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기판 자주보는 스레 적는 뻐꾸기들 2판 (275)
2.추구미도달스레 (138)
3.이루어지게 해주세요 (1)
4.생각나면 쓰는 일기 (112)
5.작은 연결 (69)
6.여자어른 로망기 (226)
7.무제 (31)
8.귀찮음 러버가 사회로 나가고 싶어한다 (38)
9.고기 (49)
10.매일이 리즈인 넌 기분이 어때 (202)
11.55 (221)
12.우주미아 (388)
13.세상의 모든 덧없음을 사랑하며 살기 (12)
14.행복해지기 위해 쓰는 일기 (16)
15.생각들 (234)
16.전 역 한 달 전 (384)
17.始 (60)
18.약을 먹자 약을 먹자 약 약 약 (628)
19.일기 (85)
20.키위 사촌은 다래🥝 (460)
1
이름없음
2024/02/09 21:49:38
ID : vBcMi6Y9y43
10
세상이 끝나기 55분 전이래요, 다들 뭐하실 거예요?
맞은 편에는 나를 꿰뚫듯 노려보는 태풍의 눈이 있었다.
눈싸움하느라 힘겨웠다.
베스트 레스 3
이름없음
2024/02/15 22:11:13
ID : vBcMi6Y9y43
1
언젠가 글을 정말 흐르듯이 쓰고 싶어서 말하듯이 쓴다는 내용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나는 글을 읽을 때나 쓸 때 80%의 확률로 묵독을 병행하는데, 그러다 보면 글이 튄다. 뜬금없이 흘러나오는 다른 마음까지 치밀어서 그대로 받아 적는 느낌이 된다. 불현듯 춥다거나 배고프다거나 글의 전반적인 주제와 상관없는 곁가지가 치고 나올 땐 퇴고하면서 잘라낸다. 말하듯이 쓴다는 것에도 장점이 있다면 큰 걸림이 없는 글이 써진다는 점? 물론 나는 내 글이므로 애정 가득한 눈으로 봐서 그리 보일지도 모른다.
아 진짜 애플 비공개 릴레이 켜지면 작성 안 되는 거 어떻게 안 되나. 별은 달기 싫고 글 날아가서 부분 복사만 됐다;
이름없음
2024/05/20 04:55:09
ID : mIIE7hxTRu6
1
물가에만 다녀오면 파랑 생각이 난다. 튜브에 온몸을 기대고 어느 먼바다까지 가려나 걱정이 돼 시선 끝에 고정시켜두었던 그 여름. 송어가 종종 기생충을 쫓기 위해 펄떡펄떡 수면을 박차던 장면을 함께 보던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시간을 보냈다는 말을 했더니, 그들은 참사랑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사랑이란 말 이렇게 쉽게 써도 되는 걸까? 싶어 큰 목소리로 웃었는데 일기를 쓰다보니 뒤미처 깨닫는다. 이런 감정도 사랑이라 할 수 있는 거지.
4월의 마지막엔 거짓말처럼 당신을 만나러 갔다. 늦기 싫어 미리부터 가서 동네를 둘러보고 일하는 곳 근처의 카페에 자리를 잡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흐름이 끊겨도 아쉽지 않도록 단편소설집과 필사 노트를 펼쳐놓고 자주 듣는 트랙을 들으며 집중하고 있었다. 좋은 문장이 많았다. 느티나무와 버스정류장, 사찰, 그리고 여름을 그려낸 잔잔한 분위기의 장면은 아직까지도 상상한 심상 그대로 흐르고 있었다. 초조한 듯 설레서 발을 떨었고, 가방 뒤에 숨겨둔 선물은 재포장하며 잘 챙겨왔는지 몇 번이나 다시 살폈다. 그때는 하나 놓고 왔다고 아쉬워했는데 실제론 깔끔하게 다 챙겼었다.
두 편 반 정도를 읽었을 무렵 왼편의 출입구로 파랑이 걸어들어오며 두리번거렸다. 어정쩡한 자세로 고개를 숙였다. 반가운 인사를 나눴지만 살짝 어색한 기류는 감춰지지 않았다. 우리 둘 다 작년 여름에 봤던 모습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대충 마실만한 것을 사시길래 쭐래쭐래 따라갔더니 식사대용 빵 종류를 하나 사주셨다. 이미 배불렀지만 맛있게 먹었다. 이야기는 별 거 없었다. 바쁜 일을 정신없이 해치우고 온 파랑과, 느긋하게 오긴 했지만 침착하지는 않은 나의 주파수가 어긋나는 느낌이었다. 중간중간 잡음이 껴 있었다.
그래도 근황을 나누고 얼굴을 보니 매우 좋았다. 나갈 때가 되니 분위기도 풀려 제법 말랑말랑해진 상태였다. 새로 리필해온 물까지 바닥이 날 때쯤 산책을 가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주셔서 승낙했다. 상쾌한 건지 조금 축축한 건지 제대로 분간하기 힘든 바람이 불어왔다. 여름의 날씨였다. 낮엔 까딱하면 더웠고 비가 오면 언제 여름이었냐는 듯 일교차가 심해 변덕이 죽 끓듯 하던 날들이었다. 다행히 아침부터 흐려 비는 오지 않았지만 약간 찝찝한 정도의 습기가 있어 그다지 좋지만은 않았다.
사실 날씨는 크게 상관없었다. 밤이었고, 함께 걷는 사람의 반가움이 나의 마음까지 넘실거려 왔으므로 잘 기억나지도 않는다. 초록불로 점멸하는 횡단보도를 내딛는 발걸음이 경쾌했다. 코너를 돌자마자 보이는 언덕에 바로 경쾌함이 무너지기는 했지만, 보이는 것보다는 오르기 쉬운 축에 속했다. 동네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골목으로 들어서자마자 분위기가 차분히 가라앉았던 것은 생생하다. 다만 나의 엄살이 그 정적을 깨트리자 그가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런다며 웃었던 게 떠오른다.
좋은데요, 괜찮은데요!
