖으로 몸을 던졌다.
◆Qnxwlg6lDth 2020/05/15 00:16:16 ID : Qre3O2smIHy
천천히 창 밖으로 떨어지며 난 저 멀리 달려가고 있는 두 인영을 바라봤고, 몸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 화악, 하고 침대에서 눈을 떴다. 째깍- 째깍- 시계바늘 소리가 ‘이제 현실이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어.
◆Qnxwlg6lDth 2020/05/15 00:18:19 ID : Qre3O2smIHy
몸이 뜨거운 것 같으면서도 지독히 추웠다. 부들거리면서 몸을 일으켜 바라본 창문은 찢겨진 곳 하나 없이 여전했고, 창틀에 놓인 목줄도 내가 놓아둔 그대로였지.
◆Qnxwlg6lDth 2020/05/15 00:19:32 ID : Qre3O2smIHy
자아,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야. 혹시 아직까지 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감사를 표하고 싶네.
이름없음 2020/05/15 00:20:15 ID : 8o0oJRDs9Ai
매 분마다 새로고침하면서 보고 있었어. 써줘서 고마워
◆Qnxwlg6lDth 2020/05/15 00:20:15 ID : Qre3O2smIHy
늘 말했던 대로, 언제고 시간이 나거든 돌아올게. 잘 자고 포근한 꿈 꾸길 바라. 또 보자.
◆Qnxwlg6lDth 2020/05/15 00:20:54 ID : Qre3O2smIHy
천만에. 내가 더 고마운 걸. 잘 자고 다음에 또 만나자.
이름없음 2020/05/15 00:50:39 ID : 79jy7BAmJVe
잘자.
이름없음 2020/05/16 00:51:36 ID : JO9wK5gmE8m
계속 기다리고 있어:) 시간날 때 다시 돌아와줘
이름없음 2020/05/16 15:14:28 ID : AmK1yE8nSHz
스레주 돌아와줘서 고마워. 바쁠텐데 가끔 들어와서 얘기 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 푹 쉬고 다음에 봐.
이름없음 2020/05/16 20:06:07 ID : lAZcq5cHyMi
와 괴담판볼때마다 국화에게라는 스레가 꽤 보이길래 재밌나?만했지 그냥넘겼는데 오늘 정주행하고보니까 진짜 개재밌고 겁나슬프네...
이름없음 2020/05/17 23:09:38 ID : JO9wK5gmE8m
기다리는중
이름없음 2020/05/19 10:43:11 ID : 42MjdDApbCo
국화는 다 알았던걸까 스레주 항상 행복하길 기도해
이름없음 2020/05/19 10:56:09 ID : E5SGso2JRvi
헐 다시 돌아왔는지 몰랐당
이름없음 2020/05/20 11:43:58 ID : JO9wK5gmE8m
ㄱㅅ
이름없음 2020/05/26 05:59:36 ID : AmK1yE8nSHz
ㄱㅅ~!~!!!!
이름없음 2020/05/26 08:02:31 ID : TRzTQpQtwNw
이름없음 2020/05/26 10:51:22 ID : 1CqmINtbjvu
스레주 보고싶어 언제나 기다리고있어
이름없음 2020/05/27 13:58:02 ID : Qre3O2smIHy
ㄱㅅ
이름없음 2020/05/27 16:38:53 ID : yMrxVgrupU3
스레주 글은 흡입력이 있는것같아. 기다릴게:)
이름없음 2020/05/29 21:00:06 ID : mLhzbvdDs8r
스레주 안녕? 오늘 정주행시작해서 이제 다 봤어. 담담하면서 아련한느낌도 나고 뭔가 편안해지는 말투라 집중해서 봤어. 이어질 이야기 기다릴게. (+성별 궁금한데 알려줄 수 있어?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으니까 싫다면 그냥 무시해줘.)
이름없음 2020/05/29 21:47:50 ID : bbeGmk03woF
스레주는 아니지만! 에서 스레주가 국화한테 같은 텐트에서 자자고 했으니까 같은 성별이라는 건데, 에서 여중생이라고 써있으니까 스레주는 여중생이라는 뜻이겠지? 결론은 둘 다 여자!!
이름없음 2020/05/29 21:49:56 ID : mLhzbvdDs8r
아, 그렇구나! 알려줘서 고마워. 그러네 그런 구절이 있었던거 같아.
이름없음 2020/05/31 12:42:30 ID : UY4Lbxu2oK1
기다리고 있어
이름없음 2020/05/31 14:41:28 ID : pWi8jbh89Bz
기다리고 있어ㅠ!!
이름없음 2020/05/31 14:50:19 ID : s7e5fglBeZf
기다리고 있어
이름없음 2020/06/02 04:47:31 ID : eE781bhgkoJ
와...진짜 장난없다....스레주 기다릴께 ..
이름없음 2020/06/02 16:08:45 ID : xzSHvcnxu2n
스레주 오늘 다읽었어 돌아와줘
이름없음 2020/06/24 12:46:37 ID : NwE7gi1jxWo
레주야..ㅠㅠㅠ
이름없음 2020/06/24 14:53:09 ID : dA3SMoY9xVe
나도 아직 레주 기다리고 있어. 언제든지 돌아와서 글 남겨줘!
이름없음 2020/06/24 22:30:09 ID : umslzRBcE1d
기다릴게 레주 꼭 와주기만해줘
이름없음 2020/06/26 15:02:15 ID : O8mE1fQoKY1
기다릴게 스레주
이름없음 2020/07/31 13:18:20 ID : oNs67s4JQq1
정주행하러 온김에 갱신
이름없음 2020/07/31 17:23:53 ID : Y67s3u3Dvwn
기다릴겜!!
이름없음 2020/07/31 20:07:37 ID : 3xyHxu2k04K
오늘 정주행 했는데 무섭다기보단 슬퍼서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아 너무 잘 보고 있어!! 힘들수도 있는데 틈틈이 써줘서 고마워
이름없음 2020/08/05 16:36:58 ID : 3xyHxu2k04K
나 아직 기다리고 있어! 빨리 시간 나서 왔슴 좋겠당
이름없음 2020/08/23 22:48:35 ID : Mi8lAY04IGr
레주 안녕 오늘 처음 발견해서 정주행했는데 눈물콧물 다 짰어..이런 글 써줘서 고마워
이름없음 2020/08/23 23:25:41 ID : e6nTWrzhtcr
스레주 기다릴게ㅠㅠㅠ
이름없음 2020/08/24 00:35:51 ID : hfbyFeIFa4H
나도 기다리고있어!!
이름없음 2020/08/24 09:14:02 ID : nU2NxO1fQpU
기다릴게.
이름없음 2020/08/24 21:13:55 ID : wHBgi4NyY4N
나도 기다리고 있어!
이름없음 2020/08/25 15:06:34 ID : K2GmmrfgmFg
기다리고 있어 레주
이름없음 2020/08/26 15:04:27 ID : ba2moFcts5R
와 레주... 글 잘 봤고 기다리고있을게 그리고 항상 건강하길 바래!
이름없음 2020/08/28 23:43:49 ID : Nunvcttjvvj
ㄱㅅ
이름없음 2020/08/29 05:41:31 ID : 82q3XBBummm
기다리고 이(:₩ ㅠㅠ
이름없음 2020/08/29 13:53:23 ID : p9g5bDAqqmG
.
이름없음 2020/08/29 14:51:58 ID : Nunvcttjvvj
왜?
이름없음 2020/08/30 08:01:20 ID : moMkts7arak
.
이름없음 2020/12/03 18:35:26 ID : AmK1yE8nSHz
ㄱㅅ
이름없음 2020/12/03 21:45:39 ID : Le459ck7bzW
이얍 갱신!
이름없음 2020/12/04 05:05:15 ID : umreZhfcGq6
너무재미써ㅠㅜㅠ 밤새서 다봐써ㅠㅠㅠ
이름없음 2020/12/04 06:13:23 ID : tzfbzTPdA0o
나도..밤 새버려따
이름없음 2020/12/04 11:24:00 ID : TRyNzhvBgrs
너무 재밌잖아ㅠㅠㅠㅠㅠ 국화얘기 너무 슬퍼.. 레주 죄책감 갖지마......
이름없음 2020/12/04 12:29:44 ID : KY62IJRDy7u
안녕 레주! 아직 기다리고 있어!
이름없음 2020/12/04 19:34:31 ID : tzfbzTPdA0o
레주 기다리기 1일차
이름없음 2020/12/05 21:45:45 ID : zf9fPa3yHCl
19년도에 시작햇던게 아직 하고있네 진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정주행했다 넘 재밋오 근데 국화에게 하지 못했던 말 이라고 하는거 보면 그날밤때문에 이후에 국화한테 무슨 일이 생긴건가..? 레주 언넝 와서 얘기 풀어줭 넘 재밋게 보고잇어!
이름없음 2020/12/05 23:35:40 ID : tzfbzTPdA0o
레주 기다리기 2일차
이름없음 2020/12/06 14:16:09 ID : tfWo7zhusjb
헉 다들 스레주 기다리고있네ㅋㅋㅋㅋㅋ
이름없음 2020/12/06 15:38:53 ID : tzfbzTPdA0o
레주 기다리기 3일차
이름없음 2020/12/08 10:52:16 ID : bBatwK5e1wm
이제 수험생인데 정신 못 차리고 읽었어 레주가 얼른 돌아와줬으면 하는 마음이야. 학업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글 읽으면서 풀린 거 같아 정말 잘 읽었어 고마워 ㅎㅎ
이름없음 2020/12/08 13:31:01 ID : veIE9vBbCji
학교 끝나고 바로 달려왔엉!~!!@ 레주를 기다립니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아아ㅏㅇ
이름없음 2020/12/08 18:40:41 ID : 7s786ZdBhza
레주야 기다리고있어어어어!!!!!!!!돌아와조!!!!
이름없음 2020/12/08 18:46:38 ID : B87cNBy2JTS
레주 기다리기 5일차
이름없음 2020/12/08 19:59:41 ID : veIE9vBbCji
이얍 갱시인
이름없음 2020/12/08 23:34:17 ID : 5gkpU6kr87c
개앵시인 !
이름없음 2020/12/09 00:13:20 ID : 7s786ZdBhza
12/9일 스레주 기다림!
이름없음 2020/12/09 00:49:50 ID : B87cNBy2JTS
스레주 기다리기 6일차
이름없음 2020/12/09 16:26:38 ID : lfO6447upVd
나 정말 댓글..처음 남겨봐 댓글 남기려고 이번에 가입했어..! 이야기 너무 잘 보고 있고 기다리고 있어! 국화.. 어떻게 된건지 너무 궁금하다
이름없음 2020/12/10 11:54:35 ID : MjeGq4Zcrgq
오늘도 갱신하러 왔지롱
이름없음 2020/12/10 12:19:33 ID : B87cNBy2JTS
스레주 기다리기 7일차
이름없음 2020/12/10 13:42:40 ID : 4IKZclhfapV
갱신갱신
이름없음 2020/12/10 20:53:21 ID : 04E1bg0sqpf
왜 다들 갑자기 갱신하는거야?레주가 돌아온댔어?뭐야
이름없음 2020/12/12 00:00:46 ID : tzfbzTPdA0o
레주 기다리기 9일차
이름없음 2020/12/17 13:26:03 ID : nDs3yLdWmIE
레주 기다릴게
이름없음 2020/12/17 13:28:34 ID : veIE9vBbCji
댓글이 아니라 레스!!레스!레스으으으으!~!~!!!!!!!!!!!!!!!!!!!!!!!!!!!!!!!!!!!!
이름없음 2020/12/17 13:36:06 ID : 3Dz82oMnWqi
이름없음 2020/12/17 16:27:44 ID : tzfbzTPdA0o
레주 기다리기 14일차
이름없음 2020/12/17 17:57:24 ID : E0060nClzQq
와 진짜 몰입력 오진다 s네 강아지가 꿈에 나와서 그 할머니귀신을 물리쳐준거구나 예로부터 강아지나 고양이는 갑작스럽게 찾아오거나 갑작스레 떠나는이유가 주인을 지켜주려고 오는 수호신같은 존재라더니 진짜구나
이름없음 2020/12/18 09:13:12 ID : Le459ck7bzW
진짜 슬프지ㅠㅠㅠㅜㅠ
이름없음 2020/12/18 09:55:39 ID : i4HvdClu7dU
스레주어디가써ㅠㅠㅠ
이름없음 2020/12/18 09:56:48 ID : kpSHBbAZhdV
그러게ㅠ 돌아와 스레주우ㅠㅠㅠㅜㅜㅠㅜㅠㅠㅜ
이름없음 2020/12/18 23:23:13 ID : tzfbzTPdA0o
레주 기다리기 15일차
이름없음 2020/12/19 02:02:37 ID : wFbijipdU2L
와 진짜 재밌다 ㄹㅔ주야 글 진짜 잘 쓴다...
이름없음 2020/12/19 12:10:14 ID : B87cNBy2JTS
레주 기다리기 16일차
이름없음 2020/12/23 15:35:27 ID : hgpfhwGmtvA
난 오늘도 레주 기다리는 중 ~! 혹시 몰라서 스탑 걸고 써 !
이름없음 2020/12/23 16:12:58 ID : Le459ck7bzW
레주 기다리기 20 일차
이름없음 2020/12/24 00:01:38 ID : 5e1zO8mLhxO
심하게 앓던 그 시기라는 건 레주가 고교입학하고 뺑소니사건 목격 후 할머니 귀신에 시달리던 때로 알고있는데 그때 국화가 다시 찾아왔다는건 무슨 소리지? 국화가 '부끄러운줄 알면 다신 그러지 말아라' 야단쳤다는 건 레주에게 일부러 화장실 귀신역을 맡긴 중3때 반 아이들일텐데 지금 이때는 이미 다 고등학교 진학해서 뿔뿔이 흩어진 상태 아닌가
이름없음 2020/12/24 00:03:50 ID : NvyIGoE2lhh
흡입력이 아니라 흡인력
이름없음 2020/12/24 00:11:29 ID : tzfbzTPdA0o
레주 기다리기 21일차
이름없음 2020/12/24 09:01:10 ID : Le459ck7bzW
ㅋㅋㅋ인정!
이름없음 2020/12/24 12:02:48 ID : oY2srBy0qZa
헐 신기해ㅜ
이름없음 2020/12/25 22:59:37 ID : eJVcLfbu646
레주가 국화집 찾아갔다가 돌아오고 며칠앓아누웠던 그 시기 인것같은데??
이름없음 2020/12/25 23:36:03 ID : B87cNBy2JTS
레주 기다리기 22일챠
이름없음 2020/12/27 14:38:18 ID : MklilA3TSNy
레주야 돌아와ㅠㅠ
이름없음 2021/01/04 11:40:12 ID : tzfbzTPdA0o
레주 기다리기 32일차
이름없음 2021/01/04 19:59:11 ID : 7s65cK3SMjj
레주야 보고싶어ㅠㅠ
이름없음 2021/01/05 09:43:09 ID : 3TPa4JTPhgi
레주기다리기
이름없음 2021/01/07 01:32:40 ID : SE8mE5QoMqr
헉 레쥬 아직도 안왔네ㅜㅜ
이름없음 2021/01/07 01:33:41 ID : ldDvBbzPfTO
그렇게 그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끝-
이름없음 2021/01/07 23:35:26 ID : AkoHDy0mlfW
스탑걸래 레주 없는 스레 갱신해서 뭐하게ㅠㅠㅠㅠ
◆Qnxwlg6lDth 2021/01/27 17:41:11 ID : Qre3O2smIHy
.
