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스레딕월드∮ - 제3장: 죽은 자와 죽지 못한 자(Ⅰ) - (1000)
2.(완) "이건 악령들을 봉인한 물건일세" "얼마면 되죠???" (402)
3.본격 퇴마하는 스레 (5)
4.여생 500년 (218)
5.클리셰 범벅 소설을 써보자 (18)
6.귀신 입장에서 써보는 나홀로 숨바꼭질 [끝...] (29)
7.감시당하고 있는것 같다. (20)
8.마녀는 평화롭게 살고 싶어 (107)
9.좀비 아포칼립스가 터졌습니다 (46)
10.사랑의 색을 노래하다 (11)
11.I'm here (115)
12.슈퍼마켓 시뮬레이터 (13)
13.웅지의 일상 / 웅지의 생활기록 - 2판 (155)
14.던전주가 되었습니다 (41)
15.태양계 미연시 (27)
16.[GL] 원작 여주와 악녀가 빙의자라면 (10)
17.타락은 멸망을 노래하고 (8)
18.예정된 배드엔딩에 되돌아온 마침표를(미연시) (33)
19.Luise (78)
20.외톨이 별은 행복의 꿈을 꾼다 (3)
1
이름없음
2024/06/20 21:14:59
ID : jfPfTPdu7hu
6
"검사 결과는 어떤가요?"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네? 설마?"
"이런 말씀을 드리게 되어 유감입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남았길래 그러죠?"
"500년이 고작일까요."
"안돼애애!"
나는 오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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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름없음
2024/06/20 21:17:25
ID : jfPfTPdu7hu
0
오늘부로 시한부 인생이다.
아니, 실은 그 전부터 시한부였지. 언젠가 찾아올 죽음을 앞둔 시한부였다.
그것을 알지 못하고 너무도 여유롭게 유유자적하다가, 오늘에 이르러서야 그 사실을 인식한 것이다.
우울하기 그지없다.
방에 틀어박히고 싶지만, 그러면 안 되지.
고민을 해야 한다면 산책을 하면서--오 만 년 전의 큰 실수 후 세운 철칙이다.
3
이름없음
2024/06/20 21:19:05
ID : jfPfTPdu7hu
0
즐겨다니던 등반길을 찾았다. 정상을 향해 올곧게 걸어갔다.
고민을 하고 후회를 하며 추억에 잠겼다.
아, 그 모험 즐거웠지.
아, 그 인간 귀여웠었지.
아, 그 결심은 위대하였지.
나는 생각을 하였고, 인간의 언어와 어휘를 차용하여 그것을 깔끔히 하였다.
사람은 여러 문화권에서 살아 여러 언어를 가졌으나, 나를 뜻하는 표현은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그리하여 내가 살아온 삶을 라고 평하고 있었다.
1)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준 스승
2) 재해로부터 인류를 구한 영웅
3) 군림하는 자이며 두려움
4) 역사서의 단골 등장인물
5) 자연을 지키는 자
6) 우리의 친구
7) 자유 앵커
4
이름없음
2024/06/20 21:22:06
ID : jcnCjimMmE2
0
죽음의 사자
5
이름없음
2024/06/20 21:28:43
ID : jfPfTPdu7hu
0
인류는 검정을 불길해했다.
푸른 하늘 아래서도, 붉은 달 아래서도 흑색은 언제나 흑색이었다.
신의 대리인인 빛조차도 감히 가닿지 못하는 어두운 공간.
바로 그렇기에 검정은 죽음의 대표색이 되기에 적합했다.
--그러나 그것은 몇몇 학자들의 주장이요
민중들은 더 편한 설명을 선호하였다.
그 여자가 검정 옷을 입고 다니니까, 라고.
6
이름없음
2024/06/20 21:35:22
ID : jfPfTPdu7hu
0
살아있는 자보다, 시신의 손을 더 많이 잡았다.
대다수의 살아있는 자들은 나의 눈을 피했다. 나와 눈을 마주치는 일이 없었다.
가끔씩 보는 그들의 눈은 분노하거나 처연하였다.
망자를 데려가려는 내게, 항의하거나 절망하는 유족의 것이기 때문이었다.
과연, 즐겁지는 않은 일이었다.
7
이름없음
2024/06/20 21:38:39
ID : jfPfTPdu7hu
0
산 하나를 오르고 내릴 때마다, 온기가 남은 손과 분노한 눈을 떠올렸다.
그들의 짧은 생을 생각했고, 그들로부터 내 여생의 힌트를 얻으려 해보았다.
인간은 죽음의 전문가다. 분명히 배울 만한 무엇이 있을 것이다.
몇 번 생각해보았더니, 과연 답이 나왔다.
"인간에겐 새해 다짐이라는 게 있다고 했지?"
잘은 모르지만, 인간은 1년마다 새로운 계획을 세워 그것을 따른다고 한다.
체중 관리나 건강, 성공과 같은 목표를 매년 수립하다니, 정말로 대단하다.
그렇게 매년 매년 수양을 해나가니 인류가 그토록 발전한 것이겠지.
8
이름없음
2024/06/20 21:48:55
ID : jfPfTPdu7hu
0
그것을 모방해볼까.
그러나 1년은 너무 짧다.
계획을 세워 그것을 지키자면, 적어도 20년은 있어야 한다.
여생 500년, 20년마다 하나의 목표를 이루면 무려 25개의 성과를 이룰 수 있다.
그 성과란 것의 크기도 작지가 않다. 20년이면 인간을 키우거나, 옛 추억을 찾아가거나, 못다 이룬 과업을 마무리하기에 족한 시간이다.
나는 결심했다.
남은 인생은 500년.
그리고 다음 20년, 나는 를 할 것이다.
1) 인간을 주워 키워보자
2) 추억 속 옛 동료를 찾아가자
3) 자서전을 쓰며 인생을 회고하자
4) 내게서 도망간 인간을 찾으러 가자
5) 자유 앵커
9
이름없음
2024/06/20 22:06:20
ID : 3QoNtfXy2NB
0
3
10
이름없음
2024/06/20 22:17:00
ID : jfPfTPdu7hu
0
자서전을 쓰기로 했다.
단순한 자기 만족은 아니다.
내 삶을 기록으로 남기고, 그것을 누군가가 기억하게 하고 싶었다.
기억을 되짚는 과정에서 마무리할 과업을 떠올린다면, 그 역시 쏠쏠한 부수입일 터였다.
인간의 언어를 써야 하며, 인간의 기억에 남아야 한다.
즉 독자는 인간이요 그들의 흥미를 끌 내용인 편이 좋다.
그러니 혼자 고민해서야 답이 없다. 인간의 조언이 필요하다.
11
이름없음
2024/06/20 22:25:46
ID : jfPfTPdu7hu
0
그리하여 인근 소도시의 성당.
나는 신부와 대면하고 있다. 소년으로, 앳된 티를 벗지 못하고 있다.
뭐랄까, 벌벌 떨고 있다. 믿음직하지 못하다.
"본론에 들어가지."
순간 털썩,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소년이 질겁하여 반쯤 실신한 것이었다.
얼굴을 보니 경악하여, 숨도 쉬지 못하고 있다.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나, 죽음의 사자였지.
"아, 당신을 데리러 온 게 아니라 조언을 좀 받으러...."
급히 해명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년을 진정시키는 데엔 잠시 시간이 필요하였다.