나는 가쁜 숨을 밭으며 맥없이 좋다는 말만 반복했다. 실제로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어렵다기보단 빡센 느낌이었다. 짧고 굵게 경사도가 높은 느낌으로 산 넘어 산처럼 구성된 길이라 다 왔나, 싶으면 장난처럼 한 번 더 거슬러 올라야 해서 웃었다. 웃겼다. 차 없이 오르는 건 파랑도 오랜만이라고 했다. 그는 길도 모르는 나의 뒤를 받치며 함께 올라왔다. 주춤거리며 동 앞에서 기다리려는데 들어오라고 하셔서 얼떨결에 집까지 구경했다. 티비 대신 한쪽 벽면 전체를 점유한 서가에 먼저 눈이 갔다. 이사를 다니며 줄이고 줄인 책들은 마치 정수精髓처럼 느껴졌다.
놀랍게도 한국 작가의 취향이 나와 많이 겹치길래 몇 권은 탐나기도 한다고 장난스레 웃어보였더니, 파랑은 파트너가 주로 읽는다며 소개해주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들이 가득했고, 구석에는 헤어질 결심 각본도 있었다. 어정쩡히 서 있는 동안 바삐 움직이는 파랑은 도대체 무얼 하는지 궁금했다. 이것저것 챙겨오는데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취향이 이렇게 겹칠 수도 있구나 감탄하며 거실에서 손떼가 묻은 책들을 눈에 담기 바빴다. 어수선하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인 정렬은 확실히 되어 있는 공간이었고, 그게 누구의 손길인지는 함부로 단정할 수 없었다.
냉장고를 열어 귤까지 꺼내오시는 걸 막지 못했다. 괜찮다고 아무리 손사레를 쳐봐도 씨알도 안 먹혔다. 뭘 이런 걸 다 들고 와요, 라는 말만 해주셨어도 그러려니 했을 텐데 드린 것 이상으로 되돌려받아서 손이 무거웠다. 지하주차장을 잠깐 헤매다가—차를 매일 끌고 나가면 잘 알텐데…—가벼워진 몸으로 뒷산을 올랐다. 저번 여름에 내가 그랬듯, 파랑은 자신 있는 목소리로 지명에 숨겨진 설화를 알려주었다. 뿌듯함이 숨결 끝에 묻어나왔다. 그 설명을 듣지 않았더라면 이렇게까지 자세히 기억나지 않았을테지.
나무데크를 턱턱 밟아나가며 한없이 높은 건물에서 빛나는 조명이 별처럼 보이는 장면도 눈에 담았다. 이토록 조용한 산책길이 집 뒷편에 있다는 게 내심 부러웠다. 파랑은 요새 뛴다고 했다. 시간이 없어 매일 나가지는 않겠지만, 통통 뛰며 앞뒤로 날개를 펼치듯 팔을 휘젓는 모습을 상상하자 웃음이 밀려나왔다. 얼마나 뛰는지, 어떤 운동화를 신는지 물어볼 걸.
어디선가 흘러오는 꽃향기를 라일락향이라고 알아채는 모습이 좋았다. 하이라이트처럼 제일 매료된 순간의 리플레이를 뽑아낸다면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근 한 달 간 헬스하고 돌아오면 늘 깊은 경사가 있는 내리막으로 돌아오곤 했는데, 이유는 오로지 화단에 핀 라일락의 나뭇가지를 손으로 살짝 내려 폐의 가장 깊숙한 부분까지 향을 쌓아두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가까이 핀 것도 아니고 이야기를 나누다 라일락인 걸 바로 깨닫는 게 신기했다. 활짝 핀 꽃과 함께 5월이 성큼 다가섰다. 등꽃도, 그 사람도 아니었지만 반 정도는 맞춘 셈이다. 라일락의 파랑이라 어쩌면 더 좋았다. 지위나 역할에 귀속되는 대화가 없었으므로.
짧은 만남은 함께 오른 언덕과 엇비슷했다. 반가움이 끝날 때쯤 되니 산책과 라일락으로 한 번 더 설렘으로 환기되며 변주됐다. 투정 아닌 투정을 서로 부리고, 작년의 일을 떠올리고, 다음 여름을 기약하는 일이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수월했다. 별다른 임팩트가 없던 일상에 강력한 방점으로 찍혀 있다. 그때의 감각을 머릿속의 영상으로만 남겼다면 전부 휘발될까봐 황급히 옮겨적었더니 아직까지 생생하다.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귀결되는 취향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어떤 특징을 가진 사람들에 자석처럼 끌려다니는 지 휘갈기며 적어둔 문장들은 너무나도 적확하다. 떠오르는 얼굴들의 생김새가 일정한 게 아니었다. 추출해 뽑아둔 특징을 이리 대보고 저리 대보면 개연성이 생겨났다. 이래서 좋아하게 되었구나. 색다른 순간에 꽂히면 그 이후로는 프리즘을 갖다 대고 분광했다. 내가 그들과 기억하는 비중이 다른 이유도, 여행이 끝나자 파랑을 기억하는 데에만 용량을 써서 그랬던 거였다.
‘진짜’ 여름을 손꼽는다. 땀이 삐질삐질 흐르다 못해 손수건 없이 나갔다가 후회하는 그런 여름, 몸의 어느 부분들은 조금 더 날렵해진 채로 파랑을 다시 만나러 가고 싶다. 그래도 닭가슴살 한 끼에 두 덩이는 진짜 못 먹겠는데, 만나기 이 주 쯤 전에는 완전 무탄수를 해야할 지도 모른다. 단백질 덩어리 우걱우걱 씹으면서 올리브유 삼키고. 바라고 바라는 진짜 여름은 쉽게 얻어지지 않을 것이다. 두 세뼘 정도는 성장해야 한다, 이번엔 정말로.
어떻게 하면 더 잘 듣고, 더 잘 쓰고, 더 잘 이끌 수 있는지 아직까지도 감이 안 온다. 감을 잡진 못해도 무언가 이뤄낸 타이밍 이후에 볼 수 있겠지. 그땐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길고 긴 하천변을 따라 함께 뛰게 될까. 그러잖아도 심장은 열렬히 일하겠지만.