◆Qnxwlg6lDth 2021/01/27 17:42:07 ID : Qre3O2smIHy
아 이게 맞구나. 오랜만에 왔더니 가입도 해야하고 뭔가 좀 바뀌었다.
◆Qnxwlg6lDth 2021/01/27 17:42:44 ID : Qre3O2smIHy
안녕 모두들. 벌써 햇수로 3년째네 우리.
◆Qnxwlg6lDth 2021/01/27 17:43:25 ID : Qre3O2smIHy
오랜 기간 동안 자리를 비웠었는데도 여전히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어서 꽤 놀랐어. 사실 나조차도 잊고 싶을 때가 있는 지루한 이야기라 크게 기대하지 않고 마음에 묻고 있었거든.
◆Qnxwlg6lDth 2021/01/27 17:44:26 ID : Qre3O2smIHy
긴 시간 찾아오지 않은 이유는 코로나라거나 코로나라거나 뭐 이런 저런 이유가 있었지만 각설하고. 기다려준 이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유일한 보답. 남은 이야기부터 빠르게 풀어볼게. 자, 지금부터 내가 잠에서 막 깨어난 그 시점으로 돌아가보자.
이름없음 2021/01/27 17:44:37 ID : MqpbBeZctvB
세상에 3년만에 온 레주인거야? 어떤 스레인지 몰라서 정주행하고 올게!!
◆Qnxwlg6lDth 2021/01/27 17:45:17 ID : Qre3O2smIHy
잠에서 깨어난 지 한참이 지나도록 나는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웅크려 있었다. 더없이 맑은 정신 상태로 이불 속에 둥지를 튼 것처럼 한껏 몸을 말아서 말야. 그저 눈을 뜨고 감고, 내 몸을 이곳 저곳 주무르며 시간을 보냈지. 지난 며칠간의 지독한 꿈과는 확연히 다른 꿈. 오랜만에 두려움이 아닌 궁금함으로 머릿속을 채울 수 있었어.
◆Qnxwlg6lDth 2021/01/27 17:46:06 ID : Qre3O2smIHy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초인종 소리와 함께 집안이 묘하게 소란스러워졌다. 그제서야 이불 밖을 벗어난 나는 순간 움찔거리며 몸을 떨었어. 예의 그 창문이 활짝 열려있었거든. 방충망까지 모두 말야. 뜨거웠던 이불 속 공기와 달리 찬 밤 공기를 마주하자니 절로 몸이 떨리더라.
◆Qnxwlg6lDth 2021/01/27 17:46:32 ID : Qre3O2smIHy
나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방충망과 창을 닫고 거실로 향했어. 잠에서 깬 직후에 닫힌 창문을 본 것만 같았지만 달뜬 기억이었을 것이라 무시하기로 했지.
◆Qnxwlg6lDth 2021/01/27 17:48:44 ID : Qre3O2smIHy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오자 무슨 일인지 모든 집안 식구들이 일어서있었어. 그리고 하나같이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 “왜 다들 서있어?” 몇 시간 만에 처음 내뱉은 말이라 목소리가 쩍쩍 갈라졌던게 아직도 기억난다. 내가 내 목소리에 놀라고, 이 정도면 줄기차게 놀렸을 가족들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는 사실에 또 놀라버려서.
◆Qnxwlg6lDth 2021/01/27 17:49:26 ID : Qre3O2smIHy
“윗집 할머니 돌아가셨대.” 그 중에서 가장 덤덤해보였던 동생은 비교적 건조하게 대답을 해줬다. 그 대답을 들은 나는 ‘그럴 줄 알았어’ 라고 흘려 말한 후 아빠에게 옷을 입고 나오겠노라 말했어.
◆Qnxwlg6lDth 2021/01/27 17:52:54 ID : Qre3O2smIHy
방에 다시 들어오자 싸늘했던 온도가 어쩐지 시원하다고 느껴졌다. 검은 맨투맨과 슬랙스를 챙겨입고 양말까지 꼭꼭 신은 후, 다시 방문 손잡이를 잡을 때쯤엔 상쾌하다고까지 느낄 정도였지. 그렇게 방을 나서려던 나는 문득 몸을 돌려서 창문을 닫고 창틀의 목줄을 챙겼어. 당시 감정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아마 별 생각 없이 한 충동적인 행동이었을거야.
◆Qnxwlg6lDth 2021/01/27 17:53:35 ID : Qre3O2smIHy
아빠차를 타고 도착한 대학병원 장례식장은 누가봐도 여기쯤 장례식장이 있겠구나 싶을 정도로 구석진 곳에 있었어. 나, 동생, 할머니는 병원 입구에서 내리고 아빠는 주차를 하러 주차장으로 향하셨지. 할머니는 지하로 미끄러져가는 아빠 차를 바라보다가 장례식장으로 몸을 돌려 들어가셨고, 그 뒤를 나와 동생이 졸졸졸 쫒았다.
◆Qnxwlg6lDth 2021/01/27 17:54:13 ID : Qre3O2smIHy
대학병원 구석진 장례식장에서도 윗집 할머니의 자리는 가장 구석진 곳에 있었어. 조문객과 가족이 얼마 되지 않은 아주 소박한 장례였지. 워낙 조용하신데다가 바깥 활동이 거의 없으셨던 분이라 그랬던 모양이야.
◆Qnxwlg6lDth 2021/01/27 17:55:08 ID : Qre3O2smIHy
“지미럴. 이렇게 뒤질걸 뭐한다고 그래 열심히 박스나 주웠는가 몰라. 그 양반.” 우리 할머니는 그런 그녀의 몇 안되는 지인이었지. 그래서인지 걸죽한 욕을 쏟으시면서도 연신 눈물을 훔치셨다. “다리도 아픔시롱 얌전히 집에만 있으면 좋을 것을....” 그렇게 우리 할머니는 어색하게 미소짓고 있는 윗집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향해 한참이나 혼잣말을 하셨어.
◆Qnxwlg6lDth 2021/01/27 17:57:23 ID : Qre3O2smIHy
“말벗 찾으러 그리 다니셨지요.” 상대없는 할머니의 중얼거림에 대답을 해준 사람은 윗집 할머니의 딸이었다. 그리고 따님분은 윗집 할머니가 대화를 하기 위해 폐지를 줍고 다녔다는 말을 해주셨어. 그도 그럴 것이 듣고보니 할머니께서 폐지를 주우러 가는 곳이 엉뚱하게도 모두 가정집이었더라고.
◆Qnxwlg6lDth 2021/01/27 17:58:12 ID : Qre3O2smIHy
보통 가정집보단 가게나 식당 이런 곳들에서 박스가 많이 나오잖아. 그나마도 모든 가정집을 가시는 게 아니라 딱 서너집만을 그렇게 다니셨더라. 우리집, 길 건너의 쌍둥이 형제네 집, 그 바로 옆 집. 뭐 이 정도? (솔직히 쌍둥이네 집 말곤 왕래가 없는 집이라 거의 못 알아 들었어.....)
◆Qnxwlg6lDth 2021/01/27 17:58:57 ID : Qre3O2smIHy
이후에 나는 어른들이 시키는대로 절을 하고 물러섰다. 어른들이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 동생과 함께 육개장이나 전 같은 몇 음식을 주워먹기도 하면서 말야.
◆Qnxwlg6lDth 2021/01/27 18:00:19 ID : Qre3O2smIHy
그리고 집으로 다시 돌아갈 때 쯤, 문득 생각나 챙겼던 목줄을 따님께 내밀었어. ‘할머니가 꼭 챙겨달라고 하셨던 거다.’ 뭐 이런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면서. 따님은 잠시 주춤거리시다가 그걸 방 안? (상주들이 짐을 두는 창고 같은 느낌이었어) 같은 곳으로 챙겨가셨다. 고맙다는 말도 덧붙여 주시면서.
◆Qnxwlg6lDth 2021/01/27 18:01:29 ID : Qre3O2smIHy
집으로 돌아가는 길. 도로 위에 반짝이는 차량 후미등과 가로등을 멍하니 바라보다, 나는 그제서야 할머니가 내 방 창문으로 반복해서 찾아왔던 이유를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었어. 내 방 창 밖이 우리 집에서 나오는 폐지류를 모아두는 곳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거지.
◆Qnxwlg6lDth 2021/01/27 18:02:44 ID : Qre3O2smIHy
‘어쩌면 할머니는 늘 하던 일을 반복하셨던 걸지도 몰라.’ 그런 생각이 들자 어쩐지 가슴께가 시려오더라. 조용하게 외로웠던 윗집 할머니. 영문 모를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폐지를 줍고 말벗을 찾아다녔을지 모르는 부지런한 그 할머니. 나는 어쩐지 외로웠던 윗집 할머니가 S의 강아지를 만나고서야 먼 길을 훌훌 떠날 수 있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지독하고 쓸데없는 뇌피셜이지만...
◆Qnxwlg6lDth 2021/01/27 18:04:26 ID : Qre3O2smIHy
집에 돌아온 후 나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다시 창문으로 향했어. 뺑소니를 목격했던 그 날 이후, 처음으로 그 창문을 똑바로 보기로 마음먹은거야. 쉼호흡을 하고 창을 열자 그 바로 아래에는 눅진한 박스와 책따위가 쌓여있었다. 윗집 할머니가 더이상 찾지 않아 꽤 많은 폐지류가 쌓여있었어. 새삼 얼마나 그 분이 부지런 하셨는지 느낄 수 있었지.
◆Qnxwlg6lDth 2021/01/27 18:05:56 ID : Qre3O2smIHy
“어?” 중2병 마냥 아련하게 폐지를 쳐다보다가 시선을 창틀로 옮겼을 때였어. 그 비틀리고 주름진 손가락이 쥐고 있던 그 부근에 무언가가 끼워져 있었다.
◆Qnxwlg6lDth 2021/01/27 18:06:39 ID : Qre3O2smIHy
하얀 종이 속에 포장된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판. 한참 이게 뭔가 쳐다보며 고민하다가 알아낸 그 쪼끄만 플라스틱의 정체는 과자 속에 들어가 있는 장난감이었어.
◆Qnxwlg6lDth 2021/01/27 18:07:27 ID : Qre3O2smIHy
치토스라고 알려나. 호랑이인지 치타인지, 선글라스를 쓴 캐릭터가 그려진 몽둥이? 모양 짭짤이 과자. 양념치킨, 바베큐 뭐 그런 맛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그 과자 안에 조그만한 플라스틱 장난감이 들어가 있곤 했었거든.
◆Qnxwlg6lDth 2021/01/27 18:08:36 ID : Qre3O2smIHy
조립하면 팽이가 되는 따조라고 불렀던 장난감. 그게 창틀 사이에 끼워져 있더라고. 바깥쪽 창틀에 끼워진터라 지금껏 내가 못봤던 모양이야. 이상할 정도로 포장마저 하얗고 깨끗한 따조는 적어도 우리집에선 볼 일이 없는 물건이었지. (집안 식구들 다 군것질 일절 안해서... 유일한 군것질이 과일 정도?)
이름없음 2021/01/27 18:09:09 ID : B87cNBy2JTS
헐 레주야 나 눈물날려함.... 레주 기다리기 56일차 만에 돌아왓서...
◆Qnxwlg6lDth 2021/01/27 18:12:51 ID : Qre3O2smIHy
응.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Qnxwlg6lDth 2021/01/27 18:13:53 ID : Qre3O2smIHy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보자면, 나는 그 온전한 장난감을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책상의 유리판 아래에 끼워넣었다. 내 책상은 나무 위에 유리판이 올려져있는 구조라 말린 꽃잎이나 암기가 잘 안되는 단어 같은 것들이 그 아래 끼워져 있곤 했거든.
이름없음 2021/01/27 18:13:59 ID : PdCqmIJPhbA
레주 안녕 오랜만에 왔구나! 기다리고 있었어
◆Qnxwlg6lDth 2021/01/27 18:14:12 ID : Qre3O2smIHy
그리고 그렇게 끼워넣었던 따조의 주인을 찾게 된 건 바로 그 다음날이었어.
◆Qnxwlg6lDth 2021/01/27 18:15:22 ID : Qre3O2smIHy
장례식장을 다녀온 다음 날. 나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장례식을 다녀온 직후 동생이 크게 체해서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며 밤을 지새웠는데, 덕분에 나 역시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 됐거든.
◆Qnxwlg6lDth 2021/01/27 18:18:53 ID : Qre3O2smIHy
이제야 악몽도 끝나고 꿀잠을 잘 수 있겠거니 했는데 말야. ‘역시 사람은 잠이 보약이구나.’ ‘일제강점기 때 잠을 억지로 못자게 하는 고문법이 있었다는데, 그거 생각해낸 놈은 진짜 그 고문 당하다 쓰러지게 만들어야 한다.’ 나는 뭐 이런 생각을 하느라 몸져 누워서 실없이 히죽거렸다.
◆Qnxwlg6lDth 2021/01/27 18:19:54 ID : Qre3O2smIHy
동생은 내내 토를 하지, 나는 마당에 누우면 못 찾을 정도로 얼굴이 흙빛이지. 아빠는 이른 아침부터 나와 내 동생의 담임선생님에게 이 소식을 알리지 않을 수 없었을거야. 이후 아빠는 할머니께 하루 일을 쉬실 것을 부탁드리고 느즈막히 출근을 하셨어.
◆Qnxwlg6lDth 2021/01/27 18:21:20 ID : Qre3O2smIHy
기다려줘서 고마워.
◆Qnxwlg6lDth 2021/01/27 18:22:14 ID : Qre3O2smIHy
새벽에 병원에 가서 링거까지 맞고 왔건만 점심이 되어갈 무렵까지 동생은 별 차도를 보이지 않았고, 할머니는 큰 결심이라도 하셨는지 우리 둘을 데리고 집을 나서셨다.
◆Qnxwlg6lDth 2021/01/27 18:22:40 ID : Qre3O2smIHy
목적지는 삼촌이 모셔져 있고, 할머니가 치성을 드리곤 하는 사찰이었어. 할머니 손에 이끌려 택시를 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집에서 멀지 않은 산 속의 사찰에 당도할 수 있었지.
◆Qnxwlg6lDth 2021/01/27 18:31:53 ID : Qre3O2smIHy
단풍이 들 무렵의 고즈넉한 사찰. 대나무로 만든 바가지가 놓인 약수터에서는 또롱또롱거리는 물소리가 흐르고 있었어. 몸이 피로한 것도 잊고 그 사찰을 둘러보고 있자니, 마침 기세 좋게 분 바람에 처마 끝에 달린 풍경이 울었다.
