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내가 오랫동안 혼자 품고 살아왔던 이야기야. 혹시 몰라 꾹꾹 숨기고 지냈는데 얼마 전 그 애의 소식을 듣고 다시 이곳에 글 적게 되었어. 내리 평범했던 내 인생에 처음으로 특별함이라는 게 뭔지 실감하게 해줬던 순간이니까 모쪼록 재미있게 봐줬음 해.

뭐부터 얘기해야 할까? 일단 단비가 누구인지 부터 말해줄게. 단비는 할머니와 단 둘이 살던 아이야. 엄마 아빠는 어릴 적에 이혼하셨고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 그래서 단비는 그 후로 쭉 조손가정에서 자라왔어.

이름 때문에, 그리고 곱상한 얼굴 때문에 여자 아이라고 오해를 많이 받는데 단비는 남자아이야. 할머니들은 대부분 깔끔하게 자르는 걸 좋아하시는 줄 알았는데 단비네 할머니께서는 오히려 단비의 머리를 살짝 길러서 위로 귀엽게 묶는 걸 무척 좋아하셨어.

이렇게 별 다를 특이점이 없는 단비가 어떻게 내 인생에 특별함이 되었는지 다들 궁금할 거야. 나와 단비는 열살 때 처음 만났는데 그때 아이들은 한창 남 놀리는 데 열을 올릴 나잇대잖아? 자기들이랑 조금만 다르면 꼬투리 잡아서 무조건 놀려대던 시기였어. 그때 단비가 그 애들의 레이더망에 걸린 거지.

왜냐하면 단비는 소심하고 무척 겁이 많았어. 툭하면 숨고 툭하면 얼굴이 새빨개 져서는 고개를 떨구고 말았으니까. 아이들은 그럴 때마다 단비에게 쫄보, 쪼다 같은 별명을 붙이며 깔깔댔어. 나는 당시에 여자애들과 어울려 화장놀이(...)를 하느라 딱히 그에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수업시간에 공개적으로 애들이 단비를 놀릴 때면 섞여서 조금 웃었던 것도 같아.

단비에 대해서 조금씩 알게 된 건 여름방학 때 부터였어. 우리 엄마는 나를 시장에 자주 데리고 다녔는데 가끔씩 문방구에 들러 유치한 장난감 두어 개를 손에 쥐어주곤 했거든. 덕분에 엄마는 모두에게 무뚝뚝한 문방구집 할머니와 어느새 친해져 있었어. 어느 날 내 손을 잡고 시장에서 집으로 향하던 엄마가 말씀하셨어. "문방구 할머니께도 너만한 손자가 있으시대. 끔찍이 예뻐하시나 보더라고."

나는 대답했지 "엄마는 내가 제일 예쁘지?" 엄마는 뭘 그런걸 묻냐는 듯이 "그럼"이라고 했던 것 같아.

어쨌든 엄마와 할머니가 친밀해진 이후부터 나는 문방구 할머니의 손자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되었고, 그 애가 우리 반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어. 문방구 할머니네 손자의 이름은 엄마가 몇 번을 듣고도 자꾸 잊어버리는 통에 알 겨를이 없었지만. 나는 아까 말했다시피 여자애들이랑만 노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남자애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했어.

그런데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일주일쯤 지났을 무렵, 문방구 할머니께서 우리 집 문을 급하게 두드리셨어. 당신의 아들, 즉 단비의 외삼촌 때문이었지. 미국에 사는 그 외삼촌이 한국에 왔다가 어딜 크게 다쳤다고 했나. 부리나케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 상황에서, 손자까지 데려가기엔 상황이 여의치 않아 잠시 손자를 봐줄 수 있겠냐는 부탁을 하시려던 거였어. 우리 부모님은 정이 많으셔서 금새 수락하셨어.

다들 보면서 짐작은 했겠지만, 맞아. 그 손자는 바로 단비였어. 그 길로 문방구 할머니께서는 바로 단비를 우리 집에 데려다 놓으시곤 급하게 떠나셨어. 물론 영원히는 아니고, 이틀만. 나는 이참에 할머니네 손자와 친구가 되는 것도 좋겠다는 엄마의 말에 처음엔 시큰둥했어. 굳이? 싶었지. 나는 이미 여자 친구들이 많았고 굳이 모르는 남자애랑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거든.