12
이름없음
2024/06/20 22:32:35
ID : jfPfTPdu7hu
0
신부 (이름)을 진정시키기 위해, 데운 우유를 내어주며 "죽음은 새로운 시작일 뿐이며 두려워할 것이 못된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러고나니 저녁 시간이 되어 식사도 만들어 차려주었다. 실력을 발휘한 자신작이다.
처음엔 예의바르다, 어느새 게걸스레 음식을 먹는 그였다. 긴장이 풀린 듯하니, 내 고민을 풀어도 좋을 터였다.
"의아한 이야기여도 받아주게나. 나는 머지않아 죽고 마네. 손이 떨리는군."
"이럴 수가. 데운 우유라도 드시겠어요?"
나는 따뜻한 우유를 마셨다. 위안이 되었다.
"실은 두려워. 너무도 무섭다네. 이토록 살고 싶을 줄이야."
"이럴 수가. 하지만 걱정마세요.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며 두려워할 것이 못되어요."
성직자를 찾길 잘했다. 그 조언에 안심이 되었다.
"회고를 위해 자서전을 쓸까 하네. 자네는 성직자요, 식자층이니, 의뢰를 하고 싶다네."
"아, 자서전 작가인가요. 저 그런 거 동경했어요."
그는 왠지 들떠있다.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으니, 이는 설렘을 뜻한다.
13
이름없음
2024/06/20 22:35:54
ID : jfPfTPdu7hu
0
"너무도 긴 인생이어서, 무엇을 써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아. 무엇을 적어야 사람들이 오래도록 기억할까?"
"감히 의견을 내볼 테니, 들어주신다면 영광이겠네요."
그는 예의바르게, 사람들은 를 좋아한다고 주장하였다.
신부의 이름
1) 모험 이야기
2) 사랑 이야기
3) 인류 이전의 이야기
4) 사후에 관한 이야기
5) 자유 앵커
14
이름없음
2024/06/20 23:29:10
ID : vjvu7bBfcNu
0
카지
15
이름없음
2024/06/21 08:49:43
ID : 3zSMp9a8nO6
0
사랑 이야기
16
이름없음
2024/06/21 09:46:06
ID : eFdCi65cE5P
0
오 재밌다
17
공지
2024/06/21 10:26:56
ID : jfPfTPdu7hu
0

18
이름없음
2024/06/21 10:27:39
ID : jfPfTPdu7hu
0
"사랑 이야기를 적어야 해요!"
그러면서 유행하는 연애 소설이나 연애담을 소개하는 카지이다.
그 수가 여럿이고, 카지의 설명도 열정적이다. 그 손은 적절한 제스처를 취한다.
하도 조예가 깊다. 절로 반응할 수밖에 없다.
"그런가. 자네는 연애담을 좋아하는군."
"왓! ...그게 아니라요, 사람들이 좋아한다니까요!"
화들짝 놀라며 부끄러워하는 것이, 성직자라곤 해도 아직은 혈기왕성하고 순수한 소년이다.
19
이름없음
2024/06/21 10:29:37
ID : jfPfTPdu7hu
0
"흠흠, 더군다나 이유가 있어요."
카지는 머쓱한지 자신의 주장에 근거를 덧붙이려 들었다.
"외람되지만, 저희에게 사신님은 공포의 대상이에요."
"부정은 않지."
"그런 사신님의 사랑 이야기라니, 다들 의외의 매력을 느낄걸요? 인류에 길이길이 전해질 거예요!"
인류에 길이길이 구전된다. 그 구절이 나를 설득시켰다.
20
이름없음
2024/06/21 10:38:01
ID : jfPfTPdu7hu
0
나는 상념하였다.
내게 20년이 있다면 가용시간은 10년에 불과하다.
내 인생의 절반은, 기억을 되짚는 공상에 소모되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긴 인생이었기에, 회상에 소홀해지는 순간, 추억은 뒤섞이고 소실될 수밖에 없다.
이 일대기를 기록으로 남기기.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제일 먼저 해야 할 과업이었다.
그와의 추억이라는 달콤한 시간 유희를 포기하여야, 나는 비로소 내 죽음을 준비할 수가 있다.
그는 이었으며, 그것으로 내 기억에 보존되기를 바라왔다.
그랬던 그의 바람을 이제는 종이와 잉크에 옮기자.
1) 왕국의 충성스러운 기사
2) 세계를 정복한 대왕
3) 혈혈단신의 모험가
4) 종교의 창시자
5) 평범한 양치기
6) 자유 앵커
21
이름없음
2024/06/21 16:20:21
ID : 3TO2q2IK2Mk
0
Dice(1,5) value : 1
22
이름없음
2024/06/21 16:38:15
ID : jfPfTPdu7hu
0
카지는 손을 턱에 갖다대고 골똘해했다.
"머지않아 돌아가시게 되어, 자서전을 적는다고 하셨죠? 시간이 얼마나 남았나요?"
자서전을 쓸 시간? 너무 오래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다. 계획을 지키자.
"20년 남짓이지."
"20년이라.... 제 수명보다도 짧네요."
왠지 모르게 카지는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지? 모르겠다.
"알겠습니다. 사신님, 힘내세요. 임종을 지키는 몸으로서, 그 옆에 서있겠습니다."
카지가 말했다. 힘내라고? 그렇지, 집필 힘내자!
임종을 지키는 몸? 성직자를 고상스럽게 부르는 표현이구나. 인간의 비유는 멋져!
힘을 내고 있으니 카지가 종이와 펜을 들고 왔다.
카지는 자리에 앉았고, 기억은 나를 찾아왔다.
23
이름없음
2024/06/21 16:39:54
ID : jfPfTPdu7hu
0
그곳은 외진 산중턱이었다.
눈에 들어온 것은 수십의 쓰러진 병사들. 다가가니 한 사람만이 의식이 있다.
어쩌다 이들은 이곳에 표류했을까.
그들의 외로운 죽음에, 나는 마지막 목격자가 되어준다. 수십의 목숨을 하나씩 수확해간다.
일을 마치고 나는 변덕을 부렸다.
의식이 남았던 기사의 목을 축여준 것이다.
수십 년에 이르는 인연과 싸움의 시작이었다.
집필이 끝나면 언젠가, 우리가 살아갔던 왕국으로 가보자.
어쩌면 내가 모르는 후일담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24
이름없음
2024/06/21 16:40:36
ID : jfPfTPdu7hu
0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열 권 분량의 대하소설이 슬슬 끝을 고하고 있었다.
카지는 건장한 미청년으로 자라났다.
진중함이 덧붙었을 뿐, 과거의 해맑음과 순수함은 여전해 마을 사람들의 호감을 산다.
"슬슬 손이 아프지? 쉬자꾸나. 식사를 차려주마."
카지는 내가 구술한 내용을 정갈한 글씨체로 대필해주는 작가요
"사신님, 방금 말씀하신 내용, 3권과 충돌해요."
내 발언의 오류를 찾아내는 착실한 편집자다.
어느새 내 기억보다 카지에게 더 의존하고 있을 지경이다.
"고맙구나."
"제 선택이에요."
25
이름없음
2024/06/21 16:44:07
ID : jfPfTPdu7hu
0
수십 년의 과거, 열 권에 이르는 여정이 기사의 부고와 함께 막을 내린다.
"...이렇게 그는 숨을 거두었단다. 나의 품 속에서, 철저한 고요함과 함께."
나는 마지막 음절을 발성했다.
카지가 마지막 온점을 찍었다.
"드디어...."
"드디어...!"
