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타인이라기엔 가까웠고, 친구라기엔 서로를 잘 몰랐던 국화. 그 아이에게 못다한 말을 털어놓으러 여기까지 왔어.

보통 가정집보단 가게나 식당 이런 곳들에서 박스가 많이 나오잖아. 그나마도 모든 가정집을 가시는 게 아니라 딱 서너집만을 그렇게 다니셨더라. 우리집, 길 건너의 쌍둥이 형제네 집, 그 바로 옆 집. 뭐 이 정도? (솔직히 쌍둥이네 집 말곤 왕래가 없는 집이라 거의 못 알아 들었어.....)

이후에 나는 어른들이 시키는대로 절을 하고 물러섰다. 어른들이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 동생과 함께 육개장이나 전 같은 몇 음식을 주워먹기도 하면서 말야.

그리고 집으로 다시 돌아갈 때 쯤, 문득 생각나 챙겼던 목줄을 따님께 내밀었어. ‘할머니가 꼭 챙겨달라고 하셨던 거다.’ 뭐 이런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면서. 따님은 잠시 주춤거리시다가 그걸 방 안? (상주들이 짐을 두는 창고 같은 느낌이었어) 같은 곳으로 챙겨가셨다. 고맙다는 말도 덧붙여 주시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도로 위에 반짝이는 차량 후미등과 가로등을 멍하니 바라보다, 나는 그제서야 할머니가 내 방 창문으로 반복해서 찾아왔던 이유를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었어. 내 방 창 밖이 우리 집에서 나오는 폐지류를 모아두는 곳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거지.

‘어쩌면 할머니는 늘 하던 일을 반복하셨던 걸지도 몰라.’ 그런 생각이 들자 어쩐지 가슴께가 시려오더라. 조용하게 외로웠던 윗집 할머니. 영문 모를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폐지를 줍고 말벗을 찾아다녔을지 모르는 부지런한 그 할머니. 나는 어쩐지 외로웠던 윗집 할머니가 S의 강아지를 만나고서야 먼 길을 훌훌 떠날 수 있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지독하고 쓸데없는 뇌피셜이지만...

집에 돌아온 후 나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다시 창문으로 향했어. 뺑소니를 목격했던 그 날 이후, 처음으로 그 창문을 똑바로 보기로 마음먹은거야. 쉼호흡을 하고 창을 열자 그 바로 아래에는 눅진한 박스와 책따위가 쌓여있었다. 윗집 할머니가 더이상 찾지 않아 꽤 많은 폐지류가 쌓여있었어. 새삼 얼마나 그 분이 부지런 하셨는지 느낄 수 있었지.

“어?” 중2병 마냥 아련하게 폐지를 쳐다보다가 시선을 창틀로 옮겼을 때였어. 그 비틀리고 주름진 손가락이 쥐고 있던 그 부근에 무언가가 끼워져 있었다.

하얀 종이 속에 포장된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판. 한참 이게 뭔가 쳐다보며 고민하다가 알아낸 그 쪼끄만 플라스틱의 정체는 과자 속에 들어가 있는 장난감이었어.

치토스라고 알려나. 호랑이인지 치타인지, 선글라스를 쓴 캐릭터가 그려진 몽둥이? 모양 짭짤이 과자. 양념치킨, 바베큐 뭐 그런 맛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그 과자 안에 조그만한 플라스틱 장난감이 들어가 있곤 했었거든.

조립하면 팽이가 되는 따조라고 불렀던 장난감. 그게 창틀 사이에 끼워져 있더라고. 바깥쪽 창틀에 끼워진터라 지금껏 내가 못봤던 모양이야. 이상할 정도로 포장마저 하얗고 깨끗한 따조는 적어도 우리집에선 볼 일이 없는 물건이었지. (집안 식구들 다 군것질 일절 안해서... 유일한 군것질이 과일 정도?)

헐 레주야 나 눈물날려함.... 레주 기다리기 56일차 만에 돌아왓서...

>>712 응.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보자면, 나는 그 온전한 장난감을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책상의 유리판 아래에 끼워넣었다. 내 책상은 나무 위에 유리판이 올려져있는 구조라 말린 꽃잎이나 암기가 잘 안되는 단어 같은 것들이 그 아래 끼워져 있곤 했거든.

레주 안녕 오랜만에 왔구나! 기다리고 있었어

그리고 그렇게 끼워넣었던 따조의 주인을 찾게 된 건 바로 그 다음날이었어.

장례식장을 다녀온 다음 날. 나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장례식을 다녀온 직후 동생이 크게 체해서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며 밤을 지새웠는데, 덕분에 나 역시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 됐거든.

이제야 악몽도 끝나고 꿀잠을 잘 수 있겠거니 했는데 말야. ‘역시 사람은 잠이 보약이구나.’ ‘일제강점기 때 잠을 억지로 못자게 하는 고문법이 있었다는데, 그거 생각해낸 놈은 진짜 그 고문 당하다 쓰러지게 만들어야 한다.’ 나는 뭐 이런 생각을 하느라 몸져 누워서 실없이 히죽거렸다.

동생은 내내 토를 하지, 나는 마당에 누우면 못 찾을 정도로 얼굴이 흙빛이지. 아빠는 이른 아침부터 나와 내 동생의 담임선생님에게 이 소식을 알리지 않을 수 없었을거야. 이후 아빠는 할머니께 하루 일을 쉬실 것을 부탁드리고 느즈막히 출근을 하셨어.

