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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1 22:22:20 ID : Apala60sjeE
옛날엔 노래를 못 부른다는걸, 베이스도 안 잡혀있다는걸 알면서도 그냥 부딪히기만 했어. 학원을 다닐 돈이 없었으니까. 하긴, 교통비가 더 많이 나가긴 했다. 서울에서 2시간거리를 매주 토요일, 일요일. 방학때는 열리는 곳마다 거를것 없이 오디션을 다녔었지. 그렇게 연습실도 못가고, 남의 회사 연습실에서 노래를 딱 한번씩만 부르며, 그렇게 연습했었어. 비가오면 늘 30분 일찍 출발했고, 엄마아빠 다 주무실때 슬금슬금 나와서 버스를 타러가기도 했었지. 매일매일 처음인 서울의 거리들을 방황하면서, 귀엔 이어폰 하나 꽂고 사람이 없을 때 마다 노래를 흥얼거리고 목을 풀었어. 이어폰 하나가 그때 내겐 모든 위로와 희망이었지. 블루투스 이어폰을 샀을 때는, 이제 버스타기 수월하겠단 생각에 얼마나 두근댔는지. 한창 한 그룹을 좋아할 때라, 늘 이어폰에선 그 그룹의 데뷔곡 부터 최신곡 까지 쭉 흘러나와 그 순서를 외우기도 했었어. 그 그룹의 노래들 하나하나엔 버스를 놓치고, 비오는 날 길을 잃고, 햇볕 쨍쨍한 시간에 일과를 마치는 내 그때가 다 들어있기도 하지. 그래서 한동안은 그 그룹을 놓지 못했던 것 같네.
2020/08/11 22:22:35 ID : Apala60sjeE
아, 그래도 연습실을 빌려쓰긴 했었어. 바보같이 엄마한테 용돈 좀 더 달라는 얘기도 못하고, 친구랑 나눠서 길어도 3시간 허겁지겁 영상 찍고 프로필 찍고. 용돈은 다 교통비로 쓰고 옷 살돈도 없어서 남들 다 크롭티에 조거팬츠에 스냅백이다 뭐다 꾸밀 때 나 혼자 삼선바지에 후드티, 반팔티. 그 땐 실력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꾸미지 않으면 눈에 띄지도 않는다는걸 어떻게 알았겠어. 그래놓고 늘상 집에선 시끄러울까봐 연습은 무슨 말도 조용히, 연습실 나가선 친구랑 쭈뼛쭈뼛. 실력도 끼도 뭣도 없는데 누가 뽑아주겠냐만은, 그땐 그걸 몰랐지. 그게 제일 중요한거였는데.
2020/08/11 22:31:37 ID : Apala60sjeE
오디션을 보러 오디션장 앞에 도착하면 거의 다 학원 쌤이 데려다주시고, 부모님이 차 태워주시고, 옷은 삐까뻔쩍하고 머리며 화장이며 이미 아이돌인 애들이 수두룩했어. 대형학원에서 레슨받고 노래, 춤, 외모 뭐 하나 빠지는게 없는 완성형들 사이에서 난 이미 체념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애들 보면서 나는 왜 돈이 없을까, 왜 이렇게 어릴까, 회의감이 들기도 했었는데. 그때 기억들은 아직도 나를 거만하게 걷지 못하도록 하는 것 같아. 참 다행이라고 해야하는건가.
2020/08/11 22:33:55 ID : Apala60sjeE
그렇게 다니다가 어느순간 멈추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장기방학이 시작되고. 갑자기 시작된 장기전으로 회사들도 거의 눈치보며 온라인으로 돌리더라고. 초기엔 긴급공지 못 보고 찾아갔다가 돌아오기도 했어.ㅋㅋㅋ
2020/08/11 22:42:36 ID : Apala60sjeE
점점 꿈이 멀어지고, 체력도 이미 다 떨어져서 지쳤을 때 쯤, 온라인으로 지원을 했던 한 회사에서 연락이 왔어. 1차가 합격했으니 와서 비공개오디션을 보라고. 나는 정말 가볍게 아, 1차는 접수였구나. 하고 어렵게 회사를 찾아갔지. 중국인거리에 왠만한 오토바이는 다 몰려있는 좁은 골목. 담배냄새는 빠질 기미가 안 보이는 작은 가게들을 지나 계단을 내려가니, 작은 공간에 컴퓨터 3대가 놓여있는 연습실이 나왔어. 거기서 2차를 보고, 결국 최종합격을 받았지. 부모님이랑 면담도 했고. 근데 나는, 뭔가가 찝찝했어. 아마 나랑 그 회사는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았던 것 같아. 그렇게 모종의 이유로 계약을 쓰기 직전 나왔고, 난 다시 무소속 '지망생'이 됐지.
2020/08/11 22:59:56 ID : Apala60sjeE
그렇게 공부만 하다가, 갑자기 난 이 길이 아니더라도 무조건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몇일 밤낮을 고민 하다가 결국 그 틈을 타 피아노, 작곡, 뮤지컬등 여러가지에 직접적으로 손을 대기 시작했어. 피아노와 작곡은 원래도 하고있었지만 내 생기부까지 작곡가라고 바꾼건 처음이었지. 나라에서 해주는 공짜 프로그램은 거의 다 했을거야.ㅋㅋㅋ 이론도 익히고 스킬도 배우기 시작하니까 자꾸 욕심이 많아지기도 했어. 인맥도 쌓고 무대경험도 생기고 내 이름으로 음반까지 만들 기회가 생겼는걸? 이젠 자기관리도 시작했고. 오디션이 그립긴 해. 주말, 평일 연습은 물론이고 이론공부와 원리를 깨치기도 부족한 시간이라 오디션을 다니기 힘들어졌거든... 하지만 이젠 내 꿈을 비웃지 않는 친구들과, 그 시절 이어폰에서 나오던 그 노래가 있으니까. 다르게 노래를 할 공간이 생겼으니까. 괜찮아.
2020/08/11 23:07:19 ID : Apala60sjeE
이게 지금까지의 내 이야기야. 난 아직도 배우는 중이고, 걸어가는 중이야. 내 그 시절이라는것은 아마 오디션을 마구잡이로 보던 그 때 뿐만 아니라 지금 나이기도 할거야. 내가 나중에 꿈을 이루고나면 지금 이 시간은 아름답지만 아픈 정말 '그 시절'이 되겠지. 하지만 그 때는 이 기억이 더 없이 슬프기만 할걸? 그러니 지금 내 시절을 웃어두려고. 어찌됐든 내 꿈은, 누구에게 꺼내기도 부끄럽고, 학교에서 그 의미없는 학습지에도 쓰기 어려운, 그 낯간지러운 내 꿈의 이름은, 가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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