나와 카지가 동시에 감탄했다.
"이제 반밖에 안 남았네!"
"드디어 끝났네요!"
말이 갈렸다. 나와 카지는 동시에 의아해했다.
"남자 주인공 죽었잖아요. 끝 아닌가요?"
"아직 1부인걸?"
"이제 1부라고요?!"
"아직 그와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어."
1) 영혼이 된 그와 계속해서 삶을 이어갔다.
2) 그는 죽었으나, 그가 남긴 유언이 있었다.
3) 자유 앵커
26
이름없음
2024/06/21 20:35:18
ID : vjvu7bBfcNu
0
1번
27
이름없음
2024/06/21 20:51:14
ID : jfPfTPdu7hu
0
사람은 죽으면 끝이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진 않다. 빈도는 백 명 중 한 명, 죽고도 영혼이 남는다.
영혼은 육체를 잃었기에, 육신이 불타고 찢기는 환상통에 시달린다.
나는 인간의 영혼을 가엽게 여겨, 그 고통을 끝내주기로 했다.
육신으로부터 풀려나오는 영혼을 감지해, 임종의 순간을 찾아가, 그 영혼을 거둬들여왔다.
그것이 내가 사신으로 불리게 된 연유였다.
28
이름없음
2024/06/21 20:51:24
ID : jfPfTPdu7hu
0
"그는 죽어 영혼이 되었지. 괴로워했어. 가엾게 여긴다면 없애주어야 했지."
"하지만 나는 시험을 해보았단다. 그 끔찍한 고통을 내가 대신 견딜 수는 없을까?"
"시험은 성공했단다. 살과 뼈가 짓눌리는 고통이었지. 그래도 버틸 만했어. 나는 불사신이었고."
"그가 옆에 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아주 행복하였단다."
이것이 나와 영혼이 된 그가 두 번째 삶을 살아간 방법이었다.
내 동행의 2부는, 1부만큼이나 길었다.
29
이름없음
2024/06/21 20:55:01
ID : jfPfTPdu7hu
0
그러나 카지의 협력을 얻어 2부까지 집필하려면, 10년은 더 필요할 것이었다.
우선 1부를 출간했다. 카지의 제안이었다. 독자의 반응을 관찰해야 한다고 했다.
잠시 안식을 취하기로 했다.
한 숨 길게 자고 일어나니 일주일이 지났다. 여러 도시에서 편지가 날아왔다.
자서전의 출판 성적은 이와 같았다.
1) 금서로 지정되었다.
2) 식자층에게만 읽혔다.
3) 대중에게도 널리 퍼졌다.
4) 상상 이상으로 흥행했다.
5) 불법 번역판까지 나돌고 있다.
6) 자유 앵커
30
이름없음
2024/06/21 20:58:45
ID : 3TO2q2IK2Mk
0
4
31
이름없음
2024/06/21 21:02:37
ID : jfPfTPdu7hu
0
"죽음의 자서전 대유행!"
"작가님, 어서 후속작을!"
"사신은 신이야! 신은 사신이야!"
"기사님이 죽었어ㅠㅠ 장례식을 열 거야!"
"종이가 부족해. 이 문제를 풀 합리적 방안은 세계수 벌목이야."
"사신님, 생각보다 호평이에요."
"과연, 네 생각대로구나. 사람들은 연애담을 좋아한댔지."
"아니, 제 생각대로 아닌데요? 더 심한데요?"
카지는 당황하고 있다.
32
이름없음
2024/06/21 21:04:51
ID : jfPfTPdu7hu
0
새벽.
따뜻한 우유를 마시며 창밖을 내다보니, 성당 앞에 마차 열다섯 대가 도착해있었다.
인부들이 자기 몸통만한 묵직한 포대를 휙휙 던지고 있다.
"카지, 저거 뭐야?"
"인세입니다. 국가 예산에 맞먹는 금화이지요."
"아아, 인간이 쓰는 돈? 만져본 적 있어!"
"사신님 돈입니다. 사신님이 쓰시면 돼요."
그러며 아련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마치 그리워질 사람을 미리 그리워하듯이.
"앞으로 10년, 후회 없이 쓰다 가시길."
응?
아아, 알겠다.
카지가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완벽히 이해했어!
33
이름없음
2024/06/21 21:08:19
ID : jfPfTPdu7hu
0
인플레이션!
돈은 가만히 두면 가치가 떨어지니까, 빨리 써야 하는구나!
여하튼 그래서 이 벌어들인 돈을 쓰게 됐다.
인간은 어떻게 거금을 사용하는지, 나는 고민하였고 이를 모방하기로 하였다.
를 따라해볼까.
1) 자선 사업
2) 마을 인프라 개선
3) 사병 모집
4) 과학 개발 투자
5) 도박
6) 자유 앵커
34
이름없음
2024/06/21 21:09:07
ID : y3Xuk4E9tii
0
암살
35
이름없음
2024/06/21 22:29:54
ID : jfPfTPdu7hu
0
시간이 지나면 화폐의 가치는 떨어진다.
최대한 빨리, 화폐를 상품이나 서비스로 교환해야 한다.
"이 돈을 10년 뒤에도 남을 귀한 것으로 바꾸겠어."
"네? 사신님, 지금 당장을 위해 쓰셔도...."
"아니야. 내 자서전이 끝난 뒤의 미래에 투자하겠어."
자서전을 쓰고 남는 여생 480년. 그때의 선택지를 늘리기 위함이다.
카지도 내 결연함을 깨달은 걸까?
카지는 감동받고 있다.
36
이름없음
2024/06/21 22:31:04
ID : jfPfTPdu7hu
0
인간과 어울려 살 앞으로의 인생을 고민하였다.
"혼자서는 불편해. 내 수족이 있으면 좋겠어."
인간 세계의 작동 방식은 너무나도 혼란스럽다.
내 거시적인 목표를 미세 조정할 부하가 필요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몰래 움직이는 수족이어야 해."
나는 사신으로, 여전히 두려움의 대상이다.
내가 공공연히 수족을 부리면 경계와 악평을 받게 된다.
자서전의 힘을 빌려 간신히 얻은 평판을, 쉽사리 잃을 수는 없다.
37
이름없음
2024/06/21 22:31:43
ID : jfPfTPdu7hu
0
이 난제의 해답은 바로 성당에 있었다.
"화, 황송하옵니다, 사신님...!"
대륙 동부의 대도시 베르크
카지의 안내를 받아 베르크를 관리하는 수녀를 만났다.
나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이 돈으로 고아원을 세웠으면 싶군."
"가,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을지...!"
"안 갚아도 되네."
"동상을 세울게요! 사신님을 십자가에 매달겠습니다!"
"진짜 하지 말라니까."
38
이름없음
2024/06/21 22:34:49
ID : jfPfTPdu7hu
0
선행처럼 보이지만, 내 진짜 속내는 다른 데에 있다.
이 일대의 고아를 모아, 전투 요원을 선발할 것이다.
그들에게 어둠의 교육을 시켜 암살자 집단을 양성하리라.
뒷세계 놈들은 배신자라, 비밀 유지가 어렵다.
그러나 고아들이라면 다르지.
유년기부터 나를 찬양하는 세뇌 교육을 시키면, 배신자는 나오지 않는다.
향후 십 년은 자서전을 집필하느라 바쁘다.
그동안 고아원의 규모를 늘리고, 특출난 아이들을 찾아내도록 이 수녀에게 외주를 맡기자.