◆Qnxwlg6lDth 2021/01/27 18:35:19 ID : Qre3O2smIHy
땡그랑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조약돌이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한 맑은 소리. 그 소리 위로 바스락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겹쳐 들려왔어.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소박한 단색의 옷을 입은 스님이 우리 할머니를 향해 합장을 하고 계셨다. “보살님.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뭐 이런 말씀을 하시면서 말야.
◆Qnxwlg6lDth 2021/01/27 18:39:14 ID : Qre3O2smIHy
다시 한 번 풍경 소리가 울렸고, 스님은 이번엔 나를 향해 웃어보이셨어. “어릴 때 보고 이제 보는구나.” 순간 내 머리 속엔 같은 풍경소리와 커다란 그릇 속에 담긴 연꽃, 그리고 찻잔을 손에 든 스님이 떠올랐어. ‘약산이 스님!!’ 찻잔을 손에 든 채 웃으며 달려가던 내 모습도 말이지.
◆Qnxwlg6lDth 2021/01/27 18:41:26 ID : Qre3O2smIHy
맞아. 그 스님의 이름은 약산스님. (물론 여기에선 다른 이름으로 바꿔 적었어. 혹시 몰라서 말야) 그리고 힘든 몸 상태로 스님을 마주한 그 날이 약산스님과의 두 번째 만남이었지.
◆Qnxwlg6lDth 2021/01/27 18:44:46 ID : Qre3O2smIHy
자. 오늘은 여기까지야.
◆Qnxwlg6lDth 2021/01/27 18:45:13 ID : Qre3O2smIHy
느릿느릿 기억을 더듬다보니 이제서야 약산스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됐네. 혹시 많이 답답하다면 조금 더 빨리 이야기를 진행해볼게. 최대한 기억 나는 모든 내용을 적다보니 읽기에 지루한 감이 없지않아 있을거라 생각해.
이름없음 2021/01/27 18:45:56 ID : PdCqmIJPhbA
레주 얘기는 언제 들어도 흥미진진해! 다음에 생각날 때 다시 들려줘
◆Qnxwlg6lDth 2021/01/27 18:48:49 ID : Qre3O2smIHy
다음에 올 땐 약산스님과의 첫 번째 만남은 생략하고, 두 번째 만남을 짧게 요약한 후 넘어갈 예정이야. 아무래도 꼭 들어야 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서. 대신 모든 이야기가 다 끝나게 되고, 궁금해 하는 사람이 생기거든 조금씩 풀어볼까해.
◆Qnxwlg6lDth 2021/01/27 18:49:32 ID : Qre3O2smIHy
고마워. 내 이야기를 들어줘서.
◆Qnxwlg6lDth 2021/01/27 18:50:34 ID : Qre3O2smIHy
그럼 우리 다음에 또 보자.
이름없음 2021/01/27 18:51:59 ID : PdCqmIJPhbA
그래 수고했어!
이름없음 2021/01/27 18:57:21 ID : IE9s9ta5RyN
정주행하고왔어. 진짜 재밌게봤어!! 재밌고, 다정하고, 가슴아프고, 행복한 이야기였어. 기다릴게!
이름없음 2021/01/27 20:34:05 ID : JO9wK5gmE8m
응응 다음에 꼭 보자
이름없음 2021/01/28 09:59:33 ID : kk1gY06Zcmq
헐 레주ㅠ 기다리고 있었어ㅠㅜ 돌아와줘서 고마워ㅜㅠㅠ
이름없음 2021/01/28 13:36:26 ID : ApfhxQq40sr
스레주 혹시 작가야? 필력이 너무 좋고 글에서 진짜 국화꽃 향기가 나... 몰입도 있게 너무 잘 쓴다. 간간이 와서 새로운 썰 있나 들여보고 갈게!
이름없음 2021/01/28 21:38:19 ID : KY62IJRDy7u
레주야 기다리고 있었어. 이렇게나마 돌아와줘서 정말 고마워!
이름없음 2021/01/29 01:41:01 ID : PeNtctteK2E
와... 이거 뭐야 책으로 내도 되겠다 레주 필력에 감탄하구가...
이름없음 2021/01/29 01:49:35 ID : ldDvBbzPfTO
지난날에 고생이 많았네 탄식하며 슬퍼해도 근심을 잊기 어렵구나 사슴이 기쁘게 울며 들판의 다북쑥을 뜯는데 나에게 반가운 손님이 있기에 거문고를 타고 생활을 읊었네 달이 밝은 덕은 어느때에나 가지게 될까 시름이 마음속으로부터 나오니 끊어비릴수가 없구나
이름없음 2021/01/29 04:02:35 ID : dA0nDxSK0r9
90일이 지나서 추천할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퍼ㅠㅠㅠ
이름없음 2021/03/02 10:59:44 ID : 3TPa4JTPhgi
레주 필력대박이다진짜.....빠져들어...
이름없음 2021/03/03 18:20:17 ID : kq5alhe3V9i
레주 필력 대박이다...
이름없음 2021/04/13 18:11:22 ID : HwoGspfe2Mr
보고 싶어 레주 언제 와?
이름없음 2021/04/18 16:58:32 ID : du4NwJSLeZd
ㄱㅅ
갱신작작해 2021/04/18 17:01:50 ID : cHxCi5XtjwG
제발 좀 고대잖냐
이름없음 2021/04/18 17:08:26 ID : o45e584KY1e
8분전 갱신이더라 너나 작작해 (스탑달고쓴다)
이름없음 2021/04/18 17:10:54 ID : cHxCi5XtjwG
뭔ㅋㅋㅋㅋㅋㅋ 레더야 지금은 12분전 갱신인데 내가 5시 58분에 레스를 썼니? 혹시몰라 사진첨부한다 아무리 봐도 쟤가 갱신한건데 왜 나한테 시비야ㅋㅋㅋㅋ 가뜩이나 저런애 많아서 빡치는데ㅋㅋㅋㅋ
이름없음 2021/04/18 17:16:34 ID : lwmnwljs01h
시비 멈춰!
이름없음 2021/04/18 21:30:07 ID : slu4Gq7s9vC
다들 죽고싶은가
이름없음 2021/04/19 01:22:50 ID : tfSJRxu9BBs
무서운 사진일까봐 못보고있음..ㅡㅡ
이름없음 2021/04/19 02:01:09 ID : k7hta9vyE5P
아냐 그 검뽑는 할머니셔 영감... 미안해요 할머니
이름없음 2021/04/19 07:55:57 ID : slu4Gq7s9vC
젠이츠 할머니인데..
이름없음 2021/04/25 18:02:16 ID : 3XzhwHxwts2
ㄱㅅㄱㅅ
이름없음 2021/04/25 19:53:09 ID : U7AmHDAi79f
왜..?
이름없음 2021/04/26 23:24:06 ID : tzfbzTPdA0o
갱신 초성으로 쓴거야
이름없음 2021/04/27 00:13:53 ID : i4MmFa01a7h
그걸 물어본 게 아니잖아.. (스탑검)
이름없음 2021/05/06 16:07:59 ID : 0snRwk8pe3V
대체 언제 끝나냐 ..... (나도 스탑검)
이름없음 2021/07/27 20:36:39 ID : kq5alhe3V9i
언제 오는거야..? ( 스탑검 )
이름없음 2021/10/06 14:10:30 ID : dzQsrBz82tt
레주 언제와..? (스탑검)
Qnxwlg6lDth 2021/10/10 20:32:56 ID : 8nO3DzcGq2N
안녕. 이야기 풀러 또 왔어.
이름없음 2021/10/10 20:34:56 ID : 43Qq7BxSMmH
진짜 레주 맞어??
Qnxwlg6lDth 2021/10/10 20:36:13 ID : 4Fg3PcqZg6r
응. 오랜만에 돌아왔더니 뭔가 바뀌어서.... 이전에는 이름과 비밀번호를 쓰는 방식이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 다시 인증해야 하는지를 모르겠네....
Qnxwlg6lDth 2021/10/10 20:37:32 ID : jBwHva9vyII
하지만 아마 마저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을거야.
Qnxwlg6lDth 2021/10/10 20:37:54 ID : Bf89uoMrBAo
가을 날의 사찰. 그리고 약산스님과의 만남까지 말했었지?
Qnxwlg6lDth 2021/10/10 20:38:16 ID : nRCrxWo3U5d
약산스님은 누가봐도 깜짝 놀란 것만 같은 내 얼굴을 보고 살풋 웃으셨다. 그리고 할머니 품에서 골골대는 내 동생에게 시선을 옮기셨지. “보살님. 혹시 이전에 아이가 상가를 가본 적이 있습니까?” 스님은 조곤조곤 우리 할머니께 질문을 던졌어.
Qnxwlg6lDth 2021/10/10 20:38:51 ID : urattjAp9fS
“없지 않았을까 싶은데.... 혹시 그게 문제가 됐을까요. 스님?” “워낙 기운이 순하고 잔약한 아이이니 언제고 한 번은 생길 일이었습니다. 그나마 약관 전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 천만 다행이지요. 스님은 잔잔히 웃음을 띄운 채로 묘하게 자책하는 우리 할머니를 달래듯 이야기하셨다. 참고로 당시의 나는 이 말을 옆에서 들었을 때 ‘ XXX 다이렉트 보험! 자세한 사항은 약관을 확인하세용~’ 이런 의미의 약관을 말하는 줄 알았음.... 나중에 알았지만 스무살을 약관이라고 한다고 하더라. (걍 20살이라 하면 안됨....?)
Qnxwlg6lDth 2021/10/10 20:39:15 ID : dQlbcoE1cmt
스님은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셨어. 그 때, 갑자기 미지근한 바람이 후욱 불어닥쳤다. 그 돌풍에 맑은 소리를 내던 풍경이 짤그락거리며 요동치는 소리를 질러댔어. 나는 순간 눈에 들어온 먼지탓에 뒤늦게 눈을 감곤 눈물을 쏟아냈지. 조금 괜찮아졌을 때 쯤, 눈가를 매만지며 다시 약산스님을 바라봤는데 어...... 솔직히 흠칫 놀랐다. 스님이 꽤 인상을 구기고 계시더라고.
Qnxwlg6lDth 2021/10/10 20:39:42 ID : ZfTVbDy2Fg3
“혹여 아이가 하관하는 것을 보았습니까.” 스님은 잠시 전에 비해 조금 더 가라앉은 목소리로 질문을 던지셨어. “아이고. 아닙니다 그거는! 상가만 갔다가 바로 왔어요. 아직 그이는 장지로 가지도 않았고요. 아마 오늘이나 갈 겁니다.” 할머니가 손사래를 치며 대답하시자, 약산스님은 대번에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셨어. 그리고 복잡한 눈빛에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로 내게 말씀하셨지. “우린 다시 만나게 되겠구나.”
Qnxwlg6lDth 2021/10/10 20:40:06 ID : ts5TWjfTSGm
그 이후로 스님은 좀 더 가벼운 발걸음으로 할머니와 동생을 데리고 절 안으로 향하셨어. 가벼운 상문살 같으니 너무 걱정 마시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야. 그리고 나는 할머니와 동생이 사라진 곳에서 떨어져서 나름의 풍류를 즐겼다. 팔자좋게 풍경 밑의 대청마루에 누워 ‘경찰청 창살 쇠창살, 할머니는 보살, 내 동생은 상문살’ 이 따위 말을 중얼거렸어. (라임 칭찬해줘라)
Qnxwlg6lDth 2021/10/10 20:40:23 ID : wsi3vinSIMm
사실 처음에는 할머니 뒤를 따라 졸졸졸 따라 들어가려고 했는데 방 입구에서 약산스님이 스윽 막아서시더라고. ‘날이 좋으니 일광욕을 해보는 건 어떻겠느냐’라시면서. 뭐 별 수 있나. 로마에선 로마 법을 따르고, 절에선 스님 말을 따라야지. 안 그래?
◆mGsi7aq7tg1 2021/10/10 20:43:20 ID : zdQoJO8ktxT
.
◆Qnxwlg6lDth 2021/10/10 20:45:54 ID : TO07fhzhs9v
.
◆Qnxwlg6lDth 2021/10/10 20:46:22 ID : TO07fhzhs9v
아 이거였네. 혹시나하고 인증 방법 찾아왔어.
◆Qnxwlg6lDth 2021/10/10 20:48:25 ID : TO07fhzhs9v
그럼 마저 이야기를 풀어볼게.
◆Qnxwlg6lDth 2021/10/10 20:50:54 ID : TO07fhzhs9v
음... 게다가 난 그저 잠을 못자서 흐느적거릴 뿐, 묘하게 정신이 맑은 상태였거든. 그래서 날 이끄는 풍경소리를 좇아 느릿느릿 좀비처럼 기어가서 누웠던거지. 그늘진 처마 아래서 아무 생각없이 잉어 모양의 종을 바라보고 있자니 아롱아롱 잠이 쏟아지더라. 뭔가.... 어.... 좋았어. 평화롭고 시원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Qnxwlg6lDth 2021/10/10 20:51:12 ID : TO07fhzhs9v
멀리서 들려오는 경쾌한 목탁소리와 알아 들을 수 없는 남자의 목소리. 약산스님의 목소리 보단 조금 더 높고 가벼운 그 목소리를 자장가삼아 나는 까무룩 잠이 들었어.
◆Qnxwlg6lDth 2021/10/10 20:51:47 ID : TO07fhzhs9v
1시간 정도나 지났을까? 나는 머리맡의 처마가 살짝 꺼지는 듯한 느낌에 눈을 비비고 일어났다
◆Qnxwlg6lDth 2021/10/10 20:52:16 ID : TO07fhzhs9v
“내가 단잠을 깨웠나 보구나.” 예상대로 내가 늘어져라 자던 처마에 앉으신 분은 약산스님이었어. 아까와는 달리 얇은 비니 같은 모자를 쓰고 단정히 소매를 모아 앉아계셨지. 난 침흘리고 잔 건 아닌가 싶어 다급하게 입가를 소매로 훔치고 대답했다. “어... 아니예요. 다 끝났나요?”
◆Qnxwlg6lDth 2021/10/10 20:53:29 ID : TO07fhzhs9v
“아직.” “아아....” 난 할 말이 없어 괜히 손끝만 틱틱 튕겨댔다. 스님은 동생과 할머니가 들어가신 방문을 바라보며 말을 이으셨어.
◆Qnxwlg6lDth 2021/10/10 20:53:54 ID : TO07fhzhs9v
“꿈이 있느냐.” ‘엥? 갑자기 분위기 꿈이요?’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새나라의 고딩답게 “인서울이요.” 라는 깔쌈한 대답을 내어놓았다.
◆Qnxwlg6lDth 2021/10/10 20:54:06 ID : TO07fhzhs9v
내 대답에 약산스님은 후후 웃음을 뱉으며 말씀하셨어. “그것도 좋지. 하지만 나는 꿈을 물어본 것이란다. 그럴싸한 명분의 목표 말고. 네가 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 말이다.” “아....”
◆Qnxwlg6lDth 2021/10/10 20:54:23 ID : TO07fhzhs9v
순간 머리 속이 복잡해졌지. ‘뭐가 있을까. 돈 걱정 안하는 거? 집에서 벗어나는 거? 취한 아빠와 마주치지 않는 거? 초등학교 때로 돌아가 삼촌을 구하는 거?’