>>715 기다려줘서 고마워.

새벽에 병원에 가서 링거까지 맞고 왔건만 점심이 되어갈 무렵까지 동생은 별 차도를 보이지 않았고, 할머니는 큰 결심이라도 하셨는지 우리 둘을 데리고 집을 나서셨다.

목적지는 삼촌이 모셔져 있고, 할머니가 치성을 드리곤 하는 사찰이었어. 할머니 손에 이끌려 택시를 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집에서 멀지 않은 산 속의 사찰에 당도할 수 있었지.

단풍이 들 무렵의 고즈넉한 사찰. 대나무로 만든 바가지가 놓인 약수터에서는 또롱또롱거리는 물소리가 흐르고 있었어. 몸이 피로한 것도 잊고 그 사찰을 둘러보고 있자니, 마침 기세 좋게 분 바람에 처마 끝에 달린 풍경이 울었다.

땡그랑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조약돌이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한 맑은 소리. 그 소리 위로 바스락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겹쳐 들려왔어.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소박한 단색의 옷을 입은 스님이 우리 할머니를 향해 합장을 하고 계셨다. “보살님.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뭐 이런 말씀을 하시면서 말야.

다시 한 번 풍경 소리가 울렸고, 스님은 이번엔 나를 향해 웃어보이셨어. “어릴 때 보고 이제 보는구나.” 순간 내 머리 속엔 같은 풍경소리와 커다란 그릇 속에 담긴 연꽃, 그리고 찻잔을 손에 든 스님이 떠올랐어. ‘약산이 스님!!’ 찻잔을 손에 든 채 웃으며 달려가던 내 모습도 말이지.

맞아. 그 스님의 이름은 약산스님. (물론 여기에선 다른 이름으로 바꿔 적었어. 혹시 몰라서 말야) 그리고 힘든 몸 상태로 스님을 마주한 그 날이 약산스님과의 두 번째 만남이었지.

자. 오늘은 여기까지야.

느릿느릿 기억을 더듬다보니 이제서야 약산스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됐네. 혹시 많이 답답하다면 조금 더 빨리 이야기를 진행해볼게. 최대한 기억 나는 모든 내용을 적다보니 읽기에 지루한 감이 없지않아 있을거라 생각해.

>>727 레주 얘기는 언제 들어도 흥미진진해! 다음에 생각날 때 다시 들려줘

다음에 올 땐 약산스님과의 첫 번째 만남은 생략하고, 두 번째 만남을 짧게 요약한 후 넘어갈 예정이야. 아무래도 꼭 들어야 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서. 대신 모든 이야기가 다 끝나게 되고, 궁금해 하는 사람이 생기거든 조금씩 풀어볼까해.

>>729 고마워. 내 이야기를 들어줘서.

그럼 우리 다음에 또 보자.

>>732 그래 수고했어!

정주행하고왔어. 진짜 재밌게봤어!! 재밌고, 다정하고, 가슴아프고, 행복한 이야기였어. 기다릴게!

>>732 응응 다음에 꼭 보자

헐 레주ㅠ 기다리고 있었어ㅠㅜ 돌아와줘서 고마워ㅜㅠㅠ

스레주 혹시 작가야? 필력이 너무 좋고 글에서 진짜 국화꽃 향기가 나... 몰입도 있게 너무 잘 쓴다. 간간이 와서 새로운 썰 있나 들여보고 갈게!

>>730 레주야 기다리고 있었어. 이렇게나마 돌아와줘서 정말 고마워!

와... 이거 뭐야 책으로 내도 되겠다 레주 필력에 감탄하구가...

지난날에 고생이 많았네 탄식하며 슬퍼해도 근심을 잊기 어렵구나 사슴이 기쁘게 울며 들판의 다북쑥을 뜯는데 나에게 반가운 손님이 있기에 거문고를 타고 생활을 읊었네 달이 밝은 덕은 어느때에나 가지게 될까 시름이 마음속으로부터 나오니 끊어비릴수가 없구나

90일이 지나서 추천할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퍼ㅠㅠㅠ

레주 필력대박이다진짜.....빠져들어...

레주 필력 대박이다...

보고 싶어 레주 언제 와?

>>745 제발 좀 고대잖냐

>>746 8분전 갱신이더라 너나 작작해 (스탑달고쓴다)

2E868092-A812-405E-86FB-03D535949D8F.png.jpg>>747 뭔ㅋㅋㅋㅋㅋㅋ 레더야 지금은 12분전 갱신인데 내가 5시 58분에 레스를 썼니? 혹시몰라 사진첨부한다 아무리 봐도 쟤가 갱신한건데 왜 나한테 시비야ㅋㅋㅋㅋ 가뜩이나 저런애 많아서 빡치는데ㅋㅋㅋㅋ

>>750 무서운 사진일까봐 못보고있음..ㅡㅡ

>>751 아냐 그 검뽑는 할머니셔 영감... 미안해요 할머니

>>751 젠이츠 할머니인데..

>>755 갱신 초성으로 쓴거야

>>756 그걸 물어본 게 아니잖아.. (스탑검)

대체 언제 끝나냐 ..... (나도 스탑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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