39
이름없음
2024/06/21 22:38:57
ID : jfPfTPdu7hu
0
"제게 위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아원은 어떻게 운영할까요?"
수녀 (이름)이 물었다.
이 선택에 따라, 다음번 방문했을 때의 고아원 모습이 달라지겠지.
" 이것이 고아원의 운영방침일세."
베르크 고아원 수녀의 이름
1) 최대한 많은 고아를 구한다.
2) 뛰어난 교육으로 인재를 양성한다.
3) 체력 단련과 전투 훈련에 매진한다.
4) 따뜻한 대우로 대외 평판을 높인다.
5) 자유 앵커
40
이름없음
2024/06/22 11:18:22
ID : nU2K1xDByZi
0
세잔느
41
이름없음
2024/06/22 13:28:46
ID : AnU2E5Vamr9
0
4
42
이름없음
2024/06/22 15:05:22
ID : jfPfTPdu7hu
0
내가 돌연 인기를 얻은 이상, 내게 반감을 가진 이들도 있을 것이다.
사신이 세운 고아원에 의뭉스러워하며 결점을 캐내려 들겠지.
그것에 대비해서라도, 평판 관리를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
이 고아원은 내 수족인 동시에, 내 미담의 전파자가 될 것이다.
"왕자와 왕녀에 버금가는 극진한 대접을 해주어라."
"어찌! 사신님의 돈을 그리 함부로 쓸 수는...!"
"10년 내로 나는 이 모든 돈을 탕진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다 주게나."
인플레이션은 무서우니까.
인플레이션 때문에, 돈은 머지 않아 휴지조각이 된다.
카지와 세잔느, 두 사람은 어물거리고 있다.
둘이서 대화하고 싶은 것 같기에, 나는 슬쩍 자리를 비켜주었다.
43
이름없음
2024/06/22 15:06:38
ID : jfPfTPdu7hu
0
"카지 신부님, 저 분은 어째서 저런 선행을 하시는 거죠?"
"그것이 사신님의 인품인 것이겠죠."
내가 선하다고 착각하고 있다. 아주 좋다.
어째서 사람은 착각 속에 자신을 밀어넣는 걸까?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착각 따위 할 일 없다. 인간은 너무 자기 좋을 대로 생각한다.
"자서전을 쓰기 시작할 때 여쭈었습니다. 사신님께 남은 시간은 고작 20년."
"세상에나. 그건 10년 전 아닌가요?"
"맞습니다. 앞으로 겨우 10년이면 사신님은...."
"이럴 수가. 그것이 사신님의 마지막이라니!"
응? 뭐지?
뭔가, 내 자서전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인기작이 10년 뒤에 완결되다니 기뻐하는 것 같다.
44
이름없음
2024/06/22 15:10:09
ID : jfPfTPdu7hu
0
"대체 어찌 보답해야 할까요? 역시 몰래 십자가에 매다는 게...."
"사신님은 자신이 죽은 후에도 남을 미래에 투자하겠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고아원에 후원을?! 그것은 마치 성인...!"
"그런 성인에게 저희가 바치는 예우가 있지요."
"머지않아 사신님이 운명하실 때에 맞추어 성대한 장례식을 열려 합니다."
"그렇군요. 그것이 감사를 표하는 저희의 최선이 될 것입니다."
"교황청에서 제안을 해왔어요. 교황님께서 후원을 약속하셨습니다."
응? 뭐지?
내 장례식?
490년 뒤 내가 죽을 때, 성당은 나를 위한 장례식을 열려나 보다. 감동적이다.
45
이름없음
2024/06/22 15:16:38
ID : jfPfTPdu7hu
0
나는 감동을 받을 참이었다.
뒤이어 나온 충격적인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간절할 때에 사신님이 등장해주셨군요."
"세잔느 수녀님, 들었습니다. 고아가 요즘 많다며요?"
"네. 극악무도한 탓에, 부모 잃은 아이가 늘어났어요."
"성직자로서 부적절한 발언이지만, 죽어 마땅한 인간이군요."
세잔느는 한숨을 쉬었다.
"신이 천벌을 내려주시면 좋을 텐데요...."
베르크에 나타난 악인
1) 부패 영주
2) 유괴범
3) 악마 숭배자
4) 마피아
5) 자유 앵커
46
공지
2024/06/22 15:18:23
ID : jfPfTPdu7hu
0

47
이름없음
2024/06/22 23:19:06
ID : 3zSMp9a8nO6
0
악마 숭배자
48
이름없음
2024/06/22 23:34:09
ID : jfPfTPdu7hu
0
내 계획이 틀어질 참이었다.
악마 숭배자가 고아를 양산하는 이때, 사신이 고아원을 세운다?
사신이 악마 숭배자와 결탁했다는 의혹을 사기 쉽다.
고아원을 세운 시점에서, 나는 이 판에 발을 들여버렸다.
악당을 해치우지 않는 시점에서 내 도덕성은 무너져버린다.
의혹에 더해져, 비방이 이어질 것이 당연하다.
그래도 다행이다. 죽어 마땅한 인간이랬지?
좋아. 암살하자.
나는 슬쩍 대성당을 빠져나왔다.
49
이름없음
2024/06/22 23:36:04
ID : jfPfTPdu7hu
0
그런고로 납치했다.
"히익! 성당이 보낸 암살자인가! 죽어라!"
입도 막았다.
"읍읍! 읍읍!"
암살은 그만두었다.
인간의 사회와 법을 존중하기로 했다.
대신에 이 악인을 포박해 대성당까지 끌고갈 것이다.
필시 사형 선고를 받을 테니, 이는 사실상 암살이다.
50
이름없음
2024/06/22 23:38:06
ID : jfPfTPdu7hu
0
악인을 질질 끌고 가던 중, 커다란 액자 뒤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비밀 통로를 찾아 열었다. 한 소녀가 커다란 새장에 갇혀 있었다.
내 검은 옷을, 인류가 공유하는 사신의 이미지를 소녀는 목격하였다.
"...죽이러 오신 건가요?"
멈칫했더니, 소녀가 미소지었다.
"감사합니다. 이 고통을 끝내주셔서."
단단히 오해하고 있다.
나는 힘으로 잠긴 새장을 열어주었다.
51
이름없음
2024/06/22 23:39:50
ID : jfPfTPdu7hu
0

52
이름없음
2024/06/23 23:30:28
ID : vjvu7bBfcNu
0
3번
53
이름없음
2024/06/23 23:45:19
ID : jfPfTPdu7hu
0
인신매매 목적이었다. 하지만 평범한 소녀라면 비싼 값을 쳐주진 않을 터인데?
이로부터 결론이 도출된다. 소녀에게는 감추어진 비밀이 있었다.
악마 숭배자의 눈에 든 것부터가 특이사항이다.
어떤 분야의 달인이거나, 특이한 피가 흐르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비밀이다. 고로 나는 알 수 없다.
나는 소녀를 일으켜 새장에서 꺼내주었다.
"배웅해줄까?"
"아닙니다. 저 혼자서 충분히 갈 수 있어요."
소녀는 쉼호흡을 하더니, 나와 눈을 마주쳤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은혜를 갚지요."
"천만에. 행복하렴."
나는 강한 인연을 느꼈다.
소녀의 말이 왠지 무겁게 받아들여졌다.
54
이름없음
2024/06/23 23:45:57
ID : jfPfTPdu7hu
0
암살자 집단을 양성할 시설을 세우고, 사실상 암살도 해보았다.