보고싶다, 누가 보고싶은지 한참을 생각해도 그 대상이 명확하지 않을 때가 있어 이게 외로움이구나, 실체를 보고 있다. 수면패턴도 망가져서 꿈이 현실보다 더 현실같을 때가 있었다. 가까운 미래에 대해 예측하는 장면이 나온다거나, 강렬한 감각이나 감정을 느껴 땀에 절은 채로 깨치는 일이 잦아졌다.
분명 다른 글을 쓰고 싶었는데 밝은 장면을 쓰다 보니 어떤 어두움을 묘사하려 했는지 잊었다. 그러니까 하여튼, 보고 싶다. 그리고 당신 말이 다 맞다. 뒤돌아 앉아 달의 뒷면에 골몰할 필요는 없다. 지구에선 무슨 짓을 해도 보이지 않고 닿지도 않으니까.
이름없음
2025/09/16 11:39:15
ID : ze3TWmFbg5e
1
아무래도 신경쓰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202
이름없음
2026/05/14 12:05:49
ID : i5RwoFh8008
0
첫 문장을 가장 고민하게 되는 번호가 돌아왔다. 어제는 몸 안쪽에 덕지덕지 말라붙은 염소물을 씻어내리면서 “큰 기대”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계속 고민했다. 물을 아무리 맞아도 깨끗해지지 않는 것 같아 대충 물기를 닦았다. 그간의 답장을 돌아보니 일기장이 모조리 들춰진 기분이었다. 그만큼 많은 정보를 내주었나. 아니면 상대의 읽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인가. 둘 다 정답이겠다.
너는 연락을 그만둘 시점을 결정하라 말한다. 다른 이는 몇 년을 더 기다려보라 했다. 입장을 헤아려보니 전자가 훨씬 유사도가 높아보였다. 충분히 느슨하게 구성하고 있다 느꼈는데, 착각이고 오만이었다. 헛된 욕망을 제어하지 못해 도망치기를 반복하면서 충분하다니. 아스팔트가 열기에 익어가고 있다. 불투명한 환상으로 이글거린다. 5월이라며, 한달음에 여름으로 뛰어넘어와버린 날씨가 미웠다. 날씨라도 미워하고픈 심정인 것이다.
힘 좀 빼고 가볍게 가라는 말 괜찮았다. 적용만 하면 될텐데. 일테면 수영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 바로 “힘 빼기”였다. 더 잘하고 싶을수록 근육의 불필요한 긴장을 제거해야 했다. 상상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일단 물을 믿어야 했고, 나를 믿어야 했다. 이산화탄소를 내뱉고 산소를 채우지 못해 안달난 몸에 대고 여기는 수심이 얕으니 언제라도 숨 쉴 수 있다는 사실을 각인시키기가… 말처럼 쉬우면 좋았으리라. 생명의 본능과 역행하는 인지를 심어주어야 하는데 간단치 않았다.
어깨 긴장을 제거하기 위해 으쓱으쓱, 승모근을 들었다 놓기를 반복한다. 손목과 발목을 털었다. 다시 출발. 발가락 끝으로 벽을 밀고 유선형 자세를 유지하기만 하면 물이 나를 이끌었다. 믿는 자에게 진정 복이 오는 것이다. 그 순간은 어쩐지 몸 전체가 화살이나 창처럼 느껴진다. 레인 중간부터 팔을 휘젓는다. 이 감각을 물 밖에서도 써먹고 싶다. 가용한 에너지의 10%만 사용하자는 다짐 말이다. 언제나 넘치는 거보단 모자란 쪽이 낫지 않은가? 그래야 더 멀리, 더 오래, 유영할 수 있으니.
날이 무척 덥다. 한동안은 잃은 땀방울을 채우기 위해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킬 듯하다. 선선해지면 다시 고민해보자. 성급하게 쓴 글들을 다시 보니 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봐도 나는 너무 쉬웠다. 읽으려 하지 않아도 읽힐 지경이었다. 거짓말도 못하고, 얼굴 표정도 쉽게 변했다. 부치지 못할 글귀가 지겨울 때쯤 회신으로 돌아갔다. 당신의 언어를 다시 새겼다. 해봐야 고무판에 조각칼 세트로 삐뚤빼뚤히 적어내려갔을 뿐이지만, 책과 연결되는 부분을 발견하는 성과가 있었다.
수용 챕터를 읽으면서 특정 문장이 확 튀어나올 때는 재밌었다. ‘부족한 자신’과 관련된 말이었다. 나의 부족함을 진정으로 받아들인다는 게 참 고통스럽다. 책도, 당신도 입을 모아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해내야 한다! 해내야만 한다. 반복하다보면 익숙해진다. 탁월함은 누가 평가해주는 게 아니니 저리 치워버리자.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무더운 공기에 연등이 좌우로 흔들린다. 만약 바람이 통하지 않게 해두었다면 임계점을 넘어 뚝 부러졌을 것이다.
203
이름없음
2026/05/21 03:50:43
ID : Xs1crcIHxyK
0
난 하루를 다 구멍낸 채로 창밖을 바라봐
비 오는 새벽이다. 늘 그렇듯이 앨범의 마지막 트랙을 찾는다. 피아노와 빗소리, 그리고 목소리 뿐인 노래라 좋아한다. 비 오는 날은 어릴 때부터 싫었다. 그런 마음으로는 못 견딜 것 같았기에 반작용으로 좋아해버렸다. 빗방울이 어딘가에 부딪는 소리를 가장 선호한다. 차체, 우산, 창문, 바닥… 액체의 물성이 각기 다른 재질과 만나 불규칙한 파형으로 운다.
부상을 입었다. 거진 일주일을 틀어박혀 보냈다. 모니터링하는 우울 척도 점수가 많이 올라와 있었다. 언제나처럼 재활하면 되는데, 간단한 인식 변화가 안됐다. 무드스윙에 리버샷 맞고 컥컥대며 쓰러져 있었다. 오랜만에 텅 빈 나날을 보냈더니 작년엔 어떻게 이리 지낸 건지 의문스러워졌다. 매일 참 바빴다. 나름의 스케줄이라는 게 있기는 했으니.
