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살민 살아진다 (625)
2.난입x 6 (795)
3.daisuki♡diary (290)
4.수능까지 169일 (86)
5.꿈을 좇는 무리들의 (129)
6.It doesn't take a killer to murder (113)
7.다시 일기를 쓰자 (77)
8.🌱 온몸으로 온몸으로 혼자의 시간을 다 견디고 나서야 (702)
9.아무튼 살아가는 중 (924)
10.어쩌고저쩌고 4판 (965)
11.추구미도달스레 (84)
12.승리가 비현실적이라면 현실로부터 도피하기 (141)
13.성하(盛夏)의 6월 🌊🌹 (136)
14.취미는 살아 있기, 특기는 고요하기 °.+:。*🍀 (389)
15.의미가 심장함. (238)
16.다신 사랑하지 않을 다짐 (481)
17.만두로 2행시 해본다 🥟 (400)
18.야구 보는 사람 특) 성격 이상함 (296)
19.불안을 티백처럼 우리는 소녀가 있다 (560)
20.심해 14 (235)
세상이 끝나기 55분 전이래요, 다들 뭐하실 거예요?
맞은 편에는 나를 꿰뚫듯 노려보는 태풍의 눈이 있었다.
눈싸움하느라 힘겨웠다.
첫 문장을 가장 고민하게 되는 번호가 돌아왔다. 어제는 몸 안쪽에 덕지덕지 말라붙은 염소물을 씻어내리면서 “큰 기대”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계속 고민했다. 물을 아무리 맞아도 깨끗해지지 않는 것 같아 대충 물기를 닦았다. 그간의 답장을 돌아보니 일기장이 모조리 들춰진 기분이었다. 그만큼 많은 정보를 내주었나. 아니면 상대의 읽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인가. 둘 다 정답이겠다.
너는 연락을 그만둘 시점을 결정하라 말한다. 다른 이는 몇 년을 더 기다려보라 했다. 입장을 헤아려보니 전자가 훨씬 유사도가 높아보였다. 충분히 느슨하게 구성하고 있다 느꼈는데, 착각이고 오만이었다. 헛된 욕망을 제어하지 못해 도망치기를 반복하면서 충분하다니. 아스팔트가 열기에 익어가고 있다. 불투명한 환상으로 이글거린다. 5월이라며, 한달음에 여름으로 뛰어넘어와버린 날씨가 미웠다. 날씨라도 미워하고픈 심정인 것이다.
힘 좀 빼고 가볍게 가라는 말 괜찮았다. 적용만 하면 될텐데. 일테면 수영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 바로 “힘 빼기”였다. 더 잘하고 싶을수록 근육의 불필요한 긴장을 제거해야 했다. 상상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일단 물을 믿어야 했고, 나를 믿어야 했다. 이산화탄소를 내뱉고 산소를 채우지 못해 안달난 몸에 대고 여기는 수심이 얕으니 언제라도 숨 쉴 수 있다는 사실을 각인시키기가… 말처럼 쉬우면 좋았으리라. 생명의 본능과 역행하는 인지를 심어주어야 하는데 간단치 않았다.
어깨 긴장을 제거하기 위해 으쓱으쓱, 승모근을 들었다 놓기를 반복한다. 손목과 발목을 털었다. 다시 출발. 발가락 끝으로 벽을 밀고 유선형 자세를 유지하기만 하면 물이 나를 이끌었다. 믿는 자에게 진정 복이 오는 것이다. 그 순간은 어쩐지 몸 전체가 화살이나 창처럼 느껴진다. 레인 중간부터 팔을 휘젓는다. 이 감각을 물 밖에서도 써먹고 싶다. 가용한 에너지의 10%만 사용하자는 다짐 말이다. 언제나 넘치는 거보단 모자란 쪽이 낫지 않은가? 그래야 더 멀리, 더 오래, 유영할 수 있으니.