숨도 돌리고 미래 준비도 했겠다, 이제 자서전의 2부를 쓸 차례다.
작가는 여전히 신부 카지다. 손발이 잘 맞는다.
전대미문의 흥행에 새로운 대필 작가를 추천하는 제안도 있었다.
물론 다 거절했다. 카지가 이유를 물었다.
"저로 괜찮나요? 저는 글을 알지만 비전문가고...."
"다른 작가는 싫어. 네가 가장 좋아."
카지는 10년 간 나를 도와준 은인이다. 나도 은혜는 안다.
카지를 바라보자 성급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다른 표정을 덮으려는 듯이.
55
이름없음
2024/06/23 23:46:11
ID : jfPfTPdu7hu
0
나는 기사와의 삶을 회상하였다.
왕국의 밤은 짙고 어두웠으며
왕국의 적은 잔혹하고 강대했다.
영혼이 된 그와 함께 나는 여정을 이어나갔다.
해가 뜨면 앞을 보았다. 달이 뜨면 위를 보았다.
고로 뒤돌아보는 일 없이, 우리는 결심하며 결연할 수 있었다.
56
이름없음
2024/06/23 23:47:47
ID : jfPfTPdu7hu
0
카지와 나는 집필에 집중해, 별다른 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딱 한 번, 카지와 시덥잖은 잡담을 나눈 적이 있었다.
"사신님, 15년 전 오늘, 저를 방문하셨습니다. 앞으로 20년이라며." ()
"그렇네. 5년 뒤 이 날이면, 카지와의 생활도 끝나겠네."
자서전 집필이라는 대업의 끝이다. 그것이 슬픈지 카지는 침울해보였다.
"그날 행사를 열고 싶습니다."
"그것 좋지! 이별을 기리자!"
완결 기념 축하연을 열어야 한다. 포도주와 효모빵이 있기를.
"이 마을에서 장례식을 열겠습니다. 어떤 모습이 좋으실까요?"
아. 카지가 세잔느와 대성당에서 말했던, 490년 뒤에 연다던 장례식 말인가? ()
57
이름없음
2024/06/23 23:53:01
ID : jfPfTPdu7hu
0
카지는 뜬금없이 그런 걸 궁금해했다.
내 장례식이라, 확실히 필멸자로서 고민해볼 주제이다.
파티와 구별이 안 되도록 즐거운 편도 좋겠고, 아쉬울 것 없이 전재산을 써도 될 것이다.
수많은 사람을 불러도 될 테고, 장례식과 동시에 나를 매장해도 되겠지.
더군다나 내 소중한 인연들.
지금은 카지와 세잔느뿐이지만, 더 늘어날 것이다.
490년이 흐른 그때는 다들 죽었겠지만, 그 유해라도 나와 함께였으면 좋겠다.
나 혼자 장례식을 치르긴 외로우니까.
여러 공상을 하여, 나는 내 장례식의 모습을 제안하였다.
1) 파티장처럼 밝고 즐거워야 한다.
2) 내 남은 재산을 죄다 사용해야 한다.
3) 사람이 아주아주 많아야 한다.
4) 장례식과 동시에 나를 매장해야 한다.
5) 카지와 세잔느의 죽음도 같이 기리고 싶다.
6) 자유 앵커
58
이름없음
2024/06/24 18:00:36
ID : mE1cpSMrvBb
0
뭐 준비는 미리미리한다고 나쁠 거 없겠지. 어쩌면 불의의 사고로 485년 보다 일찍 장례식을 해야할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깐
어쩌면 그 동안 다른 인연이 생길지도 모르고 그들의 유해를 함께 매장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크고 넓은 장소가 필요할거야.
어차피 죽은 이후에 뭐가 필요하겠어.
전재산을 전부 다 사용해서 굉장히 크고 아름다운 무덤을 만든다.
59
이름없음
2024/06/24 23:59:10
ID : HCmJUZh89zh
0
밝고 즐겁게! 그리고 사람도 아주아주 많이!
60
이름없음
2024/06/25 00:58:17
ID : jfPfTPdu7hu
0
"죽음은 외롭고 텅 비었으니까, 장례식은 꽉 차있기를 바라."
서두를 열었다.
"사람도 많아야겠고, 기쁨도 가득해야겠지. 파티와 구별이 안 되면 좋겠어."
"저희들의 슬픔을 위안하시려는군요."
카지가 차분히 답했다.
"이렇게 저희를 신경써주시다니. 성당에서 노력해 크고 아름다운 무덤을 만들겠습니다."
"내 전재산을 써. 남김 없이 깔끔히 떠나고 싶어."
61
이름없음
2024/06/25 00:59:38
ID : jfPfTPdu7hu
0
무덤은 실로 크고 화려해야 한다.
장례식이 아무리 활기차도 그 이후엔 고요함만이 남는다.
나와 삶을 공유했던 자들을 합장해 외로움을 덜고 싶다.
"그 장례식에서 카지와 세잔느의 죽음도 같이 기리고 싶어."
"네? 저 말씀입니까?"
"응! 장례식을 마치면 내 무덤에 너희도 같이 묻을래! 그럼 덜 쓸쓸하고 좋을 것 같아!"
나는 카지의 손이 살짝 떨리는 모습을 보았다.
그 떨림은 곧 진정되었다. 카지는 침착함을 되찾았다.
"아하, 사신님 사후에 저희가 죽거든 사신님과 합장되길 바라시는군요?"
응? 뭐지?
내 사후에 너희가 죽는다고?
62
이름없음
2024/06/25 01:02:40
ID : jfPfTPdu7hu
0
으음. 종교인에겐 가끔 기적이 찾아오지.
카지와 세잔느는 종교인이니, 어쩌면 나보다 더 오래 살 수도 있어.
하지만 그 확률은 매우매우 희박한걸?
"아냐. 너희 둘은 나보다 더 일찍 죽잖아?"
"네? 사, 사신님께는 인간의 수명이 보이나요?"
"어? 인간의 수명? 그건 못 보지만... 그냥 아는 거야."
카지의 눈이 시한부 판정을 받은 사람처럼 동그래졌다.
카지가 말을 잇지 못하길래, 내가 대신 대화를 갈무리해주었다.
"너희 둘의 유해를 잘 보관했다가, 내 무덤에 옮기고 싶단 거야."
63
이름없음
2024/06/25 01:06:39
ID : jfPfTPdu7hu
0
카지는 며칠 동안 컨디션 불량을 호소하였다.
자신도 언젠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필멸자로서의 진리를 인식한 괴로움일까?
아니면 내 제안이 부담스러웠을까? 나는 사신이며, 인간의 혐오 대상이었으니까.
카지를 걱정하여, 시중 드는 아이를 통해 몇 번 영양식을 보내주었다.
그 덕이었을까? 카지가 곧 나를 방문하였다. 퀭하고 헬쑥하였다.
"사신님, 장례식과 무덤 건설을 주관하는 교황청에 서신을 보냈습니다."
그렇구나. 우리의 대화 내용을, 신부인 카지는 윗선에 보고한 것이다.
"회신이 왔습니다. 당장 건축을 시작하겠다며, 사신님의 의견을 여쭈었습니다."
우와. 뭐야. 벌써부터 공사를 시작해? 얼마나 크게 지어주려는 거야? 교황청 최고!
크나큰 감동을 느끼며 나는 를 떠올렸다. 무덤은 이래야 하지 않을까?