불면이 심할 때 한곡 반복으로 해두고 잠을 청한 적도 있었다. 지금 타이밍에 가장 잘 어울리는 노래다. 이상하지, 바람이 불거나 햇빛이 쨍할 적엔 반사적으로 트는 트랙따위 없는데. 비만 오면 고막 안쪽이 간질거린다. 그러다 생각에 잠긴다. 진실로 이 날씨를 좋아했던가. 버티지 못할 것 같아 좋아해버렸나. 스스로를 호도하는 건 아닌지 의문을 품기도 한다.
어쨌거나 새벽이 길다. 낫지 않는 증세란 없다. 두려워한다면 계속 함께하겠지만……. 오랜만에 손톱깎이를 들어 살갗이 드러나도록 바짝 깎았다. 이제는 손이 입 근처에서 머물고 말 뿐이었다. 충동이 꽤 줄었다. 잘근잘근거리고픈 감각에 언제나 자리를 내주었었는데. 퍼붓던 비가 잠시 약해졌다. 가짜 빗소리라도 틀어두어야겠지.
마음을 뒤흔들던 종소리가 불현듯 지나갔다. 커다란 금속으로 된 종은 사방을 울렸다. 단일한 음파에 압도당하는 기분을 또 언제 느껴보겠는가. 습기에 잔향殘響마저 눅눅했다. 멍하니 앉아 있었다. 발목이 불편해 무릎을 꿇었다 보호대를 벗었다가 다시 끼웠다가 난리를 피웠던 게 엊그제다. 결국 나아서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그래, 이제껏 하던 대로만 하면…….
문장 한두개가 잊히지 않고 자리에 남았다.
외로움에 정말 취약한 사람이다.
닳아버릴 것 같아 불안해, 마음은 그런 게 아닌데.
204
이름없음
2026/05/23 20:45:02
ID : mIIE7hxTRu6
0
오랜만에 책을 다시 읽었다. 24년 전 5월에 쓰여진 것이었다. 이전에 필사했던 문장을 읽고 들어왔더니 문장에 형광펜이라도 칠해진 것처럼 한 걸음 앞으로 튀어나와 보였다.
지금 내게 필요한 문장들은 여기 있지 않을까.
「그래요. 왜, 냐고 묻진 않을게요. 건방지다고 생각하시겠지만, 그냥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왜 형은 생에서 달콤한 것만 가지려는 거예요? 이젠 아이가 아니잖아요. 슬픔이나 질병, 한없는 괴로움 같은 것도 형의 삶을 이루는 퍼즐의 조각이예요. 핑크나 아쿠아블루만으론 그림을 그릴 수 없잖아요. 받아들여요. 아픈 거 받아들이고 상처도 웃어넘겨요. 엄살 부리지 말라구요」
어린 시절부터 엄살을 자주 피웠다. 꾀병도 꽤 부렸었다. 어쩌면 꾀병이란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거 아닐까? 지난 주 내내 어깨 통증이란 핑계를 대며 푸른 벽지 밑으로 한없이 잠수했다. 물 없는 수면 아래로 천천히 경도되었다. 실은 내가 그걸 원했기 때문에 나락으로 잠시 떨어진 셈이다.
필사한 책을 다시 읽기 전에 어떤 문장에 꽂혔었는지 되감고 나면 얼마나 좋은지 상상만 해봤었다. 이제야 그 즐거움을 진실로 껴안을 수 있었다. 생각이야 늘 많았다. 도리어 문장 속에 갇혀 있을 때 큰 로드롤러가 등장해 잡념을 한쪽 구석으로 밀어버리는 시원함을 찾아낸다.
아찔한 초여름이 계속되고 있었다. 비가 오면 기온이 훅 내려가고 그치면 가면을 벗어던진 채 뛰어다닌다. '영주'가 가진 '민'에 대한 고민은 내가 품은 당신에 대한 것과 상당 부분 유사성을 띠고 있었다. 아, 돌아가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맥박치고 있다. 인공 빗소리가 양쪽 스피커로 투둑투둑 거칠게 나를 때린다.
잠깐, 돌아가면 진짜 좋으려나. 서래가 미결 사건이 되기 직전에 몸을 일으켜 꺼버리는 나의 습성대로라면 아주 고통스러워 할 터였다. 결말을 알고 보는 영화가, 드라마가, 소설이, 과연 처음과 같을 수 있을까. 부차적 감정이 길 잃은 부표처럼 둥둥 떠다니며 자신을 괴롭히지나 않으면 다행 아닌가. 사진 속에 해맑게 웃는 당신의 얼굴을 잠시 들여다보았다.
그 영혼을 아주 잠깐 동안만이라도 내쪽으로 흘러오게 하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그런가? 가만히 앉아 자문한다. 해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지프스처럼 등허리와 어깨에 커다란 돌을 이고 힘겨운 발걸음을 뗀다. 저 옷차림 분명 기억한다, 가볍게 걸친 실크 스카프는 잘 모르겠지만. 그 웃음, 맹랑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던 눈동자, 손가락과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반지, 손등, 전부 기억할 수 있다.
다시 물어보자. 돌아간다면……
205
이름없음
2026/05/25 01:08:54
ID : mIIE7hxTRu6
0
220216
내 숨으로 내 기억으로 살려낸 당신이었다.
206
이름없음
2026/05/25 13:03:48
ID : mIIE7hxTRu6
0
비뚤다와 삐뚤다
비뚤다
바르지 못하고 한쪽으로 기울거나 쏠린 상태에 있다
삐뚤다
바르지 못하고 한쪽으로 끼울거나 쏠린 상태에 있다
기울다와 끼울다
기울다
비스듬히 낮아지거나 비뚤어지다
끼울다
비스듬히 꽤 낮아지거나 비뚤어지다
207
이름없음
2026/05/25 13:19:38
ID : mIIE7hxTRu6
0
심정을 뒤흔들만한 사건이 여럿 있었다. 운동을 쉰 타이밍이라 몸 상태와 함께 판단력까지 우하향했다. 누구나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지만 옳은 판단으로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다. 비뚤어진 마음을 바르게 고치고, 끼울어버린 상황의 수평을 맞추려 노력하는 중이다.