날이 무척 덥다. 한동안은 잃은 땀방울을 채우기 위해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킬 듯하다. 선선해지면 다시 고민해보자. 성급하게 쓴 글들을 다시 보니 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봐도 나는 너무 쉬웠다. 읽으려 하지 않아도 읽힐 지경이었다. 거짓말도 못하고, 얼굴 표정도 쉽게 변했다. 부치지 못할 글귀가 지겨울 때쯤 회신으로 돌아갔다. 당신의 언어를 다시 새겼다. 해봐야 고무판에 조각칼 세트로 삐뚤빼뚤히 적어내려갔을 뿐이지만, 책과 연결되는 부분을 발견하는 성과가 있었다.
수용 챕터를 읽으면서 특정 문장이 확 튀어나올 때는 재밌었다. ‘부족한 자신’과 관련된 말이었다. 나의 부족함을 진정으로 받아들인다는 게 참 고통스럽다. 책도, 당신도 입을 모아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해내야 한다! 해내야만 한다. 반복하다보면 익숙해진다. 탁월함은 누가 평가해주는 게 아니니 저리 치워버리자.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무더운 공기에 연등이 좌우로 흔들린다. 만약 바람이 통하지 않게 해두었다면 임계점을 넘어 뚝 부러졌을 것이다.
난 하루를 다 구멍낸 채로 창밖을 바라봐
비 오는 새벽이다. 늘 그렇듯이 앨범의 마지막 트랙을 찾는다. 피아노와 빗소리, 그리고 목소리 뿐인 노래라 좋아한다. 비 오는 날은 어릴 때부터 싫었다. 그런 마음으로는 못 견딜 것 같았기에 반작용으로 좋아해버렸다. 빗방울이 어딘가에 부딪는 소리를 가장 선호한다. 차체, 우산, 창문, 바닥… 액체의 물성이 각기 다른 재질과 만나 불규칙한 파형으로 운다.
부상을 입었다. 거진 일주일을 틀어박혀 보냈다. 모니터링하는 우울 척도 점수가 많이 올라와 있었다. 언제나처럼 재활하면 되는데, 간단한 인식 변화가 안됐다. 무드스윙에 리버샷 맞고 컥컥대며 쓰러져 있었다. 오랜만에 텅 빈 나날을 보냈더니 작년엔 어떻게 이리 지낸 건지 의문스러워졌다. 매일 참 바빴다. 나름의 스케줄이라는 게 있기는 했으니.
불면이 심할 때 한곡 반복으로 해두고 잠을 청한 적도 있었다. 지금 타이밍에 가장 잘 어울리는 노래다. 이상하지, 바람이 불거나 햇빛이 쨍할 적엔 반사적으로 트는 트랙따위 없는데. 비만 오면 고막 안쪽이 간질거린다. 그러다 생각에 잠긴다. 진실로 이 날씨를 좋아했던가. 버티지 못할 것 같아 좋아해버렸나. 스스로를 호도하는 건 아닌지 의문을 품기도 한다.
어쨌거나 새벽이 길다. 낫지 않는 증세란 없다. 두려워한다면 계속 함께하겠지만……. 오랜만에 손톱깎이를 들어 살갗이 드러나도록 바짝 깎았다. 이제는 손이 입 근처에서 머물고 말 뿐이었다. 충동이 꽤 줄었다. 잘근잘근거리고픈 감각에 언제나 자리를 내주었었는데. 퍼붓던 비가 잠시 약해졌다. 가짜 빗소리라도 틀어두어야겠지.
마음을 뒤흔들던 종소리가 불현듯 지나갔다. 커다란 금속으로 된 종은 사방을 울렸다. 단일한 음파에 압도당하는 기분을 또 언제 느껴보겠는가. 습기에 잔향殘響마저 눅눅했다. 멍하니 앉아 있었다. 발목이 불편해 무릎을 꿇었다 보호대를 벗었다가 다시 끼웠다가 난리를 피웠던 게 엊그제다. 결국 나아서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그래, 이제껏 하던 대로만 하면…….