1) 피라미드
2) 타지마할
3) 진시황릉
4) 미래 시대에 어울릴 전위적인 무덤
5) 자유 앵커
64
이름없음
2024/06/25 01:21:52
ID : XxO7fe581eF
0
착각의 스케일이 점점 커져간다 이쯤되면 사신님 진짜 5년 뒤에 죽어주셔야 할 것 같은데
65
이름없음
2024/06/25 01:26:30
ID : XxO7fe581eF
0
4번
66
이름없음
2024/06/25 12:31:13
ID : jfPfTPdu7hu
0
500년이라는 시대에도 퇴색되지 않을 전위성이 돋보이면 좋겠다.
게다가 완공까지 485년이 남았다. 규모가 커야 그 공사기간이 아쉽지 않다.
"하늘을 꿰뚫는 높이면 좋겠어. 그, 뭐더라? 바벨탑처럼!"
형태는 어떻게 할까? 아, 떠오른 것이 있다!
"내 동상으로 하자! 대신에 알록달록한 온갖 색을 쓰는 거야! 무지개처럼!"
"검정색이 아니라요?"
"응! 왜 보이는 대로 그려야 하지? 실제와 다른 색을 써도 되는 거잖아?"
요즘 동상은 획일적이다. 인체 비례를 지켜 현실을 모방하려 한다.
하지만 미래의 예술은 그런 제약에서 해방될 것이다. 나는 시대의 전위에 서겠다.
67
이름없음
2024/06/25 12:32:30
ID : jfPfTPdu7hu
0
"교황청에는 잘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카지는 담담한 얼굴이었다.
"다시 한 번 확인하겠습니다. 제가 사신님보다 먼저 죽는다고 하였죠?"
"응, 그렇지. 상식적으로. 기적이 일어나면 몰라."
"역시 그렇군요. 작별을 고하겠습니다."
그러더니 카지는 자신의 옷에서 십자가를 떼어내었다.
"저는 나약한 인간으로, 곧 다가올 죽음의 공포를 이길 수 없었습니다."
"그런 제가 어찌 성직자를 자칭해 임종기도를 하겠습니까? 고로 은퇴하기로 하였습니다."
카지가 은퇴를 선언했다.
68
이름없음
2024/06/25 12:35:09
ID : jfPfTPdu7hu
0
"세잔느가 대신 사신님과 생활할 것입니다. 세잔느는 충격을 덜 받았더군요."
"사신님과 세잔느의 최후에 축복을 바라겠습니다."
카지는 침통해져 터벅터벅 걸어나가려 했다. 절로 말이 터져나왔다.
"카, 카지? 날 떠나는 거야?!"
"세잔느가 집필을 하면 제가 원고를 받아 퇴고하겠습니다."
카지는 여전히 등을 돌린 채 발언했다.
"자서전에는 저 역시 애착이 있으니까요."
"지금까지의 생활을 버리고 무엇을 해야 할지 두렵고 막막할 따름입니다."
"그럼에도 떠나겠습니다. 죽음을 수용하고 인생을 마무리하기 위해."
69
이름없음
2024/06/25 12:41:25
ID : jfPfTPdu7hu
0
카지와의 이별. 그러나 나는 카지를 너무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가련한 필멸자들이다.
백 년도 되지 않는 수명을 잊고 살다니, 인간은 대단하였다.
그리고 그 죽음을 받아들이려는 카지는, 더더욱 대단하였다.
"카지, 응원할게."
"감사합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한 처지입니다만."
"나는 을 추천할게. 그래도...."
나는 말을 흐렸다.
"카지와 언젠가 만날 것임을, 장례식에서 함께할 것임을 믿어."
"조언에 감사드립니다. 사신님과 함께해 행복했습니다."
카지가 떠났다.
이럴 수가.
삶을 정리하는 카지에게의 권유
1) 순례여행
2) 고아원 관리
3) 악마 숭배자 퇴치
4) 사랑
5) 불로장생 연구
6) 자유 앵커
70
이름없음
2024/06/25 12:53:16
ID : y3Xuk4E9tii
0
스레 볼때마다 감탄중..............필력도 좋고 여기서 어떻게 이런 잘 맞는 단어들을 착착 골라 배치하는지 신기해 무튼 늘 잘 보고 있어!!!
71
이름없음
2024/06/25 15:27:42
ID : 5TVfdO4JTWn
0
카지는 사랑 이야기를 좋아했고
생물의 삶의 목적은 종의 존속이라니깐
사랑을 해라 카지!
72
이름없음
2024/06/25 15:32:57
ID : xWnWi4L9cq1
0
미친 아름답다...
아니 카지 착각한 채로 가는거야?? ㅋ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
73
이름없음
2024/06/25 16:10:36
ID : jfPfTPdu7hu
0
** 늘 감사합니다!
신부란 지위를 잃었다고 해서, 카지가 모든 것을 잃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얻은 것도 있다. 신부였던 탓에 카지는 연애와 같은 세속적인 가치와 거리를 두어야 했다.
그토록 순진하며 다정다감하고, 사랑 이야기를 열렬히 탐독하던 카지다.
그런 카지이니 분명 낭만적인 연애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간절히 바랐다.
지금쯤 성당의 문지방을 지나고 있을 카지의 미래에 광명이 있기를.
바로 그 순간, 열린 들창으로부터 큰 소리가 울려들어왔다.
"카지! 좋아해! 사귀어줘!"
응?
나는 창밖을 보았다.
74
이름없음
2024/06/25 16:13:31
ID : jfPfTPdu7hu
0
익숙한 얼굴의 마을 처녀가 카지의 앞을 가로막고 서있다.
미사에 매주 참석하고, 성당 행사에도 개근하던 소녀였었다.
"깜짝이야. 자, 이러지 말고 우선 집에...."
"어딜 가려는 거야? 카지가 위험하단 것도 몰라?"
"내, 내가 위험해?!"
"카지가 신부를 관둔다는 소식에, 군침 흘리며 눈독 들이는 곳이 한둘이 아니라고!"
"응? 하하, 그게 무슨...."
"그렇게 조심성 없이 웃고만 있잖아! 촌장댁이며, 여관이며, 병영이며... 자기 딸을 중매하려 난리야!"
아. 맞아. 카지는 정말 미청년이었지.
오랜 성직자 생활로 그 인품과 예의마저 증명이 되었다. 일등 신랑감이며 사윗감이다.
그러니 서둘러 데려가야 한다. 행동력이 있어야 미남을 얻는다.
"우와아아아...."
내 생각에 호응하듯이 옆에서 가녀린 한숨이 들렸다.
75
이름없음
2024/06/25 16:20:18
ID : jfPfTPdu7hu
0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세잔느가 그곳에 있었다.
"세잔느? 언제부터 여기에?"
"방금 전부터요. 엄청 흥미진진하네요."
동료가 생겼다. 동료와 함께 나는 다시금 구경하였다.
"레이스, 하지만 우린 소꿉친구고... 너무 당황스럽지 않을까?"
"아, 안 되는 거야? 너무 활기차서 그래? 맞춰 나가자!"
"아니지. 나야 괜찮지. 레이스가 걱정이야."
"나? 내가 왜? 내가 무엇을 위해 독신이었는데!"
"레이스는 나를 안 좋아하잖아? 언제부턴가 나를 쌀쌀맞게 대했고...."
카지의 폭탄 발언.
"어이쿠 화상아."
"둔탱이네요."
나와 세잔느는 한 마디씩 거들었다.