◆Qnxwlg6lDth 2021/10/10 20:54:44 ID : TO07fhzhs9v
“아.” 수없이 생각 속으로 물음표를 띄우던 그 순간. 갑자기 전구가 켜진 것처럼. 잔잔한 호수의 안개가 걷힌 것처럼. 머리가 맑아지고 차분해졌어. 나는 잠시 이 상쾌한 기분을 즐기다가 당당히 스님께 대답했지. “행복해지는거요!”
◆Qnxwlg6lDth 2021/10/10 20:54:59 ID : TO07fhzhs9v
‘그러려면 앞으로 나아가야 하니까 일단 인서울부터 해야겠어요.’ 뒤이어 조잘거린 말까지 조용히 들어주신 스님은 다시 그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셨다. 그리고 나즈막히 말을 덧붙이셨어.
◆Qnxwlg6lDth 2021/10/10 20:55:33 ID : TO07fhzhs9v
"그게 꿈이라면 날 찾아 오는 걸 두려워 말거라. 오늘이 지나면 더 볼 일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 너는 너무 착하구나. 괜찮으니 마음가는대로 행동하고 너무 늦지 않게 날 찾아오렴."
◆Qnxwlg6lDth 2021/10/10 20:55:48 ID : TO07fhzhs9v
'스님은 아플 때 할머니가 끌고 와서 만나는 사람 아니예요?' 라는 대답을 목구멍으로 삼켜낸 나는 잠시 갸웃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어. 뭐 좋으신 분 같으니 정말, 혹시나, 만약에, 내가 등산이라도 하게되면 음료수라도 하나 사다 드리면 되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말야.
◆Qnxwlg6lDth 2021/10/10 20:56:33 ID : TO07fhzhs9v
눈을 비벼서 남은 잠을 털어내고 약산스님과 본당에 돌아오자 문 앞에 선 우리 할머니가 보였어. 할머니의 얼굴에서 조금씩 도는 혈색으로 미루어보아, 동생의 상태가 좀 나아졌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었지.
◆Qnxwlg6lDth 2021/10/10 20:56:58 ID : TO07fhzhs9v
"작은 아이는 조금 더 머무르는 게 좋을 듯 한데 보살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내 뒤에 반듯이 서있던 약산스님이 그렇게 말씀하시자, 할머니는 뭐든 괜찮으니 아가만 잘 부탁드린다고 대답하셨어. 그리고 난 충격에 빠졌다. 등치가 산만한 내 동생이 아가라니.....!
◆Qnxwlg6lDth 2021/10/10 20:57:24 ID : TO07fhzhs9v
그리고 할머니는 충격에 빠진 내게 주섬주섬 쌈짓돈을 건네주셨어.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가라고 말야. 나는 어차피 다음 날이 주말이었으니 게임을 좀 하다가 늘어지게 잘 생각으로 대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Qnxwlg6lDth 2021/10/10 20:57:58 ID : TO07fhzhs9v
당시엔 카카오택시 같은 게 없었기 때문에 114에 전화를 해서 콜택시 번호를 받아 배차를 요청해야 했어. (tmi지만 바로 연결되는 건 요금이 추가로 부과되는터라 번호 불러주면 잽싸게 외워서 전화해야 했음. 틀리면 뭐.... 다시 114에 전화해서 외워야지.) 근데 워낙 산골이라 그런지 배차가 쉽지 않아서 꽤나 여러 곳에 전화를 돌려야만 했다. 덕분에 절에 머무르는 시간이 좀 더 길어졌어.
◆Qnxwlg6lDth 2021/10/10 20:59:50 ID : TO07fhzhs9v
몇 차례의 시도 끝에 기사님이 배치되었고, 15분 정도 걸릴 거라는 안내를 받을 수 있었어. 그 동안 나는 입구 근처의 화단 턱에 걸터 앉아서 지나가는 개미를 구경했지. 한참 개미를 보고있는데 개미 대신 낯익은 고무신 코가 보이더라고. 고개를 들어보니 약산스님이 서계셨어. 스님은 쪼그려 앉은 내 머리를 살짝 두드리시더니 '네 마음이 가는 대로 하렴.' 이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가셨다.
◆Qnxwlg6lDth 2021/10/10 21:01:20 ID : TO07fhzhs9v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오자 이제 점심을 막 지났을 무렵이었어. 새벽부터 움직여서인지 내가 잠을 자지 않아서인지, 굉장히 시간이 느리게 지나가는 것 같더라고. 나는 문득 허기가 밀려와서 집으로 향하는 대신 집 근처 슈퍼로 발걸음을 옮겼어. 택시 타고 남은 돈이 꽤 넉넉했던 터라, 큰맘먹고 참깨라면과 짜장범벅을 먹기로 결정했거든.
◆Qnxwlg6lDth 2021/10/10 21:01:41 ID : TO07fhzhs9v
달랑달랑 봉지를 들고 집 근처에 도착했을 때였어. 웅성웅성하는 소리 사이로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지. 뭔가 싶어서 핫바를 물고 고개를 돌렸는데 어제 봤던 할머니 따님이 전화로 화를 내고 계시더라고.
◆Qnxwlg6lDth 2021/10/10 21:02:03 ID : TO07fhzhs9v
'엥 왜 여기 계시지?' 나는 호기심에 골목길을 나가 따님이 계시던 도로로 향했다. 골목길을 나와보니까 커다란 버스가 도로를 막고 서있었어. 그 뒤로 차들이 비상깜빡이를 켜고 늘어서있었지. 검은 양복을 입은 아저씨들이 열심히 수신호로 뒷 차들을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았어. 우리집 바로 앞 도로는 천변가의 좁은 일방통행 도로였는데, 버스가 길 한복판을 막고 서있으니 이 난리가 난거야.
◆Qnxwlg6lDth 2021/10/10 21:03:13 ID : TO07fhzhs9v
통화를 끊은 따님은 씩씩거리다 머리를 쓸어올리셨어. 나는 눈치를 보다 핫바를 입에서 떼고 따님에게 인사를 했다. 따님은 나를 보고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가 깜짝 놀라서 다시 표정관리를 하신 후에 인사를 받아주셨어.
◆Qnxwlg6lDth 2021/10/10 21:03:29 ID : TO07fhzhs9v
"어.... 뭐 물건 가지러 오신 건가요?" "아, 그게 아니라 장지에 가기 전에 사시던 곳을 둘러보고 가는데 딱 집 앞에서 버스가 고장이 났는지 시동이 안 걸리네요." 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깊은 한숨을 쉬었어. 나는 할 말이 없어서 괜히 눈알만 데구룩 굴려댔지.
◆Qnxwlg6lDth 2021/10/10 21:03:46 ID : TO07fhzhs9v
"누나! 거기선 뭐래?" 버스 안에서 미간이 깊게 패인 아저씨가 고개를 내밀었어. 아마 돌아가신 할머니의 아드님이었겠지.
◆Qnxwlg6lDth 2021/10/10 21:04:05 ID : TO07fhzhs9v
"아 몰라. 와서 본다는데 자기들이 와서 본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이러다 해지겠는데.... 그러게 왜 집에 들른다고 차를 세웠어." "이게 내 잘못이라고? 엄마 집 좀 보고 잠깐 짐 좀 내려놓겠다는 게 잘못됐냐?" "아니... 그게 아니고 그건 나중에 해도 되니까....."
◆Qnxwlg6lDth 2021/10/10 21:04:30 ID : TO07fhzhs9v
우리 아빠 뻘 되는 어른들이 소리를 높여 싸우는데, 하필 그 사이에서 오도가도 못하게 된 나는 영화에서 일진들 싸움 말리는 반장처럼 어정쩡하게 팔만 이리저리 휘져어댔어. 그 특유의 '왜 싸우고 그래~~ 아유~' 스러운 표정을 장착한 채로 말야.
◆Qnxwlg6lDth 2021/10/10 21:04:58 ID : TO07fhzhs9v
근데 왜 그런 거 있잖아. 단어 하나에 확 꽂히는 것만 같은 느낌. 코난이 단서를 발견하고 머리에 번개 맞는 그런 느낌.
◆Qnxwlg6lDth 2021/10/10 21:05:46 ID : TO07fhzhs9v
"짐이요?" 나는 실례라는 것도 잊고 따님을 빤히 쳐다보며 언쟁에 끼어들었어. 두 사람은 잠깐 멈췄다가 이내 진정한 듯 차분해졌지. "응. 식장에서 쓴 물건들이랑 가방만 좀 두고 가려고. 원래 따로 차를 가져오려고 했는데 쟤가 술을 마시는 바람에 그렇게 됐어요." 따님은 예의 '쟤'를 흘겨보며 대답해주셨어. 그리고 흘김을 당한 '쟤' 아저씨는 딴청을 피우며 다시 버스 안으로 숨었다.
◆Qnxwlg6lDth 2021/10/10 21:06:22 ID : TO07fhzhs9v
나는 잠시 고민하다 목줄을 챙기셨는지 물었어. 따님은 고개를 갸웃거리시다 집에 둔 가방 속에 있다고 말씀해주셨지.
◆Qnxwlg6lDth 2021/10/10 21:06:49 ID : TO07fhzhs9v
"그거... 챙겨 가시면 안될까요?" 내가 뭐라도 되는 존재도 아니고 아무것도 모르지만 왠지 그 목줄이 필요한 것만 같았어. 그래서 중2병 찐따처럼 말을 더듬으며 말씀드렸다. 그녀는 약간 곤란한듯한 표정을 짓다가 그러겠노라 대답해주었어.
◆Qnxwlg6lDth 2021/10/10 21:07:58 ID : TO07fhzhs9v
하지만 보통 어른들이 그렇듯, 바쁘고 정신이 없으면 그런 중2멘트 따위는 으레 잊어 버리잖아? 그래서 문이 열려있는지를 확인하고 직접 골목길을 뛰어올라가 가방을 챙겨드리기로 결정했지.
◆Qnxwlg6lDth 2021/10/10 21:09:00 ID : TO07fhzhs9v
참고로 당시 우리 동네는 보통 대문을 잘 닫지 않았어. 닫힌 집은 거의 빈집이라고 봐도 될 정도였을 정도니까.
◆Qnxwlg6lDth 2021/10/10 21:10:08 ID : TO07fhzhs9v
집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던 짐들 중에서 따님 가방으로 보이던 건 작은 손가방 하나였고, 그걸 들어올리자마자 약간의 비린내가 느껴졌기에 별 고민없이 바로 그 가방을 챙겨나올 수 있었어.
◆Qnxwlg6lDth 2021/10/10 21:10:47 ID : TO07fhzhs9v
버스 앞으로 돌아오자 여전히 어른들이 제각기 짜증을 뱉어내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눈치를 보다가 그 가방을 버스 제일 앞자리에 쏙 올려뒀다. 물론 곧바로 따님에게 제일 앞자리에 가방을 뒀다고 말했지.
◆Qnxwlg6lDth 2021/10/10 21:11:33 ID : TO07fhzhs9v
그 때였어. 앙당당당당 요란한 소리와 함께 버스 시동이 걸린 건.
◆Qnxwlg6lDth 2021/10/10 21:11:49 ID : TO07fhzhs9v
조용한 주택가에서 버스가 우렁차게 시동이 걸리자, 웅성거리던 가족들과 상조회사 사람들도 일순 조용해졌어. 그것도 잠시, 다시 왈가왈부하며 약간의 언쟁을 갈무리하고 나서야 모두 버스에 올랐지.
◆Qnxwlg6lDth 2021/10/10 21:12:09 ID : TO07fhzhs9v
나는 까치발을 들어 버스 맨 앞자리 유리를 톡톡 쳐서 따님께 손짓발짓으로 가방을 확인하라 전했어. 그녀는 두리번거리다 가방을 확인하곤 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Qnxwlg6lDth 2021/10/10 21:12:31 ID : TO07fhzhs9v
잠시 버스가 멈췄을 때 문제가 조금 있었는지, 시동이 걸린 후에도 차는 바로 출발하지 않았어. 그리고 그 우렁찬 버스소리에 주변 거주민들도 이게 무슨 소린지 얼굴에 물음표를 달고 기웃기웃 몰려들었지.
◆Qnxwlg6lDth 2021/10/10 21:14:30 ID : TO07fhzhs9v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나는 집으로 빠져 나가기 위해 질문공세를 피해가고 있었어. '예? 아 저도 몰라요. 저는 핫바만 먹었어요.'를 반복하면서 말야. 그렇게 한 발짝 뒤로 물러서자 눈을 동그랗게 뜬 쌍둥이 형제가 보였다.
◆Qnxwlg6lDth 2021/10/10 21:14:49 ID : TO07fhzhs9v
길 건너가 쌍둥이네의 집이었지만 우리집 근처 아파트 단지에 꽤나 좋은 놀이터가 있었던 터라 쌍둥이들은 보통 우리집 주변에 있곤 했었는데, 그 날도 마찬가지로 놀이터에서 놀다 시끄러운 소리에 구경을 온 모양이었어.
◆Qnxwlg6lDth 2021/10/10 21:15:33 ID : TO07fhzhs9v
"누나 핫바 먹었어?" "나도 핫바 좋아해!" '오..... 너네는 그 와중에 핫바만 들렸던거니.....' 나는 아찔해지는 머리를 손으로 붙잡고 똑같이 종알대는 형제를 다시 놀이터로 이끌었다. 저 시끄러운 곳에서 좀 벗어나고 싶었거든.
◆Qnxwlg6lDth 2021/10/10 21:17:18 ID : TO07fhzhs9v
놀이터에 오자 쌍둥이들은 언제 핫바 이야기를 들었냐는듯 미끄럼틀로 달려나갔어. 나는 할매 마냥 뒷짐을 지고 아이들을 바라봤지.
◆Qnxwlg6lDth 2021/10/10 21:19:34 ID : TO07fhzhs9v
그렇게 잠시 아이들을 바라보다 다먹은 핫바 막대를 버리러 쓰레기통으로 걸어가던 찰나였어. "이야!! 내노라고!!!" "악!!" 고개를 돌리자마자 보이는 건 미끄럼틀에서 떨어지고 있는 아이 하나였다.
◆Qnxwlg6lDth 2021/10/10 21:23:09 ID : TO07fhzhs9v
나는 손에 들린 컵라면도 팽개치고 미끄러지듯 아이에게 향했어. 꽤나 신식이던 그 놀이터는 모래 대신 말랑한 아스팔트 재질의 바닥이었는데, 그 바닥에 종아리와 궁둥이가 다 쓸리는 것도 감수하면서 말야. 거꾸로 떨어진 아이는 내 소중이(....)에 머리를 쳐박고 엉엉 울어재끼긴 했지만, 다행히 별 상처없이 착지할 수 있었어. (나도 엉엉 울고 싶었는데.... 울지도 못하고....)
◆Qnxwlg6lDth 2021/10/10 21:24:35 ID : TO07fhzhs9v
아이들이 놀던 미끄럼틀의 2층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투명한 터널이 하나 있었는데 그 곳에서 형이 동생을 발로 찼던 모양이더라고. 나는 소중이에 내상을 입은채로 남은 쉬익쉬익거리며 형에게 동생을 찬 이유를 물었어.