본디 취중에 진담이거늘. 주취자를 앞에 두고 줄줄이 토해냈다. 저물기 전 햇발이 거셌다. 녹아내릴 듯했다. 나무 뒤로 가리어지자 겨우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조금 더 앉아 있으니 풀모기가 기승을 부렸다. 너의, 이름을, 이름을 불렀다. 내게로, 친구에게로, 산의 안쪽 방향으로 음파가 번졌다.
어디서 무얼 하고 있나. 관찰자의 전능이 절실했다. 누군가가 마음을 뒤흔들어놓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스스로 구덩이를 파는 거다. 걸려 넘어지고 다시 일어날 뿐이지만. 타인에 대한 전능을 구하기 전에 자신에 대한 전능을 가지려 한다면 훨씬 좋아질 것이다.
비뚤어진 마음을... 없애려 하지 말고 살짝 방향만 바꿔주면 좋지 않을까. 정의나 개념에 가두지 않기, 흑백으로 생각하지 않기, 천천히 시간을 두고 생각하기. 같은 일들은 연습하지 않으면 절대 늘지 않는다. 아침나절엔 증세에 대한 공부를 했다. 시간이 약이 되어 준 부분도 많았다.
여남은 것들이 호전되려면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평안은 수동적인 마음가짐으로는 절대.. 절대라고 썼다가 지우려 했다는 사실까지 남긴다. ("절대"라는 단어를 왜 그렇게 좋아하는가?) 평안은 수동적인 마음가짐으로 획득하기 까다롭다. 차분하게 가자. 연습도 자주 해보고.
문득 졸음이 밀려왔다. 심호흡 직후 심박변이가 좋아졌다가 다시 떨어졌다. 수면의 양과 질이 모두 곤두박질쳤기 때문이다. 모든 지표가 하향인데 정신만 또렷하면 이상한 일 아닌가. 오래 쉬었다. 재활도 시작했다. 천천히 나아질 거라 믿는다.
208
이름없음
2026/05/26 14:52:46
ID : ffbxA0lcpR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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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바보처럼 아등바등거렸는지. 벽 한번 차고 나가자마자 온갖 상념이 자취를 감추었다. 기분 그래프도 보통에서 좋음으로 올랐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새 사람이 등장하면 예전 기억을 더듬다가 잠시 회한에 잠긴 적은 있었다. 이번엔 달랐다. 의도적으로 은폐시킨 마음이 억눌림을 참지 못했는지 마구 쏟아졌다. 당황스러웠다. 부숴지는 파도를 온몸으로 맞서려다 실패했다. 아니라고 말해봐, 뭐가 달라지는데. 차라리 맞다고 인정해버리고 크기를 줄이면 될 일이다.
건너편 도로에는 사설 응급차량이 서 있다. 녹색빛이 빠르게 점등하며 시선을 빼앗는다. 은폐라. 사실관계를 따져보자면 잠근게 맞다. 가방에 겨울 이불 쑤셔넣듯이 힘을 실어 눌러놨던 셈이다. 괜찮을 줄 알았다. 회피와 부정만 반복하면 시간이 알아서 마음을 부숴버릴 거라고 믿었다. 트리거 한번에 뻥 터질 일인가. 수습하느라 애썼고, 쓰는 중이다. 정리 될 거라고 믿어야만 한다. 인지를 후행으로 꼬매버릴 거라면, 인정과 수용을 한 뒤에 행동으로 넘어가야 했다.
어깨 통증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 건 아니었다. 물속에서는 욕심 부리지 말자는 다짐만 수백번 했다. 그 외엔 숨을 들이쉬고 들이마시는 데 절반의 신경을 부었다. 이전 습관을 털어내지 않으면 다시 부상일 게 뻔했다. 힘을 빼고 아주 천천히 밀었다. 손에 물이 잡히든지 말든지 밀어냈다. 다시 엄지로 입수, 소지로 출수, 몸통은 확실히 돌리고. 고작 열흘 안 나갔음에도 생경했다. 설렘이 심장을 마구 두드렸다. 물을 밀고, 밀고, 또 밀었다. 그래, 무슨 생각이야.
역시 운동만한 게 없다.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칼을 탈탈 털었다. 흐렸다. 비소식이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우산을 챙겼어야 했나. 어쩔 수 없지. 지금은 비라도 잔뜩 맞아야 했다. 열기를 식히고 싶었다.
209
이름없음
2026/05/26 21:37:23
ID : 2NAi9y7xO3u
0
예측한대로 비, 맞아도 소용없었다. 번민은 내면에 있는데 고작 비 좀 쐰다고 나아지겠는가.
210
이름없음
2026/05/28 18:08:23
ID : DvxveK3SL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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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 반드시 살아있을 거라고 믿고 있어도 가끔은 정말로 살아있는지 궁금해진다.
밀린 책을 읽었다. 마지막 구절이 마음으로 한달음에 들어왔다.
당신은 여전히 사막을 꿈꿀까. (『사막으로』)
전작주의 다음 작가가 정해졌다. SF에 강한 작가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울림이 큰 작품을 쓰는 자라는 것은, 문장을 읽기 전까지는, 도통 알 길이 없었다.
언제 보낼지 정해두지 않은 편지를 쓴다. 한 문장씩 입안에서 굴려가며 퇴고한다. 발신은 미래의 내가 감당할 몫이었다. 마음이 변해 보내기 직전 모든 걸 넘어뜨릴 수도 있었다.
가끔은 당신의 바이탈 사인이 절실했다. 대체라고 여겨왔으나 단정한다면 섣부른 일이었다. 숨 쉬고 있나. 어디서 어떤 시간에 갇혀 오늘을 보내는거지. 모조리 알고 싶었다.
그래선 안 된다는 사실이 헛된 욕망을 키웠다.
211
이름없음
2026/05/29 13:01:21
ID : 2MjfQrare7v
0
사라질 것 같은 느낌에 압도당하는 걸까?
어지러웠다. 제 딴엔 이름 붙이기까지 했음에도 정립이 안 됐다는 감각 때문에 괴로웠다. 신경쓰여. 말 그래도 신경일 뿐이었다. 가볍든 무겁든 간에 신경은 신경이었다. 시간성이 확 와닿는 단어에 기분이 그래프를 뚫어버릴 듯 좋아지잖아. 땀방울이 어디 모난 곳 없이 만들어져 계속 흘러내렸다. 상쾌했다. 수면 바깥에서 흘리는 땀방울이 이토록 반가울 줄이야.
