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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너는 여느때와 같이 조금 피곤하지만, 행복해보였어
시답잖은 얘기를 하면서 우리 우정 영원하자, 이런 낯간지러운 말도 곧잘 했고
내일은 뭘 할까, 크리스마스에는 뭘 할까, 새해애는 뭘 할까
조곤조곤 듣기 좋은 목소리가 말을 멈춘건
그 다음 날이었고
나는 네 마지막 온기를 느끼지도 못하고
껍데기만 남아버린 네 몸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어
고마워
최악의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해줘서
아직 잊지 않고 있으니까 걱정마
영원히 기억할게
널 살리려면 기억 조각부터 모아야 하겠지
첫 만남은 조금 추운 봄이었고
환해보이는 얼굴이 햇빛을 가리는 듯한 그 느낌이 좋아서 네게 웃어보였어
빛바랜 나와 알록달록 예뻤던 너는 어느새 볼때마다 인사하는 사이가 됐고
또 마주칠때마다 웃으며 장난치는 사이가 됐어
만난지 세 달쯤 됐을때엔 네가 날 끌고 어디론가 갔었지
만화 주인공마냥 혼자 있기 좋은 공간이라며
작은 골목을 지나 조금 트인 곳에
정리가 되지도 않은 잡초들과 꽃들이 우거진 그 곳에 날 데려가서
예쁜 손으로 화관을 만들어주고
어디서 가져왔는지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사진도 찍어줬어
감성적인게 최고라며 들뜬 목소리로 사진들을 보여주던 너는
드디어 조금 어려보였어,
내가 할말은 아니긴 하지만.
아니
어쩌면 그땐 나도 조금 들떠있었을 수도
이참에 만화 여주인공이 된 기분이라도 내자는 생각으로...
그랬던것 같아.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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