◆Qnxwlg6lDth 2021/10/10 21:25:17 ID : TO07fhzhs9v
형은 혼나려는 걸 직감했는지 손에 있는 걸 잽싸게 등 뒤로 숨기더니 꼼지락댔다. 그걸 못알아 볼 내가 또 아니었지.
◆Qnxwlg6lDth 2021/10/10 21:26:05 ID : TO07fhzhs9v
"줘." 형은 울상을 짓다가 동생을 노려봤어. 내 등 뒤에 숨은 동생은 '원래 그거 내꺼얀데.... 왜에...'라며 볼맨 소리를 냈다.
◆Qnxwlg6lDth 2021/10/10 21:27:33 ID : TO07fhzhs9v
형이 한참을 꼼질거리다 내민건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쪼가리였어. 바닥에서 주웠냐?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만드는 모양새의 조잡한 장난감.
◆Qnxwlg6lDth 2021/10/10 21:30:12 ID : TO07fhzhs9v
"그거는 내꺼야 따조고.... 형아꺼는 할매가 준다고 했는데에...." "할매는 이제 안온댔어! 그러니까 같이 쓰는거야!" 형은 기어들어갈 듯 종알거리는 동생에게 빼액 소리를 질러댔지. 나는 며칠 잠을 자지 못했던 터라 쌍둥이들의 빽빽거림에 다시 머리를 쥐었어. '아... 시끄러워서 이리로 튀었더니 여기가 더 시끄럽네....'라고 생각하면서 말야.
◆Qnxwlg6lDth 2021/10/10 21:31:54 ID : TO07fhzhs9v
"따조고 뭐고 둘이 싸울 거면 누나가 가질거야." 인상쓰면서 그 말을 끝내자마자 쌍둥이들은 눈을 크게 뜨면서 발을 동동 굴렀어. 안싸울테니까 달라면서 말이지. 그리고 난 머릿 속을 스치는 기억에 천천히 머리에 올렸던 팔을 내리고 집을 향해 고개를 돌렸어.
◆Qnxwlg6lDth 2021/10/10 21:32:30 ID : TO07fhzhs9v
그거였어. 내 방 창문에 끼워져 있던 그거. 그게 바로 이 쌍둥이꺼였어.
◆Qnxwlg6lDth 2021/10/10 21:33:46 ID : TO07fhzhs9v
나는 아이들에게 여기 가만히 있으라고 소리를 지른 후에 냅다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리고 허둥지둥 책상 위의 유리를 들어올리고 포장되어있던 따조를 꺼냈지. (괜히 허둥대다가 유리 틈에 손가락 끼어서 제자리에서 탭댄스도 몇 번 췄음.)
◆Qnxwlg6lDth 2021/10/10 21:37:09 ID : TO07fhzhs9v
다시 헉헉대며 놀이터로 돌아오자 둥이들은 언제 싸웠냐는 듯 신나게 시소를 타고 있었어. 여기서 살짝 빈정상하긴 했는데 강산이 바뀐다는 10년이나 둥이들보다 더 살아놓고 마냥 속좁게 굴 순 없었지. 난 꾹 참고 주머니에서 새 따조와 아까 뺏은 따조를 꺼냈어.
◆Qnxwlg6lDth 2021/10/10 21:39:13 ID : TO07fhzhs9v
"자, 이거는 동생꺼. 그리고 새 거는 형꺼." 우아아아! 쌍둥이들은 시소에서 뛰어내려 우당탕탕 달려왔어. 그리고 허겁지겁 따조를 받고선 초롱초롱한 눈으로 날 바라봤지.
◆Qnxwlg6lDth 2021/10/10 21:40:41 ID : TO07fhzhs9v
"누나야 핫바 말고 치토스도 먹었더?" 옹골차게 핫바를 기억하는 형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는 대답했다. 나 말고 박스할머니가 드셨다고 말야.
◆Qnxwlg6lDth 2021/10/10 21:42:47 ID : TO07fhzhs9v
그렇게 한바탕 쌍둥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오는 길. 정말 진이라도 빠진 것처럼 몸에 힘이 하나도 없더라. 나는 휘청휘청 집으로 끌려가듯 기어가며 할머니가 돌아가셨던 대로를 바라봤어. 그리고 아까 고장났었던 그 버스가 그 길을 벗어나는 걸 발견했지. '시동은 한참 전에 걸렸는데 왜 이제 출발했지?' 뭐 그런 생각도 들었었지만 피곤에 쩔어서 그 뒤로 더 고민하진 않았어.
◆Qnxwlg6lDth 2021/10/10 21:44:41 ID : TO07fhzhs9v
집에 돌아온 후로 나는 원래 계획했던 게임은 고사하고 밥도 먹지 않은 채 곧장 침대로 향했다. 그리고 죽은 듯이 주말 내리 잠을 잤지.
◆Qnxwlg6lDth 2021/10/10 21:45:47 ID : TO07fhzhs9v
드라마 속에선 그런 게 나오잖아. 왜, 이렇게 잊은 물건을 전해주거나 하면 꿈 속에 망자가 나와서 감사인사를 건넨다거나 하는 일.
◆Qnxwlg6lDth 2021/10/10 21:46:38 ID : TO07fhzhs9v
근데 역시 드라마는 드라마더라고. 그런 거 전혀 없이. 아무런 꿈도 꾸지 않고 참 달게도 잤어.
◆Qnxwlg6lDth 2021/10/10 21:47:37 ID : TO07fhzhs9v
그리고 그게 내가 그 해에 들 수 있었던 마지막 단잠이었지.
◆Qnxwlg6lDth 2021/10/10 21:48:34 ID : TO07fhzhs9v
왜냐면 그 후로 나는 해가 바뀌도록 지긋지긋하게 무언가에 시달려야만 했거든. 지금 생각해보면 그 주말의 단잠이 박스할머니가 내게 전한 감사 인사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말야.
◆Qnxwlg6lDth 2021/10/10 21:51:46 ID : TO07fhzhs9v
자, 길지만 여기까지가 내가 국화를 다시 만나게 된 계기가 된 이야기야. 내가 마음 가는대로 행동했던 그 날 일이 날 다시 국화에게 데려다 줬거든.
◆Qnxwlg6lDth 2021/10/10 21:53:22 ID : TO07fhzhs9v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다음 번에는 '그 날' 이후로 생긴 이야기를 해볼게.
◆Qnxwlg6lDth 2021/10/10 21:54:26 ID : TO07fhzhs9v
그리고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국화에게 오랜 고백을 전하기 위해 지금까지 글을 쓰고 있어. 그게 혹시나 불편한 사람이 있다면 다음부터는 스탑을 걸고 써볼게.
◆Qnxwlg6lDth 2021/10/10 21:55:00 ID : TO07fhzhs9v
그럼 그 동안 모두 안녕하길. 잘 지내고 있어.
이름없음 2021/10/10 21:58:03 ID : a5O7cIE03vg
허어엉ㅇㄱ 레주 왓구나ㅜㅜㅜㅜㅜㅜ 기다리고 있었어ㅜㅜ 오늘도 이야기 해줘서 고맙고 레주도 좋은 밤 보내! 또 기다릴게!!!
이름없음 2021/10/10 23:22:01 ID : O8o1xClyJV9
아니ㅠㅠㅠ슬프다고ㅠㅠ
이름없음 2021/10/11 18:33:30 ID : fe41yJV9cr9
ㅜㅜ기다릴게
이름없음 2021/10/12 02:59:04 ID : bdCjg3PfO1i
다시 만나
이름없음 2021/10/12 12:42:34 ID : jAmJPg7vA2I
ㅠㅠ 계속 보고있어...꼭 와줘..이야기 기다릴게!
이름없음 2021/10/17 13:36:00 ID : 4Gq40si07hA
길어서 외면하고 있었던 스레인데 왜 이제야 읽었는지 후회하고 있어ㅜㅜㅜ 너무 슬프다 시간 될 때 다시 돌아와줘 기다릴게
이름없음 2022/01/25 16:14:09 ID : g0q0rbyIJUY
ㄱㅅ
이름없음 2022/01/25 21:27:24 ID : zglDAkre2JQ
스레주 계속 기다리고 있어 ! 3번이나 정주행 했는데 읽을 때마다 왠지 아련해지는 느낌이야.
이름없음 2022/01/28 14:50:48 ID : dzQsrBz82tt
레주 현생 많이 바빠..?? 보고싶어..ㅠㅠ
이름없음 2022/02/05 02:48:13 ID : 2MnSIK3Ru4K
기다릴게 레주! 시간 되면 꼭 돌아와서 얘기 풀어줘. 레주랑 국화가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름없음 2022/07/05 14:49:32 ID : imFjtjAjck6
나 정말 잊고있었어, 그러다 문득 갑자기 생각이 나서 들어와봤는데 레주 꽤나 많은 시간을 다녀갔구나. 언젠가 오늘처럼 문득 생각이난다면 다시한번 와볼게. 그때는 이야기의 마무리를 볼수있을까?
이름없음 2022/08/24 00:26:07 ID : 8nRBhBApapO
레주 언제와..ㅠㅠ
이름없음 2022/12/13 11:45:21 ID : 3TPa4JTPhgi
레주 한번들려줘ㅠ
이름없음 2022/12/13 11:58:21 ID : xyL9gZeJXze
스탑 걸고 쓰자 제발...
2022/12/15 23:20:35 ID : o5bxBaoFhan
꼭 결말 보고싶다
1 2023/01/31 02:17:28 ID : Qre3O2smIHy
.
이름없음 2023/01/31 02:18:43 ID : Qre3O2smIHy
안녕. 오랜만에 돌아왔는데 뭔가 많이 바뀌어서 어떻게 원래 쓰던 대로 인증하는지 모르겠다.
이름없음 2023/01/31 02:20:41 ID : Qre3O2smIHy
혹시 방법 알면 누군가 알려줘. 수정해볼게.
이름없음 2023/01/31 02:21:20 ID : Qre3O2smIHy
처음 여길 왔을 땐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이 이야기를 하게 될 거라곤 생각치도 못했는데,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레더들이 있기에 돌아왔어. 음... 그럼 ‘그 날‘ 이후의 이야기를 풀어볼까.
이름없음 2023/01/31 02:21:59 ID : Qre3O2smIHy
며칠을 자는둥 마는중 보낸 후에 한참 달게 자고 일어나니까 세상이 다 아름다워 보이더라. 학교고 뭐고 이틀은 거의 내리 잠만 잤지. 동생 말로는 몇 번이고 어른들이 깨우러 왔었다는데 전혀 기억에 없을 정도였어.
이름없음 2023/01/31 02:22:26 ID : Qre3O2smIHy
그리곤 완전히 부활해서 다시 K-입시생으로 복귀했다. 뭔가 말도 안되는 사건이 있었다는 자각은 있었지만 ‘코난은 살인사건 해결한 다음날에도 등교 잘만 하던데 뭐’ 이런 생각으로 마음을 잡았던 거 같아.
이름없음 2023/01/31 02:23:11 ID : Qre3O2smIHy
석식을 다 박살내고도 매점에서 피자빵을 사오는 평화로운 일상. 그곳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느낌이 선연해서 오히려 지금까지의 일이 긴 악몽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름없음 2023/01/31 02:23:49 ID : Qre3O2smIHy
잠시의 자유시간이 끝나자 지루한 야자시간이 돌아왔다. 우중충하게 습한 교실 밖에선 어느새 부슬거리는 비가 쏟아지고 있었지. 복도를 탁탁 치며 돌아다니는 야자 감독 선생님의 눈치를 보면서 나와 친구 O양은 서로 우산을 가져왔냐며 하교 걱정부터 하고 있었다. 그 때,
이름없음 2023/01/31 02:24:05 ID : Qre3O2smIHy
쾅쾅! “엄마야!!!”
이름없음 2023/01/31 02:24:30 ID : Qre3O2smIHy
복도의 선생님이 떠들고 있는 우리 쪽을 노려보며 유리창을 세차게 두들기셨어. 당시 학주였던 선생님은 도깨비라 불릴 정도로 큰 키와 덩치, 그리고 부리부리한 눈을 가지고 있었는데, 안그래도 큰 눈을 말도 안되게 더 크게 부라리고 있었던 거야.
이름없음 2023/01/31 02:25:19 ID : Qre3O2smIHy
그걸 보자마자 뒷자리에서 떠들던 O는 바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의자에서 나동그라졌어. 갓 정숙해지기 시작했던 교실이 삽시간에 다시 어수선해졌지. 그리고 이제야 말하는 거지만 나는 학주보다 O의 비명소리에 더 놀라서 심장이 벌렁거렸다. (그때 애플워치 차고 있었으면 심박수 높다고 알람 떴을 것이 확실함....)
이름없음 2023/01/31 02:25:47 ID : Qre3O2smIHy
쉬익쉬익거리며 교실로 들어온 학주는 아이들의 시선이 교실 뒷편으로 향하자 대번에 고함을 질렀어. 다들 조용히 하고 앞을 보라면서 말야. 도깨비 학주의 호통소리에 대부분의 반 아이들 머리가 대번에 앞으로 돌아갔지만 난 예외였어. 쓰러진 내 친구는 주워야지.....
이름없음 2023/01/31 02:26:19 ID : Qre3O2smIHy
학주는 뭔가 급하다 싶을 정도로 O의 뒤에 놓여있던 책상을 뒤로 멀찍히 당기곤 의자를 완전히 책상 안으로 밀어넣었어. 밀리는 책상 탓에 옆에 달린 흰 주머니가 좌우로 움직이며 흔들리고 말야. 그렇게 1분단 끝자락에서 더 끌려나간 책걸상은 거의 청소도구함을 막고 있을 정도의 위치에 놓였다. 선생님은 책상을 옮긴 후 쓰러진 O와 그녀를 부축하던 나를 기이한 눈빛으로 쳐다보곤 다시 복도로 나가셨지.
이름없음 2023/01/31 02:26:52 ID : Qre3O2smIHy
학주가 사라진 후 몇몇 아이들은 괜찮냐며 나와 O를 걱정하기도 하고, 오늘 비와서 도깨비 컨디션 안좋은 거 아니냐고 수근거리며 욕을 몇 마디 보태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문제집에 얼굴을 박고 괜찮다며 앞으로 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어.
이름없음 2023/01/31 02:27:09 ID : Qre3O2smIHy
왜냐면 나는 학주가 왜 창문을 내리쳤는지, 책상을 왜 뒤로 밀었는지, 나와 O를 보는 눈에 왜 그런 감정을 담았는지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었거든. O를 일으켜 세우던 나는 아까 앞을 보지 않았으므로.
이름없음 2023/01/31 02:27:26 ID : Qre3O2smIHy
영겁과도 같이 느껴졌던 첫 번째 야자시간이 끝나고, 나는 학주를 찾기 위해 쏜살같이 교실을 벗어나려고 했다. 같은 반이었던 C가 붙잡지만 않았으면 말이야.
이름없음 2023/01/31 02:27:51 ID : Qre3O2smIHy
반장이던 C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저거 너희가 가져온거야?”
