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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공부를 꽤 잘했었다. 과거형이지만
선서를 하고 입학했다
그 전까지 공부에 대한 어려움은 없었다
주변에 머리가 좋다는 얘기를 늘 듣고 자랐고 그냥 저냥 해도 어렵지 않게 상위권에 올랐다
내가 정말 잘난 줄 알았지
솔직히 공부를 별로 안했다 여태 그래왔으니까
하지만 애들은 달랐다 나빼고 다 열심히 했다
기본기로 커버칠 수 있는 시점이 지나고서 부터 성적은 쭉쭉 떨어졌다
그때 진작 정신을 차렸으면 될걸 난 계속 놀았다
공부량은 이전에 하던 만큼만 했다 아니 더 안했다 남들은 더더더 열심히 하는데 난 왜 그랬을까 제자리 걸음도 아니였다 수직하강이니까
세자리 수라니
못해도 20등 밖으로 밀려나본적 없었는데
처음으로 100등 밖으로 밀려났을 때 그제서야 실감이 났다 참 일찍도 깨닫는구나
실감을 했으면 공부를 해야하는데 갑자기 공부하기란 쉽지 않았다 금세 풀어졌고 기말엔 200등에 수렴하는 등수를 받았다
담임선생님이 한 해에 날 몇 번이나 불러 상담했는지 모른다 족히 10번은 넘었을거다
나보고 제발 공부하라고 했다
난 머리가 좋으니 하면 될거라고 했다
늘 이런 소리를 들어와서 더 공부를 안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머저리인데 그땐 내 머리를 믿었다 따지고보면 난 실제로도 공부량만 보면 전교 최하위권이었을텐데 중간은 했다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생각할 수록 그때의 내가 참 멍청하고 미련했다
방학 때 갑자기 공부하고 싶었다
부모님의 닥달 때문이었을거다
짜증났다 성적올리는걸 보여주고싶었다
그동안 놀아서 문제 푸는 속도가 많이 느려졌다 고민할게 많았으니까
문제푸는 속도가 느리니 공부의 진도도 느렸다 이쯤되니 더 짜증났다 학원다니는 애들한테 뒤쳐지기 싫었다 그래서 계속했다
나름 꾸준히 했지만 달리 차도는 보이지 않았다
난 갑자기 열심히 한데에 반해 다른애들은 늘 해왔고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학기가 시작되고 시험기간에는 남들처럼 열심히했다
중간고사 성적을 받았다
작년에 비해 세 등급 넘게 올랐다 비약적인 발전이었다 그래서 좋았다
그래도 부모님께 성적표는 보여드리지 않았다 세 등급 넘게 올랐다고 자랑도 하지 않았다
성적상승이래봤자 오른 상태의 점수가 이전의 상위권학생이던 나에 비하면 한참 낮았기 때문이었다
자랑해봤자 좋은 소리 듣지 못할 것 같아서 안했다
한 번 오르고 나니 더 올리고 싶었다 더 열심히했다 하지만 좀 지쳤다
이전의 내가 나름 열심히 했기 때문에 여기서 더 열심히라는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멍청했다 나보다 공부 더 잘하는 애들은 나보다 두세배는 더 할텐데 왜 이리재고 저리재며 꼼수 부렸을까 그냥 닥치는대로 하면 됐을걸
스스로 한계를 설정해버린 탓에 그 이후로 성적은 크게 오르지 않았다
꾸준히 오르긴 올랐지만 눈에 띄는 발전은 없었다
짜증났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 공부의 원동력은 짜증과 불안이었던 것 같다
하긴 난 늘 부정적이었으니까 긍정적인 아이들이 부러웠다
어떻게 이 짜증나고 재수없는 상황을 저렇게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저런 노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애써 좋게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다
난 늘 뜻 대로 안돼서 짜증났고
내가 집중을 못해서 짜증났고
내가 몰라서 짜증났고
시간이 없는데 속도가 느려서 짜증났고
학원다니는 친구들보다 뒤쳐질까봐 늘 불안했다
다음에 오르지 못할까봐 불안했다
대학 갈 곳이 없어서 짜증났다
2학년이 되고서부터 부모님은 이런말을 하셨다
인서울 아니면 대학 등록금도 안대줄거라고
나보고 대학가지 말란 소리인가
그냥 망했다고 생각했다 2학년 때 아무리 올랐다 해도 1학년 때 너무 놀아서 합산하니 내신은 폭망이었다
남들 다 가는 대학 나만 못가기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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