76
이름없음
2024/06/25 16:23:18
ID : jfPfTPdu7hu
0
다행히도 이야기는 잘 진행되어, 카지는 은퇴 1분만에 매진되었다.
내가 15년간 연애 이야기를 하며 교육시켜준 보람이 있다.
카지가 소꿉친구에게 끌려 시야 밖으로 사라지고, 나와 세잔느가 성당에 남았다.
방금 전 대소동의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77
이름없음
2024/06/25 16:27:13
ID : jfPfTPdu7hu
0
"거참, 요즘 애들은 대단하네. 몇 천 년 전엔 안 그랬는데."
"사신님의 과거 이야기는 자릿수가 달라서 무서워요."
대답하면서도 세잔느의 정신은 다른 데에 팔려있었다.
"카지 전 신부님은 향후 5년, 애인과 한다고 하셨지요. 좋은 부부가 되기를 바라는 저예요."
카지의 향후
1) 신혼여행
2) 마을에 정착해 알콩달콩
3) 세계를 모험
4) 자서전 집필
5) 자유 앵커
78
이름없음
2024/06/25 17:16:28
ID : y3Xuk4E9tii
0
ㅂㅍ
79
이름없음
2024/06/25 18:28:47
ID : vjvu7bBfcNu
0
신혼 여행을 가는거야! 카지 입장에서는 마지막 여행이겠지만...
80
이름없음
2024/06/25 18:47:02
ID : jfPfTPdu7hu
0
"최대 5년, 이곳저곳 신혼여행이라니. 동경하게 되네요."
검소한 생활을 하던 카지였으니 모아둔 돈만으로도 관광을 원없이 할 것이었다.
식견이 깊어지고 사랑도 활활 불타오르겠지. 카지의 변한 모습이 기대된다.
턱을 괴고 공상하던 세잔느의 얼굴이 일순간 새빨개졌다.
세잔느는 뺨을 탁탁 치며 고개를 저었다.
망상에서 벗어난 듯싶었다. 본론을 꺼냈다.
81
이름없음
2024/06/25 18:47:09
ID : jfPfTPdu7hu
0
"세잔느, 고아원은 괜찮아?"
"저 없이도 굴러갈 거예요."
"아쉽겠구나."
"저는 떠나야 했습니다."
이미 부모의 죽음을 겪은 아이들에게, 또다른 죽음을 얹을 수는 없었습니다.
세잔느는 결의를 눌러 담아 말했다. 이미 그녀는 선택한 것이다.
나는 그 선택을 존중하면 되었고, 자서전 집필에 힘쓰는 일이 바로 그 존중의 방식이었다.
82
이름없음
2024/06/25 18:48:20
ID : jfPfTPdu7hu
0
집필은 계속되었다. 끝은 가까워졌다.
자서전이라는 과업이 끝날수록, 나는 점차 다가오는 죽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감수성이 변했고, 평소라면 안 할 짓을 했다.
"신께 올리는 기도입니다."
"나도 가끔은 하고 싶단다."
그러며 세잔느의 새벽 기도에 몇 주 어울리기도 했고
"세상이 이토록 섬세했다니. 나는 왜 그토록 급했을까? 죽음에 더 빨리 가닿기 위해?"
화단의 붉고 푸른 수국을 달빛에 비추어 관찰하기도 했다.
세잔느는 기도를 더 자주 올렸다.
눈물의 빈도가 잦아져서, 나는 세잔느의 옆에 더 오래 있어 주었다.
순조롭게 시간이 흐르며 내가 약속했던 그날이 다가왔다.
83
이름없음
2024/06/25 18:50:46
ID : jfPfTPdu7hu
0
"...선선한 날씨네요."
자서전의 완결을 목전에 둔 계절, 세잔느가 나들이복을 입고 찾아왔다.
"사신님, 소풍입니다."
"어디로?"
"사신님의 무덤으로요! 공사가 끝났어요!"
내 무덤. 전위적인 색채의 거대 동상을 나는 의뢰했다.
그런데 완공되었다고?
나는 위화감에 사로잡혔다.
"반드시 보셔야해요. 사신님의 무덤, 이 일품이래요!"
1) 도굴 방지 기능
2) 관광 시설
3) 예술성
4) 부장품
5) 자유 앵커
84
이름없음
2024/06/25 20:53:03
ID : 3zSMp9a8nO6
0
도굴 방지 기능
85
이름없음
2024/06/25 21:49:22
ID : jfPfTPdu7hu
0
마을 초입의 산을 넘으니 거대한 동상이 한눈에 들어왔다.
낫을 들고 선 내 모습이다. 관문을 지키는 수문장처럼 늠름하다.
내 요청을 받아들여 색색의 염료를 이리저리 발라놓았다.
"총괄 장인입니다! 방문을 환영합니다!"
장신의 사내가 쿵쿵 걸어왔다. 동그란 안경을 쓴 곱슬머리 청년이다.
색색의 보석이 가득 든 바구니를 건넸다.
"뭐지? 난 이런 것 안 좋아하네만."
"이 렌즈를 눈에 대고 동상을 보시면 됩니다!"
장인이 설명했다. 미심쩍었다.
마지못해 오목하고 얇은 사파이어를 집어들었다.
86
이름없음
2024/06/25 21:52:27
ID : jfPfTPdu7hu
0
사파이어는 청색광만을 들여 음영을 만들었다.
청색과 흑색으로 된 세상에서, 밝게 웃는 아이의 실루엣이 보였다.
사신인 내가 아이를 지키는 것과 같은 구도가 형성됐다.
내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루비를 가져간 세잔느도, 무엇을 보았는지 신기해하고 있었다.
전위적인 무덤을 세워달란 부탁을 이들은 충실히 따라주었다.
"눈에 대는 렌즈의 색에 따라 동상이 달리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장인은 안경 너머에서 안광을 반짝였다.
"그러나 무덤의 진가는 아직입니다!"
87
이름없음
2024/06/25 21:52:55
ID : jfPfTPdu7hu
0
무덤의 입구에는 철갑으로 완전무장한 병사가 대기하고 있었다.
병사의 앞에는 복도가 있는데, 어두컴컴한 오르막이었다.
"자아, 전진!"
장인의 지시에 따라 병사가 철컥철컥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다섯 발짝 후, 여덟 발의 자동 화살이 병사를 저격했다.
철갑이 아니었다면 목숨이 위험했을 것이었다.
"입구부터 사신님의 방까지는 총 300걸음!"
"그러나 안은 미로이며, 다섯 발짝마다 다종다양한 함정을 설치했습니다!"
"비밀통로가 하나 있지만, 유해를 넣은 후 완벽히 봉할 예정입니다."
"그 누구도 들어가지 못하고 나가지도 못합니다!"
88
이름없음
2024/06/25 21:55:43
ID : jfPfTPdu7hu
0
도굴이라니, 내가 생각하지 못한 지점이었다.
내 시신이 사후에 욕보이는 것은 죽어도 싫다. 실로 멋진 보안이었다.
이 무덤에 들어간 자, 나오지 못할 거라고 하지만....
내가 여기 들어왔다가 탈출할 것도 아닌데, 뭐!
아무 문제도 없다!
...아무 문제 없다고?
경각심이 들었다.
내 잠들었던 두뇌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있었다.
89
이름없음
2024/06/25 21:57:54
ID : jfPfTPdu7hu
0
480년 뒤에나 쓸 무덤이다.