212
이름없음
2026/06/02 08:45:31
ID : lu3zWmHA5e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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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자란 풀들이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칼날에 갈린다. 싱그러움이 사방으로 퍼진다. 향기라고 해도 좋겠다. 시취와 정반대의 기분을 내주는 향.
213
이름없음
2026/06/02 18:03:10
ID : g2Ny43O4N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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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음이 옮겨갔을 뿐 유일무이였다. 마음을 재단하는 일은 관두기로 했다. 무게나 의미를 생각하면 할수록 본질과 멀어지고 있었다. 이유는 분명했다. 내 영역이 아니니까.
창밖 이파리를 들여다본다. 주인은 상록수겠지. 3월에도 그랬었다는 걸 기억한다. 한결같은 사람이 있고, 떠나지 않는 자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싶었나. 틀린 가설이 툭 부러진다.
웃고 있다. 아파하지 말라는 뜻이다. 반드시 온다는 말은 다시 말해 떠나지 않겠다는 표현이었다. 왜 하필 나였는지 물을 필요 없다. 당분간이 이렇게 길어질 줄 알았다면 쉽게 손 내밀지 않았을까.
쌀쌀하다. 냉방병에 걸려버리면 어쩌지. 아니다. 병이야 앓고 떨치면 그만이다. 마음이 갑갑해졌다 나아졌다를 반복하고 있다. 계단을 올랐다. 더워지고 싶었다. 정원 출입문을 힘껏 민다.
빛에 비춰보면 달리 보이는 것들이 좋다. 짙은 남색이 그렇다. 잔뜩 물을 머금고 있으면 흑색으로 보였다가, 빠짝 마르면 그제야 제 색을 보인다. 매혹적이다, 의도하지 않은 속임수라는 거.
214
이름없음
2026/06/05 12:06:55
ID : slBfapU59fP
0
보고 싶다. 보고 싶었다. 문득, 웃는 모습을 어떤 차양막 너머가 아니라 눈앞의 생생한 장면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날이 선선한데 에어컨 바람이 지나치다. 팔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끄면 더워질테니 저 멀리로 보내둔다. 무릎에 가닿는다. 인공적 찬바람이 싫어질 때가 올 수도 있으려나.
차아염소산나트륨이랬나. 가끔은 염소가 든 물을 마시게 된다. 뱉기 어정쩡해서, 코로 제멋대로 들어오니까. 이유는 다양했다. 좋은 날이다. 비 갠 다음날은 언제나 그랬다. 쾌청했고, 뭉게구름이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으며, 햇살마저 부드러웠다. 괜히 생각에 잠긴다. 흔들지 않고 가만히 놔두니 불투명한 생각이 둥둥 떠올랐다.
그간 억지로 밀어붙인 탓에 건져내기 어려워지기만 했다. 뻔하고 지루한 이야기였다. 역할에 변화를 주고 싶을 때는 늘 그런 마음이었으므로. 매번 실패해서 대상을 옮겨다닌다는 후일담이 반복해서 구성됐다. 잘못된 방식이라는 걸 모르는 듯했다. 안다고 떠벌리는 입이 자꾸 살아서 동동 떠오른다. 진짜 아는 거야? 알면서 그러는 게 더 나쁘다.
여기서 우회전하면…….
215
이름없음
2026/06/08 11:46:02
ID : 5Wp81dDuq2M
0
시간을 품은 손톱이 자꾸만 자란다. 낯선 감각이다. 언제쯤 잘랐더라, 잠시 숨 돌리는 사이 길어져 있었다. 달려오는 건가. 엊저녁엔 할일을 미뤄 불안했는지 손이 입 근처로 갔다. 자동적이었다. 깨물까. 열 손가락 중 하나 정도는 티 안 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머지는 깔끔하게 손톱깎이로 자르면 될 일이었다.
길러온 노력이 가상했다. 시간도 아까웠다. 스스로에게 건 약속이라면 약속이었다. 키보드에 살보다 손톱이 먼저 닿는 이질감이 어색해 금방 잘라야겠지만, 쓰레기통에 버리기 위해 모으다 보면 쾌감마저 들었다. 이번 달 약속은 무사히 지켰다. 앞으로도 그럴 수 있겠지. 알량한 마음이었다. 그렇게 짧은 손톱으로 돌아간다.
둥글고 바짝한 모양새가 좋았다. 조갑주위염따위의 손병이 오기 전까지는 자가당착을 반복할 듯했다. 사각형으로 위를 좀 남기고 깎아야 염증이 안 생긴다는 사실을 어디서 읽은 탓에 자를 때마다 아슬아슬했다. 탈거한 흔적을 살살 긁어모아 휴지에 싸서 버렸다. 쥐가 먹으면 내가 둘이나 된다니까 바깥에 버려볼까.
어쩐지 저것도 나라고 생각하면 버리기 안쓰러워질 때가 있었다.
216
이름없음
2026/06/10 12:33:24
ID : e59a03vdDxV
0
오른팔 삼각근이 아프다.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지만 무턱대고 운동부터 나왔다. 잡념을 쏟아버리고 싶었다. 물에 저절로 풀어질테니. 몸을 극단적으로 몰아붙이고 싶다. 체력을 소진시키면 지치니 어쩔 수 없다는 핑계라도 댈 수 있지 않을까. 보고 싶다, 묻고 싶다. 이래도 괜찮은지.
217
이름없음
2026/06/19 22:58:28
ID : mIIE7hxTRu6
0
머리가 깨질 듯하다. 약을 미리 먹어둘 걸. 이럴 때는 꼭 여분 약이 간당간당하다. 며칠 전부터 타이레놀 대용량을 사두자며, 마음만 먹다 실행하지 못한 나비효과를 맛보는 중이다. 아찔하군. 열감과 오한을 동시에 느낀다.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를 앓고 있다. 지나갈 증상이라는 걸 알아도 나약해진 정신머리 앞에서 쭈그려 앉게 된다.