그런데 귀 밑으로 소심하게 내려온 머리에 앞머리는 사과머리를 한 남자애가 우리 집 앞에 서 있었던 거지. 그 때까지 내 반응은, 아. 단비였구나.가 끝이었어. 솔직히 누구였어도 반응은 그랬을 거야. 아 그런데 조금 웃기긴 했다. 할머니께서 학교 갈 때 만큼은 단비의 사회적 체면?을 생각하셨는지 사과머리 같은 건 자제하셨거든.ㅋㅋ

의외의 모습에 살짝 웃고는 얼른 엄마 뒤에 숨었어. 막 나서서 분위기를 주도해 친해지는 성향은 아니라서. 그런데 신기하게도 단비는 둘만 있을 때는 예상 외로 말이 많았어. 한 마디가 어쩌다 트이니까 청산유수로 말하더라고. 열심히 조그마한 입을 움직이면서.

그때 가장 기억에 남았던 말이 이거였어. "그런데 나 유령 보인다." 난 그 당시 괴담 레스토랑을 너무나도 인상 깊게 본 터라 유령을 본다는 말에 흥미가 생겨 계속 물어봤어.

헐동접이다 잘 보구이써❤️

"유령? 진짜? 어떻게 생겼어?" 뭐 이런 식으로 초등학교 3학년 생이 가질 법한 흔한 의문을 쏟아냈던 걸로 기억해. 그 애는 유령마다 다르다고 했어. 어떤 유령은 생전의 모습 그대로, 어떤 유령은 시커멓게, 또 어떤 유령은 생전의 모습 그대로이기는 하지만 뒤에서 희미한 빛이 보인다고.

그 애가 늘어놓은 다양한 유령 이야기 중 내 흥미를 가장 끈 것은 자기한테 미래를 알려주는 유령이 하나 있다는 거야. 그런데 미래를 알려주는 게 '넌 내일 미술 시간에 커터칼에 베일 거야'라고 말해주는 게 아니라, '내일 학교 갈 때 붕대 챙겨 가'와 같이 간접적으로 알려주곤 했대.

솔직히 엄청 흥미롭잖아? 열살 짜리 꼬마한테 유령이 미래를 알려준다니, 난 그런 만화책 주인공 같은 애가 내 앞에 앉아있다는 게 신기해서 계속 캐물었어. "어떻게 생겼어? 여자야?" 단비는 얼굴은 안 보이지만 자기 생각엔 천사인 것 같다고 대답하더라. 온몸이 하얗다나.

그 이후의 얘기들은 별 영양ㄱㅏ가 없었던 걸로 기억해. 딱히 내용이 기억에 남지 않았거든. 잘 때가 되어 나랑 단비가 작은 방 바닥에 이불을 펴고 누웠는데 단비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어. 이 말이 지금껏 들어본 말 중 가장 소름끼쳤던 말이야.

"놀라지 마. 그리고 위에도 보지 마. 지금 천장에 어떤 아저씨가 있어."

그 말을 듣는데 어떻게 안 놀랄 수가 있겠어. 의식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위에서부터 찬 기운이 내려오는 기분이 드는 거야. 코끝에서부터 양 볼로, 목으로, 어깨로... 너무 무서웠는데 벌떡 일어나기엔 너무 무서웠어. 그대로 기절했지, 아마. 눈 떠보니 다음날 늦은 아침이더라.

일어나자마자 옆에 앉아 티비를 보고 있는 단비에게 물었어. (작은 방에도 오래된 작은 티비가 하나 있었어.) "어제 그 아저씨 갔어?? 어떻게 된 거야??" 단비가 말하길, "뭐라고? 뭔 말이야?"

그 말 듣자마자 난 소름이 끼쳐서 으아아ㅏ아아아아 엄마아아아아ㅏ하면서 뛰쳐나갔고 그 나잇대 애기들이 으레 하나가 소리지르며 뛰쳐나가면 나머지 애들은 뭔지도 모르고 따라나가듯이 단비도..ㅋㅋ 으아아아아 거리면서 날 따라 뛰어나왔어

그 일 이후로 우린 한층 더 편해졌어. 할머니께서 오시기까지 하루 남아있다는 생각에 신이 났어. 단비와 귀신 이야기를 하는 건 무섭긴 하지만 오들오들 떨면서 같이 떠드는 재미가 좋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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