이걸 왜 지금 완공한 걸까?
내 비상한 머리는 해답을 찾아냈다.
나는 자서전을 완성하면 이 마을을 떠나게 된다.
행방이 묘연해지기 전 의뢰주인 내게 무덤을 검수받고자 그들은 서두른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이렇게 생각해도 될까?
1) 괜찮다. 자서전을 완결내면 있을 "행사"가 기대된다.
2) 무엇인가 이상하다. 도망을 갈 마지막 기회 같다.
3) 자유 앵커
90
이름없음
2024/06/26 14:06:48
ID : vjvu7bBfcNu
0
도망쳐야 할 것 같은데?
91
이름없음
2024/06/26 14:15:29
ID : y3Xuk4E9tii
0
1
92
이름없음
2024/06/26 21:24:28
ID : jfPfTPdu7hu
0
이럴 수가. 나는 묘지가 완공된 이유를 깨달았다.
간단했다. 내게 검수받겠단 그런 목적이 아니었다.
인플레이션이다!
수중의 돈은 재빨리 써야 한다!
내가 준 화폐가 종이조각이 되기 전에 공사를 서두른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완벽한 안심이 되었다.
고민 따위 말고 자서전이나 적자.
그 마지막 날, 행사를 치르고 새로운 20년을 살면 된다.
93
이름없음
2024/06/26 21:26:16
ID : jfPfTPdu7hu
0
걱정이 해소되었다. 세잔느와 마을로 돌아오는 길, 나는 룰루랄라였다.
세잔느와 여러 잡담을 하다 카지를 화제에 올렸다.
"카지 씨에게서 엽서가 왔어요. 남쪽 대륙에 있다더군요."
그곳은 커다란 산맥이 중앙을 가로질러, 바다를 중심으로 생활하는 지역이었다.
동서남북, 네 개의 대륙으로 된 세계를 카지는 일주한 것이다. 대단한 신혼여행이었다.
"아내와의 금실도 좋대요. 처음엔 걱정했는데 말이죠?"
"카지가 착각을 했었지. 좋아해서 쌀쌀맞게 구는 걸, 싫어하는 줄로 알고."
그 착각 탓에 카지는 아내의 눈총과 원망에 시달렸다고 했다.
하지만 어쩌겠나. 본인의 착각인걸. 본인의 착각엔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
"카지 씨를 빼곤 다들 알았고, 안타까워들 했지요. 성직자는 독신이어야 하니."
성직자 세잔느가 말했다. 그녀는 아직 이십대 후반의 나이였다.
94
이름없음
2024/06/26 21:31:57
ID : jfPfTPdu7hu
0
마차가 덜컹거렸다. 창의 틈이 벌어져 햇빛이 한 줄기 들어왔다.
그 내리꽂히는 공백의 빛을 세잔느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카지 씨가 택한 생명의 삶도 존중해요. 그것이 생명의 목적이니까요."
"하지만 제 기도하는 삶을 후회하지 않아요. 사신님과의 신앙 생활도."
"이 삶을 좋아하니까요. 좋아하니까, 후회하지 않아요."
세잔느가 손을 내밀었다.
나를 향해 건네는 손이기도 했고, 햇빛을 쐬기 위해 내미는 손이기도 했다.
"빛은 신의 은총이라고들 하죠."
위를 향하던 손바닥을 세잔느는 움켜쥐었다.
"이 빛이 끝나지 않으면 좋을 텐데."
그러나 날은 저물었다.
95
이름없음
2024/06/26 21:40:26
ID : jfPfTPdu7hu
0
집필은 이어졌다.
세잔느는 점차 방을 비웠다.
소풍날의 그 나들이복은, 마을의 가난한 집안이 가져갔다.
성당은 나날이 비어갔다.
완결을 불과 사흘 앞둔 날, 한번 예외가 있었다. 건물에 생기가 돌았다.
"배신자가 사신님을 뵙습니다."
카지가 교회에 돌아온 것이다. 반가운 얼굴이었다.
"때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반갑구나. 신혼여행은 잘 마쳤느냐?"
카지는 라고 답했다.
카지의 근황
1)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
2) 아이를 입양했다.
3) 여러 모험을 하고 왔다.
4) 여행 가이드북을 적었다.
5) 자유 앵커
96
이름없음
2024/06/26 21:43:17
ID : y3Xuk4E9tii
0
1
97
이름없음
2024/06/26 21:56:33
ID : jfPfTPdu7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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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모방할 사람이 없습니다."
카지는 고아로, 성당에 거둬들여졌다.
"괜찮다. 카지는 올바르니, 카지 그대로 행동하면 돼."
그는 인자하고 밝은, 호인의 눈을 하고 있었다.
그 눈이 질끈 감겼다.
"그러고 싶지만, 저는 떠나야 합니다."
"결국엔 제 아버지를 따르는군요. 아비 없이 자라게 하는군요."
98
이름없음
2024/06/26 21:58:38
ID : jfPfTPdu7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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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비극이다. 부모는 자녀보다 먼저 죽는다.
자녀를 떠나야 하는 슬픔을 나는 몰랐다.
그러니 카지의 입장에서 말할 수는 없었다.
대신 나의 입장에서 말했다.
"내가 이제야 알았는데, 세상은 많이 아름답더구나."
"이 세상을 만들어준 이에게 감사하게 되었어."
"하지만 나는 너희처럼 신을 믿지는 않아."
"그러니 대신에 감사한단다. 나를 만들어준 이에게."
"신은 아니었겠으나, 나를 세상에 낳은 사람에게."
"그러니 혹여나, 그런 기적이 있다면, 내 감상이 일반적이라면."
"카지도 감사받을 거야. 그러니 안심하면 좋겠어."
99
이름없음
2024/06/26 22:05:02
ID : jfPfTPdu7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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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은 금방 지나갔다.
카지의 손을 빌리니, 집필과 퇴고는 일순간 이루어졌다.
약속한 그날까지 남은 시간을, 나는 카지의 가족과 만나 소비하였다.
그들의 행복은 거대하여 나를 채우고도 충분히 남았다.
카지의 집을 나오며 마을의 소란스럼을 느꼈다.
가득한 인파가 방향성을 갖고 마을 외곽의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내가 목표했던 20년. 그 마지막 날에 연다던 행사.
드디어 그날이 왔다. 즐거운 분위기가 물씬이었다.
행사의 오락거리로 가 마련되었다는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1) 가면무도회
2) 불꽃놀이
3) 서커스
4) 매스게임
5) 자유 앵커
100
이름없음
2024/06/26 22:07:32
ID : XxO7fe581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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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음
2024/06/26 22:29:37
ID : jfPfTPdu7hu
0
"으으... 이럴 줄 알았으면 나들이복을 갖고 있었죠!"
세잔느가 불평하며 옷을 갈아입었다.
카지의 아내가 여행 중에 산, 이국적인 방울 달린 드레스다.
"예쁘기만 한걸."
"폐를 끼치는 게 싫은 거예요. 빌려입게 되었잖아요."
"감사하며 입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나도 단벌신사 신념을 꺾고, 평소의 검은 옷을 벗었다.
대신에 깔끔한 턱시도를 입었다. 카지의 옷으로, 소매를 접었다.
가면무도회. 신원을 숨기고 자유를 누리는 것이 목적이다.
나와 세잔느는 유명인이라 평소의 차림새가 공공연하다.
그래서 이렇게 환복한 것이다. 이젠 아무도 우리의 정체를 모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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