문장 한두개가 잊히지 않고 자리에 남았다.
외로움에 정말 취약한 사람이다.
닳아버릴 것 같아 불안해, 마음은 그런 게 아닌데.
오랜만에 책을 다시 읽었다. 24년 전 5월에 쓰여진 것이었다. 이전에 필사했던 문장을 읽고 들어왔더니 문장에 형광펜이라도 칠해진 것처럼 한 걸음 앞으로 튀어나와 보였다.
지금 내게 필요한 문장들은 여기 있지 않을까.
「그래요. 왜, 냐고 묻진 않을게요. 건방지다고 생각하시겠지만, 그냥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왜 형은 생에서 달콤한 것만 가지려는 거예요? 이젠 아이가 아니잖아요. 슬픔이나 질병, 한없는 괴로움 같은 것도 형의 삶을 이루는 퍼즐의 조각이예요. 핑크나 아쿠아블루만으론 그림을 그릴 수 없잖아요. 받아들여요. 아픈 거 받아들이고 상처도 웃어넘겨요. 엄살 부리지 말라구요」
어린 시절부터 엄살을 자주 피웠다. 꾀병도 꽤 부렸었다. 어쩌면 꾀병이란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거 아닐까? 지난 주 내내 어깨 통증이란 핑계를 대며 푸른 벽지 밑으로 한없이 잠수했다. 물 없는 수면 아래로 천천히 경도되었다. 실은 내가 그걸 원했기 때문에 나락으로 잠시 떨어진 셈이다.
필사한 책을 다시 읽기 전에 어떤 문장에 꽂혔었는지 되감고 나면 얼마나 좋은지 상상만 해봤었다. 이제야 그 즐거움을 진실로 껴안을 수 있었다. 생각이야 늘 많았다. 도리어 문장 속에 갇혀 있을 때 큰 로드롤러가 등장해 잡념을 한쪽 구석으로 밀어버리는 시원함을 찾아낸다.
아찔한 초여름이 계속되고 있었다. 비가 오면 기온이 훅 내려가고 그치면 가면을 벗어던진 채 뛰어다닌다. '영주'가 가진 '민'에 대한 고민은 내가 품은 당신에 대한 것과 상당 부분 유사성을 띠고 있었다. 아, 돌아가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맥박치고 있다. 인공 빗소리가 양쪽 스피커로 투둑투둑 거칠게 나를 때린다.
잠깐, 돌아가면 진짜 좋으려나. 서래가 미결 사건이 되기 직전에 몸을 일으켜 꺼버리는 나의 습성대로라면 아주 고통스러워 할 터였다. 결말을 알고 보는 영화가, 드라마가, 소설이, 과연 처음과 같을 수 있을까. 부차적 감정이 길 잃은 부표처럼 둥둥 떠다니며 자신을 괴롭히지나 않으면 다행 아닌가. 사진 속에 해맑게 웃는 당신의 얼굴을 잠시 들여다보았다.
그 영혼을 아주 잠깐 동안만이라도 내쪽으로 흘러오게 하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그런가? 가만히 앉아 자문한다. 해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지프스처럼 등허리와 어깨에 커다란 돌을 이고 힘겨운 발걸음을 뗀다. 저 옷차림 분명 기억한다, 가볍게 걸친 실크 스카프는 잘 모르겠지만. 그 웃음, 맹랑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던 눈동자, 손가락과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반지, 손등, 전부 기억할 수 있다.
다시 물어보자. 돌아간다면……
비뚤다와 삐뚤다
비뚤다
바르지 못하고 한쪽으로 기울거나 쏠린 상태에 있다
삐뚤다
바르지 못하고 한쪽으로 끼울거나 쏠린 상태에 있다
기울다와 끼울다
기울다
비스듬히 낮아지거나 비뚤어지다
끼울다
비스듬히 꽤 낮아지거나 비뚤어지다
심정을 뒤흔들만한 사건이 여럿 있었다. 운동을 쉰 타이밍이라 몸 상태와 함께 판단력까지 우하향했다. 누구나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지만 옳은 판단으로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다. 비뚤어진 마음을 바르게 고치고, 끼울어버린 상황의 수평을 맞추려 노력하는 중이다.