이름없음 2023/01/31 02:28:02 ID : Qre3O2smIHy
저거. C의 손 끝이 청소도구함 앞의 책걸상을 향해 있었어. 나는 대번에 고개를 가로지었지. 그러자 울상이 된 그녀는 횡설수설거리며 손을 허우적거렸어.
이름없음 2023/01/31 02:28:20 ID : Qre3O2smIHy
그리고 C가 하고 싶은 말이 대체 뭔가 인상을 쓰며 듣던 나는 곧 팔에 소름이 돋아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하고 전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어. ”왜 저런 책상이 교실에 있는데 아무도 몰랐던거야?“
이름없음 2023/01/31 02:28:45 ID : Qre3O2smIHy
당시 우리 학교는 3학년부터 천천히 책걸상을 새걸로 바꾸고 있었어. 그 왜. 대학교에서 주로 쓰곤 하는 책상과 의자가 붙은 그거 말이야. 책상 밑에 서랍도 없고 의자 밑에 겨우 조금 수납공간이 있는 최악의 가구. 앉아본 사람마다 이건 개발한 놈을 여기에 24시간 앉혀두는 형벌을 내려야 한다고 입이 마르도록 이야기하는 그 책상.
이름없음 2023/01/31 02:29:11 ID : Qre3O2smIHy
아무튼 기능을 차지하고서라도 뭐 새 책상이니 깔끔하고 알록달록하니 예쁘긴 했지. 그리고 그 책상은 내가 입학하던 해에 전교 모두 교체됐어. 처음 입학했을 땐 곧 부러질 것 같은 나무 책걸상이었지만 몇 달 안돼서 새 걸로 바뀌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청소도구함 앞에 놓은 책상은 소름끼치게도, 못해도 몇 십년은 되었을 것만 같은 낡은 나무 책상이었다.
이름없음 2023/01/31 02:29:34 ID : Qre3O2smIHy
나는 입을 꾹 닫고 조용히 참고서를 챙겨서 3분단 뒷자리로 옮겼어. O 역시 나를 따라 자리를 옮겼지. 특기생이나 사정이 있는 애들은 야자를 빼곤 했으니까. 덕분에 빈자리가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름없음 2023/01/31 02:29:51 ID : Qre3O2smIHy
모든 야간자율학습이 끝난 후에 나는 빠르게 가방을 챙겨 교실을 나왔다. O도 마찬가지였어. 혹시나 O도 나와 같은 걸 본 게 아닌가 싶었지만 어쩐지 우린 둘 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긴긴 언덕길을 내려가 버스 정류장으로 뛰다싶이 걸으면서도 말야.
이름없음 2023/01/31 02:30:18 ID : Qre3O2smIHy
집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침대로 다이브했어. 수명이 다한 매트리스의 용수철이 비명을 지르며 날 튕겨냈지. 나 역시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침대 밖으로 나동그라졌어. 덕분에 이불과 쿠션, 그리고 사촌동생들이 기세 좋게 숨겨둔 후 잊고 간 공주 인형도 튀어올랐다.
이름없음 2023/01/31 02:30:42 ID : Qre3O2smIHy
치렁치렁 머리칼을 늘어트린 공주인형을 보자 방금 전 봤던 장면이 스쳐지나갔다. 학주가 덜덜거리는 손으로 책상을 옮기던 그 때. 나는 봤다고 했잖아. 그건 팔이었어.
이름없음 2023/01/31 02:30:59 ID : Qre3O2smIHy
O를 일으켜 세우려 처음 바닥에 주저앉았을 땐 눈치채지 못했어. 그저 깜짝 놀라 쿵쿵거리는 내 심장을 부여잡으면서도 친구을 일으킬 생각만 하고 있었지. 하지만 책상이 뒤로 당겨지자 O의 머리칼이 뒤로 함께 당겨지고 있었어. 드르륵 끌려가는 책상과 그 소리에 맞춰 함께 당겨지는 친구의 머리칼. 그리고 그 곳에는 흰 팔뚝이 있었지.
이름없음 2023/01/31 02:31:18 ID : Qre3O2smIHy
몇 차례 소매가 개어진 체크무늬 셔츠 아래로 늘어나고 있는 흰 팔뚝. 그 끝에 있는 손가락은 O의 머리칼을 요사스럽게 당기며 만지고 있었다. 그걸 처음 봤을 때는 무엇을 하려는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걸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지만, 집에 와 공주 인형을 손에 쥔 그때서야 나는 그 움직임을 이해하게 되었어. ‘머리카락을 땋고 있었잖아. 그거…’
이름없음 2023/01/31 02:31:48 ID : Qre3O2smIHy
다음 날. 나는 용기를 내서 O에게 어제의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고 할 예정이었어. 하지만 그 용기가 무색하게 등교하는 날 보자마자 달려온 O는 파랗게 질린 얼굴로 울부짖었다. “머리가…! 머리가 빠지고 있어!”
이름없음 2023/01/31 02:32:04 ID : Qre3O2smIHy
달려드는 O는 사람 셋 정도가 매달려서야 떼어낼 수 있었어. 하룻밤 사이에 눈이 퀭해진 O의 눈에는 묘한 빛이 돌고 있었지. 영문을 몰라하는 날 보던 친구들은 내가 등교하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혀를 차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름없음 2023/01/31 02:32:19 ID : Qre3O2smIHy
아이들이 이야기에 따르면, O는 그 누구보다 일찍 교실에 있었다고 했다. 교실의 열쇠는 늘 1등으로 학교에 나오는 M에게 있었는데, 그 M보다도 먼저 반에 있었다는거야. 모두 어떻게 들어온지 모르겠다며 입을 모았지만, 나야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
이름없음 2023/01/31 02:32:36 ID : Qre3O2smIHy
복도에서 교실로 이어지는 창문은 윗쪽에 4개, 발치에 4개. 모두 삐걱이는 나무창이니 비틀어 흔들면 얼마든지 열리기야 했을테니 진입이 어렵진 않았을 테니까. 다만 왜. 왜 그랬냐는 게 더 중요하지.
이름없음 2023/01/31 02:32:55 ID : Qre3O2smIHy
“그래서?” 잠시 다른 길로 빠졌던 이야기는 내 재촉에 제자리로 돌아오는 듯 싶었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반 아이들 모두가 내 주변에 모여들어 떠들던 그 순간. 좀처럼 목소리를 듣기 힘들던 M이 대답했다. “책… 책상을 내놓으라고 했어.”
이름없음 2023/01/31 02:33:22 ID : Qre3O2smIHy
“책상은 왜?” 체육 특기생인 T가 소시지를 질겅이며 대수롭지 않게 질문했지만 대답은 아무도 해주지 않았어. 왜냐면 O가 찾던 책상이었을 그 나무 책상은 이미 교실에서 없어진 상태였거든. 뭐… 솔직히 쫄아서 대답 못해준 걸 수도 있고.
이름없음 2023/01/31 02:33:36 ID : Qre3O2smIHy
잠시 뒤, 조금 진정이 된 듯 O가 다시 교실로 돌아왔어. 야자에 참여하지 않았던 T가 남은 소시지를 입에 털어넣고 O에게 어깨동무를 걸었지. ‘힘쓰는 일이라면 이 언니가 도와줄테니 너무 화내지말라’면서 말이야. O는 T를 멍하게 바라보다가 다시 날 바라보곤 눈을 빛냈어. 나는 침을 꼴딱 삼키고 O의 손을 잡아 뒤뜰로 향했지.
이름없음 2023/01/31 02:33:57 ID : Qre3O2smIHy
“도깨비. 그거 구라 아니었나봐.” “어?” 바깥으로 나오자 훨씬 차분해진 O는 기운없는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어. 평소보다 흐릿하긴 하지만 분명 평소의 O였다.
이름없음 2023/01/31 02:34:20 ID : Qre3O2smIHy
“도깨비가 그랬잖아. 자기 귀신 본다고.” “아… 그거…” 그랬어. 도깨비라 불리는 학주는 평소에도 자신이 귀신을 본다며 농담을 하곤 했었거든. 우리 아빠가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을만큼 오래된 이 학교에는 귀신이 아주 많다면서 말이야.
이름없음 2023/01/31 02:34:40 ID : Qre3O2smIHy
‘에이~ 쌤 거짓말 하지 말아요!’ ‘이 아줌마들아. 내가 거짓말을 왜 하냐? 거짓말은 맨날 니네가 하지. 진짜 공부했어요~ 청소 다 했어요~ 엄마가 야자 하지 말라그랬어요~ 아주. 내가 니네랑 똑같은 줄 알지?’ ‘쌤 일부러 겁줄라 그러죠!’ ‘야. 이건 겁주는 게 아니야. 차 조심하라고 하는 게 겁주는 거냐?’ ‘아~ 귀신 조심하라고요?!’ ‘됐다. 니네랑 무슨 말을 하겠냐. 임마들아. 비오는 날에 내가 야자 감독하는 이유가 뭔지 생각도 안해봤냐? 새끼 나올까봐 그러는 거야 내가.’ ‘욕했다!!!! 국어쌤이 욕했다!!’
이름없음 2023/01/31 02:35:01 ID : Qre3O2smIHy
언젠가 수업 전에 들었던 사담이 떠올랐다. O 역시 그날의 왁자지껄한 대화를 기억하고 있었을테지. 그리고 문득 나는 발끝에서부터 다시 소름이 기어올라오는 기분이 들었어. ‘새끼’ 그게 욕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이름없음 2023/01/31 02:35:22 ID : Qre3O2smIHy
O는 차가운 손으로 덥썩 내 손목을 쥐었다. “있지. 나 밤새 머리가 빠졌어. 머리카락이 잡혀서, 매달려져서, 머리가 똑. 하고.” “아.” ‘머리가 빠진다는 말이 머리카락이 아니었구나. 정말 머리가… 목이 빠졌다는 말이었구나.’ 나는 뒷말을 삼켰어. 형형해진 O의 눈이 너무 무서워서 말이야.
이름없음 2023/01/31 02:35:35 ID : Qre3O2smIHy
“선생님께 가보자.” 학주라면 뭔가 알지도 모른다는 내 말은 O의 세찬 고개짓에 막혀들었어. “오늘 도깨비 학교 안나왔어.”
이름없음 2023/01/31 02:35:52 ID : Qre3O2smIHy
나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없었어. ‘어.. 어어…’ 거리며 허둥거릴 뿐이었지. O는 한숨을 깊이 내쉰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이름없음 2023/01/31 02:36:09 ID : Qre3O2smIHy
O는 전날 야자가 끝나자마자 학원으로 향했다고 했어. 그리고 학원 수업이 끝나고서야 집에 돌아왔다고 해. 그때까지만 해도 야자 첫 시간에 있었던 불쾌했던 일은 충분히 잊을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고도 했지.
이름없음 2023/01/31 02:36:32 ID : Qre3O2smIHy
“기억나? 야자 끝나고 버스정류장 갈 땐 말이야. 비가 안왔어.” 나는 O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이 팔려 크게 의식하지 않았었지만, 만약에 여느때와 같은 하루가 지나갔더라면 집갈 땐 비가 그쳐 다행이라 떠들며 하교를 했을 테니까. “그리고 새벽 사이에 다시 비가 내렸어.”
이름없음 2023/01/31 02:37:51 ID : Qre3O2smIHy
집에 도착한 O는 대학생인 언니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토로했다고 했다. 도깨비 학주의 불친절함과 바닥에 나동그라진 부끄러움과 둔부의 통증과. 곧이어 스치듯 느꼈던 기분 나쁜 감각, 그리고 흰 환영과 낡은 책상에 대해서도.
이름없음 2023/01/31 02:38:38 ID : Qre3O2smIHy
O의 이야기를 듣던 언니는 O가 나동그라졌다는 대목에서 한참 배를 쥐고 웃더니 눈물을 닦으며 말했대. ‘내가 학교 다닐때도 학주 그런 이야기 했었던 거 같아. 그 땐 별명이 여우였는데 도깨비가 아니고. 아무튼 걔가 비오는 날엔 자기 뒤에 복주머니 책상 없는지 확인하라 그랬었어.’
이름없음 2023/01/31 02:38:57 ID : Qre3O2smIHy
“복주머니 책상이 뭐야?” “…흰 복주머니가 걸려있는 책상.” 나는 O의 대답에 어젯밤에 달랑이던 흰 주머니가 떠올랐어. “봤어? 그거?” 하지만 어쩐지 그렇다고 대답할 수는 없었지.
이름없음 2023/01/31 02:39:13 ID : Qre3O2smIHy
O는 내 무언을 긍정이라 받아들인건지 다시 눈을 이상스레 빛내며 떨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래서 온거야. 다시 비가 오니까 그게…!”
이름없음 2023/01/31 02:39:44 ID : Qre3O2smIHy
그렇게 언니와의 대화를 마친 O는 으스스한 기분이 들어 언니에게 같은 방에서 잘 것을 부탁했다고 해. 하지만 언니는 친구의 연락을 기다리던 중이었기 때문에 곧 집을 나선 모양이야. O의 부모님은 지방에서 일하시고 주말마다 집에 돌아오셨기 때문에 온전히 그 집에는 O만이 남게 된거지.
이름없음 2023/01/31 02:41:07 ID : Qre3O2smIHy
처음에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TV를 틀고 쇼파에서 잠이 들었다고 했어. 사실 그렇잖아. 설마 귀신이 나오더라도 무모한 도전 재방 보는 중에 나오진 않을 거 같은 그런 묘한 믿음?
이름없음 2023/01/31 02:41:23 ID : Qre3O2smIHy
그렇게 한 두 시간을 쇼파에서 불편히 자고 일어나보니 몸만 찌뿌둥하지 별 일은 없었다고 해. 괜한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하면서 방에 들어가 편히 잠자리에 든거지.
이름없음 2023/01/31 02:41:44 ID : Qre3O2smIHy
한참 잠에 들었던 O는 뒷목이 당기는 것 같은 기분에 설풋 깨어났다고 했어. 그래서 벅벅 손으로 뒷통수를 긁으려는데 순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 풀어헤쳐져있어야 할 제 머리카락이 빳빳히 묶여진 느낌이었다는거야.
이름없음 2023/01/31 02:42:16 ID : Qre3O2smIHy
쏴아아- 창 밖으로는 거센 장대비가 내리고 있었지. 기묘한 감각과 빗소리에 잠이 달아난 O는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어쩐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했어. “그저 머리가 당겨지는 걸 참으면서 비가 그치길 빌었지.”
이름없음 2023/01/31 02:42:35 ID : Qre3O2smIHy
나는 믿을 수 없는 O의 이야기에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믿을 수 밖에 없었지. 나도 분명 봤단 말이야.
이름없음 2023/01/31 02:43:00 ID : Qre3O2smIHy
“머리카락을 땋는 게 당기려고 그런건가…” “뭐?” O는 대번에 내 앞으로 얼굴을 밀었어.
이름없음 2023/01/31 02:43:32 ID : Qre3O2smIHy
“아… 아니… 생각해보니까 도깨비가 새끼? 나올까봐 그랬다고 했던 것도, 새끼줄… 뭐 그런 의미였나 싶기도 하고… 너도 머리카락 땋아졌다고 하니까…” “내가 언제?”
