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걸을 때 정말 소리가 없다 발자취가 안 느껴져 이건 이 남자애를 이상하게 의식하지 않았을 때부터도 신기했던 특징이었다 보통 이 나이대 학생들이면 발소리도 쿵쿵 나고 존재감이 있는 편인데 얘는 인기척이 안 느껴져서 어? 언제 여기까지 걸어왔지? 하고 항상 좀 놀라게 되더라고
내가 알바하는 곳은 학생들이 다 1-3개의 강의실에서 자습하고 있으면 선생님들이 돌아가면서 몇 명씩을 교실로 데려가서 수업하는 구조인데 이 학생은 그 어떤 선생님도 호명해서 데려가는 일이 없다.. 첨에는 그냥 오늘은 자습만 하는 학생인가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이게 계속 반복되니까 뭔가 너무 이상해
돈 내고 자습만 하는 학생이 어딨겠어 여기에 학생들이 꽤 많이 다니고 있고 나도 정말 오래 일해서 여기가 그런 보습 학원이 아니라는 것 쯤은 잘 안다 무조건 자습과 수업이 병행되는 곳인데 얘한테는 수업에 들어오라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으셨어 그리고 내가 입구에서 학생들 출석을 체크하는 일도 하는데
그때도 이 남자애 얼굴을 보거나 이름을 들은 적이 없다 학생 수가 많고 출석 셀 때는 애들이 우르르 들어와서 누가 왔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모를 수 있다고 해도 어느 정도 눈에 익고 귀에 익는 이름이 생기는데 얜 아니야 출석 체크할 때는 아무 생각도 안 들다가 시간이 지나고 다들 자습실에 앉아 있을 때 얘가 복도에 돌아다니거나 앉아 있으면
아 맞다.. 얘도 왔구나 근데 입구에서 못 봤는데 언제 온 거지..? 싶어 출석부를 보면 빠짐없이 학생들이 다 왔다고 표시해 뒀음에도 얘 이름은 모르겠고 물어보려고 하면 어느 순간 인기척없이 다른 곳으로 걸어갔거나 없어져있다 내가 아무 생각없을 때 갑자기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나는 기분이야 자꾸만
>>11 헉 봐준다니 너무 고맙네..
"선생님 저기 앉아있는 저 학생 이름이 뭔가요?" 이런 식으로 물어봤다 출석 부를 때 체크를 못한 거 같다고 둘러대니까 ㅇㅇㅇ이에요! 하고 그 애 앞에 앉아있는 다른 학생 이름을 부르셨다 그때 강의실이 좀 북적북적 꽉 차있긴 했지만 그래도 내가 분명히 손으로 가리켰음에도 선생님은 그 학생 이름 말고 앞에 앉은 다른 애 이름을 말해주신 거야 잘못 보거나 헷갈려서 그러신 걸까..
아 또 하나 찾았어 내가 일어설 때나 움직일 때 나를 살살 뒤쫓아 오는 거 같다 내가 서있는 곳이라면 그게 강의실과 멀리 떨어진 곳이라고 해도 주변에 있어 내가 너무 의식한 탓일까 하지만 화장실에 가려고 나왔음에도 내 주변이나 화장실 근처 계단에 우두커니 서있어서 좀 놀랐다
만약 정말로 나만 그 애를 볼 수 있다면 내가 자기를 본다는 걸 얘도 아는 걸까 그래서 따라다니는 건지.. 하지만 얜 너무나도 사람같다 흔히들 말하는 귀신같은 존재가 아니라 너무 사람같아서 더 무섭다 근데 정말이지 소리도 무게도 없어보이는 발걸음이라 또 이상하고.. 하 무섭고 기이하다
그리고 얘가 집을 가는 것도 본 적이 없는 거 같아 학생들은 끝나는 시간이 모두 제각각이라 수업과 자습이 끝나면 나한테 인사를 하고 가는데.. 10시 쯤 학원이 끝나고 나만 남아서 뒷정리를 하고 갈 때 분명히 학원 안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지만 이 남자애는 언제 나갔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다른 아이들 사이에 섞여서 같이 나간 거겠지? 말수가 유난히 적거나 낯을 많이 가려서 나나 선생님들께 말을 걸지 않는 거고.