본디 취중에 진담이거늘. 주취자를 앞에 두고 줄줄이 토해냈다. 저물기 전 햇발이 거셌다. 녹아내릴 듯했다. 나무 뒤로 가리어지자 겨우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조금 더 앉아 있으니 풀모기가 기승을 부렸다. 너의, 이름을, 이름을 불렀다. 내게로, 친구에게로, 산의 안쪽 방향으로 음파가 번졌다.
어디서 무얼 하고 있나. 관찰자의 전능이 절실했다. 누군가가 마음을 뒤흔들어놓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스스로 구덩이를 파는 거다. 걸려 넘어지고 다시 일어날 뿐이지만. 타인에 대한 전능을 구하기 전에 자신에 대한 전능을 가지려 한다면 훨씬 좋아질 것이다.
비뚤어진 마음을... 없애려 하지 말고 살짝 방향만 바꿔주면 좋지 않을까. 정의나 개념에 가두지 않기, 흑백으로 생각하지 않기, 천천히 시간을 두고 생각하기. 같은 일들은 연습하지 않으면 절대 늘지 않는다. 아침나절엔 증세에 대한 공부를 했다. 시간이 약이 되어 준 부분도 많았다.
여남은 것들이 호전되려면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평안은 수동적인 마음가짐으로는 절대.. 절대라고 썼다가 지우려 했다는 사실까지 남긴다. ("절대"라는 단어를 왜 그렇게 좋아하는가?) 평안은 수동적인 마음가짐으로 획득하기 까다롭다. 차분하게 가자. 연습도 자주 해보고.
문득 졸음이 밀려왔다. 심호흡 직후 심박변이가 좋아졌다가 다시 떨어졌다. 수면의 양과 질이 모두 곤두박질쳤기 때문이다. 모든 지표가 하향인데 정신만 또렷하면 이상한 일 아닌가. 오래 쉬었다. 재활도 시작했다. 천천히 나아질 거라 믿는다.
왜 바보처럼 아등바등거렸는지. 벽 한번 차고 나가자마자 온갖 상념이 자취를 감추었다. 기분 그래프도 보통에서 좋음으로 올랐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새 사람이 등장하면 예전 기억을 더듬다가 잠시 회한에 잠긴 적은 있었다. 이번엔 달랐다. 의도적으로 은폐시킨 마음이 억눌림을 참지 못했는지 마구 쏟아졌다. 당황스러웠다. 부숴지는 파도를 온몸으로 맞서려다 실패했다. 아니라고 말해봐, 뭐가 달라지는데. 차라리 맞다고 인정해버리고 크기를 줄이면 될 일이다.
건너편 도로에는 사설 응급차량이 서 있다. 녹색빛이 빠르게 점등하며 시선을 빼앗는다. 은폐라. 사실관계를 따져보자면 잠근게 맞다. 가방에 겨울 이불 쑤셔넣듯이 힘을 실어 눌러놨던 셈이다. 괜찮을 줄 알았다. 회피와 부정만 반복하면 시간이 알아서 마음을 부숴버릴 거라고 믿었다. 트리거 한번에 뻥 터질 일인가. 수습하느라 애썼고, 쓰는 중이다. 정리 될 거라고 믿어야만 한다. 인지를 후행으로 꼬매버릴 거라면, 인정과 수용을 한 뒤에 행동으로 넘어가야 했다.