이름없음 2023/01/31 02:43:51 ID : Qre3O2smIHy
“어?” “나는 머리카락 땋고 이런 건 몰랐는데.” “어어? “너. 뭐 봤구나.”
이름없음 2023/01/31 02:44:05 ID : Qre3O2smIHy
아. 생각해보니 그랬어. O는 자신이 머리카락이 잡혔다고 했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몰랐던 거야.
이름없음 2023/01/31 02:44:32 ID : Qre3O2smIHy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초조함에 손톱을 물어뜯었어. 무언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
이름없음 2023/01/31 02:52:50 ID : Qre3O2smIHy
오늘은 여기까지. 조금 이따가 다시 올게. 그나저나 전에는 뭔가 이름와 비밀번호? 같은 걸 넣어서 인증코드를 만들수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게 없어져서 어떻게 해야할 지를 모르겠네. 음… 뭐 내가 아니라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
이름없음 2023/01/31 02:53:14 ID : Qre3O2smIHy
아무튼 모두 기다려줘서 고마워. 조금 이따 다시 보자.
◆Qnxwlg6lDth 2023/01/31 02:54:39 ID : Qre3O2smIHy
.
◆Qnxwlg6lDth 2023/01/31 02:55:56 ID : Qre3O2smIHy
아니 맙소사… 찾았네 인증방법… 진짜 바보같다. 그래도 다행이야. 조금 이따간 코드 달고 이야기 할 수 있겠어. 그럼 진짜 안녕.
이름없음 2023/01/31 09:34:04 ID : xyL9gZeJXze
와 진짜 와줘서 고마워 ㅠㅠㅠ 재밌게 잘보고 있어!
이름없음 2023/01/31 13:38:54 ID : 60rhBunu8p8
헐 레주.. ㅠㅠ 돌아왔구나!!
◆Qnxwlg6lDth 2023/01/31 21:26:19 ID : Qre3O2smIHy
고마워. 그럼 이어서 해볼게.
◆Qnxwlg6lDth 2023/01/31 21:27:04 ID : Qre3O2smIHy
“나. 오늘 그 책상을 찾아서 부숴버릴거야.” “뭐?” “모레부터 장마래. 오늘부터 일 수도 있고. 가을 장마라니 웃기지?” 웃긴 일이라며 깔깔대는 O의 눈은 전혀 웃고있지 않았던 거 같아. 현실성 없는 상황에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는 나와는 달리 목적성이 분명한 O의 눈이 말이야.
◆Qnxwlg6lDth 2023/01/31 21:27:42 ID : Qre3O2smIHy
묘하게 드는 현기증에 고개를 들어올리자 정말 꽤 흐릿해진 하늘이 눈에 들어왔어.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공포심과 함께 말이야. 그리고 불현듯 ‘산신령 같던 내 친구 국화라면. 아니, 못해도 약산스님이라면.’하는 생각이 스쳤어. 아쉽게도 국화와의 연락 방법은 소원했지만 다행히도 약산스님과는 방법이 있었지.
◆Qnxwlg6lDth 2023/01/31 21:28:00 ID : Qre3O2smIHy
나는 곧바로 O를 달래 교실로 보낸 후, 핸드폰을 쥐었어. 교실로 향하면서도 점심시간에 책상을 찾으러 지하로 가겠다는 전하는 O의 눈빛은 형형했지.
◆Qnxwlg6lDth 2023/01/31 21:29:11 ID : Qre3O2smIHy
당시 우리 반이 있는 건물은 구조가 굉장히 특이한 별관이었는데, 오직 1층과 지하 2층만이 존재했어. 모든 교실은 지상층인 1층에만 있고, 지하 1층도 아닌 2층은 선생님들의 동행이 있을 때. 그것도 오전에만 들어갈 수 있었다. 왜인지는 몰라. 사실 ‘여긴 오전에만 들어올 수 있어’라고 말하는 선생님 말을 별 생각 없이 흘려들었을 뿐이어서.
◆Qnxwlg6lDth 2023/01/31 21:29:44 ID : Qre3O2smIHy
지하 2층에는 강당에나 있을 법한 커다란 철문이 하나. 그걸 열고 들어가면 또 다시 같은 철문이 하나 더. 거길 열고 나면 내부 공사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지하 동굴같은 공간이 나왔어. 벽은 울퉁불퉁. 마감이나 페인트칠 따위는 없었고, 천장은 온갖 파이프와 전선이 늘어져있었지. 그 공간에 마감된 것은 오직 전구 두 개 뿐이었어.
◆Qnxwlg6lDth 2023/01/31 21:30:22 ID : Qre3O2smIHy
그리고 그 곳은 온갖 책상과 의자가 가득 쌓인, 일종의 창고로 사용중인 것 같았다. 뭐 책걸상 뿐만 아니라 뜀틀이라거나 풍금같은 것도 마구잡이로 처박혀 있었던 걸로 기억해. 나나 O도 체육대회 준비중에 심부름을 가지 않았더라면 전혀 그런 곳이 있었는지도 몰랐을거야. (요즘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라떼는 체육부장과 준비위원이 있었거든. 나와 O는 그 직책을 맡으며 친해졌고.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체육쌤 따까리….)
◆Qnxwlg6lDth 2023/01/31 21:31:39 ID : Qre3O2smIHy
아무튼 O는 아마 그 창고에 책상이 있을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 물론 예전에 쓰던 책걸상은 모두 그 곳에 박혀있었으니, 영 틀린 생각이 아니긴 했지. 근데 솔직히 그걸 어떻게 찾겠어? 거기에 널리고 널린 게 책상이고 의자야. 못해도 몇 백 개는 쌓여있을 거란 말이야.
◆Qnxwlg6lDth 2023/01/31 21:34:10 ID : Qre3O2smIHy
나는 찾는 걸 포기한 O가 불을 지르는 상상까지 하곤 몸을 부르르 떨었어. 알지? 파워 N은 원래 그런 법이잖아? 하지만 여고생의 끔찍한 상상을 현실로 만들 순 없지. 난 곧바로 전화를 걸었어. 수신인은 우리 할머니.
◆Qnxwlg6lDth 2023/01/31 21:34:38 ID : Qre3O2smIHy
“할머니! 약산스님 전화번호 있어요?” “약산스님? 절에? 왜?” “물어볼 게 좀 있어서….” “나도 절 연락처만 알지. 근데 스님이 지금은 절에 안계실텐데.” “어? 왜요?” “원래 요맘때 쯤엔 안계셔. 다른 절에도 가시고 안하겠어?”
◆Qnxwlg6lDth 2023/01/31 21:35:39 ID : Qre3O2smIHy
대충 이런 대화를 나눴던 것 같다. 그렇게 별 소득 없이 전화를 끊고 잠시 허망함에 멈춰서 있었어. 그리고 보충수업 시작 10분 전을 알리는 예비 종소리가 울렸지. 터덜터덜 교실로 돌아가는데 정말 오만 생각이 다 들더라. 그런데 그 가운데서 풍경소리와 함께 들렸던 약산스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어. ‘마음가는대로 행동하고 너무 늦지 않게 날 찾아오렴.’
◆Qnxwlg6lDth 2023/01/31 21:36:08 ID : Qre3O2smIHy
‘그래. 일단 저질러보자. 생각나는 대로 저지르고 뒷수습은 스님께 맡기자.’ 이렇게 이기적으로 생각하고 나니까 갑자기 어디선가 힘이 쑥 올라오는 것만 같았어. 원래 사람이 극도로 겁먹으면 당당해지고 막 뇌 빼고 생각하고 그런 거 있잖아? 아마 그 때 좀 그런 상태가 되었던 모양이야.
◆Qnxwlg6lDth 2023/01/31 21:36:53 ID : Qre3O2smIHy
나는 다시 핸드폰을 빼들었어. 이번 수신인은 내 동생. 그 날은 토요일이라 중학생인 동생은 집에 있었거든. 가련한 고등학생은 등교를 했지만 말이야. (혹시 너네 놀토 알아? 놀라운 토요일 말고….)
◆Qnxwlg6lDth 2023/01/31 21:37:17 ID : Qre3O2smIHy
그 시간까지 달게 자던 동생은 내 전화에 짜증을 내면서 깨어났어. 그런 동생에게 나는 다짜고짜 5만원을 불렀지. 5만원에 택시비 따로 줄테니까 학교로 물건 하나만 가져다 주라고 말야. 금융치료 당한 동생은 곧바로 택시를 타겠노라 말했지.
◆Qnxwlg6lDth 2023/01/31 21:37:51 ID : Qre3O2smIHy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동생은 총알처럼 물건을 배달했어. 그리고 돈키호테처럼 당당하게 물건을 가지고 교실로 향했지. 그렇게 들어간 교실에서 나는 보충수업 중이시던 영어쌤에게 핸드폰도 뺏기고 먼지가 되도록 맞았다.
◆Qnxwlg6lDth 2023/01/31 21:38:23 ID : Qre3O2smIHy
점심시간이 되자, O는 곧바로 교실을 나섰어. 맞은 등짝은 아프고 굶주린 배는 고팠지만 적어도 O가 향할 곳이 급식소가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지. 시간은 오전 11시 30분. (토요일에는 3교시가 끝나고 점심을 먹었었어) 나는 O를 불러 한숨을 쉰 후 함께 지하로 이동했어. 물론 그 물건도 함께 말이야.
◆Qnxwlg6lDth 2023/01/31 21:39:08 ID : Qre3O2smIHy
우리는 손발을 더듬거리며 조심스레 지하로 향했어. 요전과는 달리 내려가는 계단조차도 어둑해서 잘 보이지 않았지. 아마 그나마 조금 나 있는 손바닥만한 창이 동향이라 해가 조금만 올라가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았어. 거기에서 아차 싶긴 했지. ‘이래서 오전에만 내려올 수 있었던 건가’ 싶어서 말야.
◆Qnxwlg6lDth 2023/01/31 21:39:29 ID : Qre3O2smIHy
2층에 다다라서는 O의 휴대폰 불빛에 의지해야지만 앞으로 걸어갈 수 있었어. 분명 지상은 대낮인데 지하는 한밤중처럼 깜깜했지. 심지어 난 약간의 야맹증까지 있는터라 정말 더럽게 무서웠어. 귀신이고 나발이고 일단 계단에서 구를까봐….
◆Qnxwlg6lDth 2023/01/31 21:39:52 ID : Qre3O2smIHy
철문을 하나, 둘 열면서 넓고 둔탁한 공간에 찢어지는 쇳소리가 퍼졌어. ‘끼익’도 아니고 ‘삐에에이익….키잉..팡!’ 이런 소리였다니까? 무슨 소린지 상상이 안갈 수도 있는데 대충 공포영화에서 나오는 최악의 소리라고 상상해줘.
◆Qnxwlg6lDth 2023/01/31 21:54:05 ID : Qre3O2smIHy
마지막 문까지 열고나니까 예의 그 창고가 등장했어. 이상하게도 창고에 들어서니까 쿰쿰한 곰팡이 냄새와 어렴풋한 빛이 느껴졌지. 딸랑 두 개 있는 그 줄전구. 그게 다 켜져있더라고. 창고로 들어서는 O의 슬리퍼가 성기게 마감된 시멘트 바닥에 미끄러지며 ‘지익’하는 마찰음을 냈어. 나는 왠지 모를 긴장감에 침이 꼴딱 넘어갔다.
◆Qnxwlg6lDth 2023/01/31 21:54:26 ID : Qre3O2smIHy
내 긴장감의 이유는 뭐였을까? 귀신? 어둠? 아니면 눈이 뒤집혀서 책상을 찾아 둥탕거리는 O? 아니면 이 소리를 듣고 쫓아올 당직 선생님들? 그래 설마 하나였겠어. 솔직히 이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몰아 닥쳐서 내 손바닥만한 간을 주무르는 기분이었다. 심장이 쫄깃하다는 느낌이 이런 거였나 싶을 정도로 말이야.
◆Qnxwlg6lDth 2023/01/31 21:54:47 ID : Qre3O2smIHy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꽤 방음이 잘되는지 선생님들은 찾아오지 않았고, 그나마 조금씩 들어오던 햇빛이 옅어진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어. 거기다 쿰쿰한 곰팡이 냄새 위로 조금씩 눅진한 향이 풍기기 시작했지. 나는 주인의 발소리를 들은 강아지처럼 고개를 단번에 빼들었어. ‘비! 비냄새다!’
◆Qnxwlg6lDth 2023/01/31 21:55:27 ID : Qre3O2smIHy
왜, 공부를 많이 하다보면 나사가 나가기도 하고 조금씩 미친 구석이 생기기 마련이잖아? 운동장 잔디에 물주는 스프링클러를 보고 달려드는 학생이나, 말도 안되는 눈물 콧물 핵 매운 맛 닭꼬치를 달게 먹는 학생이나, 와플 한 조각 먹겠다고 30분을 뛰어 달리는 학생들처럼 말이지.
◆Qnxwlg6lDth 2023/01/31 21:56:11 ID : Qre3O2smIHy
갑자기 무슨 말인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그 중에서 나는 비에 미쳐있는 평범한 학생이었어. 비 맞기도 좋아하고, 바라보는 것도 좋아하는 비 처순이 말이야. 그러다보니 제육냄새보다 비냄새를 더 칼같이 맡는 개같은 능력도 생겼다. 그런 내가 장담컨데 지하실까지 이 냄새가 풍긴다면 얼마 안가서 비가 내릴 게 분명했어.
◆Qnxwlg6lDth 2023/01/31 21:56:30 ID : Qre3O2smIHy
“O! 나가자!” “여기 있을거야! 그거 찾기 전엔 못 가!” “여기 없을 수도 있잖아! 도깨비가 치웠을 수도 있어! 차라리 나가서 물어보자!” “여기 있다고!” “정신차려, O! 곧 비올 거 같아서 그래! 왠지 해가 없어지면 큰일 날 거 같단 말야!” “비… 비온다고?”
◆Qnxwlg6lDth 2023/01/31 21:56:51 ID : Qre3O2smIHy
아차. 나는 내가 실언을 했다는 걸 눈치챘어. 곧바로 입을 막아봤지만 이미 늦었지. O는 산처럼 쌓인 책상의 탑에 기어오르며 무언가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있었어.
◆Qnxwlg6lDth 2023/01/31 23:08:35 ID : Qre3O2smIHy
얼마나 지났을까. 열심히 O에게 향하던 나는 창고가 ㄷ자 모양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눈치챘어. 안쪽에 공간이 더 있었던거야. 그리고 그 안 쪽 공간으로 고개를 들이밀었을 때. 달랑거리며 흔들리는 흰 주머니를 발견했어.
◆Qnxwlg6lDth 2023/01/31 23:08:58 ID : Qre3O2smIHy
‘비… 지금 비가 오던가…’ 이미 비냄새는 뭉근히 퍼져있었지만 이곳에서는 어쩐지 아무 소리도 들리질 않았어. 그리고 불현듯 O가 아무 목소리도 내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당시의 나는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이 절대적이라는 느낌만이 들었다. 천천히 뒷걸음질치며 O에게 향하던 나는, 날 바라보는 그녀에게 조용히 하라는 의미로 양 손으로 입을 막았어.