>>20 옆모습이나 뒷모습을 주로 본다 내가 알바갈 땐 편하게 가느라 안경이나 렌즈를 잘 안 껴서 흐릿하긴 하지만 눈코입..?도 잘 붙어 있는 듯해 하지만 이목구비가 기억에 남진 않는다 아무래도 내가 출석 체크를 하는 학생들은 얼굴이 잘 기억나고 이름도 외워지는데 얜 그런 걸 한 기억이 없다보니 얼굴 생김새가 실루엣처럼만 그려지고 제대로 생각이 안 나 어쩌다가 존재를 딱 느꼈을 때 빼고 뒤돌아서면 흐릿한 느낌
>>22 나도 말 한 번 걸어볼까 생각한 적 많았는데 주로 내가 그런 마음을 먹은 것조차 까먹어버리는 경우도 많고, 앞서 말한 것처럼 대부분 어디론가 가고있는 그 애의 뒤통수를 보게되는 거라 어깨를 툭툭 쳐서 물어보기가 좀 무섭다.. 아무튼 적절한 때에 한 번 말을 붙여볼게
근데 여기서 또 이런 의문이 생긴다.. 만약 얘가 진짜 사람이 아니라면? 왜 이 곳에 이렇게 있는 건지. 학교에는 사람이 아닌 존재가 여럿 섞여있을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지만 학원은 잘 모르겠네 뭔가 생뚱맞은 거 같기도 하고 아무튼 여길 벗어날 수 없는 혹은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있는 걸텐데 궁금하다
어제는 하루종일 눈에 불을 켜고 자습실 쪽을 살펴보고 학원을 돌아다녔음에도 그 남자애가 보이지 않았어 평범한 학생이었다면 그냥 결석했나보다 할텐데 뭔가 얘가 안 온 건 사라졌다거나 숨어버렸다는 느낌이 강하게 온다.. 이번주에 한 번 더 알바가는데 그땐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 아무튼 그때도 다시 관찰 일지 쓰러 올게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원장쌤이 오신 날 나는 무조건 그 남자애에 대해 물어보고자 했으니까.. 솔직히 말할까 말까 고민이 되긴 하더라 내가 이상해 보일까봐 그렇다기 보단 정말 원장쌤이 뭔갈 알고 있다면..? 정말 그 애가 사람이 아닌 존재이고 거기에 엮인 이야기를 쌤이 알고 계신다면? 그런 거라면 갑자기 진짜 무서워질 거 같아서 두려웠다 지금 당장은 공포의 감정이 아니라 호기심과 아련함이 더 컸으니까.
>>52 고마워! 늦게 찾아오긴 했는데 열심히 풀어볼게
아무튼 오늘 난 용기를 내서 원장쌤한테 "여기 회색 후드티나 검정색 항공점퍼 입고 막 조용히 돌아다니는 녀석 한 명 있지 않아요~?" 하고 장난스럽게 말을 꺼냈어 원장쌤이 학원에 점차 안 나오실 거라고 했으니까 기회가 없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무서움을 이겼던 거 같아 그런데 처음엔 쌤이 되게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옷차림의 남학생들은 많지 않나? 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셨어
근데 내가 좀 집요하게 내가 봤던 그 애의 모습을 최대한 열심히 설명하면서 막 물어보니까 약간 이상하게 날 쳐다보셨다. 키는 어느 정도인 거 같고, 되게 조용하게 다녀서 인기척도 잘 안 느껴지고, 날이 엄청 더울 때도 그런 옷을 입고 다니고, 수업에 참여를 안 하고 계속 자습만 하는 거 같다.. 만약 수업에 누락되는 거라면 좀 걱정이 되기도 하고 챙겨줘야 하나? 싶어서 여쭤보는 거다 하고서 내가 엄청 주절거렸거든
이건 내 착각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막 떠드는 나를 제대로 못 쳐다보셨던 거 같아 원장쌤이. 내가 자세히 말하면 말할수록 눈을 피하시는 느낌? 근데 이건 오해일 수도 있어 아무튼.. 그리고는 원장쌤이 갑자기 막 문서 정리하러 간다고 자리 피하시길래 내가 막 따라갔어 그리고 원장실 겸 책들 엄청 많이 꽂혀 있는 곳까지 따라 들어가서 나랑 원장쌤이 단둘이만 있게 되었을 때, 이렇게 말했다 "전 솔직히 그 학생이 사람 아니고, 저한테만 보이는 뭐 귀신? 그런 걸까봐 무서웠거든요!"
무슨 용기였는지, 아님 패기였는지.. 하나도 안 무서운 사람처럼 엄청 발랄하게 물어봤다. 당연히 원장쌤이 뭔 소리하는 거냐며 장난치지 말고 빨리 나가서 일이나 보라고 할 줄 알았다 원래 우리 원장쌤이 살갑게 대해주시는 편이 아니라 약간 츤데레처럼 툭툭거리면서 다 받아주는 그런 분이라서 당연히 그런 반응이 나올 줄 알았거든 그런데.. 다들 알 거다. 순식간에 분위기 싸해지는 그 느낌. 막 분주하게 자료 정리하던 원장쌤의 손이 딱 멈추더라.
그리고는 진짜진짜 몇 년간 일하면서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로 "...그런 소리 어디가서 하지 마라. 얼른 가봐." 정말 딱 이렇게만 말씀하셨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진지한 원장쌤 반응에 내가 더 놀라서 멀뚱멀뚱 서있으니까 문까지 살짝 밀어주시면서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한 번 더 말하시고는 원장실에서 날 내보냈어
아 뭐지 다 쓰고 나니까 이게 큰 수확이라곤 할 수 있을까 싶네 아까 실제로 겪었을 땐 진짜 놀랄만한 일이라고 생각했거든? 원장쌤 반응이 너무 이상해서.. 근데 이렇게 보니까 별 거 아닌 거 같기도 하고. 내가 옆에서 좀 시끄럽게 굴어서 귀찮으셨던 거 아닐까 싶다 그리고 솔직히 귀신이네 뭐네 그런 말하면 안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을테니까 그냥 조용히 가서 일이나 하라는 거 였나..ㅋㅋ 아 어떡하지? 원장쌤 다시 오시는 날에 한 번 더 물어봐야 되나? 좀 고민된다 내가 너무 답정너인 상태로 물어보는 건가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