어깨 통증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 건 아니었다. 물속에서는 욕심 부리지 말자는 다짐만 수백번 했다. 그 외엔 숨을 들이쉬고 들이마시는 데 절반의 신경을 부었다. 이전 습관을 털어내지 않으면 다시 부상일 게 뻔했다. 힘을 빼고 아주 천천히 밀었다. 손에 물이 잡히든지 말든지 밀어냈다. 다시 엄지로 입수, 소지로 출수, 몸통은 확실히 돌리고. 고작 열흘 안 나갔음에도 생경했다. 설렘이 심장을 마구 두드렸다. 물을 밀고, 밀고, 또 밀었다. 그래, 무슨 생각이야.
역시 운동만한 게 없다.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칼을 탈탈 털었다. 흐렸다. 비소식이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우산을 챙겼어야 했나. 어쩔 수 없지. 지금은 비라도 잔뜩 맞아야 했다. 열기를 식히고 싶었다.
어딘가에, 반드시 살아있을 거라고 믿고 있어도 가끔은 정말로 살아있는지 궁금해진다.
밀린 책을 읽었다. 마지막 구절이 마음으로 한달음에 들어왔다.
당신은 여전히 사막을 꿈꿀까. (『사막으로』)
전작주의 다음 작가가 정해졌다. SF에 강한 작가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울림이 큰 작품을 쓰는 자라는 것은, 문장을 읽기 전까지는, 도통 알 길이 없었다.
언제 보낼지 정해두지 않은 편지를 쓴다. 한 문장씩 입안에서 굴려가며 퇴고한다. 발신은 미래의 내가 감당할 몫이었다. 마음이 변해 보내기 직전 모든 걸 넘어뜨릴 수도 있었다.
가끔은 당신의 바이탈 사인이 절실했다. 대체라고 여겨왔으나 단정한다면 섣부른 일이었다. 숨 쉬고 있나. 어디서 어떤 시간에 갇혀 오늘을 보내는거지. 모조리 알고 싶었다.
그래선 안 된다는 사실이 헛된 욕망을 키웠다.
사라질 것 같은 느낌에 압도당하는 걸까?
어지러웠다. 제 딴엔 이름 붙이기까지 했음에도 정립이 안 됐다는 감각 때문에 괴로웠다. 신경쓰여. 말 그래도 신경일 뿐이었다. 가볍든 무겁든 간에 신경은 신경이었다. 시간성이 확 와닿는 단어에 기분이 그래프를 뚫어버릴 듯 좋아지잖아. 땀방울이 어디 모난 곳 없이 만들어져 계속 흘러내렸다. 상쾌했다. 수면 바깥에서 흘리는 땀방울이 이토록 반가울 줄이야.
웃자란 풀들이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칼날에 갈린다. 싱그러움이 사방으로 퍼진다. 향기라고 해도 좋겠다. 시취와 정반대의 기분을 내주는 향.
대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음이 옮겨갔을 뿐 유일무이였다. 마음을 재단하는 일은 관두기로 했다. 무게나 의미를 생각하면 할수록 본질과 멀어지고 있었다. 이유는 분명했다. 내 영역이 아니니까.
창밖 이파리를 들여다본다. 주인은 상록수겠지. 3월에도 그랬었다는 걸 기억한다. 한결같은 사람이 있고, 떠나지 않는 자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싶었나. 틀린 가설이 툭 부러진다.
웃고 있다. 아파하지 말라는 뜻이다. 반드시 온다는 말은 다시 말해 떠나지 않겠다는 표현이었다. 왜 하필 나였는지 물을 필요 없다. 당분간이 이렇게 길어질 줄 알았다면 쉽게 손 내밀지 않았을까.
쌀쌀하다. 냉방병에 걸려버리면 어쩌지. 아니다. 병이야 앓고 떨치면 그만이다. 마음이 갑갑해졌다 나아졌다를 반복하고 있다. 계단을 올랐다. 더워지고 싶었다. 정원 출입문을 힘껏 민다.
빛에 비춰보면 달리 보이는 것들이 좋다. 짙은 남색이 그렇다. 잔뜩 물을 머금고 있으면 흑색으로 보였다가, 빠짝 마르면 그제야 제 색을 보인다. 매혹적이다, 의도하지 않은 속임수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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