괜히 이 사람 저 사람 들쑤셔가며 기댈 곳을 찾아 헤맨다. 부질없는 행동이지. 기분 좀 끌어올려보겠다고 업템포 노래로 바꾸어 틀었다. 하루 종일 비가 올 듯하더니 기어이 쏟아졌다가 잠잠하다가 다시 쏟아졌다. 정신이 없었다. 유리창에 사정없이 부딛는 빗방울 소리가 어째선지 나를 때리는 듯했다.
몸살 기운이겠지. 남은 한 알을 물끄럼 내려다본다. 8알에 3천원이니까 110알에 2만원이면 이득 아니야? 다시 찾아보니 자주 가는 약국에도 재고가 있었다. 내일은 가야지, 약효는 언제 드는 걸까. 애꿎은 두피만 꾸욱꾸욱 누른다. 오른편 관자놀이에 통증이 집중돼 있었다. 이럴 때는 글이고 뭐고 다 날려야 하는데.
이별에 대해 생각했다. 여전히 이별과 죽음을 동치하는 건 경험 기반 사고였다. 적어도 어린 내게는 합리적인 일인 듯했다. 가볍게 생각할 위인이었다면 벌써 삼 개월이나 지난 사찰에서의 만남을 돌아보지 않았을 것이다. 인연이란 본디 교훈을 주고 떠난다는데 그도 역시 내게 성찰점을 한아름 안기고 뚜벅뚜벅 걸어나갔다.
다만 각자의 삶으로 돌아갈 뿐인 것을. 과하게 아파했다. 정오 무렵 느꼈던 두통은 작은 이별을 건너는 내가 내지르는 울음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아니, 사실 맞았다. 이름을, 이름을 알고 싶었다. 알 수 없다면 내 이름이나마 알리고 싶었다. 안녕. 가볍게 손 흔들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제 궤도를 찾으면 될 일이 아닌가?
몇 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때 내 모습은 화면 우상단에 작게 비쳐지고 있었다. 울면 안 돼, 그런 다짐을 했던 것 같은데 노력이 무색하게 수문은 재빨리 함락되었다. 개방된 샘으로 우르르 떨어지는 눈물방울을 차마 막을 수 없었다. 당신은 아니라고 했다. 죽음이 아니라고 그랬다. 납득하지 못한 채 허망한 눈으로 눈물만 흘렸다.
아닌 게 아니었다, 여전히. 어린 너는 비가 쏟아지는 버스 안에 홀로 앉아 있다. 이번엔 곁을 지키는 누구도 보이지 않는다.
218
이름없음
2026/06/29 02:34:05
ID : WjeMrs5O62N
0
보고 싶어. 별안간 깨고 나선 말도 안되는 상상을 했다. 좌측 관자놀이가 아파온다. 이렇게 시원한 여름이 있을까. 빌딩숲에서 탈출했더니 생각의 크기가 급격히 줄었다. 사람이 많으면 삶의 질이 어떻게 해서든지 떨어진다는 비약을 하도 설파하고 다녔더니 진짜 믿게 됐다. 퇴근 시간 버스 안에서 밀집된 공간 안에 사는 실험용 쥐를 떠올렸다. 처음엔 혼자 두다 서서히 두 배씩 늘린다. 128마리와 함께 했을 때 코르티솔 수치가 급격히 오르더니 픽 쓰러졌다.
수도의 광기를 피해 떠나왔다. 정보가 지나쳐 피곤했다. 긴장이 풀린 채 곯아떨어졌다. 창문을 열어두었더니 한나절 내내 새 울음소리가 들렸다. 불쾌하지 않았다. 부드러운 맞바람이 불어왔다. 묵은 공기를 떠나보냈다. 무엇에 그리 시달렸던 걸까. 쌓인 문장이 많아져서 연락을 하고팠다. 앉은 자리에서 만 자도 찍어 보낼 성싶었다. 아. 전해질 수 없는 단어들이 쌓여 목울대가 눌린다. 이번 여름은 왜인지 더위가 늦다. 까닭이 있다는데 궁금하진 않았다.
유예된 폭염이 잠자코 기다리고 있음을 알았다. 7월이 오면……. 올 게 많겠군. 바뀐 장소 탓인지 이상하게 네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떨쳐내려다 포기했다. 며칠 뒤면 의식하지 않게 될 테니. 이러다 만나려나. 가까워져서 그런가. 만나면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아직도 내가 밉나. 그렇다면 얼마나? 밉지 않다면, 으로 시작하는 문장들이 쉽게 무너졌다. 심신미약인가. 더위를 먹고 내려왔나. 광기에 싸인 건 도시가 아니라 나였을까. 왜 이러는 거지, 도대체.
다음주 내내 비 예보였다. 흠뻑 젖고 싶다. 비겁하게 바람막이 안에 숨지 말고.
219
이름없음
2026/07/12 01:03:30
ID : fTPcmnCo5fh
0
어떤 문장도 만들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싸구려 도파민에 취하는 나날, 휴식이라는 핑계를 뒤집어쓴 채 생활하는 도중이면 그렇다. 주기적으로 한 번씩 찾아온다. 침대에 몸을 얽어놓고 두문불출한다.
보고 싶다. 보러 가야지. 벌써 7월이다. 눈 깜빡하면 여름은 바스라질 것이다. 저녁 대신 먹었던 아이스크림의 초코 코팅이 이를 뚫고 으스러져버리는 소리가 맴돈다. 아그작, 손가락 끝에서 찐득하게 녹았다.
어떤 이전으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믿어왔는데 최근 변화가 생겼다. 이젠 그의 존재를 확언할 수 없게 된 길가를 서성이며 시간의 다이얼을 반대 방향으로 한번쯤 돌려보고 싶었다. 희한한 욕망이었다.
리듬이 바뀌며 꿈을 자주 꾸게 되었다. 당신은, 여전히, 들르지 않았다. 슬슬 나올 때였다. 5~6개월이면 분기 아닌가. 무르팍을 갈아버려야 하나.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볼까. 아님 찾아가지 않았기 때문인가.
잘 익은 수박을 갈라 깍둑썰기하여 차곡차곡 쌓아두면 뿌듯했다. 선풍기 바람 선선히 불어오는 곳에서 하염없이 젓가락 한짝으로 뽑아먹으면 이만한 행복도 없다 싶다. 새빨간 과육이 입안에서 피를 낭자히 흘리는 그 달콤함을 잊지 못하고 매년 여름을 손꼽는다.