◆Qnxwlg6lDth 2023/01/31 23:09:20 ID : Qre3O2smIHy
“찾았어?!” 아. 닥치라는 뜻을 너무 놀라 감동받은 것 정도로 오해한 모양인지 O는 상기된 얼굴로 소리쳤다.
◆Qnxwlg6lDth 2023/01/31 23:09:37 ID : Qre3O2smIHy
그 때 굽어진 창고 내부에서 타닥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온다. 온다…!’
◆Qnxwlg6lDth 2023/01/31 23:09:59 ID : Qre3O2smIHy
나는 곧바로 품에서 챙겨온 물건을 꺼내들었어. 그 물건은 바로 사촌동생의 공주인형이었지. 치렁치렁한 머리카락. 그리고.
◆Qnxwlg6lDth 2023/01/31 23:10:17 ID : Qre3O2smIHy
[랄라랄라라~] 그냥 인형이 아니라 노래하는 공주인형이었다. 나는 인형의 가슴팍을 두들겨 패듯 누르고 입구에서 최대한 멀찍히 집어던졌어. 그리곤 O에게 달려들었지. 우당탕거리며 나와 O가 쓰러진 곳에서 두껍게 쌓인 먼지가 풀풀 날렸어.
◆Qnxwlg6lDth 2023/01/31 23:10:35 ID : Qre3O2smIHy
창고 한 켠에 떨어진 인형은 을씨년스러운 노래가락을 뽑아냈다. 물론 실제론 명랑한 공주의 노래였지만, 알 바야? 그 분위기면 빅뱅이 와서 텔미를 불러도 장송곡처럼 들렸을 거야. 그 사이에 타닥이던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어. 우리가 아닌 인형쪽으로 말야.
◆Qnxwlg6lDth 2023/01/31 23:10:55 ID : Qre3O2smIHy
내게 입을 틀어막힌 O는 이내 눈을 큼직히 뜨고 연신 손가락질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O가 가리키는 곳은 전구의 불빛이 닿지 않는 창고 깊숙한 곳이었어. 나는 한참을 인상을 쓰며 그 곳을 노려보다 이내 포기했다. 그리곤 O를 끌고 기다싶이하며 창고를 벗어났어.
◆Qnxwlg6lDth 2023/01/31 23:11:11 ID : Qre3O2smIHy
바깥으로 뛰쳐나온 우리의 꼴은 엉망이었다. 특히 흰 블라우스는 거의 얼룩무늬처럼 먼지에 절여져있었지. 그리고 지상에서 처음 발견한 것은 바로 장대같은 빗줄기였어.
◆Qnxwlg6lDth 2023/01/31 23:11:27 ID : Qre3O2smIHy
“아… 아아!” 비를 본 O는 제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어. 나는 교복 조끼를 벗어 그녀의 머리를 감싸쥐었지. 아무것도 없다고 귀에 반복해 말하면서 말야.
◆Qnxwlg6lDth 2023/01/31 23:11:45 ID : Qre3O2smIHy
얼마 지나지 않아 O는 그 사실을 실감한 듯 자신의 머리카락과 나를 번갈아봤어. 그리고 제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나… 잠깐 미쳤던 걸까?” 대충 ‘그랬나보지’ 그녈 달래며 일으켜 세운 내 머릿 속엔 오직 한 가지만이 가득 차 있었다. ‘급식, 아직 안끝났겠지?’
◆Qnxwlg6lDth 2023/01/31 23:12:05 ID : Qre3O2smIHy
그날의 급식은 평이했지만 눈물나게 맛있었다. 성적 스트레스가 심해서 꿈을 꾼 것 같다는 O의 식판까지 싹싹 긁어 먹을 정도로. 지금 생각해보니 이상하게 허기가 지고 피곤했었다.
◆Qnxwlg6lDth 2023/01/31 23:12:31 ID : Qre3O2smIHy
그렇게 배를 채운 후에야 나는 요즘 내게 이상한 일들이 잔뜩 생기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인정할 수 밖에 없었어. ‘긍정 파워로 살아온 내 인생… 뭔가 잘못되고 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거야~~] 어린 시절 줄창 불러왔던 백터맨 오프닝곡이 비장하게 들려오는 것만 같았지.
◆Qnxwlg6lDth 2023/01/31 23:18:18 ID : Qre3O2smIHy
그 후로 꽤 오랜 시간 동안 가을 장마가 이어졌어. 여름 장마에 비해 눅눅함은 덜 했지만, 오히려 싸늘하게 기온이 내려가서 교복 위로 후드티나 집업 같은 사복을 입는 애들이 늘어났지. 추우면 교복 마이를 입으라고 선생님들이 혼내시긴 했는데, 다들 ‘드라이 맡겼다’ ‘갑자기 추워져서 어쩔 수 없었다’ 이런 핑계를 대면서 은근히 사복을 입을 수 있는 그 기간을 즐겼던 거 같아.
◆Qnxwlg6lDth 2023/01/31 23:20:54 ID : Qre3O2smIHy
하지만 적당히 봐주는 다른 선생님들과 달리 학주였던 도깨비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사복을 통제했어. 복도에서 담요 두르고 다니는 애들만 봐도 일단 후려치고 볼 정도였지. 학주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어쩐지 그게 이유의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도 조금 들더라.
◆Qnxwlg6lDth 2023/01/31 23:22:43 ID : Qre3O2smIHy
그렇게 장마가 끝날 때 즈음, 1학년 모두가 강당으로 소집됐어. 우리는 스쿨오브락 아니냐면서 킬킬대며 강당으로 향했지.
◆Qnxwlg6lDth 2023/01/31 23:23:54 ID : Qre3O2smIHy
그런데 강당 입구에서부터 잔뜩 상기된 선생님들이 가득하더라고. 그래서 모두 대열을 맞추면서도 목소리를 낮춰 수근거렸어. 또 까마귀가 튤립 꺾은 거 아니냐면서 말이야.
◆Qnxwlg6lDth 2023/01/31 23:25:42 ID : Qre3O2smIHy
전에 이런 식으로 전교생이 강당으로 모인 적이 있었는데, 그 땐 교감선생님이 금이야 옥이야 기른 튤립을 누군가가 머리만 잘라서 앞에 내려놨다는 게 이유였어. 그 앞에 CCTV가 있으니 금방 범인이 잡힐 거라고. 그 전에 미리 죄를 고하라면서 말이야. 물론 아무도 나오지 않았는데 알고보니 까마귀가 튤립의 머리를 똑 물어서 뜯더니 그 앞에 내려놨다는 거 있지?
◆Qnxwlg6lDth 2023/01/31 23:27:24 ID : Qre3O2smIHy
아 갑자기 이야기가 샜네. 아무튼 그런 이유로 또 집합 당한 건가 모두 수근거렸어. 아니나 다를까. 강당 구령대?. 암튼 그 단상으로 올라간 학주가 벌개진 얼굴로 소리를 지르더라고. 지하실에 장난 쳐놓은 놈들 당장 튀어나오라면서 말이지.
◆Qnxwlg6lDth 2023/01/31 23:31:28 ID : Qre3O2smIHy
지하실 이야기에 괜히 뜨끔해진 나와 O는 서로를 힐끗 쳐다봤어. 그 날 지하실에서 대놓고 와장창 뒹굴었던 기억은 있는데 정리를 해놓은 기억은 없으니, 그걸 어지른 사람인 우리 둘을 찾나 해서 말야. 하지만 도깨비 학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더라고. ‘어디서 헛소리 듣고와서 천장에 쓸데없는 거 달아둔 정신나간 놈들이 누구냐’면서.
◆Qnxwlg6lDth 2023/01/31 23:32:20 ID : Qre3O2smIHy
그게 뭐냐는 질문도 여기저기서 터져나왔지만, 어쩐지 학주는 시원스레 그게 뭔지 말해주지 않더라고. 결국 흐지부지 집합은 끝났지.
◆Qnxwlg6lDth 2023/01/31 23:33:33 ID : Qre3O2smIHy
그리고 1학년만 쓰던 그 별관에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어. ‘지하 2층에 머리가 매달려있었대!’ 라는 오싹한 괴담이 말이야.
◆Qnxwlg6lDth 2023/01/31 23:35:00 ID : Qre3O2smIHy
T로부터 우연히 그 카더라 통신을 접하게 된 나는 본능적으로 그게 뭔지 알 수 있었어. 그리고 안구까지 소름이 돋는 기분이 들었지. 그래. 그건 아마 그 인형이었을거야. 내가 집어 던졌던 그 공주인형.
◆Qnxwlg6lDth 2023/01/31 23:37:28 ID : Qre3O2smIHy
하지만 전혀 그 사실을 주변에 알릴 필요는 없었지. 당연히 입을 꾹 닫은 채 집으로 돌아왔어. 그리고 집에 돌아오니 꽤 심각한 표정의 고모가 계시더라고. 고모는 날 보자마자 대체 뭘 하고 돌아다니는거냐며 벌컥 화를 내셨어.
◆Qnxwlg6lDth 2023/01/31 23:42:13 ID : Qre3O2smIHy
쓰다보니 벌써 여기까지 왔네. 음… 사실 그냥 간단하게 설명해주자면, 이후로도 나는 몇 차례 기이한 일을 경험했고 그로 인해서 과거 국화가 겪었던 일이 뭐였는지 알게 됬어. 그리고 그 애한테 미치도록 미안해졌지. 그러고도 나는 다시 국화의 도움을 받게 됐는데, 그게 나와 국화의 마지막이었어.
◆Qnxwlg6lDth 2023/01/31 23:44:22 ID : Qre3O2smIHy
앞으로 이후의 일은 레더들의 의견에 따라서 1. 하던대로 이야기한다. 2. 간략히 사건만 이야기한다. 로 방향을 바꿔볼게. 이게 하루 이틀의 이야기가 아니라 거의 4-5년에 걸친 이야기라 일일히 풀어 이야기했다간 너무 답답해 할 것 같아서 말이야….
◆Qnxwlg6lDth 2023/01/31 23:45:18 ID : Qre3O2smIHy
그럼 나는 의견이 모아지는 대로 다시 돌아올게. 늘 고마워. 나는 덕분에 잘 지내고 있어. 너도 행복하길.
이름없음 2023/02/01 01:19:22 ID : zWi00062K1B
나는 하던대로 얘기해줫으면 좋겠어!
이름없음 2023/02/01 06:25:23 ID : Bs07863TQoK
나도 하던대로 얘기해주면 좋겠어! 이 댓글다려고 회원가입까지 했어ㅠㅠㅠ 진짜 읽는 내내 뭔가 구연동화 듣는 기분이였오! 최고최고
이름없음 2023/02/01 08:32:02 ID : xyL9gZeJXze
2판 파줘도 좋아 ㅠㅠㅠ 다 듣고 싶어!
이름없음 2023/02/01 15:33:42 ID : Bfe3TWkla4F
하던대로 이야기해줘! 그게 더 몰입될 것 같아! 우와 나 레스 작성 처음 해본다....
이름없음 2023/02/07 11:03:59 ID : Gr9jxSHxzU3
여태까지 전개방식 너무 좋아!! 그대로 해줘!!
이름없음 2023/02/07 12:39:34 ID : 45fhy3Pa8kl
하던 대로 해줘 늘 잘 보고 있어!!
이름없음 2023/02/07 14:07:09 ID : WrwHCrzhtdD
2판까지 달려보자고
이름없음 2023/02/08 13:25:38 ID : a2oJU7vxxyJ
이거보려고 스레딕 가입했슴..
이름없음 2023/02/13 18:48:57 ID : Fhf9hfgnWko
와 미쳤다... 오랜만에 들어왔는데 알림 많아서 뭔가 했는데 국화에게... 너무 오랜만이야
이름없음 2023/02/18 10:00:32 ID : lu5UY4L9a1c
그냥 하던대로해줘...와 몇년전꺼를 정주행하다니...감격스러...제발 빨리돌아와줘ㅠㅠ
이름없음 2023/02/18 17:12:10 ID : gmHB9csnWo5
하던대로 해줘. 정말 동화를 듣는 것 같은 스레주 문체에 뭔가 가슴이 몽글몽글한 기분이야. 좋으니까 오래 걸리더라도 이대로 해주면 좋겠어
이름없음 2023/06/18 04:28:44 ID : XwE8jbhglvh
기다리고 있어ㅜㅜ
이름없음 2023/06/19 17:43:32 ID : zff9fQpQtwJ
이거 올해 초까지도 연재되고 있었구나 나 중딩 때 보던 건데…
이름없음 2023/06/29 04:15:25 ID : 45fhy3Pa8kl
다시 보고 싶다
이름없음 2023/06/30 19:09:58 ID : jfWrupO08ru
우아 진짜 오랜만이다.. 레주야 나중에 한번만이라도 찾아와주라! 난 언제나 기다리고 있을게
이름없음 2023/07/07 23:33:31 ID : bdyHzRvbcnC
레주야 항상 하던대로 해줘 2판 파더라도 끝까지 함께할게
이름없음 2023/07/13 14:28:40 ID : o1CphBuso5f
헐 하던대로 이야기 한다!! 잘 보고 있어,, 아푸지말고 건강했으면 좋겠어 !!
이름없음 2023/08/09 04:27:49 ID : a1ctBumq6km
보고싶다 스레주
이름없음 2023/08/10 00:19:04 ID : jfWrupO08ru
와 이거 진짜 오랜만에 보네.. 이거 진짜 재밌었는데 ㅎㅎ 레주야! 난 아직도 기다리구 있엉ㅎㅎ 빨리 돌아와줘!ㅎㅎ (참고로 스탑 걸었어!)
이름없음 2023/09/23 17:29:54 ID : K2MjeLbwlct
와…진짜…현재진행형이라니ㅠㅜㅜㅜㄴ 너무 잼있어ㅜㅜㅜ 있던 그대로 풀어주라 레주야ㅜㅜㅜ
이름없음 2023/11/05 06:52:55 ID : Qre3O2smIHy
.
◆mGsi7aq7tg1 2023/11/05 06:59:17 ID : Qre3O2smIHy
안녕 돌아왔어.
◆Qnxwlg6lDth 2023/11/05 07:00:27 ID : Qre3O2smIHy
인증코드가 뭐였는지 기억이 잘 안나네. 너무 오랜만이라....
◆Qnxwlg6lDth 2023/11/05 07:01:45 ID : Qre3O2smIHy
아, 이게 맞구나. 다들 정말 오랜만이야. 아직 못다한 이야기를 조금 풀러 왔어.
◆Qnxwlg6lDth 2023/11/05 07:06:28 ID : Qre3O2smIHy
음... 근데 어느새 레스가 거의 다 찼네. 새 스레를 세우고 저녁에 돌아올게. 다들 조금 있다가 만나.
◆Qnxwlg6lDth 2023/11/05 07:10:16 ID : Qre3O2smIHy
이름없음 2023/11/22 15:51:01 ID : dzV9fO3u67y
이름없음 2023/11/22 15:52:10 ID : dzV9fO3u67y
이름없음 2023/11/22 15:52:18 ID : dzV9fO3u67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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