그래서 말인데, 어디쯤 온 걸까. 이번에도 날짜 맞춰 준다면 기쁠 텐데. 잊기 위해서라면 올해도 덮어써줬으면 해.
220
이름없음
2026/07/18 02:46:50
ID : QslA7AnQnzT
0
여러 말이 겹쳐 입구에 병목이 생겼다. 하고픈 말은 많은데 출력에서 꼬여 이리저리 치이다 터지는 것이다. 신호수가 되어 호루라기 삐익삐익 불고, 유도등으로 흐름을 정렬한다.
뜻없이 단지 안부만을 묻는 연락을 받았다. 반가웠다. 내 연락도 그만큼만 따뜻했으면 좋겠다. 이글이글거리거나 지나치게 썰렁하면 왠지 미안했다. 일할 때 쓰는 능력을 발휘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런 고민들을 한데 뭉쳐 모으고 굴렸다. 뭐가 달라지긴 했느냐 물으면 글쎄. 겨우내 눈밭에서, 봄내음 가득한 꽃밭에서, 뜨겁게 달궈진 검은모래해변에서, 한참을 서성거렸으면서 제자리 같다.
숨이 모자랄 때면 멋대로 되지 않아 화가 났다. 토라져도 발끈해도 물은 한결 같을 뿐이었다. 요새는 한 길 사람 속은 알겠고, 열 길 물속은 도무지 모르겠다. 힘빠진 팔로 허우적거릴 뿐이다.
50m 레인 중간에서 네 얼굴을 떠올렸다. 저런, 떠올랐다. 호흡이 꼬여 허우적거리며 멈췄다가 다시 출발했다. 힘들었다. 그뿐이었다. 뜰채로 살살 구슬려봐도 색다른 감정은 없었다.
시뻘개진 얼굴을 물속에 담그고 있었다. 쉬었다가 가던 거리를 한방에 가려 하니 역시 어려웠다. 그래도 어쩌나, 가야지. 어푸어푸. 힘들다는 푸념을 하고 있으면 여기저기서 메아리가 울렸다.
끼니를 떼우려 이것저것 만들고 있으면 문장들이 우르르 달려와 말을 건다. 이건 어때, 저건 어때. 무딘 칼이라 망정이지 잠시 정신이 팔리면 손가락을 썰어버린다. 마음을 다잡아본다.
유독 무언가를 자르고, 다지고, 굽고, 끓일 때 잡념이 많이 낚인다. 주객이 바뀌어 잡념에 내가 낚일 정도로 휘둘리기도 한다. 휘파람을 불거나 노래를 부르면 조금 나았다.
밀린 문장들도 슬슬 메말라간다. 보고 싶은 마음이 진짜인건가. 차일피일 미루는데. 약속이 잡혀 급히 옷을 샀다. 급히 산 옷은 항상 실패한다는데 이제껏 그래본 적은 없다.
씻고 나와도 5분만 걸으면 피부가 찐득거렸다. 이런 여름을 바라고 바랐으니 내가 참아야지. 어쩌겠나.
221
이름없음
2026/07/19 00:28:10
ID : cNAja065e0o
0
건강한 도파민이었다. 쾌감에 절여진 채 평소보다 조금 더 나아갔다. 힘들진 않았다, 느렸을 뿐. 내일이 기대된다. 여름 내내 훈련하면 100m 왕복도 가능할 듯했다. 드디어 한 계단을 뛰어넘었다. 유튜브 강사가 추천한 드릴은 아주 효과적이었다. 언제쯤 50m를 끊지 않고 갈 수 있게 될까. 한 달 뒤?
가만 돌이켜보니 정말 건강해졌다. 과거의 내가 말하던 문장을 구태여 들춰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당신께 아마 말했었던 것도 같다. 내일을 기대할 “무언가”를 못 찾겠다고. 여기엔 두 종류의 오류가 있다. 1) 내일은 기대하지 않아도 찾아온다. 2) 인생에서 기대할 무언가는 타인에게서 찾을 수 없다.
당장이라도 숨을 끊고 싶었던 걸까? 물에 들어가면 허우적대며 가장 먼저 찾는 게 “숨”이었다. 여태껏 한 번의 들숨이 갈급해 미쳐버릴 지경이라 짜증을 낸 게 아닌가. 방법을 깨우치니 겪어온 시행착오가 모두 바보처럼 느껴진다. 수많은 나와 시간들이 겹겹이 쌓인 덕분에 계단을 올랐음에도. ……그런데 그땐 왜 그랬더라?
잘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다. 라오슈, 는 알고 계실까. 물으면 이런 대답을 하려나. 지금 중요한 건 그림자가 아니라고. 멀어지니 생각하는 시간이 줄었다. 서울에 있을 때면 라오슈가 어떤 거리를 걷는지 꽤나 궁금했었다. 이유를 찾아 헤매봤지만 좀처럼 투명해지지 않았다. 분광에 실패하게 만드는 건 나일지도.
다이얼을 앞으로 돌려 상상한다. 어떤 낙엽을 밟게 될까. 여전히 2)는 해결하지 못한 채다.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얼추 알게 되었는데 깊게 파려고 할 때마다 번번히 귀찮다는 핑계를 읊었다. 다만 보고 싶다. 대체 보고 싶다는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집착은 괴로움을 불러올 뿐인데. 다시 떠나야 하나.
가끔, 아주 가끔씩 습한 공기마저 짓누르던 종소리가 생각난다. 피는 못 속인다는 건가. 신자가 되고 싶진 않지만, 산 깊은 곳의 사찰에서 압도 당하는 기분은 언제라도 찾아가 느껴보고 싶었다. 공수를 한 채 이리저리 떠돌고, 스님께 인사를 드리면 알 수 없는 뿌듯함이 치밀었다. 머리 박박 깎아 들어갈까.
스님은 어리석은 중생의 질문에 현답을 내놨다. 속세에서는 채울 수 없기에 머무른다며. 어째선지 그 대답이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머리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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